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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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리 무겁지 않은 진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입니다. 들으면 다들 참 좋다고 생각하지만, 형제자매 여러분은 꼭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쓴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쓴 것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나의 목자이십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이후로 줄곧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며, 내게는 주님 밖에는 복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틈만 나면 많은 것들을 묵상합니다.

때로는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데, 제 동역자가 들어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아직도 이런 걸 보세요?" 저는 아직 동심이 살아 있습니다! 왜 볼까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많은 계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한번은 불현듯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동물은 천사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늑대는 매우 사나운 동물이며 대단히 똑똑합니다. 사냥할 때 진을 치고 전술을 펼치는 것을 보면, 손자병법의 손자도 늑대에게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늑대는 먼저 대형을 갖춘 뒤 단숨에 덮쳐 사냥감을 낚아챕니다. 늑대의 지혜, 총명함, 전략, 전술, 기술, 체력도 대단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극도로 강한 조직적 규율입니다. 늑대 우두머리가 무리를 얼마나 잘 다스리는지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나아서 저도 늑대에게 배워야 할 판입니다.

늑대의 조직 규율은 실로 엄격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늑대가 많습니까?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늑대가 많습니까, 양이 많습니까? 늑대는 먹이사슬의 거의 꼭대기에 있지만,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양이 늑대보다 훨씬 많습니다. 양이 멸종 위기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양에게는 돌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사람은 두 발로 서서 걷는 존재이며, 두 발로 걷는 자가 네 발로 기는 짐승보다 머리가 훨씬 좋습니다. 양은 사람이 돌보고 있기 때문에, 늑대가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늑대가 아무리 똑똑해도 사람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축산업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며칠 전 시골에 가서 소와 양을 보았는데 몸집이 아주 컸습니다. 일 시키려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얻으려고 키우는 육우와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일종의 '축산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잡아먹기 위한 고기용 양들을 잔뜩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렇다면 여호와는 그의 목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양 중심의 교회를 세우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양이겠습니까?

제가 성도들을 목양하면서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깊이 묵상해 보았는데, 목양이라는 사역이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흥미로운가 하면, 때로는 목양하는 대상이 사람을 물기도 합니다. 저도 자주 물리고, 공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집에서 TV를 켰는데 마침 《시저의 개 훈련(Cesar's Dog Training)》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목양을 가르칠 때 종종 이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목회자들을 훈련합니다. 양을 치다 보면 이리가 올 때도 있고 사자가 올 때도 있는 법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떤 개들은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극심한 불안감 때문에 누가 오기만 하면 짖어댑니다. 물론 작은 애완견은 그렇지 않겠지만요. 어떤 집에서 키우는 개는 상태가 아주 엉망인데, 시저는 훈련을 통해 결국 개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훈련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 하고, 개는 개 노릇을 못 하니 위계와 위치가 뒤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끝난 후 주인이 참된 주인의 권위를 갖추고, 개도 그를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자 개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는 든든한 주인이 생기면 기세등등해져서 심지어 흑곰과도 맞서 싸웁니다.

그것을 보며 사람이 불안해하고 신경질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바로 여호와가 그의 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목양하는 것도 이와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양할 때 시저의 훈련 방식을 종종 활용합니다. 참 유익합니다. 사람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목자가 없기 때문이며, 사람은 본성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이끌어 주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개가 자기 자신을 의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지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개에 비유한다고 뭐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람도 자기 힘으로는 결코 안 됩니다. 여러분, 자기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맥박, 심박수, 혈압, 수면의 질까지 측정하는 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그러고는 수시로 "혈중 산소포화도가 부족하네", "수면의 질이 떨어졌네" 하면서 온갖 불안에 떱니다. 이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주인이 없는 개와 같고, 목자가 없는 양과 같습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런 상태에 있는 분들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의 평생이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어떤 이들은 "인생사 새옹지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60년 평생을 늘 여호와의 성전에 거해 왔습니다.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압니다"라고 하길래 "무엇을 압니까?" 하고 물었더니, "결국 작은 유골함 하나에 들어갈 것은 확실히 압니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는 저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작은 상자에 들어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죽어서 화장한 뒤 옆에 도랑이 있으면 도랑에, 강이 있으면 강에, 바다가 있으면 바다에 뿌리면 그만입니다.

