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누가복음 13장 – 하나님 나라는 좁은 문이니,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2021-01-06 43,819 路加福音 信心 咒诅 属灵 应许 惧怕 献祭

相关经文

路加福音13章-悔改或灭亡
  • 1 正当那时,有人将彼拉多使加利利人的血搀杂在他们祭物中的事告诉耶稣。
  • 2 耶稣说:“你们以为这些加利利人比众加利利人更有罪,所以受这害吗?
  • 3 我告诉你们,不是的!你们若不悔改,都要如此灭亡!
  • 4 从前西罗亚楼倒塌了,压死十八个人;你们以为那些人比一切住在耶路撒冷的人更有罪吗?
  • 5 我告诉你们,不是的!你们若不悔改,都要如此灭亡!”
  • 6 于是用比喻说:“一个人有一棵无花果树栽在葡萄园里。他来到树前找果子,却找不着。
  • 7 就对管园的说:‘看哪,我这三年来到这无花果树前找果子,竟找不着。把它砍了吧,何必白占地土呢!’
  • 8 管园的说:‘主啊,今年且留着,等我周围掘开土,加上粪;
  • 9 以后若结果子便罢,不然再把它砍了。’”
  • 10 安息日,耶稣在会堂里教训人。
  • 11 有一个女人被鬼附着,病了十八年,腰弯得一点直不起来。
  • 12 耶稣看见,便叫过她来,对她说:“女人,你脱离这病了!”
  • 13 于是用两只手按着她;她立刻直起腰来,就归荣耀与 神。
  • 14 管会堂的因为耶稣在安息日治病,就气忿忿地对众人说:“有六日应当做工;那六日之内可以来求医,在安息日却不可。”
  • 15 主说:“假冒为善的人哪,难道你们各人在安息日不解开槽上的牛、驴,牵去饮吗?
  • 16 况且这女人本是亚伯拉罕的后裔,被撒但捆绑了这十八年,不当在安息日解开她的绑吗?”
  • 17 耶稣说这话,他的敌人都惭愧了;众人因他所行一切荣耀的事,就都欢喜了。
  • 18 耶稣说:“ 神的国好像什么?我拿什么来比较呢?
  • 19 好像一粒芥菜种,有人拿去种在园子里,长大成树,天上的飞鸟宿在它的枝上。”
  • 20 又说:“我拿什么来比 神的国呢?
  • 21 好比面酵,有妇人拿来藏在三斗面里,直等全团都发起来。”
  • 22 耶稣往耶路撒冷去,在所经过的各城各乡教训人。
  • 23 有一个人问他说:“主啊,得救的人少吗?”
  • 24 耶稣对众人说:“你们要努力进窄门。我告诉你们,将来有许多人想要进去,却是不能。
  • 25 及至家主起来关了门,你们站在外面叩门,说:‘主啊,给我们开门!’他就回答说:‘我不认识你们,不晓得你们是哪里来的!’
  • 26 那时,你们要说:‘我们在你面前吃过喝过,你也在我们的街上教训过人。’
  • 27 他要说:‘我告诉你们,我不晓得你们是哪里来的。你们这一切作恶的人,离开我去吧!’
  • 28 你们要看见亚伯拉罕、以撒、雅各,和众先知都在 神的国里,你们却被赶到外面,在那里必要哀哭切齿了。
  • 29 从东、从西、从南、从北将有人来,在 神的国里坐席。
  • 30 只是有在后的,将要在前;有在前的,将要在后。”
  • 31 正当那时,有几个法利赛人来对耶稣说:“离开这里去吧,因为希律想要杀你。”
  • 32 耶稣说:“你们去告诉那个狐狸说:‘今天、明天我赶鬼治病,第三天我的事就成全了。’
  • 33 虽然这样,今天、明天、后天,我必须前行,因为先知在耶路撒冷之外丧命是不能的。
  • 34 耶路撒冷啊!耶路撒冷啊!你常杀害先知,又用石头打死那奉差遣到你这里来的人。我多次愿意聚集你的儿女,好像母鸡把小鸡聚集在翅膀底下;只是你们不愿意。
  • 35 看哪,你们的家成为荒场留给你们。我告诉你们,从今以后你们不得再见我,直等到你们说:‘奉主名来的是应当称颂的。’”

