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승리에 관한 말씀, 아주 훌륭한 승리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대적의 성문을 취하라’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입니다. 대적의 성문을 취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여호수아가 대적의 성문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대적의 성읍들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눌 다윗은 훨씬 더 대단합니다. 다윗은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배우려거든 최고의 고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명실공히 최고의 고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로 이기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입니다. 살아가면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남들은 대학에 붙는데 나만 떨어지는 것은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남들은 다 취업하는데 나만 못하고, 남들은 비자를 받는데 나만 못 받는 것, 이런 것이 바로 패배입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삶은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사람은 살면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한 나라로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과거 청나라 정부는 늘 패배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해군이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후 온갖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이 땅 저 땅을 떼어주어야 했던 비참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패배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승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 손에 쥔 칼과 창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분의 약속을 붙잡음으로써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 난 아브라함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의 평생에는 승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다윗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난 다윗이 아니야. 이삭이나 야곱 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어? 사무엘, 모세가 몇이나 돼?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단 말이야?” 그런 사람은 성이 이씨면 ‘이 몇 명’, 왕씨면 ‘왕 몇 명’이라고 불러야 할 판입니다. 승리하지 못할 핑계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데,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승리하지 못할 온갖 이유만 늘어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논리는 정반대입니다. 몇 명 안 된다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단 한 명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핵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사무엘, 모세, 다윗 등 수많은 인물이 줄줄이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더러 배우라는 것 아닙니까? 배우라는 것은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한 대로 우리도 따라 하는 것입니다.
‘본받음’은 대단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무엇을 뽐내겠습니까?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원래 사람은 부족하니까요. 문제는 배우려 하고 본받으려 하는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고수의 지도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고수의 가르침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고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고수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저 역시 그런 고수들을 직접 알지도 못하고 살면서 몇 명 만나보지도 못했습니다. 고수들은 다 책 속에 있습니다. 훌륭한 고수가 책을 남기지 않았겠습니까? 중국 역사에도 수많은 고수가 배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중(管仲)은 제환공을 보좌하여 춘추오패의 으뜸으로 만들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관중이 쓴 나라운영과 가문관리에 관한 책들은 정말 탁월합니다. 손자(孫子) 또한 《손자병법》을 남긴 대단한 인물 아닙니까? 또한 역대 학파를 창시한 인물들 모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저도 점차 그 대열에 합류하여 우리가 세운 것이 바로 사명 신학(命定神学)입니다.
성경에는 훨씬 더 많은 고수가 나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저 그런 고수가 아니라 최고의 고수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탁월한 고수였습니다. 잘 살고 싶다면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받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입니다.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일은 평생 ‘그저 자기 자신’ 하나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내 식대로 살겠다”고 합니다. ‘당신은 5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고, 나 같은 사람은 5천 년, 5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독특한 존재’라는 식입니다. 왜 5천 년에 한 번 나온다고 하겠습니까? 남들과 전혀 다르게 제멋대로 마구잡이로 살기 때문입니다. 배우지도 않고 본받지도 않으니 일을 그르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태어난 본성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 놓고는 자존심을 세우려고 “나는 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수모를 겪고, 온갖 참담한 일들을 경험하겠다는 말입니까? 굳이 그런 것을 왜 겪으려 합니까? 제가 처음 교회를 맡았을 때 한 청년이 “목사님, 저는 귀신에 한번 들려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저녁 성경공부 시간에 귀신이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몇몇이 그를 붙들고 기도하며 가슴을 두드리고 등을 쓸어내리며 간신히 수습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왜 겪으려 하느냐?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게 얼마나 좋으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귀신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귀신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 예전 직장 상사도 젊은 시절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새벽 두 시에 공동묘지에 가서 “귀신 있으면 나와 봐라!” 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귀신은 보지 못했지만, 그 후로 인생의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하게 불행해진 것입니다. 패배하는 삶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 깊이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승리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예비하셨는데 여러분이 따라가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며 승리하시는데, 뒤돌아보면 여러분은 엉뚱한 곳에서 딴짓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줄 알아서 하나님이 앞서 싸워 이기실 때 우리가 그저 승리의 열매를 거두기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손에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그저 들어가 승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죽였을 때, 그 골리앗을 다윗의 힘으로 죽인 줄 아십니까? 다윗은 “내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법을 배우면 얼마나 좋습니까! 병거도 의지하지 않고 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복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약속인데 수많은 사람이 알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너로 이기게 하시리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답답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보시며 “이 어리석은 자녀가 어찌하여 승리를 구하지 않는가?” 하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승리는 영적 세계에서의 승리로부터 비롯됩니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영계의 악한 영들을 제압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과의 일도 능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영계의 귀신들을 다룰 수 있다면 다른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 배후에는 영적 세계의 조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이셨고, 우리가 믿는 복음은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온 성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수많은 문제가 악한 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당뇨병에 걸렸다면 당뇨병의 귀신 때문이고, 피부병에 걸렸다면 피부병의 귀신 때문입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안에 둔하게 만드는 영이 있는 것이며, 공부를 못하는 것도 분명 영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축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매일 ‘이성’, ‘지혜’만 강조하다가 귀신 쫓는 사역을 없애버린다면 얼마나 빗나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올바른 이성이 아닙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론이나 난화이진(南懷瑾)의 이론이 그럴듯해 보여도,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가난합니까? 가난의 영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을 하지 않아 복을 도둑맞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지식과 이해만 따지고 싸우지 않으니 패배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영적 세계의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하며, 영적 세계의 승리가 세상에서의 승리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영적 세계에서의 약속이었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면 매우 비참해집니다. 반드시 영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승리하지 못합니까?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본받음’과 ‘전수(계승)’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요셉은 모두 영계에서 승리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영적 승리가 세상의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본받지도, 전수받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배우지 않는 것은 결국 태도의 문제입니다.
