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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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西阿书06章-以色列无悔改诚意
  • 1 来吧,我们归向耶和华!他撕裂我们,也必医治;他打伤我们,也必缠裹。
  • 2 过两天他必使我们苏醒,第三天他必使我们兴起,我们就在他面前得以存活。
  • 3 我们务要认识耶和华,竭力追求认识他。他出现确如晨光;他必临到我们像甘雨,像滋润田地的春雨。
  • 4 主说:“以法莲哪,我可向你怎样行呢?犹大啊,我可向你怎样做呢?因为你们的良善如同早晨的云雾,又如速散的甘露。
  • 5 因此,我藉先知砍伐他们,以我口中的话杀戮他们;我施行的审判如光发出。
  • 6 我喜爱良善(或译:怜恤),不喜爱祭祀;喜爱认识 神,胜于燔祭。
  • 7 “他们却如亚当背约,在境内向我行事诡诈。
  • 8 基列是作孽之人的城,被血沾染。
  • 9 强盗成群,怎样埋伏杀人,祭司结党,也照样在示剑的路上杀戮,行了邪恶。
  • 10 在以色列家,我见了可憎的事;在以法莲那里有淫行,以色列被玷污。
  • 11 “犹大啊,我使被掳之民归回的时候,必有为你所命定的收场。”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호세아서》 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을 다 읽고 나면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데, 혼란스러운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하나님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은 자주 혼란에 빠지시는 분일까요? 엄하신 하나님이 자주 선거에서 당선되셔서 왕조가 바뀐 것일까요? 청나라가 한나라로 바뀐 것 같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가야 할까요? 사실 성경 전체에 이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 장에는 이 구절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제가 덧붙인 이유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서로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본래 모습도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실까요? 그분을 사랑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준엄함을 나타내실까요? 그분을 미워하는 자에게 준엄함을 나타내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인자하심이 넘치시는 분이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준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거듭해서 읽다 보면, 혼란스럽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께로 돌아오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께 돌이키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넘치시지만, 완고하고 패역하여 결국 구제불능으로 굳어진 자들에게는 대단히 준엄하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완고하여 손쓸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저는 과거에 수많은 암 환자들을 섬겨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암 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무리 여러 번 경험해도 돌아서면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가 원래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결국 또다시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겪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와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고, 이것저것을 합니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면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상 통화 중에 제 눈앞에서 숨을 거둔 암 환자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목자님! 다 치유받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들은 한때 다 치유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긴 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마치셨다고 해서 은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호세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호세아가 혼란에 빠졌다거나 하나님이 혼란스러우셔서 이랬다저랬다 하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은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계시며,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동시에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은혜 시대라는 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 시대라 할지라도 여전히 암은 존재합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 마음이 부드러운 자와 마음이 완악한 자의 결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1-3)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겪었다고 해서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 장에서 아주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호세아는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분이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분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으며,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봄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로 돌이킵시다! 사람은 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을까요? 사람 속에 매우 악한 것들이 있어서, '그까짓 것이 밥을 먹여 주나? 돈으로 쓸 수나 있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인자하고 선하신 분이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 6:1)

여러분은 사람의 경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한번 겪고 나면 마음속에 억울함을 느끼며,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찢으시는 분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을 겪을 때,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를 찢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태복음》 25:15-18)

성경에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그 두 달란트를 잘 경영하면 네 달란트를 얻을 수 있고, 다섯 달란트를 잘 경영하면 또 다섯 달란트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찢으시고 다루신 것은 당신을 죽이려 하심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 하심입니다! 왜 당신을 다루셨을까요? 당신 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다루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번 다루시면, 당신은 그것이 자신을 찢고 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질병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이든 목회자이든 간에, 우리는 사람 몸의 질병이 하나님의 징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마태복음》 25:24-28)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습관을 기르시기를 권면합니다! 마음이 완악하면 하나님께 돌아갈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죽이려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난하게 살게 하려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하나님은 당신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 마치 조폭 두목 같은 분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머리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언제 그렇게 다루기를 원하셨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번영과 흥왕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만약 하나님에 대해 터무니없고 잘못된 생각을 품거나,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지 않으신다고 여긴다면, 크게 호된 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반드시 선지자가 하나님을 알았던 지식의 수준으로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읽어보면 선지자가 혼란스러워한 것이 아니며, 우리 하나님께서도 착오가 없으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래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약에 오면 저주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들이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터넷에서 '저주'라는 단어를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저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은 공존하며, 우리 하나님은 결코 변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귀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귀신이 여러분의 생명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단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바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경외하면 많은 문제들이 술술 풀리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목자님, 목자님은 왜 아프셨나요?" 저 역시 거룩함의 완벽한 표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일을 겪을 때 "하나님!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시험을 겪게 되었다면, 먼저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지 반성하십시오! 사실 제 생각 속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귀신도 실수하지 않는다. 잘못한 것은 오직 우리뿐이다!" 이것이 저의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를 가지면 자주 찢김을 당하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허구한 날 찢김을 당합니다. 입만 살아서 고집을 부리니 누가 말리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에게 매우 준엄하십니다! 이 논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준엄하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1-3)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호세아는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분이 우리를 찢으셨으나,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분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으며,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봄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세아》 6:4)

