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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8장 - 박해도 복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

2023-07-12 31,523 使徒行传 使徒行传第八章 使徒行传08章 受圣灵 传福音 圣灵充满 方言祷告

相关经文

使徒行传08章-扫罗逼迫教会
  • 1 从这日起,耶路撒冷的教会大遭逼迫,除了使徒以外,门徒都分散在犹太和撒玛利亚各处。
  • 2 有虔诚的人把司提反埋葬了,为他捶胸大哭。
  • 3 扫罗却残害教会,进各人的家,拉着男女下在监里。
  • 4 那些分散的人往各处去传道。
  • 5 腓利下撒玛利亚城去,宣讲基督。
  • 6 众人听见了,又看见腓利所行的神迹,就同心合意地听从他的话。
  • 7 因为有许多人被污鬼附着,那些鬼大声呼叫,从他们身上出来;还有许多瘫痪的、瘸腿的,都得了医治。
  • 8 在那城里,就大有欢喜。
  • 9 有一个人,名叫西门,向来在那城里行邪术,妄自尊大,使撒玛利亚的百姓惊奇;
  • 10 无论大小都听从他,说:“这人就是那称为 神的大能者。”
  • 11 他们听从他,因他久用邪术,使他们惊奇。
  • 12 及至他们信了腓利所传 神国的福音和耶稣基督的名,连男带女就受了洗。
  • 13 西门自己也信了;既受了洗,就常与腓利在一处,看见他所行的神迹和大异能,就甚惊奇。
  • 14 使徒在耶路撒冷听见撒玛利亚人领受了 神的道,就打发彼得、约翰往他们那里去。
  • 15 两个人到了,就为他们祷告,要叫他们受圣灵。
  • 16 因为圣灵还没有降在他们一个人身上,他们只奉主耶稣的名受了洗。
  • 17 于是使徒按手在他们头上,他们就受了圣灵。
  • 18 西门看见使徒按手,便有圣灵赐下,就拿钱给使徒,
  • 19 说:“把这权柄也给我,叫我手按着谁,谁就可以受圣灵。”
  • 20 彼得说:“你的银子和你一同灭亡吧!因你想 神的恩赐是可以用钱买的。
  • 21 你在这道上无份无关;因为在 神面前,你的心不正。
  • 22 你当懊悔你这罪恶,祈求主,或者你心里的意念可得赦免。
  • 23 我看出你正在苦胆之中,被罪恶捆绑。”
  • 24 西门说:“愿你们为我求主,叫你们所说的,没有一样临到我身上。”
  • 25 使徒既证明主道,而且传讲,就回耶路撒冷去,一路在撒玛利亚好些村庄传扬福音。
  • 26 有主的一个使者对腓利说:“起来!向南走,往那从耶路撒冷下迦萨的路上去。”那路是旷野。
  • 27 腓利就起身去了,不料,有一个埃塞俄比亚(就是古实,见以赛亚十八章一节)人,是个有大权的太监,在埃塞俄比亚女王干大基的手下总管银库,他上耶路撒冷礼拜去了。
  • 28 现在回来,在车上坐着,念先知以赛亚的书。
  • 29 圣灵对腓利说:“你去!贴近那车走。”
  • 30 腓利就跑到太监那里,听见他念先知以赛亚的书,便问他说:“你所念的,你明白吗?”
  • 31 他说:“没有人指教我,怎能明白呢?”于是请腓利上车,与他同坐。
  • 32 他所念的那段经,说:“他像羊被牵到宰杀之地,又像羊羔在剪毛的人手下无声;他也是这样不开口。
  • 33 他卑微的时候,人不按公义审判他(原文是他的审判被夺去);谁能述说他的世代?因为他的生命从地上夺去。”
  • 34 太监对腓利说:“请问,先知说这话是指着谁?是指着自己呢?是指着别人呢?”
  • 35 腓利就开口从这经上起,对他传讲耶稣。
  • 36 二人正往前走,到了有水的地方,太监说:“看哪,这里有水,我受洗有什么妨碍呢?”(有古卷加:37腓利说:“你若是一心相信,就可以。”他回答说:“我信耶稣基督是 神的儿子。”)
  • 37
  • 38 于是吩咐车站住,腓利和太监二人同下水里去,腓利就给他施洗。
  • 39 从水里上来,主的灵把腓利提了去,太监也不再见他了,就欢欢喜喜地走路。
  • 40 后来有人在亚锁都遇见腓利;他走遍那地方,在各城宣传福音,直到凯撒利亚。

《答疑解惑》

머리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도행전》 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박해도 복음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박해는 복음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박해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습니다.

