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大家来琢磨一下,是神要特别选一个人与祂同在,还是人可以选择与神同在呢?我有一个很奇特的认知,就是不管神预定也好还是不预定也好,这事咱们管理不了。你不能假设说神预定我做一个彰显神愤怒的器皿,如果真这么说了,真的就成了彰显神愤怒的器皿了。华人命定神学不管不知道和不能做什么的事,我们只管一件事,就是我选择神的同在。我选择相信,神即使没有拣选我,我也要做到神将来拣选我;就算是神没有呼召我服侍祂,我也要服侍神,直到神拣选我服侍祂。
在过去的那些年,我服侍的很辛苦,心里巴不得教会快点成长起来,但是经历的事都不太顺人心。有的人就说:神没有呼召你吧?大家都听过一些人讲,神怎么呼召的故事,但是很少听我讲经历神呼召我的事。
我跟大家讲的是在我一开始服侍的时候,就相信我是神所拣选、所呼召的。有的人就说:就你那样不像是神所拣选的。可能他们说的是真的,但是我就是相信,我是神所拣选、所呼召的,就算是神没有拣选我,没有呼召我,我也要做到神拣选我、呼召我。这是雅各的信心。《圣经》在雅各还没有出生的时候,就这样写:
耶和华对她说:两国在你腹内;两族要从你身上出来。这族必强于那将来大的要服侍小的。(《创世记》 25:23 ) 。
雅各不是一般的人,他就相信自己会得着长子的名分。 我就喜欢积极主动的信心,因为是可以操作的。如果没有可操作性,就没什么可谈的了。《圣经》上说:义人因信得生。所以耶稣来的时候,批评人没有信心。信心的对立面不叫不信,而叫识别善恶。
华人命定最重要是讲信心是可以操作的。你可以想一下,如果信心不是你内心的一个选择,是神给加添的,神为什么还批评那些人小信?为什么还批评人不信呢?信和不信都是我们的责任。
Q1:老师,约瑟那个年代也没有教会,也没法服侍,他的命定是什么呢?是翻转家人,还是管理埃及?
这个问题问的好。不是说有了教会,才有耶稣基督的身体。雅各那时候没有教会,人喜欢的是神的同在。教会就是有神同在的一群人。教会就是神同在的地方,就是神的殿。那个时候还没有神的殿,神仍然与人同在,这事是改不了的。所以这时候的约瑟看重的是神的同在。约瑟不懂得教会是啥,因为那是耶稣基督以后的事。约瑟的命定就是成就神在他身上的美好旨意。其实他不太清楚神的美好旨意是什么,他只知道自己没有得着长子的名分,但是他渴望长子名分的时候,神就给他创造了另外一个职分,就是成为家族的拯救。
应用到今天,其实很多家族都很需要有那么一个有神同在的人。家人中愿意接受的,都可以因你得福;拒绝接受的,跟咱们没关系。比如说,约瑟把他的家人都接到埃及去。如果其中有一个人不愿意去,也没人强迫他去。他留下来在那里自生自灭,一点问题也没有。后来约瑟家族里的人,包括陷害他的、挺坏的哥哥西缅也去了。因为大家没别的路可走,就得投奔这个弟弟约瑟,就得靠着这个弟弟活命。约瑟就成为了家族的祝福。
我们的信心可以推动神的手。至于家人接受不接受不是我们考虑的关键,我们考虑的关键就是我要成为我家族的拯救。透过这样的事,约瑟的名分位居长子以上。就是他的爸爸、哥哥们都要向他下拜,因为他爸爸的信心超越不了约瑟的信心。一个人的信心决定了他在家族里的位分。
也就是说,如果在灵界里,你爸爸妈妈的位份是在你以下,这很正常,这就是服侍。约瑟管理埃及超级有智慧了,管得井井有条。管理埃及不是命定,拯救家族也谈不上那么高大上。但是,其中凸显了神与约瑟同在这事。约瑟求的是神的同在和神的旨意成就在他的身上,神刚好给他一个梦,他要成为家族的拯救。
有些人老问我怎么做才能蒙福?怎么做才有神的同在?怎么做才有信心?等等。那不是悟性上的明白。如果我告诉你,初一十五烧柱香,死了人烧点纸。你觉得简单吗?简单。但那是悟性吗?不是。那叫宗教仪式,什么用都没有。该识别善恶的继续识别善恶,什么都可以干,只要烧了纸,心安理得,就完事了。你要的不是这个吗?就给你这个。
华人命定神学讲的是悟性要通。约瑟有理论水平,心里想的这些东西还用教吗?你会说没有几个人能像约瑟,其实《圣经》不是讲有几个人像约瑟,而是讲像约瑟这样的人会有神的同在。如果你不想做,你不相信自己可以成为约瑟这样的人,那就祝你好运,反正我想。我做梦都想成为约瑟这样的人,那好得无比。
Q2:约瑟这样的境遇,是神在试验约瑟的忠心,以及给他机会高举他吗?
