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教教我怎么给家人传福音,他们不接受属灵的事儿。
我跟你讲,你如果给他们传教,当然人家拒绝你了,你传一个好处,人家为什么不接受?比如说,我们在家里头,形像很烂,比提摩太还软弱,跟提摩太的儿子一样软弱,那一代不如一代,那你怎么传呢?一说就蔫了。
其实我告诉你,人软弱不是个优点。我在家里头,我比较霸道。我从小我就有主意,我还比较小的时候,我们家的一个邻居,我妈和我爸管他叫赵哥,他就说:你看这小子可有主意了。我不爱说话,我瞪了他一眼:用你说呀。我是个很有主意的人。弟兄姐妹要知道,我要想做的事,我一定把它做成了,我不会退后。
我还有另外一个优点,我虽然刚强,但是我不是外强中干,我还有智慧,我知道怎么处理。比如说,家里人去到医院检查身体,看到三高吓得够呛。你说这不是招鬼的事儿吗?你吓得够呛,你以为三高就把我也吓着了?那像我这样的人,我不是传教,我说:嗨!我们家邻居有一个三高好几十年了,还活得挺好呢。他们就觉得:哦,是吗?我说:这三高还是很有盼望的。我这么一说,那我问你,人家反应是会很讨厌你吗?如果我说:哎,你又中了魔鬼的谎言!一下子,人家就烦死了,就是我们得有智慧。
所以说我想给家人传福音,传好处。那人在这世上需要有多少?需要很多,听明白了吧。平时他没什么事儿的时候就讲故事,我们跟家人识别善恶的那种状态,不要说家人看了讨厌,我们自己都讨厌。你们说说看,你们是不是很容易跟家人识别善恶?一整就苦瓜脸了,那怎么整啊?人家也烦,你也烦,你讲的人家不听不要紧。
所以我跟你讲,人要有智慧。你常常讲故事,咱们当中见证这么多,逮着个机会我给你讲一个今天我们发生的事儿,什么什么的。我跟你讲,人一生的需要有多少?人一生需要可多了。我从来不会问我妈:你信不信?我妈说:我不信。然后怎么办?就卡住了嘛。
比如说,我妈的脚被车轮给碾住了,然后把脚从车轮里拿出来,脚底下一块淤青,你怎么办?给那小伙子吓得够呛,然后我打给我妈妈,我就让她按在那个淤青的地方带她祷告,祷告后,我妈啥事儿没有了,正常走路了。
你觉得你妈妈如果遇到这样的事,这么整,你觉得怎么样?哎呀,这挺好。我常常给人传的是好消息,常常给人的是益处,我不传教。你别告诉我传教,我不传教。我不讲你死了上天堂还是下地狱这点屁事,我讲的就是你活着的时候可以得着好处,认识神,这是我们神的逻辑。这就是为什么耶稣基督随走随传,医病赶鬼,让人得着好处。但是得着好处以后,有的人还是不认识神,那没关系的嘛,那就是看他的造化了。
那我带人的时候我不会说:你信不信?他说:不信。那我就凉凉了,我就把我自己整得很被动。我说:来来来,把手按在那儿,一会儿就好。所以你在教会里干啥?常常操练啊。你在教会里不操练,你到时候你能整得了吗?人都有第一次。我不是说那回事啊,我是说什么事都有第一次。
那你比如说有人从外面一瘸一拐走进教会,我在那儿带领赞美诗歌。我问你,带领赞美诗歌重要,还是让那个瘸子走路重要?我说:你把脚放在凳子上。这是我第一次干,但是我信心满满,因为我知道我信的是啥。大家都不唱歌了,都举手在祷告。十分钟以后他的脚好了,在前面一边跳、一边唱歌呢。我问你,是不是经历了神?我跟大家讲,经历神,耶稣基督的好处太多了,但人家不要的话,别逼着人家,我就觉着我们缺少这点智慧。如果你遇到了这种事,咱就事论事,我教你怎么做。
Q2:老师,为什么《旧约圣经》里很多神喜悦的人老年了也生病,眼睛不好使,腿不好使啥的?神不是都应该让祂喜悦的人身体很好吗?
