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 나누어 주는 사람만이 기뻐할 수 있으며, 기꺼이 자원하여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더해 주십니다.
- 만약 자신이 나누어 줄 것이 없다고 느낀다면, 과거에 너무 적게 주었다는 뜻입니다.
-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준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이
2. 본문 말씀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두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사도행전 20:33-36)
3. 기도
주님! 오늘 우리를 일으키사 나누어 주는 자가 되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 밝은 빛처럼 비추게 하시며, 이 세대의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복이 우리에게 성취되게 하옵소서!
4. 본문 배경
- 교회 안에는 재물을 탐하는 자들이 많았으며, 바울이 말한 이리는 바로 이 탐욕스러운 자들을 가리킵니다.
5.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가련합니다. 끊임없이 얻으려고만 하고, 심지어 자녀에게도 남에게서 이득 보는 법을 가르치니 결국 그런 자녀는 자라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캥거루족이 되기 십상입니다.
- 사람의 느낌은 영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누어 주면 마귀의 영은 떠나가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져서 기쁨의 사람이 됩니다.
6. 나누어 주어야 성장이 오고, 성장이 와야 기쁨이 옵니다
- 나누어 줄 때 비로소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게 되며, 그래야 성장하게 되고, 조금 성장해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게 됩니다.
- 주는 것은 우리의 창조의 동력이자 성장의 동력입니다. 가진 것은 끊임없이 개선하고 끌어올리며, 없는 것은 그때그때 개발해 내는 것입니다.
- 제사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거저 주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7. 나누어 줄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 나누어 주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베푸는 자와 동행하시며, 그런 자에게 은사, 창의력, 리더십을 더해 주십니다.
-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바라보는 대신 문제 해결의 솔루션을 제공해 주면, 하나님께서는 한 달란트에서 두 달란트로 더해 주실 것입니다.
8.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베풀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 베풀면서 '왜 아직도 돌아오는 게 없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9. 결론
-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십시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기쁨의 사람이 됩니다!
- 자신의 안목과 생각을 바꾸고, 내면의 이기심을 바꾸십시오. 더 이상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나누어 주기 시작하십시오. 단순한 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핵심 단어
- 기쁨의 사람
- 대가를 바라지 않음
- 이기적인 사람
- 재물을 탐하는 자
- 하나님의 형상
- 문제 해결
- 거저 나누어 줌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어떤 주제를 전할지 아시겠습니까? 기쁨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은 기쁨 시리즈 다섯 번째 시간으로, '나누어 주어야 기쁨이 온다!'입니다. 이전에 나눈 창조해야 기쁘고, 다스리고 관리해야 기쁘다는 말씀들은 정말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 등 모두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종종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말씀하시는 것들이 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아낌없이 주라는 것 아닙니까! 저도 다 압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그럼 그대로 잘 행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만약 어떤 사람이 기쁨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보입니다.
자, 이제 더 이상 바보처럼 살지 말고 반드시 기쁨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이 평생 동안 기뻐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만고의 난제입니다! 다행히 저는 학자 스타일의 사람이라 이런 것을 연구하기를 좋아합니다. 왜 이것을 연구했을까요? 제가 아주 훌륭한 결론 하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무엇을 소유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쁨의 사람이 되어 날마다 기뻐한다면, 죽기 직전에 "내 평생은 기쁨의 인생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생 사서 고생을 하고, 늘 마음이 얽히고설켜 번민하며, 평생 수고와 슬픔 속에 살고, 걸핏하면 토라지고 화를 내며 살아갑니다. 장담하건대 이런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눈을 돌려 둘러보십시오. 기쁨의 사람은 적습니다. 기쁨의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여러분도 발견하셨습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기쁨의 사람이 되겠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의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다행히 제가 학자 스타일이라 한 평생 사람이 결국 무엇을 살아내는가를 연구했습니다. 허무함과 쓸쓸함을 살아냅니까? 아닙니다. 기쁨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하나의 느낌입니다. 기쁨을 살아낸다면 그것이 바로 기쁜 인생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근본 법칙을 하나 붙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기본 법칙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떻게 연구할까요? 바로 관찰입니다. 반드시 관찰해야 합니다! 기쁨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관찰하고, 늘 마음에 얽매여 수고와 슬픔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왜 이 말씀을 전하는지 아십니까? 저 자신이 실제로 기쁨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환경 속에서도 제 안의 기쁨을 빼앗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게 될 것입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 안의 기쁨을 빼앗아 간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보통 내기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기뻐할 기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나누어 주어야 기쁩니다'입니다.
