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창세기26장-하나님의 함께와 축복의 모범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창세기 26장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금은 질문에 답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혼란을 겪고 있는지 모르고 당신이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의 나타남과 본보기'라는 제목은 이러한 사람들의 행함을 귀히 여기고 배우라는 말씀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고객을 훔쳐가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이삭과 같다면, 당신은 큰일입니다, 만질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시작했을 때 아주 좋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람을 창조하고 축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나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는 더 이상 작을 수 없는 우리 교회를 한 번에 많은 부분을 파헤쳤습니다. 그 결과 한 부부가 그의 교회에 와서 전임 스태프가 되었고 담임 목사는 우울증에 빠졌다. 그들이 머물렀다면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께 매우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좋습니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조금 불편해서 늙은 목사님에게 그것에 대해 말했고 늙은 목사님은 매우 못된 문장을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물을 훔쳐도 우물이고, 오물통을 훔치면 어떡하지? 나는 오직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설명하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들을 다시 꺼내겠습니다.

Q1: 같은 교회에서 왜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중병에 걸려 고침을 받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주재인가?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고자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고자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이 설명이 맞습니까?

A: 이 질문은 주의 깊게 관찰되었습니다! 일부는 치유되었고 일부는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낫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그는 50%의 시간 동안 고침을 받았는데, 모두 예수님의 것이었고, 나머지는 그가 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50%가 남고 치유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과 자비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갈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술로만 회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참된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않고 회개만 하는 것을 거짓 회개라 하고 회개하고 회개하는 것을 참된 회개라 합니다. 예전에 했던 바보같은 짓을 오늘은 안하고 과거의 잘못을 골라서 돌려받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게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당신이 멍청하다고 말하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고 당신이 당신이 매우 똑똑하고 매우 친절하고 아름답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말하면 당신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Q2: 몸이 아플 때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선생님 제가 몸에 문제가 있어서 교회 기도회 갔다가 몸이 안 좋다고 하는데 목사님이 보고 혼나셨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하러 가는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즉시 목사를 찾아야 하는데 결국에는 여전히 목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이제 문제가 생겼으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A: 사람들이 왜 큰 그룹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큰 무리에서 목자에게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동기는 그 자체로 문제가 있습니다. 대그룹의 기도는 목회자가 섬길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므로 대그룹에서 섬기는 것이다. 당신의 목사가 당신을 섬기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목사에게 가지 않습니까? 당신의 문제 때문에 당신은 정말로 목사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큰 무리에서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목회자들은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 혹은 아니오? 목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큰 그룹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문제와 나쁜 습관에 대해 이야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질병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악덕이 당신 질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좋지 않다.

Q3: 목사님, 제 우물을 도둑맞았을 때 운인지 축복인지 이삭처럼 하나님이 저를 시험하시는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A: 물건을 빼앗겨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삭의 성품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도둑맞아서 불편하고 어떤 사람은 도둑맞아서가 아니라 상사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여금과 똑같은 상여금을 주는데 그 사람은 매우 불균형하다고 느낀다.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물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도난당했다면? 당신이 정말로 그것을 이해하고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한 푼도 훔친 것과 같습니다. 한 푼을 위해 그를 반대하겠습니까? 아니, 당신은 그가 그것을 가져 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이건 아니건 모두 수행을 시작해야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Q4: 목사님, 새언니에게 드리는 질문: 영생의 소망에 대하여 선생님도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이 죽은 후에 영생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어떤 사역을 합니까?

A: 몰라요, 거기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영원한 약속을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돌아오지 아니하면 말할 수 없고 가서 돌아와서 너희에게 말하여도 소용이 없느니라. 휴대전화를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애플이나 화웨이 휴대전화를 가져와도 소용이 없고, 영계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 저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Q5: 목사님,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가 이해력이 없고 영적 논리가 없고 야곱이 영적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삭은 여전히 ​​에서를 좋아하고 에서에게 축복을 주었을까요?

