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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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리즈를 바꾸어 영적 속박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이며, ‘속박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도 부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그것에 매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이치를 발견하셨습니까? 속박된 사람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부자유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우리로 은혜를 입게 하사 본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속박 가운데 재물에 매이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재물이라는 것이 참으로 위력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재물을 순금과 은으로 비유하시기도 했는데, 순금과 은, 곧 돈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의 눈이 반짝입니다.

우리 중에 광둥 출신이 계십니까? 광저우나 선전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흔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돈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까?’ 제 말이 틀리지 않았지요? 그들에게는 돈이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제가 저장(절강)이라는 곳도 알게 되었는데, 우리 중에 저장 출신이 계십니까? 저장 사람들도 돈을 아주 사랑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눌 때는 다 좋고 의리도 있으며 인품도 좋습니다. 사업을 할 때도 꽤 괜찮고 규칙도 잘 지킵니다.

하지만 돈 이야기만 나오면, 가령 “이 돈은 못 주겠다”거나 “돈을 갚지 않겠다”고 하면 바로 달려와서 물건을 부수려고 합니다. 아이고, 맙소사! 돈만 닿으면 사람이 금세 얼굴을 바꿉니다. 참 흥미로운 일이지요. 나중에 보니 재물과 돈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이야기할 수 있어도 돈 이야기는 안 됩니다. 돈 이야기를 하면 정이 상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런 속박 속에서 살아가면서, 사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설명도 못 합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며 매우 부자유하게 살아갑니다.

저장에는 참 흥미로운 현상이 있는데, 민영 기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보증 서고, 내가 너를 보증 서며’ 줄줄이 엮여 있는데, 이를 두고 ‘함께 뭉쳐 온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친구가 ‘돈으로 시험해보면 우정의 쪽배가 뒤집히는지 안 뒤집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고요. 아주 좋습니다. 나눔 감사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 가끔 이렇게 좋은 나눔을 해주시네요. 그래서 결국 하나가 쓰러지면 다 쓰러지게 되고, 나중에 다 쓰러지게 생기면 누군가 와서 붙잡아 줘야 하니 모두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너를 보증 서 주었는데, 네가 다른 사람을 보증 서 주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재앙이 누구 머리 위에 먼저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탐관오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 연대보증을 섭니다. 참 흥미롭지요. 이 세상은 연대보증의 세상입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돈 안에 미래가 있습니까?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돈 안에 미래가 있습니까? 사업 안에 미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제가 싱가포르의 한 사업가를 알고 있는데, 그의 사업은 전 세계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의 남동생은 홍콩에서 업무를 총괄하고, 그는 싱가포르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동생이 마흔도 안 되어 암에 걸렸습니다. 집안에 돈은 넘쳐났습니다. 남동생과의 사이가 각별히 좋았기에 그는 의사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 동생을 살려만 주신다면 얼마의 돈이든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남동생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이 죽자 그는 돈 버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왜 다른 길을 찾았을까요? 자신도 곧 암에 걸릴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암에 걸릴 지경이었을까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수많은 수치에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거대한 기업을 세워놓으니 관리가 너무 골치 아팠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터져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그렇게 큰데 무슨 일이 터진들 다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고용한 사람들은 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인데, 그들이 주인을 위해 진심으로 일해 줄 것 같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골치가 아픈 것입니다. 매달 나가는 급여만 해도 수억에 달하니, 세상에, 그 3억이라는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속이 타들어 가는 거지요.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속이 답답할 때마다 먼저 달리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달렸을까요? 발바닥에서 피가 날 때까지 달렸습니다. 발에서 피가 나는데도 계속 달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몸을 아프게 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가게 된 교회가 바로 제가 다니던 교회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던 것이지요. 사실 그가 주님을 믿기 시작한 시기는 제가 믿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했습니다. 나중에 주님을 믿고 나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돈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속박당했습니까? 속박당했습니다! 돈은 있었지만 속박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정말 많습니다. 제가 수없이 보았고, 중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저는 인간이 참으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미 하나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의 삶은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관(棺)을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모습이 꼭 모기 같았습니다. 작은 날개 두 개를 얼마나 빠른 빈도로 퍼덕이는지 모릅니다. 귀가에 날아와 윙윙거리다가 며칠 안 가 죽어버립니다. 그렇게 요란하게 파닥거리다 인간도 한평생 파닥거리다 죽고 맙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수명을 깎아먹기까지 합니다. 몹쓸 짓 한 번 하고 수명이 10년씩 줄어듭니다.