제가 무언가 가지고 있을 때만 주는 것일까요? 저는 없을 때도 주었습니다. 없을 때 어떻게 주는지 아십니까? 방법을 찾아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여러분에게 간증 하나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눈이 멀게 생긴 어떤 분을 보았는데, 세상에! 그 절망감과 고뇌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을 고쳐본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눈 문제는 간단합니다. 제가 기도하면 다 낫습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고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분을 데리고 기도했더니 눈이 정말로 나았습니다! 의사는 1년 안에 실명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삼십육계의 계책 같지만, 여러분, 효과가 있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떻게든 주어야만 했습니다.
한번은 '2+3=8'이라고 하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정말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다급해지자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고, 결국 그 아이를 바로잡아 놓았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얼마나 밝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 아이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예전에는 온 가족이 그 아이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갔는데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제게 무언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만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기 시작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줄 때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라고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만약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여러분은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한 번도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면밀히 살펴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 대충 짐작하여 함부로 말하고, 평소에 생각 없이 일하고, 세월을 허송세월하며 인생을 아무렇게나 산다면 어찌 괴롭지 않겠습니까? 기뻐하려면 기쁨의 법칙을 터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거 참 번거롭네요. 기쁨의 법칙까지 알아내야 합니까? 머리 아파 죽겠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을 시간은 있으면서 살 시간은 없고, 번민할 시간은 있으면서 기뻐할 시간은 없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것이 참 기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생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의 번민과 갈등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바나나처럼 웃는 얼굴을 지으려 해도 거울을 보면 쓴오이처럼 일그러져 있습니다. 저는 우스꽝스러운 표정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번은 쓴오이 같은 우울한 표정을 흉내 내려 했는데, 사람들이 보더니 "어머! 목사님,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렇게 환하게 웃으세요?"라고 합니다. 사실 웃으려던 게 아니라 흉내만 내보려 했던 것뿐입니다.
사실 사람은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다 얻지 못하고, 무언가를 차지하려다 얻지 못할 때 마음이 괴롭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속으로는 너무 괴로운데 차마 말을 못 합니다. 왜일까요? 말하자면 창피하고 체면이 깎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괴로운 것은 논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은 얼마나 쉽습니까! 주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물론 여러분에게 무언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나누어 주는 것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내일 주면 되니, 기쁨을 얻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기쁨이란 참으로 얻기 쉬운 것입니다.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면 기쁨은 아주 간단한 문제가 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중 어떤 자매가 무심코 복사기 옆에서 회사 연말 보너스 명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일도 적게 한 어떤 사람들이 자기와 똑같은 액수를 받는 것을 보고는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돌아와서 자기 목회자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마음 괴로워했습니다. 왜 괴로웠을까요? 자기는 일을 많이 했고 다른 사람은 일을 적게 했는데 어떻게 똑같이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이나 속을 끓였습니다. 얼마나 미련합니까?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왜 자기가 나누어 준 것은 계산에 넣지 않습니까?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참 묘합니다. 어떤 분이 딸을 시집보내려 하는데, 군인에게 시집을 가면 아내가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거저 몇천 위안씩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분의 목회자가 제게 말해 주었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늘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합니다.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부터 무엇을 챙길까만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닙니다. 늘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 것, 이런 것을 '가난한 자의 심리'라고 합니다. 늘 무엇을 챙길까만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나누어 줄 생각만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아십니까? 저의 바람은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중화권 데스티니 신학)에 오셔서 이전보다 더 기뻐지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이전보다 기뻐졌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제가 오늘도 잔소리하고, 내일도 잔소리하고, 매일같이 "사명(명정)이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나누어 주십시오! 베푸십시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제 잔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주는 자가 참으로 기쁨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깨달으셨다면 오늘부터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 전환의 단계에서 여러분이 교회에 오는 것은 단순히 십일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노트를 정리하고, 사역 하나를 섬기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재주와 능력이 있든, 저는 어떻게든 그것을 끄집어내어 헌신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가지고 있든 다 쏟아부어 드리게 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작은 재주를 헌신하면 그것이 중간 크기의 능력이 되고, 그 능력을 다시 헌신하면 더 큰 역량으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제 말을 거꾸로 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종종 반대로 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헌신하여 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들으면 속이 불편해집니다. 마치 복사기에서 남의 보너스를 보고 '하나님은 왜 나한테는 이것밖에 안 주시나' 하며 괴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축복이 되어야 하며, 어릴 때부터 주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만약 "목사님, 저는 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한 번도 주어본 적이 없거든요"라고 하신다면, 이제 마침내 줄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니 줄 것이 없다면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무언가 줄 것을 찾아내십시오.
