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은 먼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발람에게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발람은 어디에서 죽었을까요? 《민수기》 31장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인 사람들 중에서 미디안의 왕들 곧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 이 다섯 왕을 죽였고,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민수기》 31:8)
이 여자들이 발람의 꾀로 이스라엘 자손을 꾀어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께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수기》 31:16)
우리가 사건의 결과를 보게 될 때, 먼저 한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발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습니까? 발람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는 존귀함을 얻었습니까? 그는 존귀함을 얻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건을 읽을 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설령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라 할지라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에 유혹된다면, 입으로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 말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좋은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든지 하나님도 속일 수 없고 마귀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는 거의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얻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고 탐욕스러웠던 선지자 발람이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디안 진영에서 죽임을 당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때 미디안 진영에서 죽임을 당했을까요? 발람이 발락에게 한 가지 꾀를 내주었고, 그 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이만 명 이상이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뒤에 나오는 몇 장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으시지만, 우리 대신 결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으로 달려가는 선지자를 막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으로 달려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22장부터 25장 전체가 탐욕스럽고 세상을 사랑하는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는 22장은 교만한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자주 막으시지만, 중요한 결정을 우리 대신 내려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결정권을 우리 손에 맡기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계속 죽음의 길을 달려가고, 죽기 살기로 그 길을 향해 달려간다면 하나님도 막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자주 유혹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으신 적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막지 않으셨고, 그 결과 우리가 많은 것을 잃었다면, 어떤 사람은 돈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었으며, 어떤 사람은 무거운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그때 왜 저를 막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막으신다고 해도, 당신 안에서 이미 내려진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이든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든, 당신 안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선택이 자주 치우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주 치우칩니다. 마음이 돈에 미혹되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을 아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돈입니다.
탐욕스러운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을까요? 모압 왕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발락이었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지역에서 행한 모든 일을 보았고, 아모리 사람들까지 멸망시킨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 가까이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강한 나라가 가까이 살게 되면 언제든 그 나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이 매우 다급했습니다. 그는 어떤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요? 저주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떻게 저주할까요? 그 지역에 발람이라는 매우 유명한 선지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발람을 불렀습니다. 그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면 내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민족이 나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시 그들을 쳐서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내가 아노니 네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네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느니라. (《민수기》 22:6)
먼저 발락 왕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발락은 영적인 일에 대해 몰랐던 것일까요? 그는 저주와 복이라는 두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주와 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가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면 우리가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과 저주가 선지자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그들을 축복하면 그들이 복을 받고, 네가 그들을 저주하면 그들이 저주를 받으며, 그들이 저주를 받으면 내가 그들을 공격하여 이길 기회가 있다.” 그래서 모압 왕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발람에게 갔습니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말씀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과 함께 유숙하니라. (《민수기》 22:8)
그런데 밤에 발람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사람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을 덮었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시 그들과 싸워 그들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이르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이 내게로 오는 것을 아무것도 막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민수기》 22:9-17)
사실 이 세상은 자주 사람을 크게 존귀하게 해 주겠다는 말로 유혹합니다. 발람은 선지자였는데 유혹을 받았을까요?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금은보화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이 다시 발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민수기》 22:20)
하나님은 그가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막으러 왔습니다. 그 길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으로 달려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를 볼 수 있었지만 발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금은보화만 보였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길에 서서 칼을 빼 들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사자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서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러 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는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가니라. (《민수기》 22:32-35)