哎,这个问题挺好。我问你,亚伯拉罕到老了眼睛瞎了没有?没有。那以撒到老了眼睛怎么就瞎了呢?如果神不让他瞎,他怎么可能为雅各祝福呢?所以我告诉你,后来以撒的眼睛又好了,给雅各祝福完,这事完成了。
神不大在乎人这样、那样,其实我告诉你,亚伯拉罕也好,以撒也好,雅各也好,到老了身体都很健壮。这雅各把腿拿到床上一躺,然后就睡过去了,就这样了,你啥时候看见让那个瘸了或者咋的了。但是我告诉你,人总有一死,人总有离开世界的时候,这事你改不了。肉身是无益的,叫人活的乃是灵。咱们弟兄姐妹千万不要用属世界的逻辑去看,肉身是无益的,神拿你做点事不行吗?行。
那被神使用一下瞎眼,我告诉你,在耶稣基督里人仍然是健康的。你不要拿那个什么谁瘸了什么的啊。那我问你,雅各被神摸了一下大腿,他就瘸了。有问题吗?没问题啊,但是那个瘸却是让他灵里兴旺的。但不会像我们很多人,生活不能自理。你说为什么?因为他太喜欢靠自己了。我跟你讲,你靠一个自己试试?你靠啥,啥歪啊。
那雅各当时就想靠他那两条腿,他跑百米应该是比吴艳妮还快呢,很可能。因为啥?他哥哥要杀他,他撒腿就跑。这个时候他就跟神摔跤,神说:你过去,不要怕过去。他说:我不过去。结果怎么着?结果这雅各跟神摔跤较劲了,你若不较劲,你瘸啥呀?
你拗不过神的,你好不了的,你跟神较劲,较一个试试?我告诉你,人的胳膊扳不过大腿,那人的大腿也扳不过神的小手指头啊。那你为什么非得跟神较劲呢?所以雅各跟神较劲,所以才瘸了。我告诉你,人这世上没有一件事,是无缘无故的,比如得癌症,那肯定是他心思意念里带来的,还有体贴肉体、爱世界、识别善恶,那这几样你占全了,就彻底完蛋了。你不要以为没事儿啊,你别着急,肯定会有事儿的。你着什么急?趁着没事儿的时候赶紧好好享受生活,等有事儿的时候你想享受也享受不了了,这就为什么人要敬畏神。
其实人家雅各后来学了很多的功课,至于雅各后来一直瘸还是后来好了,我们不知道。但是我们所信的福音,《圣经》怎么说?瞎子看见,瘸子走路,死人从死里复活,让我们知道,让人活着的乃是灵。
Q3:老师,是不是不要相信感觉,冷淡了就选择火热,然后读经、祷告、思想、服侍,慢慢就好了?
其实感觉是很邪性的,千万别相信感觉,学会管理自己的感觉。你看我是通过悟性,管理我自己的感觉。你问我,有没有沮丧的时候?有,怎么可能没有呢?有没有觉得活腻歪了?有,太多了,太常见了,但是我不照着我的感觉走,我照着神给我的责任走。我该做啥,我就好好做,等有一天神把我接走了,神就会说:这是又忠心又良善的仆人。
关键在哪?关键就在于我们爱什么,咱们弟兄姐妹可别小瞧这事儿。《圣经》说:要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但是你不知道要怎么爱,那你知道怎么爱钱吗?那你怎么爱钱,你就怎么爱神不就完了吗?我问你,如果爱神爱到热恋当中,你就会像保罗这样,永远不会冷淡,而且感觉超好。
那你冷淡了,是又有那些爱世界的想法进来了,我告诉你,这是悟性不通。非得顺着这种谎言走,人岂不是要为这些谎言付代价?但是你已经付了很多次代价了,这时候你就要学会总结:哦,这是吃亏的,这是占便宜的,你就知道哪个好了。
所以我这个人不太照着感觉走,我也很少讲感觉这回事儿;我也很少讲看异象,我也很少讲做异梦;我讲责任,这是我的命定,我为此而活,我也为此而生,我为此来到这世上,我也为此而死,这是我的逻辑。为什么爱神这么好?爱神回报高啊,我不傻呀,经常有人就做那些毫无回报、败坏自己的事儿,那不是傻瓜蛋子吗?是不是?那不脑袋长包了,还是脑袋有洞了?所以别傻,要做回报最高的那些事儿。
Q4:老师,提摩太经历了那么多次神,怎么还可以为主作见证维持呢?
因为提摩太看见保罗被抓了,保罗眼看就要被判死刑了,然后他就觉得:神啊,为什么会这样?人一旦有属世界的逻辑体系,就贪图在世上活着这些事儿,全完了。不管你经历了多少次,你没有摧毁属世界的逻辑体系,那就完蛋了嘛。
Q5:老师,真的是最容易被家人辖制,总觉得在为家人好,结果就受伤了。要是对待和自己没啥关系的人,就不会受伤,该怎么正确看待与家人的关系,才能不受辖制?
