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我心里知道耶稣基督的宝贵,但是在工作中还是分不清优先级,该怎么办呢?
这事挺有意思!我问你一个问题,使徒保罗被抓了,他在被抓了的状况下,那些犹太人想整死使徒保罗。保罗怎么说的?
然而我蒙神的帮助,直到今天还站得住,对着尊贵、卑贱、老幼作见证。所讲的不外乎众先知和摩西所说将来必成的事,(《使徒行传》26:22)
我们里面有一种东西,就是不知道神的大能!人心里总是想着:如果这个问题我不去解决的话,谁来解决呢?这事儿我得告诉你,如果你真有这个盼望、真有这个命定,神在任何光景下都可以保守你!你信不信?举个例子,之前有个姐妹,她下班没多久就走了。老板就问她:你怎么一到下班的点就走呢?她说:我晚上有课。这个姐妹倒是没讲啥课,大家千万别讲晚上有查经、有禁食祷告。因为公司的老板是理解不了的,你就说有课就行了,老板一听就觉得你这个人挺爱学习的!有些时候我们就觉得这样说就不会冒犯老板。结果到了年底的时候,这个姐妹薪水涨得最多!有的时候老板好像也给她一点脸色看,就觉得一下班就走人不太好,但是到了涨薪水的时候却涨得挺多。这就是神的作为!难道神不能管这事吗?能!
后来这个姐妹的公司有年会,她说:老板,我不能去。老板说:为什么不能去呢?她说:因为有课。老板说:你咋这么多课呢?她说:天天都有课,因为我爱学习。结果她就没去公司的年会,老板心里就非常的不爽!接下来一段时间就经常给她一张臭脸。但是到了涨薪水的时候又涨得比人家多。她回来就跟我说这件事儿。神太厉害了!是她有这份心!
所以这并不是优先级不优先级的问题,有的时候我们遇到一些事情不知道该怎么处理,其实是我们对神不太有信心。我们对神有信心就好得不得了!如果你做完了以后不像我所说的那样,那我也不知道。千万不要以行为为本,要以信心为本!
Q2:老师,各种疾病是各种灵引起的,经文的依据是在《圣经》里的哪个部分?
这个问题挺有意思。各种疾病是各种灵引起的,《圣经》的依据在哪里?比如说聋哑是聋哑的灵;癫痫是癫痫的灵;然后还有瘸腿的,耶稣都把这些鬼给赶出去了,病得医治。我们一开始做的时候也不是那么清楚,《圣经》里头记载了好多这些很具体的病得医治的案例,这患血漏的病到底是啥呢?后来我就给它起了一个名字叫做血漏的灵。头痛是头痛的灵;肚子胀痛是胀痛的灵;酸痛是酸痛的灵。
这个好像不太需要《圣经》的依据吧?这是我的发明,总得给它起个名吧。如果名字叫错了,那病好了就行了。在我整个服侍的过程当中,有好些东西跟蛇的灵;跟龙的灵;跟老马的灵有关,比如老马在海里为龙,地上为马,讲的龙马精神大概是这个意思。
我们在《圣经》里也的确查了一下这个马是很特殊的动物。各种疾病是各种灵引起的,《圣经》的依据就是这么来的。要解释下去的话,《圣经》里头神造的各种动物,是照着天上那种灵造的,其实也是随着实践而来的。后来我发现这些病还真的就是这么回事。
我服侍过一个小孩,这个小孩在海边玩,回来就发烧了,祷告了好几天也不怎么好使。我就突然想起好多年前,我服侍一个小孩,连续发烧五天那种,好了又上来,上来又下去,就这么来回折腾。这个小孩也是,当时我们发现这个灵是咋回事呢?《圣经》里也没有记载,就是发烧。但是在赶这发烧背后的鬼的过程当中,我们发现这个东西为什么会发烧呢?因为这人不能出汗。
要知道冷血动物是不出汗的,就像这些蛙类、蟹类、还有蛇都是不出汗的,只有人和哺乳动物会出汗。所以发烧的灵都跟这些水里的东西有关。神造万物各按其时成为美好,包括天使、包括地上的动物都是这样。那人只能在这个过程当中去揣摩、去实践,原来这属灵的世界还是很广阔的。
Q3:老师,如何把这福音的好处传给自己的家人?