발람은 정말로 갔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듣기에는 발람이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전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계시를 매우 존귀하게 여긴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선택권은 여전히 자신에게 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떤 영적인 원칙을 보여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영적 원칙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치우칠 때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을 대신 행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발람을 막으시며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가서 “제가 가도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그들과 함께 가자 하나님은 길에 사자를 보내 그를 막으셨습니다. 발람은 “당신이 제가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면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나중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가 모두 “이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했을까요? 하나님은 그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발람의 머릿속에는 온통 존귀함만 가득했습니다. “아, 돈만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돈이라니, 돈 벌기가 이렇게 쉽구나. 모압 왕 발락이 나를 부르다니, 얼마나 존귀한 일인가. 나는 선지자이지만 평소에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왕이 내 능력을 알아보았구나. 정말 좋은 기회다……” 머릿속에는 온통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금은보화만 생각하면서 어떤 집과 자동차를 사고, 어떻게 부자가 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사건의 결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목숨을 내놓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칙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어떤 일에 매여 있으며,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 자주 이렇게 묻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이것을 해도 됩니까?” 하나님은 “그래, 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 보니 큰돈을 잃고, 일이 끝난 뒤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지 않으면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없고, 자주 치우치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인 발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가 어떻게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유혹 앞에서는 우리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오만 위안을 빌려 주식인지 선물 거래인지 하다가 큰 시장에 투자했는데 이삼만 위안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삼만 위안만 남았고, 이십여 일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데 이미 돈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돈을 벌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제게 와서 해도 되느냐고 물을 때, 저는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저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정은 당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안 된다고 말해도 결국 자기 성질대로 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욕으로 인해 치우친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마음속에 자신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치우쳐 이런 것들에 유혹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조차 당신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번에는 안 된다고 하셨다가 다음에는 된다고 하시며 “가라”고 하시고, 다시 물으면 또 안 된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어리석지 않은 것입니까? 사람이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정말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일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분명히 아십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결코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 치우치면 하나님께서 “죽고 싶으면 가서 죽어라”라고 하시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정말 모든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면서도 모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런 것들에 자주 유혹된다면 큰일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발람의 이야기를 읽고 자신을 자세히 비추어 보십시오. 당신도 발람과 같지 않습니까? 어떤 일을 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다가 마침내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것일까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세상과 돈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주일에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본래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이 많은 꾀를 낳았다는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사실 사람은 아주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돈에 유혹되어 필사적으로 돈을 사랑하고 돈을 벌려고 하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말은 매우 비참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제가 말한 믿음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매우 좋아 보이지만, 그 믿음은 자기 안의 치우침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돈, 집, 자동차, 직업, 친구, 연인 등을 모두 적어 보십시오. 이런 것들은 모두 당신에게 수고와 근심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날마다 “하나님, 남자 친구를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최근에 저는 전임 사역자들과 함께 한 사업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 출신의 나이 든 자매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우리 젊은 자매에게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남자 친구나 남편을 달라고 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실 조금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기도하다가 정말 남자 친구를 얻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일까요? 정말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정욕에 이끌리면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 안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고, 그저 이런 것들도 사랑할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발람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려는 마음이 꽤 확고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씩 나아가다가 결국 미디안 진영까지 갔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존귀함을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얻었습니까? 죽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것들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들을 목록으로 적어 보십시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은 아주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루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정말 한 끼에 이천 위안짜리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 위안이나 십 위안이면 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삼 싱가포르 달러짜리 국수 한 그릇이면 아주 정상적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습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비극을 보았고, 그 비극은 매우 무서웠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목회자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차를 몰고 가다가 살수차 밑으로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한 가족 세 명이 살수차 아래에서 죽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의 아내와 아이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도 세상을 사랑하고 싶지 않고, 자동차도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늘 차가 있어서 어디든 편하게 다닐 수 있었고, 그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동차를 전혀 사랑하지 않습니다. 고급차는 더더욱 사지 않습니다. 바퀴가 달려서 운전할 수 있으면 됩니다.
얼마 후 한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간증을 하러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얼마 전에 좋은 차를 샀고, 그 차를 몰고 간증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큰 버스에 부딪혀 차가 산산조각이 났고, 가족 세 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저는 그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얼굴은 바늘로 꿰맨 상태였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도 관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형제자매였고, 저의 목회자가 장례를 인도했기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관 옆에 서서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영원히 세상을 사랑하지 않겠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영적 법칙을 보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게 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놀다가 어떤 것을 보고 한입 물었는데, 그 위에 낚시바늘이 달려 있어 낚여 올라옵니다. 그 바늘을 물지 않았다면 어떻게 낚였겠습니까? 꿰뚫어 보지 못하면 언젠가는 바늘을 물게 됩니다. 이 두 번의 교통사고를 겪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영원히 자동차를 사랑하지 않고, 집도 사랑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며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겠습니다.