사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릴 때부터 매사에 꽤 초연했습니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특별히 만족해한 적도 없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괴로워한 적도 결코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1등에서 20등 밖으로 떨어져 등수가 20등 넘게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고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냐?”라고 묻더군요. 영적인 사람,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왜 그랬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저 살아가는 것이 별로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을 알고 나서,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정말이지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진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이건 보물이다”라고 했는데, 제가 왜 이것이 보물이라고 확신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갔던 그 교회는 그 시절 싱가포르에서 유일하게 귀신을 쫓아내던 교회였습니다. 귀신을 쫓는 교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이단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쫓는 것을 보러 갔는데, 세상에, 표적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곳인데,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셔서 보물을 찾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를, ‘이 얼마나 대단한가! 영계에서 이런 권세를 가지다니, 정말 엄청나구나! 드디어 든든한 배경을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영계에 든든한 배경이 있고 손에 어검을 쥐고 있으니, 이 영적 세계 안에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닐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귀신을 보면 발아래 짓밟고, 좀 더 큰 귀신을 보면 또 발아래 짓밟고, 더 큰 귀신을 보면 발아래 짓밟으며 “썩 물러가라!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 하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리고 정말 너무나 자유로웠습니다! 어릴 때도 꽤 자유로웠는데,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더욱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훨씬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저의 지극히 보배로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저의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긴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분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며, 이것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로 삼을 것입니다! 가장, 가장 중요한 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30여 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고의 보물인데 장난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어떤 시간도 이 시간을 침범할 수 없었고, 성경공부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말씀드리자면, 당시 제 순장이 성경공부를 정말 형편없이 인도했지만 그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간 것은 하나님을 위해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시간을 이미 거룩하게 구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의 우리와 달라서 한 달에 기도회가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몇몇 사람만 드문드문 참석했고,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번 참석했고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참 대단하지요. 그래서 목사님도 매우 의아해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형제인가? 순장도 아니고 아무 직분도 없는데, 어째서 하나도 빠지지 않는가?”라고 하셨지요. 그 시절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인들이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중국인이라고 낮춰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보물이셨기에, 사람들이 저를 반기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보물이셨으니까요. 아!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던지요! 가끔 분별을 잃을 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맑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평생을 자유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부럽지 않으십니까? 부럽지요. 최근에는 약간의 힘듦이 있었습니다. 왜 힘들었을까요? 교회가 또 새로운 발전 단계에 이르러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지혜와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 일을 행해야 하니 이런 힘듦은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우울증 환자들을 많이 사역해 보았습니다.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요? 세상의 일들을 너무 무겁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똥 경단을 보물로 여겨 평생 쇠똥구리의 운명으로 살아가니 우울증이 오는 것입니다. 왜 우울증에 걸렸습니까? 우울증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보물이 아니라 실제로는 똥 경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투자에 실패하여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와서 겨우겨우 그 매듭을 풀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습니다.

