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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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03章-新约的执事
  • 1 我们岂是又举荐自己吗?岂像别人用人的荐信给你们或用你们的荐信给人吗?
  • 2 你们就是我们的荐信,写在我们的心里,被众人所知道所念诵的。
  • 3 你们明显是基督的信,藉着我们修成的。不是用墨写的,乃是用永生 神的灵写的;不是写在石版上,乃是写在心版上。
  • 4 我们因基督,所以在 神面前才有这样的信心。
  • 5 并不是我们凭自己能承担什么事;我们所能承担的,乃是出于 神。
  • 6 他叫我们能承当这新约的执事,不是凭着字句,乃是凭着精意;因为那字句是叫人死,精意(或译:圣灵)是叫人活。
  • 7 那用字刻在石头上属死的职事尚且有荣光,甚至以色列人因摩西面上的荣光,不能定睛看他的脸;这荣光原是渐渐退去的,
  • 8 何况那属灵的职事岂不更有荣光吗?
  • 9 若是定罪的职事有荣光,那称义的职事荣光就越发大了。
  • 10 那从前有荣光的,因这极大的荣光就算不得有荣光了;
  • 11 若那废掉的有荣光,这长存的就更有荣光了。
  • 12 我们既有这样的盼望,就大胆讲说,
  • 13 不像摩西将帕子蒙在脸上,叫以色列人不能定睛看到那将废者的结局。
  • 14 但他们的心地刚硬,直到今日诵读旧约的时候,这帕子还没有揭去。这帕子在基督里已经废去了。
  • 15 然而直到今日,每逢诵读摩西书的时候,帕子还在他们心上。
  • 16 但他们的心几时归向主,帕子就几时除去了。
  • 17 主就是那灵;主的灵在哪里,那里就得以自由。
  • 18 我们众人既然敞着脸得以看见主的荣光,好像从镜子里返照,就变成主的形状,荣上加荣,如同从主的灵变成的。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비행기를 탔을 때, 옆자리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앉으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목사라는 고된 일을 내려놓고 이제 사업을 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농담이었는지 아니면 진솔한 자기 고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목회자라는 직업이 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첫 번째는 미국 대통령이고, 두 번째가 목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쩌다가 이렇게 좋은 일을 망쳐버렸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얻는 것이며,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새 언약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하나님을 위해 아주 성공적인 ‘홍보’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없이 좋은 일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섬김에 참여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이 참으로 큰 영광이 있는 직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더없이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면 어떤 좋은 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며, 사실 여러분은 이 세상 최고의 보스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린도후서》 2:17)

많은 이들이 수긍하지 못하고, 바울에게 ‘어떻게 너만 옳다고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을 쓰면서 이것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새 언약의 일꾼임을 논증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하나님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비참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붙들어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우리가 더 많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라 (《고린도후서》 3:6)

새 언약의 일꾼은 조문(글자)으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목사 자격증을 발급해 주었거나 누군가가 어떻게 하라고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영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사람을 죽이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복음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늘 자신이 과거에 많은 죄를 지었고 걸핏하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며, 자신에게 저주가 깊을까 봐 걱정합니다. 사실 축복은 저주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이 직분은 사람을 죽이는 직분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정신없이 찌들어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중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의 평생에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것은 사람들을 섬겨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광으로 가득한 이 섬김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물론 피곤함을 따지자면 정말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새 언약의 일꾼을 감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단지 지금은 아직 훈련이 덜 되어 영적인 갓난아이와 같을 뿐이니, 이때에는 힘써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훌륭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기쁜 마음으로 행하면 상을 얻을 것이요,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직분은 이미 맡겨진 것입니다. 바울은 매우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기에, 일단 자신에게 맡겨지면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는 것을 대단히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사실 저는 어떤 일을 하든 매우 즐겁게 감당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학생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매일 학교에 가야 합니다. 좋아하며 다니는 학생은 칭찬과 상을 받지만, 싫어하며 다니는 학생은 매일이 괴롭습니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면 기쁘게 일할 수 있지만, 싫어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찌들어 일하게 됩니다. 남들이 당신을 못마땅해하는 동시에 당신 역시 그 일을 못마땅해하며 매우 고통스럽게 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일을 잘 해내고 기쁘게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제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어떤 일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해내며 누릴 수 있다면 참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성경공부 모임에 오는 것은 교회가 여러분의 참석과 필기를 절실히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성경공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성경공부에 왔는데 더 이상 뭘 바라느냐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아예 오지 않아도 되고 저 역시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새 언약의 일꾼을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바울이 여기서 자신을 가리켜 말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승리하지 못하는 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우리는 최근 맘몬의 영을 대적하여 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맘몬의 영에 얽매이게 되면 참으로 비참해집니다. 겉보기에는 다 좋아 보이지만 함정을 파고 그 안에 빠져버리면 대단히 비참해집니다.

