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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기쁨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기쁨은 따질 수 없는 것이며, 기쁘게 사는 것이 곧 행복한 평생입니다.
- 사람은 왜 기뻐하지 못할까요?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환경에 맞춰 변하려 하지 않고,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불행해집니다.
- 기쁨은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 안에 큰일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으면 작은 일이 큰일이 되어 불행해지지만, 사명이 있고 영원한 소망이 있으면 기뻐하게 됩니다.
2. 본문 말씀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그를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고 눈을 붙이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4-17)
3. 기도
4. 본문 배경
- 솔로몬은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설계도 하고 건축도 했지만,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 솔로몬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사람이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사람에게는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고 기쁨은 선택할 수 있는 것임을 결론지었습니다.
- 솔로몬은 연구 끝에 사람에게 지혜가 있어야 하고, 사물의 원리를 깨달아야 얼굴에 노기를 띠지 않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5. 기쁘게 살아가려면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세상의 지혜는 어떨 때는 통하고 어떨 때는 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사물을 온전히 꿰뚫어 볼 수 없으나, 영적인 지혜는 분명하게 봅니다. 문제를 해석할 때는 영적인 지혜로 해석해야 합니다.
- 영적인 지혜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6. 기쁘게 살아가려면 재앙을 겪는 것을 피해야 한다
- 재앙은 영계의 역사이며 귀신으로부터 옵니다. 재앙을 겪으면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과 육신을 위하는 것이 귀신을 불러들이고, 그로 인해 재앙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재앙을 겪겠습니까? 귀신을 쫓지 않으면 재앙을 겪게 됩니다.
7. 기쁘게 살아가려면 때와 도리를 분별해야 한다
- 도리란 영적인 원리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하며,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고자 하시는지 붙잡아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중화권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 점을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8. 기쁘게 살아가려면 자신에게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두 손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습니다.
- 사람은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고 재앙을 주관할 수도 없습니다. 기쁘게 살아가려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9. 기쁘게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마십시오. 축복과 저주에는 모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분의 뜻을 나타내셨으니, 때가 이르러야 보게 됩니다!
- 사람은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기쁘게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10. 기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 축복과 저주는 지연되어 나타나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반응입니다.
-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왜 그러시냐'고 물을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11. 기쁘게 살아가려면 세상 일로 인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 의인이 나쁜 일을 겪고 악인이 도리어 좋은 보응을 받는 것을 육신으로 보면 몹시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 세상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보면 영원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12. 결론
- 불로소득을 바라지 마십시오! 즐겁게 밥을 먹고 기쁘게 포도주를 마시며, 손으로 수고한 것을 누리십시오.
-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거부하고 육신을 위하는 것을 거부하며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핵심 키워드
- 기쁘게 살아가는 것
- 영적인 지혜
-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을 피함
- 믿음으로 살아감
-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움
- 영적인 안목
-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음
- 때와 도리를 분별함
- 세상 일로 인해 이상히 여김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매우 실제적인 주제는 바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기쁘게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기쁘게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불행한 사람들, 기쁨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 은혜로 저는 기쁜 사람입니다.
예전에 제가 알던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처음 그분의 설교를 들으러 갔을 때, 저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분은 강단에 계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아, 사과 얼굴, 아, 바나나 얼굴, 아, 여주(쓴오이) 얼굴…” 두 번째로 또 아래 앉아 설교를 들었는데 또 “아, 사과 얼굴, 바나나 얼굴, 여주 얼굴…”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앉아 들을 때도 또 사과 얼굴, 바나나 얼굴, 여주 얼굴을 말씀하셨고, 네 번째에도 여전히 사과, 바나나, 여주 얼굴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세 가지만 줄곧 우려먹는 레퍼토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번 들었는데도 저는 여전히 듣기 좋았습니다. 제가 싫어했을 것 같습니까? 저는 듣는 게 좋았습니다. 농담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그 한 편의 설교, 사과 얼굴, 바나나 얼굴, 여주 얼굴 하나로 천하를 누볐으니 대단한 능력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사과 얼굴은 사과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고, 바나나 얼굴은 기쁨으로 휜 얼굴이며, 여주 얼굴은 잔뜩 찌푸려 쭈글쭈글해진 얼굴입니다. 찌푸린 얼굴 아시죠? 다 일그러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 마치 누가 자기 돈이라도 떼어먹은 것처럼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피부가 여주 껍질처럼 몹시 흉해집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 예뻐졌어요.” 제가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물으니, “거울을 봤더니 제가 예뻐졌더라고요.”라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기쁨이 넘치니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보기에 그저 찌푸린 여주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은 가득한데 도무지 기쁨이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은 왜 기쁘게 살지 못할까요? 제 표현대로 하자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그렇습니다. 미련해서입니다! 다른 건 다 있으면서 기쁨만 쏙 빠져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왜 다행일까요? 인성에 결함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문제에 대해 수십 년 동안 깊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이런 걸 연구하기 좋아해서 마침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이것만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사람이 평생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사는 것은 결국 사람 내면의 느낌입니다. 내면이 낙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평생 낙심하며 사는 것이고, 매일 낙심 속에 사는 것입니다. 내면이 근심과 고통이면 매일 괴로워하며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근심 속에 살게 됩니다. 매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두려워하며 살다가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한평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평생 기뻐하면 그것이 바로 기쁜 일생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가만히 있다가도 굳이 일을 만들어 스스로 불행해지려 합니다. 참 대단합니다.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이유를 수천, 수만 가지나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뻐할 이유는 단 하나뿐이며, 저는 그 하나의 이유로 기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을 이유를 수만 가지나 쥐고 있으니 늘 찌푸린 얼굴로 살아갑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신비합니다.
