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18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은 성경공부하기에 다소 어렵습니다. 여러 번 읽었지만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이 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기록했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 관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장의 주제를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다'라고 정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얼마나 확신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저도 그렇게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함께 탐구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이야기 속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포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너무 깊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보니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다'를 이번 장의 주제로 삼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본도에서 난 아굴라라 하는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아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 18:1-3)
바울은 아덴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기다리며 약 2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자매 수는 많지 않은 작은 교회였습니다. 디모데가 상황을 파악한 후, 그곳 성도들이 연이어 닥치는 핍박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바울에게 전했고, 바울은 아덴에서 그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교회를 세우지 않고 사람들과 변론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는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사업을 하는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그들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동종 업계 종사자로 모두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천막 제작은 목공 작업이 포함되었을 것이며, 철이나 쇠줄 같은 자재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부터 천막을 만들어왔는데, 오늘날로 치면 인테리어 업자나 건축업자와 비슷합니다. 저는 바울이 천막도 매우 잘 만들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매일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며 수입도 꽤 괜찮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그는 자주 자신의 두 손으로 동역자들을 부양했다고 기록했으니, 바울이 번 돈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베드로는 오로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를 좋아했지만, 바울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본업을 소홀히 하는 것일까요? 나중에 저는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하나의 중요한 이념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년 전, 저는 교회 안에서 전임으로만 섬기는 사역이 사람을 참 많이 나태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천막을 짓는 것과 달라서, 천막을 잘못 지어 무너지면 책임을 추궁당하지만, 교회를 세운다면서 온종일 기도하고 설교만 하면 자기가 제대로 전하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말만 늘어놓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는 어떤 부부로부터 그들의 담임목사님이 늘 똑같은 설교만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52편의 설교 원고를 준비하여 1년 52주 동안 설교하고 나면 다음 해에 그것을 그대로 다시 읽습니다. 또 어떤 목회자들은 104편을 준비해 2년을 돌려쓰고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늘 성도들에게 재탕한 음식만 먹이는 격이니, 신선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데운 것뿐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휴대전화 산업만 보아도 2년이 채 안 되어 새 모델이 나옵니다. 얼마 전까지 VIVO X50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X90이 나왔습니다. 몇 년 전 저는 iPhone 3를 썼는데 지금은 iPhone 십몇 시리즈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영역은 참 흥미롭게도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습니다. 사실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것도 남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온종일 기도하고 설교만 하니 그 외의 세상일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현실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가 교회를 세우는 이념은 바로 사람을 실제적으로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만 열면 온갖 신학 이론만 늘어놓는다면 사람을 온전히 양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아는 것이 제법 많습니다. 회계, 금융, 교직, 언어 교육, 심지어 엔지니어링 분야까지 두루 대화가 가능합니다. 목회자라는 직분은 반드시 사회와 접촉해야 합니다. 양육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온갖 복잡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탁상공론식으로 몇 마디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가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의 믿음을 북돋우는 데는 꽤 능숙하지만, 믿음을 가득 심어주었음에도 그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시험을 치러 갔다가 불합격하고 만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치는 매우 간단합니다. 온종일 기도하고 전도만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면 당연히 합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바울과 같이 성실하게 실력을 갖춘 사람을 도우십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에는 체계적인 원리가 있었으며, 온종일 형식적으로 헌금함만 들고 있는 굳어버린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얻은 사람은 몇 마리의 양을 키워 통구이로 잡아먹기 위한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래전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현실에 굳게 발을 딛고 사람들을 훈련하여 그들의 가치를 높여주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저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사람을 역전시키는 사역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화인명정(华人命定)은 여러분을 성장시키는 곳이며, 이곳에 와서 성장하지 않기란 오히려 어렵습니다.
저는 늘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세워왔고, 훗날 전임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 후에도 실질적인 일을 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양육과 관련하여 제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모든 성도가 점점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빚진 마음을 갖습니다. 때로는 몹시 버겁고 수많은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연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형제자매들의 필요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잘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법을 잘 압니다. 이전에 무엇을 하셨든 상관없이 제가 학습하는 법을 가르쳐 드릴 것이며, 여러분은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오면 성적이 오르는 이유는 제가 핵심을 짚어내는 법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먼저 우리 목회자 동역자들을 훈련해야 합니다. 저 혼자서는 그 많은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실질적인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며,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일 수 있는 사역자들을 길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핵심 이념입니다. 수년 전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때는 기도만 많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기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실천과 역량이 수반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로 일하시고 바울이 천막을 만든 것처럼, 그것은 모두 무언가를 세우고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도 충실히 감당하면서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수많은 사역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100권의 성경공부 교재를 집필했습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다루며 100권의 교재를 썼으니, 한 권의 성경으로 여러 권의 교재를 낸 셈이라 일반 목회자들은 쉽게 따라오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라고 하지만, 교회를 세우는 본질은 반드시 사람을 온전하게 세우는(造就) 데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자신부터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를 온전하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배움의 방법을 올바르게 전수하여 사람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일을 확실히 감당해 낸다면 그것은 실로 강력한 사역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일하는 것과 온 힘을 다해 사역하는 것 외에는 다른 취미가 없으며, 헛되이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는 일절 손대지 않습니다. 어떤 고용주라도 저 같은 일꾼을 얻는다면 크게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저를 쓰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가 충성스러운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이념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가치 있는 일(正经事)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은퇴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가치 있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장차 성도들을 온전히 양육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과 양육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성실히 일해야 실제적인 경험이 쌓이며,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해내려면 깊이 배워야 합니다. 배움에 있어 고난도 견디지 못하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면 남의 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없으며, 늘 꼬리에 머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50대에 은퇴하여 편히 쉬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일할 것을 권면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를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어디로 가든 그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교회를 세운 방식입니다.
