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우리 모임의 주제는 ‘제자가 됨’입니다. 제가 앞에서 나눈 것은 ‘당근’이고, 뒤에서 나눌 것은 ‘채찍’이지만, 사실 둘 다 ‘당근’입니다. 둘 다 더없이 좋은 선택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천상과 지상을 통틀어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의는 4강으로, 앞선 세 강의를 정리·요약하고 제자 되는 것에 대한 의문과 혼란을 풀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얼마나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 많은 분이 아직 계산을 다 끝내지 못하고 머릿속 CPU를 돌리며 끊임없이 코드를 계산하다가 결국 혼란에 빠집니다. 그 혼란이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1. 왜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러분, 이 질문에 함께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왜 저보고 버리라고 하십니까? 저는 못 버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왜’냐고 묻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답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일단 세워지면 제자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준은 제자에 대한 정의입니다. 만약 제자가 되는 것에 여전히 의문이 있다면 제자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으셨을까요? 기준을 정하는 많은 이들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너트를 하나 사고, 다른 가게에서 볼트를 하나 사서 조여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왜 그럴까요? 동일한 규격(기준)에 맞췄기 때문입니다.
기준이란 바로 그 일에 대한 정의입니다. 제자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버리는 것이 바로 제자가 되는 기준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논쟁할 필요도 없고, 왜 이런 기준을 정했는지 물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설명해 주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그 권세를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여러분이 모든 것을 버렸다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주 좋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왜’라고 묻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지 않은 습관을 지녀서 늘 ‘왜?’라고 묻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십만 가지 왜?』라는 책일 것입니다. 이것도 왜, 저것도 왜 묻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영어를 배울 때 ‘왜’라고 묻지 마십시오. 원어민이 그렇게 말하면 우리도 그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 저렇게 말하면 됩니다.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울 때도 ‘왜’라고 묻지 않고, 사람들이 쓰는 대로 따라 말하면 됩니다.
언어를 배울 때는 자기 생각대로 마구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도 못 알아듣고 외국인도 못 알아들어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왜’라고 지나치게 묻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라고 묻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많은 것들은 남을 따라 배운 것입니다. 제가 왜 ‘왜?’라고 묻지 않을까요? 너무 많이 물으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왜 동사가 명사 앞에 오나요?”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금세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규칙대로 자꾸 말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언어란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준을 정하셨으니 제자는 마땅히 버려야 하며, 버리지 않는 자는 제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의문이 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왜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진작 설명하셨을 것입니다. 굳이 저에게 설명을 요구하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버리면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면 권세를 얻으며, 권세를 얻으면 영적 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권세를 얻으면 하늘의 자원을 얻게 되어 건축을 하다가 중간에 중단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제가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까?”라고 묻는데,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이것이 바로 기준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명 신학에서 말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 둘째는 교회, 셋째는 구원, 넷째는 믿음, 다섯째는 양육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개념들의 정의를 하나하나 명확히 정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대로 실행합니다. “왜 버려야 하는가?”라고 물을 때, 사실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것, 이토록 단순한 이치입니다. 분명하게 깨닫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십시오.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버려야 할까요?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래밍을 하고 코드를 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작성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쓰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습니다. 코딩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엑셀을 사용해 보셨습니까? 수많은 규칙을 배웁니다. 엑셀을 만든 사람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작성해야 실행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토록 단순한 원리인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묻고 나면 바보가 됩니다. 제가 왜 공부를 잘했을까요? 저는 그들의 규칙을 그대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볼 때 답이 정해져 있는데, “왜 이렇게 답해야 합니까?”라고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시험에 떨어집니다. 누구와 씨름하려는 것입니까?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집을 풀고 규칙대로 답하면 합격하지만,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불합격할 뿐입니다.