이 장의 4절에 이르러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선함은 아주 잠깐뿐이고, 악함은 영구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나의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리기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바울 서신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이 바로 바울의 논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도 있고 저주를 내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일을 겪게 하실 수도 있고 나쁜 일을 겪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도 내리시고 재앙도 내리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재앙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 한 가지만 똑바로 하면 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표현대로 하자면, 팔은 안으로 굽고 다리를 이길 수 없듯이, 여러분의 팔은 하나님의 새끼손가락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힘겨루기하지 마십시오. 겨뤄봐야 이길 수 없습니다! 고집부리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비교적 부드러웠고 거의 완악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때리려고 하시면 저는 즉시 꼬리를 내리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스스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미처 다 알지도 못했을 때 이미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아버지가 손을 번쩍 드셨다가도 제가 그렇게 인정하는 것을 보고 손을 거두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차근차근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손을 거두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억울해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완악함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나의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5-6)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치셨습니다. 호세아가 선포하고 나자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임하려 합니다.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에도 임하고, 온 땅의 이와 같은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렵지 않을지 몰라도 저는 두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을 기뻐하시고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어떤 암 환자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자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는 그것을 번제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이 어찌 번제이겠습니까? 그것은 번제의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번제란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 몸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번제입니다!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날마다 그저 '빨리 날 위해 기도나 해달라'고만 한다면 큰일입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회개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 말은 쏙 빼놓고 그저 "요즘 대변 볼 때 아직 좀 아파요"라고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기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으시며, 번제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기도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만병통치약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평생의 비극입니다! 사람은 어찌 이리도 완악할까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에만 매달립니다. 과거에 자기의 사소한 일에만 온 신경을 쏟았기 때문에 대변도 안 나오고, 소변도 안 나오고, 볼일을 볼 때 아픈 결과가 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변 하나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속히 돌아와 하나님을 알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경험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겪고도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세아》 6:7)

여러분은 간사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겉으로는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해놓고, 하나님이 돌아서시면 속으로 '고치긴 뭘 고쳐? 흥, 당신 하나 속여 넘기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사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귀신도 모든 것을 아는데, 당신이 무슨 잔머리를 굴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줄도 모릅니다!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러워졌느니라 (《호세아》 6:8-10)

왜 온통 이런 일들뿐일까요? 돈 때문입니다! 돈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왜 돈을 좇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몇 년, 몇십 년의 세월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시선이 이 땅의 몇 년이나 몇십 년에만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세상 정부와 원수가 되기만 해도 호되게 당하게 됩니다! 마약 밀매를 하거나 사기를 치는 자들을 보십시오. 그중에 잘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십여 년 동안 번창하고 돈도 꽤 벌었을지라도, 십여 년 후에 대국을 건드리면 감당하기 힘든 화를 입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을 건드린다면 어떻겠습니까? 훨씬 더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왜 악을 행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 돈 때문입니다! 돈을 저승 노잣돈(가짜 종이돈)처럼 본다면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겠습니까?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준엄하십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매우 주의 깊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심을 나는 알고 있는가? 우리 하나님이 대단히 준엄하신 하나님임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로 돌이켜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가득하신 분임을 알고 있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당신의 논리와 고집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본문의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3)

저는 선지자 호세아가 이 본문을 기록할 당시, 만약 녹음기나 카메라, 영상이 있었다면 선지자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호세아는 길목에 서서 지극히 격앙된 표정과 몸짓으로 강조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비록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안다 할지라도, 반드시 힘써 그분을 알아가야 한다!"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의 매우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자녀가 1 더하기 1은 2, 2 더하기 3은 8이라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 더하기 1은 2만 겨우 알고 나머지는 다 엉망으로 푸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저 '이미 주님을 믿었다',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다', '죽어서 천국 간다'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그저 죽어서 천국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살아 있는 동안 지옥 속에서 살게 해주겠다"라고 하시면 어쩌시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 아니겠습니까?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자