我不是作见证了吗?如何把这福音传给自己的家人呢?我问你:人家跟你一起抢父母的房子,你要不要抢?如果你要抢就算了吧。如果你要跟人家一起抢父母的遗产,我看你就别让人得着福音的好处了,别整这些事了。为啥呢?你要怎样让人得着福音的好处呢?如果你这个人活得人不人鬼不鬼的,什么事都很倒霉,然后财务上也很贫穷,还需要让人家救济,你还让人得福音的好处?我看还是你先得着吧;如果人家没什么病,你一身的病,我看还是你自己先得着福音的好处吧。
我说这话不是打击你,首先你必须做到一件事,就是你自己得是个靠谱的人。你的财务怎么样?如果一个人的财务不兴盛,本身就是个问题。怎么得着福音的好处?就是你自己先得着福音的好处,你的财务一定兴盛;如果你得着了福音的好处,你自己的病也一定能够得着医治。
Q4:老师,我跟家人传福音,总觉得跟他们之间的关系太熟了,就算知道他们的一些问题,也不好意思说出来,应该怎么解决呢?
讲见证。如果你没见证,赶紧积累点见证吧。没见证你讲什么呢?如果你说:那个医生看病可厉害了。人家就问:那你看过没有?你说:我是在瞎说。这能让人家得好处吗?一讲就宗教味十足。
Q5:老师,我带不信主的人祷告的时候会不好意思,跟在教会祷告相比,好像信心会小一些,这是什么原因?另外与人作见证有什么技巧或者方法吗?别人听了好像没什么兴趣,是因为他们没有需要,还是因为不信,还是我讲的不够吸引人呢?
一个人如果没有影响力,那就先把自己的影响力给塑造起来。因为你自己没有影响力,人家凭什么听你的。你看有的人就是自己做啥啥不行,然后还要传福音,我就不知道该咋传。你做啥啥不行,那你能不能先开始把事做好、把人做好。把事做好、把人做好,到时候想传福音不是自然而然的吗?所以我得稍微打击一下那些就是不肯成长的人。
你不想成长起来,整天在那就是能过且过,也不付代价,里面那股劲儿就想着要传福音,让人家跟你一起得福音的好处。我看你自己先得着福音的好处吧!无论如何都要开始走上成长的路。如果说是在自己的家族里,我爸、我妈对我也没什么信心,然后整天还啃老。一整就指望从爸妈那里要点什么东西,然后跟爸妈传福音,你觉得效果怎么样?真的不怎么样!但是我爸我妈就对我很放心,因为靠谱。所以做人、做事都很靠谱才有效。如果你做人、做事都不行,那你先练吧,教会是一个很好的地方去操练自己。所以一定要成长,在这里都不能够成长,到哪儿才能成长呢?
Q6:老师,我也很想全家人信主,希望家人同得这福音的好处,但我不知道怎么做?请老师指点。
第一,你好好成长;第二,你把自己塑造成一个蒙福的人!如果你自己都不蒙福,那是很难的;第三,塑造自己在家族里的影响力。如果你在家族里不断地奉献,做的事多,贪的便宜少或者是根本不占任何便宜。那你在家里头会不会有影响力?肯定会!所以要开始逐渐地塑造自己,不断的成长,然后在家族里只要有东西就给出去。你没有东西可以给出去的话,你能影响谁呢?
Q7:老师,我跟家人传福音,总觉得跟他们太熟了,就算知道他们的一些问题也不好意思说出来,应该如何调整这种别扭的感觉?
