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여러분과 함께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이라는 아주 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보십시오. 지금 다들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저는 돈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하신다면, 돈을 사랑하는 데는 돈을 사랑하는 자의 운명이 따릅니다.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어디에 가 있을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거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처소인 성전에 거하시며, 그분의 전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성전에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사람의 일생의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절망적인 마음을 안고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그 첫날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당장이라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고난을 겪는 것이니 정말 아무런 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만지심을 받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치 수년 동안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습니다.
제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아, 하나님! 당신께서 정녕 여기에 계셨군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마치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같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짐으로 여기는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저는 나의 하나님을 찾았고, 드디어 나의 하나님을 만났으며, 마침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며, 얼마나 절망적인 삶을 살았겠습니까. 보물을 발견하면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내게 하나님이 계셔! 내게 하나님이 계신다고! 난 대박이 났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그때부터 저는 ‘아, 그렇구나.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 하나의 온전한 관점이 세워졌는데, 바로 하나님은 그분의 전에 거하시며, 그분의 이름을 두신 처소, 곧 교회에 거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제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이 세월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교회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은혜이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와 같은 뜻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젯밤에 제가 동역자 몇 사람을 불러서 “잠깐 이리 와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목사님, 지금 못 가요. 사역 중이에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몇 시간째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오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분들에게서 이야기들을 좀 모아 설교 때 간증도 나누고 재료도 좀 얻으려 했던 것인데 말입니다.
여러 팀이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저는 그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장폐색과 난소암으로 아마도 복강 안까지 전이된 상태였고, 또 한 팀은 한 자매님의 어머니를 섬기고 있었는데, 아흔 살 되신 노모가 자주 귀신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의 침상에 올라와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30년 넘게 시력을 잃은 분이었는데, 날 때부터 맹인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눈이 멀게 된 경우였습니다.
이것들은 제가 알고 있는 몇몇 사례일 뿐이고, 제가 알지 못하는 사역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섬기고 있는 사역 중에는 저조차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한밤중에도 사역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그 사역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새벽 3시에도 사역하고 있고, 4시에도, 5시에도 사역하고 있으며,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마치는 것입니다.
저는 깊은 감회에 젖어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라고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성전이 없었다면, 저 자신뿐만 아니라 이렇게 절망 가운데 있던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곳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어떤 사람은 나무와 풀과 짚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만약 나무와 풀과 짚으로 성전을 짓는다면, 불 한 번에 완전히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 큰불이 나서 순식간에 건물 여덟 채가 탔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래서 아십니까? 저는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부터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온 일생으로, 제 목숨을 다해 짓고자 했습니다. 나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금이고, 누가 은이며, 누가 보석입니까? 바로 우리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오직 보배만을 받습니다. 쓰레기로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겠습니까? 여러분, 돈이 많다고 해서 자신이 보배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중심에 그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합니다. 아주 예전에는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잘 몰라서, 교회 안에 그저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들을 다 돌려보냈습니다. 제게는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면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는다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되겠습니까? 그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헌금을 하고 매달 헌금을 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그렇게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로운 형제자매들의 모임입니다. 보배가 아니라면, 같은 비전과 같은 사명을 품고 있지 않다면, 와서 은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저와 함께 교회를 세워갈 수는 없습니다.
