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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아모스 3장 - 너희를 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2024-04-19 12,421 阿摩司书 阿摩司书 03章 阿摩司书第三章 与神同行 治服邪情私欲 神是跌人的磐石 神是我们的核心利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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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摩司书03章-先知的任务
  • 1 “以色列人哪,你们全家是我从埃及地领上来的,当听耶和华攻击你们的话:
  • 2 在地上万族中,我只认识你们;因此,我必追讨你们的一切罪孽。”
  • 3 “二人若不同心,岂能同行呢?
  • 4 狮子若非抓食,岂能在林中咆哮呢?少壮狮子若无所得,岂能从洞中发声呢?
  • 5 若没有机槛,雀鸟岂能陷在网罗里呢?网罗若无所得,岂能从地上翻起呢?
  • 6 城中若吹角,百姓岂不惊恐呢?灾祸若临到一城,岂非耶和华所降的吗?
  • 7 主耶和华若不将奥秘指示他的仆人众先知,就一无所行。
  • 8 狮子吼叫,谁不惧怕呢?主耶和华发命,谁能不说预言呢?”
  • 9 “要在亚实突的宫殿中和埃及地的宫殿里传扬说:你们要聚集在撒玛利亚的山上,就看见城中有何等大的扰乱与欺压的事。
  • 10 那些以强暴抢夺财物、积蓄在自己家中的人不知道行正直的事。”这是耶和华说的。
  • 11 所以主耶和华如此说:“敌人必来围攻这地,使你的势力衰微,抢掠你的家宅。”
  • 12 耶和华如此说:“牧人怎样从狮子口中抢回两条羊腿或半个耳朵,住撒玛利亚的以色列人躺卧在床角上或铺绣花毯的榻上,他们得救也不过如此。”
  • 13 主耶和华万军之 神说:“当听这话,警戒雅各家。
  • 14 我讨以色列罪的日子,也要讨伯特利祭坛的罪;坛角必被砍下,坠落于地。
  • 15 我要拆毁过冬和过夏的房屋。象牙的房屋也必毁灭;高大的房屋都归无有。”这是耶和华说的。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서》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의 소선지자들은 말투가 매우 강하고 돌려 말하지 않으며, 입을 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구약 소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은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분과 나누면서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저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신약에는 이제 저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큰 믿음이 나오고, 어디서 그런 말씀을 읽은 것일까요? 성경의 《갈라디아서》, 《로마서》, 《고린도전서》를 펴보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신약성경입니다. 그 안에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신약에 있지 구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저에게 화를 내며, 자신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우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태도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리고 10년 뒤에 그의 아내도 암에 걸렸을 때, 제가 그것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자, 그는 즉시 반발하며 오히려 제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매우 이상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읽어야 할 성경이 바로 소선지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아모스서》 3장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입니다. 사실 귀신이 여러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마귀의 공격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마귀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스스로를 이세벨이나 라멕에 비유하는데, 그것조차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이 세대에서 결코 널리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공격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선포하는 이들만이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한 자매가 암에 걸렸을 때, 제가 그녀가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의 담임목사는 즉시 부인하며 그녀가 주님을 매우 사랑해서 매 주일마다 일찍 와서 의자를 정리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자를 정리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바로 이 세대 가운데 우리는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목사가 암에 걸렸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기이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암에 걸릴 수가 있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그 목사의 교인들도 매우 의아해했습니다. 그중 한 자매가 큰 혼란에 빠져 저를 찾아왔을 때, 저는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목사는 평생 여호와께서 당신을 치신다는 말씀을 설교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설교는 언제나 “주님은 너의 피난처시요, 주님은 너의 반석이시다”라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반석이 되어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결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상고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축복과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은 매우 큰 혼란을 겪는 무리입니다. ‘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작은 죄만 지어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가?’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아모스서》 3:1-2)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장난치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얌전히 절에 가서 우상을 숭배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우상 숭배하듯, 금송아지를 섬기듯 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망동입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아모스서》 3:3)