10년 전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석사를 갓 졸업하고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 그 똥 경단 때문이었습니다. 연탄이라도 만들면 또 모르겠지만, 똥 경단은 냄새나지 않습니까?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은 자유를 얻는 것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속박을 깨뜨리고 자유를 얻으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보물입니다. 사람이 평생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헛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에서도 말하지 않습니까. ‘생명도 귀하고 사랑은 더욱 값지지만, 자유를 위해서라면 둘 다 버릴 수 있노라.’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를 아는데, 주님을 믿는 여러분이 도리어 알지 못하고 여전히 똥 경단을 굴리고 있단 말입니까. 오늘은 더 이상 똥 경단을 위해 달려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사람답지도 않고 귀신답지도 않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이 평생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여러분이 무엇을 보물로 여기느냐, 무엇을 귀하게 여기느냐에 있습니다. 무엇이 순금과 은입니까?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는 핵심 이익입니다. 오늘 저의 핵심 이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저의 핵심 이익이며, 그분이 저의 보물이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빼앗아가겠습니까?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거하시는데 말입니다! 최근에 저는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역할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조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함을 알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보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정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복이 있는지요!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보물이십니다! 만사를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얻으십시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8)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 세상의 일들을 조금만 논증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이 여러분에게 약속한 것은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은 단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 안에는 거짓말이 가득 차 있는데, 이 거짓말 중 얼마나 많은 것이 돈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정말 많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돈이 없으면 안 되지!” 오늘 사람들이 또 예전 이야기를 꺼냈더군요. 수년 전에 어떤 여성이 “자전거 뒤에서 웃느니 차라리 BMW에 앉아 울겠다”고 했다지요. 제가 참 기가 막히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수년이 지난 후 보니 BMW도 타지 못하면서 매일 울기만 하더랍니다. BMW에 앉아 울기는커녕 낡은 말 위에 앉아 우는 꼴이지요! 따지고 보면 인간의 일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올해 초에 아흔이 넘으신 한 어르신을 떠나보냈는데, 소천하시고 유골함이 나왔습니다. 작년에 제가 그 어르신을 뵈러 간 적이 있었는데, 참 특이한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연금을 받으시면 전부 현금으로 인출하여 침대 위에 차곡차곡 쌓아두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그 영상을 찍어 제게 보냈는데, 제가 보자마자 “큰일 났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치매가 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거기서 돈을 세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실 돈을 다 세고 나서 다른 묶음과 헷갈려 돈조차 제대로 세지 못하셨습니다.

그 후 치매가 오셨고, 넘어져서 이마를 여섯 바늘이나 꿰매는 큰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나중에는 또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관을 삽입하셨다가, 결국 관을 빼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아흔 살의 모습입니다. 일흔 살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든 살은 그냥 건너뛰더라도, 일흔 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마음속으로 돈을 세며 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면 돈은 저승 노잣돈이 되고 노잣돈이 돈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끝나는 것입니다.

일흔 살인 사람들도 셉니다. 마음속으로 셉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절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치매에 걸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쉰 살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셀까요? 자기가 투자한 사업체 몇 개를 세고, 집이 몇 채인지 셉니다. 그러다 집값이 반토막 나고 폭락하니 세다가 우울증에 걸립니다. 서른 살인 사람도 마찬가지로 셉니다. 다만 스마트폰 뱅킹으로 셀 뿐입니다. 폰을 열어 잔고가 얼마인지 확인하고, 또 얼마인지 확인합니다. 볼 때마다 돈이 생각보다 적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세면 생각보다 많게 느껴져 기분이 또 다르지요. 스무 살짜리도 셉니다. 대출 앱에서 셉니다. 왜냐하면 대출받아서 쓰기 때문입니다. 다들 돈에 심하게 매여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평생을 근심과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계심을 모릅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어쩔 수 없다 쳐도,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이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만, 그것 역시 헛된 소망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의 보물이심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필요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집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생로병사, 우리 평생의 모든 필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집니다.

직장이 필요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직장인이고 일할 나이가 되어 구직 중이라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직장을 창조하시고 기회를 창조해 주실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혼자서 천천히 찾아보십시오. 만약 병이 들었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의 치료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여러분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돈이 듭니까? 돈이 들지 않습니다. 만약 재앙을 만났다면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여러분을 안위하시며,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천 명이 네 왼쪽에서 엎드러질지라도,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은 제가 직접 검증해 보았기에 담대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업이십니다. 기업을 셀 거라면 하나님의 기업을 세십시오. 오늘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그분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현금인출기이시며, 일용할 양식을 반드시 공급해 주시므로 여러분은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시간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용의가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바쁜 일이 많습니다. 왜일까요? 가치가 없고 보상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바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실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 3시에 나한테 와서 1,000위안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왔길래 “왜 아무도 안 왔느냐”고 물었더니, 어떤 사람이 “진짜 주시려고요?” 하더군요. 제가 “그럼 가짜겠냐? 진짜 현금까지 인출해서 준비해 두었는데 왜 아무도 안 가져갔냐”고 했습니다. 아, 다들 후회하더군요.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지 못해서요!

