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士师记》第一章,我觉得我讲得特别好,神的灵真的与我同在!再一次激励大家的信心。不管你的困难有多大,不管你所欠的债有多少,不管你的病有多重,要回转向神。
要知道摩西的岳父是外邦人。为什么摩西的岳父可以留在迦南地?还有一个人,就是探子去窥探那个城,然后城里头出来一个人,以色列人就问他说:“你能不能带领我们,将进城的路指示我们?”那个人真的就带他们进了城。结果这个人也留在了迦南地。
这就很有意思了,以色列人应该很困惑。怎么他们就可以留下呢?他们不也是外邦人吗?如果不妥协的,也要把他们给杀掉啊。
我得告诉你,摩西的岳父,那可是对属灵的世界有点认识啊。摩西的岳父,那是因为摩西的缘故,有关系啊。
那个人是神要拯救的。他相信神,所以从城里出来。出来是为了蒙拯救,其他的人都躲在那里。他一听说以色列人在附近,就从城里出来了。你以为是以色列人凑巧碰到他,不是。他出来是为了找以色列人。他说:“我要做以色列人,我不想被杀啊。”结果他就带着以色列人找到了进城的路。
这种人都留着。可是以色列人却把其他人给留着。你说这不是很奇怪吗?结果以色列还找了一个借口。你看,摩西的岳父家都留着了,还有那个从城里出来的人,也留着了,那为什么我们要把其他人都给杀了?那不是一回事儿。这是我自己自问自答的一个问题。
Q1:老师,我真的不知道怎么做,神才与我同在啊?如果我悖逆了,就是顺着我的性子走,神会不会扁我?
你问的问题特别好。这个人不信,就是最大的恶习。其实你做不到还不要紧,人不相信那是要命的事。人是什么时候会顺着自己的性子走呢?什么时候不信,什么时候就没有力量;什么时候不信,什么时候就悖逆;什么时候不信,什么时候就顺着自己的喜好,就这么简单。
所以说坚持相信,其实你相信过,你经历过神。但是人一而再,再而三地去实践不信。那最后还是要翻车的呀。所以说我告诉你,一个人要学会敬畏。
我念给你听:现在你们要敬畏耶和华,诚心实意地侍奉他。敬畏什么意思?哎呦,这东西不得了!我问你这是高压电,不用说240伏,不是220伏,咱就800伏的就好,上面写着,你要不要摸?你不会摸,摸了会死人的!
那为什么我们非得在活着的时候去碰神这个高压线?因为碰了没事啊,再碰一下也没事啊,我告诉你人就是这么坏。但是神也是给你足够的恩典啊。以色列人这个样,神还是给他们足够的恩典。好吧,还是要学会敬畏神。
Q2:老师,再给我们讲讲妥协的事儿
我可告诉大家,妥协是个非常坏的习惯!你要想妥协,咱们不用说别的,就说我们做家务。今天妥协一点,明天再妥协一点,后天妥协一点,这个家就会脏乱不堪。是不是?你如果不妥协,就保持干净整洁。不妥协就是这么一回事儿。
这件事情应该做到什么程度?就做到那个程度。不是说没关系了,这是很坏的习惯!原因很简单,比如说我做项目,做到三分之一,发现开头错了。你知道我怎么做吗?我从头再来。为什么?原因很简单,我再继续做下去也没有益处了。如果你整数据,数据是错的,其它全完了,还是要回到根基上,把它整对。
不妥协的故事有很多。不妥协是一种刚强的性质。一个人不妥协,尤其是在神的话语上。你想想看,教会为什么有这么多的问题,全是妥协带来的。我对这几样事情不妥协,第一,教会合一。我宁可少几个人,也要有合一的教会,我不想要一群不合一的乌合之众。
早些年间,有的人喜欢来我这儿帮忙。我那个主日聚会的时间,就得躲开他们主日聚会的时间。如果我把主日聚会的时间,放在跟他们教会的主日时间一样,他去他的教会。后来我就说,你要么在这儿,要么回去。他还在我这奉献呢?我不要,教会不能要帮忙的。
如果在咱们当中还有一些传道人听我的分享,千万别整帮忙的。因为整帮忙的,那不是神喜悦的事儿。
Q3:老师,你说圣经里的咒诅是写给神的百姓,实际对外邦人也是有约束的吧?
