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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자의 말씀 시리즈】08: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똑똑히 보라

2024-12-01 5,545 传道者的言语系列

서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전도자의 말씀 시리즈를 계속해서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이 ‘도(道)’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장담하건대, 만약 노자가 오늘날 살아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 ‘도’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했는데, 만약 이 ‘도’를 명확히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도가 아닐 것입니다. “이름을 이름 지을 수 있다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名可名,非常名)”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이름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도덕경》을 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서》를 나누는 날입니다. 〈전도자의 말씀〉 시리즈 여덟 번째 시간으로, 이번 장의 제목을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음”이라고 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세상에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실 《전도서》 안에는 제가 깊이 공감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에 와서야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전도서》를 읽으면서도 정말 너무나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을 납득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무리 보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닫는다면 비로소 명확히 보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령한 사람입니까? 신령한 사람이 아니라면 안개 속을 걷듯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삼계(三界) 안에 갇혀 있다면 삼계 안의 일들을 분별할 수 없으므로, 삼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어느 절 문 앞에 점을 치고 부적을 써 주는 칠십 대의 노인이 있었는데, 막 병원에서 퇴원한 상태였습니다. 제 친구가 그 부적을 쓰고 점을 치는 사람을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삼계 밖으로 벗어나 오행(五行)에 속하지 않은 사람 같았습니다. 친구가 왜 그 점쟁이를 데리고 저를 찾아왔을까요? 그 노인은 두 다리가 굳어서 한 걸음도 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제가 그를 이끌고 기도하자마자 다리가 풀렸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묻겠습니다. 이런 일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역시 삼계 안에 있고 오행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농담 삼아 드린 말씀입니다. 여러분, 제가 정말 불교의 삼계를 논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늘날까지도 삼계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그저 저팔계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단히 유능하고 똑똑했습니다. 그는 혼자 주식 투자를 해서 회사 전체 직원들이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 매우 대단하다고 여기며 “내가 드디어 주식 시장의 법칙과 본질을 파악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전체 직원들이 잃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단번에 날려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극심한 고통과 불면증, 위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어라? 내가 발견한 이 법칙이 왜 갑자기 먹히지 않지? 분명히 잘 맞았는데!’ 하며 멘붕에 빠졌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당신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도 잘 모르고, 어떻게 잃었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며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림자일까요? 영계에서의 역사가 진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다”고 한 것을 두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해 아래의 것은 헛되지만, 해 위의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생은 헛된 것이지만 영원은 헛되지 않으며, 영생은 헛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혼란입니다.

사실 법칙이 통했을 때도 온전히 통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영계에서 여러분을 홀린 것뿐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수조 원대 제국을 이룬 대기업들이 훗날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돈을 잘 벌지 않았던가? 게다가 상무위원도 되고 인민대표도 되었는데 왜 안 통했을까?’ 참으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또한 사스(SARS)가 어떻게 왔습니까? 모릅니다.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왔는지 모르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르며 도무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계 안으로 들어가서 바라보면 단번에 명확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해 아래는 헛되지만 해 위는 실재합니다. 해 아래의 것은 영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 혼란은 현대 의학의 혼란입니다. 동일한 질병에 동일한 약을 써도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 동창의 아버지는 그 지역 최고의 소아과 권위자이신데, 저희에게 이런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환자에게 위약(플라시보)을 주기도 하는데, 먹고 낫기도 한다네.” 왜 효과가 있을까요? 사람이 그것을 믿으면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약,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약은 한 번 복용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며, 제약회사는 조폐기처럼 돈을 긁어모읍니다.

