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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상 29장 - 곤경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

2023-01-11 18,517 撒母耳记上 撒母耳记上29章 撒母耳记上第二十九章 信心 命定 敬畏神 依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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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上29章-非利士人不要大卫
  • 1 非利士人将他们的军旅聚到亚弗;以色列人在耶斯列的泉旁安营。
  • 2 非利士人的首领各率军队,或百或千,挨次前进;大卫和跟随他的人同着亚吉跟在后边。
  • 3 非利士人的首领说:“这些希伯来人在这里做什么呢?”亚吉对他们说:“这不是以色列王扫罗的臣子大卫吗?他在我这里有些年日了。自从他投降我直到今日,我未曾见他有过错。”
  • 4 非利士人的首领向亚吉发怒,对他说:“你要叫这人回你所安置他的地方,不可叫他同我们出战,恐怕他在阵上反为我们的敌人。他用什么与他主人复和呢?岂不是用我们这些人的首级吗?
  • 5 从前以色列的妇女跳舞唱和说:‘扫罗杀死千千,大卫杀死万万’,所说的不是这个大卫吗?”
  • 6 亚吉叫大卫来,对他说:“我指着永生的耶和华起誓,你是正直人。你随我在军中出入,我看你甚好。自从你投奔我到如今,我未曾见你有什么过失;只是众首领不喜悦你。
  • 7 现在你可以平平安安地回去,免得非利士人的首领不欢喜你。”
  • 8 大卫对亚吉说:“我做了什么呢?自从仆人到你面前,直到今日,你查出我有什么过错,使我不去攻击主我王的仇敌呢?”
  • 9 亚吉说:“我知道你在我眼前是好人,如同 神的使者一般;只是非利士人的首领说:‘这人不可同我们出战。’
  • 10 故此你和跟随你的人,就是你本主的仆人,要明日早晨起来,等到天亮回去吧!”
  • 11 于是大卫和跟随他的人早晨起来,回往非利士地去。非利士人也上耶斯列去了。

《答疑解惑》

1.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1. 자신의 일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많은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2. 사람이 자기의 득실만 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려 결국 사울 왕처럼 됩니다.

2. 다윗이 직면한 곤경

  1. 다윗은 곤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구했으며, 그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었습니다.
  2. 다윗은 심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기에 그토록 여러 번 죽이기를 원치 않았는데, 이제 전장에 나가 그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3.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라

  1.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에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역사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면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4.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1.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고, 사울과 같은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고 맙니다.
  2. 다윗이 곤경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였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기에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과 뜻도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5.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1. 담대해지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2. 우리의 믿음은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6. 결론

  1.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사명을 상실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핵심 키워드

  1. 하나님의 동행하심
  2. 하나님의 능력
  3. 담대해지라
  4. 두려워하지 말라
  5. 놀라지 말라
  6. 사명의 기초
  7.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함
  8.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함께 《사무엘상》 29장을 읽겠습니다. 지난 장의 주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다윗과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사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처음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얻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이는 실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비극이 시작되며, 사울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상실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제가 이전에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은 뒤 처한 상태는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과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은 정말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으면 아무리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는 사람은 왕위에 앉아 있어도 늘 괴롭고, 온종일 허둥대며 갈피를 잡지 못해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본 장은 블레셋 군영에서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글을 쓸 때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만 쓰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을 나누어 서술하기도 합니다. 사실 《사무엘상》 28장과 29장은 모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치러 온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28장은 사울이 맞은편에 진을 친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 보인 반응을 기록하고 있으며, 29장은 역순(역순행적 구성)을 사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사울을 치러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시간 순서대로 본다면 29장이 28장보다 앞서 일어난 일입니다.

