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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스가랴 10장 -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이긴 백성이 돌아오리라

2025-07-11 2,938 撒迦利亚书

相关经文

撒迦利亚书-耶和华应许解救
  • 1 当春雨的时候,你们要向发闪电的耶和华求雨。他必为众人降下甘霖,使田园生长菜蔬。
  • 2 因为,家神所言的是虚空;卜士所见的是虚假;做梦者所说的是假梦。他们白白地安慰人,所以众人如羊流离,因无牧人就受苦。
  • 3 我的怒气向牧人发作;我必惩罚公山羊;因我万军之耶和华眷顾自己的羊群,就是犹大家,必使他们如骏马在阵上。
  • 4 房角石、钉子、争战的弓,和一切掌权的都从他而出。
  • 5 他们必如勇士在阵上将仇敌践踏在街上的泥土中。他们必争战,因为耶和华与他们同在;骑马的也必羞愧。
  • 6 “我要坚固犹大家,拯救约瑟家,要领他们归回。我要怜恤他们;他们必像未曾弃绝的一样,都因我是耶和华他们的 神,我必应允他们的祷告。
  • 7 以法莲人必如勇士;他们心中畅快如同喝酒;他们的儿女必看见而快活;他们的心必因耶和华喜乐。
  • 8 “我要发嘶声,聚集他们,因我已经救赎他们。他们的人数必加增,如从前加增一样。
  • 9 我虽然(或译:必)播散他们在列国中,他们必在远方记念我。他们与儿女都必存活,且得归回。
  • 10 我必再领他们出埃及地,招聚他们出亚述,领他们到基列和黎巴嫩;这地尚且不够他们居住。
  • 11 耶和华必经过苦海,击打海浪,使尼罗河的深处都枯干。亚述的骄傲必致卑微;埃及的权柄必然灭没。
  • 12 我必使他们倚靠我,得以坚固;一举一动必奉我的名。”这是耶和华说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스가랴 10장을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장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의 주제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어구와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종합하여 잡은 주제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한 백성이 돌아오리라"입니다. 이번 장의 내용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먼저 2절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스가랴 10:2)

무리가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고난을 받음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이 구절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양에게 목자가 없는 까닭은, 목자들이 모두 헛된 위로만 건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그들이 말하는 것은 허탄하고, 보는 것은 거짓되며, 꾸는 꿈은 헛된 꿈일 뿐이어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는 헛된 위로만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불편한 분들도 있겠지만, 이 구절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스가랴가 전한 이 말씀이 오늘날 많은 교회가 처한 형편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몇몇 형제자매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우리 교회에 오기 전, 본래 다니던 교회에서 무엇을 받았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그저 위로해 주는 사람만 많았고, 어떤 이들은 영적으로 유난을 떨며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 ‘환상과 꿈’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우리 중에도 예전에 그런 잘못을 범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형제와 함께 중증 우울증 환자를 섬기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울증은 사람을 극심하게 괴롭히는 질병이라 그 환자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어디서 배웠는지 환자에게 손을 얹더니 "예수님께서 당신 곁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자는 기가 차서 눈을 희번덕거렸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환자는 그 형제를 매섭게 째려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 환자의 속마음이 읽혔습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겠는가? 이 어리석은 친구가 도대체 무슨 헛것을 본 거냐? 내 곁에 사탄이 서 있다면 차라리 믿겠다! 예수님이 옆에 계시다니, 제발 집어치워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형제를 제가 훈련시킨 줄 알겠지만, 제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에게 진실을 말해 주는 목자가 없습니다. 설령 진실을 말해 준다 해도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겪는 고난에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로 교회 가운데 통치하고 계신다면, 우리가 굳이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고난에는 어떠한 영광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세워가는 교회는 양육하는 교회이며,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하는 백성이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바로 이러한 교회를 일으키고자 하십니다! 성도가 아픈데도 목회자가 그 질병을 영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저 헛된 예언만 늘어놓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부부가 있었는데, 자녀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이 그 집에 찾아와 밥도 해주고 국도 끓여주었지만, 정작 우울증이라는 문제는 전혀 다루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아이를 이미 고치신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짓말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라도 사람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렸을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헛된 위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육신에 속한 악습을 다루어 주어 우울증의 억압에서 풀어주는 일입니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육신의 악습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 사명 신학 목회의 매우 중대한 핵심 요소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내면 훈련’을 한다며 음악을 연달아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그러고 있기에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형제가 "선생님, 저 자매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빨리 가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내면을 훈련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친밀해졌습니까?"라고 묻자 "친밀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해결되지 않았고 마음은 여전히 괴롭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회와 양육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허탄한 짓에 불과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감동을 주시며, 그 자매의 가계 배후에 있는 악한 영이 자매를 괴롭히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자매에게 "가슴에 손을 얹으세요. 제가 기도할 테니 한 구절씩 따라 하세요"라고 한 뒤, 가계 배후의 악한 영을 묶는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그 가문에는 조부모와 고모를 비롯해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5분 동안 기도를 인도한 후,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자매는 다 나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방 안에서 홀로 이틀 동안 ‘내면’을 수련하다가 하마터면 정신을 놓을 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는 육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다루어 주는 사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를 기르면서 나쁜 습관을 제대로 고쳐주지 않아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몸집은 건장한데 중증 우울증에 걸려 칼이나 가위를 들고 위험한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우리가 단계별로 철저히 양육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목자가 없어 양 같이 고난을 받던"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수많은 문제들을 실제로 해결 받았습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10년을 머물렀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수준이 아직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이 너무 고집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목자가 없다"는 것이 정말로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목자들이 매일 가짜 놀음만 하며 허탄한 것을 말하고, 거짓된 것을 보며, 헛된 꿈을 꾸고, 헛된 위로만 건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사람은 반드시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온라인 중심이다 보니, 채찍이 짧아 여러분을 직접 칠 수 없다는 작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군대 훈련소나 수용소 같은 곳을 만들어 여러분을 데려다가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 있다면 참으로 효과적일 텐데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종종 하지만 아직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군에게 붙잡혀 가면 금방 고쳐질 것입니다. 채찍으로 호되게 때리면 새벽 5시가 아니라 새벽 4시에도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매를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말로 권면하고 책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목자들을 향해 발하심