这个和家人的关系,最容易中魔鬼的谎言。第一,你对家人有期盼,他们应该这样对待你;另外,家人也希望对你有期盼,然后你也经常给家人一点儿恩典,但是你希望家人给你恩典。如果人家不给你,你觉得不划算,然后就生气。所以家人要么在乎对方的感受,有的时候就整岔劈了。所以这些事儿,就让人掉到一些鬼的谎言里。
可是神让我们撇下父母、妻子、儿女、田地、房屋,为啥呢?撇下了才能得着。你不知道,你不明白。所以怎么对待这个家人的关系?用属灵的眼光看,多了解神的话,多了解灵界如何运作。你一看:哇!这是谎言哪。你对家人,不要掉到识别善恶的坑里。对待家人,要有智慧,你没有智慧,你就处理不了。
Q6:老师,您是怎么为您妈妈祷告的?我也要为我妈妈赶鬼。
你要想知道的话,就多操练。比如有一次我妈的眼睛暗淡无光了,脸色也开始变灰白了,然后上气不接下气了。我就坐在我妈床边,我妈就跟我说:儿子啊,妈要死了。我就问你,你会怎么做?你是不是趴在你妈身上,哭着说:妈呀,你不能死啊。整个人就鬼哭狼嚎了。我这一看,嗨!鬼来了。我把我妈的脖领子的衣服一扯就抓,我就给她揪起来了:你想说什么?跟着我祷告!然后我就奉耶稣的名,命令死亡的灵退下去!这死亡的灵,跟我经常打交道,其实都是我手下败将。
那我这一赶鬼,祷告,没多会儿,我妈坐起来了。我说:能坐着啦?行,把腿从床上放下来,再祷告,站起来!我奉耶稣的名,继续带着她祷告,命令腿的力气恢复正常的!其实你们每个礼拜都跟着我参加祷告会,你不知道我咋祷告啊?我没变,就那玩意儿,很简单的东西,那有什么?一点儿也不难。然后我妈站起来了,我说:腿的力气恢复正常!我奉耶稣的名,腿沉的感觉完全消失!听明白了?这是我常做的嘛。
然后我妈开始在屋里走,在客厅里走,一会儿她就在客厅里跑了好几圈,脸色也好了,人气色也好了,跑起来了。我跟你讲,我妈到老了身体都还不错呢。每次我带她出去吃饭,有的时候,我开着我装修用的货车,那车老高了,我妈“噌”的一下就上去了,八十多岁老太太,啥事儿没有。吃饭的时候高兴得要命,一路小跑,挺帅的老太太。我告诉你,她腿一没力,我就为她祷告,一祷告,腿的力气就恢复。那腿的力气是个属灵的事儿,所以说赶鬼是很重要的!
Q7:老师,为什么很多人听说祷告能让人得医治就沉默了?好像我们是怪物似得?
是因为这些人中毒太深,身上鬼太多。其实人笨,就笨在这儿嘛,你可能在讲的时候得医治,你挺兴奋,但他们听了以后吧,他们不觉得这是个好事儿。这种人将来都会受审判,你不要怕。总有人会有信心,因为神总是让人开始经历祂。
你像我有一次在讲道、查经,有的人就觉得我在胡说八道,他在那儿不屑一顾的,他觉得他挺好。哎,有一天鬼来了,他嘴巴张不开了,只能喝水,只能吃液体的,药都喂不进去啊。你说怎么整?他也跟着祷告了。知不知道有鬼了?知道有鬼了。
所以咱们弟兄姐妹别急,在人还没有需要的时候、人不渴的时候,别按他在槽里喝水。人有需要的时候,你一讲,他肯定有反应,听明白了吧?尤其是他在很绝望的时候。第一次去看医生,医生说:这玩意儿不能治,只能回家养。第二次去看医生,另外一个医生说:哎呀,你这病耽误了。你说该信谁的?要给他做手术。你说多吓人哪,做手术就能张开了?怎么连上的都不知道。
所以咱们弟兄姐妹要开始重新了解。你做销售是照着人家的需要去销售,你做这个见证也照着人家的需要去做,人家没有这个需要就算了吧。讲讲故事,愿意听就听,不听拉倒,人家怎么反应咱不用管。
Q8:老师,听到你讲的提摩太身上的性格或者《圣经》里其他不讨神喜悦人身上的特点,我总是第一时间对照,好像都一一对上了,然后我就觉得很灰心,会像他们一样。这个是在靠自己还是悟性不通,该怎么解决呢?
是你不了解神,你不认识神。你对神没有信心,你不知道神有多厉害。其实人对真理不认识,就常常会这样。提摩太悟性是不通的,要知道虽然他跟着保罗,但是悟性不通啊,他不知道,他不了解。像你也是一样,不是我们这个性格、那个性格讲一堆。我得告诉你,你是一个什么样的人,不重要啊,你要做一个什么样的人,才重要啊。把这话记下来,你想做一个什么样的人?很多人不知道。
我给大家讲几个小见证,我上小学一年级的时候,我们家几乎全家五音不全,唱不了歌,一唱歌就跑调。那上小学的时候,小学老师就说:咱们过节,要献一个节目,献一个合唱。大家都站着,有站小凳子上的,有站在地上的,排着在那唱。那大家还没开口的时候我就开唱了,我老也抓不着点儿。大家唱完了我还没唱完,你觉得会怎么样?这不是捣乱吗?老师说:去去去,你到一边儿去吧。我就到一边儿去了,从此以后再也不唱歌了,一辈子不会唱歌。
但是我去了教会,大家都在那唱,反正大家都在那唱,滥竽充数没关系,我也扯着嗓子喊,反正旁边那大喇叭那么响,也听不见我唱。我就跟着唱,这是我开始唱歌的经历。但是还是唱得上气不接下气,然后前句不搭后句,经常调儿也不在调儿上,啥也不是。
有一天开始建立教会了,你不会带诗歌,这不麻烦了吗?我问你,咱不能没有诗歌,没诗歌这玩意儿哪行啊?哎呀,练吧。我就拼命练啊,练会了一首,结果主日就唱那一首。后来练了两首了,主日就唱那两首。大家觉得有没有性格?
