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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도행전 26장 - 바울이 구한 것은 사람들과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는 것이라

2023-11-15 7,973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二十六章 使徒行传26章 传福音 作见证 活在永生 神的应许最重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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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26章-保罗在亚基帕王面前申辩
  • 1 亚基帕对保罗说:“准你为自己辩明。”于是保罗伸手分诉,说:“
  • 2 亚基帕王啊,犹太人所告我的一切事,今日得在你面前分诉,实为万幸;
  • 3 更可幸的,是你熟悉犹太人的规矩和他们的辩论;所以求你耐心听我。
  • 4 我从起初在本国的民中,并在耶路撒冷,自幼为人如何,犹太人都知道。
  • 5 他们若肯作见证就晓得,我从起初是按着我们教中最严紧的教门作了法利赛人。
  • 6 现在我站在这里受审,是因为指望 神向我们祖宗所应许的;
  • 7 这应许,我们十二个支派,昼夜切切地侍奉 神,都指望得着。王啊,我被犹太人控告,就是因这指望。
  • 8  神叫死人复活,你们为什么看作不可信的呢?
  • 9 从前我自己以为应当多方攻击拿撒勒人耶稣的名,
  • 10 我在耶路撒冷也曾这样行了。既从祭司长得了权柄,我就把许多圣徒囚在监里。他们被杀,我也出名定案。
  • 11 在各会堂,我屡次用刑强逼他们说亵渎的话,又分外恼恨他们,甚至追逼他们,直到外邦的城邑。”
  • 12 “那时,我领了祭司长的权柄和命令,往大马士革去。
  • 13 王啊,我在路上,晌午的时候,看见从天发光,比日头还亮,四面照着我并与我同行的人。
  • 14 我们都仆倒在地,我就听见有声音用希伯来话向我说:‘扫罗!扫罗!为什么逼迫我?你用脚踢刺是难的!’
  • 15 我说:‘主啊,你是谁?’主说:‘我就是你所逼迫的耶稣。
  • 16 你起来站着,我特意向你显现,要派你作执事,作见证,将你所看见的事和我将要指示你的事证明出来。
  • 17 我也要救你脱离百姓和外邦人的手。
  • 18 我差你到他们那里去,要叫他们的眼睛得开,从黑暗中归向光明,从撒但权下归向 神;又因信我,得蒙赦罪,和一切成圣的人同得基业。’”
  • 19 “亚基帕王啊,我故此没有违背那从天上来的异象;
  • 20 先在大马士革,后在耶路撒冷和犹太全地,以及外邦,劝勉他们应当悔改归向 神,行事与悔改的心相称。
  • 21 因此,犹太人在殿里拿住我,想要杀我。
  • 22 然而我蒙 神的帮助,直到今日还站得住,对着尊贵、卑贱、老幼作见证;所讲的并不外乎众先知和摩西所说将来必成的事,
  • 23 就是基督必须受害,并且因从死里复活,要首先把光明的道传给百姓和外邦人。”
  • 24 保罗这样分诉,非斯都大声说:“保罗,你癫狂了吧。你的学问太大,反叫你癫狂了!”
  • 25 保罗说:“非斯都大人,我不是癫狂,我说的乃是真实明白话。
  • 26 王也晓得这些事,所以我向王放胆直言,我深信这些事没有一件向王隐藏的,因都不是在背地里做的。
  • 27 亚基帕王啊,你信先知吗?我知道你是信的。”
  • 28 亚基帕对保罗说:“你想稍微一劝,便叫我作基督徒啊(或译:你这样劝我,几乎叫我作基督徒了)!”
  • 29 保罗说:“无论是少劝是多劝,我向 神所求的,不但你一个人,就是今天一切听我的,都要像我一样,只是不要像我有这些锁链。”
  • 30 于是,王和巡抚并百尼基与同坐的人都起来,
  • 31 退到里面,彼此谈论说:“这人并没有犯什么该死该绑的罪。”
  • 32 亚基帕又对非斯都说:“这人若没有上告于凯撒,就可以释放了。”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2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에서 제가 정한 주제는 ‘바울이 구한 것은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그런 구절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먼저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9)