나의 노가 목자들에게 불을 뿜으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스가랴 10:3)

"하나님의 진노가 목자들에게 발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반드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망쳐놓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와 관련된 사례를 이야기하자면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한 암 환자가 있었는데, 그녀의 담당 목사가 그녀를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일종의 ‘외주’를 맡기려 한 것입니다. 제가 "이 자매가 암에 걸린 것은 분명 암을 유발하는 체질과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그 목사는 "그러니까 당신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저를 찾아온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지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목사는 "아닙니다. 당신이 틀렸습니다. 이 자매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라고 묻자, 목사는 "예배 때마다 가장 먼저 교회에 와서 의자 정리를 돕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너무나 종교적인 열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자매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한 시간 동안 자매를 사역할 때, 목사님도 곁에서 한 시간 동안 함께 사역하십시오." 저는 각처에 하나님의 양 떼를 바르게 먹이는 훌륭한 목회자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그건 안 됩니다.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맡은 성도가 암에 걸렸는데 시간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국을 끓여 병문안을 가고, 좋은 의사를 알아보라며 헛된 위로를 건넬 시간은 있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목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발하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헛된 말을 해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짚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양육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양육하지도 않는 사람의 육신을 건드려 바로잡으려 한다면 분란만 자초하는 꼴이 됩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미친개처럼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기라도 하면 광견병 주사나 맞으러 가야 할 판입니다.

전에 뇌암에 걸린 한 성도를 섬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성도가 저를 찾아왔을 때, "본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모릅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정성껏 국을 끓여다 줍니다"라고 했습니다. 국을 끓여다 주는 것만이 사랑입니까?

이후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마침 싱가포르를 자주 오가며 제가 귀신을 쫓아내고 사역하는 모습을 보았던 그녀의 남편이,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저를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기도를 통해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치유된 이후의 이야기는 화가 나서 더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제 저를 따라 제대로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님 안에는 여전히 암을 유발하는 성격이 남아 있으니 이것을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고학력자였던 그 성도는 지식도 저보다 많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으며, 재력도 저보다 풍부했습니다. 그녀는 "싫습니다! 저는 원래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양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목자들을 향해 쏟아집니다. 목회자가 심각한 질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목회자라는 직분은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반드시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매우 두려운 자리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평신도 목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양육에는 반드시 실질적인 알맹이가 있어야 하며, 결코 빗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양 떼를 전쟁에 능한 군사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 떼는 싸우는 백성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스가랴 10:3)

전쟁터의 준마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진형을 갖추고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스가랴 10:4-5)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믿었으니 구원받았고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지는 그때 가보아야 압니다! 어떤 이는 "선생님, 제 믿음을 흔들지 마세요. 저는 틀림없이 천국에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혼자 그렇게 확신하십시오! 성경에 어찌 그런 맹목적인 확신이 있습니까?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싸우는 군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양 떼는 그저 "매애" 하고 울기만 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원수를 짓밟는 군사들입니다!