《答疑解惑》

성경공부:

서론

오늘은 《누가복음》 1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매번 성경공부를 할 때 서둘러 귀만 가지고 와서 듣지 않기를 권면합니다. 오기 전에 《누가복음》 13장을 읽어 보지 않았다면, 제가 강의하는 것을 이렇게 듣기만 해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듣고도 헷갈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사실 학교에 다니든 일을 하든, 준비를 잘한 것과 준비하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들을 때 제대로 듣지 않고,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녹음을 다시 듣고, 또 한 번 듣습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모든 일에 두 배의 시간을 써야 하고, 어쩌면 다른 사람의 절반만큼의 효과도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줄곧 공부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학습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읽고, 먼저 능동적으로 이 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의 방식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주제를 찾습니다. 어떻게 찾을까요? 먼저 각 부분의 내용에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공통된 내용이 바로 주제입니다. 올바른 주제는 한 장 전체의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저자가 책을 쓰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자가 아무렇게나 써서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 주제를 찾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추배도》와 같습니다. 전해지는 말로는 원천강과 이순풍이 등을 맞대고 앉아 각자 미래에 대한 예언을 썼다고 합니다. 사실 원천강과 이순풍에게 무엇을 썼느냐고 물어도 그들 역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추배도》를 가져다가 해석하면서 미국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고 하다 보면…… 전부 들어맞습니다. 원천강과 이순풍이 마치 단번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맞힌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단번에 명확히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추배도》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고 읽은 것들 가운데 저자가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누가가 《누가복음》을 쓸 때, 분명히 이 주제를 어떻게 논술해야 할지 세심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은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글을 쓸 때 이쪽으로 한 획, 저쪽으로 한 획 그으며 두서없이 씁니다.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조차 훈련받지 않았다면, 분명 중국화를 그리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할 때는 방법과 질서가 있어야 하며, 이 방법과 질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학습 내용을 읽으면서 주제를 찾으라고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주제를 찾지 못했다면 제가 강의할 때 주의해서 들으십시오. 그러면 나중에 녹음을 다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들으면서 질문이 생기면 빨리 적어 두십시오. 지금은 성경공부를 마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으니, 질문을 제기하고 제 답변을 들으면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학습과 업무의 효과와 효율은 모두 능동적인 사고에서 나옵니다. 바둑도 마찬가지입니다. 승패는 아주 조금 차이 날 뿐인데, 그 작은 차이는 능동적인가 수동적인가의 차이입니다. 일의 결과는 바로 이 작은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 때문에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다음번에 《누가복음》을 공부할 때는 먼저 예습하십시오. 그러면 아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앞 장, 곧 《누가복음》 12장은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는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를 매우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려면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문은 좁다