화인사명신학에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바닷물이 바다를 가득 채움과 같습니다! 컴퓨터를 아는 지식이 물이 태호(太湖)를 채움과 같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물이 바다를 가득 채움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바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닷가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그 깊고 망망한 모습을 바라보면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그러다가도 바다를 보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바다가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저 '예수 믿었다'는 데만 머물러 있다면, 그런 수준은 정말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대화된 세상에서 끊임없이 고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첨단 기술(하이테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체계는 여전히 로우테크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육 시스템이나 도구는 첨단일지 몰라도, 교육 방식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학 체계 역시 초기 바울이 전했던 순전한 복음을 떠난 이후, 거의 2천 년 동안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유독 색다른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이 믿는 예수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저는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을 외울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나중에 이런 것들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것을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겨우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에 머무는 것입니까? 이것들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사도신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런 주문 같은 것을 외워봤자 귀신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능력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서 한 가지 일을 행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체계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끝이 없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로 바꾼 것입니다! 만약 그저 《니케아 신경》이나 외우는 수준이라면 굳이 힘써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정도의 힘도 들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일을 얼마나 단순화시켜 버렸습니까?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수준이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추구한다', '아직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난 6개월 동안 잘 성장했더라도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6년 동안 훌륭하게 성장했더라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훌륭하게 자라왔다 할지라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우리는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알고 있습니까? 어떤 아이가 1학년, 2학년, 3학년 때는 줄곧 반에서 1등을 하다가, 교만해져서 그 후로 꼴찌가 되었다고 합시다. 6학년 때도 공부를 안 하고, 중학교 1학년 때도 안 한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제 부모님 같았으면 분명 매질을 하셨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내가 어릴 땐 반에서 1등이었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장부는 지난날의 용맹을 자랑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과거에 한때 잘나갔던 것을 핑계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늘 과거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까? "앞으로 나는 더 높은 영적 봉우리에 오를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작은 당부는, 하나님께서 발로 걷어차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큰 발로 한번 차이고 나면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 같은 연약한 존재는 하나님의 징계를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직 발을 들지 않으셨을 때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면, 그분 앞에서 "왜 그러세요, 안색을 바꾸고 그러세요?"라고 대들지 마십시오. 그것은 말씀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우리에게는 감히 하나님을 향해 "왜 안색을 바꾸십니까?"라고 따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매를 버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힘써 알아가는 일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는 수많은 굴이 있으며, 굴마다 보물과 진리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무궁무진하다면, 신학은 더욱 무궁무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을 멈추어 있는 정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실로 깊고 오묘하며, 행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찢으심과 치심을 겪게 되거든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수준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기꺼이 회개하며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참 많이 성장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양육하기 시작했는데, 그 배후에 있는 귀신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저 역시 녹초가 되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피양육자 배후의 귀신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 했고, 저는 그를 생명으로 건져내려 하니 귀신과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진 것입니다! 귀신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저마저 짓눌릴 뻔하기도 하여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저에게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영적 세계를 아는 것이며, 영적인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목양상의 문제를 마주할 때, 저는 단번에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다 겪어보고 다루어 보았기에 마음속으로 훤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아직 저만큼의 분량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더욱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20대 초반의 청년을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청년에게 "2 더하기 3은 몇이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2 더하기 3은 8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정말 8이 맞니?"라고 되묻자, 그는 "7입니다"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다시 "정말 7이니?"라고 묻자, 그는 "3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다시 쳐다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완전히 멍해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태를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귀신을 쫓아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통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귀신이 어떻게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학교 교사가 그에게 깊숙한 거짓말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낙인찍어 버린 것입니다. 그 낙인이 찍힌 이후로 이 아이는 고집스럽게 자신에게 진짜 학습 장애가 있다고 믿어버렸습니다.