我后来报了一个唱歌的班,结果那个班的老师对我唱的老也不满意,人家都唱十首过去了,我这第一首还没过去,第一首就是《给我一杯忘情水》,你知道这东西很受伤啊。你要问我有没有唱歌的天分,绝对没有,五音不全,调不在调上,点不在点上,那可要了命了。卡拉OK,都OK不了,卡拉了,OK了吗?没OK。哎呀,我就得练哪,我就练。但是我告诉你,我终于练了一首了,《昨夜星辰》,练了一首。我唱完了以后他们大家觉得我都唱在点上了,练了一首。
你说你为什么练那个呢?怎么不练圣灵的歌呢?属灵的歌多好啊。哎呀,我就觉着不是这么回事。你比如说跟人家同学、朋友、生意人坐在一起,人家说:老师,你也来唱一首吧。我不能唱完了把人家唱得恶心了,那能行吗?不能讨人嫌,是吧?咱也得来一首。这得会做人哪,对着什么人就得做什么样的人。哎呀,我就感慨啊。
我说的什么意思?我讲了半天,我是说我们是什么样的人不重要,我要学习做什么样的人才重要。我原来都不会做人,做得乱七八糟,现在会慢慢学着做人。你本来是个属肉体的人,现在要学习做属灵的人。这世上没有一件事不是学来的呀,听得懂吗?只要你是天生的,是啥人都是垃圾,天生生下来的就是那玩意儿,光着屁股就出来了,那你不能老做那样的人,光着屁股就出来了。你光着屁股去大街了,警察不找你啊?都是学的。
我跟你讲小孩出生以后,幼儿园老师最先教的就教如何擦屁股,大家知道吗?连擦屁股都得学。我问你,你生来你就会擦呀?不会嘛,都是学的。所以不要以为我像提摩太,那天生的都是提摩太,那可不是这样嘛,那是天生的。所以现在我要做保罗了,我不会唱歌,但是我可以唱《给我一杯忘情水》啊,至少我会唱:啊哈,给我一杯忘情水。大概就这么个意思,我就说,什么都是学的。
你要知道,我这个人,几乎所有我跟大家讲的,没有一个是我天生就会的。我再跟你讲一个啊,我小时候五岁的时候一句话都不说的,我姥姥和我妈以为我是哑巴,所以她们在我后面拍掌我就回头。她们说:他能听见呢,那怎么不说话呢?上完高中,我告诉你,我所有说的话加起来可以用十个手指头数的,我话少。但后来做牧师,你不说话你做什么牧师啊?全是学的。这现在一下子把这过去一辈子的话都补上了。
那你说咋整啊?我这个人只相信学习。我只相信一件事:我要做什么样的人,我学着做。我刚刚开始建立教会的时候啥也不是啊,狗屁不通,不知道怎么建立教会。那怎么办?哎呀,学呗。谁天生会建立教会啊?但是我告诉你,咱们建立的教会绝对是在教会的这个行当里的金字塔的塔尖上。直到今天我还在学习。我以前读《提摩太前书》、《提摩太后书》,我一直误以为提摩太挺不错的,真的,我一直以为提摩太挺不错的。后来读完了以后,哎呀,妈呀,生儿子千万不要像提摩太。
Q9:老师,我知道老马是爱世界、体贴肉体,我应该怎么做才能胜过老马呢?