你是个外邦人还是个内邦人呢?如果你是个外邦人的话,那我就回答你。如果你是个内邦人,你问这玩意儿干啥?记住啊,《圣经》上的咒诅是写给神的百姓的。那对外邦人有没有约束这事儿?咱们别管。
也许我能够猜到你的心思意念。因为你嫂子不孝敬你父母,然后你就希望咒诅降在她的身上。如果是这样的话,我告诉你,有的时候有,有的时候没有。有的时候好使,有的时候不好使,因为神不太管这事。你会发现很多外邦人,他不孝敬父母,人家活得也可好了。你要不要啊?这就是我所说的。
Q4:老师,听老师讲的绝不妥协很受震撼,正好击中了我的问题。在对神的信心比较软弱的时候,怎么更好地实践不妥协?因为自己总是在紧要关头没坚持住,最后就更难受,总是事后才明白。
这就是我要告诉你的,因为我们把世上活着这点事儿,老也看不透啊。如果不知道活着这点事是虚空的虚空,我们时不常就会掉进去。很简单,就是个价值体系的事儿。所以我鼓励大家,我们要想走这条蒙福的路,必须建立在人活着是虚空的虚空的根基上。如果你不知道,你还觉得这世上的事可实在了。那你就实在吧。
Q5:老师,有时会软弱,有时又会没有信心,有时还会依靠自己的能力,但是经过牧者的指导,就又刚强起来了,这算妥协吗?
以色列人进到迦南地的时候,他们妥协了多少次呢?其实从出埃及到进迦南地,尤其是约书亚死以后,这个时候以色列人距离出埃及的日子起码七八十年。那这七八十年的故事够多不够多?绝对够多。那你呢,好像还没经历这么多,神可能还会给你很多机会。
但是我今天告诉你的,正确的思考方式是这样的:人为什么有时候有信心,有时候没信心?有时候是依靠自己,有时候是依靠神。不是你经历的不够啊,你经历的是足够。
我们每个人心中都有自己的小算盘,这种小算盘就是我们自己的逻辑体系,要从根本上改变我们的逻辑体系。约书亚和迦勒是普通人,和我们一样。使徒保罗和耶稣基督也是有血有肉的人,但如果我们的认知与他们不同,我们就无法做到他们所做的事。
所以,不要做一个无知的人。一定要知道神是怎样的神,要分清楚轻重缓急,明白什么是占便宜,什么是吃亏。
Q6:老师,我是二年级学生,上课不专注,注意力不集中,怎么办?
其实上课那玩意儿也没什么太大意思。你如果不集中,就要专心好好读书,别打扰课堂。别在课堂上老师在上面讲,你在下面讲,一会儿老师就让你在外面罚站了。因为上课是个被动学习,被动学习很难集中的。我们就坐在那儿,一会儿脑袋就锁住了,一会儿眼睛也看东西模糊了,然后脑袋想事也模糊了,十分钟听完了,后面的半个小时就在那做白日梦了。
所以我想解决问题的方法不是听课,而是主动学习。
Q7:老师,外邦人遇到的灾祸,我们怎么和人说?
别说。让他们自己悟出灵界的事,然后人就会去寻求。千万不要跟人家解释这个,解释那个。
Q8:老师,一个人做事妥协,跟懒惰不自律有关,这话对吗?
其实妥协我到不觉得是个太大的事,但是千万不要在神的话上妥协,我讲的妥协是指在神的话上妥协。
你比如说平时,我们妥协一下有问题吗?人家跟我借钱,向我借二十万,我妥协了。我妥协啥了?我又不是开银行的,有钱我也不开银行啊,咱开不起那玩意儿,要借钱到银行借去。银行不借那我凭什么借你啊,妥协了一把。
所以说这个做事妥协,比如说做工程,人一定会在做事妥协的过程当中吃亏。吃亏吃多了,人就会变聪明。当然懒惰不自律,那在很多地方都会产生很多的副作用的。所以人多吃亏,就要变聪明了。
所以咱们教会不是使人很大声地喊哈利路亚,而是使人变聪明。哦,这事吃亏,那事吃亏,咱就别干这事。千万别做出一个好像很爱神的那种样子,但实际上没有爱神的实质。
有个姐妹跟我说,你看我姐很爱神呢。我听着怎么这么怪呢?我咋没看出来呢?她跟她妈起了点争执,拎包就走。我问你那叫爱神啊?其实爱神不爱神,暂且放一边儿。我想啊,变聪明是非常重要的。
你比如说碰着一个这样的妈,你能不能学聪明,别学拎包就走那套。那跟我谈不来了,也拎包走了。那拎包走了以后,她吃亏还是我吃亏啊?大家得知道,我这啥亏也没吃啊。为什么呢?原因就在于人笨。
什么懒惰啊,不自律啊,做事妥协啊,这都是不聪明啊,要变聪明才行啊。所以重要的是怎么才能变聪明,最聪明的就是在神的话上不妥协,因为神是忌邪的神。
我们答疑就到这儿啊,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전에 웹사이트에 어떤 분이 언제 《사사기》를 보충해 주냐는 글을 남기셨는데, 그래서 우리가 《사사기》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지난번에 《사사기》를 설교했던 게 11년 전 일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지금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사기》는 2013년 것일 겁니다.