한번은 동역자들을 데리고 국제적인 특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매우 유명한 목회자들이 강단에 서 있었고, 아래에서는 질문과 답변 형식의 쪽지를 전달했습니다. 사회자가 쪽지 하나를 열어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떤 취미가 있으십니까?” 두 명의 유명한 목회자는 각각 사냥과 스포츠카를 좋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동역자가 저를 툭 치며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오직 하나의 취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발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는 “나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겠다”는 균형점까지 사랑했던 것입니다. 발락이 내 앞에 그렇게 많은 돈을 놓았으니 그것을 가져다가 십일조를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그 십일조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발락의 돈을 가져다가 십분의 일을 헌금하면 생명을 대가로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 참되시다
우리의 눈에는 자주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고, 나빠 보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눈은 정말 삐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실내 장식을 하면서 아주 이상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선이 아무리 보아도 삐뚤어져 보였는데, 재어 보니 똑바른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나중에 한 가지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목공 일을 할 때는 왜 눈으로만 보면 안 되고 자와 연필로 그려야 할까요? 조금만 어긋나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자로 재야 합니다. 자신의 눈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의 눈은 정말 위험합니다. 어느 날 판자 하나를 설치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똑바로 보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아주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눈으로 보는 것에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눈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확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합니다. 발람이 풍요로운 삶을 추구한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고, 옥수수빵을 씹는 것보다 닭다리를 먹는 것이 나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닭다리를 먹는 길이 정말 어떤 길인지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존귀함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크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작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의 일을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인은 육에 속한 사람이었고 아벨은 영적인 사람이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왜 아벨을 지켜 주지 않으셨을까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혼란이 생깁니다. 문제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시야를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이 두고 가인을 살펴보면 가인이 전혀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면 한 살까지 사는 것과 열 살까지 사는 것, 백 살까지 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일을 치우쳐 보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은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제게는 다 똑같습니다. 사실 성경이 추구하는 관점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비결을 배웠노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런 것들이 바울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것에 미혹되고 지배당합니다. 오늘 보십시오. 발람은 정말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습니다. 비록 여호와의 선지자였고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기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십시오. 이런 일이 있어도 살 수 있고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한 형제가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받지 못한 뒤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신청했지만 받지 못하자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오지 않으려면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그는 교회에 나오면서 이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과 영주권을 받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주권을 받는 것과 교회에 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가 오늘 있든 없든 모든 일에서 비결을 배운다면, 마귀는 우리 앞에 미끼를 놓을 수 없고 우리도 그 미끼를 물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가려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 승리하는 사람,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를 가려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왜 마귀를 만드셨습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존재입니다. 썩은 것을 끌어가고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일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학적 관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발람의 행동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머릿속은 풍요로운 삶에 대한 유혹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발락의 금은보화에 속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은 모두 지나갑니다. 우리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붙잡고 애써도, 매 주일 성경공부 모임에 나온다고 해도, 우리 안의 치우친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면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팔면 아마 은돈 삼십 개쯤 받을 수 있겠지.’ 유다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예수님을 팔더라도 삼백만, 오백만은 받아야지, 은돈 삼십 개가 무엇입니까? 그는 피밭 하나를 샀고, 결국 그곳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우리 집안 초기에 매우 유명한 건축자재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사업이 크게 번성했는데, 어느 날 대학생 몇 명이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왔다가 그를 노렸습니다. 그들은 그의 집 맞은편에 빈집을 빌려 매일 지켜보며 범행을 준비했습니다. 어느 날 행동에 옮겼습니다. 들어가자 세상 경험이 많았던 노부인이 말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 나를 해치지만 말아라.” 그 젊은이들은 정말 현금 몇천 위안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노부인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강도들이 온 것을 보고 그들과 싸우려 했고, 결국 칼에 여러 차례 찔려 죽었습니다. 만약 돈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면 두 손을 들고 “내 몸에 있는 돈도 모두 가져가십시오. 나를 해치지만 마십시오”라고 했으면 끝났을 것입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됩니다. 그 노부부에게는 외아들이 하나뿐이었는데 그 아들이 칼에 찔려 죽었으니, 얼마나 극심한 슬픔이었겠습니까. 결국 노인은 이백만 위안을 태웠습니다. 1990년대에 이백만 위안은 매우 큰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태운 뒤 그는 현지의 한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습니다. 정말 깨달은 것입니다. 조금 더 일찍 깨닫고, 자녀에게 돈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도록 일찍 가르쳤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습니다. 어떤 것도 당신이 미끼를 물게 하는 핑계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까? 발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까? 제가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사랑스럽도록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형제자매들이 지혜를 배우고 모든 일의 결과를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런 것들을 얻은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 학교에 매우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는데 마음이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여동생은 절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 절에 가서 절을 하거나 그곳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절 안의 목욕실에서 목욕을 하다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모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러 갔다가 어머니가 목욕실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이모는 칼을 들고 자신의 배를 갈라 장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고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형은 매우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저를 찾아왔을 때 그 집의 돈은 큰바람이 불어온 것처럼 들어왔다가 큰바람이 불어간 것처럼 사라졌고, 결국 매우 가난해졌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혼자 일하며 아버지와 세 형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매우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한 영적 사건입니다.