어떤 젊은 전도자가 삼십 대에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전도자가 말씀의 ‘도(道)’가 없는데 목사는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서른이 넘은 꽃다운 나이에 모든 약이 듣지 않아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당시 의사는 그에게 “이 약은 80%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데 써 보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투약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다시 “이 약은 50%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습니다”라고 했고, 사용해 보았으나 또 듣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 “하나님, 왜 저는 저 20%에 속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죽을 때까지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몰랐고, 죽을 때까지 영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온갖 다른 짓을 다 해도 멀쩡한데, 참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반면에 그는 얼마나 건강 관리에 신경 썼는지 모릅니다. 전도자가 건강 관리에만 전념하다니 참으로 비극이며, 결국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건강 관리를 따로 하지 않습니다. 저의 건강 관리는 무엇일까요? 저는 섬김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데, 영계의 일들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제가 기도해 주자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동생이 살아난 것을 보고 “와, 네가 찾은 그 목사님 참 대단하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그 언니도 암에 걸렸고, 동생 자매는 언니를 보러 가서 휠체어를 밀고 병원에 갔습니다. 가보니 병원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그 인파는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언니, 환자가 이렇게나 많네”라고 하자 언니가 한 말이 그 자매를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게, 아픈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닌가 보네.” 그 언니는 어째서 병원에 왜 이렇게 사람이 미어터지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이 가서 낫지 못해 다시 오고, 또 다른 환자가 와서 낫지 못해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환자도 낫지 못하고 네 번째 환자도 찾아오니 재방문율이 대단히 높습니다. 병원 장사는 참으로 묘합니다. 고치지 못해도 돈을 받으니까요.

우리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언니가 참 똑똑한 사람인데, 왜 이런 사실을 정리해 내지 못할까요? 게다가 자기가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죽어갈 때 목사님이 기도해 주셔서 나았는데, 왜 그쪽으로는 생각을 못 할까요? 이 질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람이란 참으로 기이하여 생각을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탄식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저의 친한 친구 한 명이 암에 걸렸는데, 제가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지 전했습니다. “자네가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안다면 암이 분명히 저주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물론 그가 욥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도 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암에 걸린 후 제가 연락하여 이것은 저주라고 말하자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내게 임하지 않아.” 성경에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까닭이 있어서 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말씀을 거꾸로 읽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평생을 힘들게 사역했지만 질병에 걸렸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정말이지 우리 가운데 계신 자매님들은 복이 많으십니다. 이곳에 오셔서 “아,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다 깨닫게 되니까요. 얼마 전 한 자매가 제게 말하기를, 자신도 한 가지를 관찰했는데 많은 목사님들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섬기는 형제자매들은 평안하고 재정적으로도 흥왕하며 몸도 강건하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런 사람은 마음에 분별이 있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목회자가 영계를 모른다면 그것은 인생의 커다란 비극이며, 그리스도인이 영계를 모르는 것 또한 인생의 커다란 비극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 제가 욥 같은 사람일까요?” 저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제는 저도 요령이 생겨서 굳이 따지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아니라고 하면 저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화를 낼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디 욥과 같은 사람이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그는 병들기 전에도 욥이 아니었는데, 병든 후에 욥이 되겠습니까? 욥은 나았지만 그는 죽었고, 욥은 훗날 부유해졌지만 그는 가난해졌습니다. 돈을 다 병원에 갖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계가 얼마나 실재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성경은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은 영적인 일이니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미련하지 마십시오.

