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解惑】
Q1:父母给的钱也需要十一奉献吗?
父母给的钱就不是你得着的吗?有很多弟兄姐妹不明白奉献的意义,总觉得父母给的钱奉献了是一件吃亏的事。就我来说,我不管钱从哪里来的,我都拿出十分之一来奉献。大家可能不太了解,我们的神其实不是要我们的奉献,是要我们的心归向祂。如果你不明白奉献的意义,你就会问,到底是扣了公积金以后还是在扣公积金以前奉献。
新加坡的公积金的数目很大的,公积金会占收入的百分之四十,假如你的工资是一千块钱,实际可以拿到的是八百元,公积金存进去四百,你自己出其中的百分之二十,你的雇主占百分之二十。我自己的习惯是进入到我公积金里的也是我的钱,所以我都算进去奉献。
如果你连奉献的意义都不清楚,那就算了吧,人愚蠢就是以为奉献不划算。我们当中有一个姐妹,她一个月收入1600元,小孩子读书500,租房子花700,就剩下400。我跟你讲,她上班经常走路半个多小时,因为要省点钱。她就一天吃一顿饭,现在还保留着吃一顿饭的习惯。
后来她来到教会,做她的牧师是挺痛苦的,这怎么让她交十一奉献啊?我说姐妹,一定要交十一奉献,如果你生活有困难,可以告诉我,我们弟兄姐妹帮助你。结果她也不用我们帮助,那段时间过得真的很辛苦,坚持奉献真的很不容易。
结果神大大的翻转了她的财务。有一次她在我旁边祷告,我看着也着急,我说:神会祝福你的。结果她的薪水涨了一大截,就从那种很被动的生活方式里走了出来。所以我想,弟兄姐妹为什么会问这种问题呢?因为我们里面有很深的困惑,父母给钱上学,交不交十一奉献?如果是我,我交。
有一个小女孩患了忧郁症,在我们当中得了医治,她父母是做生意的,她父母给的钱不多,但是她的奉献远远超出十分之一,现在很蒙福。神让我们奉献的意思是让我们得胜,那我们跟神计较啥呢?我们要学会聪明。
Q2: 一个月奉献一次可以吗?
我的习惯是,我收入的第一笔支出就是奉献,有的人说我还有欠债,怎么办?有一个姐妹是当地教会的基督徒,闹着要跳楼,她家里搞房地产开发,也是当地商会的会长,孩子在英国读书,她因为投资失败手里没钱了。于是就来找我,我说不要害怕,然后就带着她祷告。
结果礼拜六,就有人花29万,买了她在市中心的停车位,在此之前,她挂牌26万,卖了半年都卖不出去。其实神已经把3万的奉献给她了,我说:姐妹你要学习奉献。结果卖出去了以后,她选择先还债,我心里想这多愚昧,神帮你大忙,你还克扣神的奉献。
结果神还是恩待她,后面还有两百多万的进项,翻转之后也不奉献,先还债。结果没多久,全部打回原形。人要知道得胜在乎神,先讨神的喜悦是至关重要的,自己各方面的收入,把初熟的献给神。至于一个月奉献一次还是两次,没关系的,有的基督徒很搞笑,我一次奉献这么多钱心疼,我每一个礼拜奉献一点,心没有那么疼,就把钱分四份。我听了以后,我就定意一个月交一次,我没有吃亏。直到今天,我的财务是兴盛的,绝对不是一个受咒诅或者贫穷的状态,神是使人富足的神,奉献是很好的事情。
Q3:当灭之物在生活当中都有那些?
