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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자의 말씀 시리즈】09: 의인과 지혜자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느니라!

2024-12-08 4,383 传道者的言语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전도자의 말씀》 시리즈를 계속해서 나누겠습니다. 전도자의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여러분과 아주 큰 상관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 지혜임을 아셔야 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제대로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전적으로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의인과 지혜자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 《전도서》 9장의 주제입니다.

만약 의인과 지혜자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악인과 어리석은 자는 누구의 손에 있겠습니까? 귀신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이 연출하시거나, 아니면 귀신이 연출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연출하는 인생이 과연 잘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깨달으셨습니까? 솔로몬이 보고 깨달은 것은, 바로 의인과 지혜자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일생에도 사랑과 미움이 있었지만, 평생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평범한 보호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나쁜 일도 하나님의 손에서는 다 좋은 일로 바뀌었기에, 제 평생은 온통 좋은 일뿐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는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의아한 것은, 사람들이 공연히 일을 만들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온갖 번민과 갈등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제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이제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습니다. 저보다 조금 어린데, 그녀의 일생은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데,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외도를 시작해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이혼했습니다. 그나마 복잡하게 얽히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다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재혼했는데, 나중에 또 이혼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은 외도를 일삼았고, 두 번째 남편은 돈을 목숨처럼 아껴 용돈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번 돈도 내 돈이고, 내가 번 돈도 내 돈이라며, 둘이서 벌어 혼자만 썼습니다.

세상에! 그런 생활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이것은 타오바오처럼 반품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물릴 수 있겠습니까? 상대방이 내 은행 카드와 계좌를 다 쥐고 있는데 말입니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모 지방 출신이었는데, 그 후로 그녀는 그 지방 사람들에 대해 이유 모를 증오를 품게 되었고, 그 지역 사람 이야기만 나오면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며칠 전 제가 다시 심방을 갔는데, 여전히 우울증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기쁘게 사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습니까? 결혼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결국 이혼하고, 참 기가 막힌 막장 드라마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기쁘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스스로에게 너무나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왜 이렇게 지혜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듣고 제가 또 은근히 자랑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얻은 것을 여러분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제 평생에 아주 대단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 누구도 제 안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주 예수님을 알고 난 후로,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저는 제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기쁘게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어떤 자매님은 60만 위안의 빚을 지고 죽네 사네 난리를 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6억 위안의 빚을 지고도 죽겠다고 하지 않고, 매일 방송에 나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며 6억 위안짜리 농담을 던졌고, 나중에는 그 6억 위안을 다 갚았습니다. 6억 위안을 다 갚고 나서는 또 7억 위안의 빚을 졌으니, 그 사람도 참 대단합니다.

어떤 이는 6억 위안의 빚을 지고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 아주 잘 살고, 매일 신선처럼 즐거워하는데, 정작 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죽네 사네 합니다. 높은 소비가 제한되면 낮은 소비를 즐기면 됩니다. 어차피 높은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낮은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면 되고, 그것도 아주 즐겁습니다. 카페에 앉거나, 10위안, 20위안짜리 국수 한 그릇 먹으면 그만입니다. 고추 좀 넣고 간장 좀 쳐서 먹으면 얼마나 개운합니까? 한여름에 다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면 얼마나 좋습니까,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은 300만 위안의 빚을 졌는데, 나중에 그녀의 위챗 모멘트를 보니 마치 신선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그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남에게 300만 위안을 빚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어떻게 보아도 수중에 300만 위안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니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는데 빚을 지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지 않는데도 빚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합니다. 나중에 보니 의인이 겪는 일이나 악인이 겪는 일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 지혜자가 겪는 일이나 어리석은 자가 겪는 일도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요셉을 보면 더욱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요셉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다 헛소리입니다. 의인과 지혜자, 악인과 어리석은 자가 겪는 일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의인과 지혜자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연출하십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자세히 살핀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도서 9:1)

예를 들어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고, 형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그는 알지 못했고,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형들은 그를 이를 갈며 미워하는데, 그는 그것도 모르고 채색옷을 입고 싱글벙글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형들이 이를 갈며 미워하는 줄도 모르고 멀리서 다가가니, 형들이 '어라, 이 녀석이 채색옷까지 입고 오네' 했습니다.