중국에서 한때 기공 열풍이 불었습니다. 기공으로 ‘얍!’ 하고 기를 발산하고는 머리 위에 벽돌을 얹어 놓고 큰 망치로 ‘쾅’ 하고 내리쳤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인체의 초능력이라며 기공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저희 시대에 핵폭탄과 미사일을 연구하던 대단히 똑똑한 대과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인체의 초능력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이것을 연구했지만 통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떨 때는 되고 어떨 때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왜 통제할 수 없을까요? 이것은 영적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것을 인간의 연구 따위로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미련해져서는 안 됩니다. 파룬궁 같은 것으로 병을 고쳤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로 낫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파룬궁을 전파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어째서 이 시대는 강력한 능력이 있는 복음을 믿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파룬궁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믿는단 말입니까? 저는 이것이 참으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세대에 중화권 사명 신학이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성경이 말씀하는 이 능력 있는 복음을 살아낼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훨씬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을 대할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영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저는 영계를 탐구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저를 택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도사(道士)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점을 치는 일에 관심도 많았고 갈망도 컸기 때문입니다. 훗날 목사가 되고 나서야 점술 역시 영계에 속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계속 탐구해 보았지만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에게 “깨달았습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깨달았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물리적, 화학적, 과학적 법칙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애를 쓰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가 알고자 애쓸지라도 알아내지 못했고, 위대한 과학자들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훗날 뉴턴은 신학을 연구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위대한 과학자가 왜 신학을 연구하는가? 길을 잘못 들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과학을 연구하다 보면 결국 영계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훗날 저는 해 위로 올라가 영적 세계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행사이구나!”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행사를 똑똑히 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바라보면 너무나 명확해집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하며, 성경은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합니다. 이 두 구절을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반복하는 이 내용을 여러분이 기억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의 《101 과정》은 위대한 발견이자 위대한 발명입니다. 문제는 아무도 제게 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들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며 특허를 낼 수도 없으니 그냥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치유와 축사의 이론적 기초인 《102 과정》이 있고, 치유와 축사 훈련인 《102 사역》도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우리 교회에 와서 말하기를, 다른 사명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사명 교회가 있단 말인가? 그곳 목사가 누구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매의 말로는 그 목사가 예전에 중화권 사명 신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하고 훈련받은 뒤 스스로 교회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는 헌금을 받습니까?”라고 묻자 “헌금을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매는 너무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매가 문제가 있어서 우리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몸에 병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다 나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명 신학도 참 대단하군요!”라고 했습니다. “치유와 축사를 할 줄 압니까?”라고 물으니 “네, 《101 과정》을 배워서 할 줄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냐고 묻자, 그 목사가 우리 고객센터 링크를 보내주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의 《101 과정》과 《102 과정》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다른 이가 사명 신학 교회를 하나 더 세웠다고 해서 개의치 않습니다. 세상에서 중화권 사명 신학을 마음껏 쓰십시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된다면 그것 역시 우리를 통해 흘러간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해 아래 머물지 말고 해 위에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전도서》 8장입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하므로 무슨 일이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나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쳐 줄 자가 누구이랴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8:6-14)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관찰한 바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요셉이 팔려 간 사건을 보고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요셉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죽은 것을 보면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혼란스럽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을 때 라반이 그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꾼 것을 보면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혼란스럽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똑똑히 보아야만 이해되며, 해 위로 뛰어올라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연구하려 하지 말고 영적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솔로몬이 제기한 이 질문들이 참으로 훌륭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도인 남회근(南懷瑾)이 금강경을 해설한 《금강경간독(金剛經解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물론 저는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고 자문만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에 있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보다 더 깊이 통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남회근만도 못하다니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리스도인이 해 아래에 갇혀 산다면 그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불계(佛系, 초탈한 태도)’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예계(耶系, 예수께 속한 태도)’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 속한 것은 불계보다 한 차원 더 높고 풍성합니다. 예수님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것을 통달하는 능력 있는 복음을 해 아래로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지에만 온통 관심을 쏟으며, 그가 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여깁니다. 그는 예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모르는 것입니까? 주일 설교 시간에 아무개 대통령이 당선되었네 마네 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혼란스러우며 영적인 맹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아직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아 혼란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해 아래에서 해 위로 달려가야 하며, 세상적인 영역에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적 세계는 너무나 오묘하고 심오하여 그것이야말로 참된 깊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지 마십시오. 더 이상 육적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어제도 우울증에서 치유받은 한 자매를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는 여전히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들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얼마나 더 겪어 보아야 꿰뚫어 볼 수 있겠습니까? 제 마음도 답답합니다. 하지만 그 자매에게 말할 때는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고 권면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볼수록 혼란스럽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이해하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국 복을 누리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욥이라고 생각하며 저에게 “제가 욥 같아 보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는 결국 죽을 때까지 욥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욥이라고 말해 준다면 그것은 속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명기》 28장을 깊이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암으로 죽었고, 또 다른 친한 목사 친구는 코로나로 죽었으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또 다른 그리스도인도 암으로 죽었습니다. 이들이 욥입니까? 질병 자체는 욥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욥보다 더 심했고, 애굽 사람에게 내리신 질병과 내리지 않으신 모든 질병이 그에게 임했는데도 자신을 욥이라고 여기니 비극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며 세상의 일들을 통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 병에 걸리겠습니까? 꿰뚫어 본 사람이 얽매이고 괴로워하겠습니까? 돈을 잃고 빚을 지며 암에 걸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 축복의 비밀을 쥐게 되고 저주의 비밀 또한 파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제가 간곡하게 여러분을 권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바라서가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본문 말씀

〈전도자의 말씀〉 여덟 번째 시간,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음”입니다. 성경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전도서》 8장 16절에서 17절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고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6-17)

