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今天查《哥林多前书》第二章,感触深呐,比我上次查《哥林多前书》深多了,我成长了。在耶稣基督里看的更加得透彻;在耶稣基督里悟性更加得通透。所以《哥林多前书》第二章的主题:《叫你们的信不在乎人的智慧,只在乎神的大能!》。今天凡是依靠神大能活着的人,一生一定可以活出神的荣耀!人如果在这世上把世上的的事看得太重,一定会活得很卷很卷。听明白了吗?所以不能再走那条把世上的事看得太重的路。把世上的事看得太重,那都是悲剧呀,人为了世上这点事真的会成为一个悲剧!
【问题】1:老师,听了你的讲道,才知道真正的基督徒必须活出命定,做就做得胜的门徒,想请问得胜有什么标准吗?现在自己好像灵里明白看透世上的事,可是遇到问题肉体的感觉总是先占上风,事后才反应过来又后悔,这是不得胜吗?
答:这个问题特别好。这个人的得胜一定是在信靠神的大能的上面,其实神是使你得胜的神。听明白了吗?不是你要怎么弄,是你的信心救了你,是你的信心使你得胜。当我们开始走这条路的时候,大概的过程是这个样子:就是我们一开始,都是在这个识别善恶的平原上跟鬼争战,结果打了一场又一场的败仗。当我们打了一场又一场的败仗,怎么办?像我这样的比较聪明一点的,我想没整对呀?不对。我就开始跪下来寻求神,大家都要知道,都是从不得胜到得胜的。哪有上来就得胜的?没有这回事。
人生下来肯定是要滴啦呱啦的尿炕,肯定需要纸尿片。是不是这么回事?就那样。正常,但是神也一样会把你养大。那后来我跪下来祷告,神就让我读这个雷克乔纳的《末日决战》,读完了,就走了这条登高之路。那这个登高之路是什么意思呢?你就会发现在登高的过程当中,在很低的层次,魔鬼射箭还可以射到你,还能被箭射到你,那叫得胜啊?不是得胜。后来你就爬呀爬,属灵的真理一边走,一边认识,就爬到弟兄合一的这个层次,箭就射不到了;那后来又爬、一直爬到《加拉太书》二章二十节,就是:
我已经与基督同钉十字架,现在活着的不再是我, 乃是基督在我里面活着;(《加拉太书》2:20)
从那往后再走,哎呀,天国的路好平坦呐,好舒畅!你自己去读一下,你就知道我说的这个意思,我今天没有办法把《末日决战》那个稿子念给你。那后来呐?我就觉得这得啥时候才能爬到呀?但是我告诉你,没多久教会的人呐,就呱啦、呱啦开始离开。为啥?不合一的都离开。你问我:害怕不害怕?不害怕。为啥?因为我知道当我们朝着属灵的高峰去攀登,神一定会使我们得胜!然后就突然间整个教会变得非常的合一。那些乌烟瘴气的东西,整天跟我做对的、闹心的,都没了。
但是后来我又走,那个时候心里常常有那种阴霾;一种愁云惨雾,遮盖在我的上面。就是常常有那种莫名其妙的沮丧感、难受。后来雷克桥纳也在那里描述,结果没过多久的时间,我突然间我里面特别特别的敞亮!啊,我明白了。我那个时候里面就有了一个心志:如今活着的不再是我,是耶稣活在我里面。大家能理解吗?我就跟我的同工们分享,我的这种感觉真好啊!突然间那种愁云惨雾没了。哎呀,里面那个舒畅呀,老好了!我怎么描述给你们,我就不知道了。但是我这一路走过来,都是凭着信心,不断地向前走,靠着神的大能。
所以今天我讲的这活,大家不要误解,这是真的,这不是假的,是真的!就是我们的信不在乎人的智慧,只在乎神的大能!这回得胜就是这么得胜的。别着急,相信神!一点一点的得胜;然后认识真理一点一点的认识真理。人一生,千万别枉度此生,好不容易来到这世上,一定要经历我所经历的我的这种感受。能不能给大家来点好像是这种盼望,那是真好啊!
【问题】2:牧师您好!我们已经有三个月的时间,固定在线上学习您宝贵真理,生命获得很多帮助,已超过原来的教会。但还是没有连接上,小组被牧养,现在有一笔十一奉献,不知可否奉献在您的教会?
