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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25-08-24 2,310 有福系列

서론

이번에 저는 이어서 여러분과 함께 《시편》 34편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저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과 그들이 겪은 일들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아주 훌륭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결론은, '나는 사람이고, 지극히 미미한 존재이며, 나는 무능하므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는 재앙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정말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훌륭한 결론이며,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곧바로 반박해 오고, 영적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곧바로 들이받습니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양 굴지만, 사실 그는 전혀 대단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저는 그분의 유익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우리 사역자들에게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왜 지치지 않을까요? 결코 번아웃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좋은 것을 얻는 것이지, 하나님께 어떤 유익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 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 보세요, 저는 셀모임도 참석했고 주일 예배도 드렸고 기도회도 참석했는데, 제게 무엇을 더 바라십니까?" 이것은 대만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말인데,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라는 뜻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을 품는 순간 논리가 잘못되고, 그러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유익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거 너무 공리주의적인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의 하나님이시고, 저는 그분에게서 좋은 것을 얻습니다. 그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분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내가 그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좋은 것을 누구에게 줄까? 아, 저 사람이 좋구나, 저 사람에게 주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세 번째는, 나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으며, 저는 재앙이 어느 날 닥칠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반신불수가 되신 분, 통제할 수 있습니까? 통제할 수 없다면 통제하려 들지 마십시오. 사람이 죽는 것, 통제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이 세 가지를 요약하자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평생 아무런 좋은 것도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어떻게 깨닫고 정리했는지 아십니까? 다 벽에 부딪혀 보며 얻은 것입니다. 어차피 제 머리가 벽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벽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면서, 결국 제 자신감이란 것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믿는 자신감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믿음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믿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는 힘이 생기지만, 자기를 신뢰할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아직 이것을 깨닫지 못하셨다면, 계속 구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은 참 똑똑하십니다"라고 말하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저더러 대단하다고 하신다면, 사실 제가 대단하긴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한 사람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또 자기 자신을 말씀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윗도 저와 같았으며, 저는 그를 본받았을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아직 꽤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자신이 아직 괜찮다고 여긴다면 주님을 믿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무능하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왜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할까요? 제게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게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나중에 저는 주님을 믿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기 때문에 대단한 것입니다.

사람은 왜 주님을 믿으러 올까요? 자신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걸을 때마다 반신불수처럼 절뚝거리고, 다리도 펴지지 않고, 팔도 안 움직이고, 무릎도 망가졌습니다. 골반도 안 좋고, 뇌도 안 좋고, 심장도 안 좋고, 간도 안 좋고, 신장도 안 좋고, 쓸개도 안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한 사람에게 이 모든 문제가 다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끝장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자신이 왜 주님을 믿으러 왔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잘나서 주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면, 마음껏 벽에 부딪혀 보십시오. 다 부딪혀 보고 나면 자신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겠다면 의지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기가 안 될 것 같으니까 '불면증에 걸렸으니 사명 신학을 찾아와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불면증이 낫고 나면 작별을 고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다가 장차 또 불면증이 오거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불면증은 그래도 낫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환경이 조금만 좋아지면, 그새 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정말 해괴한 본성입니다. 특히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일수록 항상 자기가 꽤 대단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대단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십 대 시절에 쓴 시를 육십 세가 된 우리가 읽어도 여전히 깊은 감동을 받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십 대 어린아이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사실 그가 그렇게 대단했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합니까?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골리앗은 몸무게가 300kg이 넘고, 아니 그 이상으로 거의 1톤 정도 나갔을 것입니다. 60~70kg 정도 되는 다윗이 1톤이나 나가는 골리앗을 쳐부순 것입니다.