13장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문이 좁다고 말합니다. 마치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추첨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추첨에 당첨된다면 큰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문은 좁은 문이므로,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면 대단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배이고 어떤 사람이 쓰레기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 구절은 24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여러분은 절대로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애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애원하지 않습니다.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제가 가진 이 이념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모두 성경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 저도 그렇게 합니다. 예수님이 이것이 좁은 문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도 좁은 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하셨으니 저도 그렇게 합니다. 오기를 원하는 사람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오든 말든 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이고, 이 좁은 문은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그만두자. 나는 여러분과 경쟁하지 않을 테니, 나는 들어가지 않겠어요. 여러분이나 들어가세요.” 또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됐어, 어차피 나도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고, 사람마다 생각도 다릅니다. 며칠 전 우리는 한 그리스도인을 섬겼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10년이나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다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주님을 믿는 모습도 엉망이었습니다. 그가 잘 살고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배 안이 이유 없이 가렵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생각해 내고, 제 동역자를 찾아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한 후 제 동역자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그 사람에게 과제를 보내 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다 들었다고 하자, 제 동역자가 무엇을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내용만 들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과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제 동역자가 처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했을 때는 조금 나아졌고, 두 번째 기도했을 때도 조금 더 나아졌습니다. 나아진 후에는 며칠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 배가 다시 아프자 또 제 동역자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 좁은 문이 단번에 그 사람을 막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십니다. 저는 전에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이 설교를 좋아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현상이 마침내 설명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반석에 부딪히는 사람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이 말은 제가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쓰신 책입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이 주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쓰신 말씀이며, 오늘날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켜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는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넘어지는 사람은 반석에 부딪힌 후 반석에 맞아 산산이 부서집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좁은 문에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에 따라 깊은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저주를 받습니다. 《누가복음》 13장은 바로 이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결국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이치를 모르고 그저 자기 삶을 잘 살아 보려고만 합니다. 사실 이것은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입니다. 며칠 전 한 보조 사역자가 한 사람을 상담했는데, 그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는 여러 해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귀신 하나가 자기 몸에 붙어 있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잠에서 깬 후 온몸에 땀이 났습니다. 몸을 털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인터넷에서 우리를 찾아냈고, 우리를 통해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복 받은 사람은 당연히 삶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은 오히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삶이 나아질 수 있습니까?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여러 성과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더니 한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3:22-30)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이 정말 많은지 관심을 갖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13장의 주제로 삼고, 이 주제가 어떻게 한 장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락부터 보겠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누가복음》 13:1-5)

이 사람들은 왜 죽었습니까? 사람들은 그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를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해를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멸망합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핵심은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첫 번째 문은 회개이다

사람이 이 첫 번째 문에 들어가지 못하면 걸러져 나가게 됩니다. 천국의 열쇠는 여러 개이고 천국의 문도 하나씩 이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문은 회개입니다. 회개의 문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면 나머지 문은 말할 것도 없으며,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모두 멸망합니다. 우리 가운데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어떤 사람은 배가 몹시 아파도 회개하지 않는데, 배가 아프지 않으면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머릿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만 가득하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진 사람은 천국의 문조차 찾지 못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 회개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회개의 도는 매우 깊습니다. 예전에는 회개의 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배가 아프고, 눈에 이물감이 있고, 어지럽고, 우울하고, 마음이 괴롭고 답답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사람이 잘못 처리했다는 증거이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배가 아파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모르고, 머리가 아파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모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런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사실 많은 일은 회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교회를 세웠는데 제대로 세우지 못해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고치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고칠 수 있습니까? 다른 교회가 돈을 보내 이 교회를 공급하고 있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교회가 수백만을 들여 부동산을 구입했고 매달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면, 여러분에게 그 돈이 있습니까? 없다면 교회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아내가 매일 집에서 여러분과 다투며 고치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감히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꾸고 싶어도 눈앞에 놓인 이런 문제들을 넘어서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이런 장애물을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목에 여러 겹의 올가미를 쓰고 있습니다. 왼쪽에도 하나, 오른쪽에도 하나씩 걸려 있습니다. 사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바꿀 수 있었을까요? 죽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데 무엇을 더 걱정하겠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사람이 없습니까? 그것도 괜찮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듣기 불편해도 저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함께 가고, 함께 가기 싫은 사람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떠나면 헌금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합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제가 이렇게 바꾸고 나니 정말 잘되었습니다. 더 이상 돈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어제에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면, 오늘에서 내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반드시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고, 제 자신에게 도전해 보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거짓으로 행동하지도 않으며, 사람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이 세움을 받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단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어렵지도 않고 좁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좁다고 말한다면, 좁은 것은 우리의 마음과 시야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일은 간단해집니다. 돈도 문제가 아니고 사람도 문제가 아니며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 말을 듣고 믿음이 세워진다면, 사는 일이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어찌 단순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논리 체계가 단번에 하늘에 속한 논리 체계로 바뀝니다. 더 이상 이것저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기근을 만났지만, 무엇을 만나든 개의치 않았고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좁은 문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의 문이 너무 좁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매우 넓지만 사람의 눈에는 매우 좁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무엇이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늙으면 요양원을 찾아야 하고 누군가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꼭 요양원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이런 일을 하나님이 돌보시지 못하겠습니까? 사람의 믿음이 한 번 무너지면 어리석은 결정만 하게 됩니다. 요양원이 아직 세워지지도 않았는데 돈을 내고 자리를 예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앞 장에 나오는 부자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무지했습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좁은 문은 믿음의 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 속한 체계 안에는 믿음이 없고, 모두 살기 위해 살아갈 뿐입니다. 병원에 가든 요양원에 들어가든 돈이 들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에 의지해 살아가려 한다면 행운을 빕니다. 정말 좁은 문에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따르고, 반드시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6:17-18)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3:6-9)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잘라 버리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자르지 마시고 그를 남겨 두십시오.” 그리고 제가 땅을 파고 거름을 준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부터 계속 여러분의 믿음을 빚어 가고, 비료를 더하며, 끊임없이 공급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믿음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직장을 의지한다면 직장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데 일반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보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을 정말 잘라 버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주 예수님께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를 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xx년에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제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알지 못하면서도 제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하는 첫 번째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이어서 예수님은 한 가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누가복음》 13:10-17)