答:当然可以。但是我真的害怕一个事,弟兄姐妹,我一定要告诉你:我们教会不是要收奉献的教会。大家能明白我的心意吗?我们这个教会不是在乎人的奉献,只在乎人的成长。这是掏心的话,真的不是想忽悠大家。所以后来我就让大家把你的整个注意力,放在你的成长上。听明白了吗?如果能够把你的注意力放在成长上,你可以在网上联系我们的小助手,我们有飞鸽客服。
注意力放在成长上,然后把你的奉献先不要急着做,先分别为圣,奉献先放在一边,你可以单独开一个账号还是怎么样?为啥?我一定要让你知道,我们多么认真的跟你说句心里话,说奉献只要你有这样的心志,神一定纪念。但是教会绝对不是一个敛财的地方啊,教会如果咱们当中的同工过来跟我说:老师,今天有一笔奉献。我说:高兴什么呀?我们的服侍远远没有做好,虽然做的比很多人做得好,我们要把眼睛放在服侍上。直到今天其实很遗憾的告诉大家,我们还有很多做得远远不够啊。
所以这个春节,我们打算透过这个春节这段时间,教大家如何学会主动的学习。你想想看,我们巴不得弟兄姐妹大家都被兴起来,能够参与到各种各样的事工当中。不是说我们希望你老也没有资格奉献,不是。我们要让你知道我们真的不是很爱这个钱,就是希望你知道你能够跟我们一样走这条路。这条路是啥呢?就是服侍的路;祝福人的路。听明白了吗?不像别的教会一提奉献,老认真了,别的什么也不管,就管收奉献。哎呀,我就很感慨。
所以你别着急,神会纪念你,你先把它分别为圣放在一边,等你有资格奉献的时候,你愿意跟我们一同建造神荣耀的教会,神一定纪念你。听明白了吗?我不知道表达对了没有?我很希望大家能够理解我的心意。我想我们在塑造人的方面,你比如说很多人需要职业上的指引,学习上的教导。那你不会学习怎么读神的话呢?所以我想真的希望大家能够被兴起来,跟我们一起建造神荣耀的教会。这是我极大的恩典!
【问题】3:老师能否分享一下教训人和定人罪之间的区别?
答:所有的东西可能做出来的都是一样,说出来的话都是一样,你要想造就这个人和你不想造就这个人。你不想造就这个人,你说出来的实际上就是个挑理,就是个定罪,就是个论断;你要想造就人,那就是一个牧养。所以我们在牧养的过程当中,很注重对付人的肉体,对付人的肉体是一个让人蒙福的很重要的一个环节。听明白了吗?
所以说要造就人,不是说:啊,他就是那个烂样。那就麻烦了。我虽然也说他的问题,他有爱世界,他有识别善恶的问题。但是我说这些,我是要用什么样的方式来祝福他,牧养他,使他从这个辖制里走出来。全看人的动机,包括十一奉献。十一奉献看起来都一样,但是有的人的动机是帮助神,有的人是说,我奉献本来就是我应该做的。
【问题】4:请问老师,您身边有和您相似的人吗?
答:我训练的这些人都和我相似。但是我说句老实话,我也不能说的太直白,但我真是很少碰到跟我相似的人。但是我觉得我很成功的达到一个目标,就是跟着我身边的这些我所训练的同工,多数都有我的样子。
【问题】5:为何说保罗只爱钱,相信混蛋的人会越來越多?
答:为何说保罗只爱钱,相信混蛋的人会越来越多,这是?我没读懂。这问题能不能再重新打一下?
【问题】6:老师,神的大能就是能解决问题,做出来才算数,还有神迹奇事,是这么理解吗?
答:神的大能不是好像是一个虚的东西。神迹奇事是做啥的?你比如说,瘫痪的起来行走。是不是?解决问题了吗?解决问题了。祝福人了吗?祝福人了。那这个瞎眼的看见,瘸腿的行走,长大麻风的得洁净,死人从死里复活,这些都是做啥的呢?好做出来的见证,让我们相信永恒里的荣耀,那才是关键。所以说神的大能包括红海开了,以色列人过红海;包括在矿野里神降下吗哪,以色列人有吃有喝;神的大能包括包山、包海、包罗万象,我们人一生的需求都在耶稣基督里得着满足,这回明白了吗?