어느 날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약을 하나 개발해 볼까?’ 요즘 제약회사들이 상장도 많이 하고 다 대기업이지 않습니까? ‘약을 하나 개발해 보자. 먹으면 기뻐지는 약을 만들어 볼까?’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약은 그렇게 만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건 마약이니까요. 아시겠죠? 먹어서 바로 기뻐진다면 그게 마약이지 무엇이겠습니까? ‘아, 이 프로젝트는 포기하자, 접어야겠다.’ 했습니다.
그 후에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보려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5G, 6G 통신망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저는 세상에 과학자도 있고, 철학자도 있고, 문학가도 있는데, 왜 ‘기쁨가(Joy-ist)’는 단 한 명도 없는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어째서 ‘기쁨가’는 없고, 어떻게 해야 기쁘게 살 수 있는지는 연구하지 않는 걸까요? 그래서 제가 ‘내가 하겠다, 내가 기쁨가가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저를 자신의 클럽하우스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맛있는 데 잘 찾아다니시네요. 클럽하우스까지 가시고…”라고 합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대나무 공예 수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장강 변의 앵무주(鸚鵡洲)라는 곳에 섰습니다. 장강 변의 앵무주를 아시지요? 그의 클럽하우스가 바로 앵무주 옆에 있어서 경치가 훌륭했습니다.
그는 걸어가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유 목사님, 혹시 최호(崔浩)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제가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덩샤오핑을 물어보면 알겠지만, 최호는 모릅니다. “아니, 최호가 시를 썼지 않습니까?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그가 첫 구절을 읊기에 제가 “아이고, 죽었군요.” 했습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당나라 시인입니다. 제가 “이게 다 뭡니까?” 했습니다. 저는 그런 고상한 시구를 읊조릴 줄 모릅니다. 시를 다 읊고 나니 마지막 글자가 바로 ‘근심 수(愁)’였습니다.
그래서 제 뼈속 깊은 곳에서는 중국 고전문학을 몹시 싫어합니다. 왜 싫어할까요? 중국 고전문학은 쓸쓸한 가을을 슬퍼하는 문학이며, 괜한 엄살과 넋두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쁨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온통 시름이요, 괴로움이요,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한탄뿐이며, 온종일 징징대고 소리쳐 댑니다. 저는 그런 것이 딱 질색입니다! 저는 기쁨가가 되어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가가 되기를 좋아합니다. 문학가들이 쓴 것을 보면 대개 매우 처량하고 비극적인 작품들이고, 그래야 노벨문학상에 가까워집니다. 어느 날 대문호 헤밍웨이가 자살하자,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참 잘했다, 얼마나 용기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다니요? 저는 그런 해석은 난생처음 들어봤습니다. 사는 게 너무 괴로웠던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사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제가 그를 알았더라면 상담해 주고, 기도해 주고, 바로잡아 주어서 좀 더 기뻐지게 만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기뻐지고 나면 노벨문학상은 못 탔을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제 어머니는 종종 “너 몸이 근질근질하냐? 매 좀 맞아야겠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한 대 맞고 정신 차려야겠다는 뜻입니다. 철학자 니체가 어느 날 마당에 앉아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자, 청소하던 사람이 보니 부족한 것도 없는데 왜 저러나 싶었을 것입니다. 미쳐버린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이 할 일 없이 사서 고생한 것입니다.