도대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이 세상에는 주님을 믿든 믿지 않든 사탄에게 묶인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들을 풀어 주지 않습니까? 안식일을 말하고, 예배를 말하고, 성경공부 방법을 말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방법을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묶인 한 사람도 풀어 주지 못한다면, 이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이것은 외식하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묶는 방법은 매우 악합니다. 사실 회당장은 사탄에게 묶여 있었지만, 자신이 묶여 있기를 원했습니다. 외식하는 교리를 배웠기 때문에 여자가 사탄에게 묶여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치유와 은혜를 받았다면, 오늘 저와 제 동역자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섬겼는지를 기억하고, 앞으로 여러분도 풀려나야 할 다른 사람들을 섬기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믿음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장차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모른다고 하시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실 것이며,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도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아내는 잘 사랑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엉망입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곳에 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깃발을 흔들며 외치고 나팔도 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라가 섬길 차례가 되어 아픈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더니,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큰일 났구나.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방금 전에는 그렇게 깃발을 흔들고 외치며 잘하더니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이 불쾌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자, 제가 여러분을 섬겨서 질병의 속박에서 풀어 드리겠습니다.”

천국 복음은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며, 귀신을 쫓아내면 사람이 자유를 얻습니다. 오늘날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 복음이 과연 복음인지, 여러분이 성경을 잘 읽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렇게 하자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교회가 괜찮겠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데 왜 안 됩니까?” 예수님처럼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제가 예수님처럼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왜 예수님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처럼 되고 싶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좁은 문의 교회는 번성하는 교회이다

제가 세운 교회는 좁은 문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천안문은 들어 봤지만 좁은 문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좁은 문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들의 넓은 문 교회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려면 영적으로 날씬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합니다. 영적인 군살을 잔뜩 붙인 채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를 배려한다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누가복음》 13:18-19)

겨자씨는 아주 작아서 먼지 한 알과 같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심고 나면 큰 나무로 자랍니다. 그러므로 이 좁은 문 교회는 번성하는 교회입니다. 좁은 문 교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이고, 좁은 문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며 사탄을 이기는 교회입니다.

제가 초창기에 설교할 때는 아래의 좌석마다 허수아비 하나씩 세워 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황량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 자매는 연애를 시작하더니 남자 친구의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제 마음은 크게 식었고 상당히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온 마음을 다해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제게서 은혜를 받았지만, 결국 저를 헌 신발처럼 한쪽에 내던졌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좁은 문 교회를 세웠으니 사람들이 이것을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한 걸음씩 여기까지 온 것은, 처음 뿌려진 겨자씨 한 알,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좁은 문 교회를 세우려는 그 마음과 의지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사람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면 사람들은 겸손과 교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등의 말씀을 가져와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 뜻은 “당신들은 이렇게 교만하니 조금도 겸손하지 않군요”라는 것입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좁은 문 교회를 세우려 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오히려 교만으로 보인 것입니다.

좁은 문은 교만의 문이 아니라, 기준이 높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선택한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이 여러 신 중 하나일 뿐이라면 여러분이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선택하시는 분이라면, 우리가 선택받을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정말 높습니다.

