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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11장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과 믿음이 있다면, 출신 배경은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2025-01-08 5,681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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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11章-耶弗他的女儿
  • 1 基列人耶弗他是个大能的勇士,是妓女的儿子。耶弗他是基列所生的。
  • 2 基列的妻也生了几个儿子:他妻所生的儿子长大了,就赶逐耶弗他,说:“你不可在我们父家承受产业,因为你是妓女的儿子。”
  • 3 耶弗他就逃避他的弟兄,去住在陀伯地,有些匪徒到他那里聚集,与他一同出入。
  • 4 过了些日子,亚扪人攻打以色列。
  • 5 亚扪人攻打以色列的时候,基列的长老到陀伯地去,要叫耶弗他回来;
  • 6 对耶弗他说:“请你来作我们的元帅,我们好与亚扪人争战。”
  • 7 耶弗他回答基列的长老说:“从前你们不是恨我、赶逐我出离父家吗?现在你们遭遇急难为何到我这里来呢?”
  • 8 基列的长老回答耶弗他说:“现在我们到你这里来,是要你同我们去,与亚扪人争战;你可以作基列一切居民的领袖。”
  • 9 耶弗他对基列的长老说:“你们叫我回去,与亚扪人争战,耶和华把他交给我,我可以作你们的领袖吗?”
  • 10 基列的长老回答耶弗他说:“有耶和华在你我中间作见证,我们必定照你的话行。”
  • 11 于是耶弗他同基列的长老回去,百姓就立耶弗他作领袖、作元帅。耶弗他在米斯巴将自己的一切话陈明在耶和华面前。
  • 12 耶弗他打发使者去见亚扪人的王,说:“你与我有什么相干,竟来到我国中攻打我呢?”
  • 13 亚扪人的王回答耶弗他的使者说:“因为以色列人从埃及上来的时候占据我的地,从亚嫩河到雅博河,直到约旦河。现在你要好好地将这地归还吧!”
  • 14 耶弗他又打发使者去见亚扪人的王,
  • 15 对他说:“耶弗他如此说,以色列人并没有占据摩押地和亚扪人的地。
  • 16 以色列人从埃及上来乃是经过旷野到红海,来到加低斯,
  • 17 就打发使者去见以东王,说:‘求你容我从你的地经过。’以东王却不应允。又照样打发使者去见摩押王,他也不允准。以色列人就住在加低斯。
  • 18 他们又经过旷野,绕着以东和摩押地,从摩押地的东边过来,在亚嫩河边安营,并没有入摩押的境内,因为亚嫩河是摩押的边界。
  • 19 以色列人打发使者去见亚摩利王西宏,就是希实本的王,对他说:‘求你容我们从你的地经过,往我们自己的地方去。’
  • 20 西宏却不信服以色列人,不容他们经过他的境界,乃招聚他的众民在雅杂安营,与以色列人争战。
  • 21 耶和华以色列的 神将西宏和他的众民都交在以色列人手中,以色列人就击杀他们,得了亚摩利人的全地:
  • 22 从亚嫩河到雅博河,从旷野直到约旦河。
  • 23 耶和华以色列的 神在他百姓以色列面前赶出亚摩利人,你竟要得他们的地吗?
  • 24 你的神基抹所赐你的地你不是得为业吗?耶和华我们的 神在我们面前所赶出的人,我们就得他的地。
  • 25 难道你比摩押王西拨的儿子巴勒还强吗?他曾与以色列人争竞,或是与他们争战吗?
  • 26 以色列人住希实本和属希实本的乡村,亚罗珥和属亚罗珥的乡村,并沿亚嫩河的一切城邑,已经有三百年了;在这三百年之内,你们为什么没有取回这些地方呢?
  • 27 原来我没有得罪你,你却攻打我,恶待我。愿审判人的耶和华今日在以色列人和亚扪人中间判断是非。”
  • 28 但亚扪人的王不肯听耶弗他打发人说的话。
  • 29 耶和华的灵降在耶弗他身上,他就经过基列和玛拿西,来到基列的米斯巴,又从米斯巴来到亚扪人那里。
  • 30 耶弗他就向耶和华许愿,说:“你若将亚扪人交在我手中,
  • 31 我从亚扪人那里平平安安回来的时候,无论什么人,先从我家门出来迎接我,就必归你,我也必将他献上为燔祭。”
  • 32 于是耶弗他往亚扪人那里去,与他们争战;耶和华将他们交在他手中,
  • 33 他就大大杀败他们,从亚罗珥到米匿,直到亚备勒·基拉明,攻取了二十座城。这样亚扪人就被以色列人制伏了。
  • 34 耶弗他回米斯巴到了自己的家,不料,他女儿拿着鼓跳舞出来迎接他,是他独生的,此外无儿无女。
  • 35 耶弗他看见她,就撕裂衣服,说:“哀哉!我的女儿啊,你使我甚是愁苦,叫我作难了;因为我已经向耶和华开口许愿,不能挽回。”
  • 36 他女儿回答说:“父啊,你既向耶和华开口,就当照你口中所说的向我行,因耶和华已经在仇敌亚扪人身上为你报仇”;
  • 37 又对父亲说:“有一件事求你允准:容我去两个月,与同伴在山上,好哀哭我终为处女。”
  • 38 耶弗他说:“你去吧!”就容她去两个月。她便和同伴去了,在山上为她终为处女哀哭。
  • 39 两月已满,她回到父亲那里,父亲就照所许的愿向她行了。女儿终身没有亲近男子。
  • 40 此后以色列中有个规矩,每年以色列的女子去为基列人耶弗他的女儿哀哭四天。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사기 11장을 보겠습니다. 이 장은 누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바로 입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다면, 출신 배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입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장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를 사용하셨을까요? 왜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셨을까요? 사실 이것저것 가려 뽑아도 결국 그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입다에게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출신 배경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은 당신이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입니다.