“어머, 교회에 조건이 다 있네요? 다른 교회들은 아무 조건도 없던데요.” 맞습니다. 우리는 조건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 헌금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는 “잠깐만요, 먼저 진리를 좀 배우세요. 깨닫고 난 다음에 헌금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돈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로운 형제자매들을 요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논리를 보십시오. 사람이 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건축할 때 누구에게 배워야 합니까? 첫째는 모세에게 배우고, 둘째는 다윗에게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짓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사십 주야를 보내며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도면을 그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짓고 저렇게 지으라며 성막의 식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출애굽기》를 쓸 때 성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지어야만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이후 저도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내 뜻대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집 인테리어 하듯이 지어놓으면 하나님이 거기 거하시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이 반드시 좋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구는 이러이러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경우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도면을 그려주시며 어떻게 건축해야 할지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성전은 온전히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둘 성전과 처소를 건축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은 모두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서신들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아,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저런 것이었구나’ 깨달으며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삶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저는 우리가 완벽하게 적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을 때 그에게는 그 중심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안 된다, 너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왜 저는 안 됩니까?” “내가 네 아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이다. 너에게는 내가 손가락으로 도면을 그려줄 테니 잘 듣고 잘 보아라.” 저는 다윗이 왜 건축할 수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다윗도 충분히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에게 짓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는 이 영광스러운 일에 다윗의 몫도 있게 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몫도 있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이 좋은 일을 어찌 한 사람만 다 차지하게 하겠습니까? 아들을 위해 절반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받은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계시하신 그 성전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아십니까? 벽 널판을 금으로 입히라 하시니 다윗은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그 많은 금이 어디서 난단 말인가?’ 이 기구, 저 기구가 온통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열렬히 연애 중인 남녀가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할 때는 차라리 결혼을 조금 미루는 편이 낫습니다. 결혼하고 나면 원수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를 보면, 여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남자는 다 내어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이것에는 금을 쓰고, 저것에는 은을 쓰라고 하십니다. 설계에 나온 돌은 길이가 3미터, 너비가 1미터 이상, 두께가 1미터 이상이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보았을 때 “세상에, 이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건 그냥 내 아들에게 남겨주어야겠다. 하나님, 부디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은 쉽습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행하시겠습니까? 말씀대로 행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헌신하려는 결단, 아낌없이 내어주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성전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는 도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지 않다면 그 성전을 지어 무엇하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해 있다면, 아무리 거대한 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이는 믿음의 시험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어떠한 중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위해 살기를 원하며, 이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주께서 저를 택하사 주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사오니, 좋습니다. 제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겠나이다.”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치유받는다고 믿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십여 년 전 제가 모두가 치유받는다고 선포했을 때 사람들은 저를 비웃었습니다. 정말로 비웃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당하시겠습니까? “모두가 치유받는다고? 정말로? 에이, 말도 안 돼.” 그러나 저는 모두가 치유받음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오는 형제자매들은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치유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치유받지 못할 그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백 명 중에 한 명은 치유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아, 내가 바로 그 한 사람이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치유받는다고 선포하면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 다윗에게 쉬웠겠습니까?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한번은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아주 믿음이 깊은 노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올해로 여든 살쯤 되셨을 것입니다. 그분을 심방하여 화인명정신학의 논리를 나누었습니다. 수십 년간 목회를 해오신 분에게 사실 저는 제가 이미 행한 일, 지금 행하고 있는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영어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In Singapore, like what you do, it is impossible.” 싱가포르에서 당신처럼 목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여가를 즐기러 교회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안에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교회를 세워야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겠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아침에도 그들이 여전히 기도하고 사역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밤을 새워 섬기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제게 무슨 덕과 능력이 있겠습니까? 내가 무엇이관대 이러한 은혜를 누린단 말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사모하며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자 한다면, 하나님 친히 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한 일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이며,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모두를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자신을 준비하십시오. 일어나서 오직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도전하십시오.
화인명정신학 교회에 온 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2년이 되었다고요? 2년이나 되었는데 왜 여전히 눈이 먼 채로 있습니까? 힘든 사역에 뛰어드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한번은 제가 당번이었던 밤에 한 자매님이 극심한 통증으로 기도를 요청했는데, 제가 너무 깊이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역자가 전화를 받아 새벽까지 사역을 감당했고, 새벽을 지나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섬겼습니다.
제 마음에 얼마나 큰 감사가 넘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 가운데 이러한 형제자매들을 계속해서 일으키시기를 원하시는구나.’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다윗이 받은 바는 곧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것이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해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건축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명정신학의 근본 논리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그 거대한 돌들을 보십시오. 기겁할 정도로 큽니다! 그 돌들을 산에서 어떻게 채석해 냈겠습니까? 한두 덩이가 아니며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그걸 어떻게 옮겼겠습니까? 현대 과학기술로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삼천 년 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어떠했겠습니까?