다윗이라는 십 대 소년이 이 시를 쓸 때는 대략 열일곱 살, 그러니까 아직 대학 입시도 치르지 않을 나이였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10)

이것은 다윗이 광야의 어느 버려진 동굴에서 쓴 시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피난길에서 방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온 때였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겪었을까요? 제가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비록 서툴더라도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싸움을 아주 잘했습니다. 혼자서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결과 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아들 요나단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속이 좁아서 늘 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 한마디를 듣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부를 게 없어서 하필 그 노래를 불렀을까요. 다윗은 "그만 불러요, 그만 불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은 그 소리를 듣고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네가 만만을 죽였다고? 이 맹랑한 놈, 내 너 하나를 죽여버리겠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다윗은 사울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사울은 그를 기필코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가? 길거리의 아낙네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몇 마디 외쳤다고 해서 나를 죽이려 한단 말인가?" 사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울은 정말 골리앗을 상대할 수 없었고, 골리앗은 다윗이 대신 쓰러뜨려 준 것이 아니었습니까? 다윗은 참으로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지체할 틈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여 다윗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내달렸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지쳤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다윗은 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골리앗의 칼을 챙겨 들고 다시 도망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도망치다 보니 머릿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판단이 흐려졌습니다. 열일곱 살 소년인데,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열일곱 살 소년이 도대체 무엇을 알겠습니까? 너무 힘들고 긴장한 나머지 정신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그가 어디로 도망쳤을까요? 바로 블레셋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다윗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어라, 이 자가 바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 아닌가?"

"이 자가 바로 우리 거인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아닌가? 원수를 갚을 때가 왔다. 아기스 왕에게 알리자!" 다윗을 보니 허리춤에 골리앗의 칼까지 차고 있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셈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다윗을 붙잡아 아기스 왕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아기스 왕이 말했습니다. "이 자를 죽여라, 이 자가 바로 그 다윗이다." 다윗이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속으로 기도하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도망치려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지, 하필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가다니요. 얼마 전에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여 포피를 베어갔지 않습니까? 이 포피는 양의 가죽이 아니라 생식기의 표피입니다. 이 일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 200명의 군사는 포피만 잃은 게 아니라 다윗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이 다윗을 얼마나 철천지원수로 여겼겠습니까?

다윗은 속으로 '끝났다, 끝났어, 이제 정말 끝장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내 목숨은 끝났구나.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내 머리가 어떻게 됐지, 왜 여기까지 굴러들어 왔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닙니까? 사울도 죽이려 하고, 블레셋 사람들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미친 체하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아기스 왕이 '다윗을 먼저 옥에 가두어 두고 제정신이 들 때 처결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스 왕의 머리를 어지럽히셔서 "너희가 어찌하여 미치광이를 내게 데려왔느냐? 썩 꺼져라! 왜 미치광이를 내 앞에 끌고 왔느냐?" 하며 다윗을 내쫓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성문을 나서자마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내달렸습니다. "아, 주님! 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항상 내 입에 있으리로다!"

여러분 아십니까? 훗날 아기스 왕은 다윗을 정말로 거두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이익만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 말도 맞지 않습니다. 정확한 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천하 만물은 오직 하나님만이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아기스 왕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를 보내시어 내 사방에 진을 치고 나를 보호하시며 구원하십니다.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넘쳐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걸을 때 깡충깡충 뛰며 걷는 것을 아십니까? 영어로는 'gallop'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달렸습니다. '목숨을 건졌구나, 목숨을 건졌어!' 목숨을 건지고 달려간 곳이 바로 아둘람 굴이었습니다. 가서 보니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편의 시설도 없고 아파트 단지도 없네. 눈 닿는 곳이라곤 그저 휑한 동굴뿐이구나' 싶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좀 먹을까,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먹을까, 하이디라오 훠궈를 먹을까? 동굴 속에서 건져 먹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냉장고도 없고, 생수 한 모금,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려 해도 없고 코카콜라도 없습니다. "내가 여기 뭐 하러 왔지?" 만약 그가 산시 사람이었다면 러우자모도 없고 수타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스 손에 죽을 뻔하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기스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고, 골리앗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으며, 사울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고, 이 모든 고난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면, 러우자모나 수타면이나 하이난 치킨라이스가 그리 중요합니까? 편의 시설이 그리 중요합니까? 설령 광야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위해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 후 다윗은 동굴 안에서 이 시편 34편을 썼습니다. 동굴 속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 비록 새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황량한 곳에 왔을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찾을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이라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바비큐도 꼬치구이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이르러서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바라본 것은 사자의 손에서, 사울의 손에서 자기를 건지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이 황량한 곳에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는 다윗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게 무슨 몹쓸 곳이야? 하나님, 실수하신 거 아닙니까? 하나님, 제정신이십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수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자신이 아주 완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로운 자의 입에서는 악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입으로 악한 말을 내뱉는 순간, 악한 말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의 말입니다. 그 순간 끝장나는 것입니다.