저는 곰곰이 연구해 본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평생 철학자는 절대 되지 않겠다. 평생 문학가도 되지 않겠다.’ 제가 하는 말에 철학적인 깊이가 좀 있을지 몰라도, 저를 절대 철학자로 보지 마십시오. 저는 ‘기쁨가’입니다. 평생 감상에 젖어 넋두리나 늘어놓는 문학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행승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고행승은 얼마나 힘듭니까? 과학자도 딱히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같이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일도 못 합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잘 살아야 하니, 기쁨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왜 박수를 안 쳐주십니까? 단상에 선 지도자처럼 “나는 기쁨가가 되겠습니다!”라고 선포하고 30초를 기다려도 밑에서 아무 소리가 없으니 참 처량합니다. 알고 보니 여러분 모두 문학가였군요. 너무 촌스럽게 들렸습니까? 사람은 왜 기뻐하지 못할까요?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박수를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박수가 나오는군요. 제가 박수를 청하니 그제야 박수가 나옵니다. 왜 기뻐하지 못할까요? 늘 따지고 들기 때문입니다. 기쁨에는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기쁨은 논리로 따지는 순간 깨져버립니다.
제가 사람들을 섬기다 보면, 한창 사역하는 도중에 저에게 “이래서 그렇고, 저래서 그렇습니다”라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슨 이유를 대겠습니까? 저를 이기지도 못하고 억지 논리만 펼칩니다. 사람이 미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 잔머리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대학생 시절, 인생관 대토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기 한 명을 만나 인생관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습니다. 인생관 대토론은 수많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을 뿐,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가 찾은 답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결국 하나의 느낌으로 사는 것이니, 어찌 되었든 나는 기쁘게 살아야겠다.’ 기쁘게 사는 것이 최고입니다! 잠깐 덧붙이자면, 많은 사람이 ‘6·4 사건’에 참여했지만 저는 그런 데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동기들이 왜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기에, 저는 “시끄럽기만 한데 내가 왜 그런 걸 하겠냐? 나는 그저 기쁨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회사에서는 모범 사원, 사회에서는 모범 시민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벌이다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기쁘게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때 대략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기쁘고 싶은데 기뻐지지 않으니,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 후 교회에 들어갔더니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극진한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라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대체 어쩌자는 것입니까?
여기서 짧은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대만 사람들은 우리 동북 사람들과 다릅니다. 동북 사람들은 말이 거칠고 투박하지만 힘이 넘칩니다. 화가 나면 온갖 욕을 다 끌어다 씁니다.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비교적 교양 있게 말합니다. 화가 나면 “어쩌시려고요?(你想怎樣?)”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대만 자매님들 계십니까? 대만 자매님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어쩌시려고요?”
저는 수많은 암 환자를 섬겨보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들은 기쁘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암 환자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쁨이 없다는 것이며, 사서 고생하며 온갖 불행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도 저에게 따지고 듭니다. 아무리 위로하고 기쁘게 해주려 해도 안 됩니다. 기를 쓰고 고집을 부립니다. 고집을 부리겠다면 어쩌겠습니까?
얼마 전에도 제가 아는 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이 생기면 반드시 불행해질 이유를 찾아내고, 일이 없어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 불행해집니다.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고 머릿속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쓰레기가 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도 화내시잖아요!”라고 합니다. 소리를 꽥 지르고 나서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밥을 먹고 기분 좋게 포도주를 마십니다. 제가 말을 꺼냈다고 해서 “어쩌시려고요?” 같은 말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얼른 머릿속의 쓰레기를 치우십시오. 머릿속이 너무 더럽습니다. 그런 일들이 제 안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문제의 근원을 아시겠습니까? 사람의 머릿속이 너무 더럽기 때문입니다.