这是关系不健康。你先别急着传福音,你先成长起来行不行?说话、做事像个人。要会做事,又要会做人。不会做事,也不会做人就想传福音,那传的不是人的福音。人真的要去对付自己身上的恶习。大家要养成一个习惯,把自己身上的那些恶习、问题都写出来,每天都去对付。
因为大家都对你太熟了,那你一旦改变了就会震撼到一些人!以前不占人家便宜不罢休,现在不给出去不罢休,人家能不知道吗?连路边的狗都知道。先开始去对付自己身上的问题,然后接下来走上成长之路。牧者在牧养你的时候,每次不都是在讲你的问题吗?我们过去里头有很贫穷的心态,那贫穷的心态怎么可能蒙福呢?所以一定是先有富有的心态后才能蒙福。
有个弟兄就跟我讲人穷志短,我说:不是,是人志短了才会穷。我穷的时候,但是我志不短!就算睡大街又如何?我不会去贪图别人的东西。大家都要开始有异象、有梦想、有志向,穷不怕,怕的是没有志向,怕的是不蒙福!一个人总倒霉还咋过日子呢?所以《申命记》里面讲的祝福和咒诅,这两件事必须学习。比如贪念别人的财产是受咒诅的!从现在开始深深地悔改。人如果要是懒就变得勤快一点;人如果笨,就变得聪明一点,你就成为钱了。
Q8:老师,在牧养的过程中,如何避免减少讲很多的属灵大道理,可以更多地讲解决问题的办法,因为我发现讲很多属灵大道理,会让人产生识别善恶的氛围。
如果我们喜欢讲大道理,那大道理都讲完了该怎么办?不知道。我想咱们就在这事上重新调整自己,变得更接地气一点。比如说,我带一个发烧的人祷告的时候,我知道背后那是个水鬼,水鬼就是水里的或者是两栖动物,那都是很阴的,死亡的灵很重。那你就开始想办法,思考该怎么对付。像我整的简单,我说去整点白酒,因为那个东西真的害怕白酒。水里的这种邪灵,都是很阴的,阴气很重的东西,死亡的灵,喝点白酒,祷告一下。后来我就问前几天发生什么事,到海边去玩了。
有人问白酒要几度,四十多度、五十来度都行,如果有茅台就更好了。米酒不知道可不可以,但我觉着应该是白酒。我们讲属灵的事,该讲的还得讲,但是要开始用一种切合实际的教导来解决这些问题。比如说有个人在家里跟其他弟兄姐妹之间的关系不太好,那你能不能够判断出,该做啥,不该做啥?或许人家能够接受你讲的,如果不能够接受就别讲了,如果没到那个关系就别瞎说,如果到了那个关系就可以出点主意。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2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에서 제가 정한 주제는 ‘바울이 구한 것은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그런 구절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먼저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9)
사실 바울은 자신처럼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뿌리는 《고린도전서》 9장에 나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3)
《사도행전》 26장은 바울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 왜 재판을 받고 고소를 당하며 왜 이런 위험을 무릅썼는지를 말씀합니다. 바울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그가 이곳에서 결박당할 것을 알려주셨는데, 그는 왜 굳이 왔을까요?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유대인들이 여러 번 그를 해치고 죽이려 했지만, 바울은 자신의 동족과 친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모든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깊은 마음가짐이자 사명감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제게 매우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 또한 이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겸손한 척 자랑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 대단한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에 깊은 탄식이 나오고 마음이 몹시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어찌 되었든 치러야 할 대가라면 마땅히 치러서라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복음이 정말 그렇게 좋은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과정 속에서 이 부르심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저의 길은 바울처럼 극적으로 굴곡진 길보다는 조금 짧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박해하지도 않고 믿게 되었고, 특별한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직접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스스로 달려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앞서 달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보다 앞서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면 왜 걷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사장들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사람을 잡으러 가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빛에 눈이 멀어 한바탕 고생하지도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살아갈 소망이 없었을 뿐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사는 것이 너무 피곤했으며, 삶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50세까지만 살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몸이 건강할 때 스스로 삶을 정리하면 노년의 많은 번거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제 내면이 간절히 얻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망과 약속이었습니다. 훗날 저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 들어갔고, 마침내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 복음의 유익을 얻었기에, 치러야 할 대가가 다소 크더라도 제 가족과 형제자매들,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제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사명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 26:12-18)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신 것은 그를 일꾼과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설교의 제목은 ‘바울이 구한 것은 오직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다’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사명
바울이 받은 환상과 사명은 하나님께서 그를 곳곳에 보내어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에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바울은 지금 붙잡히지 않았습니까? 사실 붙잡힌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기꺼이 이 대가를 치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살고 이를 위해 죽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면, 이를 위해 붙잡히고 박해를 받으며 고소를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결박할 수 있을지라도 바울 안의 뜨거운 마음만은 결코 결박할 수 없었습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형편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모릅니다. 대소변 장애를 겪는 사람, 요실금이 있는 사람, 치루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밥을 넘기지 못하고 숨쉬기 힘들어하며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서 보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현대 과학이 발달했다고 말하지만, 방금 언급한 난치병들 앞에서 의사들은 속수무책입니다. 심지어 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코로나 특효약이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만약 외국에 특효약이 있었다면 코로나를 전염병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특효약을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특효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바울이 행한 표적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에는 바울의 손을 통해 치유받은 이야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바울이 사역한 세월이 길었기에 그가 행한 표적들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와 견줄 만합니다. 그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이루어 냈으니 어찌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다 쓰는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받은 환상과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세례를 받던 당일 곧바로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귀국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비행기 표를 사서 베이징에 도착한 뒤,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꼬박 일주일을 매달려야 했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부모님도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막상 집에 도착해 입을 열었을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적잖은 고생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외국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셨을 때, 부모님께는 기쁜 일만 전하고 근심은 숨긴다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처럼 저 역시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다 좋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좋을 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외국에 나가 본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에 부모님께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떠날 때 부모님이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셨는데, 아버지는 제게 진심 어린 한마디를 건네셨습니다. 