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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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

2024-03-10 13,290 神同在系列 信靠神 以法莲 玛拿西 神的同在 应许之地 昌盛的路

《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계속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시리즈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이토록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귀신을 끌어들여 귀신이 함께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파멸에 이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일평생 부족함이 없으며, 비록 손에 지팡이 하나만 쥐고 나갔을지라도 돌아올 때는 수많은 소와 양 떼를 이끌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값지고 귀한 것들입니다. 계산해 보십시오, 얼마나 값진 것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까! 야곱이 이것들을 가지고 돌아올 때 그의 형에게 선물로 준 것만 해도 엄청난 가치였는데, 하물며 자기 몫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고 선포한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산과 같은 큰 고난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발아래 짓밟을 수 있으며,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사람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이것저것 바쁘게 살다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린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두 눈을 감고 숨을 거두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 당신의 사랑도 미움도 다 허무하게 사라지고 맙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에 대해 수없이 설교한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목을 처음 보셨을 때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시작이 “나는 죽으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거 너무 불길한 말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는 매우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영생 가운데 살아가기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리지 않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육신이 죽으면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원 속에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겁을 먹었지만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워하지 않는가?’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 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어떻게든 이 땅에서 악착같이 더 살려고만 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어떤 분이 “저희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병원에 모셔가야 할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할 정도라면 그냥 병원에 모셔 가십시오. 묻지도 마십시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리라》입니다. 제가 언젠가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제 몸의 감각도 이상해져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걱정한 것은 ‘화인 사명 신학’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 하는 말이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가상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머리끝이 쭈뼛 서는 분들은 저와 이런 연습을 하지 마십시오. 속에 아직 두려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저와 함께 이 연습을 해보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자신이 곧 죽는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자녀에게 무슨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 집은 너에게 주고, 저 집은 너에게 주마.” 세상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꽤 장수하셨는데, 어느 날 저희를 곁으로 불러 모으시더니 “이 집은 남동생에게 주고, 저 집은 여동생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진멸해야 할 가증한 물건 한 묶음을 주셨는데, 사람 얼굴이 새겨진 옛날 동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동전 묶음을 집에 두었더니 아들에게 비염이 생기는 등 온갖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음을 앞둔다면,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하시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진정으로 원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핵심입니다! 집이나 부동산은 결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돌아보십시오. 그것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집도, 돈도, 그 어떤 것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함께하셔야만 해결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면,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고 계십니까? 온몸에서 라오마(마귀)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저는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 말은 야곱이 한 말입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여러분도 이에 동의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시지만, 약속의 땅으로 가는 광야 길에는 시체가 가득 널브러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셔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인도하고자 작정하셨으나 그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기를 그토록 갈망하심을 똑똑히 보면서도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지기수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교회는 다시 한번 정결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갈망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다시 정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하나 되며, 영광스럽고, 진리를 굳게 지키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정예 군사들의 교회를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강력한 경고를 보냅니다! 주일예배에 나오지 못했다면 담당 목회자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출근해야 해서 못 왔다고 설명하면 저는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아무런 합당한 이유도 없고 설명조차 하지 못한다면, 저는 여러분을 출교시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구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양육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보십시오. 다 쓰레기 같은 자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쓰레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갈망하는 마음이라도 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은 머릿속의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게 와서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선생님, 심장이 아파요”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됩니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이쪽이 아팠다 저쪽이 아팠다 끝이 없으니 정말 탄식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택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찌 보배를 쓰레기로 여기고, 쓰레기를 마음에 가득 채워두고 있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중심을 들여다보셨을 때 똥투성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중에도 개를 키우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왼쪽에도 똥, 오른쪽에도 똥, 개가 설사를 해서 온 집안에 똥이 가득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가 막혀서 발 디딜 틈을 찾아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여러분의 생각을 보셨는데 온통 더러운 배설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즉시 떠나버리십니다. 머릿속에 오물이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런 곳은 라오마(마귀)가 문을 열어보고 “여기 참 살기 좋다”고 들어앉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 키우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여기저기 개똥이 널려 있어서 언제 밟을지 모릅니다. 어떤 자매가 “선생님, 저 개 한 마리 키우고 싶어요”라고 하기에 제가 “됐습니다! 당신 자신이나 먼저 잘 건사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실족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우리 중에 개를 키우신다면 비닐봉지를 챙겨 다니며 개똥을 즉시 치우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성도들에게 “내가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형제가 묘한 표정으로 다가와 묻기를, “만약 목사님이 기도하고 죽었는데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떡합니까?”라고 하며 저를 시험하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설령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선포한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른 것은 다 내려놓을 수 있어도 저의 하나님만큼은 절대 내려놓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저를 본받아 이렇게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수없이 말씀드렸지만, 저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일예배를 빠진 적이 없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흘 일하고 이틀 쉬듯 주일예배를 아무렇지 않게 빼먹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여러분,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 저 역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설령 제가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손으로 교회를 붙드실 것이며,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곱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과거에 그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애굽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성취되었습니까? 아직 가나안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뼛속 깊은 곳에는 ‘내가 죽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이 일에 대해 취한 태도를 보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아,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메어 가라. 그곳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땅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은 시신과 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을 때 품었던 중심이며, 믿음의 담대한 선포였습니다! 그는 죽어서라도 반드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는데, 그 역시 죽을 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장사하지 말고 내 관을 이곳에 두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유골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까지 장사되지 않았고, 그들은 출애굽할 때 그의 관을 메고 함께 나갔습니다. 그것이 몇 년 후의 일입니까? 수백 년 후의 일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결단과 중심이 있습니까? ‘죽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리라! 비록 내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다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의 궁극적인 소망은 죽어서라도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죽은 뒤에 일어날 일들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상관없어 보이고 그가 어찌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내면에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이며, 영계에서 자신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런 믿음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진대 어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지 못하겠습니까? 집도, 돈도, 달러도, 세상의 모든 재물도 하찮게 여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갈망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사업도, 직장도, 육신의 가정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처럼 이러한 믿음의 중심을 품은 적은 무리를 보며 천사들이 환호할 것이며, 하늘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칠 것입니다.

