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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상 23장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2022-11-23 17,969 撒母耳记上 撒母耳记上23章 撒母耳记上第二十三章 命定 祭司 试验 蒙福

相关经文

撒母耳记上23章-大卫救基伊拉的居民
  • 1 有人告诉大卫说:“非利士人攻击基伊拉,抢夺禾场。”
  • 2 所以大卫求问耶和华说:“我去攻打那些非利士人可以不可以?”耶和华对大卫说:“你可以去攻打非利士人,拯救基伊拉。”
  • 3 跟随大卫的人对他说:“我们在犹大地这里尚且惧怕,何况往基伊拉去攻打非利士人的军旅呢?”
  • 4 大卫又求问耶和华。耶和华回答说:“你起身下基伊拉去,我必将非利士人交在你手里。”
  • 5 大卫和跟随他的人往基伊拉去,与非利士人打仗,大大杀败他们,又夺获他们的牲畜。这样,大卫救了基伊拉的居民。
  • 6 亚希米勒的儿子亚比亚他逃到基伊拉见大卫的时候,手里拿着以弗得。
  • 7 有人告诉扫罗说:“大卫到了基伊拉。”扫罗说:“他进了有门有闩的城,困闭在里头;这是 神将他交在我手里了。”
  • 8 于是扫罗招聚众民,要下去攻打基伊拉城,围困大卫和跟随他的人。
  • 9 大卫知道扫罗设计谋害他,就对祭司亚比亚他说:“将以弗得拿过来。”
  • 10 大卫祷告说:“耶和华以色列的 神啊,你仆人听真了扫罗要往基伊拉来,为我的缘故灭城。
  • 11 基伊拉人将我交在扫罗手里不交?扫罗照着你仆人所听的话下来不下来?耶和华以色列的 神啊,求你指示仆人!”耶和华说:“扫罗必下来。”
  • 12 大卫又说:“基伊拉人将我和跟随我的人交在扫罗手里不交?”耶和华说:“必交出来。”
  • 13 大卫和跟随他的约有六百人,就起身出了基伊拉,往他们所能往的地方去。有人告诉扫罗,大卫离开基伊拉逃走;于是扫罗不出来了。
  • 14 大卫住在旷野的山寨里,常在西弗旷野的山地。扫罗天天寻索大卫, 神却不将大卫交在他手里。
  • 15 大卫知道扫罗出来寻索他的命。那时,他住在西弗旷野的树林里;
  • 16 扫罗的儿子约拿单起身,往那树林里去见大卫,使他倚靠 神得以坚固,
  • 17 对他说:“不要惧怕!我父扫罗的手必不加害于你;你必作以色列的王,我也作你的宰相。这事我父扫罗知道了。”
  • 18 于是二人在耶和华面前立约。大卫仍住在树林里,约拿单回家去了。
  • 19 西弗人上到基比亚见扫罗,说:“大卫不是在我们那里的树林里山寨中、旷野南边的哈基拉山藏着吗?
  • 20 王啊,请你随你的心愿下来,我们必亲自将他交在王的手里。”
  • 21 扫罗说:“愿耶和华赐福与你们,因你们顾恤我。
  • 22 请你们回去,再确实查明他的住处和行踪,是谁看见他在那里,因为我听见人说他甚狡猾。
  • 23 所以要看准他藏匿的地方,回来据实地告诉我,我就与你们同去。他若在犹大的境内,我必从千门万户中搜出他来。”
  • 24 西弗人就起身,在扫罗以先往西弗去。大卫和跟随他的人却在玛云旷野南边的亚拉巴。
  • 25 扫罗和跟随他的人去寻找大卫;有人告诉大卫,他就下到磐石,住在玛云的旷野。扫罗听见,便在玛云的旷野追赶大卫。
  • 26 扫罗在山这边走,大卫和跟随他的人在山那边走。大卫急忙躲避扫罗;因为扫罗和跟随他的人,四面围住大卫和跟随他的人,要拿获他们。
  • 27 忽有使者来报告扫罗说:“非利士人犯境抢掠,请王快快回去!”
  • 28 于是扫罗不追赶大卫,回去攻打非利士人。因此那地方名叫西拉·哈玛希罗结。
  • 29 大卫从那里上去,住在隐·基底的山寨里。