把这个属世界的逻辑体系,全部改成属神的逻辑体系,这就是为什么我们这么注重查经。把这个属世界的逻辑体系一拆毁;把属肉体的逻辑体系一拆毁,哇,我的天哪,那简直老敞亮了。大家有没有里面憋屈的时候?我告诉你,那东西就叫做属世界。憋屈、难受、辛苦、莫名其妙的辛苦,为什么?属灵高度太低。
那攀登属灵的高峰怎么攀登?认识真理。但是你别着急,一点一点爬,《圣经》里讲的东西一件事一件事整明白就好了,就胜过老马了。我告诉你,老马在你里边毫无所有,因为这世界的神在你的里面毫无所有,你里面全是神的话,你肯定胜过呀。你看耶稣基督,老马能拿祂怎么办?老马被耶稣当作马骑嘛。哎呀,就是一点一点整明白。所以华人命定神学怎么说呢?就是构建了一个真理的框架,然后一点一点地晋升。
你像我们的003课程讲的就是《创世记》,如何读懂《创世记》。那我们的101课程讲的就是一个蒙福的框架:祝福和咒诅;建立教会的重要性;属灵争战是怎么一回事;怎么攀登属灵高峰。102课程是医治释放的理论、103课程是查经的理论、读神的话的理论,104课程就是将来我要讲的建立教会的这个基本理论、教会观。那202、201课程做耶稣基督的门徒,202就是医治释放的实践,是医治释放的实操,或者是疑难杂症。203带领人怎么查《圣经》,204怎么牧养、建立教会。这多好啊。
我想大家来到这个华人命定神学真的有福啊,我们把所有这些困惑的东西都是一点一点整明白的。整不明白,有神的启示,太好了!
愿神祝福大家!
우리는 이제 《디모데후서》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제는 ‘네가 다시 불일듯 일어나게 하라’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면서 “목사님, 저는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열정이 다 식어버린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너무나 익숙합니다. “목사님, 열정이 생기지 않아요. 아무런 감각이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 디모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 형제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디모데는 나중에 변화되었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디모데후서》가 기록되지 않았겠죠.” 나중에 제가 《디모데후서》를 읽어보니 그가 바뀌었습니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냉랭해졌습니다. 아,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그는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기에 바울은 간곡한 마음으로 《디모데전서》를 썼는데, 《디모데후서》를 쓸 때가 되자 이 디모데가 이미 식어버린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로 갔던 것일까요? 참, 우리는 추측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쓴 후, 디모데는 어떻게 되었는가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쓴 후, 실제로 에베소로 갔습니다. 그때 바울과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디모데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버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 곁에 있으니 일단 그런 척, 흉내를 낸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흉내를 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디모데가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고, 소망을 잃어버렸으며, 소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지각(깨달음)이 완전히 막혀버렸습니다. 장폐색으로 장이 막히는 것은 그나마 낫습니다. 변을 보지 못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뇌가 막혀버리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중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장이 막히기 전에 먼저 뇌의 막힘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냉랭해졌습니다.
디모데는 왜 냉랭해졌을까요? 바울이 체포되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왜 우리 사도 바울을 지켜주지 못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바울은 다시 체포되었고, 《디모데후서》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지나친 슬픔으로 인해 냉랭해졌거나, 아니면 어떤 여인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 또한 디모데에게 수없이 바람을 넣었을 것입니다. “디모데, 그만둬! (동북 방언으로 ‘라다오바’, 상하이 방언으로 ‘바울도 안 되는데 네가 여기서 뭘 설쳐?’, 허난 방언으로 ‘그만 까불어!’)”
이 일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과부들이 그의 주변에 있었는지는 우리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때 디모데는 대략 30대 후반에서 40세 정도였습니다. 서른 몇 살, 마흔 살이면 꽤 성숙한 나이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미성숙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바울이 체포되어 충격을 받았거나… 사실 사람이 머릿속에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으면 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모릅니다. 사실 바울이 주를 위해 순교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주를 위해 죽는 복된 죽음이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저는 언제쯤 사람들이 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지 한탄스럽습니다. 사람은 언제쯤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다시금 불일듯 일으킬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식어지거나 냉랭해질 때가 없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습니다. 저는 냉랭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제게는 냉랭해지는 것도 없고, 광신적인 흥분 같은 것도 없습니다. 저는 순전히 지각으로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느낌을 믿지 않습니다. 느낌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저는 지각(悟性)의 가르침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가 언제 느낌을 의지했습니까? 부부가 결혼하면 처음에는 열렬히 사랑해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사도 바울을 본받아 책임을 짊어졌기에 제 안에서는 느낌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따라 행합니다. 좋든 싫든 이 책임이 내게 맡겨졌으니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머리가 아주 맑고 또렷하며, 하나님 앞에서 헛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사실 별로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옛말에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손권) 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낳으면 손권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왕의 역할을 참으로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낳을 때 절대로 디모데 같은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로이스(외할머니)이든 유니게(어머니)이든 간에 디모데 같은 자식은 낳지 마십시오. 디모데는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마치 담장의 풀처럼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흔들리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흔들렸습니다. 중심이 없어서 느낌이 오면 뜨거워지고 느낌이 없으면 냉랭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를 간절히 보고 싶어 했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밤낮으로 간절히 디모데를 보고 싶어 하다
디모데 같은 자식을 키운다면 가슴이 타들어 갈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심하게 말할 수도 없고, 가볍게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합니다. 아들아, 내가 감사하노니, 내가 조상 적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며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이 아이의 표정을 볼 수도 없고 반응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표정을 봐야 보디랭귀지라도 알 텐데 말입니다. 바울은 이 아이가 넘어질지, 연약해질지, 뒤로 물러설지 알지 못했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아들아, 네가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지금은 식어버렸습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자면 디모데는 완전히 소진된, 영어로 ‘번아웃(burnout)’ 상태였습니다.