요셉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형들 보러 가라고 하셨어요." "우리 아빠? 네 아빠지! 우리 아빠가 아니야!" 제가 보니 랴오닝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를 '우리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이 '우리 아빠'는 우리 모두의 아빠라는 뜻입니다. 우리 중에 랴오닝 출신 있습니까?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그의 형들이 말했습니다. "누구 아빠? 네 아빠지, 내 아빠가 아니야." 결국 형들은 그를 죽도록 미워하여 해치려 했는데,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즐겁게 형들을 찾아갔을 때 형들은 그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 그를 팔아넘기기로 결정하고 애굽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어리둥절했습니다. "형들을 보러 온 것뿐인데, 내가 뭘 어쨌다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거지?"

제가 말씀드리건대, 다행히 그의 마음에 지혜가 있었기에 그는 알았습니다. '내 일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요셉이 팔려갈 때, 그의 손은 낙타 뒤에 묶여 낙타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사실 노예가 그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도 있었을 텐데, 둘이서 이야기를 잘 나누었을 것입니다.

"너는 어쩌다 이렇게 됐니?" "난 채색옷을 입고 있었고, 아빠가 날 많이 사랑하셨어. 형들이 양을 치는데 아빠가 걱정이 되셔서 형들을 보러 가라고 하셨거든. 그런데 형들이 날 여기에 팔아버렸어." 그러자 다른 노예가 말합니다. "나도 그래! 우리 아빠도 형들 보러 가라고 채색옷을 입혀주셨는데, 형들이 날 팔아버렸어. 우리 둘이 똑같네." 같은 기수 동기처럼, 같이 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두 사람은 이야기를 잘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3년 후, 요셉은 과정을 마치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동기가 스마트폰을 보듯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사람 나랑 같이 낙타 엉덩이 뒤에 묶여 가던 그 녀석 아니야? 우리 동기인데, 아, 같은 동기라도 운명이 이렇게 다르다니!" 어떤 사람들은 빚을 져도 동기마다 운명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어떤 사람은 귀신의 손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연출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형들을 죽도록 미워하다가 결국 평생 노예로 살다 유골함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이 연출하시고, 어떤 사람의 일생은 귀신이 연출하니,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드라마가 요셉이 노예가 되고 나중에 감옥에 갇히는 데까지 전개되었을 때 막장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막장 드라마 같습니다. 형들이 그를 팔아넘겼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막장 드라마입니까? 그런데 결국에는 희극으로 끝을 맺었으니 결말이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희극이 막장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막장 드라마가 희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의 생각과 마음 한 끗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주 예수님을 알고 난 후로 제 일생을 그분의 손에 맡겼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잘 연출하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으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당연히 좋습니다. 제 일생에는 나쁜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 일생에 비록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굳이 다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단 한 가지만 이해하면 됩니다. 바로 내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침내 복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없는 삶은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계신 삶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삶은 너무나 좋아서, 아무리 기가 막힌 막장 대본이라도 다 희극으로 바꾸어 연출해 주시니 늘 기쁨이 넘치고, 보는 사람들마저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사명을 얻으며,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삼으면 마침내 복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은데, 솔로몬이 한 가지 예를 들었으니 여러분께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전도서 9:13-16)