이 장은 《사사기》 전체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일어나는 일들이 다 비극입니다. 저는 이 1장의 주제를 “이스라엘 백성이 타협의 물꼬를 트다”라고 정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좀 촌스럽고 고상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들은 타협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전 성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성을 정복하고 땅을 차지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인물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 곧 각 지파의 족장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나,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화가 났습니다. “당신만 섬길 수 있고 우리는 못 섬긴다는 겁니까? 왜 그럽니까? 당신이 뭐 특별합니까?” 사실 여호수아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그분을 경외하고 진실함과 성심으로 섬겨야지 하나님을 장난치듯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여호수아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까? 이 하나님을 섬기려거든 장난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두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다른 것을 섬기십시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사람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빨리 선택하십시오. 선택하셨습니까? 선택했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십시오. 애굽 땅의 신들을 섬기든지 가나안 땅의 신들을 섬기든지 하십시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여호수아》 24:20)
여러분은 제가 농담하는 줄 알겠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많이 관찰해 보니, 그리스도인이 받는 저주가 이방인보다 더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도 발견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저주가 이방인보다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면 그분을 온전히 섬기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다른 것을 섬기겠다고 빨리 선택하십시오. 다른 신을 섬길 때는 질투하지 않습니다. 탁자 위에 미륵불 하나 놓고 관우상 하나 놓아도 둘이 싸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모셔두고, 그 옆에 미륵불을 두고 관우상을 두거나 재물신을 두면 큰일 납니다! 담이 크다면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저는 그런 담이 없습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여호수아》 24:20)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이 깊이 관찰하고 총결한 아주 중대한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쓰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깥사람들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축복과 저주도,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시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이 말씀을 지켜 행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어떤 자매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고 소소하게 내 삶을 사는데도 잘 지내고, 제 언니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불행한 일만 겪나요? 저는 여전히 잘 살고 있잖아요.” 여러분은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한다면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너희는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일반적인 신학 체계보다 훨씬 명확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찾아보며 대조해 보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교회에서 오셨다면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중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사람을 억지로 붙잡습니까? 붙잡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사람을 옭아맵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자는 나와 함께 바르게 걸어가고, 나와 함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생각이 없는 사람은—제가 말을 좀 거칠게 하자면—빨리 떠나십시오. 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결코 가볍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볍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암 환자 비율이 세상보다 더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서는 암에 걸려 치유받는 비율이 세상보다 훨씬 높습니다.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타협의 물꼬를 트지 마십시오. 이것이 여호수아가 한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말을 마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답했습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여호수아》 24:16-18)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인데,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제 사명입니다. 왜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합니까?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잘못됩니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잘살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까? 왜 하나님을 섬깁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까?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질투하셔서 재앙을 내리시면 큰일 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드려야겠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을 섬기고 있습니까? 도대체 누구를 섬기고 계십니까?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는 반드시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며, 나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지켜주시든 아니든, 치유해 주시든 아니든,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사실 기준이 높은 것이 아닙니다. 원래 사람의 인생은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 내 직장이…”라며 안달합니다. 왜 그것을 그렇게 중하게 여깁니까? 어제도 살아서 오늘에 이르렀다면, 오늘도 살아서 내일에 이를 것입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고작 그 정도 일일 뿐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잘 산다고 자주 말합니다. 나중에 또 어떤 자매를 사역할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돈도 많이 벌고 가정이 아주 잘 돌아가네요.”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섬길 거면 확실하게 섬기고, 아니면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그 난장판을 수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그들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로 말씀드리면, 저는 반드시 나의 하나님을 섬길 것임을 압니다.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조금의 타협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타협하고도 별일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주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반드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담이 없습니다.