1. 입다의 배경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그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50년 전만 돌아보아도, 그 당시 동네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 단독주택 골목길에 살면 어르신들이 문 앞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십니다. 물론 겨울은 아니고, 찌는 듯한 더위나 혹한에는 다들 집에 계시지요. 누군가 그 앞을 지나가면 어르신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이러쿵저러쿵 품평을 시작합니다. “저 집은 어떻고, 이 집은 어떻고…” 환경이 이랬습니다.

그렇다면 입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기에 어릴 적 자라나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입다가 지나가기만 하면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저기 입다 지나간다. 너 입다 엄마가 기생인 거 알아 몰라? 어쩌다 임신해서 낳았다더라” 하고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입다가 그 앞을 지나갈 때, 얼굴 표정이 편안했겠습니까? 결코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입다는 집에서 겨우겨우 자라며, 아버지가 본처에게서 낳은 자녀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러니 입다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입다가 성장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흥미롭냐 하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상처에 깊이 매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가 상처에 깊이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깊은 상처로 인해 폐인이 되었거나 빗나갔을 것이며, 아무튼 상처투성이가 되어 건강하게 자라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어릴 때 차별받으며 자라서 몸에 많은 나쁜 습관이 배어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입다가 대단한 점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가겠다’ 하며 큰 용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큰 용사가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차별받았다고 해서 낙심하고 폐인이 되었다면 끝장났을 것입니다. 입다는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 무시당했지만,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识别善恶). 그 속에는 오기와 뚝심이 있었고, 매우 강단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입다가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에 얽매였다면, 아버지의 다른 아들들을 다 죽여버렸을 것입니다. 어차피 그들은 입다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그는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입다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무예를 연마했습니다. 정말 온 힘을 다했습니다. 모래 속에 손을 찔러 넣으며 철사장을 익히고, 나무를 치며 주먹을 단련하여 나무껍질이 다 벗겨져도 손은 멀쩡할 정도로 뛰어난 무예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다른 아들들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입다는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증명해 냈습니까? 증명해 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증명하고 난 뒤의 모습은 형편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형편없다는 것만 증명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있으려면 그 믿음은 실천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훗날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준비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까? 쓰임 받았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큰 용사였지만, 집에서 쫓겨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부자라서 자기도 부자가 된 것은 별로 대단할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임칙서(林则徐)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 역시 십 년 동안 뼈를 깎는 고학의 과정을 거쳐 성장했습니다.