28장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군대를 마주하고 몹시 두려워하며, 죽은 사무엘에게 희망을 걸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올려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실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며, 어찌할 방도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외면하셨기에 아무리 애써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 것과 상실한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29장에서는 다윗이 곤경 중에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를 보여 줍니다. 여러분,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마십시오. 사람의 고통 배후에는 귀신이 있으며, 하나님의 동행하심 없이 귀신만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며, 평소에 가장 흔히 보게 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교구장이거나 목회자일 수도 있고 교회를 맡아 돌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린다면 사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과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100퍼센트까지 갈 것도 없이 10퍼센트만 달라도 큰일 납니다. 제가 이 문제를 묵상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왜 바리새인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 역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신들이 틀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도대체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한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단순히 밥을 먹거나 살아가는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울처럼 날마다, 해마다 왕위에 앉아 40년을 보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었고, 결국 이번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아기스에게 몸을 피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일제강점기에 어떤 사람이 일본 군대에 몸을 숨긴 것과 같았습니다. 아기스가 군대를 이끌고 사울을 치러 가려 할 때, 다윗에게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이때 가시겠습니까?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일본군 밑에서 부역하는 군인인데, 일본군이 독립군을 치러 가자고 한다면 가시겠습니까? 실제 상황에서는 감히 안 간다고 할 수도 없어 속으로 생각만 해도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온전함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종종 극심한 환경을 만나며, 그 극한 환경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에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극한 환경을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사울이 다윗을 쫓아 죽이려 했을 때, 다윗은 손만 들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기스 왕을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을 치러 가야 하니, 가고 안 가고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힘든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서도 안 되었고, 입으로는 반드시 아기스를 따라가 사울을 죽이겠다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겠습니까? 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곤경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일이 진행되면서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어, 가고 싶어도 데려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출정하기 전 출정식에서 아기스는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다들 곧 치를 전쟁 때문에 사기가 충천해 있었지만, 다윗은 그 출정식 한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이런 딜레마를 자주 겪는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교구장이든 다른 직분을 맡고 있든 주의하십시오. 만약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려 결국 사울의 처지로 전락한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구해 줄 수 없으며, 세상을 떠난 사무엘을 땅속에서 불러올린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이라면 비극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질 때 수많은 문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갈 곳 없이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종종 갈등과 고통스러운 처지에 빠지곤 합니다. 때로는 목양하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바라보며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정말 조금의 과장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의 한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에 닥칠 비극을 말씀하시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왕은 그것이 매우 좋다고 대답했고, 저 역시 그와 같이 '매우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끝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지 않고 혼탁하고 부질없는 것들만 귀히 여긴다면, 이 두 장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사울 왕이 되기는 쉬워도 다윗 왕이 되기는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겪는 고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직면했던 이 곤경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직면한 곤경

다윗은 곤경 속에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아기스에게 자신의 왕을 따라 주 왕의 원수를 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며 굳게 맹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파도가 일듯 뒤숭숭했고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곤경에 부딪혔을 때 다윗과 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만약 다윗이 이때 진실을 말하고 실제로 전장에 돌격해 싸웠다면, 죽는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었을 것이고, 그는 진짜 배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 배신자 노릇도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처지에 놓였을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실로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사무엘상》 29:2)

다윗은 본대를 따라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전장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일단 전장에 도착하면 다윗의 이전 주인이었던 사울 왕은 곧바로 다윗이 속한 군대의 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기스가 다윗더러 나가서 사울을 죽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마음은 극심한 갈등으로 찢어질 듯했고, 한 걸음 떼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앞으로 평생 민족의 반역자라는 오명을 짊어져야 할 판이었고, 싸우든 안 싸우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 동족을 위해 사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하나님만이 이러한 진퇴양난의 곤경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하나님이 기이하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곤경 중에서 큰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우리의 믿음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서서히 배신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지막 처지는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여러분, 곤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곤경에서 건져내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사무엘상》 29:8)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말할 때, 자기 주 왕의 원수는 곧 다윗의 원수이며 다윗은 아기스와 블레셋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속마음은 절망 속에서 부르짖으며 자신을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기뻐하는 척해야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행한 것이 그의 영리함이든, 위선이든, 거짓말이든, 혹은 다른 생각이 있었든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의 곤경을 다 알고 계셨기에 그가 한 말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혜로워져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저라도 그런 환경이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달리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결코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화명정신학(하나님의 사명 신학)은 큰 능력이 있는 신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이러한 곤경에서 건져내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군대는 날마다 30킬로미터씩 행군하여 전장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며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다윗이 직면했던 그토록 큰 곤경은 아니더라도 작은 곤경들을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과연 역사하시는지 의심합니다. 큰 곤경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작은 곤경에서 역사하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곤경을 마주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집안에서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형제가 주님을 믿은 뒤 죽은 자에게 제사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는데, 집안에 초상이 나서 제사를 지내게 되자 말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큰 갈등에 빠졌습니다. 말을 꺼냈다가는 가족들에게 불효자라고 비난받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형제는 간절히 기도하며 딱 한 번 담대해졌습니다.