2. 이 일을 굳이 물어봐야 합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사사기》 1:1)
여호수아가 여러분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넜고, 땅도 분배했으며, 이겨야 할 싸움에서 다 이겼고, 수많은 땅을 차지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로 눈치만 보며 생각합니다. “누가 올라가지? 네가 먼저 올라가라!” “난 안 가.” 제가 왜 이 일을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누구나 먼저 올라가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거저 얻는 좋은 일에는 앞장서면서 왜 뒤로 숨습니까? 진짜 칼과 창으로 싸우다 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 그제야 하나님께 여쭤보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이 한심한 무리를 보실 때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아이고, 세상에!” 쇠똥구리를 삼킨 것 같거나, 더 심하게는 방귀벌레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셨을 것입니다.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이 하나님을 믿어서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를 닦아야 합니까?” 여러분, 이게 물어볼 일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제가 옷을 입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바지도 안 입고 맨 엉덩이로 나가서 뭘 하려고요? 경찰에 잡혀가려고 그럽니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이런 걸 묻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먼저 올라갈까? 나만 안 뽑혔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다가 뽑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은 “히히, 유다네! 쟤 참 재수 없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이게 제정신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다들 자기를 그렇게 쳐다보자 시므온 지파에게 말합니다. “형님, 나랑 같이 올라갑시다. 나 혼자는 좀 힘듭니다. 다음에 형님이 제비뽑히면 내가 같이 가서 쳐줄게요.” 그때 가서 시므온을 도와 함께 싸워줄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유다의 마음속에는 이미 ‘일단 말은 이렇게 해두고, 먼저 내 싸움부터 도와주게 한 뒤 나중에 생각하자’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무리를 보면 속이 터지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귀신에게 눌린 사람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줘야 합니까?”라고 묻습니까? 물론 그 사람이 먼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지만, 먼저 하나님께 물어봐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미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시며, 이런 식의 태도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를 먼저 보내야 할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와 함께 교회를 세우던 한 형제 친구가 있었는데, 참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마땅히 섬겨야 할 때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왜 사역을 안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는 은사가 하나 있는데, 사역하기 전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져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난 뒤에 기도를 해 주어야 확실히 낫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카락이 통 서지를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묘안을 냈습니다. “내가 헤어젤을 발라줄 테니, 그러면 확실히 서 있고 넘어가지도 않을 겁니다.” 아이고, 정말이지!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단련되지 않았을 때라 정말 쇠똥구리를 삼킨 것처럼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일은 하나님께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과 함께하시고, 반드시 당신과 함께하실 것이며, 반드시 당신을 인도하여 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 귀신이 얼마나 크든, 거인이든 아니든,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고 돌진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얼마나 많은 마귀를 굴복시켰습니까? 그런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지난번에 제가 귀신을 쫓았는데, 그 귀신이 저를 쫓아오면 어쩌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귀신 왔다!” 하니 냅다 숨어버렸습니다. 사실 장난으로 해본 말이었는데 말입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가 지난번에 그 사람 귀신을 쫓아줄 때 정결 기도를 안 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정결 기도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서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타협의 물꼬를 트지 않았고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일에서 하나님께 시시콜콜 묻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런 일들은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그 속내가 뻔히 보입니다. “아이고, 누구를 먼저 보내야 하나?” 듣기만 해도 피곤합니다! 그 사람들이 다 올라가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제비를 뽑아서 이 땅은 네 땅이고 저 땅은 네 땅이라고 했으면 가서 차지하면 될 일이지, “하나님께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합니다. 아이고, 세상에! 결국 유다를 내세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열두 지파 중에서 찾고 또 찾으셨는데, 어째서 나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하셨을까요? 나를 찾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저는 그냥 갑니다!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은 타협하는 신학이 아니며, 극단이나 이단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다해야 할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서 있으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모두 치유를 받습니다. 오늘 한 번 안수해서 낫지 않으면 열 번 안수하고, 열 번 해서 안 되면 백 번, 백 번 해서 안 되면 천 번, 만 번이라도 안수하면 반드시 낫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다 치유를 받았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 다 치유받지 않았습니까? 다 치유받았습니다. 우울증이 다 나았고, 요추와 경추 질환이 다 나았으며, 생리통도 다 나았습니다. 모두 치유되었고 여러분이 그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본받을 수 없습니까? 