여기서 동행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같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만 행해도 큰 억울함을 느낍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 어려울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고, 죄짓는 것을 밥 먹듯 하며, 죄를 짓고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주를 믿는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모든 죄악을 추궁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축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당신은 과연 어느 길을 택하여 행하겠습니까?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며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 하면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끙끙대며 지켜보기조차 힘겹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사역해왔기에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떠날 자는 떠나고, 남기를 원하는 자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2.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백성에게 미리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백성에게 경고하십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까지 축복에 대해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축복을 받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위해 일해 주는 것처럼 여깁니다. 자기가 수요일과 금요일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화요일에 기도회에 오고, 주일 예배도 지켰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하나님은 왜 아직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위해 지켜주는 것처럼 굴고, 겉으로는 너무나 억울해 보이지만, 사실 그것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백히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에게 미리 경고하십니다.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8절까지는 모두 저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암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암에서 고침을 받는다면 축하할 일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저주는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신명기》에 이미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여러분은 자세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축복과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이 우상을 숭배해도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서》 3:7)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에는 반드시 선지자들을 통해 먼저 선포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아모스서》 3장을 공부하게 하시며 다시금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듣지 못한다면 귀가 완전히 막힌 것입니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서》 3:8)

소선지자들이 전한 예언 중에는 듣기 좋은 말이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는 듣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쳐서 공격하는 말씀을 전하지 않지만, 소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쳐서 공격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은 이미 다 전했으니, 들을 자는 들었고 듣지 않는 자는 여전히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치시는 말씀을 선포하신 후에도 늘 다시 기다리시며, 혹시라도 회개할까 하여 또 한 차례 경고를 보내십니다. 그런데도 여러 번 말씀하셨으나 고치지 않으니,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왜 아직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시는가?’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당장 행하실 수 없습니다. 즉시 행하시면 멸망하여 완전히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아모스서》 3:13)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지만, 그들은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아모스서》 3:9)

하나님께서 너무나 진노하셔서, 마땅히 예루살렘에서 선포되어야 할 말씀을 아스돗과 애굽 땅의 궁궐에 가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과 불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점차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치시는 말씀을 들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기만 해도 다행일 지경입니다. 실제로는 양 귀에 벽을 쌓은 것처럼 전혀 듣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신입니다. 마음속으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만을 굳게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이는 완전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백성에게 경고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위에서 언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나,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만약 오늘 당신이 갑자기 죄를 지어, 예를 들어 선악을 분별함으로 인해 내면이 괴로워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그 길을 계속 간다면, 결국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며, 그날이 오면 상황을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는 예외라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지라도 저주는 똑같이 발효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잘못했다고 내일 당장 매를 때리시는 것이 아니며,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설계하셨습니다. 오늘 죄악을 행하면 그 결과는 지체됩니다. 짧게는 며칠 지체되고, 길게는 수년 동안 지체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저주의 씨를 뿌리고 그것이 발효될 때에는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떤 여인이 시어머니의 집을 탐냈습니다. 당시 그녀는 아들의 결혼만을 생각했을 뿐, 탐욕이 저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엄히 경고합니다. 결코 탐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주는 믿는 자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에게도 반드시 임합니다. 시어머니의 집을 탐냈던 그 여인은 수년 후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저주가 발효되어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압니다. 제가 속히 회개하라고 권면하자, 회개하려면 과제를 해야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했는데,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자신의 내면의 생각과 정면으로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충돌한다면 너무나 피곤할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배울 때 마귀는 그녀 안에서 열 구절을 가르쳤으니,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드니 지속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난 지 수년 만에 다시 돌아왔으나 오래 머물지 못하고 또 떠났으며, 결코 온전히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의 외삼촌은 믿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으실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다루십니다. 이 형제의 이모가 도시의 아파트를 하나 사서 외할머니를 모셔다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재개발되면서 새 아파트를 보상받게 되자 외삼촌이 그것을 탐냈습니다. 새 아파트가 이모의 명의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양이 끝나자마자 외삼촌은 달려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그 아파트가 자기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나 인테리어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폐암에 걸려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구의 집이든 탐내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며, 하물며 친부모의 집도 아닌 경우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천천히 관찰해보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주라는 붉은 선을 밟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주는 넘어서는 안 될 선입니다.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 선은 고압 전선과 같아서 닿는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돈을 사랑하다가 사기를 당했다면 그것은 경고에 불과합니다. 왜 마음에 굳이 그런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담아두었습니까? 오늘 손해를 보았다면 고쳐야 합니다. 그래도 고치지 못한다면 자업자득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담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치고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면 속히 거두어들이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내야만 혹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이 세대의 선지자로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치시는 말씀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계속 고수하다 보면 교회가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보증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한다면, 비록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끝까지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며 두려워할 것도 아닙니다. 남편을 두려워하고, 아내를 두려워하고, 자식을 두려워하며 우물쭈물하지 마십시오. 다른 일들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코 바른길이 아닙니다.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는가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아모스서》 3:3)

