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디모데후서 4장 - 의의 면류관을 얻으라

2025-12-17 15,287 提摩太后书

相关经文

提摩太后书04章-私事的嘱咐
  • 1 我在 神面前,并在将来审判活人死人的基督耶稣面前,凭着他的显现和他的国度嘱咐你:
  • 2 务要传道,无论得时不得时总要专心,并用百般的忍耐、各样的教训责备人,警戒人,劝勉人。
  • 3 因为时候要到,人必厌烦纯正的道理,耳朵发痒,就随从自己的情欲,增添好些师傅,
  • 4 并且掩耳不听真道,偏向荒渺的言语。
  • 5 你却要凡事谨慎,忍受苦难,做传道的工夫,尽你的职分。
  • 6 我现在被浇奠,我离世的时候到了。
  • 7 那美好的仗我已经打过了,当跑的路我已经跑尽了,所信的道我已经守住了。
  • 8 从此以后,有公义的冠冕为我存留,就是按着公义审判的主到了那日要赐给我的;不但赐给我,也赐给凡爱慕他显现的人。
  • 9 你要赶紧地到我这里来。
  • 10 因为底马贪爱现今的世界,就离弃我往帖撒罗尼迦去了;革勒士往加拉太去;提多往挞马太去;
  • 11 独有路加在我这里。你来的时候,要把马可带来,因为他在传道(或译:服侍我)的事上于我有益处。
  • 12 我已经打发推基古往以弗所去。
  • 13 我在特罗亚留于加布的那件外衣,你来的时候可以带来,那些书也要带来,更要紧的是那些皮卷。
  • 14 铜匠亚历山大多多地害我;主必照他所行的报应他。
  • 15 你也要防备他,因为他极力敌挡了我们的话。
  • 16 我初次申诉,没有人前来帮助,竟都离弃我;但愿这罪不归与他们。
  • 17 惟有主站在我旁边,加给我力量,使福音被我尽都传明,叫外邦人都听见;我也从狮子口里被救出来。
  • 18 主必救我脱离诸般的凶恶,也必救我进他的天国。愿荣耀归给他,直到永永远远。阿们。
  • 19 问百基拉、亚居拉,和阿尼色弗一家的人安。
  • 20 以拉都在哥林多住下了。特罗非摩病了,我就留他在米利都。
  • 21 你要赶紧在冬天以前到我这里来。有友布罗、布田、利奴、革老底亚,和众弟兄都问你安。
  • 22 愿主与你的灵同在!愿恩惠常与你们同在!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디모데후서> 4장의 주제는 바로 ‘의의 면류관을 얻으라’입니다. 바울이 한 이 말들은 디모데에게 쓴 것인데, 과연 언제 디모데에게 썼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곧 참수형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재판은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났고, 단지 집행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장 마음에 두고 염려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한 사람은 디모데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가였습니다. 바울은 서둘러 붓을 들어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단지 자기 자신만 의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동역자들과 모든 형제자매들이 다 함께 이 의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여러분은 천천히 깨달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모든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1-2)

바울이 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보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디모데야, 나는 정말 네가 마음에 걸린다. 너는 반드시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며, 오직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이다. 너는 이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해야 하며, 영광스럽고 의로운 면류관이 너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수고하는 것, 사도 바울 자신이 겪었던 이 수고들은 사실 매우 솔직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며 단순한 한 가지 목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어디에 나타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우리가 섬기는 모든 과정 가운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대승불교와 유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도 보지 못하며, 치유와 축사, 병 고침과 귀신 쫓아냄도 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행하신 이러한 일들을 보지 못했다면, 제 생각에는 죽은 후가 좀 위태롭습니다. 왜일까요? 살아 있을 때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죽을 때가 되어 과연 무엇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섬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은사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고, 환상을 보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섬기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셔야 할 은사를 여러분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이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 하러 나타나시겠습니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고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반드시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반드시 목양하며, 온갖 오래 참음과 각양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책망하고 경계하며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각양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책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이 의의 면류관을 위한 것이며, 장차 여러분이 의롭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이 말을 분명히 알아듣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듣고 나서 “에이, 그게 돈이 됩니까?”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의 살아가는 목적은 돈이고, 살아가는 목적은 살아 있을 때 존재감이나 드러내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겠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명백히 드러나며, 하나님 앞뿐만 아니라 귀신 앞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말고,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의 섬김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믿지 않는다면 무엇을 섬기겠습니까? 믿지 않는다면 주님을 왜 믿습니까? 만약 주님을 믿는 것이 그저 세상에서 유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주님을 믿고 나서 세상의 고작 이런 유익만을 탐한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자이며, 틀림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도 암 발병률이 매우 높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암에 걸리고도 왜 걸렸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 말하기를 “내가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나타나셔서 이것이 내게 주시는 최고의 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왜 이리도 이상할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당신에게 나타난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이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족제비 귀신 같은 악령일 것입니다. 그것은 악령과 어둠의 권세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때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의 목표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만약 이 문제가 아직 분명해지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제가 조금 말씀드릴 테니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최근에 제가 소그룹을 이끌고 대변을 보지 못해 장폐색에 걸린 매우 비참한 상태의 암 환자를 섬겼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원인은 바로 살아가는 목적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귀신도 착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어, 난 잘 살고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대변도 못 볼 지경에 이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의 하찮은 일들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 하찮은 일들이 날마다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남편을 위해 살아가는데 남편에게 밖에서 딴 여자가 생기면 자궁암, 난소암, 유방암에 걸리게 됩니다.