어느 분야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회계에는 회계 기준이 있습니다. 회계 기준을 철저히 익히면 회계 업무를 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없습니다. 묻지 마십시오. 물어봤자 소용없습니다. 훗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겨서 “예수님, 왜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예수님께서도 “이유는 없다. 있었다면 진작 말해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이 모든 계명을 삼가 지켜 행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면 저주를 받습니다. 성경에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삼가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고, 지켜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복을 받기 쉽지만, ‘왜’라고 묻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복 받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시오. 행하고 나면 좋습니다. “하나님! 주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섰사오니 결코 번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복을 받기 아주 쉽습니다. 어리석은 자들만이 이것저것 따져 묻습니다.
예전에 제가 회사에서 일할 때, 한 신입 직원이 규칙대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표준운영절차(SOP)라는 것이 있는데, 사실 SOP는 전문가들이 만든 작업 규칙입니다. 이 규칙대로 행하면 실수를 잘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가 연구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갓 졸업한 젊은 친구가 “내가 왜 이걸 따라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따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머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꼭 그렇게 행동합니다.
버릴 때 얻는 유익은 너무나 많습니다. 버리고 나면 기준에 부합하여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면 권세를 얻어 승리할 수 있으며, 건축을 하다가 중간에 중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질문에 답이 되었습니까?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기준대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분이 묻기를, “선생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든 버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뜻인가요?”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90%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버린다는 것은 저울질하며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제자가 되면 아내가 기뻐하지 않을 테니 곤란해진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그 곤란함이 훨씬 더 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때 겪게 될 곤란함이 얼마나 철저하게 큰지 잘 알지 못합니다.
버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거나 통제받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효도하라며 억압하고 조종하려 할 때, 거기에 끌려가면 얽매이게 됩니다.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한다면 그것은 자원함으로 공경하는 것이지 조종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와 저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께서 한번은 “나 양로원에 갈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둘러보시게 했습니다. 둘러보고 오시더니 “안 가련다, 그곳은 별로더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본심은 양로원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저를 통제하고 조종하려 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남을 조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조종당하지 않으면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 때문에 갈등이 깊어져 이혼하겠다고 하면, 이혼하면 어떻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혼하면 아이에게 엄마가 없어지고 온전한 가정이 깨집니다”라고 합니다. 부모가 둘 다 살아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부족하지 않으니 생각을 삐딱하게 하지 마십시오.
2. 은혜를 얻는 것 아닌가요? 왜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여러분, 이런 의문이 드십니까? 이 은혜는 여러분이 충분히 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여전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자신이 충분히 온전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대가를 치른다 해도 모든 것은 여전히 은혜입니다. 사람이 제자의 기준에 부합하고, 예수님의 기준에 도달하여,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대로 이루시며, 그분의 약속을 따라 주시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러서 맞바꾼 것도 아니고, 사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치르는 이 작은 대가는 마땅히 행해야 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다소 깊을 수 있습니다.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그 대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약속인 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굳게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약속을 얻는 것이며, 제자가 되지 않으면 약속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다름 아닌 은혜입니다. 이른바 ‘은혜 복음’에 휘둘려 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에 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인 것은 맞지만, 대가를 치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입니다.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여러분이 온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치러도 여러분은 여전히 부족하며,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에 우리가 그 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것이며,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치르는 그 어떤 대가도 예수님의 보혈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약속은 은혜이며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정하셨기에 정하신 바를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축복에는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5-6)
그러므로 은혜와 축복에는 모두 조건이 따르며,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3. 대가를 치르는 것은 행위입니까, 믿음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믿음과 행위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특히 《야고보서》를 읽고 나면 더 헷갈려 하는데, 야고보서가 이러한 부분들을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은 행위입니까, 믿음입니까?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행위입니까, 믿음입니까? 믿음입니다. 왜 믿음일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다음에 따르는 일들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기초가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향을 피우거나 죽은 자를 위해 지전을 태우는 사람이 그 일에 믿음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믿겠습니까? 자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행하는 것이고, 행위를 근본으로 삼을 뿐 무엇을 믿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버리라”고 하시면 우리는 버립니다. 이토록 단순한 원리입니다. 믿음은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믿음은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여러분은 믿음의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행위가 기초가 아닙니다. 믿음과 행위가 나란히 가는 것이 아니며, 행위는 결코 기초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행위가 기초가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4.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떨어졌습니까?