세상일 가운데 배우지 않고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도면을 그리고 기계 설계를 하는 것도 제가 날 때부터 안 것이 아니라 배운 것입니다. 가구를 짜는 것도 다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이 태어났습니다.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태어난 것은 똑같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배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일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일 또한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배우려고만 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도 배워야 합니다. 배울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포기하고, 건성으로 흉내만 내면 인생을 망치지 않겠습니까? 틀렸는데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를 풀 때 틀린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면,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맞힐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핵심 포인트를 알았으니 떨어질 리가 없습니다. 모르면 알 때까지 풀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틀린 문제는 가장 좋은 배움의 기회입니다. 모르는 부분을 확실히 익히면 다음에는 정답을 맞힙니다. 처음엔 40점이다가 60점, 80점, 결국 90점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필기시험을 보러 간다기에 모의시험 점수를 물었더니 80점 정도 나온다길래 보러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봤자 떨어지고 돈만 날리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95점, 98점을 맞는다면 단번에 합격할 것입니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봅니다.
치매가 왜 오는지 아십니까? 은퇴 후 더 이상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엔지니어로 기술직에 종사하던 사람도 은퇴 후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며 지내다 치매에 걸립니다. 배우지 않으니 모든 것이 굳어버리고 예전에 배운 지식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배워야 합니까? 다윗을 배우고, 여호수아를 배우고, 모세를 배우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네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너로 이기게 하시리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저는 평생 끊임없이 배우며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아 끝이 없습니다. “목사님, 요즘은 무엇을 배우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요즘은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배웁니다.
훌륭한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보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심미안도 배워야 합니다. 감각이 없으면 흉물스러운 인테리어를 만들어 놓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법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AI도 배워야 하고 배울 것이 많습니다. 배움의 요소가 들어있는 일이야말로 진정 좋은 일입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배움이 필요한 업무를 주면 그것은 좋은 기회입니다. 단순 반복적인 일은 발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배움이 필요한 일이 주어지면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고, 단순 작업이 주어지면 좋아합니다. 완전히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배우지 않으면 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며칠 전 성경공부 때 한 형제가 사주팔자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주가 꽤 잘 맞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점쟁이에게 가도 잘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한의학도 좋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한의학을 공부해보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들이 많았습니다. 한의학이 좋아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살아가는 힘》 같은 책들도 좋고 저도 읽어보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난화이진의 글도 좋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없습니다. 제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것입니다. 내 평생에 나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는 약속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서 나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 한 분만 계시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죽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겠다는 바로 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며 성경을 깊이 읽다 보니 승리의 약속을 알게 되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이것도 좋다, 내가 취하자! 저것도 좋다, 내가 취하자! 이것도 저것도 다 내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곧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승리의 약속은 죽은 뒤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의 일입니다.
모든 약속은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 메마른 삶을 살며 약속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죽은 후에 어떻게 그 약속을 누리겠습니까? 양 한 마리를 치더라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죽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고집입니다. 성장을 가로막고, 배움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의식과 고집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 다윗이 몇이나 있나? 하나뿐이지 않는가? 예수가 몇이나 있나? 하나뿐인데 난 예수가 아니야.” 그런 고집스러운 생각 때문에 평생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지 못하고 큰 손해를 봅니다.