사실 바울은 자신처럼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뿌리는 《고린도전서》 9장에 나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3)

《사도행전》 26장은 바울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 왜 재판을 받고 고소를 당하며 왜 이런 위험을 무릅썼는지를 말씀합니다. 바울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그가 이곳에서 결박당할 것을 알려주셨는데, 그는 왜 굳이 왔을까요?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유대인들이 여러 번 그를 해치고 죽이려 했지만, 바울은 자신의 동족과 친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모든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깊은 마음가짐이자 사명감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제게 매우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 또한 이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겸손한 척 자랑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 대단한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에 깊은 탄식이 나오고 마음이 몹시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어찌 되었든 치러야 할 대가라면 마땅히 치러서라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복음이 정말 그렇게 좋은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과정 속에서 이 부르심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저의 길은 바울처럼 극적으로 굴곡진 길보다는 조금 짧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박해하지도 않고 믿게 되었고, 특별한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직접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스스로 달려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앞서 달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보다 앞서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면 왜 걷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사장들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사람을 잡으러 가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빛에 눈이 멀어 한바탕 고생하지도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살아갈 소망이 없었을 뿐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사는 것이 너무 피곤했으며, 삶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50세까지만 살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몸이 건강할 때 스스로 삶을 정리하면 노년의 많은 번거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제 내면이 간절히 얻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망과 약속이었습니다. 훗날 저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 들어갔고, 마침내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 복음의 유익을 얻었기에, 치러야 할 대가가 다소 크더라도 제 가족과 형제자매들,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이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제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사명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 26:12-18)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신 것은 그를 일꾼과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설교의 제목은 ‘바울이 구한 것은 오직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다’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사명

바울이 받은 환상과 사명은 하나님께서 그를 곳곳에 보내어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에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바울은 지금 붙잡히지 않았습니까? 사실 붙잡힌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기꺼이 이 대가를 치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살고 이를 위해 죽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면, 이를 위해 붙잡히고 박해를 받으며 고소를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결박할 수 있을지라도 바울 안의 뜨거운 마음만은 결코 결박할 수 없었습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형편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모릅니다. 대소변 장애를 겪는 사람, 요실금이 있는 사람, 치루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밥을 넘기지 못하고 숨쉬기 힘들어하며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서 보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현대 과학이 발달했다고 말하지만, 방금 언급한 난치병들 앞에서 의사들은 속수무책입니다. 심지어 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코로나 특효약이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만약 외국에 특효약이 있었다면 코로나를 전염병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특효약을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특효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바울이 행한 표적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에는 바울의 손을 통해 치유받은 이야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바울이 사역한 세월이 길었기에 그가 행한 표적들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와 견줄 만합니다. 그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이루어 냈으니 어찌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다 쓰는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받은 환상과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세례를 받던 당일 곧바로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귀국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비행기 표를 사서 베이징에 도착한 뒤,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꼬박 일주일을 매달려야 했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부모님도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막상 집에 도착해 입을 열었을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적잖은 고생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외국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셨을 때, 부모님께는 기쁜 일만 전하고 근심은 숨긴다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처럼 저 역시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다 좋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좋을 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외국에 나가 본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에 부모님께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떠날 때 부모님이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셨는데, 아버지는 제게 진심 어린 한마디를 건네셨습니다. 부모님이 제 말을 믿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아들의 말을 어찌 믿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제 입에서 나오는 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방법을 모르셨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갓 세례를 받아 아무것도 몰랐고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너무 좋아서 부모님도 이를 받으시길 바랐으니, 당시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셨을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점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역술가가 말하기를 아들인 제가 집에 있기만 하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난 후 집안은 큰 혼란에 빠졌고, 부모님은 몹시 힘겨운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고, 집안의 날카로운 도구들을 다 숨겨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사람을 해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전도하려 했던 것은 오직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어 그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훗날 제 제수씨가 아이를 낳을 때 난산을 겪어, 아이가 간신히 태어났으나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 마음에는 오직 그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더니 두 손바닥이 새빨갛게 변했습니다. 당시에는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다음 날에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제 두 손이 붉어지도록 기도하던 바로 그 시각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어가던 제 동생의 아이가 홀연히 깨어난 것입니다. 그 후로 부모님은 이 복음이 참으로 좋은 것임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갓 주님을 믿었을 때 일어난 저의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무기력한 일들을 마주합니까? 우리 가운데 암에 걸린 사람도 있고,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사람도 있으며, 일이 꼬여 온갖 일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모른 채 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갓 믿었을 때부터 제게 이런 부담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저는 열정이 넘쳐 사람만 만나면 간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보상은 매우 컸으며, 제 급여는 빠르게 올랐습니다.