不是。神的计划就是这样。神的计划不是要试验约瑟,神的计划是要让他成为埃及的宰相。这几步走得多好!第一步,做奴隶。这是啥走法呀?就是这个走法。第二步,坐牢。第三步,做宰相。读哈佛大学的都没这么快。30岁做了埃及的宰相。做美国总统,最年轻的大概也得40来岁。约瑟就相信他会成为家族的拯救,他一相信,神就开始落实了。就像拍戏一样,一直拍到做埃及的宰相,好得不得了。其实神就是干这事的。当然在这个过程当中,信心很重要,没有信心根本走不下去。所以义人因信得生贯穿了整本《圣经》。信心这东西太重要了,你只要是一个有信心的人,神会照着你信的成就。
我一直觉着我何德何能,神让我创建华人命定神学?其实就是使徒保罗的神学体系。但是在这个时代,很多人读《圣经》不相信,我相信我就照着做。好多年前,有一个老牧师告诉我怎么才能建立一个荣耀的教会。他给我几句话:第一,你要多祷告。听了这话,我就特别烦,心想这啥话?就跟咱们当中的弟兄姐妹想的一样:我问你怎么做,你要我多祷告?
后来他又告诉我:第二,自生自养。自生自养很累。我希望很多人拥进教会,跟彼得一样,三千人信主,五千人信主,没多久就一万人,多风光啊!我做一万人的大教会的牧师,出去走路都带风。好吗?不好。后来发现我在落实老牧师告诉我的这几句话上做得最彻底。因为他开了很多分堂,讲的都是这个。我落实得最好,我相信人家没忽悠我。
Q3:老师,是不是站在我们自身的高度,竭尽全力地追求学习神的话,落实神的话,做好管理,学习爱神,有命定,就能有神的同在了?
那当然,你得知道神的计划。认识神,知道神是什么样的神?神拣选什么样的人?喜欢什么的人?神与什么样的人同在?就好好落实。
Q4:老师,每次遇到事情,我就控制不住识别善恶,在牧者帮助下,我也能胜过,神还与我同在吗?
这事我可说不清楚。但如果你身上有约瑟的那些反应,那些印证,做啥都有神同在,做啥都蒙祝福,很多事情都非常好,不管在什么环境下都很好,肯定有神的同在。但做啥都倒霉,是个倒霉鬼,肯定没有神的同在,可能还有鬼同在。
千万不要以为在得胜的教会就能解决你的问题,啥问题也解决不了。你可能借着我们这些人蒙福。如果你看重的只是那点祝福,那就麻烦了。你要看重神的同在!我告诉你,如果你心里相信,你肯定能胜过去。不是遇到好事相信,遇到坏事就不相信,人家约瑟遇到什么事都仍然相信。
Q5:老师,孙中山总理是虔诚的基督徒,他的一生都是神的安排吗?我们的命定不是单单建造神荣耀的教会吗?