제가 한 가지 비밀을 발견했는데, 많은 여성들이 유방암, 난소암, 자궁암, 질암에 걸리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머릿속에 든 생각이 너무 더럽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더러운가 하면, 남편이 평생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기껏해야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갈 때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소망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면,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그런 사람들이 과연 이런 악성 질환에 걸리겠습니까?

여러분은 암 덩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온갖 흉측한 암 사진을 찍어보면, 겉에 생겼든 속에 생겼든 울긋불긋 온갖 색깔로 끔찍하게 혐오스러운 색을 띱니다. 저는 실제로 어떤 암 환자의 몸속에서 벌레가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우리 중 어떤 섬기는 형제자매들은 그 사진을 보고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왜 사는지 알지 못하면, 살다가 대변도 못 보게 되고, 살다가 소변도 못 보게 되며, 살다가 밥도 못 먹게 되고, 살다가 숨도 못 쉬게 되니 너무나 끔찍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암의 온갖 흉측한 색깔들은 다 너무 혐오스럽고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는 섬기는 가운데 거듭 다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리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리라!’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 임했는데도 의사의 다리만 붙잡고 의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주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더욱 커질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태어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섬기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소망이 없다면 이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끄는 소그룹의 형제자매들과 몇몇 사역자분들이 “저도 이 사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와서 그분들을 참여시켰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섬겼고, 여러 번 아침 6시 넘어서까지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왜일까요? 아파서 비명을 질러댔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트집을 잡을지도 모르지만, 트집 잡지 마십시오. 섬김을 받는 사람은 정말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반드시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며, 온갖 오래 참음과 각양의 가르침으로 책망하고 경계하며 권면하십시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이 바로 이 일입니다. 곧 사람을 책망하고 경계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 암이 끊임없이 번져 나가며 자라났는데, 축축하고 아주 생생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이 생생할 때는 끊임없이 퍼져 나갑니다. 제가 여러 암 환자들을 섬겨보았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나중에 기도를 통해 그 암이 바짝 말라 쪼그라들었습니다. 일단 말라붙으면 쉬워집니다. 퍼져 나가는 것을 바짝 말리는 것은 둘째 치고,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제어만 해도 이미 대단한 것입니다. 자라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점점 위축되게 해야 합니다. 그 배후에 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생생한지 아십니까? 그 안에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생생하기 마련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려 살려둔 채 물속에 넣어두면 해안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싱싱한 물고기입니다. 죽고 나면 얼음을 채우든 무엇을 하든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살아 있는 것은 생생합니다.

반드시 말씀을 전파하고 온갖 오래 참음으로 임하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은 정말 잘 인내했습니다. 한밤중부터 기도하기 시작해 새벽 2시, 2시에서 3시, 3시에서 4시, 4시에서 5시, 5시에서 6시까지 기도하고 아침 7시가 넘어 출근했습니다. 저는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이런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고,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마음에서 건져내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온종일 마음이 번민으로 가득 차고 늘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다시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종양이 돋아나고 암이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런 상황을 돌이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을 섬길 때 속으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도록, 꺼져가는 불씨 같은 소망을 품고 사역합니다. 부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하여 그날이 임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예비하신 질병들을 그분의 악한 백성들에게 다 쏟아붓게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리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3-4)