어젯밤에 우리 자매 한 분이 알고 지내는 여든 살 되신 목사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 자매가 저에게 "류 목사님, 이 목사님을 꼭 한번 만나보셔야 합니다. 정말 실제적인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 참 좋으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여든한 살이신데 얼굴에 혈색이 돌고 기운이 넘치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갈 곳 없는 고아 150명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집을 짓고, 먹을 것과 거처를 마련해 주고, 아이들을 입양하여 학교에 보내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엄청난 돈을 아낌없이 베풀고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손을 거쳐 가는 돈이 몇백만, 몇천만 위안에 달합니다. 왜일까요? 나누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시기 어린 눈으로 "저 목사는 장사를 좋아하는 건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정말로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어젯밤에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진을 한 보따리 보내주셨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 목사님에게는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불면증 같은 것은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날마다 크게 기뻐하며 사셨습니다. 왜일까요? 나누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통화할 때 그분이 다음에 태국 북부 골든 트라이앵글 쪽에 갈 때 저더러 "목사님도 한번 와서 보시겠습니까?"라고 하셔서, 저도 한번 가보려 합니다.
이 일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합니다. 신학 체계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분은 매우 복음주의적인 목사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화인명정신학에서 지적하는 복음주의의 약점들이 있을지라도, 그분에게는 본받을 장점이 있습니다. 이 노목사님은 여든 살에도 진심으로 내어주십니다. 진정으로 베푸십니다! 그리고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어제 또 다른 자매 한 분도 우리 웹사이트에서 설교를 자주 듣고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찾아가 섬기는데, 섬기고 나면 정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허허, 저는 아주 오래전에 그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나누어 줄 때 얻는 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베풀 때 이를 악물고 발을 구르며 괴로워합니다. 주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고통스럽게 줄 바에는 차라리 주지 마십시오." 헌금 200위안을 내면서 "옛다, 받아라!" 합니다. 고작 200위안 내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모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누구누구 복 받았다는 간증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니, 나도 헌금했는데 왜 복이 없지?"라고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당신이 헌금할 때 그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보십시오. 그렇게 괴로워하며 드렸으니 헛수고한 것입니다!"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다 헛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기쁨을 얻으려면 기쁨으로 헌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헌신하고 나서 복을 받는지 안 받는지는 마음에 둘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일까요?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복은 부산물이고, 기쁨도 부산물이며, 성장 또한 부산물입니다. 그것들은 목표가 아닙니다. 나누어 주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저 베푸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명정)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죽고, 베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옛 글에 이런 좋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다하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마른다(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干)." 이 세상에 온 것은 내어주기 위함입니다. 얻으려고 하면 얻지 못하지만, 내어주면 오히려 얻게 되는 참으로 오묘한 이치가 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베풀기를 좋아하며, 세운 교회 역시 나누어 주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결코 남의 돈을 탐내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남의 돈을 받지 않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친구도 교회를 개척했는데, 홍콩의 한 교회에서 200만 싱가포르 달러를 헌금해 주어 성전도 건축하고 부동산도 매입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 우리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필요한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훈련하는 성도들도 나누어 주는 성도입니다.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오늘 주고 내일 주고 나서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왜 나한테는 아무도 안 주지?' 완전히 잘못 짚은 것입니다. 헌금하고 또 헌금하면서 '왜 나에게는 아직 복이 임하지 않지?' 이러니 어찌 기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오늘날 열린 시스템(개방형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닫힌 시스템(폐쇄형 시스템)으로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자원이 딱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내가 절반을 차지하면 상대는 절반만 갖고, 상대가 60%를 가져가면 나는 40%밖에 못 가집니다. 이것이 제로섬 게임입니다. 내가 많이 가지면 상대는 적게 갖고, 상대가 많이 가지면 나는 적게 갖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자원이 무한하다면 어떻습니까? 만약 이곳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자원을 쏟아부어 주시는 열린 시스템이라면 공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셈법도 달라지고 공식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결코 닫힌 사고방식으로 오늘날 우리의 삶과 생존 공간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실천해 보지 않으면 나누어 주어야 기쁨이 온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내어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베풀어야 기쁨이 오지, 머릿속으로 지레짐작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는 교회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전환의 해이며, 이제 교회는 또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누어 줌의 새로운 차원입니다. 이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20장 33절부터 36절을 읽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 형제가 "목사님, 사도행전 성경공부를 우리와 함께 한 번 더 해주시겠습니까?"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 말이 "목사님이 사도행전에 대한 이해가 아주 깊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아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과 베드로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꿰뚫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인물이 바로 사도행전 20장에 등장하는 바울입니다.