孙中山这事不太清楚。他是不是一个虔诚的基督徒,我不知道。他的一生是不是神的安排?应该是。他有没有行在神的旨意当中?我也不知道。但是我知道我要行在神的旨意当中。别把这些东西拿出来,拿出来能说明啥呢?这些事不重要,重要的是咱们要建立神荣耀的教会。建造耶稣基督的身体,是《圣经》里神最关心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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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창세기》 39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성경의 원문을 그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매 그가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였더라"로 정하겠습니다. 이 장의 특별히 훌륭한 점은, 요셉이 우리에게 매우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도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성경을 나눌 때, 종종 개인의 축복을 받는 것에 치중하여 복을 받는 것이 성경의 주제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야말로 성경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일을 겪을 때마다 조급해지고 환경이 바뀌기만 하면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당신은 선악을 분별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세워주려고 하는데도 기분 나빠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짜증을 내고 괴로워하며 발버둥 치면서도, 스스로에게 목회자에 대해 선악을 분별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입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선악을 분별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남이 자신을 세워주려 하고 잘해주는데, 왜 선악을 분별합니까? 남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세워주려 할 때조차 선악을 분별한다면, 만약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다면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어느 지경까지 가겠습니까?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악한 열매가 될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애굽에 팔려간 것은 사실이며, 그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었습니까? 애굽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 아니라, 노예로 팔려가서 자기 자신조차 소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누구에게 닥치더라도 절망할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자기 자신조차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할 정도로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을 생각할 때 고통스럽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고통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악을 분별해서는 안 된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는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매우 악하며, 선악을 분별할 때마다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그를 먼저 애굽에 보내셨으며, 그가 가문의 축복이 되고 심지어 장자의 축복을 뛰어넘게 하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생각할 때마다 기뻐했고,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을 생각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셉이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는 마치 상품처럼 노예 시장에 끌려가 누군가 사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팔린 후에는 물건처럼 집으로 실려 갔습니다. 손은 밧줄에 묶여 말안장에 매여 있었고, 말이 가면 따라 걸어야 했습니다. 힘이 다 빠져도 따라가야 했고, 넘어져서 끌려가더라도 계속 가야 했습니다. 그 여정은 몹시 고달팠습니다. 애굽에 갓 도착한 어린 노예로서 처음부터 노예 총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분명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고, 겪은 고난과 고통이 틀림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는 힘들 때마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지 않았다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고생들을 한 줄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요셉은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사실 요셉이야말로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실 선악을 분별할 자격도 없으면서 굳이 선악을 분별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기고, 반드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요셉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조금 살 만해지자마자 여주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죄수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겪고도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정말로 여주인을 희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주인의 유혹을 거절했는데 도리어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나는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다'고 자주 말하기를 권면하며, '선악을 분별함'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거나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여주인을 통해 사리사욕을 챙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원래 노예일 때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죄수가 되어 완전히 빛을 볼 날이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사람은 언제 선악을 분별하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믿을 때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누구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빼앗을 수 없음을 믿을 때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헛소리일 뿐이며 아무것도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옥 안에서 요셉과 같은 방에 있던 사람 중에는 암흑가의 우두머리도 있었을 것이고, 왕 앞의 신하도 있었을 것이며, 무술이 뛰어난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온갖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요셉이 들어가서 고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당신이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겨야만 이겨낼 수 있으며,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모든 것을 선하게 보았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름다운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민 중에서 자신을 높이셔서 가문의 구원이 되게 하실 것임을 믿었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의 열매를 광주리째 따먹기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립니다. 먹을 자격도 없으면서 기를 쓰고 먹는데, 만약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더 먹어대겠습니까! 요셉의 이야기는 저에게 늘 큰 도전과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정말 이 길을 걸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삶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억울함과 서러움을 당할 때, 오직 이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임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이때 선악을 분별했다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던 것은, 그가 선악과 열매 먹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혀 죄수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선악 분별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겼으며, 어떠한 자격이 있더라도 결코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세기》 39:3-4)