쓸데없이 종교적인 행위로 불신앙을 덮으려 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은 따지지 않으시고 여전히 유다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사람과 일일이 따지지 않으시고, 여전히 유다와 함께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하시니, 그들이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싸움을 잘해서 승리한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유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쳐 죽인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나가서 만 명을 쳐 죽였다면,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구나. 우리가 앞에서 괜히 헛소리하며 누구를 먼저 보낼지 하나님께 묻고 있었네”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있던 다른 지파들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난 그래도 가기 싫어. 칼과 창으로 싸우다간 죽을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한심한 상태인데도 하나님은 크게 따지지 않으시고 다른 지파들과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탄이 나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섹의 왕을 사로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버렸습니다. 사실 그것을 자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자른 것인데, 자르고 나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사사기》 1:7)
알고 보니 하나님은 참으로 유머가 넘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에, 정말 신기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기해도 당신이 믿음을 갖는 것보다 더 신기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길 원하시는데, 당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당신과 따지지 않으시는데, 당신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려 합니까? 결국 그들은 성을 정복하고 불태웠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므온 지파는 왜 끌고 갔습니까? 시므온이 도울 수 있습니까? 시므온은 사실 구색 맞추기일 뿐, 별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며, 믿음이며, 강인함이며,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평생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이유를 대지 말고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유를 대고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타협입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온전히 타당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번 기도해서 안 낫고, 두 번, 세 번 기도해도 안 나으면 “아! 하나님이 당신을 고쳐주기 싫어하시나 봐요, 이건 바울의 가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보면 바울 같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가시를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바울의 가시 근처에도 못 갑니다. 또 “나는 디모데처럼 위에 지병(가시)이 있는 거다”라고 하지만, 당신은 디모데도 아닙니다. 꼭 그런 핑계만 대며 조금 더 지나면 욥이라도 된 것처럼 굽니다. 그저 재수 없는 사람이 되길 좋아하고, 치유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일터에 있든 일상생활에 있든, 하나님은 여러분이 승리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승리를 예정하셨습니다!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전도자가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이 사람을 번성케 하시는 분임을 잘 믿지 않아서 땡전 한 푼 없이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하루는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어서—이것은 그 전도자가 직접 간증한 이야기입니다—집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문을 열어보니, 자기가 말했던 그 소시지가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바로 그 브랜드의 소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소시지 하나를 먹어도 브랜드를 따지다니요. 저 같은 사람이라면 20위안짜리 소시지와 2위안짜리 소시지가 있을 때 2위안짜리를 먹습니다. 왜냐하면 밀가루가 많이 섞여서 양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소시지가 생기자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소시지 하나도 제대로 못 사 먹는 지경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소시지 따위를 구합니까? 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소시지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제가 왜 여기서 하나님이 믿음 있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말하겠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번성케 하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기럇 세벨을 치기가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양군이 대치하며 오래도록 함락되지 않자 갈렙이 말했습니다.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사사기》 1:12)
결국 성을 빼앗았습니다. 큰 상이 걸리니 반드시 용감한 자가 나오는 법입니다. 옷니엘이 ‘와, 갈렙의 사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그 성을 쳐서 빼앗았습니다. 결국 딸이 옷니엘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사실 이것도 사위를 고르는 하나의 방식이었습니다. 부마(사위)를 뽑은 것입니다. 옷니엘이 갈렙 집안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정말로 꽤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의 딸 악사는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인드입니까, 아니면 부유한 마인드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난 안 받아요! 난 생사를 초월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밭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사사기》 1:14)
사실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갈렙은 영적으로 통한 사람이었고 영적으로 매우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속으로 ‘내 딸이 분명히 나한테 와서 뭔가를 달라고 하겠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키운 딸인데 모르겠습니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다 주마.” 이 딸은 요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악사가 말했습니다. “나를 그곳에 정착시키셨으니 내게 샘물도 주소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샘물이 없는 땅이 무슨 땅입니까? 좋은 땅이 아닙니다. 부동산을 살 때는 반드시 입지를 봐야 합니다. 입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입지가 나쁜 곳을 사면 가격이 오르지 않습니다. 악사는 정말 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샘물이 딸린 땅을 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값어치 있는 땅입니다.