영적 전쟁을 하지 않는 자는 계수되지 않습니다. 민수기에서 계수한 사람들은 칼을 차고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자들은 수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곧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곧 여호와의 군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귀신에게 억눌린 자들과 중병에 걸린 자들을 치유하고 자유케 할 수 있습니까? 그 배후에 귀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군대요, 싸워 승리하는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고치고 해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용사입니다!

초창기 우리 교회는 매우 황폐했습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300명의 용사를 달라고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300명은 불가능해 보였기에 그저 120명만이라도 세워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의 비전은 ‘정예병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모든 성도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이 교회가 싸우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싸우는 교회는 훈련의 수고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목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큰 용사로 빚어내는 것입니다.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우리 형제자매들은 나아가 마귀의 우두머리를 단숨에 굴복시키고 있으며, 마귀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두려워 떱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나약하게 우는 자들이 아니라, 유다의 사자처럼 담대한 용사들로 이루어진 정예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교회관입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이 대가를 치르고자 결단한다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직장 상사, 생계, 재정, 건강 등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강한 용사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진실로 응답하시며, 결코 허투루 일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스가랴 10:6)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함께 싸우시며, 함께 승리하시고, 함께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요, 우리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여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억눌린 자를 해방합니다! 어떤 교회의 기도는 왜 응답받지 못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겉치레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된 신앙을 용납하시겠습니까?

최근 한 목회자가 간증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성도 중에 심장병을 앓던 자매가 있었는데, 부친이 치매에 걸렸습니다. 며칠 전 그 자매가 담당 목역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부친의 치매 배후에 있는 귀신을 대적하여 굴복시키자 자신의 심장병까지 깨끗이 나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로 ‘영적 승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사명 신학에서 구원은 곧 승리요, 승리가 곧 구원입니다. 둘은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가벼운 두통 하나도 영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온전한 구원이겠습니까?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에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맹수와 같은 담력을 품고, 영적 용기를 가진 자가 되어 승리를 선택하십시오.

저는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둔 많은 성도들에게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제가 알려준 영적 승리의 방법들은 모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한 형제는 부친이 매일 벽에 인분을 칠하는 기괴한 행동을 하여 온 가족이 견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목사님을 통해 저를 찾아왔고, 저는 이렇게 저렇게 영적으로 대적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부친은 계속해서 벽에 오물을 칠했고, 가정은 파탄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가 영적 전쟁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력한 가르침만 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친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온 집안을 오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거름으로 밭에 뿌린다면 모를까, 집 안에 바르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저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역시 초기에 그러한 영적 공격을 겪어보았기에 그 고통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명백히 더러운 영이 있습니다. ‘악한 영아, 내가 너를 굴복시키지 못할 줄 아느냐?’ 하고 담대히 맞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역사는 영적 전쟁을 통해 임합니다. 우리는 싸워 승리하는 백성입니다. 초창기에는 영적 분별력이 부족하여 마귀보다 1분만 더 버티자는 일념으로 싸웠습니다. 그러다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육신을 따르는 생각(체질)이 귀신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육신의 욕심을 따르고 방종하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제압하면 회복됩니다. 단호하게 육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갖 질병, 특히 기이하고 악한 질병들의 배후에 악한 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 비록 힘들지라도, 온 가족이 악한 영들에게 시달리며 당하는 고통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교회의 가장 주된 사명 중 하나는 성도를 양육하는 것이며, 양육의 핵심 사역 중 하나는 귀신을 쫓아내고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하는 것은 귀신을 부르고, 육신을 다루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마십시오. 선택은 우리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귀신을 끌어들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귀신을 끌어들이면 비참한 고통을 겪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자가 되면 잠시의 수고는 있을지언정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우리의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를 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축사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평신도 사역자는 직장을 잃고 큰 낙심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지 가짜로 섬기는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생계가 막막해진 그에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격려했습니다. 배움이 짧았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성도들을 더 열정적으로 양육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해방하는 사역에 힘썼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섬기며 1년을 보낸 결과, 그는 직장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도전 속에서도 사역을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듭 높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역의 대가로 얻은 은혜가 아니라, 영적으로 싸워 쟁취한 은혜입니다. 그는 1년 만에 놀라운 반전을 이루어 재정 문제까지 해결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싸워 승리하는 자는 반드시 약속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우리는 안으로는 육신의 정욕을 이기고, 밖으로는 마귀의 역사를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면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싸워 승리한 용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마음에 감동이 오십니까? 싸워 승리하는 용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온라인으로 이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은 제가 제 이야기만 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이 진리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기쁨을 잃어버립니까? 우울, 낙심, 괴로움의 영이 틈타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게으름의 영, 음란의 영, 도박의 영이 엄습합니다. 싸우지 않는 삶은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강한 용사가 되어 싸워 승리하십시오. 2천여 년 전 스가랴 선지자는 이미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술을 마심 같이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스가랴 10:7)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앞서 싸우고, 하나님의 견고하게 하심과 구원을 받아 주께로 돌아올 때 참된 기쁨이 넘칩니다.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어서 여호와의 대열로 복귀하십시오!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우리 가운데로 돌아온 성도들도 여호와의 군대로 복귀하여 큰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용사처럼 유다 족속과 함께하며, 술을 마신 것처럼 마음이 상쾌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성도들은 독한 술이 무슨 맛이냐고 묻겠지만, 힘겨운 육체노동을 마치고 땀을 흠뻑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한 잔이 주는 통쾌함과 같습니다.