《答疑解惑》

一、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한다

  1.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과정에서도 블레셋 사람을 공격해도 되는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다윗은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려면 때로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전쟁을 치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二、하나님께서는 원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에 넘기신다

  1.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해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임을 선택하셨고, 원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三、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에봇이 아니다

  1. 다윗에게도 에봇이 있었고 사울에게도 에봇이 있었습니다. 에봇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지 아닌지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가장 크게 가로막히는 이유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방식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四、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신다

  1.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신 것은 다윗이 사울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했기 때문입니다.
  2. 사울도 기도했고 에봇도 가지고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늘 일이 틀어졌고 하는 일마다 꼬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3.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사람을 목양하는 것을 배우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五、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1.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평생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고, 평생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핵심 단어

목양 하나님의 주권 에봇 하나님의 시험 자기 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2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모두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이야기의 배후에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아야 합니다. 이 장을 보면 다윗도 하나님께 물었고 사울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모두가 꽤 좋은 사람들처럼 보이고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읽고 나면 결말이 서로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의 주제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로 정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의 결말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한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므로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라. (《사무엘상》 23:1-2)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하여 타작마당을 약탈할 때, 다윗은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방이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했습니다. 한번 행방이 알려지면 사울이 즉시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그를 없애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여호와께 그일라를 공격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보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받은 성읍은 사울이 관리하는 곳이었고, 도망 중인 다윗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사람은 대단했습니다. 어떤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게 하셨고, 다윗 자신도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왕이 되지 않았지만, 왕의 자리는 이미 그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하나님께 물은 것은 어떻게 숨어서 사울의 추격을 피할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과 약탈로 위기에 처한 그일라 백성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나님께 물었을 때 그의 부하들 중에는 그와 같은 편에 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공격하라고 하셨으니 가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려고 해도 부하들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혼자서 적과 싸우러 가야 한단 말입니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매우 난처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라면 아마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라는 사람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윗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블레셋 사람을 공격하여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고 벌집을 쑤신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하니라. (《사무엘상》 23:3)

성을 공격하고 영토를 빼앗는 일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바깥을 다시 포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팎으로 포위되면 다윗의 육백 명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방을 드러낼 뿐 아니라, 말 그대로 양을 호랑이 굴에 집어넣는 것과 같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윗의 지도자로서의 판단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려면 때로는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와 함께 죽으러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자신과 함께 가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물으니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무찌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사무엘상》 23:4-5)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다윗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다윗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일의 이해득실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다윗의 능력이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께 달려 있고,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결코 부하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했고, 그의 생각과 뜻은 이 사람들에게 결코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할 뿐이지, 다윗은 자신의 생각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제게도 다윗의 이런 “느낌”이 조금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됩니다. 저는 이 “냄새나는 두부”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 역시 냄새나는 두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냄새나는 두부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냄새나는 두부가 되면, 그때부터 냄새나는 두부가 향기로운 두부로 변합니다.

보통 사람은 다윗이 구한 일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건도 허락되지 않았고 상식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괜찮았겠지만, 일단 소식이 전해지고 나면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내려놓든지, 아니면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든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어리석게 하는 일은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이리저리 자신을 보호하다가 결국 암이나 강직성 척추염이나 마비를 얻기도 합니다. 정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조건이 허락하든 허락하지 않든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여전히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틀어 놓는 찬양의 제목은 《여호와께서 왕으로 좌정하셨네》입니다. 이 찬양은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홍수가 범람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왕으로 좌정해 계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일이 생기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으로 좌정해 계신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비극입니다.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하면서도, 블레셋 사람을 공격해도 되는지 하나님께 물은 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면 즉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묻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셨는데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묻지 않든지, 아니면 아예 이 소식을 듣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할 것인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세워 갈 때에는 자주 시험을 만납니다. 이 사람을 축복할 것인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인지, 혹은 그를 섬길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모두 매우 중요한 결정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행할 것인지이며, 하나님께 구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생사 문제가 제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마치 “자랑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손해 보는 일이 눈앞에 놓였을 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 손해를 보거나 대가를 치르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십니다. 일이 눈앞에 놓이면 분명히 갈등이 생깁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앞으로 나아가기를 정말 잘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가축이 생기면 고기도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다윗은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기실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믿고 그대로 행하자 정말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기도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이 사울이 나의 일로 말미암아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려 한다 함을 확실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사울이 주의 종이 들은 바와 같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알려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육백 명쯤 되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사무엘상》 23:10-13)