다윗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마음에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소원을 품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이 짓게 하셨습니다. ‘내 아들이 짓는다면 내가 재료를 준비해야지, 준비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내 아들을 위해 재료를 예비하리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내 몫도 있구나! 나의 큰 몫이 있구나!’ 이것이 다윗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영문도 모르게 순식간에 270톤의 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270톤의 금을 모은 것입니다. 삼천 년 전의 270톤의 금이라니, 지금 가치로 환산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어디서 난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기해합니다. ‘놀랍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금을 주시다니.’ “목사님, 그 많은 금이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입니까?” 그냥 거저 들어온 것입니다. 암몬 족속이 열심히 금을 모아두었는데, 다윗이 암몬을 쳐서 이겼습니다. 승리했으니 금을 거두어들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청일전쟁 때 우리가 일본군에게 패하여 국고의 돈을 고스란히 내주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3천 달란트, 곧 270톤에 달하는 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대적을 물리쳐 승리케 하신 것이 어찌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일생을 보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치던 시절부터 수백 명의 건달과 불량배들을 이끌던 시절까지, 하나님이 도와 다스려주지 않으셨다면 그들을 통솔할 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비범한 사람으로, 매우 저명한 시인이자 탁월한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수많은 시를 썼고 수많은 찬양을 불렀으며, 지금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중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 거친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렸습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다윗은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겠습니까?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그분의 이름을 두신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였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보배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중심이 있습니까? 단언컨대, 하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배이시며, 그 무엇과도 하나님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 일생의 가장 존귀한 보물이시니, 저는 아무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무엇을 준다 해도 결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만이 나의 보배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된 첫날부터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분은 저의 전부이시며 저의 보배이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신앙의 관점을 전수하고자 하며,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의 보배이심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장 진실한 중심을 가진 자가 바로 다윗이었으며, 그는 참으로 탁월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설교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야말로 자신의 보배이심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수준 낮은 삶입니까?
돈이란 인쇄기계로 찍어내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미국인은 초록색으로 찍어내고, 중국인은 붉은색으로 찍어냅니다. 올해는 1조를 찍고 내년에는 3조를 찍고 후년에는 10조를 찍어내다 보면, 찍어낼수록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런 것을 사랑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돈을 사랑하면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며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쇠와 나무며 또 옥을 깎으며 박을 보석과 채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휘관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과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음이며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역대상 29:1-9)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형제자매들이 다윗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의 백성들처럼 온전히 자신을 주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께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의 보배이시며, 우리의 전부이시며,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사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오직 주를 위하여 살기를 원하며, 주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고 주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주를 위해 살기를 원하고 주를 위해 죽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열납하여 주옵시고, 형제자매들의 심령을 다시 한번 일깨우사 우리 안에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열정이 불일듯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전을 온전히 완공하게 하옵소서. 주의 영광이 주의 교회 가운데 충만하게 하시고, 이곳에서 드려지는 모든 기도가 주께 상달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단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사무엘하》 7장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결단하는 내용이고, 6장은 언약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언약궤는 사울 왕 때부터 아무도 돌보지 않아 웃사의 집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웃사는 날마다 그 언약궤를 보았습니다. ‘어느 집 물건이 우리 집에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귀찮아 죽겠네, 대체 뉘 집 물건이야?’ 이 언약궤가 웃사의 집에 수년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정복했는데, 그 예루살렘 성이 있는 곳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원수들을 쫓아낸 후, 그 성중에 언약궤를 모셔오고 하나님의 장막을 치고자 했습니다.
그 장막은 아마도 모세 시대에 지어졌던 장막이었을 것이며, 이미 부속물들이 온전치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지었던 성막의 재료들을 어떤 사람들은 집에 가져가 벽을 쌓거나 작은 헛간을 짓는 데 썼을지도 모릅니다. 덩그러니 마른 궤 하나만 웃사의 집에 남아 있었는데, 웃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웃사가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궤임을 깨달았다면 복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소달구지에 싣고 끌고 갔습니다. 언약궤는 소달구지에 실어서는 안 되며, 사람은 달구지를 탈 수 있어도 언약궤는 사람이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들이 뛰자 언약궤가 떨어지려 하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언약궤를 붙들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매 그가 죽었고, 다윗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사모하여 모셔오려 했는데, 어찌하여 사람이 죽는단 말인가?’ 알아본 즉, 언약궤는 소달구지로 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식을 잘못 적용했던 것입니다. 마치 원자력 발전소를 잘못 다루어 방사능이 유출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이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웃사가 죽었을 때 하나님은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울긴 왜 우느냐, 못난 놈 같으니.” 결국 오벧에돔이 그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언약궤를 모신 후 오벧에돔이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복을 주셨겠습니까? 집안의 모든 병자가 낫고 사업이 크게 번창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나 목사님, 하나님도 돈을 참 좋아하시네요”라고 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돈을 사랑하셔서 부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흥왕하게 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쇠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비쩍 마르고 뒤틀린 열매 같은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인상을 쓰며 억지로 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흥왕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 달 동안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이를 보고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을 축복하는구나. 사람을 치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구나. 그렇다면 계속 남의 집에 둘 수 없으니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와야겠다’ 하고는 예루살렘으로 모셔와 작은 장막을 쳤는데, 참으로 초라한 장막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2층 왕궁에 살고 있었습니다.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내려다보았던 바로 그 2층 궁궐입니다. 둘러보니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것이 어찌 가당한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2주 전에 나눈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를 천막에 두다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노라.’