이것이 지금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여러 교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십시오. 5만 명 모이는 교회든, 10만 명 모이는 교회든, 1만 명 모이는 교회든, 천여 명 모이는 교회든 가보십시오. 무엇을 보게 됩니까? 온갖 허황된 말들이 가득하고, 진리에 귀를 막고 자기 사욕을 따라 수많은 스승을 두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이 말한 이 광경은 바로 오늘날의 모습을 아주 명확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하늘에 있는 의롭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전혀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늘의 의롭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사모했기에 이 땅에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그토록 힘들게 섬겼지만, 그렇다고 뇌암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머릿속에 여전히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담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 교회로 출근해야지. 아, 이 교회는 나인투식스(9 to 5)로 근무하니 얼마나 좋아, 월급도 꽤 높고.’ 그것이 섬김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제가 세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그 의롭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위해 살아간다면, 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며 기쁨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피곤합니까? 피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이 어리석게 구는 모습을 보면 호되게 꾸짖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사람을 바로잡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듣고 제게 별명을 붙이기도 하는데,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해에 제가 동역자들을 데리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관 속에 누워 있던 분은 사모님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왜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까요? 그 안에 영광의 면류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심판의 결과가 거기에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표적을 꽤 많이 행하던 때였는데, 한 편마비 환자를 기도하여 낫게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 한 교회에 훈련 과정을 참관하고 배우러 갔었습니다. 그 목사님과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이 “아이고, 정말 대단하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제 자랑 솜씨도 참 일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편마비 환자와 허리·목 디스크를 앓는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정말 흉측했는데, 목에는 깁스 같은 보호대를 차고 허리에는 아주 넓고 큰 복대를 두른 채 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걸 왜 차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가 “이걸 차지 않으면 조금만 닿아도 다리에서 발가락까지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제가 “무슨 일 하시는 분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의사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아이고, 의사여, 자신이나 구원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좋습니다. 당신은 의사이지만 오늘 진짜 의사를 만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이미 밤 10시였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밤 12시까지 섬겼고 두 사람 모두 온전히 나았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후 돌아오자마자 어떤 뇌암 환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왜 또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맡기시는가?’ 제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목사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목사가 뇌암에 걸려 조금만 일해도 피곤하고, 일하려고 하면 잠이 오고, 일을 안 해도 잠이 오며, 자고 싶을 때는 잠이 안 오고 안 자고 싶을 때도 잠이 안 오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쩌다 뇌암에 걸리셨습니까?”라고 한마디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목회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일주일에 겨우 하루밖에 못 쉽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또 자랑을 좀 하자면, 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0대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사역해 왔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영광의 면류관을 위해 일해 왔으며, 지금까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시는지 계속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저와 같은 소망 곧 그 의롭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기를 바라며, 이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왜 병에 걸립니까?”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저 역시 여전히 몸에 연약함과 허물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는 것은 그 안에 이 소망이 없기 때문이며,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귀신의 역사가 더해지니 사역이 힘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다른 불을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치심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절대로 다른 불을 드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섬김은 이토록 쉬울까요?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힘듭니다. 한 명의 암 환자도 이러한데 열 명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가운데 암에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우리 가운데서 암 치유를 받은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 놈이 오면 한 놈을 때려잡고, 또 오면 또 때려잡습니다. 그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암을 일으키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하나가 오면 하나를 해결하고, 또 오면 또 해결하니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귀가 가려워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며,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아십니까? 심리학을 가르칩니다. 심리학이 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심리학이 무엇을 고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좋은 분들이고 좋은 사람이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도 큽니다. 그러나 사람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오직 여러분 안에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죽게 된다 하더라도, 말씀드리건대 설령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 가운데서 죽으십시오. 설령 죽는다 해도 결코 질병 가운데 멸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엄중한 심판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말며, 선악을 분별하는 자기 의를 버리고, 내면의 상태를 정돈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말씀을 전파하고, 온갖 오래 참음과 각양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책망하고 경계하며 권면하여 허탄한 이야기 가운데서 사람들을 건져내십시오. 아멘! 얼마나 좋습니까!