보라! 이 땅에 야곱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또 일어났도다! 보라! 이 땅에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또 일어났도다!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환호할 것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 이 땅에서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바둥거리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빨리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링거를 꽂고 제일 좋은 약을 써서 일 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일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백사십칠 세까지 장수하며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세상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제가 애타는 심정으로 권면하지만 이것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울림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몸에 온갖 질병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 가지를 증명합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하여 귀신이 끊임없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2. 본문 말씀

이스라엘이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창세기 48:21-22)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저희 심비에 깊이 새겨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저희가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이 함께하심을 가장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본받아 주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형통케 하옵소서! 하나님, 죽어서라도 우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사오니, 저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게 하시고, 주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보소서! 주님의 군대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훈련하시고 빚으사 주님의 강한 군대로 만드시고, 원수 마귀를 짓밟으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보게 하옵소서.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저희를 인도하시고 연단하시며 우리 안의 모든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제거하사 더욱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본문의 배경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떤 이가 요셉에게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영이 떠나려 하므로 쇠약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 장자 므낫세와 차자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을 찾아갑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48:3-4)

우리 하나님은 이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가인처럼 이 땅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며 떠돌게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야곱은 계속해서 많은 말을 이어갑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주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48:15-16)

저는 야곱이 하나님에 대해 가진 인식이 얼마나 명확한지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저도 종종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할 때 “내가 마음과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축복하곤 합니다. 참으로 귀한 고백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굴곡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 모든 일에는 다 배후의 영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친정아버지의 드라빔(우상)을 훔쳤고, 결국 에브랏 길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이 왜 이 사건을 언급하겠습니까? 라헬은 바로 요셉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우상을 훔침으로써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고 귀신을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베냐민을 낳을 때 난산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가 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라헬이 길에서 죽었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왜 죽었습니까? 우상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친정아버지의 우상이 효험이 있을 것이라 착각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그 우상이 쓸모가 있었습니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유용하다고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뼈아픈 교훈입니다. 야곱은 자손들에게 “너희는 내 아내 라헬을 본받지 말라. 그녀는 비록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으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었다. 그녀의 속에는 오직 남편의 사랑만이 전부였다”고 교훈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두 아이를 축복합니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주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48:16)