어제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돌아가시면 저는 어떡하죠?” 질문 참 잘했습니다! 제가 죽어도 당신은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라고 지금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죽기 전에 얼른 배우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늘 “목사님이 죽으면 난 어쩌나…” 하고 생각합니다.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죽길 바라는 거냐?”며 발끈하겠지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죽으면 어떡하죠?”라고 하면 “어떡하긴요, 살아가야 할 대로 살아가면 되지요”라고 합니다. 제가 죽으면 누가 가르쳐 주겠습니까? 사람이 왜 불행할까요?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목사님이 죽으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사서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세상에는 참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만 했다 하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만 떠올립니다. 참 묘합니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마구 솟구쳐 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꼭 남이 나에게 서운하게 한 일들만 골라서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만 곱씹는 게 사람의 고약한 습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실체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섬길 때, 그는 제가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섬겨주었더니 도리어 서운해합니다. 잘해준 일이 그렇게 많은데 꼭 서운한 것 한 가지만 붙잡고 늘어집니다. 나중에 한 자매가 “목사님, 그 사람 더 이상 혼내지 마세요. 이미 목사님께 너무 죄송해하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죄송해서 불행하다고요? 저에게 빚진 마음이 있어서 기쁘지 않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도리어 기뻐해야 맞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그게 아니라, 자기가 목사님께 섭섭한 게 있어서 그래요”라고 합니다. 늘 남이 자기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불행할까요? 늘 남이 자기에게 빚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늘 세상이 자기 뜻대로 바뀌기를 바라고, 목사도 자기 입맛대로 섬겨주기를 바라며, 의사도 자기가 원하는 처방전을 써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 아닙니까? “의사 선생님, 제 병은 이겁니다. 이 약을 처방해 주세요.” 그럴 거면 병원에는 왜 갑니까? 약국으로 바로 가면 되지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람은 세상이 내 생각대로 변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만, 우리가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반드시 자기 생각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다가 끝내 변하지 못한 채 죽어갑니다. 그러니 저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늘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게 됩니다.
기쁘게 해주려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틈만 나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며칠 전 세탁기 위에 손글씨로 적힌 쪽지를 보았습니다. ‘양말, 팬티 투입 금지.’ ‘아, 여기는 속옷이나 양말을 빨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그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얼른 빨아버리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주쯤 지난 후 실수로 빨았는데, 그 사람이 빨래를 마치고 나면 제가 그 뒤에 슬그머니 빨았습니다. 그 사람은 까맣게 모릅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해줄 생각입니다. 몰래 다 빨아놓고 나서 “이미 여러 번 빨았는데?” 하고 알려주어 질겁하게 만들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양말, 팬티 투입 금지’라고 써 붙였지만 모르면 그만입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식당에 가면 그냥 맛있게 드십시오. 주방에서 어떻게 요리하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저는 오리고기 안 먹어요” 하기에 오리고기 한 접시를 내놓으며 “이건 백조 고기야. 날파리가 백조 고기를 탐내네” 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백조 고기라 생각하고 먹으니 맛있다며 잘 먹습니다. 오리고기가 백조 고기가 되니 먹는 것입니다. 사실 오리와 백조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양고기 안 먹어요.” 하면 “이건 당나귀 고기야”라고 합니다. 맛있게 잘 먹습니다. 사람은 거짓에 속아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기쁘게 해주려 해도 기어코 불행해지려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제가 양육하는 성도들이 저와 논쟁해서 이기면 그들은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제가 지게 놔두겠습니까? 저를 이기면 불행해질 명분을 얻게 되니, 저는 반드시 말로 이겨서 그들의 억지를 꺾어 놓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말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제 입담은 아주 단단하니 절대 부딪히지 마십시오.
나중에 사람들이 저에게 ‘유유리(劉有理, 늘 옳은 유 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저를 말로 당해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여러분도 유익을 얻고자 하니 우리는 한편 아닙니까? 원리는 간단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면 됩니다. 무엇이 그리 복잡합니까? 아시겠습니까? 알았으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얼마 전 나이 든 부부를 만났는데, 아들이 나이가 찼는데도 결혼을 안 해서 속상해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며 상담해 주었습니다. “왜 속상해하십니까?” 하니 동네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서 체면이 깎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줄을 서 있어요, 몇 명이나 만나볼까요? 골라서 데려오라고 할 겁니다.”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한마디 더 쏘아붙이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눈이 높아서 천천히 고르는 중이에요. 아무나 만나는 댁의 아들과는 다르답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시는 꼬투리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내 아들은 높여주고 상대방은 슬쩍 밟아주는 것입니다. 제 입이 좀 맵지요?
사람 안에 큰일이 없으면 작은 일이 큰일이 됩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으면 왜 사는지 알지 못해 모든 일이 다 큰일이 되어버립니다! 예전에는 기쁘고 싶어도 기뻐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알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을 창시하게 되었습니다. 다 제가 정립한 것입니다! 특허료 없이 무료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많은 일은 사실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이제 좀 기뻐지셨습니까?