하나님은 진짜 보물이십니다. 대출 빚이 아닙니다. 대출은 빚을 지는 것이지만 보물은 부를 가져다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보물이시며, 나의 생명이시요, 나의 진리이시며, 나의 길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기를 바랍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치경제학을 배웁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정치경제학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정치경제학이야말로 보물입니다. 여러분, 혹시 화수분 이야기를 아십니까? 화수분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제가 어릴 때 집이 몹시 가난했는데, 옆집 왕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참 잘해주셨습니다. 온갖 이야기 중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원하는 대로 다 나오는 화수분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저의 화수분이십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그날부터 예수님은 저의 화수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아멘!

2. 본문 말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19-21)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모여서 늘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곁에서 들어보면 “아무개는 집을 사서 20만이 올랐고, 아무개는 집을 사서 30만이 올랐고, 누구는 집을 사서 수십만이 올랐다”는 식입니다. 제가 듣기에는 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너무나 수준이 낮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런 것들을 보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를 놓아 자유케 하옵소서. 맘몬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재물과 관련된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이 오직 주님께만 고정되게 하옵소서.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보물이십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하늘에 있는 우리 계좌에 이미 수많은 보물이 쌓여 있게 하시고, 주님 앞에 칭찬받아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주시고, 무엇이 순금과 은인지, 무엇이 지극히 귀한 보물인지 알게 하옵소서. 오늘 지혜를 얻어 만사를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얻는 법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란 조금 어렵습니다.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참 좋지만 문제는 어떻게 실천하느냐인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에서 나온 것으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산상수훈은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압축하여 마태복음 5, 6, 7장에 기록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보물입니다. 여러분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산상수훈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면 대단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전체의 논리 체계이며, 하나님께서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십니다. “사람은 마땅히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한다.” 다만 사람들이 잘 믿지 않고, 멸망할 때까지 매일 눈앞의 작은 일에만 매달릴 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인간의 전체 가치관, 곧 여러분이 무엇을 보물로 여기느냐가 바로 가치관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면 그 가치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저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면 저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데, 이것을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삼관(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보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얻고, 어떤 사람은 속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얻고, 어떤 사람은 치매에 걸립니다. 질병에 걸리고 암에 걸리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허망한 것을 보물로 여기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수박을 버리고 참깨를 줍는다’고 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수박을 줍는 것과 참깨를 줍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큽니까? 당연히 수박이 크지요. 참깨 하나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 사이에 끼우기에도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깁니까? 예를 들어 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믿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일에 조금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고객을 만나야 한다며 상담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담당 목회자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고객을 만나러 가라고 하십시오. 그 사람은 그것이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억지로 꺾어서 곤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면 그렇게 행하게 두고,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면 나는 내 길을 가면 됩니다.

저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제가 손해 보는 일을 정말 많이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손해 같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이득입니다. 그러므로 이득과 손해의 문제는 하나님의 논리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몹시 근심하며 힘들어했습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섬겨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드십니까?” 자매가 “오빠가 암에 걸렸어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오빠가 암에 걸렸는데 자매님이 왜 힘들어합니까? 나는 자매님이 걸린 줄 알았습니다.” 자매가 “저는 아니지만 하나밖에 없는 오빠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을 조금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재산 나눌 때는 오빠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언제 자매님 몫을 챙겨주려 하던가요? 다 자기 주머니에 넣었지. 재산 앞에서는 오빠의 도리도, 오빠로서의 정도 없었잖아요.” 제가 이 말을 하고 나니 자매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며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더군요.