말씀드리지만, 비록 이 암 환자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할지라도, 매번 가르치고 책망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마음이 깨어나자 암세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믿음 안에서는, 여러분이 저와 동일한 소망, 곧 이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동일한 소망을 품기만 한다면 어찌 치유를 받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여 육신을 위해 살지 않고, 이제부터 우리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5-8)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끊임없이 상고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설령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우리의 직무를 다하는 데 어떤 대가가 따른다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고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군사 된 우리는 사업터가 아닌 영적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세상의 강력한 마귀와 싸우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면 힘들다 하더라도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감당합니다. 우리 안에 영광스러운 소망, 곧 의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현혹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은 소망을 품는다면 수많은 고통과 문제를 줄일 수 있으며,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딴 여자와 도망쳤다면 얼마든지 멀리 도망치든 꺼지든 내버려 두십시오. 그것에 왜 연연합니까? 끙끙 앓다가 유방암, 난소암, 자궁암 같은 병에 걸리고 맙니다. 세상에, 사람에게 이런 소망이 있다면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조차 기꺼이 자원하며 ‘내가 기쁘게 감당하겠습니다’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이 대변도 못 보고, 소변도 못 보고, 숨도 못 쉬고,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는 고통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암이나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로 죽은 것이 아니며, 대변이나 소변을 보지 못해 고통당한 사람이 아니라 주를 위해 자기 생명의 대가를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아주 강렬한 열망이 하나 있는데, 늘 온전해지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할 수 없기에 온전한 해결책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순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주를 위해 순교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왜일까요? 단번에 불완전했던 모든 것이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저의 섬김 가운데 늘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에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왜일까요? 제 마음속의 소망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힘써 섬기십시오. 만약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집에 가서 상의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준비하십시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온갖 잡다하고 더러운 문제들이 단번에 사라지게 됩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정말 대단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담담하게 말하는지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며, 선한 싸움을 다 싸웠노라.” 이것을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말입니까? 디모데에게 “너도 나를 본받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귀와 맞붙을 때마다 때로는 마귀에게 몇 대 얻어맞아 멍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마귀는 다 발밑에 짓밟혔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가야 할 길을 다 걸었으며,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훈련하여 동일한 소망을 품게 하였으니, 오늘 나는 마침내 세상의 수고를 그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구차하게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이 매우 담대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대변도 못 보고, 소변도 못 보고, 온종일 줄을 꽂은 채 죽은 후의 일을 이야기하려 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준비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꺼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소망이 하늘의 영광과 의의 면류관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직 소망이 없는 자들만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식으로 비참하게 연명할 뿐입니다.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겨내야 합니다! 달려갈 길을 잘 마쳐야 합니다!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이제 후로는 영광스럽고 의로운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날에 내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날마다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데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만약 누군가가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살아 있을 때는 온갖 번민에 휩싸여 마치 지옥 같은 삶을 산다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결코 그런 말을 믿지 마십시오.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닮은 자는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살아 있을 때 귀신을 닮은 자는 죽을 때 반드시 귀신에게로 갑니다. 떠날 시각이 가까웠음을 기억하며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준비하고 이 일을 결코 꺼리지 않습니다. 꺼려하다가는 정말로 어느 날 대변도 못 보게 될 수 있으며, 인공항문을 달아준다 해도 변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늘 스스로를 온전히 준비하고 담대하십시오. 우리 안의 소망은 바로 이 의의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와 마가를 향한 바울의 애틋한 마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경계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디모데후서> 4:9-15)

바울이 왜 “디모데야, 속히 내게로 오라,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심정을 겪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 심정은 너무나 생생한 것입니다. 디모데와 마가를 향한 바울의 마음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깊은 염려와 애틋함이었으며,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이렇게 연약하고 마가는 아직 충분히 훈련되지 못했는데, 바울은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니 그의 애틋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바울의 뜻은 이것입니다. “디모데야, 서둘러 내게로 오너라. 편지로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붓과 먹으로도 다 쓸 수가 없으니, 네가 와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해야겠다. 우리 마음과 마음으로 깊이 교제하자.” 왜일까요? 디모데는 전도할 때 때를 얻을 때도 있고 얻지 못할 때도 있었으며, 지치면 뒤로 물러나 한동안 쉬려 하기도 했고, 온갖 오래 참음이 부족하여 고통을 견디는 힘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며, 온갖 오래 참음과 각양의 가르침으로 책망하고 경계하며 권면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사람을 책망하는 것만 해도 그가 과연 입을 뗄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성격상 입을 떼지 못했을 것입니다! 입을 열면 얼굴 가득 미안해하니, 이래서야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책망하고 가르치기는커녕 경계하고 권면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귀가 가려워 사욕을 따라 스승을 두고 진리에 귀를 막으며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 말이 누구 들으라고 한 소리입니까? 바로 디모데 들으라고 한 소리입니다! 줏대가 없이 주변에 허탄한 노파들의 망령된 말에 흔들리는 사람이 가득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바울이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라”고 한 것은 디모데의 일 처리가 거칠었기 때문입니다. 신중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직무를 잘 다하고 있다면 굳이 다하라고 권면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못했기에 바울의 마음에 깊은 염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을까요? “디모데야, 가서 그 겉옷을 가져오너라.” 여러분은 이 겉옷의 의미를 아십니까? 제 생각에는 바울에게 그 겉옷이 필요해서라기보다, 디모데에게 그 겉옷을 물려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네가 이 옷을 입을 때마다 이 늙은이가 네게 남긴 간곡한 당부를 기억하라.’ 바울은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네게 명하노니, 그 겉옷을 가져오고 마가도 데리고 오라. 너희 두 사람에게 당부할 말이 너무나 많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이 흔들리고 멍해지기 일쑤였으니 어찌 마음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주변에는 망령된 노파들의 말까지 가득했으니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부모 된 자의 마음은 늘 가장 연약한 자식에게 쓰이는 법입니다. 다 강건하다면 염려할 일도 적어질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저를 가장 적게 염려하시지만 여전히 염려하시며, 제 남동생과 여동생을 더 많이 걱정하십니다. 제가 어머니와 그것을 두고 다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비와 어미 된 심정의 바울이 죽기 전, 사형을 당하기 전에 가장 연약한 영적 자녀들을 보며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쏟아붓고자 한 모습입니다. “디모데야, 이 겉옷을 네가 가지거라. 내 옷을 볼 때마다 나의 당부를 기억하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이 세상은 사랑할 가치가 전혀 없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매일을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살아가자.”