여러분은 아마 이 구절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지혜자가 어떻게 가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가 지혜로 그 성읍을 구했는데, 성읍 사람들은 이 가난한 청년을 기억하지도 않고 다들 그를 무시하며, 그가 하는 말을 아무도 듣지 않으니 이해하기 어렵지요? 이제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 지혜로운 청년은 남들이 어쩌든 먹을 것 다 먹고 마실 것 다 마시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성읍을 구했다면 한자리 차지하려고 출마라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당선되지 못하고 멸시를 받는다면 마음이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청년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하고 마음이 넓습니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OK)',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여러분은 괜찮지 않겠지만 그 청년은 괜찮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는 먹을 것 먹고 마실 것 마실 뿐, 남들이 듣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 남들이 듣는다고 내 안의 기쁨을 빼앗길 것도 아니고, 듣지 않는다고 내 안의 기쁨을 빼앗길 것도 아니다.' 그 지혜가 참으로 광대합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어쨌단 말입니까? 그렇게 부유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부자가 되어 무엇하겠습니까?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가 빚을 졌는지 안 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대단히 지혜롭습니다. 답답합니까? 답답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입니다. 즐겁습니까? 매우 즐겁습니다. 그 어떤 것도 기쁨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지혜입니까? 지혜가 조금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손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작은 일 하나 해놓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겨 출마해서 한자리 얻으려 합니다. 낙선하면 풀이 죽고, 당선되면 기세등등해져서 온갖 막장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청와대에 들어가고, 청와대에서 나오면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기회인지 올무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지혜로운 청년은 그 안으로 뛰어들지 않습니다. 그를 옭아맬 수 없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 역시 유명해지고 싶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않으며, 한자리 차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기쁘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 제 일생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제 평생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기회와 올무는 늘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청년의 입장이라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왜 올무가 씌워지려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러므로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전도서 9:11-12)

여러분은 무엇이 기회이고 무엇이 올무인지 아십니까? 기회가 올무로 변할 수도 있고, 올무가 기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기회라고 여겨 덥석 잡았다가 60만 위안의 빚을 지고, 또 덥석 잡았다가 300만 위안의 빚을 지며, 또다시 잡았다가 6억 위안의 빚을 집니다. 다들 같은 동기들입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굳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어야 합니까?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리건대, 비록 이 제목이 거창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여기에는 엄청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전도자의 말씀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생명의 도를 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지혜롭게 살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솔로몬이 연구한 끝에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일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2-3)

알고 보니 다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누가 하나님의 손에 있고 누가 귀신의 손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발견한 것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우리는 산 사람이 아닙니까? 죽은 사람은 제 설교를 들을 수도 없고, 스마트폰을 볼 수도 없으며,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저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시면 그뿐이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단순해집니다.

감자와 배추도 기쁘게 먹고, 산해진미도 기쁘게 먹는 것입니다. 산해진미가 없으면 감자와 배추를 먹으면 되니 참 좋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먹던 것들은 다 유기농 식품이었습니다. 산해진미가 없다고 해서 기쁨을 빼앗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산해진미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기쁨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되, 그것이 마오타이든 이과두주든, 진짜 마오타이든 가짜 마오타이든, 이과두주든 삼과두주든 제 기쁨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행위를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일생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귀신이 여러분의 일생을 주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생을 반드시 연출하셔서 멋진 일생이 되게 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번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평생은 즐거운 일생이었으니 이것저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렸고, 싸워야 할 싸움을 다 싸워 이겼으며, 지켜야 할 도를 지켰습니다. 해 아래 헛된 날 동안 나는 평생을 유쾌하게 살았고 만족했으니, 이제 생을 온전히 마감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살아가다가 어떤 사람은 그냥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가다가 온전히 마침표를 찍고 고요함 가운데로 돌아가니 참으로 원만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나는 이미 기쁨으로 음식을 먹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셨으며, 이 세상의 헛된 날 동안 기쁘게 내 일을 감당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미 도를 얻어 승천하는 것과 같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연출하시게 하면, 아무리 막장 같은 대본이라도 희극의 결말로 연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희극 배우의 모습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인 《전도서》 9장 1절을 읽겠습니다.