악사가 왜 그렇게 돈을 밝히냐고요? 아닙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의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번성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번성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우리 하나님이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지 못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부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전도자가 좋다면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 하나님이 전도자를 번성케 하시는 것을 좋아한다면 우리 교회에 남아 계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번성케 하시는 분임을 믿고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물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부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지독하게 가난하고 찌들려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신학은 화인 사명 신학이 아닙니다. 성경을 아브라함부터 쭉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이 가난했습니까? 바울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노예(오네시모)가 도망쳤을 때, 바울은 노예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바울이 땡전 한 푼 없는 가난뱅이였다면 자기 앞으로 달아놓으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5. 유다 족속이 타협의 시작을 열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19)
골짜기(평원)의 주민들에게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떤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그 옛날 거인들도 다 때려잡았으면서 철병거 따위를 못 없앤단 말입니까? 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 시작은 결코 좋은 시작이 아니었고, 이후로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거인을 무서워하더니, 이래서 두렵고 저래서 두렵고 두려워할 핑계는 언제나 있습니다. “아이고, 이 회사는 별로야.” “이 회사 제품은 영 아니야.” “이 일을 어떻게 해? 난 할 줄 몰라.” 제 생각에는, 월급을 떼먹히지도 않았는데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경험한 것은 다 표적과 기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빚을 졌다가 우리 가운데서 기도하고 훈련받으면서 신용불량자(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는 ‘파산자/궁적’이라 부름) 명단에서 벗어났습니다. 어떻게 벗어났는지도 모르게 해결되었으니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에 더 이상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이유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병거 따위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철병거가 두렵습니까? 사람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끝장입니다.
여러분도 핑계를 대면 끝장이라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이 조건도 안 맞고 저 조건도 없고…”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것은 게으름과 가난뿐입니다. 게으르고 가난하니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댄 핑계가 바로 철병거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크신지 철병거가 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크십니까, 철병거가 큽니까? 저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한다면, 당신의 능력은 눈앞의 어려움보다 항상 작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철병거든 거인이든 그 어떤 것도 당신의 하나님보다 크지 않으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전에는 여러 번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철병거가 있다고 이기지 못합니까? 산지가 싸우기 쉽습니까, 평지가 싸우기 쉽습니까? 평지가 싸우기 쉽습니다. 평지가 싸우기 쉽다는 걸 모르십니까? 평지에는 자연적인 천연 장벽이 없습니다. 산지도 쳐서 이겼는데 평지를 못 친단 말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화인 사명 신학은 핑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오직 하나님만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거인이 아무리 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어려움보다 크십니다. 저는 핑계 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살아있지 않습니까? 저도 실직해 본 적이 있고 거의 파산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왜 빚을 못 갚았을까요? 그렇게 많은 돈을 빌리고 주택담보대출이 그렇게 많은데 갚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산 신청을 하거나 경매로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후에 실직하고 돈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과거에 내가 지독히 가난하고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직했다고 해서 그분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여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국 죽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핑계를 대는 물꼬를 텄습니다. 만약 당신이 핑계를 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차라리 핑계 전문점을 차리는 게 낫지 예수 믿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핑계 속에서는 주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믿음의 성격을 좋아합니다.
이후에 주님을 믿는 여정에서 제 안에 형성된 이런 성격은,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쉽게 흉내 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못 하는 게 아니라 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핑계가 무엇입니까? 핑계는 곧 불신앙이며, 불신앙은 그럴듯한 핑계가 있는 불신앙입니다. 그 핑계는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다리가 아파요”라고 합니다. 제가 “왜 아픕니까?”라고 물으면 “안에 쇠판을 박아서요”라고 합니다. 저는 참 이상합니다. 쇠판이 들어있다고 왜 아파야 합니까? 기도하고 나니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상야릇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발에 골절이 생겼어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하십니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6. 각 지파가 타협의 핑계를 대기 시작하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니 참 좋지 않습니까! 《사사기》라는 거울에 우리를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유다마저 핑계를 대니 다른 지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사사기》 1:27)
이 구절은 참 흥미롭습니다.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이유를 설명해 놓았습니까? 이유도 없습니다. 기록할 가치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핑계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쟤네 집에는 쇠솥이 있고, 저쪽에는 철병거가 있고, 이쪽에는 쇠솥이 있다는 식입니다. 쇠솥이 막고 있다고 못 들어간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저기 므깃도 사람들이 쓰는 쇠솥 좀 봐.” 온통 이런 것들뿐입니다. 쇠솥, 쇠막대기, 쇠갈퀴, 쇠삽, 심지어 쇠모자까지 온갖 핑계를 다 갖다 댑니다! 유다 족속이 철병거라는 구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이후로는 쇠로 된 온갖 핑계가 다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그 후 에브라임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고,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으며, 아셀은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고,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핑계를 대는 것은 악한 영입니다. 제 권면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모르실 겁니다, 아주 바빠 죽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늘 핑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보니 실제로 타당한 이유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더 대단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직서를 이미 제출해 놓고 퇴사하기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암에 걸렸다면…” 말을 꺼내놓고 제가 “아, 그냥 해본 말입니다”라고 하니, 그는 “그러면 내려놓을 수 있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다 내려놓고 뭐 할 건데요?” 결국 병원 가고,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치료 받고, 수술하고,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바쁠 것입니다. 사실 내려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그 지경까지 안 가봐서 그런 것입니다.