그는 왜 성전을 사모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위대한 왕의 전을 건축하리라.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리라.’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마음의 태도를 계시해 줍니다. 우리의 중심의 태도가 올발라야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들의 태도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교회 한 자매님이 제게 말하기를, 예전 교회의 목사님이 교인들을 데리고 재정을 위해 기도시켰다고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재정을 위해 기도합니까? 그것은 맘몬이 하는 짓이 아닙니까?” 그러자 자매님이 “교인들의 재정 수입이 늘어나야 헌금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듣자마자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웃사가 하던 짓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하나님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을 도와드리겠다는 생각은 사람을 잡는 위험한 발상이며,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 않습니다. 사역자 여러분 중에 이번 나눔을 듣고 ‘나도 하나님을 도우려 했구나’ 깨달아진다면, 재앙이 임하기 전에 속히 돌이키십시오.
다윗은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사모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전을 건축하고자 결단한 그날부터, 하나님은 그에게 짓지 못하게 하시고 그의 아들이 짓게 될 것이라 계시하셨습니다. 다윗은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재료를 철저히 예비하리라.’ 하나님께서 도면을 주시며 이렇게 짓고 저렇게 지으라, 이 부분은 금을 입히고 저 부분도 금을 입히라 하시니 요구 조건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계산해 보니 금 일만 달란트는 족히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모금된 금이 대략 일만 달란트에 달했습니다. 1달란트가 약 90킬로그램이니, 900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금입니다. 그중 다윗이 얼마를 드렸습니까? 3분의 1에 가까운 270톤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실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때 여러분은 경제를 사랑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겠습니까? ‘이 900톤의 금으로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단언컨대, 가장 근본적인 인프라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성전 건축을 마음에 품은 후부터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넘쳐나도록 풍성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윗은 단번에 270톤의 순금을 비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더니 무엇을 얻었습니까? 금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금과 옥 같은 풍성함이 따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면, 그 일생은 형통하고 지극히 풍요로워집니다.
요즘은 3D 조감도를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3D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여기도 금이고 저기도 금으로 찬란하게 구현됩니다. 성전을 그렇게 그리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 시대에는 3D 조감도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성전이 어떤 모습일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고, 하나님의 전을 생각하기만 해도 영혼에 깊은 만족이 넘치며 이미 본 것과 같았습니다.
‘아, 하나님! 비록 제게는 건축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나 제 마음속에는 이미 설계도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얼마나 눈부시게 찬란한지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자신의 궁전을 지을 때는 나무와 돌, 회반죽과 벽돌, 기껏해야 석고보드에 백회나 바르고 천장을 마감하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을 어찌 그런 재료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벽돌과 모래, 나무와 시멘트, 석고와 페인트 따위로 칠해놓는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님의 전을 지을 때 자신의 궁궐과 같은 규격으로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집은 대충 지을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은 찬란한 금빛으로 지어야 하며 결코 금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여러분의 삶이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다들 무엇을 하며 살았습니까? 지나온 날들을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과 시간을 다투십니까? 다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자원과 재물을 다투십니까? 다투십니다. 돈을 다투십니다.
그 900톤의 금으로 경제를 살리고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무엇이 가장 탁월하겠습니까?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있다면 하나님께 드리고, 재물이 있다면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큰 복입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얼마나 많으며, 경제력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얼마나 부지기수입니까?