본문 말씀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자세히 살핀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도서 9:1)

기도

하나님, 오늘 제 일생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겠고, 주님을 경외하겠습니다. 제 일생이 주님의 손에 있사오니, 저를 위해 멋진 대본을 써주셔서 제 평생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저를 긍휼히 여기사 그 어떤 것도 제 내면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어 지혜와 명철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의 일생이 너무나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왜 솔로몬의 일생이 훌륭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후궁이 3천 명이나 있었던 것이 정말 좋았을까요? 그런 마음이 있어도 감당할 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늙어서야 비로소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고, 늙어서야 《전도서》를 정리해 냈습니다. 그가 《전도서》를 쓸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좋게 볼지 몰라도 본인은 꼭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의 《성경》을 보면 다들 그의 조상 다윗을 본받았다고 하지, 솔로몬을 본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들 그의 조상 다윗을 본받았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지혜로웠습니까? 다윗은 비록 《전도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삶으로 《전도서》의 맛을 살아냈습니다.

솔로몬은 늙어서야 의인이나 악인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겪는 일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부유하냐 가난하냐 하는 것으로는 그가 의인인지 죄인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이나 그가 이룬 사업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그런 것들로는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님, 예전에 가난한 사람은 분명 좋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재정적으로 궁핍한 가난은 분명 좋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지 아닌지는 확실한 기준이 될 수 없지만, 건강한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병을 치료하며 귀신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죽는 것이나 악인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참수를 당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부유한가 아닌가는 우리 내면이 부유한가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과 지혜자는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악인과 어리석은 자들은 귀신의 손에 있으니 그들이 겪는 일은 겉만 보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솔로몬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바로 '살아있는 동안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온갖 번민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큰일입니다. 분명 귀신이 연출하고 있고 온몸에 귀신이 가득한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내면에 기쁨이 가득하여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기쁘지 않다면 어떻게 지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동안에는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기뻐하려면 오직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길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갔을 때 그와 함께 노예가 된 동기가 있었는데, 요셉이라고 마음이 괴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낳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 지었는데, 그 뜻이 바로 "하나님이 내 고통을 잊게 하셨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고통을 잊게 하셨을까요? 요셉은 '이것은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마다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재수도 없지, 정말 지지리 복도 없지'라고 생각하면 몹시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이 연출하신다'고 생각하면 소망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대본을 희극의 결말로 써주실 것임을 믿게 됩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전도서 9:11-12)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기회인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달리다가 기진맥진하지만 결국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지혜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양식을 얻는 것도 아니니 헛수고입니다. 명철하다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고, 솜씨가 뛰어나다고 총애를 받는 것도 아니니, 여러분의 노력과 상관없으니 공연히 헛된 애를 쓰지 마십시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나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로 있을 때, 매일 "아이고, 일이 너무 많네. 이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황제께서 날 싫어하시면 어쩌지? 남들이 내 자리를 빼앗으려 하면 어쩌지? 그럼 어떡하나, 저들과 암투를 벌이고 치열하게 궁중 암투극을 한 판 벌여야 하나?"

그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쁘게 음식을 먹고 즐겁게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직무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면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랑도 미움도 다 사라져 없어질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누군가를 너무 미워한 나머지 기쁨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참 많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이 되면, 결국 아이 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망치게 됩니다.

최근 우리 성도 중 한 형제님이 저와 자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아들이 초등학교 1, 2, 3학년 때부터 지적 장애와 학습 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입시를 치를 때 형제님은 "하나님, 제 아들이 고등학교에 떨어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에 떨어졌고, 9년 의무교육을 무사히 마치는 것으로 졸업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고등학교에 갈 필요도 없고, 돈을 쓸 필요도 없으며, 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낼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데리고 인테리어 리모델링 일을 시작했는데, 자기 집을 손수 수리하고 영상을 몇 편 찍어 올린 것을 보니 청년이 참 괜찮아 보였습니다. 원래 그 아들은 집안의 큰 골칫거리였지만, 지금은 그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들을 너무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번민이 생기고, 아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원망해 보지만 결국 그런 감정들도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사랑해도 기뻐할 수 있고, 남들이 나를 미워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남을 미워하는데 어떻게 기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오직 지혜 있는 자만이 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뒤이어 솔로몬은 앞에서 말씀드린 단락을 또 썼습니다.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전도서 9:14-16)