설교를 30분 동안 했는데 이제 겨우 서론이 끝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고,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어야 기뻐집니다. 기쁨은 영적인 일입니다.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선악을 분별하는 열매를 먹으면 기쁨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8장 14-17절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2. 본문 말씀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그를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고 눈을 붙이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4-17)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결단하고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얻기 위해 나아왔사오니, 주님의 기쁨의 영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 주옵소서. 우리 안의 모든 근심과 고통을 제하시고, 모든 우울과 낙심을 거두어 주셔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기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즐겁게 밥을 먹고 기쁘게 마시며, 이 세상에서 수고하여 얻은 것을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주님의 행사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기쁨의 삶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본문의 배경은 전도서 8장입니다. 전도서는 누가 썼습니까? 솔로몬이 썼습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연구를 수행했고 하나님께서도 그의 연구에 전폭적으로 협력해 주셨습니다. 그는 무엇을 연구했을까요? 어떻게 해야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가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얻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같은 연구를 하도록 택하지 않으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솔로몬의 연구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바라는 것을 그는 다 얻었습니다. 똑똑하고 지혜로웠으며, 후궁에는 미녀들이 가득했습니다. 부러우십니까? 저는 부럽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데 그렇게 많이 두어서 무엇하겠습니까? 솔로몬은 기쁨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연구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녀보아도 별것 없었습니다. 수많은 미녀와 함께해 보아도 그저 그랬습니다. 그뿐입니까? 건축과 부동산 사업을 크게 벌여 집을 짓고 설계를 했습니다. 솔로몬의 건축 디자인은 대단했습니다. 온갖 양식으로 짓고 금과 은으로 도배를 했지만, 그 안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연구를 마치고 나니 이런 것들은 기쁨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접 증명해 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여러분을 솔로몬의 길로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이미 솔로몬이 다 연구해 놓았으니 우리는 그의 연구 결과를 물려받기만 하면 됩니다. 굳이 다시 불을 피우고 바퀴를 재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를 끝마쳤습니다. 8장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연구를 요약하여 결론을 내립니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그를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전도서》 8:15)
이해하셨습니까? 솔로몬은 기쁨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함께 기쁨을 찬양합시다! 불행해하는 사람들의 약을 올려줍시다. 우리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보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쁘게 살까?’ 그냥 기쁜 것입니다. 저를 가까이서 보면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조금씩 술을 마실 때도 거리낌 없이 즐겁게 마십니다.
사물을 연구하고 관찰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기쁘게 살아가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얼굴의 사나운 기색이 변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걸핏하면 화를 내고 무너집니다.
솔로몬이 제시한 몇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첫째, 지혜가 있어야 하고, 명령을 지켜 재앙을 피해야 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재앙을 겪으면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모든 일에는 정한 때와 영적 원리(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목숨을 의사 손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의사에게 맡기면 “행운을 빕니다”라고 할 뿐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왜 여전히 잘 살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결론은 결국 기쁨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8장 15절에서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기뻐하지 않겠다면 그저 행운을 빌 뿐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다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으나, 결국 하나님의 행사는 아무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사에 시시비비를 따지다 보면 자신만 괴로워집니다. 기쁨도 사람의 선택이고, 고통도 사람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왜 이럴까? 왜 저럴까?’ 하며 수만 가지 질문을 던지지 마십시오. 기쁨은 단순한 선택입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전도서》를 읽으십시오. 전도서를 저보다 더 명확하게 풀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솔로몬은 기쁨을 연구했고, 저는 솔로몬을 연구했습니다. 저를 따라 기쁘게 살아가면 복이 있습니다!
5. 기쁘게 살아가려면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한다
1절을 보십시오.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기쁘게 살려면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안 됩니다. 세상 지혜는 어떨 때는 통하지만 어떨 때는 통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석할 때는 영적인 지혜로 해석해야 합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말과 설교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를 통해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적인 지혜가 없으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멍해집니다.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 그것을 영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작은 지혜로 따지려 들면 영적인 지혜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영적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것이 꿰뚫어 보이지만, 세상 지혜로 해 아래의 것들을 보면 볼수록 어지러울 뿐입니다.
6. 기쁘게 살아가려면 재앙을 겪는 것을 피해야 한다
재앙을 겪으면서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몹시 어렵습니다! 재앙이 어디서 오는지 아십니까? 수많은 재앙은 귀신이 일으킵니다. 욥이 겪은 재앙도 귀신이 한 짓이 아닙니까? 교통사고로 마비가 되거나 집이 무너져 깔리는 등 세상에는 온갖 불행한 일이 많습니다.