많은 목사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지만, 그들의 해석은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저주를 받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라는 뜻입니까? 이것은 결코 부부 사이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부부의 화합으로 해석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헛소리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당신이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부부가 아무리 한마음이 되고 동행한다 한들 그것은 함께 귀신과 동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엉터리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이라도 문맥을 자세히 읽어보면,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는가”라는 말씀이 실제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함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에 에녹이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부부의 동행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귀신과의 동행이며, 결국 부부가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니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맞추어 살 수 있다면 함께 사는 것이고, 함께 살 수 없다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며, 저의 권면을 들을 필요도 없고 저 역시 그런 권면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여부는 당신의 내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차 있다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극히 어렵습니다. 남들은 눈 덮인 산을 넘고 광야를 지나가는데, 당신은 이 작은 문턱조차 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본래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쌀 오십 근을 짊어지고 주님을 믿는 것처럼 지켜보기만 해도 힘겨워 보입니다. 차라리 절에 가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절에 가서 우상을 숭배하면 무언가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여기서 억지로 버티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분만 걸어둔 채 여전히 저주 가운데 살아가면,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시는 말씀만을 얻게 될 뿐입니다. 마음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이곳에 와서 분위기에 편승해 복을 좀 얻어보려 하고, 반드시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교회에 있다 한들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고 그 안에서 이득만을 취하려 합니다. 떠나자니 아쉽고, 머물자니 매일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니 제가 심판을 선포할 때마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는 사람도 분명 있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을 위해 매우 아름다운 은혜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영생의 관점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영생의 관점이 없다면 동행이란 아예 논할 수조차 없습니다. 세상에서 상장(IPO)시키는 데만 분주하다면, 상장이 끝난다 한들 인생의 게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상장사 대표가 편안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나 저나 해본 적은 없지만, 남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극히 고되다고 합니다. 온갖 규정이 난무하는데,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 투자자들의 돈을 자기 주머니로 끌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보통의 게임이 아니며, 자칫하면 언제 조사를 받게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뜻이 같아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를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담아야 합니다. 저주와 축복의 선택은 동전을 던져 앞뒤를 확인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고 마음을 쓴다면 당연히 축복의 길을 택할 것이며, 그러려면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결코 하나님만은 잃을 수 없다는 굳은 결단을 내릴 때, 더 이상 연약해지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먹고사는가?’라고 반문하겠지만, 하나님만 계시면 능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갔지만,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복되었습니다.