다윗은 승리하여 그일라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사울에게 소식을 전했고, 사울은 급히 성을 포위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다윗이 구한 것은 사울이 자신 때문에 성을 멸망시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사를 염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놉의 제사장 일가가 다윗 때문에 모두 사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에게 멸망당하지 않은 그일라 성의 사람들이 다윗 때문에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반드시 다윗을 사울에게 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습니다. 사람에게서 어떤 유익을 얻으려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육백 명을 데리고 그일라를 떠났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이렇게 은혜를 저버릴 수 있느냐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구합니다. 그일라에서 유익을 얻은 것은 단지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었고, 다윗은 그 일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에 넘기신다

여러분, 한 가지를 깊이 기억하십시오.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으면 무엇을 구해도 소용이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구하면 무엇이든 효력이 있습니다. 제가 중국인 사명 신학을 세운 이유도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의 기도를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원래 다니던 교회에서 십 년, 이십 년 동안 기도했는데도 병이 여전히 그대로이고 아무 변화가 없었던 것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선한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사람이 병든다는 말은 참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은 사람들은 매우 신기하게 느낍니다. 이것은 이곳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기도를 들으실지 듣지 않으실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에 넘기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왜 패배했을까요?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쉽게 무너질 사람들이 아니었고, 다윗이 데리고 있던 육백 명도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물리친 것은 육백 명이 얼마나 강했는지와 크게 관계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일하는 방식이 너무 손해를 본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보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에 넘기십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일라의 가축을 빼앗고 그곳 주민을 구원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두려워하는 사람인지, 혹은 자신의 욕망을 구하는 사람인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시험하신 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셨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눈앞에 놓인 일을 두고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일도 잘합니다. 그런데 일을 마칠 때마다 돈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속으로 돈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짜 돈을 받아 하나님께 헌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제사장은 일을 해서 돈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은 장사를 해서는 안 되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다윗처럼 시험을 받는 일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등한 후에야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 시대를 축복하러 가야지, 이 시대의 돈을 벌러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기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먼저 자신을 위해 1억이라는 작은 목표를 세우면 문제가 됩니다. 저는 돈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시끄럽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참 대단하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돈을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불편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축복하는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원수를 제 손에 넘기셨습니다. 섬김이 필요한 교회의 사람이 있다면 저는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전에 어떤 목회자가 제게 암에 걸린 교인을 섬길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암 환자가 직접 저를 찾아왔다면 저는 반드시 섬겼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저를 찾아왔기 때문에 저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들의 교회 교인이라면 제가 한 시간 섬기고, 목회자인 당신도 함께 한 시간 동역하십시오. 한 시간씩, 일대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헌금은 당신이 받고 제게 돈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어떻게 섬기는지 보고, 그다음부터는 당신이 그대로 섬기면 됩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는 이 말을 듣자 물러섰습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시간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교회 사람을 섬길 시간은 있으면서 자기 교인을 섬길 시간은 없다니, 이런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바쁜 것입니다.