비록 이런 일을 겪을지라도 지혜를 굳게 지켜야 하며, 그 어떤 것도 우리 안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지혜로운 청년은 여전히 기쁘게 밥을 먹고 즐겁게 술을 마시며 진실한 마음으로 자기 일을 감당했고,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그의 미래는 결코 올무에 걸리지 않을 것이며,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치이는 것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여러분은 여전히 하이난항공(HNA)이나 헝다(Evergrande)가 대단해 보입니까?

솔로몬이 총괄한 이 말씀을 여러분이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여러분의 시각이 솔로몬의 시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10년 전의 기회가 오늘의 올무가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3년 전의 기회가 오늘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왜 올무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야 합니까? 멀쩡하고 좋은 일생을 왜 망쳐버려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말한, 의인과 지혜자와 그들의 행위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늘 사람이 죽는 문제를 두고, 마치 제가 말하듯 '살다 보면 결국 죽는다, 살다 보면 죽는다'라고 거듭 말하며 이 일을 마음에 깊이 두라고 한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의 결국이다

죽음이 모든 사람의 결국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결국이기 때문이며, 여러분의 사랑도 미움도 결국 저 푸른 하늘 속으로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사람이 겪는 일을 사람은 능히 알지 못합니다.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하든 죽음이 모든 사람의 결국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늘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악인으로 변하곤 합니다.

상하이의 한 부부가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암에 걸려 큰돈이 들어가게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남편은 "집을 팔아서 날 치료해 달라"고 했고, 아내는 "집을 팔아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했습니다. 둘 다 살고 싶어 한 것입니다. 사람은 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지혜를 잃어버립니다. 죽음이 모든 사람의 결국임을 기억한다면 이런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집을 판다고 해서 삶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살고자 집착하다 보면 악인으로 변질됩니다.

이 부부는 끊임없이 갈등했습니다. 한 사람은 암에 걸렸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암에 걸리지 않았는데, 집 한 채를 두고 한 사람은 살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은 '차라리 빨리 죽지, 돈을 다 치료비로 써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사나? 당신 때문에 온 집안이 거덜 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일이 참 기가 막힙니다.

또 어떤 노인 두 분이 함께 의지하며 살기로 하고, '내가 아프면 네가 돌봐주고 네가 아프면 내가 돌봐주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쪽이 진짜 병이 들자, 건강한 쪽이 떠나버렸습니다. 한가하게 남을 돌봐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에 도망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있을 때 '죽음'이라는 글자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이미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가 더 이상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 아무도 축복할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살하겠다는 뜻입니까?"라고 묻겠지만, 아닙니다. 고요히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저는 금식 기도를 할 것입니다. 단식이 아니라 큰스님들이 하듯 80일간 금식 기도를 하며 조용히 떠날 것입니다. 화장해서 사리라도 나오면 좋겠지요. 그러니 사랑과 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런 것들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이런 것에 계속 휘둘린다면 결국 큰 낭패이며 끝은 다 죽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기뻐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깊이 새기십시오. 어떠한 상황에서든, 언제라도 살아있는 동안 기뻐하십시오. 지혜가 없이 기쁠 수 있겠습니까? 지혜가 없으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왜 기쁘게 살까요? 저는 살아가는 문제를 꿰뚫어 보았고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며, 어릴 때부터 아주 똑똑히 보았습니다.