본문 말씀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두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사도행전 20:33-36)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일으키사 나누어 주는 자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어 이 세대를 축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일으키사 이 세대에 밝은 빛처럼 비추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과 권능의 팔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로 이 세대의 축복이 되게 하사 만국과 만민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복이 우리에게 성취되어 주님의 약속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울은 대단히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겪은 일들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바울 내면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본문은 무슨 내용일까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가 몹시 가난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상황입니다. 왜 그렇게 가난해졌을까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이들이 엉뚱하게 운영하면 배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제가 그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쓴 방법이 참 기가 막힙니다. 다들 일은 하지 않고 재산을 팔아 교회에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다들 교회에 모여 먹고 마시기만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먹으려 할 뿐입니다. 내가 얼마를 헌금했든 먹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멀쩡하던 예루살렘 교회가 이 무리에 의해 완전히 거덜 나고 말았습니다. 밥만 축내는 식충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지도자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만 전념하고 구제와 식량 관리는 남에게 맡겼는데, 결국 교회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미 이방인 교회의 사도가 되었지만, 자신도 유대인이었기에 동족 유대인들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아주 많은 구제 헌금을 모았고, 그 헌금을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전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은 왜 굳이 이 일을 그토록 고집했을까?' 그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줌으로써,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도 바울이 전하는 도가 나누어 주는 도이며,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알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많은 예언자가 사도 바울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고 붙잡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도 그의 뜨거운 마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헌금을 가지고 가면 바리새파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말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저도 깨달았습니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요. 결국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누구에게 잡혔을까요? 바로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바리새파 출신 그리스도인들이라 봅니다. 그들은 다 야고보 휘하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에베소 근처를 지나게 되었고, 에베소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목회 동역자들, 즉 교구장들과 목회자들입니다. 그가 밀레도에 이르러 멀지 않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을 부른 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17-24)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두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25-35)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사도행전 20:36-38)
바울이 여기까지 말할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기를 고집하며 "여러분은 이제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기에 가장 중요한 말을 그들에게 당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라는 말을 했을까요? 왜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두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라고 말했을까요? 그 앞에서는 또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올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이 말씀 속에 담긴 뜻이 매우 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깊은 뜻이 무엇일까요? '이리'란 바로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왜 다른 사람의 은이나 금을 탐하지 않았다고 말했을까요? 재물을 탐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한편으로 바울은 나누어 주는 자로서 본을 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에 들어와 재물을 탐하는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안에 돈을 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모르셨다면 오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초창기에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저는 돈과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거의 모든 재정을 제가 부담하며 사람들을 먹이고 대접했습니다. 물론 그 개척 방식이 썩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저에게 한 말이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고향 사람들은 교회를 개척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다 압니다!" 세상에나! 교회를 개척하면 돈을 번다고요? 저는 귀를 의심하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교회를 개척해서 부자가 된다고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이 말하길 "저희 고향에서 교회 세운 사람들은 다 큰 저택을 지었습니다!" 듣고 나니 기가 막혔습니다. 