입으로 불신의 말을 내뱉으면 끝장이라는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바로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망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그는 기도해 주는 목회자에게 큰 기름부음과 능력이 있어서 손을 얹자마자 보이지 않는 힘에 쓰러지고 병이 단번에 낫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단번에 낫지 않으면 곧바로 "왜 이렇게 느리지? 왜 아직도 안 낫는 거야?" 하고 묻기 시작합니다. 그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중에 제가 발견한 한 가지 법칙이 있는데, 사람의 입술이 사람을 참으로 망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기도하면서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대로예요, 아직 아파요, 아직 아파요, 아직 아파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려도 안 낫지요?"라고 합니다. 제가 그를 위해 한 시간을 기도해 주었는데, 그가 던진 "왜 아직도 안 낫지?"라는 한마디에 그 한 시간이 전부 도루묵이 되어버립니다. "왜 아직도 안 낫지?"라는 말이 리셋 버튼을 누른 것입니다. 한 시간이 허사가 되었으니 정말 쥐어박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 입술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또 한 시간을 기도해 주었더니, 또 "왜 아직도 안 낫지?"라고 합니다. 두 시간이 헛수고가 되고 리셋되었습니다. 세 시간을 기도해 주었는데 또 "왜 아직도 안 낫지?" 하길래, 제가 "제발 부탁인데 그런 소리 좀 안 하시면 안 됩니까?"라고 했습니다. 결국 세 시간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제 귀한 세 시간이 날아가 버렸고, 그 사람도 풀이 죽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사람의 이 혀가 너무나 악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나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탓하면서, 자기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자기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이며, 하나님과 흥정할 방법도 자격도 없는 존재임을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동굴로 도망쳐 아무런 소망이 없을 때,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항상 내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를 찬양하는 말이 늘 내 입에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바로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물질과 힘을 쏟으며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주중에 바쁘게 일하고 주말에는 모임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아, 정말이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수입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는 올해 전년도 세금을 내야 하는데, 올해 수입이 없어도 작년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생각났습니다. 다윗이 뭐라고 했습니까?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하지 말며, 즉 불신의 말을 내뱉지 말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때려죽여도 저는 "하나님, 제가 물질과 힘을 다 바쳤는데 왜 제게 이러십니까?"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대하신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하시든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다윗이 무엇을 통회했겠습니까? 사실 통회할 일이 별로 없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이 상심했을까요? 상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왕궁에 있을 때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어쩌면 변기도 금으로 되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아둘람 굴에 오니 볼일 볼 때 가릴 것도 없이 편하긴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평생 동안 반드시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나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태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비록 아직 부족하고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하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며, 나의 복이 주 밖에 없나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머릿속으로 아기스의 손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되새겼습니다. '하나님, 주는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주께서 나를 아기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그 어떤 사람의 손에서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내 평생에 어떤 대적도 내 앞에 설 수 없으리니,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평생 주께 피하리니, 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어디에서 그랬습니까? 아둘람 동굴에 있는 것이 복이란 말입니까?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말을 선포하지 않으면 속에서 더 기운이 빠집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내면에 힘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이 늘 그 몹쓸 입술을 함부로 놀립니다. 예전 속담에 2전짜리 주전자는 주둥이 하나만 멀쩡하다더니, 1전짜리 주전자는 주둥이마저 엉망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로 생각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골리앗을 죽이게 하셨고, 전쟁터를 누비며 보호하셨으며, 아기스 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면, 내가 아둘람 굴에 있을지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해 내실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품과 기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품과 기개가 있는 사람이 바로 다윗 같은 사람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 사실 서른 살 안팎이면 적은 나이도 아닙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몸으로 때우자니 힘이 없고, 기술을 배우자니 학습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꽤나 믿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정말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제가 한 일 중 중도에 흐지부지 끝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맡아 운영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훌륭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한 말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이때 다윗은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창세기》를 분명히 읽었을 것이라 믿으며,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 갔지만, 훗날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 나도 열일곱 살이고, 사울에게 쫓기며 아기스 왕의 손에 죽을 뻔했구나. 큰 재앙에서 살아남았으니 반드시 큰 복이 따를 것이다. 나도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리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늘 내 입에 있고, 악인의 말은 결코 내 입에서 나가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다윗을 격려하여 아둘람 굴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 혼자 어찌해야 하나?' 그러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윗, 우리가 당신과 함께 일하러 왔소."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내겐 아무런 자원도 없고 오직 인적 자원뿐이오." "다윗, 당신이 우리의 인사 총괄이오." 며칠 뒤 또 몇 명이 오고 또 몇 명이 왔는데, 빚진 자, 환난당한 자, 방화범, 수배자, 온갖 골칫덩어리에 아내에게 쫓겨난 자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결국 아둘람 굴에서 사람들을 규합하여 600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600명을 먹여 살리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혼자라면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지만, 600명은 다릅니다. 600명이 하루에 한 사람당 1근씩만 먹어도 하루에 600근인데, 어디서 600근의 양식을 구하겠습니까? 게다가 한 근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시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시니, 하나님께서 나를 양식이 끊기는 환난에서 반드시 건져내실 것이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왜 거짓된 말을 하지 않는지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런 일로 왜 다투겠습니까? "사울이 왜 나를 쫓습니까? 고소하겠습니다." 누구를 고소하고 어디에 고소하겠습니까? 당신의 사건을 다루어 줄 법정조차 없습니다. 이제 《시편》 34편의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본문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10)