그들이 번성하기를 원했고, 라헬의 실패로부터 영적 교훈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들은 어떤 길을 갔습니까? 여로보암이 일어났고, 에브라임을 필두로 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았고, 다른 지파들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야곱이 차자를 장자보다 앞세우고 장자를 차자 자리에 둔 축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묵상을 줍니다. 야곱 자신이 차자로서 축복을 받은 자였기에, 그는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워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창세기 48:21)

모세는 이 기록을 누구를 위해 기록했습니까? 이 글을 쓴 사람이 야곱이나 요셉이 아니라 모세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백 년이 지난 후 모세가 어떻게 이 일을 알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사백 년간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거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분명 산 위에서 하나님께 받은 계시일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져 모세 시대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아, 오늘 너희가 애굽에서 나온 것은 우리 조상 이스라엘(야곱)이라는 어르신이 백사십칠 세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선포했던 그 말씀의 성취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갈망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사모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직접 들었던 1세대 출애굽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으며,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갑절의 몫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선포가 헛된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렸을 뿐,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신실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했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세대, 곧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어디에 내팽개쳐 버렸습니까? 저는 때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님의 동행을 원치 않는 자들을 과감히 내보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갈망함이 없지 않습니까? 가족을 하나님으로 삼고, 직장을 하나님으로 삼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손쉽게 내려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저를 찾아오는 것은 좋으나, 평안할 때 하나님을 버린다면 저 역시 여러분을 외면할 것입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분명히 보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깨달았습니까? 여전히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여전히 혼탁하고 뒤죽박죽인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우리 교회는 헌금 액수 따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만을 추구합니다. 저는 결코 누룩과 세속으로 오염된 교회를 세우지 않을 것이며, 더러운 것들이 교회 안에 기생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지지 않으나,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경고이자 오늘 우리 세대에게 주시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여러분이 요셉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갑절의 몫을 얻을 것입니다! 훗날 누가 더 많은 분깃을 얻었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갑절의 기업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갑절의 약속을 취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남들보다 두 배, 아니 열 배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스펙트럼 속에서 어떤 이는 아주 적은 것만 얻고, 어떤 이는 넘치도록 풍성하게 얻는 것을 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비유처럼, 하나님은 빼앗아 있는 자에게 더 주십니다. 세상의 눈에는 불공평해 보일지 몰라도 저는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실 때, 저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한 엄숙한 선포입니다.

5. 죽음을 앞두고 가장 염려하고 관심을 두는 일

죽음을 앞두고 가장 관심을 두는 일이야말로 사실 우리가 평생토록 가장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침대에 누울 때마다 마치 관 속에 누워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무엇을 가장 염려할 것인가?’ 그때 여러분의 회사가 상장되었는지가 여전히 중요하겠습니까? 여러분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갔는지가 중요하겠습니까? 추진하던 사업 계약이 성사되었는지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겠습니까? 저는 그런 헛된 것에 추호도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화인 사명 신학조차도 제가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갈망하고 염려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단 몇 년 더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중환자실(ICU)로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몇 년 더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다가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이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이 일에 진정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평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가장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세상일에 온 마음을 빼앗겨 있기 때문입니다. 왜 염려합니까? 썩어질 세상의 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에게 온갖 질병이 찾아옵니까? 우리의 미련과 근심과 두려움이 다 이 세상의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매일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뜻을 깨달으셨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앞둔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왜입니까?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과 집착이 없기 때문이며, 죽음을 의식할 때 가장 본질적인 관심사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임종의 순간에 야곱이 가장 염려했던 일은 오늘 우리가 가장 염려하고 추구해야 할 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매일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오늘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헛된 짐을 능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몇십 년 더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돈이 문제가 되고, 집이 문제가 되며, 온갖 세상사가 다 문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혼할 때 재산 분할이 문제가 되고, 부모가 죽었을 때 유산 상속이 문제가 됩니다. 물론 상속받을 것은 정당하게 받되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우리의 궁극적인 추구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영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편찮으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제가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고통만 당하지만, 저와 함께 있으면 고통받지 않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의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병원에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돈을 쓰고 싶으면 쓰고, 부모님을 고생시키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나중에 제가 어머니께 “누구와 함께 계시고 싶으세요?”라고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웃으시며 “당연히 너와 함께 있어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복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고 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자격이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던 것은 오직 모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악착같이 육신의 목숨만 부지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야곱의 영성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의 방식은 사망의 영을 끌어들이지만, 우리의 방식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끌어옵니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6. 너희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어야 한다