성경에는 실로 많은 사람이 넘어졌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실제로 “아, 나 좀 쉬었다가 갈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은 믿다가 연약해져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어제 제가 메시지를 하나 받았는데, 어떤 자매가 냉랭해졌다고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뜨거웠던 적도 없었습니다. 냉랭해진 후 하루하루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다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음부에 물집이 생기고 종기가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께 범죄했구나.”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바울은 이 아이 디모데를 마음에 품고 간절히 그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그토록 디모데를 보기를 원했지만, 디모데가 그를 만나러 올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야, 내 겉옷을 가져오너라” 하고 부탁합니다. 아, 이 대목을 말할 때 제 마음에서도 눈물이 나고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형제자매가 연약해진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찢어지는 고통이며, 간절한 그리움입니다.
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이 네 안에도 있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5)
디모데가 이미 식어버렸는데, 만약 그 믿음이 정말 그 안에 있었다면 그가 이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그를 격려하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네 안에도 그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가슴이 찢어지면서도 이런 말을 써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양의 언어입니다.
디모데가 알아들었을 수도 있고,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원래 디모데는 매우 뜨거웠고, 눈물로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섬겼고, 찬양을 부를 때마다 두 줄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당신 안에 있던 그 거짓 없는 믿음은 과거형입니까, 현재형입니까? 현재형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십시오. 그래서 바울은 “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이 네 안에도 있기를 바라며, 네 안에도 있는 줄 확신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러했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그렇게 변해버렸습니까? 그런 거짓 없는 믿음에는 가식이 없습니다.
이제 한 차례 시험을 겪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체포되었고, 에베소 교회는 문제로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 영적 전쟁을 보십시오. 마귀가 어찌 그들을 가만두겠습니까? 사실 제 마음도 늘 아픕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 안에 그 거짓 없는 믿음이 간직되기를 바라며, 여러분 안의 그 열정이 간직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라오마를 이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라오마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 없다면 라오마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라오마가 거짓말 하나만 던져도 여러분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놈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 도(진리)를 굳게 지키고, 진리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고, 인간이 살아가는 일의 본질을 명확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장이 막히고 나서야 깨닫지 말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라오마가 무섭다는 것을 알지 마십시오.
마음속에 깊은 탄식이 들지 않습니까? 저는 진실로 형제자매들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우리 내면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삶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국 살아내는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착하고 얽매여 있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대부분이 그저 육신으로 먹고사는 시시한 일들에 불과합니다. 너무나 저급합니다! 여러분 저급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완전히 바닥 웅덩이와 같은 상태입니다. 사람의 영적 높이가 저 바닥 웅덩이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네가 다시 불일듯 일어나기를 바라노라
최근에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저는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장폐색과 난소암을 앓는 자매가 찾아왔습니다. 아, 그 통증이 밀려올 때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암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화면 너머로도 그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우리 소그룹 목자가 조원들과 함께 하루에 10시간, 12시간, 14시간씩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들의 힘이 다 빠지기도 전에 암 환자가 “통증이 가라앉았으니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처참한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기서 교훈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치기 전에 우리는 다시금 뜨거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대가를 치르며 섬길지언정, 모든 것이 한계에 부딪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열정을 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열정을 낼 힘도 없습니다. 만약 그때 열이 난다면 그것은 체온이 너무 올라 고열이 나는 것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 열과 이 영적인 열정은 다른 것입니다. 수많은 형제자매가 이를 보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큰 충격을 받은 후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디모데후서》 1:6)
이 말씀이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냉랭해진 사람들을 대할 때는 때로 ‘은사’라는 두 글자가 정말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역할 때 어떤 형제자매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는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역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은사입니다. 이때 환상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왜일까요? 환상을 보았다고 하면서 이러저러하다고 말하며 그 환상으로 그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사실 환상을 보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 사역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할 일 없이 환상을 보는데, 사역을 위한 것도 아니고 덕을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며 점치는 것처럼 그저 재미로 봅니다. 그런 짓을 왜 합니까? 때로 형제자매들이 마귀의 거짓말에 빠져 믿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저런 환상과 은사를 자주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다!’라며 깊이 감격합니다.