제가 말을 뱉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남의 남매 관계를 망쳐놓은 것 아닌가 싶어서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일에 매여 있었으니 제가 자유케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을 보물로 여기느냐에 따라 그것을 구하게 됩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사람은 무엇을 구하느냐를 통해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서너 명이 모여 앉았을 때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선생님, 제 직장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해가 됩니다. ‘직장이 당신의 보물이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명의 길을 계속 걸어가지 못합니다. 이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걸어가지 못합니다.

직장이 당신의 보물인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갈수록 더 꼬이고 부자유해지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요즘 너무 갈등이 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갈등됩니까?” “직장 일로 고객을 만나야 할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러 성경공부에 와야 할지 고민입니다.” “고객을 만나러 가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보물입니다.” 우리는 남의 돈줄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남의 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당신의 부모를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를 뼈에 사무치게 원망할 텐데요.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목회자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선행을 행하여 온 세상의 대선인이 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가 좋은 기도가 아닙니다.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큰 길어귀에 앉아 “내가 금식하고 있다”고 과시합니다. 자랑하는 요소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로 구하는 것을 보면 온갖 일들이 다 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선생님, 제 돈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새벽 1시에 자기 돈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돈을 위해 기도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매일 밤 1시만 되면 잠결에 성령께서 자기를 깨워 돈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게 정말 성령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백만 위안을 사업에 다 투자했던 것입니다. 사업에 투자하고 나서 돈을 벌기를 바랐는데, 결과는 ‘개에게 고기만두를 던져준 꼴’이 되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선생님, 저는 원래 사업을 해서 이곳의 가난한 전도자들을 부양하려고 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 말을 듣고 “큰일 났군요. 저주를 받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절대로 전도자를 부양하겠다고 헌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며, 하나님은 여러분의 도움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헛수고를 한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것을 싫어하십니다. 결국 그는 돈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꺾으신 것입니다. 저더러 기도해 달라고 하길래, 그가 묻기를 “그럼 밤마다 나를 깨우는 것은 성령입니까?”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것은 악령입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잠을 잤습니다. 그는 믿지 않고 그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런 일을 하시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가 바로 문제의 본질입니다. 사람이 왜 상처를 받을까요?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건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세서 건드리면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재물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그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의 것을 가로채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시험에 들겠습니까? 그러므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이익을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 더 보배롭습니까? 사람은 세상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눈빛이 흐려집니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붉은색 100위안짜리 지폐가 보입니다. 미국에 있다면 눈이 초록색으로 보일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눈이 붉게 보입니다. 중국의 인민폐는 붉은색이고 미국의 달러는 초록색이기 때문입니다. 눈동자를 통해 그 안에 100위안짜리가 들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다 눈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영이 자유로운지 아닌지는 그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염려합니까? 모든 근심과 염려가 다 재물에 대한 염려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흥왕하지 못하는가?’를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자매가 여전히 속박 가운데 있고, 저 형제가 여전히 속박 가운데 있구나’ 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중히 여기는 것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물로 여기든, 네 마음은 바로 그곳에 있느니라.”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곧 여러분이 보물로 여기는 그곳에 여러분의 마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입을 열면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온통 자기가 관심을 두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늘에 쌓을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이 단락에 주기도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소유하고 계시는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을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물이시다’라는 이 한마디를 반드시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재앙에서 피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절대적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재앙을 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재물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병이 들었을 때 치유를 받겠습니까? 치유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능력이 임하겠습니까?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지혜가 임하겠습니까? 지혜가 임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이 연구직에 종사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남들보다 연구를 훨씬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엔지니어라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여러분의 모든 업무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보물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돌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낙심하고 말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5. 무엇이 당신의 보물인가