요셉이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하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다른 사람들도 분명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볼 수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하여 어떤 일을 그의 손에 맡겨도 반드시 잘 해냈습니다. 처음에는 일개 어린 노예였지만, 노예 감독관이 보기에 이 아이가 아주 훌륭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 앞에서도 선악을 분별하지 않으니 그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업이나 부서의 관리자라면, 할 일 없이 트집을 잡고 선악을 분별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할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할 자격도 없으면서 선악을 분별하고 있으니 매우 얄밉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심은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마음에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을 보았고, 무슨 일이든 그의 손에 맡기면 아주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한 자매님이 저에게 간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매장 점장인데, 자신이 관리하는 매장 위층에 원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어서 유동 인구가 자매의 매장보다 몇 배나 많았지만, 매출은 자매의 매장이 그곳의 몇 배나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창세기 39장을 설교할 때도 이 자매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양육받고 변화되어,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던 상태에서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는 상태로,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는 상태에서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 상태로 나아갔고, 지금은 점점 더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 매장의 점장으로 발령받았을 당시에는 매장의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인수한 후 실적이 계속해서 배로 증가했습니다. 그녀가 있는 매장은 때로 1시간 매출이 같은 쇼핑몰 내 다른 매장의 하루 종일 매출과 맞먹기도 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침에 문을 열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실적이 쑥쑥 올라갔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절대로 우쭐대거나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사실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장님이 싱가포르에서 손칼국수 집을 열었는데, 매출이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매출이 자신의 손맛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려 하자, 그는 자신의 국수 실력이라면 어디로 이전해도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자마자 국수가 팔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 건물의 복과 관련된 것이지, 그 사람 자신 때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상황도 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이 어떤 가게를 인수하면 매출이 쑥쑥 오르고, 저주받은 사람이 인수하면 매출이 곤두박질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것입니다.
주인도 요셉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비록 일개 직원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당신이 관리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명이 없으면 축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여러 번 말했다고 해서 기가 꺾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없이 반복해서 말해도 다들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은 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고,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길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머무는 곳에서 당신의 주인조차 당신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됩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세기》 39:5)
만약 여러분이 요셉에게 주식 투자를 맡긴다면, 그 역시 아주 잘될 것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반드시 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좋지만 쉽지 않습니다. 고생하고 힘들고 괴롭고 억울하며 모함을 당하더라도 선악을 분별해서는 안 되며, 환경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돈이 더 왜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곧 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고, '그럼 자신들의 생활비는 누가 갚아주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제 손을 통해 저와 제 동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며, 무엇을 하든 번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번영과 축복의 길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명을 전하여 여러분을 요셉과 같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시작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형통하고 복을 받는다면 그는 복 있는 사람이며,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주인까지 복을 받게 됩니다. 야곱이 라반의 양을 칠 때 라반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주인 보디발 역시 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은 참으로 큰 덕을 보는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코 '누구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그 사람에게 빌붙어 복을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배운 게 없고 핵심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매번 롯, 아비멜렉, 라반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이 받은 복은 다 간접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야곱이나 요셉처럼 하나님이 직접 함께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겠습니까? 주인이 그로 인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여러분도 따라다닐 요셉 하나를 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식의 복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은 사람이 못생긴 것을 결코 좋은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만 아름답다고 말하면 겉으로는 분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얼마 전 저는 종종 "사모 얼굴"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모님의 얼굴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저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지 마십시오.