当灭之物很难有个清晰的列表,首先,属于神的你克扣在手里,这属于当灭之物,就像十一奉献。
第二个就是跟偶像和属灵的世界有关的,有时候我们看着不起眼的一个物件,好像不是当灭之物,其实是当灭之物。有一次我住在一个朋友家里,然后头剧痛,原来我床后面的那个柜子里放着两个桃木人。日本有人出去访问的时候,喜欢送人一些小礼物,最常送的就是一男一女的小桃木人,日本的这两个小桃木人其实很属灵的,后来我朋友把两个桃木人丢了以后,睡觉就安稳了。
我们弟兄姐妹千万不要僵化,我觉得跟偶像有关的绝对是当灭之物。有一则新闻,一个小孩被杀了,他的父母整天上访为儿子找回冤屈,后来记者到他们家去采访,网上信息里有一张小孩居住的环境照片。我一看,小孩房间里挂满了各种各样的软绒绒的玩具。这孩子怎么死的,家长竟然不知道,其实跟这些当灭之物有关。你如果问我,真的有关吗?你愿意听就听,不听就慢慢收着那些东西吧。
基督徒的生活习惯要干净简单,为什么非得挂那些东西呢?放个花瓶,里面插朵花,或者拿简单的物品装饰一下家里也很好,没有必要整那些雕刻的东西,人很有意思,就很喜欢整这些。比如说十二个属相一字摆开。觉得那样美吗?但人就觉得摆着挺好。
比如你从古董店里买的一个花瓶,谁也不知道这花瓶从哪里来的,怎么就成了当灭之物呢?因为沾染了偶像的东西。尤其是柚木、檀香木这些,都是转了一手又一手,我们也不知道那东西的历史如何,所以尽量不要收。
所以弟兄姐妹,千万不要认为花瓶也算是偶像吗?其实也谈不上。有的时候人拜偶像穿的衣服,办法事的时候,披麻带孝沾染的那些东西都很要命。我没有办法一一列举出明确的清单,但是家里有这些东西,你自己应该知道。如果发现你整个生活状况很倒霉,也不得胜,就慢慢清理吧,一次清理不完,多清理几次也没关系。
Q4:结婚照算不算当灭之物?
我去过一些人的家里,墙上挂着自己的美照,结婚照。其实说不好这是不是当灭之物,但是我是不挂的,我自己的选择尽量简单。谈到照片这事情,还真的很有意思,那是好些年前的事情,有一对夫妻生了一个小孩,小孩两三个月的时候,半张脸全是湿疹,我就带着祷告,每一个小时都发一张照片,结果几个小时之后,小孩的脸完全恢复正常。
然后我就告诉小孩的妈妈,我说:你别在这里住了。因为她住的地方有她老公公的遗物,她老公公是意外死亡,带着很多的邪灵,还有大照片摆在那。后来这妈妈带着孩子搬出去了,孩子的脸也很正常,这孩子的奶奶也在我们当中,可以见证这件事是真的。
我们当中有一个姐妹租了一个房子,夜里常常鬼压床。其实租房子这事还挺要命,夜里一点钟打电话给我,说吓坏了,我就带着她祷告,我让她每走几步,按手在墙上,宣告耶稣的宝血在这里。然后她走到一个地方的时候,我全身的汗毛都立起来了,我问那是什么地方,她说这块是之前有人拜偶像的地方,墙都被烧的香熏黑了。
我让她按手在那个地方祷告,结果祷告完了她安然入睡,但是还时不时的会出现鬼压床这样的情况,我就建议这个姐妹搬出去,不要住在那里了,因为之前的租客拜偶像,这个房子都成了当灭的了。我们无论做什么事情,都要养成一个属灵的习惯,这并不是让大家迷信。
我们当中一对夫妻的儿子得了癌症,大瘤子那么大一颗,很吓人,他住的房子之前有人拜偶像,拜得很严重的,后来他儿子得癌症死掉了,其实那房子就有问题。其实大家不要认为,住在我里面的比外面的更大,不是这么回事,为什么非得找一个污秽的地方住呢?为什么要找一个神不与你同在的地方住呢?为什么非得找一个神讨厌的地方住呢?这不是住在你里面的是大还是小的问题,是神喜悦与不喜悦的问题。
Q5:不义之财拿来奉献,是否妥当?
有人去赌钱,然后赚了钱拿来奉献,我看还是算了吧。人为什么要去赌钱然后奉献呢?你自己收着吧。一个正常的基督徒怎么可能会去赌钱呢?如果你不是基督徒,你奉献做啥?这不是很奇怪吗?我觉得没有必要。
如果做基督徒,咱就谨守遵行神的话,不谨守遵行神的话,那你在干啥呢?有的人就觉得奉献可以蒙福,我奉献了以后,赌钱就可以赢,我看算了吧,那干脆抢银行,抢完了以后,神啊,保守我不被抓住,然后我奉献。
神要那个东西做啥?问题不在乎神要不要这个钱,问题是我们是否行在神的旨意当中,这才是关键。大家不要把奉献当成一个很大的真理,奉献只是一个很初步的一个基督徒的要求,基督徒要知道真理有大小,神向我们所要的是行公义,好怜悯、存谦卑的心与神同行,这才是最重要的。
其实还有很多更重要的真理,弟兄姐妹开始养成提升自己的习惯,没有一个人靠赌钱可以养生,如果靠着赌钱,中国能变成今天这样吗?赌钱不创造任何的价值。
所以,我鼓励我们当中的弟兄姐妹,学会养成一个好的本领和能力,然后实实在在的做正经事,不正经的事本身也不合神的心意。你想蒙祝福,但是做的事都不合神的心意,难道奉献了就合神的心意了吗?这不是很奇怪吗?