평생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다 함께 저를 따라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다윗을 본받는 마음을 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의 믿음을 본받게 하옵소서. 환난 중에도 여전히 주의 이름을 선포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이 광대하시니 저희가 함께 주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제 저희가 주님을 찾습니다. 마음속에 많은 혼란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님만을 찾고 구하오니, 주를 찾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시고, 이러한 성품을 주시며, 다윗이 받았던 기름부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생각하는 날 동안 저희의 입술을 지키게 하옵소서. 주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므로 오직 우리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반드시 저희의 삶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저희가 주를 찾을 때, 어떤 형편을 지나든지 주께서 저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하나님, 주는 저희의 공급자이시며, 저희를 기르시는 하나님이시며, 저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 하나님, 평생 주님을 굳게 따르며 끊임없이 주를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주의 은혜와 은총이 저희에게 넘치도록 임하여, 평생토록 우리의 복이 주 밖에 없게 하시고, 평생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여러분은 "선생님, 방금 말씀하신 그 많은 배경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 설교를 들어보시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될 텐데, 제 설교에는 반복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반복이 많은 것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반복되는 말은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며 다윗, 아기스, 사울, 가드 왕에 대해 또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 아주 좋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면밀히 실제를 겪고 나면 하나의 결론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기스 왕의 사건을 통해 어떤 결론을 얻었습니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제 발로 그물에 걸려 들어갔다가, 결국 그물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다루실 때 얼마나 강력한지 모릅니다. 아기스 왕의 머리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 않습니까? 아기스 왕의 머리도 하나님의 손에서는 한낱 구슬에 불과하여 하나님께서 굴리고자 하시는 대로 굴러갑니다. 다윗이 얻은 이 결론은 실로 대단한 것이며, 환난 가운데서 깨달은 결론입니다. 한 가지 일을 겪고 법칙을 정리해 낸 것입니다. '와, 내게 미래가 열렸구나! 세상일이란 본래 이런 것이고,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모든 고난은 믿음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작은 고난에서 큰 고난까지, 작은 문제에서 큰 문제까지 겪게 됩니다. 사실 왜 의인에게 고난이 많을까요? 이해가 되십니까? 의인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하나님께서 작은 시험을 주십니다. 그가 믿음으로 승리하면, 조금 더 큰 시험을 주시고, 또 믿음으로 승리하여 더 큰 은혜를 얻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이었고, 끊임없이 자라나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기근을 만났습니다. "아니, 왜 또 기근이야?"라고 원망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사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믿음이 보배이며, 믿음이 미래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정리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물론 고난 중에는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도 있는데, 거기에는 영광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어떤 고난은 믿음을 훈련하는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겪고 나면 믿음을 버리며 고난을 단순한 고통으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고난 속에서 믿음을 훈련하고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심령으로 통회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다윗이 내린 이 결론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지어야만 미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믿음이 미래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녀를 보며 속이 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디서 성품이 나오겠습니까? 성품이 없는데 어디서 끈기가 나오겠습니까? 끈기가 없는데 어떻게 일을 끝까지 성취하겠습니까? 다윗은 겨우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누가 그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었겠습니까? 이것은 타고난 운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아들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없고, 아버지에게 믿음이 있는지도 결정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왜 의인에게 고난이 많은지 기억하십시오. 의인은 믿음의 연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슨 공로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필요입니다. 그런 일을 만나면 절실한 필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울 왕에게서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나를 지켜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때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과정 속에서 고난은 믿음의 절실한 필요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일을 겪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비합리적입니다. 비합리적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믿음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훈련되고 나면 "아,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제가 실직했던 그해, 미래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마음이 지극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돈은 바닥나 가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으니 정말 처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일 년 뒤에 저는 제가 재정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제 집을 높은 가격에 세 들어 살 임차인을 보내주셨는데, 이웃집보다 50%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이웃집은 4천 달러도 받지 못하는데 저희 집은 5천 수백 달러, 거의 6천 달러에 세가 나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재정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세놓을 곳이 다 세가 나갔으니 무슨 문제가 더 있겠습니까? 임대 수입이 이전 월급과 비슷했으니, 이것이 재정적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겪고 나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다윗의 고백과 같았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이 말씀을 깨달으셨다면 축하드립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다윗은 바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둘람 굴로 피하여 굴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굴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다윗은 "여러분 모두 오셨군요.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높이든 높이지 않든, 다윗은 반드시 주를 높였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기초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이 세상은 누가 다스립니까? 마귀가 다스립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마귀가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결국 누가 다스린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이 일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니엘 시대에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쥐락펴락하셨습니다. 바벨론 제국도 대단했지만,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다루시는 것은 유리구슬을 굴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나라와 왕조의 흥망성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 귀신이 이 일에서 더 크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짚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신과 대적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귀와 대적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에서 "저 악한 영아, 가서 저 사람 좀 흔들어라. 교만해졌으니 꼬리를 좀 잘라주어야겠다"라고 하십니다. 교만해질 자격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는 광대하십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우리는 늘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행사를 인정하고 찾고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과 다투려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제가 얻은 아주 귀한 교훈입니다. 제 권면을 들으신다면, 하나님과 겨루지 말고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인데 우리가 참견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이 다 그분이 지으신 것인데, 그분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에 우리가 따질 자격도 물을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자격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택을 구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를 찾는 자는 부족함이 없으니, 그분의 행사를 깊이 알아가십시오.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34:4)