사실 제가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은 모두 제 것입니다. 제가 손해 보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합하면 전쟁을 마친 후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와 원수를 이긴 것이며, 마귀는 얌전히 돈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중국인 사명 신학은 한 가지 법칙을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십니다. 원수를 물리치면 원수가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당신의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제가 돈을 매우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온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재정과 건강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자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재정도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귀신 하나를 쫓아내면 상 하나를 받고, 또 귀신 하나를 쫓아내면 하나님께서 다시 상을 주십니다. 원래 제사장의 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당시 다윗의 곡식 창고에 곡식이 곧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바탕 일을 연출하여 다윗이 이 전쟁을 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하게 하시고, 다윗에게도 그일라로 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대로 행하자 전쟁에서 이기고 상을 얻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자 군대 전체를 먹이고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생 부족함이 없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돈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해방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돈을 보내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귀신이 돈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내미실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돈을 보내 주신다는 말만 듣고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앞의 조건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의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왔더라. (《사무엘상》 23:6)

앞 장에서 이미 아비아달이 그일라로 도망하여 다윗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더 많은 세부 사항을 알려 줍니다. 아비아달은 바로 이때 다윗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핵심이 에봇이나 언약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나 성찬, 그 떡과 잔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고 계략을 꾸민 것을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였더라. (《사무엘상》 23:9)

여러분, 이 부분을 읽고 절대 잘못 이해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에봇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전에는 에봇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다윗이 에봇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지금 에봇이 있으니 가져와 기도함으로써 에봇을 존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에봇이 있는데도 가져와 기도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 됩니다. 다윗이 기도한 후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반드시 내려올 것이며 그일라 사람들도 반드시 다윗을 넘겨줄 것이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때 사울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되 “다윗이 그일라에 이르렀다” 하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가 갇혔도다” 하니라. (《사무엘상》 23:7)

복음주의든 은사주의든 다른 교파든, 우리 중국인 사명 신학을 포함하여 모두 하나님께서 원수를 우리의 손에 넘기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울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매우 높이 내세웠지만, 그의 본질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이미 폐위되었고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쓸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다 붙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고, 어떤 사람은 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 석사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한 가지 사실,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사울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신속하게 즉시 달려갔다면 다윗을 추격하여 죽이는 일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유도 모른 채 지체했습니다. 계속 지체하다가 다윗이 육백 명을 데리고 그일라를 떠날 때까지도 사울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사울이 올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윗에게 정보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진영에 있는 한 사람을 감동하셔서 다윗에게 사울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천사가 사람으로 변장하여 그일라로 와서 다윗에게 알려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에 있습니다. 사울의 손에도 에봇이 있었고 다윗의 손에도 에봇이 있었습니다. 에봇만 가지고 따지면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사울의 기도는 효력이 없었지만 다윗의 기도는 효력이 있었습니다. 차이는 에봇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당신도 교회를 세우고 나도 교회를 세우는데, 왜 내가 교회를 세우면 기도가 응답됩니까? 여러분, 제가 자랑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그런 일입니다. 저는 단지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차이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핵심입니다.

에봇이 효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에봇을 생산하는 사업을 하면 분명 매우 바쁠 것입니다. 타오바오에 올려서 하루에 열 벌만 팔아도 순식간에 10만 위안이 됩니다. 에봇을 싸게 팔 수는 없으니 적어도 한 벌에 1만 위안은 받아야 합니다. 원가는 대략 100위안 정도일 테니 99%의 이익입니다. 사람들이 이 기업이 에봇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5천만 달러의 벤처 투자금이 들어올 것입니다. 사업을 강하게 키우고 크게 만들어 전 세계가 에봇을 사게 한다면 정말 대단할 것입니다. 자금 조달을 하고 상장한 다음 곧바로 현금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봇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복제하기가 매우 어렵고, 복제할 수도 없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여러분의 머릿속에 그대로 복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좋은 습관을 기르기를 권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면 에봇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자기 방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면 됩니다.