박해는 좋은 일인가?

박해는 좋은 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그곳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온 땅에 충만하라는 이 개념을 교회는 아직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기름진 채로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모두 좋다”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어 잠도 서로 껴안고 자고 싶어 하고, 밥도 늘 함께 먹고, 이어서 온종일 남의 집 사정이나 쑥덕거리는 식입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저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다가, 사람을 세우는 말을 다 하고 나면 남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둥베이의 겨울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데, 다들 방 안 구들장에 앉아 쓸데없는 잡담을 나눕니다. 둥베이의 얼런좡(二人轉)과 촌극(小品)이 바로 그렇게 잡담하다가 나온 것인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촌극을 하는 대신 온종일 잡담하기에 바빴습니다.

여러분, 박해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박해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무리가 너무 타락하여, 생선 토막 하나나 어묵 한 덩이 같은 사소한 일로 서로 빼앗고 다투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찬을 나눌 때, 사람들은 마치 뷔페 식사를 하듯 먹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찬과 뷔페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악습은 고린도 교회 시대까지도 있었습니다.

성찬 주일 날, 사람들은 배고픈 채로 교회에 와서 성찬 떡으로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떡을 떼지도 않고, 떡 통째로 한 장을 다 먹고도 또 몇 장을 더 먹을까 탐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더 이상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스데반 한 사람이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또 한 무리의 사람을 일으켜 교회를 박해하게 하신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흩어졌습니다. 흩어지는 이 문제는 《창세기》 11장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바벨탑을 쌓으려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습니다.

바벨탑이라는 것은 참 대단합니다. 후대의 교회들은 다른 것은 안 배우면서 바벨탑 짓는 것은 기가 막히게 배웠습니다. 대형 예배당을 짓고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만듭니다. 여러분, 지붕 위에 십자가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바벨탑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은 것은 좋은 일이며, 역대 모든 세대의 박해는 다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박해는 도리어 교회를 정결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8:1-3)