A: 질문하신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고, 이삭은 사냥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 명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삭은 또한 전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서가 맏아들입니다. 그는 에서가 자기의 장자권을 판 줄도 모르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에서를 장자로 삼았습니다. 고대에는 황제가 왕자를 세울 때 장남을 세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정말로 에서를 축복하기를 원했다 하더라도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정말로 에서를 축복하고 싶었지만 야곱이 축복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Q6: 목사님, 좋은 노인의 정신과 이삭의 마음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답: 선량한 노인의 정신, 누구나 천천히 고민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고,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좋은 노인이라면 자선을 베풀고 모든 지역 고아와 과부를 집으로 데려 올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그렇게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선한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이 선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옛말에 좋은 사람은 왕따를 당하고 좋은 말은 다른 사람이 탄다. 선한 사람은 행동으로 산다. 최근에 “율법의 행위를 기초로 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귀신을 모집합니다. 그러나 이삭과 같은 사람들은 귀신을 부르지 않고 신들을 부른다. 선한 사람은 행위로 선한 사람이고 이삭은 믿음과 약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합니다. 완전히 다른 수준입니다.

사람을 행동으로 판단하면 조금 어지러울 수 있으니 착한 사람은 귀신을 모집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삭은 귀신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의 임재를 가졌습니다. 예를 들어 기근이 들었을 때 이삭이 백 배나 수확했는데 이삭이 가격을 올릴까요? 물론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가격을 올리는 것이 좋은 사람들의 일입니까? 나중에 요셉은 곡식을 팔아 애굽 사람들의 모든 돈을 바로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아니요. 그렇다면 왜 그는 곡식을 풀기 위해 창고를 열지 않았습니까? 왜 돈을 청구합니까? 그들은 왜 가축과 밭을 몰수했습니까? 둘 다 좋은 사람 같지는 않았다. 선량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가격을 올려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삭이든 예수님이든 나중에 많은 영적인 사람들이 이 세상의 것들을 간파했습니다. 돈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돈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남의 돈을 훔치는 것이 너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당신의 견해는 하나님의 견해와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합니다.

Q7: 목사님, 저는 선과 악을 쉽게 분별할 수 있고 성질이 급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 내 책임이 된 것 같아서 화를 낸다.

A: 귀하의 질문은 매우 지적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냥 무지. 꾸짖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니, 정말 무지입니다. 일을 하는 방법과 인간이 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점을 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거꾸로입니다. 당신은 불리한 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할 때 돈을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일흔 살이나 팔십 살까지 산다면 과거에 한 일을 보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70, 8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장수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음이 너무 작아서 사람이 좀 멍청해서 못잡는거고 못잡는게 불편해 평생 얽매일 것 같지 않아? 그러므로 어떤 것이 크고 어떤 것이 작은지, 무엇이 불리하고 무엇이 유리한지를 아는 이해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이 부족하지 않다면 돈을 위해 싸울 것입니까?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가난합니까?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Q8: 목사님, 믿음과 약속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법, 본받는 법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답: 믿음과 약속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자가 되지 말라 이번에는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 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이삭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면 안 돼, 할 수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이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회개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으며, 지금 이삭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은 같은 차원이 아닙니다.

Q9: 목사님, 경쟁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비교하는 마음과 위를 향하는 마음 사이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나요?

A: 대회가 끝나면 그는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대회가 끝나면 그가 자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틀렸다. 경쟁자가 성장하는 것을 언제 보았습니까? 그를 비교하는 것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지만 그를 성장시키는 것은 그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생각을 성장에 바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필요없어, 경쟁하지 않으면 이미 정상이고, 비교하지 않으면 성장할 것이다. 짜증날 것 같지 않아? 이 세상은 꽤 성가시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돈이 있고, 돈을 목숨처럼 사랑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랑이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문제를 이해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경쟁하면 성장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납작하게 누워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비교가 불편할 것입니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Q&A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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