제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었던 것은 '소망', 즉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소망도 없고 기대도 없는 나날 속에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은 날부터 저는 참으로 든든하게 살았습니다. 이전에는 늘 마음을 졸이며 공중에 붕 뜬 채 안정을 찾지 못했는데, 주님을 믿고 난 후 마침내 평안을 얻어 정말 시원하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고, 사람만 보면 간증을 전했습니다. 그 시절 제 급여는 로켓처럼 치솟았습니다. 그렇게 빨리 오를 줄 알았더라면 부동산도 더 사고 대출도 더 받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재산은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이야말로 가장 중요합니다!

며칠 전 제 동생이 이제 자기도 바짝 따라잡아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주님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데는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 지표가 있다. 첫째, 불운한 일이 점점 줄어들고 복된 일이 점점 많아지며, 재정적으로도 반드시 복을 받는다. 둘째, 육체적으로도 반드시 복을 받아 질병은 줄어들고 건강은 점점 좋아진다." 동생의 그 말을 듣고 저는 오량액(우량예)이나 마오타이를 마시고 만한전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뻤습니다. 제 동생이 저와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게 되다니 말입니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저는 함께 있는 동안 옛날이야기를 하듯 간증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들이 모두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든, 얼굴을 굳히든, 거들떠보지 않든 상관없이 저는 그들이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원했습니다. 제가 섬기든 무슨 일을 하든 저는 온 마음을 다해 행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루어 낸 약속은 실로 보통 사람을 뛰어넘습니다. 그는 조상들이 바라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가 되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예'가 되고 신실합니다. 우리 가운데 매주일 정리되는 간증만 해도 제 목소리로 읽으면 40분 가까이 걸립니다. 이것도 엄선한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다 전하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진심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이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던 어떤 사람이 치유를 받아 보게 된 후, 먼 길을 찾아와 저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통곡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세상의 보배입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보배를 가볍게 여기니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어리석어서는 안 되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의 형제자매, 가족, 이웃,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거짓이나 속임수가 전혀 없는, 실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 무기력하고 불운하며 질병으로 고통받던 날들은 지나가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몸에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지하게 회개해야 하며, 과거에 잘못 행했던 것들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무기력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부터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아가며 소망을 품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 시대에 이 복음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크나큰 은혜를 제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우리 사역자 한 분이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여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북미로 이민을 간 한 사람이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적합한 교회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어느 날 문득 사명 신학(命定神学)을 발견하고 인터넷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들으며 자신의 심경을 사역자에게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부는 모두 수재로, 진리를 구할 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저의 《로마서》 성경공부를 자료 삼아 신학 과제물에 인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바르게 세워지지 않았다면,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는 그날까지 날마다 권면할 것입니다. 이는 결코 또 다른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19-23)