제가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기도할 때 마음속으로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북돋워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환상이 열려 들판 가득 무르익은 곡식과 이삭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넓은 밀밭을 보며 제가 “이제 풍성한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선포하자 사람들의 믿음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사역할 때는 믿음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이때 바울은 무엇을 기억해 냈습니까? ‘나의 안수로 네게 임한 은사로 인해 너의 믿음이 다시 하나님을 향해 불일듯 일어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후 디모데가 실제로 뜨거워졌습니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디모데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이 길을 가다가 도중에 냉랭해지는 것은 너무나 흔한 현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안에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역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배가 고파 앙앙 울어대면 아이에게 젖 주는 것을 잊어버리겠습니까?”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느낌을 따라가지 말고 책임을 따라가십시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내 아이이고 내 살붙이이기 때문에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목양의 책임은 잊어버립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식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섬긴다면 쉽게 식어지지 않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결코 냉랭해질 수 없습니다. 돌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먹이지 않으면 아이가 울어댑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시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평생 뒤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제 평생 다시는 냉랭해지지 않겠습니다. 제 평생은 주께서 내게 맡기신 책임을 따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사명(命定)’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바를 따라, 우리가 받은 은사를 따라 다시 불일듯 일어나 결코 물러서지 말고 결코 식어지지 맙시다. 사역하다가 “아, 나 너무 지쳤어. 당분간 내려놓고 쉬어야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러서면 곧 침륜(멸망)이며 결코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물러서는 순간 끝장입니다! 그 불을 다시 지피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지니 물러서지 말고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이제 감이 좀 잡히십니까? 디모데가 왜 연약해졌습니까? 왜 냉랭해졌습니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매우 엄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여러분은 “저는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아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겁이 많은 것입니까?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두려움은 참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어떻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죽음의 자리로 나아갔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왜 디모데는 이 대가를 치르지 못했을까요? 아직 마음에 미련과 염려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가 결혼을 했는지 처가살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음에 얽매인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데!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내 아내는 어떻게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사람의 가장 큰 원수는 바로 자신의 집안 식구입니다.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부모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한다면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이 매우 높은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라오마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끝장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디모데를 그리 대단하게 보지 않습니다. 디모데가 대단히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에게는 두려움, 연약함, 냉랭함이 있었고 지각(깨달음)이 부족했습니다. 만약 디모데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바울이 굳이 편지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디모데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언젠가 제가 “아, 저 사람 또 디모데처럼 되었네, 이 사람도 디모데, 저 사람도 디모데가 되었네”라고 말하는 일이 절대로 없게 하십시오. 절대로 디모데처럼 되지 말고, 본받으려면 바울을 본받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비참하게 죽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저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서 늘 숨을 거두고 싶어도 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에 이런 사람들을 염려하느냐고 묻는다면? 염려됩니다. 정말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어찌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연약해지고 싶은 사람은 연약해지고, 디모데가 되고 싶은 사람은 디모데가 되고, 바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바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刚强)과 사랑(仁爱)과 절제(谨守)하는 마음입니다. 이 단어들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강건해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강하게 하실 것이고, 사랑을 품고 섬기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랑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시작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지만,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거기에 배나 진노를 더하게 만드는 것은 귀신입니다. 처음에 여러분 안에 강인함이 있다면 하나님은 배나 더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처음에 약간의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은 배나 더 사랑을 더하실 것입니다. 처음에 절제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배나 더 절제하는 마음을 더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이 귀신을 불러들이는지,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까, 아니면 귀신이 함께합니까? 사람이 연약해지고 넘어지는 데는 늘 핑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핑계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강건함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강해질 것입니다.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절제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절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하여 증언함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8)
이 말씀이 얼마나 엄중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디모데가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를 증언함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니, 주를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단 말입니까! 세상에, 디모데가 도대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간 것입니까? 우리 주를 증언함과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는 그런 심지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9-12)
그리고 바울은 한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여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은 섬김을 베풀었는지는 네가 잘 아느니라 (《디모데후서》 1:16-18)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말씀이 무겁습니까, 가볍습니까? 대단히 무겁습니다. 주를 위해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가 체포되고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며, 내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로마에 있을 때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습니다. 그 후 에베소에서 그가 어떻게 함께 섬겼는지는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바로 디모데를 격려하여,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운 일로 여길 수 있겠느냐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더러 주를 위해 죽으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저의 복입니다. 마침내 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많은 단점이 있을지라도 주를 위해 죽기를 원한다면 단번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너 나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지체 없이 대답하십시오! “집에 가서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집에 가서 다 생각하고 나면 하나님은 이미 받지 않으십니다. 무엇을 생각합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며, 이 복음은 능력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이 내 위에 임하셨는데 내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겼는데 모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역사와 간증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졌고, 동시에 저에게도 빚을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무리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곳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이란 모택동 주석이 말했듯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겠습니까? 