【问题】7:请老师再讲解一下保罗说的这句话是什么意思?不明白跟前后文是怎么联系的。
我在你们那里,又软弱,又惧怕,又甚战兢。《哥林多前书》 2:3。
答:咱们大家得知道保罗是不是活在肉身当中啊?是活在肉身当中。他有没有以基督的心为心呐?有。但是他在肉身当中的时候,他有没有软弱啊?有。有没有惧怕啊?有。有没有战兢啊?有。为什么有这些呢?大家得知道,他就怕自己走歪了,因为见到了一群陌生人。我告诉你像我这样的人,我也有这种恐惧。什么恐惧呢?闲着没事一说就嘚瑟。保罗是不是一个有学问的人呢?是有学问的人。但他把他的学问拿出来比划了没有啊?没有。为啥?他就用粗俗的、简单的语言来分享。
他的软弱他讲的很简单,他说:我什么时候软弱,我什么时候就靠着神刚强。如果一个人总觉着自己很刚强,他不刚强,是吧,那叫脆弱。一个人不觉着自己需要惧怕,其实他就容易走歪了,是不是?如果保罗因神的话而战兢,那个战兢就是个好的战兢。其实保罗他不是像一个打鱼的,他里头老多的学问了,他就怕自己讲着讲着就把那些自己的学问拿出来嘚瑟。这回明白了吧?这就连起来了,为啥?因为保罗想我不是没有学问,我是怕我里面那些用智慧委婉的言语,博得了你们的眼球,博得了你们的耳朵,但那却不是神的旨意,这回明白了吗?
【问题】8:老师,近期干什么都觉得没意思,觉得都是虚空,觉得每天做什么事都没有什么价值,有点那种抑郁性格,走不出来的感觉。请老师分享指导一下。
答:这个人经过被打击,以前都觉着自己挺厉害,后来现实生活就把人按在地上了。当我们被按在地上的时候,我们其实就发现自己不行。发现自己不行这个时候你就会发现人里面信心很受挫败,为啥?因为属世界的那套东西正在被拆毁。大家有没有看过达克效应图的那条曲线?就是他的信心先往下掉,因为那是个自信。然后等他的无知的那种状态掉下来的时候,知道自己无知,后来就开始追求属灵的知识。然后真实的信心、真实的知识就开始提起来,人就开始度过了这个S弯,然后就开始寻求永恒里的荣耀。
我想这是一个非常好的阶段,人都走过这段,我也走过,我相信很多人都走过。走过这个弯是不是个好事?是好事。神正在导演一件事,就是让你在这世上靠着自己的能力的那个属世界的盼望正在崩塌,属神的盼望正在崛起,人就变得越来越刚强。拆毁吧,继续拆毁,不要失去盼望。
【问题】9:老师,信靠神的大能,我还不太明白。就是我刚信主的时候很多神迹奇事,但现在没有了,我怎么重新得着神的心?
答:什么叫重新得着神的心?当年神是给你的恩典,不是因为你厉害,你属灵,你够好。当年其实就是很洼,很LOW,听明白了吗?那时候是神给你的恩典,但是你怎么着?你并没有悔改,然后去竭力追求。就在那逛荡、逛荡挺好啊,我这样信主不是有很多神的恩典吗?很多啊。神就把他的恩典给挪走了,为啥呢?人无知。人应该怎么着?人应该在得着神的恩典,被激励然后再去竭力追求,好讨神的喜悦,这回明白了吗?
不是当时你做的够好, 是当时你够烂。靠着神的大能,其实当时你经历了很多,但是你里面的属世界的逻辑体系并没有被拆毁,现在拆毁来得及不?来得及啊。那你怎么才能再次得着神的心?竭力追求认识神。你要靠你自己肯定不行,靠自己就傻掉了嘛。所以人这一辈子最聪明的就是信靠神,一生什么好处都不缺。但是有的人经历完了以后,其实并不悔改。我猜你肯定是那种状况,虽然没有很多的证据证明,但是这个现象应该是这么回事。
我想为什么像哥林多这样的人越来越多,因为像保罗的人越来越少,那个世代还有一个保罗,但是后来没了。所以教会就经历了一段很长很长很黑暗的历史,经历这些黑暗的历史,难道神不觉着痛吗?神会觉着痛。为啥?因为在这世界上这些人就是走了以色列人那条路,
【问题】10:为什么这么多人污蔑保罗爱钱?