어떤 동역자들은 제 앞에 와서 많은 말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어느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즉시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막힙니다. 한참을 말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을 열자마자 이 사람은 얼마나 대단하고 저 사람은 대단하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선생님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어떻게 말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손해를 보는 일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선택하셨고 이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주셨는데, 여전히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면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신다

다윗은 광야의 요새에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있었더니 사울이 매일 다윗을 찾되 하나님이 그를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사무엘상》 23:14)

사울은 산 이쪽으로 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무엘상》 23:26)

사울은 그일라에 도착한 후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이후 사울은 계속해서 사방으로 다윗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산 이쪽으로 가고 다윗은 산 저쪽으로 갔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울의 손에도 아마 에봇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다윗을 자신의 손에 넘겨 달라고 구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그곳에 도착한 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넘기시려는 뜻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사울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과 싸웠다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승리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러 왔으니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것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형편없는지를 겨루는 시대였습니다. 다윗보다 더 형편없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기도도 소용없고 무엇을 해도 소용없는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2023년에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디서부터 무너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서로 누가 더 버틸 수 있는지를 겨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다투고 빼앗고 분투합니다. 마치 바둑을 둘 때 공격과 방어 사이에서 양보하지 않고 서로 얽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차이는 한 집의 여유에 있습니다. 누가 실력이 부족한지, 누가 숨이 짧은지 겨루는 것입니다. 숨이 짧은 사람이 먼저 무너지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신 것은 다윗이 사울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에게는 다윗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면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여러 교회가 함께 경쟁한다고 해도 우리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경쟁할 때 우리가 누구의 “양”을 빼앗지는 않지만, “양”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일부러 문을 열어 그들이 들어오게 하기도 합니다. 너무 굶주린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정말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들어와 살이 찌면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교회든 중국인 사명 신학을 만나면 상당히 힘들어질 것입니다. 저는 다른 교회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일부러 자주 물러서고 앞장서지 않습니다.

전에 어떤 목회자의 자녀가 암에 걸린 적이 있었고, 저는 그 목회자와 함께 그 아이를 섬겼습니다. 처음부터 그 목회자에게 그들의 교회 교인들이 우리와 접촉하지 않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매우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지만, 당시 그는 자신만만했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말 난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뒤에서 저를 비난하며 제가 자신의 “양”을 빼앗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계속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이지 않았고, 그 “양”들은 굶어 비쩍 말라 있었습니다. 우리를 만나자 조금이라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할 때도 거듭 말합니다. 당신이 목회자라면 이런 난처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나중에 뒤에서 저를 욕하면 제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양”이 떠날까 두렵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목회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목회자가 되기를 고집한다면, 사람들과 누가 더 형편없는지를 겨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한 목회자를 만났을 때 분명 매우 난처해질 것입니다.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길은 하나뿐입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양”을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곳곳에 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자가 되려면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울이 만난 상대는 다윗이었습니다. 사울도 기도했고 하나님의 이름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 부족했습니다. 문제는 사울이 다윗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겹겹이 포위했는데도, 다윗을 먼저 없애고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신속하게 다윗을 죽였다면 후환을 없애고 더 이상 다윗 때문에 골치 아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급히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여 탈취하나이다. 왕은 속히 가소서!” 하니라. (《사무엘상》 23:27)

성경에는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사람으로 변장시켜 사울에게 알려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 일이 일어나 사울의 공격이 무산되었습니다. 다윗을 거의 없앨 뻔했지만 마지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마지막 한 걸음만 남겨 두고 일이 “황”이 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이 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틀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땅 위의 모든 사업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당신에게 이치가 있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인 사명 신학에 온 지 사오 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겉모습만 갖추었다면 성장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했을 것입니다. 에봇도 하나 마련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일에서는 아직 부족합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습니다. 저의 목양이든, 중국인 사명 신학의 체계든, 101 과정이든, 《창세기》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일이 없다면 기초를 배우지 못한 것이며 모두 헛되게 배운 것입니다!

제 말을 한마디 권면으로 들으십시오. 일을 할 때 계속 일이 틀어진다면, 자신 안에 여전히 사울의 “느낌”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마지막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신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핵심 이익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일이 틀어질까요? 본질적으로 아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여전히 목숨을 아끼고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평생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많은 시험이 있을 수 있지만, 매번의 시험에서 하나님 앞에 만점을 받으십시오. 만점을 받을 수 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노력하여 합격점이라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가지 시험을 겪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어떤 시험이 우리 앞에 닥쳐와도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 모든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가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저버린다 해도 나는 결코 세상 모든 사람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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