"목사님도 술을 드십니까?"라고 묻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포도주를 드셨듯이 저 역시 그 시원하고 상쾌한 기쁨의 의미를 압니다. 술 자체의 맛을 넘어, 그 안에 담긴 후련하고 통쾌한 기쁨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자녀들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기쁨이 넘쳐납니다!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마귀에게 짓눌려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살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마귀에게 짓밟히며 사는 분이 있습니까? 싸워 이기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원수에게 처참하게 짓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세를 뒤집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육신의 행실을 죽이고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담력이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담대함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과 담력을 부어주시면 모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세상의 온갖 것은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비극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해지십시오.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우리의 것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승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안타깝게도 이 승리의 맛을 아는 사람이 너무나 적습니다. 헛된 것에 매달리다가 결국 승리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짓밟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반드시 늘어나리라

이 장의 말씀을 읽을수록 우리를 향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스가랴 10:8)

선지자 스가랴는 영적인 시야를 통해, 하나님의 용사들과 함께 길을 열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미리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소수의 정예 용사들이지만 말입니다.

스가랴는 우리가 사명 신학을 세우고, 싸워 승리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하며, 여호와의 교회가 곧 하나님의 군대임을 증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백성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숫자를 좇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강력한 군대가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이제 진영으로 복귀할 때입니다! 마귀 원수를 짓밟는 승리의 날입니다. 우리는 장막 터를 넓히고 줄을 길게 뻗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힘을 다해 섬기지만,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승리하는 용사로 일어서는 것을 볼 때 제 마음에 더 큰 위로와 기쁨이 넘칩니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승리하는 백성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교회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난하거나 병드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승리하여 주님의 복을 누리고, 주님의 군대가 확장되어 옛적과 같이 강력한 용사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원수의 끈질긴 방해와 공격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난관을 하나하나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영계의 대적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원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 포위망을 뚫고 끝까지 전진해야 합니다. 마치 험준한 산과 강을 건너 사방의 포위를 뚫고 승리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했던 역경의 돌파처럼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싸우는 과정이 험난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온갖 시련을 겪을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며, 그 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을 넓혀 그분의 영광을 온 땅에 가득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금 출애굽 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금 출애굽 시키실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을지라도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유자녀와 함께 살아남아 돌아올지라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며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스가랴 10:9-10)

싱가포르에서 단독주택(Bungalow)이나 정원이 있는 고급 주택은 매우 귀하고 비쌉니다.

우리는 온전히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실 땅은 "거할 곳이 부족할 만큼" 넘쳐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지경을 넓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출애굽 한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매이지 않고, 바로의 노예로 억압당하지 않는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역전승을 거둘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조차 보물을 내어놓아야 했던 것처럼, 우리는 원수의 것을 취하여 노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출애굽 한 우리는 광야에서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강력한 군대로 세워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와 앗수르에서 이끌어 내어 길르앗과 레바논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곳조차 거하기에 부족하므로 결국 예루살렘과 약속의 땅 전체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영적 원리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 길을 닦아 놓았으므로 그대로 본받아 걸어가면 됩니다. 이 진리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 또한 아낌없이 흘려보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며 견고해질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서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10:11-12)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때에는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반드시 승리합니다. 주께서 고난의 바다를 지나게 하실지라도, 그 물결을 치셔서 홍해를 가르고 마른땅을 걷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일의 깊은 곳을 말리시고,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시며, 이집트의 권세를 완전히 꺾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하는 그분의 군대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싸워 승리한 백성이 주님의 이름 앞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마음에 거룩한 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과정에 수고와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찬란한 영광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지금은 하나님께서 단비를 내리시는 때이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치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스가랴 10:1)

지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때요, 우리가 주께 간절히 부르짖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비와 같은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셔서, 우리의 발바닥이 닿는 곳마다 주님의 완전한 공급하심을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재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날들은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는 더욱 깊은 승리와 풍성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 지경을 넓혀갈 것이며, 이미 얻은 승리를 굳게 지키고 아직 얻지 못한 기업을 끝까지 취하여 마침내 대적을 완전히 쫓아낼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날이요,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는 날입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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