2. 이것은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입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고린도후서》 3:7-11)

돌에 글자를 새겼던 모세의 직분도 영광이 있었고, 그 영광은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즉 돌에 새긴 죽게 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는데, 영의 직분에는 하물며 더 큰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섬기면서 수많은 간증을 보고 있습니다. 매주 주일에 나누는 15분짜리 간증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이러한 간증이 넘치는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정죄의 직분, 즉 모세의 기록에서 누가 무엇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롭게 하는 직분의 영광은 더욱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님을 섬길 기회를 주신 것은 참으로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입니다.

사람을 죽게 하는 것에도 영광이 있었는데, 사람을 살리는 것에는 더욱 큰 영광이 있습니다. 과거에 영광이 있었던 모세 시대에 세운 옛 언약은, 새 언약의 지극히 큰 영광에 비하면 영광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세가 세상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광은 결코 비교조차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없어질 것에도 영광이 있었는데, 길이 있을 것에는 더욱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세계에서 이미 넉넉히 이겼습니다. 늙은 말이든 맘몬의 영이든 마귀 사탄이든,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승리합니다.

만약 힘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힘이 강건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시간조차 없다면, 그것은 ‘죽을 시간은 있어도 살 시간은 없다’는 꼴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당연히 능력이 없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시도해 보면 힘을 얻게 됩니다. 길이 남아 있는 것에는 더 큰 영광이 있고, 이 영의 직분에는 더 큰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영적 세계에서 이미 넉넉히 승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짧은 수십 년이 아니라, 영원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너무 연약해져서 기도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죽을 시간은 있고 살 시간은 없는’ 상태입니다. 입만 열면 머릿속에 온통 정죄하는 직분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사람을 살리는 직분입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여러분을 섬기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며, 때로 여러분을 내치고 싶다고 말한다 해도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은 칭찬받을 만하고 기뻐할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적인 축복과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지만, 사람들은 이 영적인 권세를 쥐고 사용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이 바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의 시험에 불과하며,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신뢰하기로 선택하는지 자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능력만 의지한다면 인생길을 걸어갈 수 없으며, 멸망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설령 이제 막 주님을 믿기 시작했더라도 이것이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임을 알고 이 길을 향해 곧장 달려가야 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바쁘게 살다가 하나님마저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귀신이 손을 쓸 때 아무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하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사실 누구나 바쁘게 살아보았고, 바쁜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의 일 역시 보통으로 바빴던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단 하나도 빠짐이 없었습니다. 훗날 저는 재정적 위기나 환난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평안히 지나올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생의 위기는 한두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기를 갈망했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갈망했습니다. 훗날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 비록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저는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살아가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광으로 가득 찬 사역이자 영광으로 가득 찬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극히 큰 은혜임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하나님이 없다면, 귀신이 여러분을 공격할 때 무엇으로 대적하겠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모든 방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내리고 제가 전하는 말을 믿으십시오.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이 직분을 결코 가볍게 내려놓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그저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가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역 하나를 하면서도 스스로 지쳐 녹초가 된다면 그 역시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차라리 안 하면 안 했지, 조금이라도 한다면 일을 제대로 해내어 엑스트라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직분이 되지 못합니다. 교회의 목사나 교구장, 혹은 작은 목회자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반드시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돌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3.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7-18)