팬데믹 이전 기간에 저는 이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사가 학습 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인 후로 그는 '1'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알던 것마저 다 잊어버리고 1의 개념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에게 1의 개념을 똑똑히 이해시키고, 2는 1이 두 개, 3은 1이 세 개, 4는 1이 네 개이며, 1이 두 개와 세 개 합쳐지면 1이 다섯 개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서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다시 암산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2+3이 몇인지 모르게 되었지만, 대신 계산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 아이가 왜 다시 그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따라 그리는 것이라 맞고 틀림의 구분이 없습니다. 맞고 틀림이 없다 보니, 그는 2+3이 몇인지조차 다시 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의 타고난 육신적 감성을 따라가는 것은 사람을 크게 부패시킵니다. 만약 그에게 미켈란젤로의 작품 같은 것을 조각하라고 한다면, 그는 안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단정하고, 명확하며, 구체적인 규율과 질서가 있는 것들을 훈련시켜야지, 결코 제멋대로 행하는 감성이나 감정을 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오늘날의 현대 예술이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준엄하시고 어떤 자에게 인자하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게 되더라도 결코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복음을 잘못 전하거나 잘못 믿으면 다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속으로 '너만 제대로 믿는다는 거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처럼 힘써 추구하는 사람도 다 맞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 힘써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신학 서적 몇 권 읽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소리를 지껄인다면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잘못 믿고 잘못 전하는 것은 모두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호텔에 묵고 있을 때 한 자매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그날 자기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담임목사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쳐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믿으시겠습니까?" 언뜻 들으면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만약'이란 없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전하고 있었으니,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잘못 전한 그가 저주를 받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받습니다!

그 자매는 그 교회에 10여 년 동안 다니면서 요도염에 걸려 빈뇨 증상으로 십몇 분마다 화장실에 가야 해서 너무나 괴로워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 화장실 가기가 마땅치 않으면 기저귀를 얼마나 두껍게 차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녀가 제게 왔을 때, 저는 '모두 다 고침받았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그날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2주 후 제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요도염이 완전히 깨끗해졌고 재발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예전에는 요도염이 없었는데, 그 교회에 출석한 이후로 이 병을 얻게 되었고, 매일 그 목사의 설교를 들었으니 나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사람의 경험을 따라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뜻을 따라 선포해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1-2)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자마자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대하십니까?"라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마치 당신에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신 것처럼 굴지 마십시오. 그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가 비록 심판을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각기 제 갈 길로 가며 제멋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을 아십니까?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사람은 누구나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귀신을 시켜 당신을 사로잡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 하나님은 다시 당신을 귀신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여 또한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호세아》 6:11)

우리가 포로 됨에서 돌아올 때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제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것은, 형제자매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을 뻔히 보면서도 상처받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깊이 책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용기를 내어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 중에 하나님께 죄를 지어 비롯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선을 기뻐하지 않고 오직 제사만 좋아하여, 닭이나 오리나 생선 따위를 바치는 제물에만 집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선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채 기도만 줄창 해대는 사람이 되어, 주구장창 기도만 하거나 십일조만 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며, 자신이 과거에 잘못 행했음을 깨닫고 이제 바르게 행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기로 결단할 때, 하나님은 다시 당신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눈에 문제가 있든, 머리나 엉덩이에 문제가 있든 더 이상 완악하게 굴지 마시고, 고집을 꺾고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십시오. 여러분의 체면은 중요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을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기 시작하고,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당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제가 힘써 주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겠습니다."

틱톡이나 숏폼 영상을 보던 시간을 이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쓰십시오.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창세기》나 《전도서》 강해를 따라 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장을 무작위로 뽑아도 막힘없이 풀어낼 수 있다면 여러분은 대단한 것입니다. 사람이 포로 됨에서 돌아올 때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함,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풍성한 결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곁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으시고 치실 것이지만, 우리가 돌아오면 하나님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

호세아 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백 년이 지난 후 유다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말라기,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는 그 시대의 선지자이자 지도자들이었으며, 같은 시기에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 돌아왔습니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후에도 사람들은 각기 제 갈 길로 갔고, 저마다 자기 집안일에만 분주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방 민족들에게 짓밟히고 성벽마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데 며칠이나 걸리는 일이었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방치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저마다 자기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느헤미야가 돌아온 후 성벽을 다시 쌓는 데는 단 52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여전히 저주 아래 머물러 있느냐? 너희는 포로에서 돌아와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더냐?"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온 후 순식간에 눈앞의 안락한 일상에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들의 선함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처럼 아주 짧았습니다. 사람의 선함이란 이처럼 덧없는 것인데, 어찌 교훈을 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간신히 하나님께 회개해 놓고는 그 회개가 아주 잠깐 지속되다가 다음 날이 되면 또 잊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을 버리니, 그 결말이 어찌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나의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호세아》 6:4-5)

사람은 도대체 언제쯤에야 철저히 회개하겠습니까? 호세아 시대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말라기와 다니엘, 느헤미야 시대에는 그들 모두가 포로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사는 일상에만 안주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칼날이 되어 사람을 쳐서 죽이게 됩니다. 어찌하여 사람은 꼭 환난과 재앙을 겪고 나서야 회개하려 한단 말입니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호세아서》 6장을 통해 우리는 마땅히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자기 안락만을 좇는 삶에 머물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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