두려움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공포증을 앓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교회가 아직 강력하게 승리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공포증을 치유하는 데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비록 지금은 교회를 떠났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반 친구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의심하며 매일 극심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공포증은 귀신의 역사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기도로 그의 공포증을 쫓아내 주었는데, 나중에 그는 저를 저버렸습니다. 제가 그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저를 차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떠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을 두려움에서 건지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 공포증에서 치유받은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치유받고 떠났고,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찾아 더 많은 유익과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미래를 두려워하고, 살아가는 사소한 일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여호와께서 광대하시며, 이 땅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사람의 나라를 통치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움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그것을 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고 깨달으면, 그 두려운 감정은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온종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 구한다면, 두려움이 닥쳐올 때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찾아야 합니다.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유익은, 그분께서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Kiasi'라는 복건어 단어가 있는데, '죽는 것을 두려워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늘 불안에 떨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온전히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까?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관하실 수 있습니까?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은 탈출하고 나서야 '그가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유익을 얻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수억 개의 은하계를 포함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천문학을 잘 몰라도 은하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대하다는 것은 압니다. 이토록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다스리실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능히 다스리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고 아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면에 두려움이 있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면, 이제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십시오. 지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충분한 믿음을 가지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두려움의 영에 눌려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그분께서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떤 환난에서 건지셨습니까? 5절부터 8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5-8)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주를 앙망하면 얼굴에 빛이 납니다. 주를 앙망할 때 얼굴에 광채가 나지만, 앙망하지 않으면 찡그린 얼굴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를 앙망하면 광채가 나고 그들의 얼굴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곤고한 중에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반드시 마음에 새기십시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살아 역사하십니다. 중화권 신학을 살펴보면서 왜 많은 곳에서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한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제가 깊이 연구한 주제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를 세워놓고 무엇을 부르짖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세우지 않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에서 아무리 목이 터져라 부르짖어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지어야 하고, 성막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식양대로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곳에서 부르짖고, 주를 알아가기를 구하며, 주를 앙망하고 여호와께서 광대하심을 마음에 알며, 그분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심을 알 때,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왔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다윗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편》 34:9-14)