임칙서가 한 말 중에 매우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임칙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면 그에게 돈을 준들 무슨 소용이며, 내 아들이 나보다 못하다면 그에게 돈을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말 탁월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날마다 자녀를 위해 재물만 마련해 주려 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집에 돈이 많은 게 무슨 소용입니까? 방탕한 자식은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다 날려버릴 수 있으며, 그 돈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훈련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성품입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품을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사람의 성품을 입다와 같은 성품으로 훈련해 놓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찌 미래가 없겠습니까? 기생의 아들이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무시하는 사람은 입다의 어머니만 보기 때문이고, 인정하는 사람은 입다라는 사람 자체를 보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길르앗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으려 할 때, 그들은 비로소 입다를 떠올렸습니다.

입다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집안에서는 유순해 보였지만, 밖에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암몬 사람들과 싸울 때 매우 용맹했습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처럼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고, 집안에서만 사납고, 문턱만 넘어서면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입다는 성품이 분명한 대장부였지, 안방 호랑이가 아니었습니다. 안방 호랑이가 무엇입니까? 집 안에서는 기세등등하면서 밖에서는 힘도 못 쓰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입다는 집 안에서는 부드러웠고, 밖에서는 강했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수많은 불공평한 대우를 겪었지만,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성품이 있습니까? 모든 나쁜 조건을 우리의 성장 동력으로 바꾸는 성품 말입니다. 입다는 대단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마음에 꿈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마음도 없는데 하나님이 무엇 하러 당신을 부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려 해도 부르실까 말까 한데, 섬길 마음도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한가하게 부르시며 냉대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섬기러 오너라” 하셨는데, 사람이 “싫은데요”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 아무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때 입다가 “내가 가겠다. 당신들이 나를 장관으로 세우지 않았는가?”라고 나섰습니다. 입다는 큰 용사였습니다.