우리 세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역사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카다피, 사담 후세인을 아십니까? 그들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어떠했습니까?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때는 일세를 풍미하던 절대 권력자요 패왕들이었으나,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20분 전까지 단상에서 연설하던 자가 20분 뒤에 정권이 전복되어 총살당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의지하는 것들이 진정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암세포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모든 꿈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성전만이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실상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역대상 29:14)
다윗은 금 3천 달란트, 곧 270톤을 바쳤습니다. 세상에, 어깨에 힘을 주고 우쭐대며 거들먹거릴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금을 무려 270톤이나 바쳤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손바닥 하나로 개미나 이를 짓누르듯 인생을 누르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교만하거나 오만하게 굴지 마십시오.
270톤의 순금을 드린 후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무엇이며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이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우리는 실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에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떠나기 전에는 대단한 척 굴었겠지만 말입니다. 암세포에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을 보려면 암 병원에 가보십시오.
한번은 제가 싱가포르에 있고 어머니가 중국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제가 기도해 드릴게요” 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이고, 또 한 사람 나갔다”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무슨 소리예요?” 하니 “또 한 사람 죽어서 방금 옆 병실에서 시신을 밀고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또 “아이고, 또 한 사람 갔네” 하셨습니다. “네? 또요?” “또 죽어서 나갔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거기 더 계시지 말고 그냥 집으로 오세요.”
저는 웬만하면 생일잔치를 거창하게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당신의 생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며, 자칫 비극적인 인생의 기념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거만하게 굴며 생일 한 끼 식사에 수천만 원을 쓰고는, 다음 달 검사에서 폐암 판정을 받고 넉 달 만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 논리를 여러분 심령에 세워야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다윗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저 흙과 같은 존재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저를 깎아내려도 저는 다투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티끌에 불과하며, 이 세상에서 대단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생하시는 참 신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조차 마음대로 주관하지 못합니다. 온갖 꾀를 내어 계획하다가 결국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수고 없이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듯이, 세상의 일은 사람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인과 나그네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역대상 29:14-16)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결코 우상을 숭배하듯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상에게 닭 한 마리, 오리 한 마리를 바치듯 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닭 한 마리, 오리 한 마리가 부족하시겠습니까? 결코 부족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건물이 부족하신 분입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하나님이여,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금과 은을 화려하게 입혀놓고 대단하게 여길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겠습니까? 온 우주 만물이 다 주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까? 3천 달란트, 5천 달란트의 금과 수많은 보물을 준비해 놓고 스스로는 대단하게 여길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대단하게 보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270톤의 금을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가 어디서 그것을 얻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무엇이 가장 값진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며 깊은 탄식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가장 값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하나님이 없으면 무엇을 가졌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좁은 의미에서 그 많은 금이 어떻게 다윗의 손에 들어갔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여러분이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을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 어떤 성도들은 “목사님은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으세요?”라고 합니다. 제가 잔소리를 다 쏟아내어 여러분이 온전히 알아듣는다면 잔소리를 멈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은혜인지 아십니까? 이것을 알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대소변이 막히고, 장이 막히고, 뇌혈관이 막혀 온몸이 막히고 나서야, 그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구나’ 하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든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만물이 다 주께로부터 말미암았으며, 그 만물 가운데는 암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으며 금은보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앙도 내리시고 복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확실한 보상임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세상에서의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까?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한낱 그림자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져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을 대단하게 여겼을 것 같습니까? 그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이 그 어떤 왕위보다 귀하며,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복됨을 알았습니다. 이 땅의 삶은 그림자 같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짓과 같습니다.