어릴 적 제가 공부할 때 어머니는 "얘야, 공부 그만하고 쉬어라, 몸 상할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 친구의 부모님이 어머니께 "아이를 어떻게 훈련시켰길래 그러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작은 불을 켜놓고 한밤중까지 공부하길래 내가 제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예요"라고 하셨고, 그 말을 들은 친구 부모님은 "우리 집 아이는 종일 억지로 시켜야 겨우 하는데"라며 속상해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차피 학생으로 사는 것인데 왜 즐겁게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기쁘게 공부하나 억지로 끙끙대며 공부하나 공부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기쁘게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살아가는 것은 기쁨이며, 저는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 신조를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기쁘게 합니다. 어차피 마지막에는 두 다리 뻗고 눈을 감을 텐데, 제 일생은 기쁨으로 가득한 일생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손해를 보는 것도 정상이고 밑지는 것도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제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제 기쁨만은 절대 빼앗지 못합니다. 시험을 망쳤다면 망친 것대로 여전히 기쁩니다. 1등을 해도 기쁘고 꼴찌를 해도 기쁩니다. "정말입니까?"라고 묻겠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기뻐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먹고 마실 때는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무를 먹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드십니까?" 하고, 배추를 먹는 것을 보고도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드십니까?" 합니다. 배추를 먹든 물에 데친 배추를 먹든 제 안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렵게 왔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이후로 마침내 저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실 제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분을 만났으니 그분을 신뢰합니다. 저는 제 일생을 그분의 손에 바쳐 평생 지혜를 나타내며 살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 고통스럽습니다. 나중에 제가 세상일을 관찰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은, 이기적인 사람들은 다 몹시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얻어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평생 베풀며 살겠다고, 제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베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는 '원적(圓寂)'이라는 말이 불교 용어라고 하겠지만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 뜻을 전달할 수 있다면 기분 좋게 그 단어를 빌려 쓰면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 저는 우리 형제자매님들도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인지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온몸에 병을 달고 살지 마십시오. '돈은 없어도 병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다른 것은 다 없어도 기쁨만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어떻게 기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다 없어도 기쁨만은 잃지 말고, 다 있어도 귀신만큼은 들이지 마십시오. 어떤 분이 글을 참 잘 남기셨더군요. "다른 건 다 있어도 귀신은 없어야 하고, 다른 건 다 없어도 하나님은 계셔야 한다." 맞습니다,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전도서 9:8)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러분의 옷을 항상 희게 유지하십시오. 무슨 뜻입니까? 거룩함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하면 악인이 됩니다. 악인이 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하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한 순간도 연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 옷을 항상 희게 유지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내 허물을 씻어내고 더 이상 죄악 가운데 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향하여 죽고 세상 또한 그를 향하여 죽었다면,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가졌습니다! 사는 것이 더 이상 육신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한가하게 자꾸 죄를 지어 무엇하겠습니까? 죄를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기름이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것은 무엇을 위함이었습니까? 사명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을 부어 맛있는 것이나 먹고 호강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사명을 받아야 하며, 머리에 기름이 마르지 않아야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게 됩니다.

또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마십시오. 지나치게 의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여러분이 굳이 억지로 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살아가는데, 여러분이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으며, 오직 그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때에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기회와 올무도 당신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회와 올무도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회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5G가 오니 이것이 기회다, 빅데이터가 기회다, 인공지능(AI)이 기회다 하며 정신없이 바쁩니다. 기회가 올 때마다 "와, 이거 해서 상장해야지!" 하지만 상장하기도 전에 쓰러집니다. 제가 묻습니다. "상장해서 뭐 하려고 그럽니까?" "상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주주들을 속이고 그들의 돈을 내 손으로 가져옵니까?"

상장만 하면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상장한 뒤에는 감독과 규제가 따르는데, 그 규제를 속여 넘길 수 있을 줄 압니까? 마음이 악한 것입니다. 상장이 목적이 아니라 남의 돈을 제 주머니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스스로를 극도로 불행하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를 올무 속으로 밀어 넣고 맙니다.

기회와 미끼는 늘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물고기가 바닷속을 헤엄치다 "어라? 웬 맛있는 게 있지?" 하고 덥석 무는 순간, 그것은 사람이 드리운 낚싯바늘입니다. 결국 낚여 올라가 다음 날 식탁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회와 미끼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명예나 이익 같은 것들을 대단히 조심합니다.