이 말씀이 참으로 단호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 심령 깊숙이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 스트레스가 많고 혼란스러우며, 회사에서 궁중 암투극 같은 사내 정치를 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두십시오.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오늘 말씀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지혜를 얻고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따위의 책을 읽다가 본말이 전도되고 맙니다. 우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나모리 가즈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오늘 우리를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사 영적 세계 안의 모든 것이 실재함을 알게 하옵소서. 해 아래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림자에 불과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가 주님만을 굳게 붙잡게 하옵소서. 주님을 의지하여 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게 하시고, 평생토록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담대히 선포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로 모든 것을 통달하게 하시고 복음의 참된 유익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솔로몬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의 안목으로 왕위에 있던 수년 동안 이것저것을 연구했으나, 연구를 마치고 나서 수많은 예외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 내가 돈 버는 법칙을 찾았다!”라고 했는데 어떨 때는 통하고 어떨 때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다!”라고 했는데 어떨 때는 되고 어떨 때는 되지 않으며,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았다!”라고 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솔로몬은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언제까지 혼란스러워했을까요? 왕위에서 내려와 훗날 전도자가 되어 《전도서》 8장을 기록할 때까지였습니다. 해 아래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그 안의 이치를 다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솔로몬보다 후대 인물들인 노자, 손자, 맹자 등이 끊임없이 연구했지만 다 깨달았습니까? 그들도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어떤 왕조는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고 거시적·미시적 경제 조절도 하지 않았는데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중국 역사상 숭정제(崇禎帝)라는 황제는 대단히 근면 성실하여 주색잡기를 일절 멀리했지만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이 참으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도 깊은 혼란을 겪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일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나중에 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잘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솔로몬 역시 아무리 연구해도 밝혀낼 수 없음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러다 훗날 무엇을 결론으로 얻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한 일들을 보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어찌 저토록 괴롭힐 수 있단 말입니까? 시골 마을에 가면 남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훗날 괴롭힘을 당하던 집안의 아들이 돌아와 가족을 괴롭히던 자들을 다 죽여 버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지러운 일들을 보며 마음이 괴롭고 납득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해 아래에서 어떻게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축복과 저주라는 두 가지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훗날 탐구해 보았습니다. ‘어째서 요셉은 굳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야만 했을까? 그냥 애굽으로 곧장 특채되어 가면 안 되었을까? 바로 왕에게 편지를 써서 요셉에게 들려보내면 좋았을 텐데. “나 하나님의 종 야곱이 애굽의 바로 왕에게 편지하노니 내 아들 요셉을 받아 총리로 삼으라.”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면 바로 왕이 보고 “세상에, 하나님의 종 야곱이 내게 편지를 보냈으니 어찌 순종하지 않으랴!”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로다!”라고 감탄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이 이야기를 볼 때, 노예로 팔려 가고 감옥에 갇히는 과정을 보며 “하나님, 주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참 복잡하군요”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추천서 한 장으로 직행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사실 야곱과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해 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몰랐겠습니까? 이삭, 야곱, 요셉을 몰랐겠습니까? 다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세상의 무수한 일들을 보십시오. 날마다 재판을 열어 판결을 내리는데 사람들의 권모술수가 얼마나 많은지, 노년에 이르기까지 연구해도 다 깨닫지 못하다가 훗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전도자가 된 후 여러분에게도 이런 깨달음이 번개처럼 온다면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솔로몬은 어느 날 “아!” 하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아야 하는구나! 내가 과거에 그렇게 찾고 찾아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은, 아무리 신통하게 판결하는 지혜자라 할지라도, 요광효나 유백온, 제갈량이나 장량이 다시 살아온다 할지라도 결코 다 깨달을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구나.’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솔로몬은 8장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8장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도서 8:1)

이 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이 세상의 지혜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행사를 살펴 깨닫는 지혜이며 대단히 강력한 것입니다.

여러분, 제게 “사명 신학 이야기 좀 그만하고 교만해지지 마십시오”라고 권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전해야 합니다. 왜 전해야 할까요? 중화권 사명 신학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신학이며, 성경에서 그대로 가져온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영적인 지혜이므로,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하지만 세상 사람은 그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정립했습니다. 일하는 것이 은혜이고 섬기는 것이 은혜라는 등의 개념인데,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 말씀들을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이란 단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아직도 어떤 그리스도인이 제 설교를 듣고 “아니, 구원이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평생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 믿어 왔는데”라고 하십니까?