사람들을 권면하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 : 4)
주일이 되면 성도들이 교회에 모이고 목회자는 권면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뿐만 아니라 매일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사람을 권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영적인 지식을 심어주고 영적인 원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이 영적 세계의 실재를 모른다면, 단언컨대 세상의 많은 일들은 영적 세계의 지배 아래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뛰어난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악한 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권면하는 것은 영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일이며, 이것이 바울이 행한 사역입니다. 그는 이방인과 헬라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권면했습니다. 날마다 그들과 변론했는데, 변론 자체의 한계를 알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두 사람이라도 더 건져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물을 던져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원리입니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리새인적인 누룩이 교회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매우 강력한 방법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바리새인적 성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모세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바리새인은 악명 높은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권면하는 동시에 바리새인들을 분별해 내야 합니다. 실질적인 일도 잘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 꾸준히 성장하며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바울의 참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일만 하고 권면하지도 않으며, 복음을 전파하지도 않고 진리의 기준을 세우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일에만 머문다면 평생 단순한 노동자에 머물 뿐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세우려는 열망이 없다면 사역은 무너지고 맙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사람들을 권면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다양한 삶의 문제를 안고 찾아옵니다. 자녀의 간질 문제로 찾아오면 바울은 쉽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관절통, 굽은 허리, 당뇨, 암, 관절염 등 온갖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사람마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바울은 그들을 권면하는 동시에 신유와 축사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성경에 일일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는 끊임없이 권면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확증했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표적을 통해 증명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눈앞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점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행전》 18 : 10 - 11)
사람들을 권면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헬라인과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뜨겁게 증언했습니다.
말씀에 붙잡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사도행전》 18 : 5)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간절했던 것은 그의 본질적인 성품이었습니다. 이러한 성품을 지닌 자만이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보다 그냥 물고기 잡는 게 낫지 않은가? 사람을 얻어서 무엇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전도자의 길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으니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역자의 삶에 뜻이 없다면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불타는 열정 없이는 결코 교회를 온전히 세울 수 없습니다. 억지로 세운다 해도 나태하고 미지근한 교회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붙잡히는 것은 성품의 문제입니다. 저는 매사에 거침없이 전진하며, 일할 때나 걸을 때나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편입니다. 동북 지방 속담에 '멜대로 찔러도 반응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나태한 태도로는 영적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말씀에 붙잡힌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영적 필요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오셨고,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쥔 보물을 놓쳐버렸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영혼을 향해 간절했습니다. 본인이 확신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사역자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설교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결코 영혼을 깨울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향한 열정이 넘쳐 사람들에게 '기독교 그 자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늘 생명력 넘치게 사역합니다.
말씀에 붙잡혀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는 일은 이러한 열정적인 성품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전도사, 교구장, 리더들은 반드시 이러한 성품을 길러내야 합니다. 겨울날의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운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은 성품입니다. 때로 제 안에서 영혼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일어날 때면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하고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곁에 있든 온라인을 통하든 그 영적 열기를 느끼십니까? 많은 분들이 저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주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이 늘 솟아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깊이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최고의 보물로 여깁니다.
제가 날마다 지치지 않고 증언하며 가르치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제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역자의 심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백성들과 제자들을 굳건하게 세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살아있는 열정을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영혼들의 마음에 불을 지펴야 합니다. 어떤 난관도 우리 앞에 설 수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입니다! 온 힘을 다해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마르지 않는 영적 에너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생명의 능력을 어떻게 온전히 전파할까 늘 고심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물을 얻었습니다.
마윈에게 누군가 말을 지어내는 데 능하다고 지적했을 때, 그는 매우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 남을 설득하려 한다면 그것은 사기지만, 자신이 온전히 믿고 전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기가 아닙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보물이심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으며, 제 사역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질병들이 치유되는 역사들을 보면서 이것이 어찌 보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몇억, 몇십억의 가치를 뛰어넘는 영원하고 값없는 보물입니다. 어릴 적 소원을 비는 대로 보물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세상의 그 어떤 보물 단지도 주님과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자는 우주 최고의 참된 보물을 얻은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행전》 18 : 11)
바울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쳤는지 본문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에베소서》 등 사도 바울의 서신서 전반에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가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바르게 깨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깊은 영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풀어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핵심으로 여긴 진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로마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성령의 권능으로 육신의 사욕과 정욕을 죽이는 것입니다. 제자를 양육한다고 할 때, 바울이 제시한 제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기준과 동일합니다. 스스로 제자라 칭한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르는 자라야 참된 제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삶과 목숨을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함께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시다
바울의 내면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그는 제자들을 굳건히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자 온 힘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심을 어떻게 선포하셨습니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8 : 9 - 10)
바울은 그 도시에 1년 반 동안 머물며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선포하여 성도들이 다양한 영적 은사를 풍성히 받도록 이끌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노동을 병행하며 고린도 교회로부터는 단 한 푼의 사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수고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고 도왔습니다. 바울은 참된 목자의 심정을 품고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스승은 일만 명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는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지 자녀가 부모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유산을 남기는 것은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데 있었습니다.