교회는 한번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나서 부자가 되었다면, 교회는 분명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 와서 복을 받아 월급도 오르고 사업도 잘되고 병도 낫고 모든 것이 잘 풀렸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제 눈에는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복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곳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여러분이 와서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제 저주를 좀 나눠 갖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참으로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데 왜 걷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제 부족한 실력으로는 그 일을 주관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주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하나 주셔서 단번에 사람을 감옥에 보내시거나, 스데반처럼 단번에 돌에 맞아 죽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주님을 믿겠습니까? 여전히 이 복음을 원하십니까? 그래도 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뒤에서 몰래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들에게 좀 강력하고 매운맛을 보게 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 복음에 온통 좋은 일만 가득하다면 파리와 모기가 다 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우는 교회는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고, 보배가 많은 것을 좋아하며 쓰레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섬길 때 어떤 사람은 사실 보배인지 쓰레기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계속 하나님을 섬기듯 그를 섬기고, 일이 드러난 후에 다시 결정합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위해 박해를 마련해 주셔서 단번에 스데반을 죽음에 이르게 하시고, 이어 사울을 일으켜 교회를 박해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사람들을 감옥에 잡아넣은 것은, 그들이 계속해서 떡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 배급하는 일은 관리할수록 복잡해져서, 결국 일곱 집사를 세워 음식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음식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박해도 없다면,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늘 누군가 여러분의 밥을 챙겨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데반은 음식을 관리하던 사람이었는데, 밥 관리하던 사람이 맞아 죽고 베드로는 여전히 살아남았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감히 밥 관리를 하겠습니까? 밥 관리하는 일은 하기 쉽지 않아서, 결국 빌립은 놀라 도망쳐 사방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박해를 받는 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느끼는 평안과 기쁨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 같은 시험을 거치고 박해를 한 번 겪어 보아야 여러분이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약간의 실수를 범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말리엘이 한 말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만약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면 막을 수 없고, 막으려 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마치 당랑거철(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것)처럼, 사마귀의 팔 하나로는 기차를 막을 수 없으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베드로가 큰 무리를 교회에 모아놓고 먹고 마실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그는 듣지 못했습니다.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자, 박해가 즉시 닥쳤습니다. 그 결과 그 후로는 음식 배급이 사라지고 교회가 각지로 흩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저 역시 여러분이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실수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고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땅의 짐승을 다스리며, 영계의 일까지 다 다스려야 합니다. 행복나눔모임을 하는 교회들은 겉보기에는 참 행복해 보이지만, 예전에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법을 몰라서, 교회에서 소고기 장조림, 통닭, 오리구이 등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다가 결국 일자리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제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데, 하나님께서 그때 왜 저를 짓눌러 죽이지 않으셨을까요? 그때는 복음을 이렇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한들 그들이 어떻게 믿겠는가? 지금의 행복나눔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만두를 빚어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끌어들인 사람은 만두통에 불과하며, 제가 당시에 끌어들였던 것이 통닭통, 오리구이통이었던 것처럼 결국 다 밥통(식충이)일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이런 기름지고 느끼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제가 과거에 했던 일에 대해 깊이 회개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는 이런 기름진 일들이 없습니다. 섬김 외에는 일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교회가 얼마나 좋습니까? 음식을 관리하던 사람들은 각처로 흩어졌고, 이제는 밥을 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이 각지로 거침없이 전파되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 같은 사람을 다루시는 데 하나님은 새끼손가락 하나 쓰지 않고도 해결하실 수 있으며, 여러분을 다루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의 교회는 박해를 받을수록 더욱 정결해지고 더욱 흥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박해는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우리 무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주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겪게 하셔서 우리의 머리를 맑게 깨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다가 또 어디로 가버렸을지 모릅니다.

박해가 심할수록 표적은 더욱 나타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사도행전》 8:4-7)

과거에 음식을 관리하도록 뽑혔던 사람, 즉 식당의 주방장이 표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중풍병자와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기까지 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당시 사람들이 조금만 더 지혜로워서, 밥 관리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일찍이 그들을 복음 전파하러 내보냈다면 스데반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꼭 피를 흘리고 사람이 죽어야만 많은 사람이 비로소 회개합니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때로 사람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도 회개하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마음은 비교적 부드러워서, 잘못된 것을 보면 즉시 회개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저를 막 때리려고 하시면 저는 얼른 잘못을 인정하여 매를 덜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호를 주시는데 듣지 않고, 또 신호를 주시는데도 여전히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손을 보실 텐데,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을 때 표적이 나타나며, 박해가 본래 하나님의 역사임을 즉시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이 날마다 예루살렘에 숨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먹다가 혈압이 오르고, 여드름과 뾰루지가 나고, 먹는 것 때문에 온갖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자마자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줄곧 그러했습니다. 그 시절의 박해는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도하여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지만, 박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거 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표적이 스스로 나타났습니다. 표적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전해진 간증들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그러므로 박해가 심할수록 표적은 더욱 나타나며, 반드시 큰 승리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박해 가운데서 진리를 굳게 지킬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위대한 승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방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환경이 너무 좋다 보니 승리하는 것도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귀신이 오기만 하면 너무나 기뻐하는데, 드디어 승리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좀 구하자니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고, 박해를 구하지 않자니 귀신이라도 불러서 한 번 이겨봐야 할 판입니다. 그 시절의 복음 전파는 참으로 강력했습니다. 이 구절에는 음식 관리를 맡았던 빌립 한 사람만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빌립과 같았습니다. 밥 관리하던 사람도 이토록 대단한데, 기도와 말씀 전파를 맡은 자들은 얼마나 더 대단했겠습니까? 우리는 《박해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를 나누고 있습니다. 박해는 좋은 일이며, 복음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자도 복음을 믿었다