4. 하나님은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시다

저는 일전에 “하나님은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는데, 큰 반응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인터넷 조회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라는 말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흥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지는데, 넘어지는 자는 모두 자업자득입니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소리를 내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덫을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올무에 치이겠으며 그물에 걸린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아모스서》 3:4-5)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구덩이와 반석과 덫을 설계해 두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붙잡혔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담겨 있어 오직 돈 벌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10만 위안을 사기당했고, 다른 이는 60만 위안, 또 다른 이는 100만 위안을 사기당했습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문턱을 설계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속한 백성을 걸러내어 당신의 나라로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그저 큰 소리로 영접 기도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외치는 단순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듣기 싫은 경고를 이미 앞에 다 해두셨음에도, 굳이 짐승의 덫을 밟으려 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들개가 덫을 밟아 순식간에 다리가 끼여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덫의 원리는 쥐덫과 같아서 밟는 즉시 물려버리며, 영상 속에서 덫에 걸린 개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릅니다. 하나님께서 밟지 말라고 경고하셨음에도 사람이 믿지 않고 기어이 밟아 다리가 부러졌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아모스서》 3:6)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며,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시요, 재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이미 경고하셨으니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믿지 않고 굳이 시험해보려 한다면, 이 재앙이 20년 뒤에 일어날지 30년 뒤에 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이 참 가혹하시다’고 생각한다면 저 역시 같은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이미 사전에 고압선을 만지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고 만졌다가 바비큐처럼 까맣게 타버립니다. 굳이 만지려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패를 저지르고 뇌물을 주고받아도 괜찮을 것이라 여기며, 자기가 수학을 잘해서 확률 계산을 정확히 했다고 자만하지만, 결국 붙잡히는 10% 안에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시며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서서히 모두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즉시 이루어진다면 세상 인구의 90%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참고 또 참으시며 경고하고 또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200년을 버텼고, 유다 왕국이 300년을 버텼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경고하셨으나, 이스라엘 사람들도 참 기이하여 자기 당대에만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좋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200년, 30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며 여러 세대를 거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듭 참으시며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셨고, 그 기간 동안 나라가 망하는 일뿐 아니라 가문이 망하는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전에 어떤 뉴스에서 동네 깡패가 사람을 때려죽였는데, 피해자의 아들이 장성하여 그 깡패의 일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보응은 200년, 300년이 걸려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악을 반드시 추궁하신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아모스서》 3:2)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추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결코 요행을 바라며 하나님을 상대로 확률 놀음을 하지 마십시오. 온 힘을 다해 전심으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가 전하는 핵심은 온 힘을 다해 거룩함을 따르라는 것이며, 이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자 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도박하지 마시고, 확률을 계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모든 죄를 반드시 추궁하시며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는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주 예수님의 보혈이 덮어 그 모든 것이 주 예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죄는 여전히 당신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면, 자신이 주님을 어떻게 믿어왔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한 자매가 실직하여 물어보니, 10년 넘게 주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일독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악한 일입니다. 그녀는 온종일 틱톡(TikTok)만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직장까지 날려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죄악을 반드시 추궁하시며, 하나님께서 추궁하실 때에는 돌이킬 힘이 없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지은 죄악은 제사로도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몇 번이고 경고하셨으나 그는 듣지 않았고, 멸망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죄악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다른 사람의 토지와 가옥과 포도원을 차지하고, 남의 경계표를 옮기며, 남의 돈과 기업이나 지분을 빼앗는 것을 이득을 본 것이라 착각하게 만듭니다.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아모스서》 3:9)

강포와 학대로 빼앗는 것을 이득이라 여기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셨으니 반드시 그 대가를 추궁하실 것입니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은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서》 3:10)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똑똑히 분별하여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좋게 보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좋게 보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을 기어이 행하며, 믿지 않는 애굽 사람들조차 그런 일이 악함을 아는데도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을 행하니 얼마나 기이한 일입니까? 내면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차 있기 때문에 핵심 이익이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목적이 고작 먹고사는 하찮은 문제에 불과하다면, 큰 고통을 면치 못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참된 죄악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사람을 죽입니다. 세상의 논리로 보면 저주받을 일은 모두 이득으로 보이고, 복 받을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니 가르치기가 몹시 힘듭니다. 그러다가는 소설책 이야기까지 들고 와서 저에게 묻지만, 저는 그런 것을 읽어본 적도 없고 오직 축복과 저주만을 알 뿐입니다. 《수호전》을 들먹이든 8개국 연합군의 베이징 침략을 들먹이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직 축복과 저주만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아모스서》 3:1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방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잔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아모스서》 3: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때, 단 하나의 죄악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으나, 우리의 회개를 돌아보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실 저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대가를 치르며 여러분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평생 동안 행한 수많은 사역은 실상 제 자신을 훈련한 것일 뿐이니 자랑할 것이 전혀 없으며, 많은 것을 볼수록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세상적인 핵심 이익을 과연 얼마나 무너뜨렸습니까? 지금부터 서서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돈과 물질이 걸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고통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핵심 이익이 되신다면 물질이 흔들려도 가슴이 찢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맘몬은 바로 돈을 가리킵니다.