答:我也觉着奇怪啊。保罗没有拿他们一根针一根线呐,保罗没有占他们的便宜啊,为什么说保罗爱钱,那不是泼脏水吗?你看那些政客,政客大家得知道竞选的时候可有意思了。竞选的时候竞争对手也不管那事是真的假的,反正泼一瓢脏水再说。老百姓分辨不了,底下的人不知道,所以大家就觉着保罗贪财。其实保罗贪过什么财啊?没有贪过。所以说今天咱们弟兄姐妹看到今天的竞选,你就看到那个年代的保罗,也遇到很多竞争对手泼脏水。
所以说后来这个世代越来越多的脏水泼来泼去,最后教会就成了今天这个样子。就看今天的脏水吧:他是灵恩派。有一个牧师来见我,见我以后他就跟我说,有很多人来问他,华人命定神学是不是极端灵恩派?可是这个牧师看过我们的网站以后,他就说不太像,因为极端灵恩派都是那些神迹啊,神迹啊。我们查经,我们讲道,我们讲的这些悟性上的东西,比一般的教会多得多。而且我们讲的也非常地通畅,逻辑啊,整个的属灵的角度都非常好。后来我说那你怎么回答他们呢?他说:不太像极端灵恩派,应该不是。为啥?因为他们非常注重神的话语。
你说这些人多能泼脏水啊,但是这个牧师还给我证了证明。他说:那应该算啥呢?这一群人挺极端呐,极端地信靠神,那信心是很极端的信心。哎呀,夸奖了我一通,那是真的,就是我们这一群人是愿意为耶稣而死,愿意一生为耶稣而活,愿意一生成为神忠心的祭司。就这么一群人看透了生死,看透了一切,我就觉着有这样的评价也挺好啊。我就说历世历代泼脏水是魔鬼最擅长的活,不但泼脏水给我们,连耶稣牠都泼脏水,你想想看我们能逃得过去吗?就这么回事。
我们今天答疑到此结束,弟兄姐妹再见,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에는 제가 지난 수년간 가장 자주 인용해 왔던 구절들이 많이 들어 있어 매우 귀에 익숙하며, 이 말씀들은 모두 지극히 중요합니다. 본 장의 주제는 바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5)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 말씀과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 하나는, 사람의 믿음이 오직 사람의 지혜에만 있고 하나님의 능력에는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은사주의파(오순절/영은파)로 치부해 버립니다. 도대체 그런 명칭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신앙을 가지면 곁길로 빠진 것처럼 여기고, 반대로 아무런 능력도 없이 사변만 일삼는 신앙을 정통으로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자신들이 오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안다고 자부한다면, 예수님의 복음은 능력의 복음이며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능력이 우리 안에 나타나는 복음임을 알아야 마땅합니다.
1.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지 않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린도전서》 2:1-3)
고린도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거창하고 그럴듯한 지혜의 말이나 듣기 좋은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어느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같이 갔던 친구가 그 교수가 강의를 정말 잘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보통 저는 잘 알아듣지 못할 때 제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애초에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 같은 초보자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당시 함께 간 친구가 다 알아들은 줄 알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자기도 못 알아들었다고 하더군요. 못 알아들은 것이 좋은 것입니까?
사람의 습관이란 참 묘해서, 누군가 강단에 올라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같은 말을 하면 듣기 좋다고 느끼며 마치 한 편의 당시(唐詩) 같다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의 설교에 웃음 포인트가 없으면 설교를 잘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토크쇼나 보러 가지 설교를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교는 토크쇼가 아닙니다. 비록 저도 설교를 토크쇼처럼 재미있게 전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설교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설교를 시작하자 청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들이 정말 제대로 알아듣게 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들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쉽게 현혹되는 것일까요?