Q6:十一奉献当中拿一部分给神的仆人可以么?
大家千万不要养成这种恶习,给神的仆人做啥啊?这事本身就很奇怪,我们是奉献给神,建造神荣耀的教会,那你给神的仆人是不是妥当?《圣经》里没有这样的教导。所以咱们弟兄姐妹开始把这个概念理清楚,比如说:把这些东西奉献给神,在《圣经》里清清楚楚的记载,是拿到教会当中,在旧约是拿到圣殿里,不能说我喜欢这个祭司,所以我给这个祭司。
神怎么分配是神的事,我们必须养成一个好习惯,对神的话有一个更深的了解,其实不难揣摩,神的心意不是某一个神的仆人,神的心意是建立得胜的教会,如果神的仆人这么爱钱,怎么做神的仆人呢?弟兄姐妹给神的仆人,养成这种坏习惯,那不是很要命吗?如果你看他穷,他最需要的不是你的钱,他最需要的是神的话语。
Q7:得了医治是否要做感恩奉献呢?
感恩奉献,愿意做就做,不愿意就不做,但我鼓励大家学会做感恩奉献,得了医治那不是神的恩典吗?所以有一个感恩的奉献很正常。有的人觉得,我现在还需要钱,那不做也没关系,但是十一奉献大家千万不要克扣。
Q8:去世家人小时候的照片能保留吗?
我觉得可以保留,没什么问题。
Q9:慈善奉献和十一奉献有什么区别?
慈善奉献是你奉献给那些有需要的穷人,或者有需要的人,但十一奉献是奉献给神,听明白了吗?但我不鼓励大家给太多的慈善奉献,因为现在这个世代骗子太多,然后人为什么需要慈善奉献呢?因为活在咒诅当中。你如果可以破除他身上贫穷的咒诅,其实祝福比那慈善奉献来得更加重要。我想,你愿意做慈善奉献很好,我也不拦阻你,但是不要把慈善奉献当做是十一奉献了。
【원음 성경공부 녹음-표준 중국어판-주제: 진멸해야 할 물건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원인이다-2019년 07월 24일 나눔】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승리하지 못하는 현상의 일부를 설명합니다. 사실 승리하지 못하는 현상은 교회 안에서 매우 보편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승리하지 못하는 것,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 예수님처럼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돌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신들의 구실로 삼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조금 엄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믿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 7장을 읽어 보면, 진멸해야 할 물건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한 가지 원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많은 교회 안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어떤 문제일까요? 사실 이것은 진멸해야 할 물건의 문제입니다. 잠시 후에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실패하는 현상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신실하며, 신실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모두 치유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에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치유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는 현지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현지 교회에서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가 행사를 열 때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승리하는 교회에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리하지 못하는 교회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실패를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승리하는 군대에 있으면 승리하는 군대의 승리를 직접 누리게 됩니다. 실패하는 군대에 있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장군이라 해도,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뛰어난 수상이라 해도, 패전국에 있다면 수상부터 병사까지 모두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왜 우리 가운데 와서 치유를 받았을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승리할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굳게 붙들며, 절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믿지 않는 것에 대한 구실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그 세대를 책망하시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그들을 책망하시며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매우 분명해집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믿지 않음에 있습니다. 사실 믿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저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에 관한 책을 썼는데, 제목은 《믿지 않는 것이 인류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많은 사람은 자신을 복음주의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주의라는 세 글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굳게 붙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렇게 굳게 붙들고 있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몸의 질병은 벌써 나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말로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 성경 말씀을 교회 안에 실천한다면 교회는 반드시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몇 년 전, 아주 깊은 저주를 받은 사람이 우리 가운데 찾아왔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문제를 보니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정도로 힘들었느냐 하면, 소송에서 패하고 또 법정에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사실 그가 그렇게 많은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제게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의 손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헌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헌금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의 손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그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중에 깊이 파고들자 그는 자신의 헌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이 언제 하나님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가르쳤습니까? 그런 가르침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가져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제사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것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 대한 요구는 느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진멸해야 할 물건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교회의 승리를 방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 이런 현상이 매우 보편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어떻게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도록 보장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거듭 살펴보고 또 살펴본 뒤에야 여러분을 교회에 받아들입니다. 살펴보지도 않고 교회에 받아들인다면 무엇을 위해 받아들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왔다고 해서 우리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의 기준을 낮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사실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오기 전에 이미 십 년, 이십 년 동안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목회자들은 그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기를 어려워했고, 또 그를 교회 안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그 핵심 원인 중 하나는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굳게 붙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십일조에 관해서 사람의 체면을 세워 주고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이라는 아주 작은 성을 공격했습니다. 여호수아는 3,000명을 보냈는데, 올라가자마자 패배했습니다. 그들은 적을 마주하자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방금 전 여리고성에서 크게 승리했는데, 아주 작은 아이성에 이르러서는 패배했고, 36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도망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물처럼 녹아내렸습니다.