입다는 집에서 쫓겨났고,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그에게는 기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쫓겨났을 때 아버지에게서 단 한 푼이라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다. 그럼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은 어디로 갔습니까? 본처의 자식들인 다른 형제들에게 갔습니다. 그렇다면 입다는 어떻게 돈을 벌었습니까? 맨손으로 자수성가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품이 바로 선 사람은 결코 가난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결국 입다는 좋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돈이 없으니 어떡하겠습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무예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돕 땅으로 가서 도장을 차리고, 매일 아침 작은 숲에서 무예를 가르치며 자신도 수련했을 것입니다. 어떤 건달들이 나가서 싸우다가 두들겨 맞고 얼굴이 멍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누군가 말했을 것입니다. “저쪽에 입다라는 사람이 있는데 무예가 출중하다더라. 예전에는 얻어맞고 다녔지만, 지금은 남들을 때려눕힌다더라.” 그 말을 들은 건달들이 “우리도 입다에게 배우자” 하고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건달들이 입다를 따르려니 돈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는 그 건달들을 데리고 시장으로 가서 “누가 너희를 괴롭히느냐?” 물었을 것입니다. 상인들이 “괴롭히는 자들이 있습니다!”라고 하니, 입다가 “내가 너희를 보호해 줄 테니 보호비를 내라. 나는 너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다른 누구도 너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입다는 경호원이 되었고, 보안 업체를 차리고 표국(경호·운송 회사)까지 차린 셈입니다. 입다의 집안은 점점 부유해졌고, 그의 명성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명성이 높아지고, 무관을 열고, 표국을 운영하고, 경호비를 받으니 입다는 대단해졌고 마침내 유명해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유명해지지 않는다면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맨날 남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멍투성이인데 남을 보호해 주겠다고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길르앗 사람들, 즉 예전에 그를 쫓아냈던 아버지의 다른 아들들과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입다는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부하들을 결코 괴롭히지 않았고, 아버지의 다른 아들들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잘 돌보았으며, 매우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량은 어떻게 훈련된 것입니까? 하루하루 훈련을 통해 다져진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들은 “저도 사역하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사역을 하나 맡겨주면,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고 공부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헛소리를 합니다. “제가 말하는데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만 연락하세요. 구역장이나 교구장한테 연락하지 말고 오직 저한테만 연락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이건 통제욕이지, 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이런 태도로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절대 사역할 수 없습니다. 교구장이 한번 연락을 취하고 나면 사역받는 사람에게 “당신 내 흉봤어?” 하고 묻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래 가지고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불안감으로 가득 차서, 평소에는 실력을 쌓지도 않고 쓸데없는 소리나 하며 틱톡이나 보다가, 양육할 때가 되면 틱톡에서 본 이야기나 농담 몇 개 던집니다. 아니면 불안감에 휩싸이거나 헛소리를 늘어놓고, 한참 이야기하고 나서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왜 아직도 못 알아들어요?”라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입다는 훗날 암흑가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양지인지 음지인지 구분하기도 모호하지만, 어쨌든 흑백을 아우르는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입다는 정말 실력이 있었고 부하들을 훌륭하게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으면서 “내가 너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본인부터 부자가 되어 보십시오. 아무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단한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가장 잘 속이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친구들입니다. 동창, 교인 등 사기꾼은 자기 주변 사람들을 가장 잘 속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인 리더가 되어서 아래 사람들과 장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양육하라고 세웠지 다단계 판매를 하라고 세웠습니까? 자기가 양육하는 사람들을 전부 자기 다단계 하부 조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보험을 팔거나 건강보조식품을 팝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전하라고 보냈더니, 상대방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나한테 좋은 건강식품이 있는데 살래?”라고 합니다. 이런 짓을 벌이는 자는 제가 볼 때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입다의 출신 배경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저의 신념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결코 남 탓을 하지 마십시오. 탓을 돌리려거든 그 책임을 자기 머리에 얹으십시오. 아버지가 당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고, 어머니가 당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으며, 선생님이 당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좌우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 자신뿐입니다.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셨습니까? 그 책임을 짊어졌다면, 그것을 벼슬 감투처럼 당당히 쓰고 귀걸이 달고 방울 달아서 원수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오직 여러분 자신입니다. 남 탓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님이 저에게 사역을 안 맡겨주세요”라고 합니다. 맡겨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역도 안 하면서, 꼭 자리를 맡겨주어야만 하겠습니까? 우리 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중심이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쓰실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구역 성경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그 구역장이 인도하는 내용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횡설수설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노트라도 잘 적어와서 그대로 반복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온통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우리 교구장님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겠구나. 구역장들이 헛소리를 하면 헛소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때 저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구역장이 나눔을 마치고 “보충할 말씀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세상에, 저는 속으로 ‘내가 감히 어떻게 보충을 하겠는가, 내가 리더도 아닌데’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몇 분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구역장은 저에게 “2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2분을 아주 귀하게 써야 했습니다. 5분을 준다면 더 잘 써야 했습니다. 어차피 총시간이 30분밖에 안 되니 저에게 30분을 줄 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깊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훗날 그들이 저에게 무대를 주지 않았기에, 저는 스스로 무대를 만들었고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워 사역을 점점 더 확장해 나갔습니다.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 안에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사역들을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조금씩 차근차근 쌓아 올리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영적 양식이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입다도 그렇게 행했고, 저 역시 입다를 본받아 그렇게 행했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지, 입다가 저에게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결코 “하나님, 왜 저를 아직도 안 쓰십니까?”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큰일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집어치워라, 네 꼴을 봐라. 그것은 갈망이 아니라 헛소리일 뿐이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묵묵히 준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며 사람들이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암흑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면 부하들을 잘 보살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우두머리는 부하들을 뜯어먹어 뼈에 살 한 점 남지 않게 만듭니다. 미가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뜯어먹어 뼈의 살을 다 발라먹는 것과 같습니다. 다들 그런 식이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입다는 묵묵히 실력을 연마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사역하기만을 마냥 바라지 말고, 발을 땅에 딛고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갈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주께서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셨는데,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인재를 채용하려 할 때 “제가 바로 그 인재입니다!”라고 하면 바로 채용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일자리를 얻고, 회사는 인재를 얻게 됩니다. 당신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도 마음에 합한 자를 얻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습 기간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입다의 배경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까?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기생인 것이 대수입니까? 기생 어머니를 두었어도 상관없고, 집에서 쫓겨났어도 상관없습니다. 발을 땅에 딛고 실력을 제대로 갈고닦으면 됩니다.