제가 왜 이 문제를 언급할까요? 많은 사람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 믿음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이 은혜 저 은혜를 외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삶에서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약속이 땅에 떨어졌습니까?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여러분이 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들이 애굽을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음을 알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400여 년간 사사들이 다스렸고, 이후 사울이 왕이 되었으며,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나라가 망한 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고, 이후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며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상황 앞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품은 의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 굳게 서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약속이 하늘에 굳게 섰다면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왜 어떤 이에게는 약속이 떨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떨어지지 않는가?” 이 문제는 바울에게도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바울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난 자들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약속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약속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얻지 못한 것이다. 왜 얻지 못했을까? 그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을 갖지 않고 단지 세상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지 않고 다른 부류의 사람을 본받아 결국 약속을 얻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일은 아주 명백합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한 아들은 이스마엘이고, 또 다른 아들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자이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불립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삭은 또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는 에서이고 하나는 야곱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었지만 약속을 얻지 못했고, 야곱은 얻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따지겠습니까? 실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떨어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오늘 제가 제자가 됨에 대해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곁길로 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그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는 우리에게는 모든 약속이 다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사람이 그것을 얻지 못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광야에 엎드러져 죽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했으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계획을 거슬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 한 구절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은 얻지 못하고 저주만 임한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히 회개하고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서 난 자들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씀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직 아브라함을 본받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토록 단순한 원리입니다. 사람이 자기 계획대로 걸어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 안에서 폐기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직설적으로 말씀하셨고, 외인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의아해하며 “주님! 어찌하여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제자가 아닌 자들에게는 알지 못하게 하셔서 구름 잡듯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단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성경을 꽤 꼼꼼하게 읽는 편인데, 어느 대목을 읽었느냐면 바로 ‘다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찾아온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고,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찾은 이들이 다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사도행전》 8:7)
이 구절을 발견하셨습니까? 저는 처음에 ‘어떻게 다 고침을 받을 수 있지? 그게 가능한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믿기로 선택했고, ‘다 치유받는다’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다 치유받았을까요? 다 낫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 고침을 받는다고 계속 선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목사님, 다 고침을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기에 제가 “아, 한 사람이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묻길래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했더니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사람의 몸에 질병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약속 밖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치유받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에는 다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시력을 거의 잃어가며 몹시 방황하던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 옆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유 목사님, 제 눈이 곧 멀게 생겼습니다. 의사가 길어야 1년이면 완전히 실명할 거라고 합니다.” 그를 바라보는데 제 마음도 몹시 아팠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되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는 영어를 쓰는 형제였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눈에 병이 있는 사람은 제가 기도하면 다 치유받습니다.” 그 순간 그는 소망을 발견하고 제 말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가 “정말입니까?”라고 묻길래 “정말입니다”라고 답하고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한 차례 기도를 마치고 “사물이 좀 더 선명하게 보입니까?”라고 묻자 “아닙니다, 그대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계속해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대여섯 번을 반복하자 눈이 완전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눈앞을 뿌옇게 가리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세 달 뒤 그가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의사가 눈이 완전히 다 나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약속으로 살아갑니다. 약속이 여러분의 삶에 모두 이루어진다면, 여러분은 이생에서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약속은 모두 우리 삶에 성취되며,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결코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어떤 분이 묻기를, “선생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해 애굽의 생활을 그리워했기 때문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 애굽을 그리워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할 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애굽에서 건져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건져내 주셨더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하십니까?”라고 원망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죽게 하실 것이라 믿는다면 광야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노엽게 한 자들로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일평생의 비극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광야에서 죽어가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그들은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세상을 탐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아 자신들에게 예비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약속을 놓쳐 버렸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지 않은 것입니다. 왜 성경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듭 부르는지 아십니까?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삭 또한 대단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바칠 때, 자신을 바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부자의 믿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야곱과 요셉은 더욱 대단했습니다! 요셉의 믿음은 야곱을 뛰어넘었고, 야곱의 믿음은 이삭을 뛰어넘었으며, 이삭의 믿음은 아브라함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기 시작하십시오.