무엇이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아십니까? 각자 노트에 한번 적어보십시오. 무엇이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만약 “하나님이 저의 보물입니다”라고 적으셨다면 정답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수년 전에 우리 가운데 한 순장이 있었는데, 사역도 꽤 열심히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사실 그도 별로 감사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의 직장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참 흥미롭게도 기도할 때마다 “선생님, 제 직장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의 직장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돈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왜 옳지 않았을까요? 직장이 그의 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교회는 상당히 무너져 있어서 기도회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교회를 개혁하면서 옛것을 허물고 기도하는 교회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때는 주일 예배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주일 예배가 끝나면 흩어지지만, 그때는 주일 예배가 끝난 후 남아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때의 주일은 온종일 교회에 푹 젖어 있는 진짜 주일이었습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꽁무니를 빼고 잽싸게 도망쳤습니다. 자기 생활을 즐기러 간 것이지요. 좋습니다. 처음에는 겨우 서너 명, 대여섯 명만 남아 저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가 남았습니다. 제가 “어쩐 일로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왜 또 기도받으러 왔습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 이번 시험을 다 망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망쳤다니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받고 나서 신기하게도 시험에 다 합격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아! 하나님이 나의 보물이시구나’를 깨달았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직장이 그의 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꾀가 생겨서 기도회 때마다 남았습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도망치던 또 다른 자매가 돌아왔습니다. “어쩐 일로 또 기도하러 왔습니까? 오늘은 왜 도망가지 않았지요?” “선생님, 시험을 망쳤어요.” 또 시험을 망친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망칠 수밖에 없지요. “선생님,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주었더니 또 합격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참으로 놀랍게 역사하셔서 온 교회가 100% 다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정말 전원이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의 핵심 이익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핵심 이익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핵심 이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하는 것은 직장이거나 시험이거나 이것저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또 개혁되어 사명 신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나를 따르고, 사명이 없는 자는 떠나라고 했더니 결국 다 떠나갔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왜 ‘사명’이라고 부를까요? 하나님을 여러분의 생명으로, 여러분의 사명으로 삼지 않는다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 사람은 요구사항이 많지 않은 다른 교회로 갔습니다. 우리처럼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은 곳으로요.

오늘 여러분은 아십니까?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솔직히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잘해나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경공부와 기도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사역도 하면서 어느 것 하나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돈도 더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이 따르지만, 하나님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진정한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여러분의 자녀, 학업, 직장, 사업을 하나님보다 위에 두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그것들을 하나님 위에 둔다면, 언젠가 저를 찾아와 “선생님,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기도해 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속히 하나님으로 바꾸십시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6.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얻으라

저는 이런 간증을 자주 받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직장을 얻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얻게 하시면 얻지 못할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저는 처음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하나 검증해 갈수록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점점 더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제가 어떻게 검증했는지 아십니까? 처음에는 금요일 성경공부 하나와 주일 예배만 있었고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수요일에 교회 순장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다들 참석했습니다. 저는 학업이나 직장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되어 “학업이나 일에 지장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더니, 다들 “전혀 지장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지장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화요일과 토요일 기도회가 생겼을 때도 다들 참석했습니다. 제가 “학업과 직장에 지장 받지 마십시오”라고 했지만, 그들은 또 “지장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참으로 놀라우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이 생겨났습니다. 그 시간을 아끼려고 해봤자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집니다.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압니다. 틱톡을 보느라 다 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그 시간을 구별해 내었더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호주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 자매님이 한 분 계시는데, 동종 업계에 경쟁자가 많습니다. 다들 실적이 별로 좋지 않은데, 이 자매가 속한 부서만 유독 실적이 좋고 특히 자매의 실적이 뛰어납니다. 자매가 작은 목회자로서 아픈 형제자매들을 섬기며 직장에서도 자주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일도 잘하고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실적이 유난히 뛰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실적이 좋으냐?”고 묻곤 합니다. 사실 자매가 말을 할 때 논리가 아주 명확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최고의 보물로 여겼고, 그 결과 귀신을 쫓아내며 얻은 실적이라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시간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면 성적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절대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내용은 10%의 시간만 들여도 충분하기에 허둥지둥 바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업의 관리자이거나 팀의 리더라면 실적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실적은 예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적 자체를 최고의 보물로 여겨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여길 때 실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줄곧 이 논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하나님을 보통이 아니라 지극히 중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너무 굳어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원칙이며, 저는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상사가 떠나면 제가 그 자리에 오르곤 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일하다 보면 승진했고, 10년 만에 연봉이 10배로 올랐습니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직장에서 아무도 저를 간섭하지 않았고, 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기에 저는 회의실에서 사람들을 사역하고 자유케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나중에 실직하게 된 것은 왜일까요?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지 못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교회를 올바르게 세웠다면 계속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속히 회개했고, 다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며 그분의 방식대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이 되었고, 교회는 결코 돈이 부족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축복을 나누어주는 곳입니다. 절대로 돈으로 하나님을 부양하려 하지 마시고, 돈으로 하나님의 종을 부양하려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여기십시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최고의 권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최고의 보물로 여길 수 있을까요?