그러자 집안의 어르신들이 그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고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느끼지만, 하나님은 늘 역사하시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느냐입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각자의 풍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타협하기 시작하고, 가짜 배신자가 진짜 배신자가 되며, 진짜 그리스도인이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을 추스르고 담대해지십시오. 사실 대단할 것 없는 일들이며, 사람은 그저 지혜를 가지고 다윗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본 장의 짧은 열한 구절은 당시 다윗의 곤경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곤경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마음속의 두려움과 고통, 나아가 내면의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며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 또한 곤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난 표적과 기사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곤경 속에서 그분을 구하기를 선택한다면, 수많은 일들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일어날 것입니다. 박사 과정을 졸업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도한 후에 졸업하게 되었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도한 후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기 시작했습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지 않아 사울 왕처럼 된다면 참으로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점차 조금씩 하나님을 경험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나의 하나님은 기이하신 하나님이시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날마다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사람과 함께하시고, 사울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관건은 사람이 진정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입니다. 다윗이 군대를 따라 행군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분노하며 왜 다윗을 데려가느냐고 따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의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사무엘상》 29:4-5)

이 방백들의 머리가 이때만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진짜 배신자인지 가짜 배신자인지는 전장에 함께 데리고 나가 선봉에 세워 사울 왕을 상대하게 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과 아기스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여러분이 설령 만주국 시대에 일본인의 통제 아래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일본인이 보기에 여러분을 무조건 좋게 보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의 직장 상사도 여러분을 좋게 보게 만드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입니다. 설령 상사가 여러분을 나쁘게 볼 때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사무엘상》 29:3)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종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사무엘상》 29:9-10)

아기스는 다윗을 각별히 좋게 보았습니다. 다윗이 처신을 유난히 잘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기에 아기스의 눈에 다윗이 좋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블레셋의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화를 내며 왜 다윗을 데리고 가느냐고 따진 것은 사실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좋아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아기스 휘하의 방백들이 다윗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작부터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내 가슴을 졸이며 행군하다가 드디어 다윗을 전투에 끼워 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윗을 데리고 가 사울을 치지 않겠다고 말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러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하며, 목회자가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교구장이 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구장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면서 정작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은 오직 자기 일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며, 그것은 비극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십시오. 하찮고 쓸데없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얻었다가 그것을 상실한다면 철저한 재앙이며, 사울 왕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전의 목회자나 지금의 목회자를 위해 카드를 한 장 뽑았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사울이 걸어간 그 길을 결코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아기스는 다윗을 좋게 보았으나 방백들은 좋지 않게 보았고, 사건은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다윗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훌륭하게 해결되어 다윗은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했고, 아기스는 오히려 다윗에게 빚을 진 셈이 되어 완벽한 결말을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으면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으면 희극이 되어 상황 전체를 기이하게 반전시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담대해져야 합니다. 가짜 배신자 노릇을 하더라도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먹여야 하므로 죽기까지는 아직 멉니다. 하물며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더욱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더 이상 복음주의 식의 그런 믿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우리 평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저는 늘 제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어떤 문제도 제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해결해 왔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사람이 일단 두려워하고 놀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성도들을 치유하고 사역할 때, 기도하다가 그 사람 안에 두려움이 있음을 발견하면 저는 두려움은 아주 작은 악령에 불과하다고 가르칩니다. 먼저 두려움의 영을 쫓아내고 나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은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자신이 본래 겁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집 안에서 큰소리칠 때는 어찌 그리 겁이 없습니까? 저와 논쟁할 때는 담대하기 짝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므로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도 마십시오. 어떠한 곤경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반석 위에 세우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자신만을 위해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가진 얄팍한 것들만 귀히 여긴다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으면 사울과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되며, 그러한 곤경은 해결책이 없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가진 왕위와 자기 아들이 그 왕위를 계승하는 것만 귀히 여겼고, 전쟁에 나갔으나 모두 자기를 위해 싸운 전쟁이었기에 결국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결론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명을 받기를 권면합니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보기에 중요한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중요하지 않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장에서 사울이 버림받은 이유를 말씀드렸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에게 자신의 긍휼을 베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버리셨는지 속히 돌이켜 정리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멋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제가 개척한 중화명정신학에서 사명은 매우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만약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라면, 자신부터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잘못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돌이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사울의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그때는 아무도 건져 줄 수 없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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