저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하시며 결코 대적이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중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많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이토록 영혼을 품는 자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지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말씀에 사로잡혀 간절한 마음을 품고, 일과 사역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영혼들을 권면하고 제자들을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온 세상에 화인명정 신학, 곧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흑암 속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과 세상의 절박한 필요를 보면서 어찌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과 함께하시고 우리를 강력히 일으키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말씀에 붙잡혀 제자들을 탁월하게 양육하는 사역자로 삼아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등 이전에 복음을 전했던 지역들을 일일이 순회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는 자의 사역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모든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심령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을 거듭 굳건하게 세워야 했을까요? 곳곳에 핍박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악한 영의 훼방이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래 육에 속한 존재로 태어나 무수한 육적인 악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교회를 개척하고 양육했으나, 그곳 성도들은 여전히 육신에 속하여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어야 하는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다른 지역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을 돌아보니 성도들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 믿음의 반석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상세히 다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직후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흔들었고, 바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악한 영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기에 그는 다시 방문하여 교회를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바울이 철저한 영적 경계로 지켰기에 마귀가 교회를 온전히 파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종종 성도들이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낙심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저는 "여러분은 본래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라고 권면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적인 자신감은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제자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것은 마음과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불신과 왜곡된 생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삶 속에 표적과 기사가 따르도록 이끄는 사역입니다.
아볼로라는 사람
일을 병행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뜻밖에도 아볼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사도행전》 18 : 24 - 25)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회개만을 강조하고 성령 세례를 가르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지 않고 방언 기도를 부인하는 영적 결핍이 매우 흔합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에는 능통하여 본문의 아볼로처럼 논리정연하게 성경을 강론합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사도행전》 18 : 26)
아볼로가 그 가르침을 온전히 수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훗날 교회 안에 아볼로파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사도행전》 18 : 27)
아가야는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고, 고린도는 아가야 주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로 건너갔으며, 당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교회의 주요 리더였습니다. 그들의 추천서를 통해 고린도 교회가 아볼로를 영접했습니다. 아볼로가 그곳에서 활발히 가르치자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르며 아볼로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게바)파로 나뉘는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베드로파를 자처한 이들은 복음의 깊이를 분별하기보다 단순히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였다는 인간적인 배경만을 보고 맹종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으나, 사역의 본질과 방향은 바울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직접 파송한 사역자가 아니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권유로 세워진 인물이었기에 사도 바울의 영적 계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언변이 탁월한 학자였으며 그 능력은 인정받을 만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역사는 온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 뛰어난 웅변술로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아볼로와 같은 유형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는 여정 속에서 다양한 영적 혼선과 도전이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볼로 역시 그러한 도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언변이 뛰어났으나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가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령 세례를 깊이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원형의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 : 4 - 5)
성령 세례라는 중대한 진리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놓치면 아볼로파와 같은 지식적 신앙에 머물고 맙니다. 성령 세례를 온전히 회복할 때 비로소 사도 바울이 걸었던 참된 복음의 능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정 파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 위에 서야 합니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사도행전》 18 : 11 - 12)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이 생명의 보물을 얻도록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했으나, 정작 유대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고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당시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 관료였습니다. 갈리오는 고발 내용을 듣고 바울이 변론을 시작하기도 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악행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18 : 14 - 17)
총독 갈리오의 면전에서 회당장이 폭행을 당하는데도 총독은 이를 묵인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회당장 소스데네가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한 소스데네에게 바울은 무엇이라 위로했을까요? 구차한 설명은 필요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성도에게 지극히 당연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왜 그를 지켜주지 않으셨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온몸으로 받으셨듯이, 진리를 위해 육신의 고난을 감내하는 것은 믿음의 여정에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복음을 따르는 삶에는 고난이 수반됨을 온전히 깨달아야 합니다.
결론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는 길에는 수많은 난관과 영적 전투가 따르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믿음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품으로 인해 그 어떤 환난과 장애물도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돌파하지 못할 고난은 없으며, 헤쳐 나가지 못할 영적 함정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 아무리 큰 대적과 방해가 닥친다 해도 주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보물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命定)입니다! 제자들을 말씀 위에 견고히 세우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주께서 맡기신 거룩한 위임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그분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겠습니까? 하늘로부터 임한 이 지극히 존귀한 사명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