7.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어떻게 해야 최고의 보물로 여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임합니까? 여러분이 어디서든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낼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최근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최근에 많은 귀신들이 지각의 돌파를 이루어야만 쫓겨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귀신이 점령한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군이 점령한 곳은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적을 몰아내야 비로소 우리의 땅이 됩니다. 영토를 빼앗겨 분쟁 중인 섬이라면 신분증을 가지고도 갈 수 없는 남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야만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 화인 사명 신학은 매우 명쾌하고 직설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떻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군대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바로 하나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은 오합지졸의 게릴라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건축하는 일입니다. 누더기를 걸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출애굽할 때 성경은 ‘하나님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본뜻은 군대를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요구 기준이 이렇게 높을까요? 기준이 높지 않고서야 어떻게 군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부르면 즉시 오고 명하면 즉시 행하는 군대여야 합니다. 오늘 영적 전쟁을 치르는 우리는 이러한 군대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군대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인들을 몰아내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저 안락한 가정처럼 세우면 결국 각자 자기 생활로 흩어져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섰으며,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그럴 때 여러분은 의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은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면 갈등하고 힘들어지지만, 하나님의 의를 세우면 내면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드립니다. 형제자매들이 주절주절 길게 늘어놓는 이야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단 한 마디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온통 자기 논리만 말하고 있으니 어찌 스스로를 망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제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기도할 때 등이 90도로 굽은 한 자매님이 계셨는데, 저 역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허리가 거의 완전히 펴졌습니다. 이후에 저를 위해 간증문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보물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보물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분을 보물로 여기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필요는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채워집니다. 우리가 왜 자기의 의를 세워야 합니까? 자기 논리를 주장한들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말이 다 맞다 해도 그것은 자기 논리일 뿐 하나님의 의가 아닙니다. 자기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의를 구할 수 없으며, 결국 속박당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가운데 만성 질환으로 매여 있는 자들이 많은데, 왜 그럴까요? 늘 자기의 의를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은 분별법을 몇 가지 나누겠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면, ‘끝났구나, 저 사람은 자기 논리가 강한 사람이다’라고 봅니다. 핑계 주유소를 차린 사람입니다. 주유소 기름보다 핑계와 이유가 더 많습니다. 늘 자기 논리를 따지며 이것저것 따지지만 하나님의 뜻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많으니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굽어지고 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관절염 환자들처럼 이런저런 관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내면에 미움과 용서하지 못함이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논리를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플 수밖에 없지요.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니 관절이 다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스스로를 망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맘몬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으십시오. 여러분을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깨뜨려 버리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우리의 최고의 보물로 삼고 보물을 하늘에 쌓으십시오.

찬양 한 곡을 부르고 오늘의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 화인 사명에서 창작한 찬양으로, 제목은 《주의 임재를 사모합니다》입니다.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셨다면 죄송하지만 여러분의 헌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물이심을 알지 못한다면 헌금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먹여 살리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먹여 살리려는 생각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차라리 우상을 섬기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소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마땅한 바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온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아멘! 헌금의 의미를 모르는 분은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늘 많은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전까지 드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면, 오늘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고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저주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오늘 모두 축복 가운데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아멘?

손을 들고 저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주님을 나의 보물로 삼고, 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저를 열납하여 주옵소서. 제가 이렇게 드리는 것은 마땅한 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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