저는 종종 “지혜로워질 수 없겠습니까?”라고 안타깝게 말하곤 합니다. 남들이 해서 좋은 것은 우리도 따라 하고, 좋지 않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들은 다 형통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술 관원장이었다가 유다 총독이 되었으며, 다니엘은 바벨론의 세 왕조에 걸쳐 총리를 지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자기 옳음의 멍에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좋습니까?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사모하십시오! 승리의 약속을 취하려다 어려워 보인다고 물러서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고 승리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약속을 버리고 패배하면 삶이 한없이 복잡해집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구하는 길, 다윗처럼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 길을 가십시오. 승리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패배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며 문제를 키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도록 예정하시면 문제는 점점 줄어듭니다. 주변 나라들이 굴복하여 해마다 조공을 바치면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전쟁에서 패배하면 경제도 파탄 나고 조공까지 바쳐야 합니다. 청나라가 막대한 은을 배상금으로 물어주다 결국 몰락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금성에 풀이 무성해도 치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약속을 취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승리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며 우리를 위해 승리하십니다! 우리가 거둔 모든 승리 중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축사 사역을 할 때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힘입어 한 것입니다.
초창기에는 축사할 때 마귀보다 1~2분 더 버티는 끈기로 겨우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배우고 성장하면서 더 빠르고 강력하게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사무엘하 8:13-14)
기도
하나님,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주께서 우리로 이기게 하옵소서. 영적 세계에서 대적의 진영을 파하고 원수 마귀를 짓밟게 하옵소서. 다윗을 본받아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과 교회를 건축하는 자들로 우리를 일으켜 주옵소서. 다윗을 본받아 승리하는 백성, 승리하는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승리하는 습관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다윗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그가 왕이 되어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키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 그분을 알아갔고, 그분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십 대 시절 양을 쳤습니다. 제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여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집안을 돌보지 않으셔서 아버지는 아홉 살 때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소를 쳐야 했습니다.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소를 치는 목동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소를 치다가 서당 앞을 지나갈 때면 창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도둑 강의를 엿들으셨습니다. 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을 몹시 부러워하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처럼 학교 공부를 고역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훗날 아버지는 우리 다섯 남매에게 늘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다윗 또한 십 대에 양을 쳤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쳤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양을 쳤을 것입니다. 형들은 학교에 가는데 다윗은 양을 쳐야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이새는 왜 종을 두지 않고 다윗에게 양을 치게 했을까요? 사실상 다윗을 종처럼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윗의 배움을 가로막을 수 있었을까요? 막지 못했습니다. 양을 치는 일에는 대단히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다윗이 큰 인물이 되지 못할 것이라 여겨 양을 치게 했지만, 그것은 다윗에게 최고의 훈련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간 것이 최고의 사회적 훈련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배우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이 배움이 아닙니다. 교실에서만 배운다고 다윗 같은 인물이 나오겠습니까?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맞닥뜨리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체구도 작았고 다 자라서도 170cm 남짓이었습니다.
어린 다윗은 날마다 지혜를 짜내며 양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이었기에 결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편히 지내는데 왜 나만 양을 쳐야 하느냐며 불평하거나 양을 걷어차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을 훌륭하게 쳤습니다. 양 한 마리도 제대로 치지 못하면서 무슨 승리를 얻겠습니까? 청소 하나도 깨끗이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배울 수 있는 기술과 깊이가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 늑대나 사자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나무 막대기를 뾰족하게 깎아 맞서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능력을 길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겠습니까? 당연히 함께하셨습니다.
태도가 바르면 하나님의 영을 끌어당기지만, 태도가 비뚤어지면 악한 영을 끌어당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어떤 사람은 귀신이 함께합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힘으로 늑대나 사자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늑대와 사자를 물리쳐 주신 것입니다. 훗날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싸우신다”고 선포했습니다.
다윗은 기도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양을 성실히 치며 사자를 이기는 믿음의 훈련을 쌓았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겪어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실력은 어린 시절 양을 치며 연마한 것이었습니다.
스승에게 무술을 배우러 갔더니 몇 년 동안 장작만 패게 했다는 이야기나, 손오공이 보리조사 밑에서 오랜 세월 무예를 배우지 못하고 허드렛일만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태도를 시험해보기 위함입니다. 쉽게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골리앗을 꺾은 물맷돌 기술은 평소에 갈고닦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였습니다. 훗날 천부장이 되었을 때도 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고 진을 치는 법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평생이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13년의 도망자 생활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훈련이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건너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처지는 다윗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왕, 모압과 암몬과 블레셋의 왕들과 싸워 모두 굴복시켰습니다.