왜 "사모 얼굴"이라고 부를까요? 한 번은 제가 어떤 일로 한 목사님께 도움을 청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사모님이 얼굴에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나오는 바람에 꽤 무서웠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와 이야기하던 목사님은 사모님의 그 표정을 보더니 즉시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모 얼굴"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인터넷에서 서태후의 초상화를 찾아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매일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은 마음이 뒤틀려 있는데, 그 얼굴이 보기 좋을 수 있겠습니까?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으면 당연히 분별하고, 자격이 없으면 자격까지 억지로 만들어 내어 선악을 분별하니, 선악을 분별할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이른바 관상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처럼, 이런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는 얼굴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예뻐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겉모습도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모가 그리 아름답지 않은 문제에는 꽤 깊은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 우리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이 점점 아름다워지고 돈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음에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일을 겪어도 더 이상 온종일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저는 한 자매님에게 얼굴이 참 예뻐졌다고 칭찬했습니다. 예전에는 얼굴에 뾰루지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얼굴이 깨끗하고 매끄러워졌습니다. 무슨 화장품을 쓰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예전에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몹시 심했는데, 지금은 예뻐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증거이며, 정말로 좋은 일입니다!
리브가, 사라, 요셉은 모두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니 얼굴에 쓸데없이 덧바르지 마시고, 바르려거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바르십시오. 화장품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야말로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화장품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얼굴이 고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저것 해보며 애를 쓰지만, 사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덧입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였고 돈이 없었지만, 그 자신이 곧 돈이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는 것이 돈보다 더 가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었기에 그 자신이 최고의 화장품이었고, 마음이 기쁘니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7-9)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주인은 날마다 요셉을 괴롭히며 눈짓으로 유혹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더욱 기승을 부려 다른 방법으로 그를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여주인은 계속해서 스스로 다가왔으니, 속담에 '남자가 여자를 쫓을 때는 산을 넘어야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쫓을 때는 비단 한 겹 차이'라는 말처럼, 이런 상황을 겪고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창세기》 39:10-12)
여러분, 반드시 조심하십시오. 차지할 수 있는 이득을 챙기지 않는 것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몹시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같은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여자, 맛있는 음식만 보면 다리가 풀려 아무것도 버텨내지 못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우리가 버텨내기 힘든 유혹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은 결코 행해서는 안 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비극입니다.
만 가지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매 그가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였습니다. 이것이 단지 요셉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요셉을 본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제 조건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빼앗을 수 없으며, 오직 당신 마음의 선택만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이것을 깊이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내가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세기》 39:13-20)
여주인은 요셉을 억지로 범하려 했으나 요셉은 따르지 않았고, 옷을 빼앗기면서까지 도망쳤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데 얼마나 큰 담대함이 필요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참으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여주인은 요셉이 자기를 희롱했다고 모함했으니 요셉이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요셉 역시 겪고 싶어서 겪은 일이 아니었지만 닥치고 말았고, 도리어 악한 자에게 선수를 빼앗겨 고소를 당했으니, 여주인이 노예를 희롱하려 했다는 말을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남주인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자기가 요셉을 그토록 신뢰했는데 요셉이 감히 자기 아내에게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화가 치밀어 요셉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어찌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훗날 그는 첫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잊게 합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창세기》 41:51)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는 것은 매우 소중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좋을 때는 주님께 감사하다가도, 환경이 나빠지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이렇게 묻는 순간 틀어지게 됩니다!
요셉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할 수 있었고, 심지어 아이의 이름을 하나님이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뜻의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가문의 구원자로 세우실 것이며,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루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었고, 자신이 꿈을 잘못 꾼 것은 아닌지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는데, 그의 꿈은 그의 마음속 열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자가 되지 못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자신 스스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자가 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언약을 맺는 자가 하나 더 있든 덜 있든 개의치 않으십니다.
만약 우리의 시선을 축복받는 것에만 둔다면, 감옥에 갇히든 애굽에 팔려가든 축복을 볼 수 없으므로 더 이상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둔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악을 분별할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기본 원리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으며, 요셉의 시대에 이르러 그는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승리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여주인이 범하려 하자 그는 도망쳤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도리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문의 구원자로 세우실 것을 믿었고, 훗날 그가 믿은 바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제가 요셉의 경험을 생각할 때마다 저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그에 비하면 제가 겪는 일들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겪는 것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억울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자주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39장 말씀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39:6 보디발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39: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39: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39:15 그가 내가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39: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39: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39: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