재앙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시편 91편에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면 귀신을 불러들이고, 인간적인 논리로 따지다 보면 귀신이 틈을 탑니다. 그 결과 온갖 질병과 재앙을 짊어지게 됩니다. 재앙은 영계의 역사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내며 혼을 낼 때, 귀신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동생이 운전할 때 내가 지나가다가 입김을 한 번 ‘훅’ 불었더니 차가 고속도로에서 굴러 계곡으로 떨어졌지.” 얼마나 악합니까?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고, 선악을 분별하며, 육신을 위할 때 귀신을 불러들여 재앙을 겪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원해서 그렇다” 하시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직원이 사장에게 “왜 월급을 안 올려줍니까?” 했을 때 사장이 “올려주기 싫어서 그렇다”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지혜를 가지면 영계의 법칙을 알게 됩니다. 영적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승리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면 귀신이 여러분을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귀신이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갑자기 큰돈을 잃고 낭패를 보는 것도 다 재앙입니다.
7. 기쁘게 살아가려면 때와 도리를 분별해야 한다
기쁘게 살아가려면 지금이 어느 때인지, 어떤 계절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집값이 최고일 때 사고 최저일 때 파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定理)란 곧 영적인 법칙과 원리를 말합니다. 사물의 본질을 붙잡지 못하면 기쁘게 살기 어렵습니다. 때와 도리를 분별해야 합니다. 초기에 화인 사명 신학을 개척할 때는 많은 눈물이 있었지만, 저는 제가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열 명 규모의 작은 회사를 운영할 때와 천 명 규모의 기업을 운영할 때는 경영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상황과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 계절에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새로운 기독교의 변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저는 이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하옵소서!” 이 세대는 하나님께서 중화권을 일으키시는 세대이며, 우리를 통해 땅의 수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여러분도 때와 도리를 분별하여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8. 기쁘게 살아가려면 자신에게 생명을 주관할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관할 자격이나 권한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생명은 영적인 세계에서 주관되며,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다스리십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에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개척하려 하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두 손을 의지해 행위로 살아가려는 자는 모두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재앙이 언제 닥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증거입니다. 과학이나 병원,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던 사람들의 말로를 보십시오.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9. 기쁘게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전도서》 8:11-12 참조)
사람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이 즉시 실행되지 않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마음 놓고 악을 행합니다. 탐관오리들이 수십 년 동안 부정축재를 하다가 결국 잡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때가 이르면 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일로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시간을 두십니다. 오래 살다 보면 악인이 보응을 받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축복도, 저주도 자라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 살아갑니까, 믿음으로 살아갑니까? 보는 것으로만 살아가려 하면 인생을 망칩니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10. 기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축복과 저주는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그 결과를 보게 됩니다. 어릴 적 아이들이 싸울 때 “두고 보자!”라고 하듯,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기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믿음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왜 이렇게 지연되는지 하나님께 따지지 마십시오.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말고, 두통 하나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11. 기쁘게 살아가려면 세상 일로 인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왜 이럴까?” 하며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8:14)
의인이 악인의 행위에 따른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이 좋은 보응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보면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럽습니다. 사역자들도 때로 고난을 겪지만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안목으로는 영원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창세기를 공부하다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전에 미리 알려주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삭의 알 권리는 어디 있습니까?”라며 따집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일에 이유가 있지만,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온통 혼란투성이일 뿐입니다.
결론: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인생이 즐겁지 않다면 이제부터 기뻐하십시오.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권면은 바로 기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즐겁게 밥을 먹고 기쁘게 포도주를 마시며, 수고하여 얻은 것을 누리십시오. 불로소득을 바라지 마십시오. 거저 얻으려는 마음은 재앙을 부릅니다. 부지런히 일하며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십시오.
밥도 맛있게 먹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며, 선악을 분별하지도 말고 육신을 위하지도 말며 그저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여 술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십시오.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을 향한 최고의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찬양을 한 곡 부르고 헌금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거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시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헌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이며, 주를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살아있는 제물로 드립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과 아름다운 계획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 뜻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주님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주님의 권능을 힘입어 원수 마귀를 짓밟게 하옵소서. 마귀가 우리의 기쁨을 결코 빼앗지 못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자매들을 축복하노니, 모든 성도가 기쁨을 회복할지어다! 무슨 일을 하든 기쁨으로 행하게 하시고, 게으름의 영과 어리석음은 떠나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가난의 저주는 끊어지고, 음부와 사망의 영은 묶임을 받을지어다!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 사명을 가진 자가 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