2. 입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입다가 비록 건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는 우두머리 노릇을 해도 아주 수준 높게 했습니다. 우두머리가 되어 무관을 열고 표국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선을 넘나드는 일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 와서 “입다, 나와라! 나와 무예를 겨루자”라고 도전했을 때,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가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링 위에 올라가야 하겠습니까, 말아야 하겠습니까? 제자들이 두들겨 맞고 쓰러져 있는데, 도전자가 찾아왔다고 해서 도망친다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사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입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입다는 황비홍이나 곽원갑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링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무관을 운영하고 표국을 운영하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마치 권투 룰에 따라 링에 오르고, MMA나 UFC 경기를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진검승부입니다. 한 방 제대로 맞고 기절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기술에 걸려 조르기를 당하면 숨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고수 위에 더 높은 고수가 있는 법입니다. 입다라는 사람은 정말 수많은 생사의 훈련을 거쳤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아닌지는 문제를 만났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평소에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암의 모든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평안히 살아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암 증상만 조금 나타나도 온갖 검사를 다 받느라 검사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검사를 다 받고 나서는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면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코로나에 걸려 숨이 좀 차다고 즉시 인공호흡기를 달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며, 마치 병원이 자신의 구원자인 양 여깁니다. 저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참으로 가증한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 “가서 암몬 사람들과 싸워라. 만약 암몬 사람들과 싸워 승리하면 우리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입다는 속으로 ‘너희가 암몬 사람들의 칼을 빌려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입다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암몬 사람들? 가소롭군.’ 그는 마음속에 이런 배짱이 있었습니다. 양 군이 대치한 전선에서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입다가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자기가 혼자 돌격했을 때 뒤에서 다 도망쳐 버리면 입다는 겹겹이 포위당할 판이었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무예를 가졌더라도 천군만마를 혼자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전장으로 돌격할 때 그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날아오는 화살과 칼에는 눈이 없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응낙하고 출전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감히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처럼 죽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집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귀신은 못 쫓아내면서 목사를 쫓아내는 데는 일등입니다. 귀신을 대적하지는 못하면서 목사를 들이받는 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대단합니다.

입다는 문턱만 넘으면 작아지는 사람도, 안방 호랑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암몬 사람들과 싸우는 데 아주 용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쓰임 받기 어렵습니다. 제가 권면하건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차라리 살아있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참 못됐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까지 무서워합니다. 죽은 사람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일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일찍이 두려워하는 자들은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태생이 겁이 많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훈련하십시오. 저를 들이받던 그 담력을 끄집어내어 사용해 보십시오! 어떤 분은 “목사님, 목사님을 들이받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자주 사람들에게 들이받혀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입다는 뛰어난 무예를 가졌지만, 집안에서는 유순했습니다. 가족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력 없는 사람들이 꼭 집안에서만 큰소리를 치니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밖에서 무능한 자녀들이 돈 버는 재주는 없으면서 부모 등골 빼먹는 재주는 기가 막힙니다.

밖에서는 힘도 못 쓰고 돈도 못 벌면서, 집에만 오면 기세등등해서 “돈 내놓으세요!”라고 합니다. 이미 가난해진 어머니는 그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 절대로 들키면 안 되는데’ 하고 속을 졸입니다. 어머니는 ‘내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아들이 알면 큰일 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매일같이 이런 막장 드라마가 집안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온전한 실력을 갖추기 시작하십시오. 밖에서도 체면 차릴 필요 없습니다. 당신에게 실력과 능력이 있다면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실력이 있다고 해서 능력 지상주의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꼭 마음에 새기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실력이 있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수많은 사역자들과 교회의 교인들, 목사들을 보았습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무엇을 그리 치료하려 애씁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장 위대한 의사가 아니십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건 안 됩니다. 최고의 의사를 찾고 최고의 약을 써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빨리 죽는 약입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저를 위해 증언해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제 목숨을 의사의 손에 맡기지 않습니다. 의사는 병을 고쳐도 돈을 받고, 못 고쳐도 돈을 받습니다. 병이 나은 것은 의사 덕분이 아니라 내 몸이 스스로 회복된 것인데도 돈을 줘야 하고, 병이 낫지 않은 것은 분명 의사 탓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하는 고통이 정말 끔찍합니다! 저처럼 죽으려 해도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이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입다는 꿈이 있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삿 11:9)