부모님이 제 말을 믿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아들의 말을 어찌 믿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제 입에서 나오는 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방법을 모르셨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갓 세례를 받아 아무것도 몰랐고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너무 좋아서 부모님도 이를 받으시길 바랐으니, 당시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셨을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점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역술가가 말하기를 아들인 제가 집에 있기만 하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난 후 집안은 큰 혼란에 빠졌고, 부모님은 몹시 힘겨운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고, 집안의 날카로운 도구들을 다 숨겨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사람을 해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전도하려 했던 것은 오직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어 그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훗날 제 제수씨가 아이를 낳을 때 난산을 겪어, 아이가 간신히 태어났으나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 마음에는 오직 그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더니 두 손바닥이 새빨갛게 변했습니다. 당시에는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다음 날에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제 두 손이 붉어지도록 기도하던 바로 그 시각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어가던 제 동생의 아이가 홀연히 깨어난 것입니다. 그 후로 부모님은 이 복음이 참으로 좋은 것임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갓 주님을 믿었을 때 일어난 저의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무기력한 일들을 마주합니까? 우리 가운데 암에 걸린 사람도 있고,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사람도 있으며, 일이 꼬여 온갖 일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모른 채 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갓 믿었을 때부터 제게 이런 부담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저는 열정이 넘쳐 사람만 만나면 간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보상은 매우 컸으며, 제 급여는 빠르게 올랐습니다.
제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었던 것은 '소망', 즉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소망도 없고 기대도 없는 나날 속에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은 날부터 저는 참으로 든든하게 살았습니다. 이전에는 늘 마음을 졸이며 공중에 붕 뜬 채 안정을 찾지 못했는데, 주님을 믿고 난 후 마침내 평안을 얻어 정말 시원하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고, 사람만 보면 간증을 전했습니다. 그 시절 제 급여는 로켓처럼 치솟았습니다. 그렇게 빨리 오를 줄 알았더라면 부동산도 더 사고 대출도 더 받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재산은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이야말로 가장 중요합니다!
며칠 전 제 동생이 이제 자기도 바짝 따라잡아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주님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데는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 지표가 있다. 첫째, 불운한 일이 점점 줄어들고 복된 일이 점점 많아지며, 재정적으로도 반드시 복을 받는다. 둘째, 육체적으로도 반드시 복을 받아 질병은 줄어들고 건강은 점점 좋아진다." 동생의 그 말을 듣고 저는 오량액(우량예)이나 마오타이를 마시고 만한전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뻤습니다. 제 동생이 저와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게 되다니 말입니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저는 함께 있는 동안 옛날이야기를 하듯 간증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들이 모두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든, 얼굴을 굳히든, 거들떠보지 않든 상관없이 저는 그들이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원했습니다. 제가 섬기든 무슨 일을 하든 저는 온 마음을 다해 행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루어 낸 약속은 실로 보통 사람을 뛰어넘습니다. 그는 조상들이 바라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가 되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예'가 되고 신실합니다. 우리 가운데 매주일 정리되는 간증만 해도 제 목소리로 읽으면 40분 가까이 걸립니다. 이것도 엄선한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다 전하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진심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이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던 어떤 사람이 치유를 받아 보게 된 후, 먼 길을 찾아와 저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통곡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세상의 보배입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보배를 가볍게 여기니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어리석어서는 안 되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의 형제자매, 가족, 이웃,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거짓이나 속임수가 전혀 없는, 실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 무기력하고 불운하며 질병으로 고통받던 날들은 지나가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몸에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지하게 회개해야 하며, 과거에 잘못 행했던 것들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무기력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부터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아가며 소망을 품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 시대에 이 복음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크나큰 은혜를 제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우리 사역자 한 분이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여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북미로 이민을 간 한 사람이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적합한 교회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어느 날 문득 사명 신학(命定神学)을 발견하고 인터넷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들으며 자신의 심경을 사역자에게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부는 모두 수재로, 진리를 구할 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저의 《로마서》 성경공부를 자료 삼아 신학 과제물에 인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바르게 세워지지 않았다면,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는 그날까지 날마다 권면할 것입니다. 이는 결코 또 다른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19-23)