“너희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로보암처럼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최근 제가 여로보암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예전에 베드로를 자주 언급했던 것과 같습니다. 왜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어야 합니까?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하고 고난받은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이며, ‘므낫세’의 뜻은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고난을 견뎌낼 수 있습니까? 왜 억울함을 견딜 수 있습니까? 왜 사람들의 배신과 버림받음을 견딜 수 있습니까? 은혜를 입고 기도로 치유를 받은 뒤 헌신짝 버리듯 우리를 떠나가는 자들이 있어도 우리는 끄떡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지 않으며 갈가리 찢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지극히 강건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이 썩어질 세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어야 한다.” 이 이름들은 요셉이 지은 이름이며, 요셉의 일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름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는 아들들의 이름을 에브라임과 므낫세라 지으며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억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오늘 제가 선포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에브라임처럼 고난받은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은 모든 고난은 육신을 처리하는 과정이었으며, 여러분 속의 믿음을 온전히 검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의 땅에서 반드시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거룩한 갈망을 품으라고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갈망하십시오. 여러분 앞에 놓인 길은 영적 번성의 길입니다! 총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고관이 될 것이며, 지도자가 되지 못할지라도 부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옹졸하고 찌든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비록 환경이 척박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기 전까지 요셉은 십 년간의 노예 생활과 삼 년간의 감옥 생활, 총 십삼 년의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번성했습니까? 그는 노예들 중에서 가장 형통한 노예였고, 죄수들 중에서 가장 형통한 죄수였습니다!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비할 데 없이 존귀한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다가는 귀신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귀신을 끌어들인 인생에 어찌 에브라임의 축복과 므낫세의 은혜가 있겠습니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요셉은 “아버지, 그리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고대에는 오른손을 얹는 것이 더 큰 축복이었는데, 야곱이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이를 바로잡으려 두 아이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으나, 야곱은 손을 어긋맞겨 얹으며 여전히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며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요셉은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야곱 자신도 차자로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 영적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의 뜻인 ‘고난받은 땅에서 번성하게 하심’이 므낫세의 ‘고통을 잊게 하심’보다 더 크고 깊은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을 고난의 현장에서 번성하는 강한 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약간의 고난을 받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번성은 과거 고난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흘린 눈물은 헛되지 않았으며, 가슴으로 흘린 피눈물도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고난이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고난을 통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간 것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낙타 꼬리에 두 손이 묶인 채 수백 킬로미터를 끌려갔습니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며,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한 채 낙타가 가면 걷고 멈추면 서야 했습니다. 그런 혹독한 연단을 통과한 자라야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겪는 고난이 저주를 끊어내기 위한 대가이든,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을 감당하기 위한 연단이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받은 땅에서 반드시 번성하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역사는 훗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타락하여 넘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았습니다. 그 수많은 지파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름이 에브라임이라고 해서 저절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희락’이라고 해서 기쁨이 넘치는 것이 아니며, 이름이 ‘승리’라고 해서 저절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만 그럴듯하게 짓는다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던 한 목회자가 있었는데,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그를 위해 안수기도를 하며 “이제부터 네 이름은 요셉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보았을 때 그에게는 요셉의 면모라곤 눈톱만큼도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또 다른 사람이 “너는 다윗이다”, 또 다른 사람이 “너는 아브라함이다”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 겉치레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옵니까?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목에 십자가를 걸든, 가슴에 십자가를 인두로 지져 새기든 내면의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이 진짜 능력입니까? 고난의 현장에서 번성하는 자가 되는 것, 억울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굳게 지켜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고통을 지우시고 참된 번성을 주실 것입니다!