5. 공사가 중단되고 전쟁에서 패배하는 비참한 결말
저는 예전에 셈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죽으나 어디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면, 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죽지 않겠는가? 그 후로 저는 죽어도 약속의 땅에서 죽겠다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커다란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을 하다가 암에 걸립니다. 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십니까? 암은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암에 걸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이리저리 시달리다가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아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명백하고 철저한 저주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이러한 일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보면서 이것이 바로 건축을 끝내지 못하고 중단된 결말이며, 전쟁에서 패배한 결말임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결국 아주 지혜로운 선택을 내렸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죽겠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사 하나님의 순전한 복음을 다시 한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바울 시대에만 순전한 복음을 지녔을 뿐,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변질되어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엉터리 복음이 너무나 많아졌는데, 주된 이유는 망대를 짓다 만 채 내버려 두고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제자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비참한 결말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복음을 잘못 믿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교회가 ‘제자’의 개념을 흐려 놓아 아무나 다 제자라고 하니 난장판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중화권 사명 신학은 이 세대에 순전한 복음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폐기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전하는 것은 약속을 얻는 복음이며 이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질문 1】 선생님, 제 친구의 시어머니도 하나님을 믿고, 그 자매와 남편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20세 된 그녀의 아들이 물에 빠져 익사했을까요? 불과 보름 전 일입니다.
답변: 제가 방금 말씀드린 내용이 바로 그분들을 가리킨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얼마 전 어떤 형제가 매우 유명한 두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난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꽤 민감한 문제인데, 그 형제는 세례를 받고 돌아오자마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저에게 “유 선생님,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답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에게 “그들이 복음을 잘못 전했고, 당신도 복음을 잘못 믿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 두 목사님이 비록 유명할지는 몰라도 전하는 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고, 이랬다저랬다 하여 전혀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 자랑을 하자면, 이 시대에 사명 신학은 복음의 진리를 정말로 명명백백하게 밝혔으며, 명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성취해 냅니다. 복음을 잘못 전하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믿어도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그 친구의 시어머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공사가 중단된 신앙은 아닙니까? 패배한 신앙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자매와 남편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20세 된 아들이 익사했다면, 결국 우리는 그들이 복음을 바르게 믿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질문 2】 선생님, 때로는 경계선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버리는 것과 부모를 사랑하는 것 사이의 경계선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부모를 사랑하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이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답변: 무엇을 조절하고 잡는단 말입니까?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계명을 삼가 지켜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관리가 되어도 결코 탐관오리가 되지 않을 것이고, 사업가가 되어도 결코 악덕 상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게 되는데, 이것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자 약속이 딸린 계명입니다. 무엇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구체적인 상황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인지 그 구체적인 일화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혼란을 드렸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가정 사이의 균형, 직장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민이 있으십니까? 왜 그들의 스무 살 된 아들이 익사했을까요?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돌아가서 잘 살펴보십시오. 오늘날 전해지는 많은 복음이 참으로 해괴하며, 그것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읽어 보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갈라디아서》 3:1-4)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난 결과 수많은 고난을 겪고 많은 질병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잘못 믿어서 뼈아픈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금 자매님이 질문하신 문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사명 신학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뿐만 아니라 저 역시 교회를 개척하기 전, 제가 몸담았던 교회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혼란스러웠지만, 이후로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며 귀신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잘못할 뿐입니다.
【질문 3】 선생님, 우울증은 귀신 들림인가요? 어떻게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까?