바울은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재판을 받을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오직 자신의 유대 동포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일어났고, 몽둥이로 맞고 채찍질을 당하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바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짊어짐으로써 그분의 부활의 능력이 자신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부르심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을지라도, 《성경》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디 출신이든 증인이 되어야 하며, 이 복음을 받았다면 여러분을 통해 이 복음의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토록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황제 앞에 서서도 여전히 선포한 것은, 사람이 살아갈 소망이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 환상과 사명을 품고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을 선포한다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찾으셨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바울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셨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저도 기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셨으니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여러분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결코 이를 망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복음을 얻고도 이를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저주가 얼마나 깊겠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일을 매우 중히 여기면서도, 주님을 믿는 일에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일터에서만 열정을 불태웁니다. 이는 내면의 가치관 문제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참된 보배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랫동안 스스로를 방치해 두었다면 속히 회개하고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 예루살렘에 오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바라옵건대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일로 여기나이까 (《사도행전》 26:2-8)
바울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결박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왔을까요? 성령께서는 그 지역의 유명한 선지자 아가보를 통해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결국 바울은 와서 결박당했고 꼬박 2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2년 후 아그립바 왕이 그를 심문할 때, 바울은 눈물콧물을 흘리며 지난 2년의 옥살이가 헛되었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으며, 아그립바 왕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온 것입니다. 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7-29)
여러분은 바울이라는 사람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바울은 맞서 싸우지도 않고, 항변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위해 어떠한 신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옥에 갇힐지라도 오직 다른 이들이 유익을 얻는 것만을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저 역시 바울과 같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한 적이 없고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그저 그들이 유익을 얻기만을 바랄 뿐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들 역시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나누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섬길 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섬긴 것처럼, 당신도 훗날 다른 사람을 그렇게 섬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바울과 같은 인내와 은혜, 사명과 환상이 있습니까? 오직 이를 위해 태어나고 이를 위해 세상에 왔기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유익을 나누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입니다. 아그립바 왕이든 베스도 각하이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그들이 자신과 함께 이 소망을 품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 모두 여기에 있으며 얼마든지 풍성합니다.
누구든지 질문하고자 하면 바울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으니, 곧 유대인들이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고, 모든 일은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수록 흐리멍텅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 고소당하고 심문을 받다
바울은 감옥에서 2년을 보낸 것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동일한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얻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삶에 성취되기를 바라며, 그들 역시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하여 2년 동안 감옥에서 심문을 기다리게 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의 돈을 훔쳤거나, 사람을 때렸거나, 부정부패를 저질렀거나, 빚더미에 앉아 파산했거나, 심지어 정치적 투쟁으로 인해 고소를 당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소를 당한 이유는 자신을 고소하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천하에서 진정한 사명을 가진 사람은 바로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고소를 당하고 심문을 받을지라도 전혀 문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가 행한 일이 참되다는 것을 더욱 확증해 줄 뿐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 26:9-18)
과거에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자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아 그 빛이 그를 비추었을 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끊임없이 누렸으며, 영원 속에서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가 고소를 당하고 심문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으며, 심지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조차 바울이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했을 뿐인데 그들은 도리어 바울을 고소했으니,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이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종교의 영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사도행전》 26:31-32)
모든 사람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2-23)
분별력이 흐려진 유대인들도, 사도 바울을 심문하던 자들도, 바울은 그들 모두가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아그립바 왕의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생겨 바울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바울은 분명 기꺼이 섬겼을 것입니다. 저 역시 사람들을 섬길 때 "믿습니까?"라고 묻고 안 믿으면 그만두는 식으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를 따라 함께 기도하자고 권하며, 제가 한마디 하면 그가 한마디 따라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활막염 같은 질환으로 발목과 무릎 통증이 심해 계단도 오르지 못하고 차도 타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를 데리고 잠시 기도하자 곧바로 통증이 풀렸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는 이러한 사명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장차 언젠가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결산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힌 성적표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저 돈 버는 데만 급급하여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늘 일이 꼬여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에 그칩니다. 30대에서 40대가 되어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60대에서 70대가 되면 천지창조 이전의 공허와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는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이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유익이 우리의 것임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육신을 다루는 목양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 자체를 치기 위해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유대인들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것 역시 유대인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를 깨닫고 제 마음에 위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구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