입다에게 꿈이 있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입다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오늘에서야 너희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날을 준비해 왔다. 내가 왜 무예를 닦았겠는가? 내가 왜 도장을 열고 표국을 운영했겠는가? 내가 왜 건달들을 모았겠는가? 나의 리더십을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이스라엘을 굽어보시며 한 사사를 일으키고자 하실 때,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기를 소망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입다에게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사역을 갈망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사역하겠다는 말입니까? 제가 “먼저 훈련을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훈련받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사역할 시간은 있고 훈련받을 시간은 없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무대 아래에서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서 얻어맞으려고 합니까? 무대 위에서 헛소리나 늘어놓으면 귀신이 가만히 둘 줄 압니까? 그것은 진검승부입니다. 입다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싶다면 무대 아래에서 철저히 연습해야지, 강단에 서서 연습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무대 위의 1분은 무대 아래에서의 10년 공력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아래에서 연습하지 않고 강단에 올라가 연습하려 들면 큰 화를 당합니다. 얻어맞지 않겠습니까? 그곳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결투장입니다. 무대라 할지라도 10년의 노력이 필요한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철저히 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드리지만, ‘화인 사명 신학’의 출발점은 저의 갈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수십 년 동안 간절히 갈망해 왔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분들은 이민 사회의 현실을 잘 알 것입니다. 어떤 분은 “왜 이민을 갔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시절 중국이 가난했기 때문에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강해지기 시작하자 이민자들의 마음도 좀 편해지고 덕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세월 동안 간절히 갈망하되,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살아가십시오. 몽상가가 되지 마십시오. 몽상가라면 차를 사도 ‘꿈꾸는 자(梦想家)’라는 브랜드의 차를 사는 게 낫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차 같으니 말입니다. 매일 허풍과 거짓말만 늘어놓고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달나라로 이민 갈 거야.” 참 좋은 꿈입니다. “나는 화성에 가서 살 거야.” 그럴 바엔 금성에 가서 사십시오. 저는 태양에 가고 싶습니다. 용광로 불보다 더 뜨거울 텐데요. 그러므로 입다는 꿈이 있었기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무대가 생겼다고 해서 그제야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중국어 성경 세 권이 닳아 떨어지도록 읽었고, 영어 성경도 한 권을 통독했습니다. 기억력이 썩 좋지는 않지만, 성경을 펼치면 다 알아보고 기억이 납니다. 진정한 꿈이란 발을 땅에 딛는 성실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절감합니다.

4. 입다는 하나님의 역사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입다가 행한 첫 번째 일은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사기 11장 12절부터 28절까지 길게 설명합니다. 그가 무엇을 말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압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암몬의 경계가 어디이고 이스라엘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밝혔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그들의 땅을 우회하여 지나갔으며, 결코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모압 왕을 기억하십니까? 탐욕스러운 선지자와 모압 왕이 결탁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려 했습니다. 바로 발락과 발람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발락이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왜 저주합니까? 모압 사람은 롯의 후손입니다. 롯의 후손이 할 일 없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왜 대적하려 듭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입다는 평소에 무예만 닦은 것이 아니라, 글공부와 학문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교양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건달 두목으로만 생각하셨습니까? 그는 학식이 있었고, 말하는 데 조리가 있었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 명분 없이 싸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대답하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달라” 하니라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적이 있었느냐 싸운 적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삿 11:12-28)

입다가 역사를 얼마나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저 이 짧은 부분뿐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출애굽 하였고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지가 입다의 마음에 온전히 담겨 있었습니다. 즉,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결코 무지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결코 무지한 자가 되지 말고, 우리의 시간을 바른 일에 쏟아부으십시오.