답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도록 인도하십시오. 우울증은 모두 육신을 위하고, 이기적이며, 세상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모습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이기심과 육신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이 뿌리를 고치지 않으면 저주가 떠나가지 않으므로, 우울증은 명백한 저주입니다. 저주와 귀신은 거의 같은 것입니다. 그 원인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귀신이 합법적으로 그 사람 안에서 파괴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핵심은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가르치는 동시에 귀신을 쫓아내면 결국 해결됩니다. 많은 우울증 환자의 내면 깊은 곳에는 매우 더러운 것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이 수많은 죄를 낳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헛된 고통이며, 하나님을 위해 치르는 대가가 아니라 아무런 영광도 없는 비참한 대가일 뿐입니다.
【질문 4】 선생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육신을 처리하는 것이며, 자기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질문 5】 선생님, 전통적인 교회 안에도 아픈 사람이 정말 많지만, 장수하며 복을 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답변: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설명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절에 가도 장수하며 복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장수하고 복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을 저에게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오늘 제가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에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미련한데 돈이 많고, 어떤 사람은 매우 똑똑한데 극도로 가난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데 장수합니다.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돈을 많이 법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기이한 일들이 많다 보니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봐라, 저 사람은 업무도 잘 모르고 일도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는데 회사를 잘만 운영한다. 그러니 나도 대충대충 해야겠다.” 그러다가 구덩이에 빠져 빚더미에 올라앉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현상들을 규명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 “저희 할머니는 평생 쓴 뿌리와 원망 속에 사셨는데 96세까지 사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런 일들은 사람을 미혹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하나님께서도 이런 것들로 사람을 미혹하십니다. “하나님도 미혹하신다고요?” 우리의 하나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시기도 합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방금 어떤 분이 “교회에서 30여 년간 전임 사역을 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사역을 안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전임으로 사역하는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30년 넘게 사역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며, 여전히 질병에 시달리고 있을 뿐입니다.
질병에 얽매이고 궁핍에 처했다는 말을 들으면,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수많은 저주와 축복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질병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며 명백한 저주입니다. 누군가 믿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병과 가난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니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몸에 병이 들었다면 그것은 거의 온몸에 저주가 임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30년 넘게 사역했다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며, 늙은 엘리와 그 아들들의 사역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불에 타 죽은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왜 그랬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이유는 없습니다. 제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못 전하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믿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 6】 병환 중이신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는데, 예배 중에 아버지께 위급한 상황이 생겨 즉시 돌봐드려야 한다면, 예배를 중단하고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한 것’에 해당합니까?
답변: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곧 예배 참석입니까?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만 하면 꼭 일이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해괴하지 않습니까? 하필 그때 소동이 일어납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배후에 악령이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영적인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병환 중이신 아버지를 돌보면서 그 병의 문제를 기도로 해결해 드릴 수는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이만한 권세조차 없다면, 예배에 참석하든 안 하든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만 하면 주변에 일이 생길까요? 이런 상황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악령이 벌이는 짓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악령의 역사라면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까, 아니면 아버지를 돌보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조언을 드리자면, 영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정말로 위급한 필요가 있다면 잠시 돌보아 드려도 괜찮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귀로 하는 것이고, 편찮으신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손으로 하는 것이니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여러분이 설교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 7】 온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맑지 않으며, 가슴이 자주 두근거리는 것은 정신 질환인가요?
답변: 정신병일 수도 있고 신경증일 수도 있습니다. 신경증과 정신병은 본질적으로 같은 범주의 질병입니다.