저는 섬기면서 참으로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가를 치르며 진지하게 과제를 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과제를 하게 하는 것은 그저 선별해 보고 여러분이 얼마나 진지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101 과정을 하라고 했는데, 그는 102 과정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람을 섬기려고 하면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섬기면 안 됩니다. 이렇게 섬겨야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참 재미있는 분이군요. 많은 환자처럼 의사에게 ‘그렇게 치료하지 말고 이렇게 치료해 주세요’라고 말하는군요. 환자가 의사보다 더 대단하네요.”

이 좁은 문 교회는 보기에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제게 찬물을 끼얹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바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거룩하고 하나 되며 영광스럽고, 바른 진리를 지키며 싸워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기준을 높게 세워야 합니다. 당시 국민당이 대만으로 물러난 후 장제스는 스스로 반성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오쩌둥은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병사들을 훈련했지만, 국민당의 병사들은 그렇게 엄격하게 훈련하지 않았다.” 이후 대만은 병사들의 훈련 강도를 높였고, 그 시대의 대만 병사들도 매우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훈련하지 않으면 전쟁터에서 반드시 패배합니다. 우리 교회가 형제자매들을 이렇게 훈련해도 우리의 수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좁은 문이 바로 이런 것 아닙니까? 보십시오. 예수님은 좁은 문에 대해 말씀하신 후 겨자씨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둘이 연결되어 있습니까? 아주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누가복음》 13:20-21)

누룩은 매우 전염성이 강합니다. 좁은 문 교회에 들어간 교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넣으면 반죽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그 전파력과 영향력이 매우 강합니다. 오늘은 제가 조금 더 자랑해도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다른 교회의 설교를 들어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양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이곳은 기준이 높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솔직하게 전하기 때문에 사람의 믿음이 양육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왔다면, 주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자신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괴로움이 되고 비극이 됩니다! 주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을 행악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겸손

어떤 동역자가 다른 사람이 보내온 메시지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겸손과 교만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모두 교만하고 충분히 겸손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겸손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사실 겸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지난 몇 년 동안 겸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마친 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나는 겸손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정말 겸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마태복음》 11:29).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무 교만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오경을 기록한 모세도 자신에 대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참조 《민수기》 12:3).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너희도 아는 바니 주를 섬긴 것과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이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참조 《사도행전》 20:18-20)

저는 이것을 읽고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만일 제가 “저는 매우 겸손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돌멩이가 날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나중에 보니 성경에 나오는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두 글자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했을까요? 자신들 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모세와 바울은 모두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했으며, 이것을 일컬어 매우 겸손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제가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사람들 앞에서 “자매님, 저는 못하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사실 아무런 소용도 없는 말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여러분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며, 자신에 대한 요구를 계속 높여야 합니다. 여기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도 포함됩니다. 앞에서 22절을 읽었으니, 이제 3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3:31-35)

예수님이 걸으신 길은 바로 좁은 문입니다. 곧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내 일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도 나는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임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선지자들을 자주 죽이는도다.” 예루살렘은 자주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자주 선지자를 죽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좁은 문 교회를 세우는 선지자를 죽입니다. 이런 선지자들은 사람의 논리 체계와 잘 맞지 않는 메시지를 자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하지만, 하나님이 듣기 원하시는 말씀은 좁은 문 교회에서 계속 선포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헤롯이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사탄과 그 늙은 여우가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도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계속 귀신을 쫓아내고, 포로 된 자와 억압받는 자를 계속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우리가 좁은 문 안에서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우리는 이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도 저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죽음도 우리가 이 좁은 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죽음도 우리가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마귀 원수를 짓밟으며, 사탄의 어둠의 권세를 짓밟아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누군가 “구원받는 사람이 적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구원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동서남북 각처에서 사람들이 올 것이며, 전 세계 각지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앉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문은 분명 좁은 문이므로 힘써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걸어가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좁은 문입니다. 물론 이 좁은 문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는 모두 좁습니다. 우리는 매우 힘써 이 천국의 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그 문 뒤는 지극히 넓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살지 않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 있습니다.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숨겨 넣어 온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 여러분과 제가 각각 한 몫씩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이겨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