이전에는 원수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약한 적을 마주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패배했을까요? 그래서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중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수아》 7:1)
교회의 승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으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와 함께하시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보기 시작할 때 올바르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 설명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며, 패배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아이성에서 패배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여호수아는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옷을 찢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저녁때까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께서 주의 큰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라. (《여호수아》 7:6-9)
보셨습니까?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도 문제를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탓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든 문제를 만나 패배했을 때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탓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패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새로 온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승리하는 것은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승리하지 못하고 내일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패배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서지 못하고 그들의 원수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이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지 아니하면 네 원수들 앞에 능히 서지 못하리라 너희는 아침에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뽑으시는 지파는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서 뽑으시는 족속은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서 뽑으시는 가족은 남자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는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여호수아》 7:10-15)
사람은 패배를 경험하면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책임 전가의 왕이 되고, 우리의 하나님은 책임을 뒤집어쓰는 분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 굳게 서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다시 말해, 저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를 찾으려면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 일찍 일어나 제비를 뽑았고, 계속 뽑다가 아간에게 이르렀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아간은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운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을 보고 탐내서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모든 가족을 데리고 나와 이스라엘 백성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아간이 한 일이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아간 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 명, 여덟 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아간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 전쟁의 과정에서 진멸해야 할 물건이 맡고 있는 역할이 매우 치명적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제 진멸해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이란 무엇인가?
성경의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한 가르침은 사실 《여호수아》의 이 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에도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서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많은 도전을 만났습니다. 그의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우셔서, 형은 그를 죽이지 않았고 두 형제는 서로 만나 화해했습니다.
더 나아가 세겜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지방의 한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이 일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인데, 왜 그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을까요?
그 후 야곱은 그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상과 가족들의 귀고리를 모두 제거하여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문제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근원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생각과 의도 속에서 우상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진멸해야 할 물건을 나무 아래 묻은 후 그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야곱처럼 영적인 사람도 그러했는데, 여호수아처럼 영적인 사람도 이렇게 무지한 말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보십시오. 사람이 이런 말을 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영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시 여호수아는 처음으로 진멸해야 할 물건의 문제를 만났고, 이전에는 진멸해야 할 물건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진멸해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말해 보겠습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제게 묻습니다. “이것이 진멸해야 할 물건입니까? 저것이 진멸해야 할 물건입니까?” 저는 먼저 마음속의 우상을 제거하고, 그다음 세상의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이란 무엇입니까? 진멸해야 할 물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우상과 영계에 밀접하게 관련된 물건들이 진멸해야 할 물건에 속합니다. 두 번째는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손에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저주받을 사람이 됩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제게 전화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일은 모두 양심에 따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여러분이 얼마를 버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매는 재정적으로 조금 부족해지자 하나님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불행한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상황이 꽤 좋았는데, 진멸해야 할 물건을 가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짧은 기간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자신이 분명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고 제게 전화했습니다. 저는 속히 회개해야 하며 절대로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 범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십일조를 보충해 드렸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모르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간의 죄를 하나님께서 모르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아시고 귀신도 압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진멸해야 할 물건은 매우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관련된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서는 사실 십계명에 매우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여러 동물의 형상이나 온갖 물건의 형상을 새기지 말고, 그런 것들을 섬기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간단한 습관을 들이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놓아둔 물건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도굴꾼이 무덤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분명히 볼 수 없고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진멸해야 할 물건을 설명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아간이 가져갔고,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에 패배를 가져왔습니다. 왜 여리고성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었을까요?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치른 첫 전쟁이었고, 첫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리품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의 금과 은과 보물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무 매정하신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이겼는데도 아무것도 나누어 갖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나중에 전쟁을 치를 때에는 전리품을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나누어 가졌고,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때처럼 규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에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간이 바로 이 일을 했고, 그 결과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 가운데 36명이 죽었습니다.