고린도에 와서 가르친 사람들 중에는 아볼로도 있었고 게바, 즉 베드로도 있었으며, 베드로를 따르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바울도 그들이 어떻게 전했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자신을 변호해야 했을까요? 고린도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그때부터 바울을 얕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전했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했습니다. 그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쓰지 않았고, 요란한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에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바울에게 지혜가 없다고 여긴다면, 그들에게 진짜 지혜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은근히 무시하며, “이 친구는 고린도에 고작 일 년 반밖에 머물지 않았고, 말도 거칠고 투박한 자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바울도 저처럼 직설적으로, 머리에 뭐가 들었냐는 식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말이 거칠고 외모가 볼품없다는 것이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내린 평가였습니다.
바울은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의 말에는 다른 변론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말씀을 무시하며, 그것이 사도의 입에서 나온 것일 리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이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도임을 변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린도전서》 9:2)
고린도 사람들은 분별력이 부족해서 번지르르한 말만 좋아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럴듯한 말재주만 좋아하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는 목회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속임을 당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어떤 이가 제게 말하기를,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쩌다 보니 발을 딛고 실질적인 일을 하는 목회자를 만났는데, 이 목회자가 늘 요구하는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구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딴마음을 품은 자들은 늘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예로부터 사람들은 지혜를 좋아했지만 그것은 사람의 지혜였습니다. 제가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혜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이 세상의 지혜는 다 어디에 쓰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조금만 지혜가 있으면 하이난항공(HNA)이나 헝다(Evergrande) 같은 기업을 세워 돈을 벌 궁리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다 그런 종류의 지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지혜는 그런 지혜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는 이 말씀은, 우리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에서 가장 자주 선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이 아직 모르고 계신다면 제가 말씀드립니다. 이 구절을 여러분의 머릿속에, 여러분의 골수 깊이 새겨 넣으십시오.
2.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복음과 능력이 없는 복음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문학가나 철학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엔지니어는 공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다리를 놓으면 사람이 그 위를 건너갈 수 있고, 비행기를 만들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거나 아시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는 사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하며, 그들에게는 실제로 만들어 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제가 왜 개척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겠습니까? 제 안에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거나, 기존 교회들에 대해 매우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바와 왜 이리 다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에서 투덜거리며 불평하거나 다른 목회자와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스스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몰랐지만, 제 뼛속 깊이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니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은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치유를 받을 뿐, 다 치유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제가 엔지니어와 문학가, 철학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산마오(三毛)나 《노인과 바다》의 저자인 헤밍웨이를 보십시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문학가들이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분명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저는 중국 고대 시가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깊이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에게 당나라 시나 송나라 사를 너무 외우게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당나라 시를 외우다 보면 이태백을 몹시 원망하게 됩니다. 시는 왜 이렇게 많이 지었으며 또 외우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백 자신도 자기가 쓴 것을 다 못 외웠을 것입니다. 대개 술에 취해 썼을 테니까요. 중국의 고대 시가와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한탄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차 있어서, 다 외우고 나서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노래를 그리 즐기지 않고 시를 짓지도 않지만, 가끔 마오쩌둥의 시를 한두 편 암송하곤 합니다. 격정적이고 당당하게 쓰여서 왠지 승리의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을을 슬퍼하고 달을 보며 한숨짓는 식의 문학을 몹시 싫어하지만,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사람의 지혜에서 건져내고자 합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 이것이 저의 신조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본 많은 일들이 참 흥미롭습니다. 제 관찰이 맞는지 한번 보십시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투신자살하는 이가 많습니다. 날마다 돈을 굴리고 도박하듯 투자하다가 뛰어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학가들은 투신은 안 할지 몰라도 자살하는 이가 꽤 많으며,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투신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 중에 코딩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 개발은 그야말로 큰 즐거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학벌은 좀 있는데 성격이 다소 우울하다면 프로그래밍을 배우십시오.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결과를 실제로 만들어 내야만 인정받는 분야이며,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국어 교사인데 어쩌나’ 하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인문계 졸업자, 신문방송학이나 국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많지만 나중에 제가 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진짜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엔지니어다운 신앙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게 하십시오. 