이런 일들은 분명히 재물을 추구하고 세상과 돈을 사랑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여전히 세상과 재물을 사랑한다면, 영적 원칙은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과 세상을 극도로 사랑하면 정말 위험합니다. 감옥에 가서 몰락한 고위 관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금은보화와 재물에 미혹되었고, 부동산에 미혹되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런 미혹을 분명히 알아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영적인 눈으로 모든 일을 꿰뚫어 보십시오.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면, 살아가는 것이 매우 단순한 일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가난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식사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는 삼 달러짜리 국수와 오 달러짜리 국수가 있는데, 저는 삼 달러짜리 국수를 선택합니다. 오 달러짜리는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체면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생활 습관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일을 체면과 연결합니다. 이것은 매우 가난한 마음가짐입니다.
사람은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데 먹고 마시는 일까지 뒤섞어 매우 복잡한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면 저는 결코 그들에게 산해진미를 차려 주지는 않지만, 체면이 서고 괜찮은 곳으로 데려갈 수는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이란 결국 그 정도입니다. 이런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면, 예를 들어 산둥 사람들은 자리 배치를 매우 세세하게 따지기 때문에 자리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손님이 기분 나빠하며 자리를 떠납니다. 저에게 자리를 잘못 배정해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제 안에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입을 열어 진실한 말을 하면 사람들은 곧 제가 존귀함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런 헛된 것들에서 벗어나기 시작해야 합니다. 돈, 집, 재정은 모두 허무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영적인 문제입니다. 부유해지는 것도 가난해지는 것도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 정말 당신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이것이 없고 저것이 없어서 살 수 없다고 느끼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잘 살고 못 사는 핵심은 사람 안에 있는 느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것도 내 안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내가 무엇을 가졌든 매일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이 없는지 때문에 마음속에서 늘 씨름한다면 그것은 씨름하는 인생이 됩니다.
사람은 평생 그저 하나의 느낌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을 감는 순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기쁨의 인생이었는지 씨름하는 인생이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굳게 붙든다면 반드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수고롭더라도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아름다운 뜻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선지자였고, 그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뒤에서 주인이 되어 주시니 그는 결코 잘못 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게하시를 보십시오. 그는 선지자 엘리사의 사환이었습니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으러 엘리사에게 왔고 많은 금은보화를 가져왔지만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그것을 가지러 갔습니다. 재물을 얻은 결과 그는 나병에 걸렸습니다. 돈을 얻고도 나병에 걸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발람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꿰뚫어 본 것입니까? 돈과 사랑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산박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좋게 생각합니다. 죽고 못 살 정도의 사랑입니다. 외국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중국에도 칠선녀와 동영 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람은 단순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듭니까?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성경을 잘 읽으십시오. 예전에 교회에는 자매가 매우 많고 형제가 매우 적어서 교회가 결혼 중매소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더 많이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꼭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살 때는 꽤 괜찮았는데 한 사람이 더 생기고, 양쪽 부모까지 생기니 일이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어젯밤에는 상하이 출신의 한 자매를 섬겨야 했습니다. 그 자매는 주님을 믿을 당시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찾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지금은 부부 관계가 엉망이고 남편은 외도했으며 시부모도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박사 학위까지 가진 사람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이런 상황에 처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고, 능력 없는 사람은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일을 꿰뚫어 보십시오. 일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교회는 가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 천 개의 가정을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이 자기들만의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일에는 훨씬 부족하다고 봅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쳤습니다. 언제 먼저 가정을 세우라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덧붙인 것이며, 성경 본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들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들을 잔뜩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이 가정과 교회의 균형을 맞추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기로 선택하라
설령 당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반년 전쯤 우리 교회의 한 지도자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남편에게 더 이상 아무 감정이 없어서 이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감정에 의지해 결혼한 것입니까? 예전에는 감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니,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결혼할 때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습니까? 결국 이혼하자 그 형제의 부모도 매우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형제는 아내를 통해 주님을 믿게 되었지만, 이 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은 변하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원히 세상 사람과 세상의 일을 사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오늘은 변하고 내일은 또 변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관계에 들어가려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의 가르침처럼,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발람도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람이 연약한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대가도 치러야 합니다. 발람은 목숨을 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서 벗어나는 결정이었습니다. 금은보화가 한순간에 그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칼에 죽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했고, 발락에게 이스라엘 남자들을 여자들로 유혹하라는 꾀를 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민수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치명적인 결정 때문에 결국 생명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굳게 붙들고, 영원히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임할 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로마서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