요셉이 결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애굽에서의 십삼 년 동안 ‘총리 박사 과정’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열일곱 살에 애굽으로 팔려 가 고등학교, 대학교 과정을 거치고, 감옥에서 삼 년간 “어떻게 총리의 직무를 감당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것과 같습니다. 억울함을 묵묵히 견뎌내고 혹독한 훈계를 기쁨으로 받는 자라야 번성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성도들을 양육할 때 마음이 찢어지듯 힘들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책망해도 금세 선악을 분별하며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요셉을 꺼내 들고 에브라임을 꺼내 들어 권면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성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요셉과 같은 참된 믿음이 있기를 갈망합니다. 요셉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무 잘못도 없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진정으로 억울한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제가 제대로 억울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억울하다고 시험에 듭니다. 만약 제가 정말로 여러분을 억울하게 몰아붙인다면 어찌 견디겠습니까? 다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7.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다

오늘 성도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아 내 안에 참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의 뼛속 깊은 곳에 무엇이 들어차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형통하며 결코 혼탁하고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요셉과 같습니다. 우리 속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습니까? 진정 세상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시간을 구별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머물러 있는지 철저히 점검하십시오. 어떤 이는 “목사님, 제가 요즘 또 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죄에서 속히 떠나십시오. 돈을 사랑하면 어디까지 이르는지 아십니까? 대소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대소변 하나 시원하게 보지 못해도 사람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제가 다소 강하게 책망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참으로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확고한 뜻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은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는 않습니까? 거인 아낙 자손을 보고는 두려워 떨면서, 모세를 대적하는 데는 온갖 용기를 내지 않았습니까? 약속의 땅의 원수들과 싸울 때는 간담이 녹아내리면서 주의 종을 향해서는 대적하는 악한 자가 바로 자신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헛된 구호만 외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가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정작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우리 인생의 가장 높은 푯대로 삼고 있습니까?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선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임재를 누리기에 합당한 그릇인지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기에 합당했고, 요셉도 합당했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합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삼가 행하면 복을 받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는 법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을 받는 자리에 있는지, 저주 아래 있는지 분별하십시오. 만약 저주 아래 있다면 속히 돌이켜 복을 받는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몇 번 섬기고 성도들을 조금 섬겼다고 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런 교만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모세가 세웠던 칠십 명의 장로들도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던 어리석은 노인들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우상 숭배의 본질을 얼마나 분별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불렀습니다. 얼마나 혼탁하고 기괴한 영적 간음입니까! 훗날 여로보암도 똑같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윗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저는 성도 여러분이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지 마십시오! 멸망의 길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증한 일입니다! 제가 성도를 엄하게 권징하고 내보내는 것은 단순히 내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와 함께 이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는 온전히 따를 것이요, 세상과 타협하며 가기 싫은 자는 가고 싶은 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원해서 왔다면 은혜를 베풀어 주겠지만, 은혜를 맛보고도 세상을 향해 가겠다면 잡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비난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모세를 비방하고 대적했던 자들이 광야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향한 타오르는 갈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임재를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사업상의 만남은 천금같이 귀하게 여기면서 주일예배조차 거룩히 지키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쓸모없는 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돌이키시겠습니까? 반드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여로보암의 길, 금송아지의 길, 영원한 멸망의 길로 달려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지 결코 가인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인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제단으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겉으로는 종교적 열심을 띨지 모르나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조차 구별하여 드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감당하겠습니까?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거듭 기회를 주고 은혜를 베풀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저 역시 오래 참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광야에서 죽기를 선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도 다시 세상을 사랑하여 금송아지를 쫓아가는 자들이 어찌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나, 스스로 그 약속을 차버리는 자들에게는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유대인들의 실패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헛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약속을 저버린 것입니다. 저는 제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헛되게 폐하여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올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기필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비록 그 땅에 거인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을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맞설 것입니다. 원수들이 칼과 창을 휘두른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제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곳에는 거인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헤비급 권투 경기에서 챔피언들의 주먹이 쇠망치처럼 무섭게 내리꽂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십니다! 믿음을 가진 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왜 두려워하고 염려합니까? 왜 온갖 질병과 문제에 짓눌립니까? 세상의 지극히 하찮은 일들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소한 일은 태산처럼 크게 여기면서 정작 가장 중대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저와 함께 끝까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마침내 뚜렷한 믿음의 절개를 가진 우리가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의 칭찬을 받고 예비된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것, 이것이 제 평생의 유일한 푯대입니다!