다윗은 에돔과 블레셋 등 각지에 수비대를 두어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다윗은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예루살렘성을 정복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 곧 오늘날의 성전산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왔고, 이삭을 바쳤던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에 오르고 열국을 다스릴 것이라는 엄청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후 다윗은 열방을 굴복시켰습니다. 성전을 다 짓고 나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만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겉으로 일해도 헛수고입니다. 본문 사무엘하 8장에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그를 이기게 하셨더라”는 말씀이 6절과 14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저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하나님, 이 약속은 저의 것입니다. 저도 이 약속을 취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도 이 약속을 얻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약속을 사모하는 자들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마음에 사모함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주십니다.
수년 전 우리가 개척한 교회는 처음부터 승리하는 교회였습니다. 승리와 영광, 영적 전쟁의 논리는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가 초라하여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듣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성도들은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십니까?” “저는 승리하는 교회에 다닙니다!” 웅장한 예배당에 모여 뜨겁게 찬양하지만 실상 그 안에 온갖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찬 교회들을 보십시오. 다윗과 같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본받아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신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행한 대로, 이삭과 야곱이 행한 대로 우리도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편협한 분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서 굽어보시며 이 승리의 약속을 누구에게 줄지 찾고 계십니다. 마음이 좁쌀만 하고 생각이 편협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의 약속을 주고 싶어도 받을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수십억 인구 중에 “하나님, 제가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원합니다!”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구하십시오. 그 시대에 아브라함 한 사람만 찾으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수많은 아브라함이 일어나기를 바라셨지만 다들 자기중심적인 일에 갇혀 만민의 복이 되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중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이삭과 야곱처럼, 요셉과 다윗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금광에서 캐낸 원석이 다 순금이 아니듯, 제련을 거쳐 순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래가 많아도 우리는 정금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로운 존재가 되십시오. 사명 신학 안에서 보배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결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불평과 원망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실전에서 무력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훈련받았습니다. 오늘날 기업들도 교실 안의 지식보다 다윗처럼 실전에서 훈련되고 승리하는 습관을 지닌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참되시니,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을 취하라
승리의 약속을 취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다윗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릴 때부터 창세기를 배웁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목동으로 일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양 치러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사 하나님의 약속을 훈련하게 하신 것이다.” 요셉 또한 “하나님이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여러분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약속을 취할 만한 사람인지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로 약속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사자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곰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어떻게 인도합니까?” 문제를 만날 때마다 기도하여 응답받고, 약속을 취하며 승리했습니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곧 성장이요 승리입니다. 다윗도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약속을 취하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할 때까지 버텨내며 승리했습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을 거쳤기에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천부장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 다윗은 “내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신다”고 고백할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은 변하여 복이 됩니다. 모든 역경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여 승리할 기회입니다. 지금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때입니다. 다윗은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시편을 보면 전반부에는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탄식하다가도 후반부에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며 믿음을 선포합니다. 환경을 보면 낙심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괴롭지만, 믿음이 서면 평안이 임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약속을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도망자 시절 다윗이 승리했던 비결입니다.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눈물을 닦고 다시 성경을 연구하며 약속을 선포했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왕이 되었듯,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약속을 경험하라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훈련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제 믿음 안에는 실패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축사 사역을 할 때도 믿음으로 행하면 능히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성문을 취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인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고난이 아무리 커도 우리 하나님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약속은 다윗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본받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약속입니다. 환경은 황량해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 소망이 넘칩니다.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역동적인 삶을 사십시오.
훗날 자손들에게 들려줄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삭을 바쳤던 일, 대적의 성문을 취했던 일, 지팡이 하나만 쥐고 건넜다가 두 떼나 이루어 돌아온 일, 출애굽의 역사와 광야에서 먹이신 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이 무너진 일, 원수 마귀를 짓밟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운 간증들을 들려주십시오. 우리의 눈물과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이 시대에 나타날 것입니다. 아멘!
승리하는 습관을 기르라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작은 일에서부터 길러야 합니다. 영업하는 분들은 영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실천하십시오. 사역하는 분들은 치유와 축사 현장에서 대적의 성문을 취하십시오. 엔지니어든 연구원이든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십시오. 우리는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이 힘들고 양 치는 것이 고되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직장에서 벅찬 업무를 맡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니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고, 직장을 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귀신을 쫓아내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승리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어린 시절부터 자의식과 부정적인 태도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일상의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승리하기를 바라시며 약속을 취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자가 되어 한 성읍, 열 성읍을 다스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