이 36명은 정말 억울했습니다. 아간 때문에 연루되었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패배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혼란스러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며, 너희가 진멸해야 할 물건을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해야 하며,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는 너희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면 정말 치명적인 일입니다.
저는 어떤 목회자가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사람을 죽이시는 일을 자주 하지는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구약 성경에 아간이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신약 성경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십일조를 떼어먹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 목회자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주 죽이지 않으시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멸해야 할 물건을 취하는 구실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적 원칙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영적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첫 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 굳게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진멸해야 할 물건을 가져도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그것은 매우 손해 보는 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 진멸해야 할 물건을 가져갑니까? 왜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손에 가지고 도둑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둑으로 여기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얼마 전 한 자매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그 자매의 목회자는 오랫동안 그녀가 헌금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를 단체방에서 내보내라고 목회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회자가 다시 저를 찾아와 잘못 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자매는 헌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빨리 다시 받아들이고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가 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승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면 모든 형제자매에게 영향을 줍니다. 헌금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도둑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군대에 속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당시 아간이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있지 않고 여리고성의 물건을 가져가 도망갔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무지가 사람을 멸망하게 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것으로 삼으면 이처럼 심각한 결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적 원칙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많은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또 하나의 핵심적인 현상은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 아간은 괜찮아요. 누가 연약하지 않겠어요? 누가 죄를 짓지 않겠어요? 요 몇 달 동안 재정적으로 좀 어려웠으니 괜찮겠죠.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겠죠.”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십일조를 떼어먹은 적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십일조를 떼어먹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매우 치명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매우 갈등했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나면 저축할 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원래 수입도 적었는데 저축한 돈도 거의 십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헌금을 드리고 나면 저축이 없어졌습니다. 월급은 그렇게 낮은데 헌금도 드리고 생활비도 많이 드니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제가 헌금을 드렸고, 하나님께서 저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헌금하는 일을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진멸해야 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멸해야 할 물건이 됩니까?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손에 가지고 있으면 우리 자신이 진멸해야 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성경의 원칙은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한 대로 살아낸 결과도 그렇게 된다
몇 가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왜 그 36명이 그렇게 불행하게 죽임을 당했을까요? 많은 사람은 “전쟁터의 총알에는 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총알에는 눈이 있습니다. 아간만 이스라엘 진영에서 진멸해야 할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36명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사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36명의 죽음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연결해서 보면, 사람의 일생에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이 살아내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평생 살아내는 결과는 그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궁리한 것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36명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이 36명이 불행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이 그들의 결말을 초래한 것입니다.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쓰레기도 진멸해야 할 물건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밖에 있는 진멸해야 할 물건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의도 안에 있는 진멸해야 할 물건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십시오. 밖에 있는 우상은 제거하기 쉽지만 사람의 마음속 우상은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영적 원칙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안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번에 가져가지 않았더라도 기회가 오면 반드시 가져갈 것입니다. 사람 안에 탐욕이 있다면 장차 관리가 되었을 때 탐관오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안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인이 되었을 때 악덕 상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36명이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일만 명, 이만 명을 죽이셨고,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왜 죽임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 있지 않았을까요? 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 있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간은 죄를 자백했는데도 마지막에는 왜 돌에 맞아 죽었을까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를 돌로 쳐 죽이고 그의 모든 것을 불태워야 했을까요?
진멸해야 할 물건을 처리하는 것은 성경에 합당해야 합니다. 아간은 죄를 자백했는데도 죽어 마땅했을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아간이 죄를 자백했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간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간에게 거듭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속한 지파를 제비뽑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파를 뽑고 나자 아간은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죄를 자백하면 혹시 죽음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정확할 수 있나? 그렇게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정말 나를 뽑을 수 있나? 나는 믿지 않아!”