다들 큰 집을 짓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희 부모님이 저더러 나중에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해서 큰돈을 벌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더군요. 듣기에 참으로 섬뜩한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이리가 교회에 들어오는 일은 너무나 흔한 현상입니다. 교회를 비즈니스로 삼는 것입니다. 그때 제 뇌리에 깊은 충격이 남았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그런 사람이 과연 기쁠 수 있을까요? 결코 기쁠 수 없습니다. 저는 왜 기쁠 수 없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영계는 너무나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과 동기를 품고,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교회를 세운다면 그것이 이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영계의 악령들이 그 사람에게 달라붙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붙게 되어 있습니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에게 악령이 붙는데, 그 사람이 어찌 기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어찌 그와 함께하시겠습니까?
훗날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과 동역자들에게 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곳이지, 재물을 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돈을 긁어모으지도 않고 재테크를 하지도 않으며, 투자나 금융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짓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무엇을 다스립니까? 축복을 다스립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축복을 주는 곳이며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이번 전환기를 맞아, 형제자매 여러분이 교회에 온 지 얼마나 되었든 저는 여러분이 가진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001 과정이나 101 과정을 다 마치지 못했더라도 무언가 나누어 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저는 반드시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꼭 돈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주와 역량을 꺼내어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회계 출신이라면 재무나 회계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네트워크 전문가라면 네트워크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저 나누어 주는 것, 이것 자체가 교회의 매우 중요한 표식입니다. 교회는 돈을 긁어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를 장사판으로 삼으면 큰일 납니다.
돼지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지만, 늑대나 이리에게는 쓸모 있는 것이 별로 없고 고기도 맛이 없습니다. 이리가 양을 잡아먹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줄 알겠습니까? 그저 양을 뜯어먹는 것뿐입니다. 이리의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이리의 얼굴 사진을 찍어 본다면 거기서 기쁨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의 얼굴을 보십시오. 토끼 얼굴만 찍어 보아도 순하고 착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탐하는 이리는 어떻습니까? 흉악한 얼굴입니다. 사람이 늑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사실 돼지 얼굴이 늑대 얼굴보다 낫습니다. 돼지는 온몸이 유익하기라도 하지, 늑대에게서 건질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이 이 말씀을 전한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나누어 주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는 법을 배우는 것은 주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찾아보니 예수님이 글자 그대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구절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저주를 받으면 악령이 사람에게 붙게 되고, 마귀가 주는 괴로운 느낌 속에서 살아가게 되며 하나님의 영은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사람은 기뻐하게 됩니다. 영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영계의 상태가 우리 몸의 느낌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숨쉬기가 곤란하다면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악령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면 통증의 영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온몸이 찌뿌둥하고 괴롭다면 괴로움의 영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의 감각이 영계와 얼마나 밀접한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기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진정으로 베풀면, 하나님의 말씀이 베풀라고 하셨기에 진심으로 나누어 줄 때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마귀의 영은 떠나갑니다. 그러면 장담하건대 반드시 기쁨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곧 기쁨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어떻게 삽니까? 끊임없이 얻으려고만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늘 가지려고만 하고 얻으려고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이기심을 가르치고, 남에게서 이득 보는 법을 가르치니 아이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갈수록 문제만 늘어납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법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 안에서 힘을 좀 보태어 집안을 청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돕는 것 역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아이를 몹시 이기적인 아이로 키웁니다. 그 결과 아이가 자라서 캥거루족이 되거나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우울증에 걸립니다. 암이나 우울증 같은 질병들이 다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사는 것은 귀신의 말대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곧 귀신의 생각이고, 귀신의 생각이 곧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영계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은 결코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영계에 무지하여 사람의 논리를 따르고, 무언가를 얻어야만 기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얻지 못합니다. 그러니 평생 기쁨 없이 저주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인생에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귀신의 말이나 사람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베풀 때, 어떤 분이 채팅창에 그 구절을 올려주셨군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누가복음 6:38)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 시스템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나누어 준다면 참으로 베푸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 여든 넘으신 노목사님은 늘 나누어 주셨기에, 그의 손을 거쳐 간 돈이 수백만, 수천만 위안에 달했습니다. 