입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뚫고 있었고 암몬의 국경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이제 출전의 명분이 분명해졌습니다. “너희가 나를 치러 오고 침략했으니, 내가 너희를 쫓아내겠다.” 입다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길르앗의 미스바를 지나 미스바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입다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입다가 승리했습니까, 패했습니까?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우리의 이어지는 영적 전쟁도 끊임없이 지경을 넓히고,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월은 확장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이토록 오랜 세월 준비해 왔으니, 이제 치열한 전투를 치러 약속의 땅, 마땅히 얻어야 할 땅 중 아직 수복하지 못한 곳들을 모두 되찾아야 합니다.

그 땅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안에 여전히 악한 기운이 있고, 그 악한 기운을 악령이 장악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입니다. 이제 그 땅을 수복하여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가난하여 마귀에게 자주 시달리고 마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면, 마귀를 쫓아내고 다시는 당신의 축복을 도둑맞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니 되찾아야 합니다. 자주 병치레를 한다면 마귀를 쫓아내어 건강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여전히 복을 누리지 못하고 늘 자기 의를 내세우며 고집부리는 분들은 그 모든 것을 회수하여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랍니다.

입다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도 담대하게 꿈을 꿉시다. 아직 얻지 못한 모든 땅을 장차 하나하나 수복하여 하나님께 드려 거룩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세상의 어둠의 권세를 향해 “너는 내 안에 아무것도 가질 권리가 없다”라고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왜 우리 가정에 자녀 문제, 재정 문제, 건강 문제 등 이토록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까?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꿈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백일몽처럼 보일지라도 유효합니다. 입다처럼 우리의 이성 안에서 분명한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확신하며, 이제부터 끊임없이 확장하고 성을 공격하여 영토를 점령하듯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5. 입다는 신의를 매우 중시했다

말씀드리지만, 신의가 없는 사람은 쓰임 받기 어렵습니다. 신의조차 없는데 어떻게 믿음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종종 가볍게 여깁니다. 묻겠습니다. 입다가 출전할 때 자신이 평안히 돌아올 수 있을지 알았겠습니까?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결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바닥을 치며 항복하면 끝나는 격투기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바닥을 치며 항복해도 소용없습니다! 진검승부이기에 언제 칼날이 머리나 목에 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출전하기 전에 서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가 우두머리로 살았던 배경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서원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왜 서원을 좋아했을까요? 사람이 살아온 배경과 꽤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 제가 비록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암몬 사람들에게서 평안히 돌아오기를 원하며, 암몬 사람들이 제 손에 넘겨지기를 원합니다. 만약 암몬 사람들을 제 손에 넘겨주시면, 제가 돌아올 때 제 집 문에서 나와 저를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주님께 드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것을 함께 축하하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이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의 평생에 딸 하나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비로서 단 하나뿐인 딸, 그것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다니요. 입다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지만, 정작 그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입다는 꿈에도 딸이 나올 줄 몰랐기에 옷을 찢으며 슬퍼했습니다. “어찌할꼬! 내가 너무나 괴롭구나!”

입다는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아,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을까? 내가 서원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겠는가? 하지만 당시에는 내 믿음이 너무 연약하여 ‘나를 맞이하러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말해버렸구나” 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아버지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삿 11:36)

입다는 어떻게 이런 자녀를 길러냈을까요? 그것은 입다가 지난 세월 동안 신의를 철저히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약속한 바를 반드시 이루었고 말한 대로 행했습니다. 그는 매우 신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입다는 부하들에게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의를 지켰습니다.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받을 때도 약속을 지켰고, 표국을 운영할 때도 도둑질하지 않고 신의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을 딸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삿 11:37-39)

여러분은 번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참으로 위대합니다! 입다는 이토록 신의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입다는 우리에게 매우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태워 바쳤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정말 그렇게 행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에는 해마다 이스라엘의 딸들이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 동안 애곡하는 규례가 생겼습니다.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눈 말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다면, 출신 배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믿음을 끌어올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일찍 죽으나 늦게 죽으나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죽음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아직 세상적인 관점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갈망하십시오. 꿈을 품으십시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사십시오. 과거에 어떤 가정 출신이었든, 돈이 있든 없든, 이것이 있고 저것이 없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중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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