마술을 행하던 자까지 복음을 믿었으니, 이 복음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빌립이 행한 표적은 분명 시몬이 행한 마술을 뛰어넘었을 것이며, 당연히 악은 결코 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시몬은 빌립을 보자마자 마술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기회가 되면 여러분 자신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광과 아우라가 내재되어 있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마술을 행하는 수많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곁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곁에 있기만 하면 그의 마술 능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그 점쟁이 아주머니는 제가 주님을 믿은 후 늘 저를 피했고, 나중에는 저희 집에 오는 것도 꺼렸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저희 집에 오면 저희에게 안 좋을까 봐 그렇다고 말했지만, 제 생각에 그녀가 그렇게 착할 리가 없고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번은 제 누나가 그 아주머니를 따라 신을 찾고 부처에게 절하는 짓을 하더니, 그렇게 하고 나서 삶이 몹시 괴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나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고 저를 따라 주님을 믿는 편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누나는 안 된다면서, 그 아주머니가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쳐서 자신이 그 아주머니에게서 많은 혜택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우리 누나에 대해 치는 점은 결코 맞지 않을지어다.” 얼마 후 누나가 다시 그 아주머니에게 가서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물었고, 그 아주머니는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 후로 누나는 다시는 점을 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권세는 매우 큽니다. 그 당시에는 비록 온전한 승리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세와 영광과 아우라가 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것을 보고, 이 복음이 자기가 행하는 마술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습니다. 복음이 마술보다 나은 것은 당연합니다. 마술을 행한 배후에는 악령과 마귀가 있지만, 빌립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마술을 행하던 사람까지 믿을 정도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공동체의 목회자들도 귀신을 섬기거나 온갖 타로 카드로 점을 치던 사람들을 많이 양육해 보았는데, 결국 마지막에 예수님을 이길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박해가 없었다면 빌립은 여전히 교회에서 음식을 관리하고 있었을 텐데, 이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계유지 능력을 주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이 대목은 한 가지 사실을 부각합니다. 즉, 박해는 복음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돕고, 교회를 정결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도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매우 제한적이며,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하여,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할 때 핵심을 찔러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8:26-29)

이 내시는 재무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물로, 고급 수레에 앉아 가면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그렇게 돈이 많은데 굳이 《이사야》서를 읽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돈과 권세가 있었지만,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아무리 돈과 권세가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께서 빌립에게 그에게 가까이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을 좇아 구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훗날 어느 날 여러분에게 정말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영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에게 음성을 듣게 하시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저는 이 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제가 얻은 한 일자리는 바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었는데, 제 상사에게 한 음성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누구에게 이 사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사도행전》 8:30-33)

권세 있는 내시가 빌립을 수레에 오르게 하여 이 구절의 뜻을 설명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빌립은 그의 곁에 앉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해 주었고, 이 내시는 즉시 복음을 믿었습니다. 우리 세대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외로운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유명 가수들이 저를 조금 더 일찍 만나 자살하게 만드는 귀신을 쫓아냈더라면 자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 세대에는 이러한 필요가 너무나 많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여러분이 재무부 장관을 만나서 속으로 그 사람에게 청탁할 생각이나 한다면 큰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부족한 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능력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여러분에게 무엇이 더 부족하겠습니까? 고급 수레에 탔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그 수레보다 훨씬 귀합니다. 대단한 사람 몇 명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무슨 대수가 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 유력자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며, 세상의 대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존귀합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부르짖는 영혼들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도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받지 않았다면 빌립은 여전히 식당 총괄 책임자로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5만 명에게 삼시 세끼를 지어 먹이려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고생스럽게 밥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밥 관리나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람들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이 내시는 성경을 읽어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떠나서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이며, 시온산이고, 하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의 장막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으며, 오려거든 우리 화인 사명으로 오십시오! 우리에게는 참배하는 습관 따위는 없고, 다들 일하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쓰임받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장차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해야 합니다.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가르쳐 드릴 수 있으니, 이제는 핑계조차 댈 수 없습니다. 저는 2+3=8이라고 하던 사람도 가르쳐 냈는데, 여러분이 2+3=5라는 것만 안다면 분명 배울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데, 이제 천하제일의 가장 좋은 복음을 우리 화인 사명을 통해 흘려보내어, 사람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매우 명확하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과거 식당에서 밥을 관리하던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복음을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집에서 밥이나 챙기던 사람들도 이제는 복음의 총괄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이 복음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수많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라는 말만 나와도 질색하며 안색이 변합니다. 사람이 귀신이라는 말에 질색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혹시 그들 자신이 귀신이라 성령이라는 말에 안색이 변하는 것이라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귀신을 만나도 안색이 변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성령에 대해 감히 말하지 못하고, 방언 기도를 이야기하기만 하면 조심하라고 경고하는데,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연히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사도행전》 8:14-15)