【질문 8】 선생님, 치유와 축사 사역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를 마친 후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는 기록이 없는 것 같은데, 실제 사역 현장에서 일부 은사주의 배경을 가진 분들은 축사 기도를 마친 뒤 반드시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결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족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일까요? 선생님께서는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답변: 성경에는 정결 기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정결 기도라는 것을 만들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지어낸 것입니다.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십시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결 기도를 하지만, 정결해졌습니까? 정결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결 기도를 하지 않아서 정결 기도를 빠뜨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례식에 가면 붉은 실을 묶어 주거나 이런저런 것을 건네주며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하는데, 제가 말씀드리자면 이런 것들은 모두 매우 해괴한 것들에 속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부지런히 읽기를 권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은 힘써 행하고, 없는 것은 내버려 두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제자로서 바르게 서지 못해 손에 권세가 없으니, 사역을 마친 뒤 정결 기도 따위의 온갖 규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것을 가져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9】 선생님, 성경의 기준과 우리 교회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외부의 많은 교회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순전한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잘못 믿고 잘못 전하고 있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답변: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임지셔야 한단 말입니까? 사실 사람이 스스로 잘못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의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나타나지 않는데도 “다 그런 거지”라고 넘겨 버립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더욱 악하여, 교회의 성도들이 의문을 품고 질문하면 “질문하지 마라, 왜 그렇게 따지는 게 많냐”며 면박을 주고 쫓아냅니다. 본질이 무엇입니까? 제자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만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거나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싶어도 질문조차 할 수 없는데, 목회자가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고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자업자득이지만, 우리는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질문 10】 선생님, 같은 길을 가는 동역자가 아니면 버림을 받게 됩니까?
답변: 당연합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둘을 어떻게 한데 묶어 놓겠습니까? 결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질문 11】 선생님, 4개월 때부터 뇌전증(간질)을 앓아 지금 14세가 된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와 외할머니 모두 주님을 믿고 삼자교회에 출석하며 수년간 기도했지만 낫지 않았고, 저희가 온라인으로 기도해 주어도 호전되지 않는데 어떻게 기도하고 섬겨야 할까요?
답변: 뇌전증 배후의 귀신은 좀 더 강하게 대적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아이가 생후 4개월부터 뇌전증을 앓았다면 부모와 분명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면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어난 자녀가 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가 온전히 주님을 믿도록 인도하고, 성경 말씀대로 갈망하며 주님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 12】 선생님, 저희 자매 몇 명이 우상을 제거하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 남편이 톱에 발가락을 다쳤습니다.
답변: 발가락을 다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전쟁의 실재를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영적 전쟁이란 본래 이런 것이며, 승리하지 못하면 결국 그런 결말을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권합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난 뒤 실제로 여러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세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질문 13】 사업을 하는 한 자매님이 성경을 공부하려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손님이 물건을 사러 와서 공부를 방해하는데, 이것도 악령의 역사인가요?
답변: 분명 악령의 역사입니다. 영계가 그렇게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증을 하나 나누겠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컴퓨터와 관련 장비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만 되면 서버가 고장 나고 네트워크가 끊어졌습니다. 제가 가서 처리해야 했을까요, 말아야 했을까요?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맡겼습니다. 두 시간 멈춘다고 해서 큰일이 나겠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 후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가 관리하는 한, 주일 예배 시간에는 결코 고장이 나지 않았습니다. 주일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고장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 배후의 악령은 그렇게 역사하며,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매번 끌려가서 처리해 주면 다음에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나 결국 얽매이게 됩니다. 사람이 죽지 않는 일은 다 사소한 일이며, 사람이 죽는 일이라 해도 영적인 관점에서는 큰일이 아닙니다.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고 영적인 안목으로 분별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질문 14】 7세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아이 엄마 얼굴에는 백반증이 있고, 집안의 형제와 숙모도 다 병을 앓고 있는데, 이것은 가문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문제인가요?
답변: 모두 자신의 문제입니다. 가문의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만,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부모 내면 깊은 곳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귀신도 실수하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질문 15】 선생님, 다른 분을 대신해 묻습니다. 강박증은 악령의 역사인가요?
답변: 강박증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오늘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여기서 마치고, 내일 제5강과 제6강인 ‘승리하는 제자’와 ‘영광스러운 소망’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미처 다 나누지 못한 부분은 양해해 주시고, 질문이 있거나 치유 사역이 필요하신 분은 저희 안내 창구로 연락해 주시면 사역자를 연결하여 기도와 섬김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기도를 통해 당장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지속되지 못할 수 있으므로, 결국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