제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사람은 다른 건 다 못 내려놓으면서 오직 하나님만은 너무나 쉽게 내려놓습니다. 다른 건 다 믿고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정작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이유는 찾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아닙니까? 여호수아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니 살아있지 않더라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너희는 이 하나님을 믿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저 핑계 대기 좋아하는 무리일 뿐이다!” 여러분은 저를 보며 조마조마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그렇게 설교하시면 교회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이 다 떠나면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럽니까!”라고 말합니다. 제가 사람들이 떠나는 것에 연연할 것 같습니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조건 없이 믿으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길은 오직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쫙! 하고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쫙! 하고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와르르! 하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앞으로 우리를 이끄셔서 성들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며, 영적 세계에서 영토를 넓히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눌린 자가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눌린 자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분연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때로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한때 제가 숨이 끊어질 뻔했을 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어떤 일들은 제가 달관했다고 해서 쉽게 내려놓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코로나로 극심하게 앓아누웠을 때,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몇몇 형제자매들, 특히 우리 동역자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제가 더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저들이 강건하게 일어나기를 원하오니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모두 믿음을 다시 한번 추스릅시다.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실 수 있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보좌에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권능을 당신 위에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때로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런 골치 아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하지만, 지금 저는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확고한 신앙이며,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이 시대에 온 세대를 축복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 시대에 화인 사명 신학이 수많은 교회의 축복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이 저를 찾아와 “목사님,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목회하던 성도들을 통째로 데리고 우리 모임으로 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도 데리고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잘 양육하십시오! 그들이 동의하면 말씀을 잘 나누고, 동의하지 않으면 굳이 말다툼하지 마십시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7. 가나안 사람들에게 노역을 시킨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지자 머리가 이상해진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몰랐겠습니까? 알았습니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아이고, 소보다 사람이 더 값어치가 있네. 와, 이 녀석 힘도 세고 근육도 장난 아니네. 그렇다고 사람 고기를 먹을 순 없으니, GDP나 창출하게 가나안 사람들에게 노역을 시키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인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영계의 일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 땅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 그 땅의 영은 여전히 역사합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시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그 사람들에게 붙어있던 영이 도리어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노역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번성케 하시는 것은 결코 GDP 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려고 수천만 가지 핑계를 대며 “노역을 시키는 게 얼마나 좋으냐”라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역이나 GDP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저는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가득 차 있으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돈만 바라보고, 재산과 부동산 가격 상승만 바라봅니다. 그것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는 모든 것을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8. 타협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다
처음에 사도 바울이 사람들을 이끌고 교회를 세울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죽은 뒤에 사람들은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조금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가 되더니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빗나갔습니다.
여러분에게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서 한 번이라도 치유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처음에는 그 안 나은 사람이 한 명이었다가 두 명이 되고, 열 명이 되더니 나중에는 수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아주 단순한 원리입니다. 제가 왜 “다 치유를 받았다”라고 썼겠습니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다 치유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틈이 하나라도 생기면, 자기가 바로 그 안 낫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오면 그 사람도 자기가 그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여 결국 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타협은 단 한 번으로 족하며, 한 번으로 끝장나는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 같은 사람들을 본받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설교 필기를 하다가 점점 흐지부지되는데, 한 번 빼먹더니 두 번 빼먹고 결국에는 아예 안 씁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온 것이 시간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의 나쁜 습관도 이와 같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추호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까지 영원히 타협하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