평생을 바람을 좇듯 살다가 사라지면 그뿐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사라진 뒤에 평생 모아둔 그 재물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인과 나그네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역대상 29:15)
현실의 삶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하나님이 내 시간을 빼앗아 간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도 해야 하는데 주일도 지켜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성경공부도 해야 하니 시간이 자꾸 부딪힌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습니까?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시고, 초막절도 지키라, 유월절도 지키라 하시니 ‘무슨 절기가 이렇게 많아? 나 돈 벌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시간을 다투시는 것 같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 같으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구별하여 드릴 마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일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지혜로운 결정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두 번째 지혜로운 결정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손해를 보았습니까? 전혀 손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바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드릴 시간부터 가로채 갑니다. 저는 속으로 ‘참으로 어리석구나’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합니다. 뺨이라도 맞을까 봐 침묵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은 헛된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한 것 같지만, 영원히 남을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간을 쟁취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한번은 주일만 되면 회사 서버가 다운되곤 했습니다. 속으로 ‘마귀가 참 간교하구나. 죽으려면 죽어라. 주일 예배를 다 마치고 가서 고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마귀가 보고 ‘이놈 보통이 아니구나’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마태복음 17:19-21)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기도와 금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주께서 여러분을 도우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맡은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는데, 이는 제가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고 내 하나님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사모했는지 아십니까? 예수를 믿은 첫날부터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투자 대비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주께서 제게 직장을 주셨습니다. 비바람이 치든 눈보라가 치든 저는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 무엇도 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율법주의자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여 나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당시 제가 속했던 현지 교회의 구역장은 엉터리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습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구역 모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자리라면 그 시간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구역장이 헛소리를 하면 저는 묵묵히 성경을 깊이 읽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자리를 지킨 것은 사실 아닙니까? 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을 사모하기에, 그 누구도 나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섬김이 고역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형제자매를 섬긴 것 역시 오직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진리입니다.
교회가 오늘날 이와 같이 세워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했으며, 얼마나 사랑했느냐 묻는다면 언제나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갈등이 없었습니다. 주일 예배에 왜 목숨을 걸었겠습니까? 현지 교회 설교가 은혜로워서였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설교가 좋았다면 끝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오직 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시간을 거룩히 구별했고, 다른 일들은 다른 시간에 처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십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다”는 중심이 가득 차 있었기에 금 3천 달란트를 즐거이 바치며 “하나님,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좀 하고 나면 교회 안에서 큰소리를 치며 발언권을 얻으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니, 겉치레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저는 사역할 때 온갖 악습을 가진 사람들이 제 눈치를 보며 체면을 차리려 하는 것을 매우 경계합니다.
“통증이 좀 가라앉았습니까? 좀 나아졌나요?” 물으면 입을 꾹 닫고 대답을 안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제 마음 상할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나았으면 안 나은 것이고, 나았으면 나은 것입니다. 저는 실망하지 않으니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왜 입을 다물고 있습니까? 보고 있는 사람이 더 답답합니다. 거짓말이라도 지어내려는 것입니까? “사실 아주 조금, 눈곱만큼 나아졌어요.” 그런 거짓말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단순하고 솔직해지십시오.
마음이 꼬여 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꼬이게 만드시지 않고 배겨나겠습니까? 인생이 꼬여 있는 분들은 속히 그 뒤틀린 마음을 곧게 펴십시오. 사람이 곧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중심을 감찰하시며,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일 뿐입니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렸나이다
정직한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는다면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내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린다면 마음이 뒤틀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성전 벽에는 금을 바르면서 우리 집 벽에는 도배도 못 했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시다니 난 돈도 없는데…’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드린 헌금은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을 돕겠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드리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뒤틀린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돕는답시고 “하나님, 내가 헌금도 하고 성경공부도 참석하고 설교도 들었는데 내게 도대체 뭘 더 바라십니까?”라고 따지는 꼴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중심을 가진 자가 너무나 적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역대상 29:17-19)
결론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역대상 29:5)
오늘 누가 즐거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이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성경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누가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이 말씀의 기원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전이 어디에 세워졌습니까? 모리아산에 세워졌습니다. 모리아산이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쳤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이 자원하여 드려질 때입니다. 우리 자신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3천 달란트든 5천 달란트든, 200톤이든 300톤이든 500톤이든 아무것도 아닙니다(nothing). 우리의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자와 같이 헛된 이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날이 이르렀을 때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가 “하나님, 제가 왔습니다. 주께서 영원 속에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에 너무 집착하며 살지 마십시오. 이것저것 따지며 계산해 보아야 결국에는 헛되고 헛된 것뿐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이제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온전히 자신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 하시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취해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돼지고기처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고기나 삼겹살처럼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사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며,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 우리의 가장 보배로운 것을 기꺼이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기쁨으로 성전 건축 헌금을 드린다면 그것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먼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번 설교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