이 세상은 곧 지나갑니다. 여러분 내면의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을 온 맘 다해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헛되이 버리지 마십시오. 바울이 선포한 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가진 자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은 평생 저와 함께하셨고, 때가 되면 저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 목회자에게 애타는 마음으로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비극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저는 그들도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자신의 능력 위에 두지 마십시오. 세상의 금송아지 위에 두지 마십시오. 세상의 논리 체계 위에 믿음을 두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위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만을 앙망하십시오! 직장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조해 주실 것입니다. 직장을 구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십시오. 돈을 바라보지 말고, 금송아지를 의지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여실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분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고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서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질지라도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은 눈물로 수놓은 길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영적 갈등은 세상의 논리 체계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매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을 선택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참으로 복됩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생명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된다면 갑절의 기업을 얻을 것이며, 번성에 번성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 지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를 통해 두 몫의 기업을 얻었습니다.

9. 요셉은 기업을 한 몫 더 얻으리라

요셉은 기업을 한 몫 더 얻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한 몫의 기업을 얻는 자가 있고, 두 몫의 기업을 얻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명확하게 분깃을 나누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반열에 서 있습니까? 제게 묻는다면, 저는 한 몫 더, 아니 두 몫, 세 몫이라도 더 얻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 기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결코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많이 취하면 누군가는 적게 받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제가 달려가는 길은 요셉이 달렸던 믿음의 길과 같습니다. 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본받기를 사모하며, 그들의 생애는 제 뇌리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저는 하늘에 저를 위한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하며, 장차 주님께서 내게 열 고을, 다섯 고을, 혹은 거대한 영적 도성을 다스리는 권세를 맡기실 것을 믿습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님 외에 사모할 자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탁월하고 아름다운 선택입니까! 우리 성도들 중에도 저와 같은 중심과 결단을 품은 분들이 많이 계심을 압니다.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은 약속의 땅에서 갑절의 기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고 오직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얽매이기 쉬운 짐을 벗어버리십시오. 스스로 짊어진 헛된 짐이라 할지라도 능히 벗어 던지고 하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마음이 없는 자들은 문밖으로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도, 약속의 땅도, 갑절의 기업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떠나겠다면 기꺼이 놓아드리겠습니다.

10. 결론

이스라엘이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창세기 48:21-22)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한 선포입니까! 야곱의 유언을 우리 심비에 새겨 넣읍시다. 야곱이 걸어간 길, 요셉이 걸어간 길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이정표가 되게 합시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 우리를 위해 영적 디딤돌을 놓아준 것입니다. 애굽을 빠져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도록 격려하며 광야의 멸망을 택하지 말라고 경종을 울리는, 참으로 영혼을 깨우는 말씀입니다!

저와 동일한 믿음의 결단을 품은 성도 여러분, 찬양을 부르며 오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참된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각 교구의 교구장들은 성도들의 상태를 분별하여, 헌금은 하면서도 삶에서는 늘 하나님을 뒷전으로 미루는 자들의 헌금은 정중히 거절하십시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헌금을 걷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오늘 부를 찬양은 우리 화인 사명 음악에서 창작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본받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세상의 안일을 구하지 않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드립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멸망하지만, 환경과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본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담대히 모험하고, 자신을 온전히 드리며, 시간을 구별하여 헌신하고, 이 세상의 모든 얽매인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합시다. 아멘!

다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제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본받아 주님의 임재와 동행을 갈망하오니, 평생 달려갈 길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주님의 약속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며 지금도 우리 삶을 통치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얽매인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짊어지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여,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신뢰하오니 주님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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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恩的燕子
怎么现在每周讲道的文字事工出来那么慢呢?原来星期天下午就出来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