중화권 사명신학은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바로 구원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시야를 넓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뜻을 이루실 것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며, 바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빚 독촉을 받거나 투기에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맘몬의 지배 아래 있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재물이나 사업, 직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바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공부에 참석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토록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 모든 문제의 해답이시며 돈은 결코 해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게 살아갑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이 매우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떠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는데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수고하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간증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만 소망을 둔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추구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죄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크게 필요치 않으시며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바빠지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일에 바쁘다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옛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이 역사 속에서 하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에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생활 속의 사소한 일들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주하게 쫓기듯 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대단히 효율적인 하나님이시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온종일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는 문제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것은 고린도 사람들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며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변화를 입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자유 안에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퇴근 시간만 되면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 사장이 물어보자 저녁에 일정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교회에 와서 우울증에 걸린 한 자매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 3개월 연속으로 섬겼습니다. 그녀 역시 사장의 눈 밖에 날 수 있음을 알았고, 사장도 그런 직원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연봉 협상 때가 되자 사장은 그 일을 잊어버리고 그 자매의 업무 성과를 좋게 평가하여 오히려 월급을 올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소한 일 하나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장으로 하여금 당신을 싫어하게 하신다면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사장으로 하여금 당신을 좋아하게 하신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절 저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걸어왔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섬기러 왔는데, 다들 세를 들어 살았기에 집에서는 사역을 할 수 없어 매번 막차를 타고 귀가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일부 형제자매들이 아예 당시 시내 중심가에 있던 교회 근처로 방을 얻었으며, 월세가 비싸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섬겼을까요?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형상을 이루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그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 그렇게 큰 추구는 없고, 나중에 천국에 가서 청소나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천국에는 청소할 쓰레기가 없습니다. 청소를 한다면 그런 사람부터 쓸어내 버릴 것이니 비극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는 원래 쓰레기가 없으나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면 비로소 쓰레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갈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섬김이라는 말을 듣고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오늘 섬기기로 마음먹으면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려 듭니다. 마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다리를 놓겠다고 덤볐다가 다리가 무너져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부터 제대로 훈련받고 여러분의 목회자와 함께 섬기는 법을 배우십시오. 얼마 전 제가 섬겼던 그 자매는 머릿속에 온통 직장 일에 대한 염려뿐이었습니다. 저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있지만, 일이라는 것 자체에는 영광이 없습니다. 물론 일을 잘 해내야겠지만, 일에 찌들어 정신없이 사는 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점점 더 닮아간다면 거울 속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살펴보십시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보입니까? 사도 바울에게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동역자들까지 부양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만 사는 것은 무의미하며, 꼴불견으로 살면서 심하게 얽매이고 분주하게 사는 것은 전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분주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런 결단과 믿음이 없을 뿐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기를 갈망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얽매일 수 없고, 지혜가 없을 수 없으며, 마귀 같거나 꼴불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세금을 거두러 왔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으라고 하셨고, 물고기가 스스로 뭍으로 올라와 베드로에게 잡혔습니다. 물고기 입을 벌려보니 은전 한 세겔이 나와 예수님과 베드로의 인두세를 딱 맞추어 냈습니다. 그 시대에는 세금을 그렇게 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떤 좋은 것도 부족함이 없으나, 직장과 사업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느 날 무슨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눌 간증은 아직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직장 가운데 자주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이는 업무가 매우 수월하여 퇴근 후 교회에 와서 섬기며, 직장 업무에도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일도 훌륭히 해내고 큰 기여를 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있다면 결코 비참하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4. 모세의 옛 언약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고린도후서》 3:12-16)

구약의 모세를 언급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모세가 가져온 율법은 새 언약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영광이 있었지만 그것은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모세가 얼굴의 수건을 벗지 못한 이유는, 벗으면 들통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산에서 막 내려왔을 때는 하나님과 사십 주야를 함께 머물렀기에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쓴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광채가 사라졌음에도 수건을 벗을 수 없었는데, 모세가 쓰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벗어버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굴의 광채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을 것이고, 이어서 모세의 능력이 떨어졌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 언약이 영광으로 가득한 섬김이자 직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얼굴에 있던 영광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얼굴의 수건을 나중에 벗지 못한 것은, 영광이 있을 때는 백성들이 영광을 볼까 두려워했고 영광이 사라졌을 때는 수건을 벗으면 부끄러울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난처하고 얽매인 상태가 된 것입니다. 주님을 이렇게 괴롭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 수건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마음 판에 덮여 있습니다. 오늘 이 수건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영광이 있다면 담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품고 섬겨야 하며,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수건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폐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품고 담대히 말합니다.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의 이 부분은 야고보 일행을 겨냥하여 쓴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모세의 옛 언약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야고보가 모세의 율법을 몹시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모세의 율법을 건드린다면 그는 결사적으로 덤벼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모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옛 언약이 예언했던 그림자를 이미 성취하셨으며, 참된 실체는 바로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이미 자유를 얻었으므로, 우리 몸에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모세의 옛 언약이 폐하여졌다고 할 때, 많은 이들이 옛 언약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훨씬 높으며 새 언약이야말로 능력과 영광과 은혜입니다. 새 언약의 영광은 옛 언약의 영광을 훨씬 뛰어넘으며, 새 언약의 기준은 옛 언약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여러분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요구한 것은 소와 양을 바쳐 죄를 담당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바칩니다. 그렇다면 시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모든 시간의 총합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옛 언약은 수건을 쓴 언약이어서 참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없었고, 보게 되면 걸려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헌신은 소나 양을 끌고 오는 것도 아니고, 메추라기 떼를 모아 드리는 것도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요구를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논리에 따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남겨둘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직장 일도 당연히 문제없을 것이며, 사장이 여러분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장을 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우리가 왜 돈을 사랑하거나 직장에 연연해야 합니까? 그것은 한낱 재물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입니다.