제 말을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산 자의 복음이지 죽은 자의 복음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연구하고 또 연구해 보니, 어떤 사람이 왕이 되면 손에 권력을 쥐게 되고, 권력이 있으면 온갖 결정을 내리는데 그 누구도 왕 앞에 나아가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따져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 앞에 가서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요?”라고 따졌다가는 내일 당장 목이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그 왕이 반드시 똑똑한 것도 아니고, 내리는 결정이 다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왕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지만 왕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회사에서도 여러분이 사장보다 똑똑할지라도 사장보다 둔한 척해야 월급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기세등등하게 사장 앞에 다가간다면 월급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왕은 옳게 행할 권리도, 그르게 행할 권리도 가지고 있으며, 여러분은 “무엇을 하느냐”고 따져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상관할 일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여러분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왕의 위에서 모든 일에는 정한 때와 판단(이치)이 있으며, 거기에는 무거운 짐도, 고난도,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그 누구도 생명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불로장생약을 연구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불가능합니다. 그런 것을 연구하려거든 차라리 그만두십시오. 오늘 우리 가운데 암 치료제를 연구하려는 분이 있다면 그것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약이 개발된다 해도 백신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또한 의인이 당하는 고난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인데 왜 저런 일이 닥쳤을까?’ 우리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로 들어가서 바라보면 단번에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설명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억지로 곧게 펴려 하지 마십시오. 애써 보아야 펴지지 않으며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국 복을 누리게 되므로,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들으셨다면 기본적으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되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은 영적인 일이다.” 이 땅은 헛되고 헛되며, 해 아래는 헛되고 헛됩니다. 그것은 영계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계로 들어가 영적인 법칙을 알지 못한다면 이 보물을 놓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닫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이 모든 일들을 밝히 알고자 한다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영적 세계를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지금 자기 자랑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저 역시 아직 부족합니다.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현상들을 굳이 사람의 생각으로 설명하려 해 봐야 소용이 없으니 설명하려 들지 마십시오. 그런 현상들은 하나님의 행사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이해한다면, 해 아래의 모든 의문이 풀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되면 얼굴의 사나운 기운과 분노가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도서 8:1)

여러분이 신령한 사람이라면 늘 분노하고 늘 갈등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이 여러분을 모욕해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데, 다 헛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1원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어릴 적 동요처럼 길가에서 1원을 주워 경찰관에게 갖다주었더니 경찰관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 사소한 일들이며 1원짜리 일에 불과합니다. 1원짜리 일 때문에 분노하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얼굴은 아름답게 빛나며 지혜로워집니다. 사물을 깊이 꿰뚫어 보니 표정도 고와집니다. 혼란스러울 때의 표정이 어떠합니까?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것이 오래되면 얼굴이 굳어지고 일그러집니다.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눈 사이가 멀어지듯 변합니다. 관상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여러분이 영적인 지혜를 얻으면 피부 관리 비용도 아낄 수 있습니다.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왕의 명령 또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정의를 구현해야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럴 필요도 없고 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잠시 억울한 일을 당한들 어떻습니까? 억울한 일을 겪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신령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다니엘처럼 바벨론 왕을 섬기고, 훗날 페르시아 왕을 섬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온 나라의 총리가 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때로 저는 사람들이 직장을 구할 때 상사를 가려 뽑으려 하지만, 가리든 가리지 않든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보기에는 좋은 상사 같아도 잘못 볼 수 있고, 정작 상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이는 “왕이 나를 억울하게 하면 어떡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억울하게 하면 어떡하냐고요? 성경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전도서 8:3)

발끈해서 “다시는 조언하나 봐라!” 하고 돌아서지 마십시오. 왕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다니엘이나 요셉 같은 인물들은 총리가 될 만한 지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셨기에 왕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자 굴에 던져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왕의 명령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바로 왕의 명령을 삼가 지키라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들은 상사와의 관계를 그르치는데 그것이야말로 비극 아닙니까? “나는 왜 이리 재수가 없어서 늘 이런 상사만 만날까?”라고 한탄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을 받은 사람은 잘 풀리기 마련입니다.