며칠 전 제가 과거에 목양했던 한 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침 장례식 때 제가 그 지역에 있어서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하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장례식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르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입니다. 장례식에 다녀오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평생 이것저것에 얽매여 아등바등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작은 유골함 하나 남을 뿐이니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그분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수년 전 암에 걸렸을 때 제가 섬겨 드렸고 이후에 재발했습니다. 유가족들은 그가 진작에 세상을 떠났어야 했는데 저 덕분에 몇 년을 더 살았다며 감사해했습니다. 고통도 덜 겪고 마지막에는 의자에 앉은 채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하관할 때 장례 지도사를 불렀는데,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동남동녀가 앞에서 길을 인도한다느니, 극락왕생이니 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흥미로웠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도 저런 건 다 외운다. 장례식에 자주 다니다 보니 학을 타고 서쪽으로 가네, 자손을 돌보아 주네 하는 것쯤은 줄줄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그런 말을 외우는 것이 제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람의 일생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 필요한 것은 이 한 가지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고 늘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참 염려를 좋아합니다. 사실 필요한 것은 많지 않은데 스스로 수많은 필요를 만들어 냅니다.

예전에 백만 위안을 쥐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제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도 먹지 않고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묻자, "내 손에 겨우 백만 위안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20년 전 중국에서 백만 위안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거의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신장 하나 바꾸는 데 30만, 간 바꾸는 데 30만, 심장 스텐트 시술 몇 개만 해도 돈이 모자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멀쩡한 부품을 왜 바꿀 생각을 합니까?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사서 걱정하기는 쉬워도, 항상 기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법입니다.

미친개처럼 굴지 마십시오. 시저에게 훈련받은 개는 안정을 찾지만, 훈련받지 못한 개는 늘 불안해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된 그날부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왜 붙잡았는지 아십니까? 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할 것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굳게 믿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 평생은 참으로 평안했고, 결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던 간증을 하라면 끝도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 안의 근심, 걱정, 두려움이 평강과 안식과 기쁨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경쟁할 때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 주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셔서 잠시라도 미혹되지 않게 하십니다. 웅덩이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더러운 오물이 가득한 맨홀에 빠지면 큰일입니다. 평생 영혼이 깨어 있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의 길을 걷는다면, 어떤 환경을 만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2. 본문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1-6)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왕이 되어 주시며, 우리의 생명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또한 육에 속한 것들을 쳐서 복종시키고 주님 앞에 목양받을 수 있는 온유한 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의 성전에 거하며 주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떤 일을 겪을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시편 6편도 참 깊은 은혜가 있습니다. 시편 6편의 배경을 아십니까? 다윗은 어릴 때부터 양을 쳤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나이 때까지 줄곧 양을 쳤을 것입니다. 즉, 그는 목양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목자로서 양치는 일을 깊이 알았던 그가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바로 여호와의 손 아래 있는 양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 그는 이 모든 도구를 직접 사용해 보았기에 매우 능숙한 목자였습니다.

이후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왕세자입니다. 하지만 진짜 왕세자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사울 왕에게 요나단이라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재위 기간에 다윗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그 소리를 듣고 심히 불쾌했고,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의 13년간의 도망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쫓기는 도망자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나중에는 다윗을 따르는 자가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 수천 명의 끼니를 어떻게 해결했겠습니까? 마치 유격대처럼 산속을 숨어 다녔고, 사울의 대군이 수시로 추격해 왔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사는 나날이었습니다. 수천 명을 먹여 살릴 돈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실로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시편 23편을 읽으면 매우 평온해 보이지만, 시편 6편을 읽어 보면 그 고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편 6:1)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으면 이런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편 6:2-10)

시편 6편은 다윗의 일상적인 고통을 묘사한 것입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셨습니다. 매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비록 연약한 말이었지만, 그가 겪었던 극심한 고난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가 평생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겠습니까?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매번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매번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그 후에 기록한 것이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군량이 바닥나 수천 명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규군도 아닌 유격대였습니다. 수천 명의 먹을 것, 마실 것, 쓸 것을 마련하고 온갖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수천 명을 이끌고 다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지키심 속에 있었기에 그는 위대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어떻게 부족함이 없을 수 있었을까요? 당시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감당하기 힘든 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대출금은 쌓여 있는데 직장을 잃었습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경매로 넘어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고,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놀라우셨습니다. 우리 집 부동산을 임대하려는데 시세보다 높아서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 집을 제가 계약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금액대로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세가 4천이었는데 제가 6천을 불렀으니 50%나 더 비쌌습니다.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몇 달 동안 나가지 않아 애를 태우던 집이 다 나가면서 오히려 재정적인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가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체험했습니다. 사실 제가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건축하지 못해 저주를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저주 아래 있었지만, 제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담대히 선포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도 이것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경험하고 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급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라 날마다 겪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굶주린 수천 명을 위해 농가의 닭, 오리, 양을 약탈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발의 소유를 빼앗아야 할까요? 수천 명이 굶든지, 약탈하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얼마나 치열한 내면의 싸움이 있었겠습니까? 눈앞의 고기와 재물은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풀밭의 소를 보면서 고소한 고기 생각을 하며 침을 흘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결정을 내릴 때마다 엄청난 갈등이 있었습니다. 약탈하면 당장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주께서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셔서 의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겪은 일들도 다 이와 같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3)

다윗은 평생 동안 경험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를 쓸 당시에는 아직 고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난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고백을 남겼다는 것은 믿음의 선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편을 애송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다윗처럼 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께서 의의 길로 인도하셔도 굽은 길로 가며 성령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 다윗과 같은 사람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르고 잔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시편 23편의 배경입니다. 비록 형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을지라도, 이 선포는 미래를 향한 소망이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질병이 아직 깨끗이 낫지 않았다면 사명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십시오. 재정의 돌파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역시 사명의 관점에서 다루십시오. 굳은 결단을 내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굽은 길을 버리고 의의 길, 곧 믿음의 길을 걸으십시오. 이것이 다윗이 이 시를 쓴 배경입니다.