그 돈을 어디서 났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분에게 돈 한 푼 없었을 때 정부를 찾아가 양로원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부에서 300만 위안을 대출해 주어 양로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양로원을 완공하여 운영하다가 얼마 전에 그 300만 위안짜리 양로원을 1,600만 위안에 매각했습니다. 1,600만 위안에 팔아 원금을 제하고도 엄청난 돈이 남았습니다. 정확한 액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후 다시 큰 땅을 사서 임대를 놓고, 그 수익금을 태국으로 보내 고아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이 어떻게 그렇게 굴러갈 수 있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신기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누어 줄 때 도로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불교도 중에서도 이런 일을 경험하는 이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베풀면 베푸는 대로 채워집니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불교도나 세상 사람들도 이러한 법칙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셔야 합니다. 절대로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보다 더 가련합니다! 오늘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고, 저주를 받으면 귀신이 달라붙어 사람이 결코 기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붙으면 사람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기뻐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셔야 하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만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포인트입니다. 분명해지셨습니까?
나누어 주어야 성장이 오고, 성장이 와야 기쁨이 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렸다고 해서 성장과 기쁨이 최종 목표라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것은 부산물일 뿐입니다. 실제로 나누어 주다 보면 '아, 줄 만한 게 별로 없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세월 교회를 개척하면서 저는 언제나 나누어 주고자 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아이를 빤히 바라보면서 제가 그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치유와 축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치유와 축사 사역은 절박한 상황에 몰려 개척해 낸 것입니다.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요? 고통과 억압 속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빤히 보면서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게 자유를 주어야 했고, 마귀의 결박에서 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구축한 치유와 축사의 체계는, 현존하는 치유와 축사의 논리 체계 중 가장 완전한 축에 속합니다. 줄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바로 줄 것이 없다는 그 절박함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해내게 만듭니다. 치유와 축사 신학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인 101 과정이 있고, 102 과정은 치유와 축사입니다. 왜일까요?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치유와 축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의 치유와 축사는 제가 아는 모든 교회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한 것이 아닙니다.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얻은 것은 바로 성장입니다.
나누어 주려 할 때 비로소 내게 가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도 제가 느꼈던 감정과 같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베풀려 할 때 온갖 문제들에 부딪혔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모든 답을 갖고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아무런 답도 없었고 다 그 자리에서 새로 개발해 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의 동력이 되었고, 관리의 동력이 되었으며, 은사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은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있으시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제게 사람들을 마귀의 결박에서 풀어주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제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없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때그때 개발하면 되고, 있는 것은 끊임없이 개선하고 끌어올리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남의 주머니를 털어 돈을 빼앗아 오려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상대에게 문제 해결의 솔루션을 제공해 준다면 그것은 정말 훌륭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명심하십시오. 내 손에 나눌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만약 "저는 정말 줄 게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과거에 베푸는 사람으로 전혀 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시대의 필요가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교회 내부의 필요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결핍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보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목회자이면서도 여전히 쉼 없이 입만 열어 신학을 늘어놓고 설교조로 훈계만 하고 있다면, 차라리 실제적인 일을 하십시오.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여 그 비참한 처지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입장에서 장성한 자식이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것을 보면 속이 타들어 가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번민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를 내게 맡겼을 때 제대로 가르치고 지도하여 베풀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주려는데 받지 않는다면 속이 상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줄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분야, 어떤 업종에 종사하든 장담하건대 나누어 주고자 마음먹는 순간, 여러분이 가진 몇 안 되는 재주를 다시금 가다듬어야 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은 놀라운 결과를 낳습니다. 생각이 명확해지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도우려 애쓰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시장이 엄청나게 넓어집니다. 그 사역의 지경이 대단히 커집니다.