남들이 청산유수처럼 쉴 새 없이 늘어놓는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능력을 여러분 위에 나타내실 것이며, 그분의 임재를 여러분 위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표적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같은 엔지니어가 주님을 믿는 방식은 아주 좋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좋아 보여서 한번 따라 해 보았더니, 과연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져 있다면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이 자신의 능력 위에 세워져 있다면 끝장입니다. 여러분의 실력이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여 살리실 것이라고 말씀드리면, 듣고 나서 얼마나 믿음이 생깁니까? 오늘 우리의 믿음은 이 세대의 폐단, 즉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허망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적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는 표적이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해도 표적이 나타나지 않으며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 하셨으니, 저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행한 표적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표적이 없다면 어찌 절망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행한 표적들은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어느 박사 과정생이 중요한 시점에 졸업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제가 그를 불러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지도교수의 손이 하나님의 손보다 강하겠느냐? 지도교수의 머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미치겠느냐? 그래 봐야 부교수일 뿐 정교수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주 금요일에 지도교수가 보낸 이메일에는 도저히 졸업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는데, 다음 주 금요일 이메일에는 어서 졸업 준비를 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표적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저를 만난 것이 복이 아니겠습니까? 졸업 문제에 있어서 그는 제게 큰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나중에 졸업을 못 하던 또 다른 박사 과정생도 결국 졸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졸업시키고자 하시면 사람은 반드시 졸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제 안에는 ‘불가능’이라는 세 글자가 없습니다. 어떤 병이든 다 말해 보십시오. 문제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믿고,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터 위에 굳게 선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제가 행한 표적들은 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분명 여러분의 상상도 뛰어넘었을 것입니다. 한 어르신은 다리가 통나무처럼 부어 있었는데 제가 기도하여 낫게 해 드렸습니다. 믿기지 않으면 그분을 모셔다가 직접 간증하게 해 드릴까요? 오늘 점심에도 제가 그분과 식사를 함께했는데, 어르신이 또 조금 울적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방도가 있고, 제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며, 저는 그분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그 아흔 살 된 어르신은 저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십니다. 저도 말을 잘하지만, 결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으며 당나라 시나 송나라 사 같은 것도 모릅니다. 투박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다른 사람들의 설교는 못 알아듣겠는데 제 설교만은 알아듣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혜의 권하는 말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전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지혜이다
어떤 이들은 바울에게 지혜가 없어서 지혜의 권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자신을 조금 변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속뜻은 “고린도 교인들아, 어리석게 굴지 마라. 너희가 하는 짓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지혜를 말하며, 지혜는 말하지 않고 표적만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화인사명(华人命定)에서 선포하는 지혜는 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이므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7)
여러분을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니, 어떻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광스럽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지혜가 얼마나 좋습니까? 대학 시험을 치르는 지혜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도 지혜를 말하지만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다른 목회자들이 전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제가 전하는 것을 많이 듣고 나서 그분들의 설교를 들으면 잘 안 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하나님 비밀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마음이 답답할 때 제가 강해한 《전도서》를 들으면 더 이상 우울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안에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꿰뚫어 보지 못하고 속이 온통 세상 지혜로 차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혜는 수많은 책을 썼지만 결국 제 머리를 망가뜨렸을 뿐입니다. 세상 지혜는 무익하며,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은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예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지혜이며, 그것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 알아듣는다면 아직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알아듣는다면 온전해진 것입니다. 이생에 갇혀 살면 온전하지 못하고, 영생 안에서 살아야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살다가 결국 죽어서 유골함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빼앗기는 것이니, 어찌 잘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믿으며, 썩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을 구하고 있음을 믿기에 기쁨이 넘치고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하찮게 여기게 됩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사람이 처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 없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나면 이것이 보배임을 문득 깨닫게 되고, 이어서 지각의 돌파를 구하기 시작합니다. 사람 자신의 논리나 거창한 말, 세상의 지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일생을 바라보게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영광을 구하기만 하면 온전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이끄사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일생을 마치게 하신 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얼굴을 뵙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린도전서》 2:6-8)