5. 우리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었던 간증은 우리 모두에게 다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부족합니까? 결핍의 때는 지나갔고 번영의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까? 영원히 부족함이 없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영원히 부족함이 없다면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사업을 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에 염려가 있다면 다른 것을 걱정하지 마시고 오직 한 가지만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주께서 치시는 양입니까, 아니면 늑대입니까? 늑대라면 하나님이 막대기로 쫓아내실 것이요, 양이라면 반드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부족하지 않은 것'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번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선포하십시오. 이제 번영의 날이 올 것이며 번영의 계절이 도래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구 같지만 매우 위대한 선포입니다. 영원히 부족함이 없는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재정을 모으는 데 탁월하여 나중에 금 200톤 이상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금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아낌없이 드려 기둥을 금으로 싸고 벽을 금으로 둘렀습니다. 엄청난 부유함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평생 부족함이 없습니다. 단순한 원리이며, 나아가 큰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재정과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포하신 것은 그가 살아가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다른 이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이 수천 명을 이끌고 도망칠 때, 내일이면 군량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세상의 헛된 방식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겠습니까? 반드시 공급하십니다! 다윗과 그 일행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양 한 마리를 준비해 두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양 한 마리를 준비하실 수 있다면 열 마리, 백 마리, 천 마리는 준비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례를 보면, 제사를 드리고 남은 제물은 백성과 제사장들이 집으로 가져가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논리가 여러분의 생각 속에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평생 부족함이 없는데 무엇을 걱정합니까? 여러분이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내게 사명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고 있는가?", "내가 여호와의 초장의 양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사람이라면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6.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

세상에는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걷어서는 그 돈을 들고 도망쳤습니다. 그런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룟 유다도 돈궤를 맡았다가 결국 목을 매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헌금을 횡령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립니다. 그릇된 길로 가는 자가 많습니다. 의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돈을 의지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맘몬을 섬기지 않습니다. 맘몬은 돈을 줄 수는 있어도 평생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약속은 줄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3)

이 구절은 시편 23편의 세 번째 구절입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사람이 평생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공의의 길, 곧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면 평생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귀신에게 속습니다. 귀신은 저도 종종 속이려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 영혼을 소생시키지 않으셨다면, 저도 헌금을 챙겨 달아났을지 모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주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 곧 믿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평생 부족함이 없을 텐데 횡령할 필요가 있습니까? 탐관오리가 되거나 악덕 상인이 될 필요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예전에 오프라인 교회에 있을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의의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재정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돈의 논리를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가 매우 어려웠는데 옆에 큰 공간이 비어 있어 임대를 얻기로 했습니다. 월세가 이전 장소의 두 배나 되어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계약한 바로 그 달에 헌금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성도 수는 그대로였는데 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세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였습니다. 이후 동역자들과 함께 이런 일들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사역을 확장하고 목양의 도구를 마련하여 성도들을 온전케 세우는 일에는 많은 재정이 듭니다. 그러나 수익을 목적으로 일한다면 그것은 제사장의 마인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매번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내면의 치열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하다 보면 자꾸 세상적인 수익 논리로 흘러갈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중심을 바로잡았습니다. 제사장의 마음과 장사꾼의 마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속한 것은 눈앞의 현금을 보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바라봅니다. 오늘날까지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양 떼를 목양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편 23편이 마치 저를 위해 쓰인 것 같다는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7.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보셨습니까? 저는 주님을 믿기 전에도 사망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왔고, 주님을 믿고 교회를 세우면서도 수없이 벼랑 끝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까? 당시에는 화인 사명 신학의 형태조차 없었고, 모든 것이 안개 속처럼 희미하고 어두웠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나눈 《사무엘기》나 《사도행전》 강해가 이전보다 훨씬 깊어진 것은, 당시의 치열한 과정을 거치며 사명 신학의 기틀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맬 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인 한 명이 떠나면 성도의 5%가 줄고, 두 명이 떠나면 10%가 줄었습니다. 어느 부부가 교회를 떠났을 때 제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대형 교회의 화려한 무대, 드럼 연주, 유명 가수 출신의 찬양 인도자를 찾아 떠났다는 말을 들을 때 제 마음은 사망의 골짜기를 기어가는 듯했습니다. 수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도 수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선지자가 "당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예언을 주었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언에만 치우치지 않지만, 그 말씀대로 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난 후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여러분이 여호와의 손에 있는 양이라면 주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매년 위기가 찾아오지만 감사하게도 결산할 때마다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알지 못합니다. 골짜기를 통과할 때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 오늘날까지 담대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8.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심