성경에서는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그 받은 세례는 요한의 세례, 즉 회개한 후 받은 물세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는 바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가장 처음 받은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였으며, 그것은 곧 방언 기도였습니다. 최초의 성령 강림이 방언 기도였다면, 그 이후로 성령을 받는 것 역시 모두 방언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일관성이 있으며, 결코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잠시 여담을 나누자면, 우리 하나님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그분의 자비와 진노 역시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데 이것을 일관성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도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춥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동차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 모두 이 원칙을 따르지만, 어떤 고물차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앞으로 튀어나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고물차처럼 성능이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일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정성인데, 요즘 고장 나지 않는 토요타나 BYD 자동차와 같습니다. 이 두 가지 특성 외에 또 하나는 탄력성, 즉 유연함입니다. 사람이 이 세 가지 속성을 갖추면 매우 탁월해집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제조법을 바꾸셨겠습니까? 당연히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그러므로 빌립의 능력은 성령 충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한번 시험해 봅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기도를 가르쳐 드릴 테니, 자주 저를 따라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성령이여 나를 충만케 하소서,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아직 주님을 믿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몇 글자 적어 드릴 테니 그것은 바로 “성령이여 나를 충만케 하소서, 할렐루야!”입니다. 실제로 이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있었고, 정말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가르치는 것은 불경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았고, 훗날 사도 베드로에게까지 이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다른 부분에서는 실수했을지 몰라도, 성령을 받는 일에 있어서는 올바르게 행했으며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은 성령 충만이라는 이 결정적인 단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능력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망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얻고자 한다면 매우 쉽습니다. 바로 방언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며, 이는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 구성 요소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왜 베드로가 성령 충만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토록 확신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늘 마음에 걸려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일이었는데,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에 그런 짓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에게 여전히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성령 충만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강건해지기 시작했지만, 베드로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깨달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깨달음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린도전서》 14:15)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도 읽어야 하며, 깨달음은 결코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능력도 얻어야 하고 깨달음도 얻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령 충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한 번 성령 충만을 받으면 마치 자동차에 기름을 한 번 넣고 평생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비록 성령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는 하나, 여전히 사람이 이성적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를 계승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랐지만 죽을 때까지 글자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배워야 하며, 결코 베드로처럼 성령 충만은 받았으나 깨달음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전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은 곧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회복하고 능력을 얻었을지라도, 깨달음의 영역을 뚫어내는 것은 비교적 어렵습니다. 방언 기도는 입을 열기만 하면 단번에 해결되는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공부하며 요점을 잡고 노트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많은 공을 들였으며, 성도들을 이끌어 성령 충만을 받고 능력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지각과 깨달음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고 나아가 정상적인 생계유지 능력까지 배우게 하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이 일이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므로 결코 가로막힐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며, 그렇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이상,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전력을 다해 앞을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화인 사명에 오신 후 매일이 매우 알차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이전에는 결코 이토록 알차게 살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지금은 너무 바빠서 불면증에 걸릴 시간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깨달음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며, 그렇지 않으면 쉽게 곁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곁길로 빠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손을 보실 것이며, 또다시 작은 박해가 닥치기만 해도 여러분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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