이 세상의 권세자들 중에 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위의 몇 구절을 바울이 얼마나 명쾌하게 썼습니까? 만약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둔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이며, 권세와 자리가 있으면 그 권세를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한번 떵떵거리며 살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왕위가 대단한 줄로 여겼습니다. 사울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왕위를 반드시 지키려고 집착하다가, 결국 둘 다 왕위를 지키지 못하고 묻힐 곳조차 없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람은 결코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축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만사형통하면 믿음을 실천할 필요도 없고 영원한 영광을 구할 필요도 없어져서, 사람의 눈이 온통 이 세상에만 고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건대, 세상의 지혜는 사람을 망칩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겨 걸음걸이부터 달라집니다. 가죽 벨트를 매고 핸드폰을 든 채 바람을 가르며 걷고 넥타이까지 휘날립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자기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립니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가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언젠가 죽는다는 것도 모른 채, 날마다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그것이 황천길을 향해 직행하는 길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세상의 지혜를 좇지 마십시오.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서 구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지혜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이 지혜는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도대체 무슨 영광을 얻는다는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4. 이 영광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제가 《고린도전서》 2장을 얼마나 명쾌하게 풀어내는지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영광은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고, 귀로 듣지 못했으며,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어느덧 사라집니다. 저는 작년에 한 분을 떠나보냈고 올해도 몇 분을 떠나보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연말을 넘기지 못합니다. 이런 영광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으며 마음으로 생각조차 못 했을지라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 마비된 사람이 걷게 되고, 뼈가 부러진 사람을 위해 기도했더니 그가 펄펄 뛰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 듭니까?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 영원한 영광이 얼마나 실재적인지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기꺼이 이러한 대가를 치르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이토록 많은 표적을 행해 보았다면 믿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수많은 표적을 행하고도 나중에 믿지 않게 된 자들도 있기는 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9-10)
그렇다면 무엇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까? 영적 세계를 나타내 보여 주셨으며, 이 영적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제 눈을 열어 주셨을 때, 한 번은 키가 약 1미터쯤 되고 기괴한 얼굴을 한 괴수 몇 마리를 보았습니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채 새까만 것들이었습니다. 녀석들이 하는 말을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녀석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이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재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대여섯 마리가 일제히 휙 도망쳤고, 제가 섬기던 환자가 곧바로 나았습니다. 그때 저는 ‘아, 병이라는 게 바로 이 녀석들이 일으킨 짓이었구나!’ 하고 번쩍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만 영계의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영계의 실상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분의 능력을 통해 이 영적 세계의 실재를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그 영광의 면류관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힘이 불끈 솟아 섬기게 되며, 귀신을 몇 마리라도 더 쫓아내고 싶어집니다. 《서유기》 노래 중에 요괴를 물리치고 마귀를 잡았다는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싸움이 참 좋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위대한 즐거움입니다. 요괴를 잡고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은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진수성찬을 먹는 것보다 훨씬 통쾌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마귀 하나를 잡고 요괴 하나를 굴복시키면 재정의 축복이 임합니다. 이 졸개 마귀와 요괴들이 자기 굴속에 수많은 보물과 재물을 숨겨 두었는데, 결국 다 제 것이 되었습니다. 승리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저 작은 마귀와 요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간 축복들을 다 제게 넘겨주었으니 저는 돈이 부족할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더 큰 요귀들을 잡으며 차례로 관문을 돌파해 나갔는데, 매 관문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성령은 저의 강력한 무기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적 세계에서 능력으로 충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고 헛소리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그분의 영광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곧 저의 영광이고 저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며, 저는 하나님과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는 식의 논리는 없으며,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진리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곧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보게 되었고, 작은 요마 하나를 굴복시키자 눈으로 조금 더 보게 되고 귀로 조금 더 듣게 되며 마음으로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더 큰 마귀를 굴복시키자 눈으로 또 무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 평생은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서 다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귀신이 또 다른 수를 써서 우리 자매를 미혹하려 할 때 저는 그것을 파쇄해 버립니다. 제게는 무기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가 있으며, 영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그 무기를 가지고 어제도 하나 파쇄하고, 오늘도 하나 파쇄하며, 날마다 파쇄합니다. 귀신이 이를 갈며 “저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재수 없다”고 불평하게 만듭니다. 제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가 있으며, 이토록 많은 영적 일들을 경험하면서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분별한다(해석한다)’는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화인사명신학의 지극히 중요한 선언(statement)입니다.