이러한 기회와 올무가 왜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까요? 우리의 노력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며 기쁘게 자기 일을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감사히 받고, 주시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얻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얻는다 한들 기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너무 좁은 사람은 작은 일 하나 해놓고 대단한 공헌이라도 한 줄 알았다가,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으면 집에 가서 끙끙 앓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까? 그러므로 지혜와 넓은 도량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무지한 사람이 왜 늘 스스로를 번민 속에 가두어 둘까요? 속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욕하시는 겁니까? 왜 내 속이 땅콩만 하고 머리가 호두알만 하다고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저는 "당신더러 한 말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게 바로 저잖아요"라고 합니다. 아, 그런 일치점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의 일치이니 제가 사과해야겠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좁은지 기쁨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소하고 자잘한 일에 매달리기를 좋아하는데, 제가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힘들어합니다. "내가 이렇게 위대한 공헌을 했는데."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당신 공헌이 아무리 위대해도 내 것보다는 덜 위대합니다." 저는 평소 사람들에게 "내 눈에 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자주 말합니다.

이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떤 작고 인구가 적은 성읍에 큰 왕이 와서 성을 에워싸고 공격했습니다. 성읍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지혜로 성을 건졌지만, 아무도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 청년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런 일을 두고 솔로몬은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전도서 9:13)

오늘날까지도 제가 여러 사람과 이 본문을 나눌 때 다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십니까? 지혜로운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기쁘게 밥을 먹고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비록 먹는 것이 감자와 배추뿐이고 산해진미나 거창한 잔칫상은 없었지만 기쁘게 먹었습니다. 비록 마오타이나 오량액 같은 비싼 술은 못 마시고 이과두주를 마셨지만 기쁘게 마셨습니다.

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봐 주면 고맙고, 안 알아봐 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좁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솔로몬이 보기에 참으로 광대하고 대단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내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제가 이렇게 설교를 잘하고 말씀의 깊이가 있는데도, 유튜브 조회수가 통 올라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튜브 친구 여러분, 널리 공유해 주시고 홍보 좀 해주십시오. 더 많은 사람을 축복하고 싶습니다"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조회수가 왜 이리 안 나올까?' 싶을 때가 있는데, 동역자들이 "목사님, 우리 트래픽은 다 자체 웹사이트에 몰려 있습니다"라고 위로해 줍니다. 맞습니다, 우리 웹사이트 트래픽은 정말 높습니다.

가끔 유튜브에서 조회수 20만, 30만씩 나오는 영상을 들어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제 설교보다 나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20만 뷰나 나올까 싶어 마음이 씁쓸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안 돼, 안 돼, 마음을 넓게 가져야지. 조회수 따위가 내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다. 볼 사람은 보고 말 사람은 마는 거지'라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인생은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기쁨으로 밥을 먹고, 즐겁게 술을 마시며, 기쁘게 내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평생 하나님께 연출되어 한 편의 멋진 인생 드라마가 되게 하십시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환호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우리의 응원단이 되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기쁘게 살아갈 때마다, 유혹을 이겨낼 때마다, 올무를 분별해 낼 때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박수를 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고, 바울을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 모두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 시작하여, 사명을 가진 자가 되어 이 세상에서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의인이며, 믿음이 있는 자가 의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지혜자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의인이니, 의인과 지혜자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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那个主日讲道之前会讲一个主题,会结合大家面临的问题讲一个主题,不一定只讲一部分的圣经,现在怎么变成传道书的查经了,如果是这样的话,现在的“讲道”的内容是不是应该放到“查经”的部分更合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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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复@ Cher:最近教会的弟兄姐妹很需要传道书的内容,所以就把传道书的内容用来做主日讲道了。还真的有很多得释放的。
@Cher: 那个主日讲道之前会讲一个主题,会结合大家面临的问题讲一个主题,不一定只讲一部分的圣经,现在怎么变成传道书的查经了,如果是这样的话,现在的“讲道”的内容是不是应该放到“查经”的部分更合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