계속해서 제비를 뽑아 그의 지파에서 족속을 뽑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설마, 그렇게 이상한 일이 있겠어? 정말 나를 뽑을 수 있나? 다른 사람이 뽑힐 수도 있잖아?” 그의 마음이 완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족속에 따라 뽑았고, 가족이 뽑혔습니다. 이미 아간의 가족까지 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뽑힐 거야. 내가 아니겠지?” 그런데 제비를 뽑자 아간이 뽑혔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특히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 하나님의 앞에서 도둑이 되었을 때,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아시고 귀신도 압니다. 해 아래 숨겨진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우리 하나님 앞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행한 일만 하나님 앞에 분명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의도도 하나님께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자주 유다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를 불쌍히 여기고 아간도 불쌍히 여깁니다. “왜 죽임을 당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면 하나님을 불쌍히 여긴 적도 있습니까? 우리는 영적 원칙과 여인의 인정을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인의 인정으로 대하면 “그만하자”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죽이신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죄 가운데 죽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자신의 죄 가운데 죽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다가 그릇에 손을 넣어 빵을 찍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사실 다른 제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까지 마음을 굳게 정하고 완악해졌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목을 곧게 세운 채 계속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죄를 자백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고 하나님의 눈에 도둑이 되었다면 차라리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기독교인이 되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로 쳐 죽이실 기독교인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되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헌금을 함부로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헌금을 함부로 받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진지하게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진지하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간이나 유다나 여호수아와 야곱이나, 진멸해야 할 물건과 죄에 대한 이해는 사실 조금씩 배워 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워서 깨닫습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7장을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목사 중에 이 장을 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목사가 된 후 이 장을 읽었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계속 교회 안에서 도둑을 용납해야 합니까? 용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를 방문자로 대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비위 맞추지 말고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교회라면 어떻게 형제자매를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을 승리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모든 진리를 말한다고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저도 여호수아처럼 깊은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반드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막막하게 가라. 네가 몰라도 괜찮고, 구해도 알려 주지 않겠다”라고 하실 리가 어디 있습니까?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찾게 됩니다.
우상숭배를 제거하라
저는 진멸해야 할 물건에 관한 매우 깊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앞에서 본래 하나님의 것에 속한 것을 훔치는 것은 하나님의 앞에서 도둑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진멸해야 할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진멸해야 할 물건 외에 또 다른 종류는 무엇일까요? 우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상과 관련된 진멸해야 할 물건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많습니다! 한 번은 한 자매를 섬기고 있었는데, 두 다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오늘은 눈이 아프고, 내일은 다리가 아프고, 모레는 손가락이 부었습니다. 아무튼 날마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진멸해야 할 물건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제거했더니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또 여기저기가 아팠습니다. 집에 아주 값비싼 진멸해야 할 물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한가해서 이런 것들을 왜 모으겠습니까? 결국 너무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면서 집에 있는 진멸해야 할 물건을 제거하라고 권면했지만, 자매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느 날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두 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 자매는 기어서 그 진멸해야 할 물건을 문 앞까지 가져갔습니다. 문밖에 내다 버리는 순간 다리가 즉시 나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았습니다! 저는 멀리서 전화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그 자매가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나았어요!” 마침 누군가가 와서 그 물건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멸해야 할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닙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 사람이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 진멸해야 할 물건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집을 잘 점검해 보십시오. 보기에 마음이 불편한 물건이라면 버리십시오. 그러나 그 물건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세 들어 사는 사람인데 집주인의 물건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면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남편의 물건이라 해도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것이라면 여러분의 것이고, 남편의 것이라면 남편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진멸해야 할 물건이 사실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십시오. 많은 기독교인이 진멸해야 할 물건 때문에 큰 혼란을 겪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신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으라
중국인 운명신학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승리하는 제자와 승리하는 교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으라》라는 책을 썼는데, 상·하권으로 되어 있으며 승리하는 제자와 승리하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은 승리이며, 승리는 곧 구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손에 진멸해야 할 물건이 있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독교인이 되려면 승리하는 기독교인이 되십시오. 기독교인이 되려면 당당한 기독교인이 되십시오!
입으로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행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7장을 읽고 나서 진멸해야 할 물건이 이렇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 회중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진멸해야 할 물건에 대해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 가운데 치유와 축사가 많은 교회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날까요?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치유받은 것도 우리가 특별히 영험해서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조금도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인 운명신학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가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여러분을 따라 이렇게 주님을 믿으면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날마다 패배하는데 삶이 좋겠습니까?” 물론 승리하는 삶이 더 살기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승리하면 원수를 약탈할 수 있지만, 원수에게 약탈당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결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진멸해야 할 물건에 관한 교훈을 배우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의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에 드리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삶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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