“왜 내게는 늘 불행한 일만 닥칠까요?” 여러분 자신이 불행을 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몰상식한 왕을 만났을까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니,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왕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행사이십니다.

온갖 일에는 때와 판단이 있음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 없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게 “목사님, 지금 제게 고난이 닥쳤는데 언제쯤 끝이 날까요?”라고 묻습니다. 묻지 마십시오! 제 말이 들리십니까? 묻지 마십시오! 묻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와 이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저주받은 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복을 받은 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날 갑자기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음을 알게 되었다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고, 언제 끝날지 묻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정한 때를 정해 두셨으니, 여러분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됩니다. 몇 년이나 걸릴까요? 요셉은 13년이었고, 다윗도 13년이었습니다. 요셉의 13년은 믿음으로 인내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짐작하건대 여러분은 그 13년을 감당하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도 아니고 요셉과도 그리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 3년 정도는 견뎌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13년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13년 후에 왕이 되었고, 13년 후에 총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까지 인내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이며, 보기에는 나쁜 일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세워 가시는 최고의 과정을 보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 잘 먹고 잘살 때는 믿음이 필요 없지만, 애굽에 팔려 갔을 때는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길 때는 믿음이 없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훈련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며, 안락함은 사람의 믿음을 죽게 만듭니다.

이 모든 훈련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선하며, 우리 눈에도 모든 것이 선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하신 이치, 정하신 때를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여러분을 높이사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훈련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없으며,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신뢰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장할 권한은 사람에게 없음

그 누구도 생명을 주장할 권한이 없으며, 장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점을 친다 한들 알 수 없으며 어떨 때는 맞고 어떨 때는 틀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 죽었다면 죽을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니, 하나님과 다투며 “하나님, 왜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까?”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었으니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제 아버지를 고쳐주지 않으셨습니까?” 죽을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며, 아무도 이 일을 통제할 수 없고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영적 싸움은 아무도 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예수님을 힘입어 사망을 이기고, 땅에서도 하늘에서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담대히 선포할 수 있습니까? “세상을 향해 나는 죽은 자요, 세상 또한 나를 향해 죽었노라.” 우리는 모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들이며, 더 이상 세상의 논리 체계 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억지 부리며 다투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생 안에 있는 자들인데 이 세상의 일에 얽매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행사를 살펴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덧입어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 죽으면 어디로 갔는지 몹시 알고 싶어 합니다. 제게 “목사님, 저희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습니까?”라고 묻기에 저는 “하늘로 가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달리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서방 극락으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어느 자매의 장례식에 어떤 사람을 불렀는데, 그는 매우 능숙하여 기독교식, 불교식 등 온갖 방식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게 기독교식 절차를 가르쳐 주더니 나중에는 “학을 타고 서쪽으로 가시어 동남동녀의 호위를 받으며 자손을 돌보소서” 하며 온갖 말을 다 쏟아냈습니다. 아무 소용없는 짓입니다.

저와 동행했던 친구가 “나도 저건 하겠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이런 장례식에 하도 많이 다녀서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저의 지식이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난데 그런 헛된 것을 배워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행사를 명확히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은 후에 신령한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통달하고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면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악인과 의인이 겪는 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때로는 악인이 악을 백 번이나 행하고도 장수하는 것을 보며 깊은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니 여러분이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겉보기에는 의인 같은 사람이 악인이 받을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폐암에 걸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니 혼란스럽습니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여러분,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아주 깊고 깊은 ‘혼란의 웅덩이’를 파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복과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과 의인이 겪는 이런 일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 여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영적 세계로 들어가서 바라보면 ‘아, 저 목사님이 암에 걸린 것은 결코 까닭 없는 일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며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며 분별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아, 이것은 저주이구나” 깨달았다면 속히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십시오. 생명을 주장할 권한이 없음을 보고, 악인과 의인이 겪는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그리하면 결국 반드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예전에 하나님을 저주하던 어떤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변을 보지 못하자 하나님을 저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주하면 소변이 더 나오지 않게 됩니다. 계속해서 저주하면 대변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더 저주하면 밥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며, 계속 저주하면 걷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욕하며 “이 빌어먹을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치게 만드느냐?”라며 하나님을 저주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국 반드시 복과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니, 하나님의 행사를 밝히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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