6. 구원의 기회가 희박하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아모스서》 3:12)

수놓은 비단 방석이라니 듣기에는 참 좋습니다. 인테리어 박람회에 가서 얼른 5만 위안을 주고 하나 사고, 침대도 10만 위안짜리 고급품으로 사서 도합 15만 위안을 들여 누워 있으니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독일과 이탈리아의 명품들이지만, 독일 사람도 불면증에 걸립니다. 아무리 편안한 침대에 눕는다 한들 불면증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많은 돈은 모두 남에게서 빼앗은 것이며, 고급 가구와 침구류를 사서 누워 있을 때는 편안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의 대적을 보내 이 땅을 에워싸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방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잔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아모스서》 3:11)

남의 재물을 빼앗았으나 결국 남의 땅에 끌려가 노예가 되고 말았으니, 이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치면 감옥에 가서 천천히 살아가는 것과 같으니, 묘사된 정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절망적입니다. 그때 가서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한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기껏해야 양의 두 다리를 건져낸 것에 불과합니다. 몸통은 다 뜯어먹히고 다리만 남았으니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바비큐라도 해 먹겠습니까? 겨우 귀 반쪽이 남았으니, 술안주로 쓰려고 돼지 귀 하나를 사려 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요컨대 완전히 끝나버린 것인데, 무슨 구원을 논하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그리스도인이고, 화인 사명 교회와 같은 승리하는 교회에 속해 있다고 외칩니다. 그런 말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리 두 개와 귀 반쪽만 남았으니 어디에 갖다 붙이겠습니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때는 다시 붙여주기라도 했지만, 귀 반쪽은 돼지 엉덩이에나 붙여야 할 판국입니다. 이런 상태를 두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사람의 마음속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의 체계가 담겨 있지 않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분명히 들으십시오.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해야 하며, 우리 안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이겨내야 합니다. 더 이상 체면을 따지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무슨 체면이 있겠습니까? 우리 안의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과 여로보암의 체계를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몇 마디나 됩니까? 늘 자신이 괜찮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문제는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늘 남들에게 자신이 행한 선한 일들을 늘어놓으며, 매일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이것저것을 행했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차 있다면, 펼쳐놓고 볼 때 그것은 제가 늘 말씀드리는 말씀의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들뿐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하이힐을 신어 몸매도 좋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이 온통 배설물로 가득 차 있으니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먹고 입고 쓰는 것, 집이나 타고 다니는 차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본래 아무런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들에 의지해 지탱하고 있음을 방증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가치를 지탱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겉치레만 해서는 안 되며, 지금부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의 가치 체계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으나,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 그것들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심지어 라멕보다 더 승리하여 소년이나 장년까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라멕에 불과합니다. 가인보다 더 승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가인의 승리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반드시 우리 안의 정욕과 사욕을 다스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온전히 세워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의 시간을 사용하시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요셉이 13년을 인내하고, 다윗도 13년을 인내했으며, 야곱은 심지어 90여 년을 인내했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 믿음의 거인들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자처해도 소용없고, 이마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라벨을 붙여도 소용없으며,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 해도 마찬가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내면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무너뜨려야만 유익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당신을 쳐서 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이 심판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며, 오직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삶 가운데 온전히 성취되게 합시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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