말씀이 이토록 분명한데 제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때 다윗은 무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서른, 마흔, 쉰 살 먹은 어른들을 이끌면서 "너희 자녀들아"라고 부르며 스승 노릇을 했습니다. 그는 진정 그럴 자격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 중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지만 다윗은 해냈습니다. 다윗은 매일 아둘람 굴에서 그들을 훈련시키며 제식 훈련을 지도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체조와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열일곱 살의 준수한 청년이 청산유수로 말을 전합니다.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너희가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십니까? 빚진 자, 마약에 빠진 자, 살인자, 방화범, 쫓기는 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거칠고 대담한 무리였습니다. 그러니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은 그들을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열일곱 살 때 양을 치던 일, 사울의 군대에서 골리앗을 죽인 일, 도망치던 일들을 들려주며 그들에게 강력하신 하나님,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알게 했습니다. 다윗이 왜 시를 썼을까요? 이 시편들은 그 사람들을 훈련하기 위한 강의 교재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시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어떻게 유익을 얻겠습니까?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도를 알아야 하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여행이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여행이 사람을 자유케 합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공포증이 있어서 기도를 받고 많이 호전되었는데, 여행을 한번 다녀오더니 두려움이 다시 도졌습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환난을 겪어서 마음이 상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십니다. "아, 내가 수년 동안, 지난 50년 동안 내 영혼에 큰 손해를 끼쳤구나!"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광대하심을 알지 못했고, 그분이 나를 두려움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줄도 몰랐으며, 그분을 경외하지도 찾지도 않아서 수많은 좋은 것들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하고 아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까이하시는 '상한 마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남이 돈을 갚지 않아서 속상하고 "왜 그때 빌려줬을까" 하고 후회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남이 나를 실망시켜서 상한 마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이토록 좋은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하여, 너무나 오랜 세월 스스로를 궁핍하게 내버려 두었음에 대한 애통함입니다.

그분은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육에 속한 사람이었고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이제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찾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 많은 일을 그르쳤고, 사실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실 수 있었던 일들인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많은 유익을 놓쳐왔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알고 찾아야 합니다.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언제 찾아야 합니까? 바로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할 때입니다.

고난 속에서 비로소 찾는 법을 배웁니다. 잘 먹고 잘살 때는 한가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다들 벽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고 나서야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겠구나"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의인이 됩니다. 의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과거에는 잘못 살아서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바로잡아 의인이 되어 믿음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다가올 날들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분의 은혜를 얻고 보호하심을 입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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