우리 가운데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절대로 "내게 돈을 주시오, 왜 나와 계약하지 않습니까?"라는 식으로 영업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누가 계약하겠습니까? 여러분은 해결책을 들고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모든 것은 전부 무료라는 사실입니다. 아십니까? 전부 무료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정말 엄청난 사업을 하시네요. 스케일이 너무 큽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째서 큽니까?"라고 물으니, "목사님 사역은 구글처럼 다 무료로 쓰게 하잖아요"라고 합니다. 당연히 무료로 쓰게 해야지요! "목사님 사업은 오픈AI나 챗GPT처럼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들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의 비즈니스 모델은 거저 주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우리는 제사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사고방식은 거저 주는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원리입니다.
제가 예전에 '축복보(축복페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적이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앤트그룹은 '알리페이(즈푸바오)'를 운영하면서, 자신들을 거쳐 가는 모든 결제에서 수수료를 떼고 한 껍풀씩 벗겨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리페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페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모든 축복이 우리를 거쳐 흘러간다면 땅의 모든 민족과 백성의 축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비즈니스 모델은 구글의 모델보다 훨씬 고차원적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베푼 모든 것은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결코 없습니다. "목사님, 진심이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진심입니다. 저는 참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헌금하는 것도 바라지 않으십니까?" 저는 여러분의 헌금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사람에게 감사할 필요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전환을 통해 나누어 줄 수 있는 일련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나누어 줄 것이 너무나 많으며, 전부 무료입니다. 교회의 사역뿐 아니라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내어주는 것들도 다 무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제사장 모델입니다. 우리의 손은 하나님의 보좌를 만지고 우리의 발은 이 땅을 디딘 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해결책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돈 받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단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거저 나누어 줄 때, 여러분에게 엄청난 성장이 임할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며, 여러분이 성장하지 않으려 해도 하나님께서 성장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뻐하지 않으려 해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만약 사업계획서를 쓴다면 제사장의 사업계획서를 쓰십시오.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투자자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투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투자하실 것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천지를 뒤흔드는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바로 우리로부터 시작되며, 그 시작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의 영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베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평범한 세상 사람도 주는 삶을 한번 실천해 보면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제가 언젠가 한 암 환자에게 "어쩌다 암에 걸리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목사님, 저는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째서 착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니, "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할머니를 보면 짐을 집까지 들어다 주곤 했습니다.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평생 그런 착한 일 딱 하나 해놓고 속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수많은 것에 대해 원망하고 계산하다가 암에 걸린 것입니다. 만약 모든 일에서 나누어 주고, 모든 일에서 얻고 못 얻는 것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베푸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기쁨의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이며, 관리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영감이 여러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누어 줄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누어 주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사 이 땅을 굽어살피시며 지각이 있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찾으십니다. 기꺼이 나누어 주려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를 기꺼이 나누어 주려는 자가 있는가 찾으십니다. 마침내 여러분과 저를 발견하셨을 때 천군 천사들이 환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삶 속에서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은사와 영감, 창의력, 다스리는 지혜를 위로부터 아래로 쏟아부어 주시되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의 믿음 안에서, 저의 비전 안에서 저는 이미 형제자매들에게 임할 놀라운 은혜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주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에게 은사가 없을까요?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은혜가 없을까요?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영감이 없을까요?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창의력이 없을까요? 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엄청나게 성장했고 많은 영적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섬김 속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사람들을 현재의 상태에서 기쁨의 자리로 이끌어 하나님의 충만하신 형상을 이루게 하는 것만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왜 두 달란트를 더 주셨을까요? 성경 비유에서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신 이유를 아십니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새로 온 사람이기에 한 달란트를 준 것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이전에 한 달란트를 받아 한 달란트를 남겼기에, 그 두 달란트가 다 그의 것이 되었고 거기에 다시 두 달란트를 더 얹어준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전 두 차례에 걸쳐 한 달란트로 한 달란트를 남겨 두 달란트가 되었고, 그 두 달란트를 다 그에게 주었더니 다시 두 달란트를 더 남겨 하나님께서 거기에 보너스로 한 달란트를 더 얹어주어 다섯 달란트가 된 것입니다. 