5.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한다
사람이 재수가 없는 것도 저는 설명할 수 있고, 병이 드는 것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적인 말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여러분에게 영적인 안목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하라고 말씀드립니다. 가난이든, 불운이든, 심지어 질병이든 다 영적 세계의 일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일들을 볼 수 있어야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해야 합니다. 통풍을 두고 해산물을 먹고 맥주를 마셔서 그렇다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말이 아니라 육적인 말입니다. 저는 영적인 말로 이것을 ‘늙은 말(老马, 미혹/질병의 영적 세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음에는 여러분도 배워서, 제가 모든 것을 ‘늙은 말’ 탓으로 돌린다고 비웃지 마십시오. 그것은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하는 것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재정의 축복을 받지 못하여 세상에서 수십 년을 굴렀는데도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고, 더 나아가 천지창조 이전처럼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이 영계의 일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러분 속이 온통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족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 주지 말고 투자 실패로 인한 빚도 갚아 주지 말라고 영적인 말로 권면하지만, 여러분이 듣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귀신은 먼저 여러분의 부모를 망가뜨리고, 부모를 통해 여러분을 망가뜨려 결국 여러분까지 옭아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자매의 여동생과 남동생이 부모에게 완전히 얽매여 있는데, 실상은 그 부모 위에 역사하는 귀신이 그들을 옭아맨 것입니다. 여러분마저 거기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입니다. 꿰뚫어 보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말씀드리건대, 육에 속한 사람은 이토록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2-14)
《창세기》를 상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창세기》 성경공부는 단연코 이 시대 가장 앞선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결국 이런 일들에 불과합니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 것인데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여러분이 아직 얽매이지 않았다면, 그들이 얽매였을 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단단히 얽매여 다 같이 찢어지게 가난해지고 카드 빚과 사채에 시달리며 밥조차 먹지 못하게 된다면 다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지각의 문제입니다. 지각으로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한다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설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설명할 수 없다면 제가 전하는 말을 많이 들으십시오. 제가 전하는 것은 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비웃어도 두렵지 않으며, 여러분이 받아들이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문제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각이 깨어나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영적인 관점에서 알아가야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평생의 일들도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언어와 논리가 통해야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6.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5)
우리의 믿음은 설득력 있는 말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확실한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신령한 자(영적인 사람)는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어떤 일이든 제게 와서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손오공의 화안금정(火眼金睛)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딱 보면 귀신의 역사인데, 그것은 부모가 아니라 귀신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영적인 일은 영적인 말로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며,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비록 저희 어머니께 저는 매우 효성 깊은 아들이었고 집안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하게 잘 처리했지만, 저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문제들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제가 육에 속한 일들을 다 설명하고 난 뒤 여러분은 제 말이 어리석다고 여길 것입니다. 사람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이니, 꿰뚫어 보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골함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꼴이 됩니다. 오늘 그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께서 이십 대, 삼십 대부터 구십 세에 이르기까지 일평생 찍은 사진들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다 보고 나니 제 마음에 깊은 감회가 일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80~90년이 흘러가 버렸고, 그분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 나이만 되어도 세월이 유수와 같아서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꿰뚫어 본 사람은 인간에게 영생이 참으로 필요하며,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이 참으로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이 지극히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할 것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유골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 마음에는 소망이 넘쳐납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2:16)
바울은 왜 고린도 사람들을 그토록 섬겼을까요? 바울은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망나니 같은 고린도 사람들을 인내로 가르쳤고, 나중에 그들을 다시 주께로 돌이켜 복음의 유익을 얻게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을 모욕하며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가 사도가 아니며, 말이 거칠고 지혜도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돈 때문이라는 둥 온갖 모진 말을 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묵묵히 편지를 써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섬김의 자세가 있습니까? 수년 전 《고린도전서》를 읽을 때, 저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즉 사람과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상대가 우리에게 천만 번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여전히 섬기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어떤 이들에게 상처를 입어 온몸이 체처럼 구멍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방탄복을 입었기에 끄떡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방탄복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여러분을 섬깁니다. 영적 세계에서 천사들의 무리가 우리를 향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디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든, 과거에 저를 모욕했든 간에, 저는 주님을 섬기듯 여러분을 섬길 것입니다. 제가 구하는 것은 오직 이 지극히 잠시 지나가는 인생 가운데서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 자체는 본래 아무런 의미가 없으나, 예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셨기에 제 삶에 의미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사명(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사람의 돈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제가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만 하면 이생에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영생 안에서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저와 같은 이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평생 참으로 멋진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결단을 주시고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추구할 목표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수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일해 왔으며 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저의 꿈이었기에, 마침내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얻었을 때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저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세상의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