이것이 단지 바울이 디모데에게만 쓴 편지이겠습니까? 이것은 바울이 이 시대의 연약한 모든 디모데와 마가에게 자신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고자 쓴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후서> 4:16-18)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주께서 우리를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실제로 사자 굴에 던져진 적이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사자와 싸우게 하는 검투에 사람을 던져 넣었습니다. 사자가 앞발로 한 번 후려치면 500킬로그램의 힘이 실리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문사(文士)이자 지식인이었던 유약한 바울은 장작 패던 사람도 아니고 무송(武松)이나 노지심(魯智深) 같은 장사도 아닌 얌전한 선비 같았지만, 사자가 그를 해치지 못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기에 주께서는 우리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자였다면 사자의 뱃속 먹잇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장(鳥葬), 화장(火葬), 수장(水葬)도 있지만 그것은 사자장(獅子葬)이 되어 사자의 뱃속에 묻히는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건져내셨으니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의 내면에 영광의 면류관을 향한 소망이 있었기에 그는 살아나 마침내 사자의 입에서 벗어났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드디어 사자 입에서 벗어났으니 며칠 더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며칠 더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감당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안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긍휼히 여기셨듯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아니 바울을 긍휼히 여기셨듯 저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고, 목양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육신으로 영원히 살게 하실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이 땅에서의 육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제게 이 영광의 면류관을 향한 소망이 없고 오직 육신 안에서만 소망을 둔다면 그것은 육에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생에만 소망을 둔다면 그것은 참으로 썩어질 것이며, 언젠가는 대변도 소변도 못 보고, 밥도 물도 못 먹고, 숨도 못 쉬며 걸을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것들에서 건지시는 것은 육신으로 영원히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장차 우리의 육신이 이 땅에서 한 줌의 재가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화장(火葬)을 하고 나면 어떻게 부활합니까?” 하고 염려합니다. 비록 돌 한 조각, 먼지 티끌만 남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다시 조합하여 몸을 부활시키실 수 있습니다. 부활 후에는 두 번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이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는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암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까?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러한 질병에서 건지실 수 있습니까? 건지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우리의 치유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하며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 어려운 것은 우리 머릿속에 들어찬 쓰레기를 치우는 일입니다.

장차 우리가 차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다시 만날 때, 여러분은 “목사님, 그때 설교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군요”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니 영광이 그분께 세세무궁토록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땅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소망이 하늘에 있다면 이 땅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코 비참하게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그런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완전히 파쇄하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적인 소망을 철저히 깨뜨리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한 가치관을 온전히 무너뜨리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축복입니다. 훗날 디모데가 바울을 만나러 갔을까요? 분명히 만났을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한 그 귀한 말씀들을 디모데가 제대로 필기해 두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만약 잘 기록해 두었다면 성경에 수록될 수 있었을 텐데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바울이 이토록 담대하고 평안하게 형제자매들에게 문안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에게 문안하며, 그 형제자매들 또한 사도 바울과 동일한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며,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으니,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날에 우리에게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하게 될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高建宁
怎样才可以圣灵充满?我怎样才可以知道我圣灵充满了?
王番
可以来听我们这篇课程:http://www.fsll.org/?p=10490 如果还是有困惑可以联系我们的微信小助手,Wechat ID :FSLL-SG
@高建宁: 怎样才可以圣灵充满?我怎样才可以知道我圣灵充满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