그깟 남녀 간의 정과 사사로운 감정을 좇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저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에 더 마음을 두십시오! 오네시보로가 어떻게 행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 연약해지고 식어졌습니까? 누가 당신을 식어지게 만들었습니까? 그 여인 때문입니까? 끝장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독신이 가장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얽매인 것이 있으면 강건하기 어렵습니다. 제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대목을 말할 때면 제 마음은 깊은 감동으로 벅차오릅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평생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을 섬기게 되었으며, 이런 은혜를 입어 주를 위해 죽을 수도 있고 주를 위해 살 수도 있는 기회를 얻었단 말입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대가 지불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세상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십시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을 위하며 선악을 분별하느라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무런 영광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자신을 마귀의 손에 넘겨주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분이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합니다. 내 생명을 그분께 맡기면 그분께서 내 생명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생이 아니라 영생이며, 아무런 영광도 없이 완전히 썩어질 육체가 아니라 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맡긴 것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나는 온 힘을 다해 완벽하게 이루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역할 때마다 암 환자들에게 간곡히 권면하고, 육신을 따르고 세상을 사랑하며 선악을 분별하느라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형제자매들에게 간곡히 권면합니다.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삶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삶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의 결말은 반드시 비극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처럼 반드시 연약해지고 반드시 넘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는 것이 당신의 핵심 이익과 충돌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원 속에서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추구한다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데 어찌 수치스러워하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고역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말씀드리건대, 목회자라는 직분 가운데 저처럼 기쁘게 사역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는 저의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이 인생을 어찌 살겠습니까? 온통 헛된 것뿐인데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굳게 지키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디모데후서》 1:13-15)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두 나라, 두 가지 세계관, 두 가지 가치관의 싸움이며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자신의 핵심 이익으로 삼는다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극소수일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도를 굳게 지키라, 굳게 지키라.” 어떤 이들은 3분의 1은 간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쉬운 줄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세상적인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라오마의 가치관은 받아들이기 아주 쉽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먹고사는 일이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가슴을 쥐어짜며 호소합니다. “너는 지켜야 한다! 네가 내게 들은 바른 말의 본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도를 지키라.” 이제 거의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했는데, 당신의 선한 싸움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한바탕 싸움을 치르게 됩니다. 이것은 두 나라의 영적 전쟁입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히든지, 아니면 기를 쓰고 하나님의 나라로 뚫고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받아들인 세상적 논리는 너무나 강력합니다. 만약 산다는 것 그 자체에만 소망을 둔다면 그만두십시오. 소망이 없습니다. 스무 살이어도 소망이 없고, 쉰 살이면 더더욱 없으며, 일흔 살이 되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전히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깟 일에 집착한다면 끝장난 것이며 라오마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으면 정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의미 없다고 하셨으면 정말 그런 것입니다! 매일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육은 무익하며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은 전쟁입니다! 가치관의 전쟁이며,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귀신과 싸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귀신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결코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에 가르침 받은 아름다운 도를 굳게 지키십시오. 제 안에는 감사가 넘쳐납니다. 영적 세계에서 수많은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겼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 어머니가 저와 함께 사실 때였습니다. 제가 “어머니, 준비하세요. 같이 식사하러 가요” 하고 어머니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소리가 이상해서 돌아보니 어머니의 눈동자가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고, 양손과 양발이 굳어 비틀린 채 입이 돌아가고 침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뇌경색입니까, 심근경색입니까? 저도 무슨 경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막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저는 어머니의 몸에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라오마가 쫓겨나갔습니다! 몇 분 뒤에 귀신이 다시 찾아왔고, 저는 또다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동역자들이 “목사님, 어떡하죠?”라고 묻길래 제가 “무슨 뜻입니까? 병원에 보내자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 뒤,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하러 갔고 어머니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다 비우셨으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으셨고, 이를 직접 목격한 수많은 사람이 “와, 목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제가 믿는 것은 참된 진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질병은 귀신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귀신이 왔는데 병원에 보냅니까? 병원이 귀신을 쫓아냅니까? 솔직히 제가 정말 병원에 보냈다면, 병원은 제게 중풍 걸린 노모를 돌려주었을 텐데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종일 끙끙 앓으며 재활치료나 받고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까? 당신이 믿는 것이 사도 바울의 복음입니까? 오늘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사도 바울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저 목회자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제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너무나 연약합니다! 강건하게 일어나십시오!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한편으로는 강건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가족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섬겨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분이 저와 같은 선천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울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훗날 당신의 어머니가 귀신에게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입이 돌아가고 침을 흘리며 손발이 굳어 있는데 재활치료 받으러 모시고 다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저만의 논리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영적 세계의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복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제 어머니는 진작에 전신마비가 되셨을 것이고, 저는 몇 년 동안이나 마비된 노모를 병수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제 어머니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이 능력 있는 복음을 이 세대에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저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존의 전통 신학의 수많은 것들을 철저히 부정했기에 거의 모든 기독교인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수많은 사람이 은혜를 입고 복음의 유익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디모데는 많으나 바울은 참으로 적습니다. 이제 지금부터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당신과 나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