시편 23편을 통해 본문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상을 차려 주신다는 것은 승리의 축하연을 베풀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원수가 아직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데, 하나님은 이미 승리의 잔칫상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아직 적을 물리치기 전인데 승리의 축하연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승리를 미리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신뢰하고 시편 23편을 믿는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가 목자이심을 믿는다면, 원수의 목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업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경쟁자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여러분을 위해 상을 차려 주실 것입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어도 이미 승리했음을 선포하십시오. 다윗의 모든 전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사울 왕과 요나단이 전사했던 전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 진영에 망명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 출전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참으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출전하면 동족을 치는 것이고, 거부하면 반역자나 첩자로 몰려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라며 블레셋 왕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을 결사반대하여 돌려보낸 것입니다. 누가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셨습니다. 결국 그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고,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신 것이 아닙니까?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일들이 많지만,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의 선택입니다. 다윗과 같은 은혜가 없다면 인생은 비참해집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번영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입니다. 결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지난 몇 년간 더 번성해지셨습니까? 아직 번영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내면의 육신, 곧 짐승과 같은 육적인 본성을 쳐서 복종시키십시오. 육신은 귀신과 한패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주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9.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백성의 고혈을 짜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 왕조 아래서 백성들은 수십 년간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조공을 바쳐왔습니다. 그 많은 금이 다윗이 금광을 캐서 얻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조공으로 들어온 것이며, 훗날 솔로몬 왕 때 성전을 짓는 데 귀하게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이유는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음은 단순히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이전과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사명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도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는 왕위를 자신의 소유로 여겼습니다. 반면 다윗은 평생 왕위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된 것은 호의호식하며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명과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기름 부음은 곧 '임명'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올리브유 한 병 사 와서 이마에 바른다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외적인 행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자에게 시편 23편의 모든 복이 임합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며, 이것을 위해 죽습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입니다. 기업이나 학교를 키우고, 은행 대출을 받아 거대한 성당을 짓다가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공을 어떻게 차겠습니까? 사명을 붙잡겠습니까, 아니면 사명을 버리고 헛된 것을 좇겠습니까? 택하심과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결코 사울 왕처럼 되지 마십시오!

많은 목회자들의 평생 꿈이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양 떼를 돌보고 목양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명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따릅니다. 복은 사명 밖에는 없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사명이 없는 사람들은 사역을 맡겨도 "깜빡 잊었습니다"라고 핑계를 댑니다. 연애할 때는 결코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잔이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양 떼를 목양하라고 사람을 붙여주어도 며칠 뒤 "전화 한 통 안 했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로는 평생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살다 보면 다윗 같은 사람도 만나고 사울 같은 사람도 만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왜 사는지 목적을 알지만, 사명이 없는 사람은 그저 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갈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분의 목자로 삼기를 원하십니까?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를 것입니다. 이것은 사명을 가진 자, 주께서 치시는 양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양의 가죽을 벗겼을 때 이리의 이빨을 드러내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으로 사십시오.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선포합시다. 우리가 사명자임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살아갈 때,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따르고 영원히 여호와의 성전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고 성전을 건축하는 자들입니다. 비록 온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우리는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입니다. 이 세대의 축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웁시다.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10. 결론

제 안에는 한 가지 분별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은혜만 받으려고 공동체에 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의 영이 그들을 미혹해 데려가도록 내버려 둘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헛된 사랑과 유혹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명을 품고 왔다가 잠시 넘어진 형제자매라면, 저는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품을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실수할 수 있지만,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다시 깨어나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영원토록 주의 집에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생뿐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을 드린 후 헌금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믿고, 사명을 받아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결단한 분들만 헌금에 동참하십시오. 교회는 돈을 걷는 곳이 아니라 사명을 받는 곳입니다. 육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켜 성령을 따르십시오. 시편 23편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약속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기쁨으로 번영의 때를 맞이하고, 주의 인자하심을 기쁨으로 환영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빛을 잃습니다. 주의 참된 양이 되십시오. 겉만 양이고 속은 은혜를 모르는 늑대가 되지 마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 세대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으며, 그 기회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이 세대의 축복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주의 기름 부으심과 사명을 받아이 평생 주의 뜻 안에서 행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제 자신을 온전히 드리오니,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저를 따르게 하시고 내 잔이 넘치게 하사 주의 은혜와 축복 안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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