바울은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재판을 받을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오직 자신의 유대 동포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일어났고, 몽둥이로 맞고 채찍질을 당하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바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짊어짐으로써 그분의 부활의 능력이 자신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부르심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을지라도, 《성경》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디 출신이든 증인이 되어야 하며, 이 복음을 받았다면 여러분을 통해 이 복음의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토록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황제 앞에 서서도 여전히 선포한 것은, 사람이 살아갈 소망이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 환상과 사명을 품고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을 선포한다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찾으셨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바울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셨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저도 기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셨으니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여러분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결코 이를 망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복음을 얻고도 이를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저주가 얼마나 깊겠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일을 매우 중히 여기면서도, 주님을 믿는 일에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일터에서만 열정을 불태웁니다. 이는 내면의 가치관 문제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참된 보배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랫동안 스스로를 방치해 두었다면 속히 회개하고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 예루살렘에 오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바라옵건대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일로 여기나이까 (《사도행전》 26:2-8)

바울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결박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왔을까요? 성령께서는 그 지역의 유명한 선지자 아가보를 통해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결국 바울은 와서 결박당했고 꼬박 2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2년 후 아그립바 왕이 그를 심문할 때, 바울은 눈물콧물을 흘리며 지난 2년의 옥살이가 헛되었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으며, 아그립바 왕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온 것입니다. 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7-29)

여러분은 바울이라는 사람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바울은 맞서 싸우지도 않고, 항변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위해 어떠한 신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옥에 갇힐지라도 오직 다른 이들이 유익을 얻는 것만을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저 역시 바울과 같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한 적이 없고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그저 그들이 유익을 얻기만을 바랄 뿐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들 역시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나누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섬길 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섬긴 것처럼, 당신도 훗날 다른 사람을 그렇게 섬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바울과 같은 인내와 은혜, 사명과 환상이 있습니까? 오직 이를 위해 태어나고 이를 위해 세상에 왔기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유익을 나누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입니다. 아그립바 왕이든 베스도 각하이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그들이 자신과 함께 이 소망을 품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 모두 여기에 있으며 얼마든지 풍성합니다.

누구든지 질문하고자 하면 바울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으니, 곧 유대인들이 자신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과 사명을 거스르지 않았고, 모든 일은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수록 흐리멍텅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 고소당하고 심문을 받다

바울은 감옥에서 2년을 보낸 것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동일한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얻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삶에 성취되기를 바라며, 그들 역시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하여 2년 동안 감옥에서 심문을 기다리게 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의 돈을 훔쳤거나, 사람을 때렸거나, 부정부패를 저질렀거나, 빚더미에 앉아 파산했거나, 심지어 정치적 투쟁으로 인해 고소를 당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소를 당한 이유는 자신을 고소하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천하에서 진정한 사명을 가진 사람은 바로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고소를 당하고 심문을 받을지라도 전혀 문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가 행한 일이 참되다는 것을 더욱 확증해 줄 뿐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 26:9-18)

과거에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자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아 그 빛이 그를 비추었을 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끊임없이 누렸으며, 영원 속에서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가 고소를 당하고 심문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으며, 심지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조차 바울이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했을 뿐인데 그들은 도리어 바울을 고소했으니,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이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종교의 영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사도행전》 26:31-32)

모든 사람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2-23)

분별력이 흐려진 유대인들도, 사도 바울을 심문하던 자들도, 바울은 그들 모두가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아그립바 왕의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생겨 바울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바울은 분명 기꺼이 섬겼을 것입니다. 저 역시 사람들을 섬길 때 "믿습니까?"라고 묻고 안 믿으면 그만두는 식으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를 따라 함께 기도하자고 권하며, 제가 한마디 하면 그가 한마디 따라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활막염 같은 질환으로 발목과 무릎 통증이 심해 계단도 오르지 못하고 차도 타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를 데리고 잠시 기도하자 곧바로 통증이 풀렸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는 이러한 사명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장차 언젠가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결산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힌 성적표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저 돈 버는 데만 급급하여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늘 일이 꼬여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에 그칩니다. 30대에서 40대가 되어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60대에서 70대가 되면 천지창조 이전의 공허와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는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이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유익이 우리의 것임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육신을 다루는 목양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 자체를 치기 위해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유대인들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것 역시 유대인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를 깨닫고 제 마음에 위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구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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