보너스 한 달란트를 더 받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남긴 것은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영원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은 바로 여러분이 얼마나 내어주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그 한 달란트가 어떻게 두 달란트가 되었을까요? 수많은 문제 해결책(솔루션)을 유통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무수한 솔루션을 제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가 두 달란트가 된 것입니다. 영업을 하시는 분이라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실적은 여러분이 제공하는 솔루션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남의 돈입니다. 여러분에게 해결책이 없다면 한 달란트는 결코 두 달란트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두 달란트가 어떻게 다섯 달란트가 되었습니까?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솔루션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런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십니다. 기쁨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기뻐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기뻐하십니까? 그 사람이 사심 없이 내어주는 사람일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사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지식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기쁨의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베풀면서 '왜 아직도 돌아오는 보상이 없지?'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 중에 종종 이런 이들을 봅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을 붙들고 기도해 주었는데 불쑥 "왜 아직도 안 낫지요?"라고 합니다. 머릿속에 오직 '낫는 것', 즉 치유를 얻어내는 것만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지난 두 달간의 사역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리셋되기 때문입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면 얼마나 낭패입니까.
우리가 섬기는 분들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왜 아직 안 낫지?'라고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불신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고, 또한 여러분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이 무언가를 주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며 "왜 나한테는 안 주시지?"라고 한다면 헛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에게 거저 후히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때 무엇 하나 바라신 것이 없듯, 우리 또한 남이 되갚아줄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며, 이것이 제사장의 심령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결론
제가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화인명정신학(중화권 데스티니 신학)은 나누어 주는 신학임을 깊이 이해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세우며 "내가 당신을 축복합니다!"라고 할 때,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을 세운다면서 그 사람에게서 헌금을 뜯어낼 생각만 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교회는 결코 헌금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전을 짓느라 수백만, 수천만, 심지어 수억 위안의 빚을 집니다. 그리고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그 빚을 갚으려 하고, 교인 수가 늘어나기만 바라고, 사람들이 헌금해서 교회의 빚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왜일까요? 그것은 너무나 큰 시험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기를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이며,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 역시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른 이들 역시 또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화인명정신학의 진수이며 화인명정신학의 문화입니다. 나누어 주십시오. 끊임없이 베푸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기쁨의 사람이 될 것이며, 여러분이 행한 일로 이미 마땅히 받아야 할 상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명정)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주 안에서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 한 곡을 부르고 오늘 헌금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셨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의 안목과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곤고하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온몸에 질병을 달고 산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며, 내어주려 하지 않고 늘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품어야 할 유일한 생각이 나누어 주는 것이라면, 가정에서도 힘을 내어주는 것이며, 단순히 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헌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온 교회가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몇 마디만 더 덧붙이겠습니다. 많은 분이 제게 "류 목사님, 신학교를 세워 학비를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래 고민해 보았지만, 그것은 제사장의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구든,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길 가던 사람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을 거저 내어줄 것입니다. 이곳은 돈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축복하는 곳입니다. 제가 이렇게 선포할 때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환호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안목과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일 때 기쁨이 우리를 채울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부터 십일조뿐만 아니라 가진 모든 역량을 꺼내어 놓으십시오. 평생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내어놓으십시오.
자, 손을 들고 저와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누어 주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저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습니다. 하나님! 제게 힘을 더하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제 자신을 드리게 하시고, 제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쏟아붓게 하사 평생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이 세대가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