모세의 시스템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지만, 십계명이라는 마지노선을 그어놓았습니다. 반면 새 언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하셨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승리의 길을 달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광으로 가득한 이 직분을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보배로운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저의 모든 것이며, 저의 생명이고, 저의 사명이며,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아내어 하나님의 영광이 제 삶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잃을 뻔한 위기 속에서도 저는 결코 저의 섬김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섬김은 저의 목숨이고 하나님은 저의 생명이지만, 직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몹시 비참했을 것입니다. 이 말이 여러분의 귀에 들어옵니까? 얼마 전 한 노자매님이 저를 따르면서 많은 복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고향 집이 오랫동안 세가 나가지 않았는데, 제가 직접 그녀를 양육한 이후로 그 집에 세입자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입자 하나를 보내시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디서 세입자가 왔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 언약이 능력으로 가득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입자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시고 여러분의 사장 하나 주관하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직분을 새롭게 정립하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려거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예언 하나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많은 섬김을 내려놓았을 때, 만약 하나님께서 여전히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횅하니 비어 몹시 괴롭고 힘들 것입니다. 마치 사명을 잃어버린 것 같을 것이며,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압니다.

5.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후서》 3:4-5)

여러분이 직장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요, 섬김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니 결코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능력 위주로 살아간다면 매우 비참해집니다. 저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오늘날까지도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능력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압니다. 섬김마저 자신을 중심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매우 고달픈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알게 될 것이며, 점차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시고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농담조로 말합니다. “당신은 바벨론의 총리 다니엘이나 애굽의 총리 요셉보다 더 바쁩니까? 다니엘은 127개 도를 다스리면서도 바쁘지 않았는데, 당신은 그보다 지극히 작은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그렇게까지 바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바쁜 이유는 뼛속 깊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만을 믿기 때문에 기를 쓰고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끄는 한 작은 목회자는 최근 수백만 위안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 수주를 따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며 반드시 매우 고달프게 살게 됩니다.

이 작은 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교회에 오기 전 사업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찌들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지금 이렇게 섬김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며, 그의 사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하던 일은 주문을 따내어 프로젝트를 끝마쳐도 돈을 받지 못해 온종일 빚 독촉을 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프로젝트도 삐걱거리고, 문제가 생길 법한 곳에서도 터지고 안 생길 법한 곳에서도 터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수주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 대부분이 매우 순조롭습니다. 만약 믿기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요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섬김에는 비록 눈물과 땀이 따랐지만,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바울을 위해 이루어 주셨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는 바울이 어떻게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 앞서 크나큰 위로를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가운데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들, 빚을 진 분들, 혹은 너무나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자유를 얻고, 돈을 사랑하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직장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데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6. 여러분 고린도 사람들은 우리의 추천서입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후서》 3:1-3)

바울의 뜻은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간증이며,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일하심은 더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많은 일들이 실로 매우 신기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신기한 일들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죽은 자가 살아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바울은 여러분 고린도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추천서이며, 이 추천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 쓰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어난 신기한 일들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영광을 품고 영광으로 가득한 우리의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걸렸거나 죽을병에 걸렸을 수도 있고, 사업에서 큰돈을 날리고 심하게 사기를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맡은 후 하나씩 하나씩 회복되고 역전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관점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무엇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자매를 만났는데 십일조나 헌금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몹시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면 수많은 간증이 따를 것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섬기면 그 사람이 변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변화는 제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주신 덕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은 바칠 수 있어도 돈은 헌금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결국 허튼소리를 하는 것에 불과하며 유명 코미디언의 흉내를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1억이 있다면 바치겠다고 하면서도 지금 가진 차 한 대를 바칠 수 있냐고 하면 그건 안 된다고 합니다. 진짜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지만 너무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죽는 건 안 무서운데 아픈 건 무섭다는 것이니 참으로 웃음거리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섬김은 우리를 뒷받침해 줄 충분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을 섬김으로써 여러분이 은혜를 입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저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사도 바울을 본받았기에 여러분이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목숨을 하나님께 바쳐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며, 결코 형제자매들의 것을 탐하거나 이득을 취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쿵저러쿵 논증한 것은 결국 아주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논증한 것이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영광으로 가득한 직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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