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咱们查的《撒母耳记上》二十九章,题目是“困境中神的同在”。本来想讲困境中神的帮助,但是我觉的没有困境中神的同在好。神有的时候会帮助,有的时候不帮助,我觉着神的同在才是解决问题的关键。
我把神的同在和我们的命定连在了一起,可是《圣经》里没有讲这个。那为什么这么理解呢?因为大卫一辈子就是为神而活,他攒了上百吨的金子,全部奉献去建造神的圣殿。我建造神荣耀的教会的概念,是从摩西建造神荣耀的帐幕来的。大卫、所罗门建造神荣耀的圣殿,也是从这传承下来的。建造神荣耀的教会,就是建造神荣耀的圣殿。
我非常看重神的同在,因为这就是我的命!我告诉你,谁也不能剥夺我活着的命定。我为此而生,为此来到这世上。你就是我妈,我也不会听你的。我得知道我来到这世上是干啥来了,而我终于找到了我的命定,就是为神而活!千万别拦着我,也别跟我玩,你玩不起,我为此而生,为此而活,也为此而死!没有任何人可以拦阻我走这条路!这是我的决心。
从某种程度上说有点六亲不认,但是在我这不管几亲都没用。如果我要纠结,就为神的国纠结;如果要难受,也只为神的国难受,我绝不会为自己的那点得失难受和沮丧。人一旦有了这样的根基,一生都会有神的同在。我来到这个世上就是为了牧养神的百姓,把神的百姓带到神的国度里,按时分属灵的粮食。
一般人比不上我的产量,我是专门生产属灵粮食的人,产量老高了。不但如此,我还研究了诸多学术的问题。比如:建造教会应该怎么建?我不想把大家整成整天喊哈利路亚很大声,把膝盖跪出茧子来,干啥啥不行,还很爱面子的基督徒。那就麻烦了,那种属灵没什么用。
Q1:老师,每天大量灵里祷告的时间控制多久比较好?我祷告多了牧者会说我,祷告少了也说我,我不知道祷告具体多长时间合适?我不敢问牧者,怕被骂。
这事挺有意思。华人命定是传承使徒保罗的神学体系,我们既要悟性祷告也要灵里祷告,既要圣灵充满,也要好好读《圣经》。也就是说,不要只顾大量灵里祷告,然后悟性上啥也不通,你不挨说谁挨说?但是你天天讲悟性,没有灵里祷告,你是没有能力的。你问我多少时间合适,当然是多多益善。如果你整天都在灵里祷告,那你整个人就傻掉了。为什么挨骂?不是因为你祷告时间长短的事,人家在乎的是你有没有在悟性上的寻求。
比如我读《创世记》第一章,没读懂,可是就想弄明白,然后就开始在灵里祷告,不断地读,就这么折腾了两个礼拜,《创世记》第一章的查经出来了。神是启示的神,太神奇了。华人命定查《创世记》第一章,有一个非常独特的见解,尤其是最近这一版,市场上找不到。别人查经像读课文一样的,自以为明白。我是觉得自己读经读不明白,然后祷告寻求神,从神启示得来的。
华人命定神学理念是从神启示得来的。所以我感谢神,神常常恩待我。大量的灵里祷告很好,但是要带着悟性的寻求去祷告,神会启示你。千万不要为了钱,生孩子之类的事跟神祷告。你光求自己的事,你什么时候在乎神所在乎的了?神不在乎你生几个孩子,神在乎你是否有命定,你是否愿意建造神荣耀的教会,你是否愿意在悟性上能够满心认识神,知道神的旨意如何!
如果在悟性上有突破,就得着宝贝了。悟性上不突破、没有信心,方言祷告就是在跟空气说话,没有用。《圣经》里保罗怎么说?要是没有爱,方言祷告就是鸣的锣、响的钹,(参《哥林多前书》13:1)根本就不管神在乎的到底是什么。我们得有爱神的心。如果悟性通透,你寻求的时候用方言祷告,效果很好的。你寻求,神一定会启示你,神启示我,照样也会启示你 。
Q2:老师,我从十几年前开始信主的时候就很爱主耶稣,很想为主耶稣摆上一生,但是心里常常惧怕,害怕会做错事被神咒诅,在教会里服侍也很怕得罪人。我该怎么做才能解决惧怕的问题呢?
这问题挺好。几十年很爱主,但是心里非常惧怕。为啥惧怕?惧怕的根源就是在于悟性不通。其实你只是心里想爱主,但是怎么爱主不知道,应该怎么服侍也不知道,怎么为主摆上一生更不知道,也不想寻求。人为什么惧怕?举个例子,如果我们在十层楼楼顶的边上走,不用说走,就是站在楼边那儿往下看,两条腿就像过电,心里头发虚、害怕。为啥?因为我们在悟性上知道,掉下去真的是会死人的。如果你站在一个小板凳高的地方往下一看却不害怕,因为你知道就算是掉下来也没事。
所以,悟性上不通是惧怕的根源。我们悟性不通,就一直惧怕,十几年过去了还是在原地踏步。华人命定神学是非常看重悟性的。人没有在悟性上认识神,不是建立在对神悟性认识的基础上,我们就活在一个感觉里,啥用也没有。所以,为什么在教会里怕得罪人?悟性不通。怎么才能解决惧怕的问题?就是要把悟性整通。
如果我开一辆车,我的眼睛还可以向东南西北看。你什么时候看见我开车害怕了?但是一个不会开车的坐在这儿,每小时30公里的速度就觉得车在快速往前跑,吓得直哆嗦。因为人悟性不通,所以,解决悟性问题是华人命定神学很重要的一个环节。
Q3:老师,你在心情低落的时候,是怎么喜乐起来的 ?
我回答过这类的问题。我心情低落的时候是挺多的。我一般什么时候心情低落呢?我对我牧养的人一旦丧失了信心就会绝望。有时候想一想,这人都30了,干啥啥不行,闹心;这人快40了,这不行,那也不行。其实,他也有行的地方,关键是我失去信心了。我一旦看环境,就失去了信心,就难受。你里面一旦没有信心,你就难受;一旦有信心,你就会好受。
如果你判断事物的时候没有信心,信心被谁吃了?被魔鬼吃了。所以,难受是鬼来了。 鬼是怎么来的?鬼把我们的信心整没了,我们就难受了。如果你信心常常爆棚,怎么可能难受呢?如果你觉得他们已经进步很快了,将来一定会更好,他们的悟性都要好起来,每个人都很厉害!心情就好了。如果说信心不恢复,就算是我拼命干活也没用。我干活是把我的精力先用在干活上,反正已经难受了,信心已经低落了,开始没信心了,就开始一边干活,一边把悟性里的信心调过来。
Q4:老师,我婆婆昨天去世了。家里的人就把她的照片和香炉放在客厅里,我和孩子看着都害怕,我就把香炉扔了,把照片放在柜子里。我婆婆的孩子们跟我吵了一架,我气了一天,这是我看重自己里面的感觉吗?
其实,就看在谁的家了。你住在别人家里,那你就忍耐点吧,人家说了算;如果是在你家里,那你说了算。如果是在你家,你可以对他们说:你想拿回家,放在你家,那你就好好放着。你在桌子上摆十张,我都给你做,你要不要?每个屋都放一张,在你床头也放一张,等到半夜过来叫你。要不要?要的话我花钱。
如果在自己的家里。可以说:拜托大家,我和孩子都害怕,我晚上还做恶梦。大家能不能怜悯我一下?如果你们要拜,我也尊重你们,拿到你们家里去拜。你们需要什么供果我都可以买给你们。但这是我的家,难道我不能做主?我家要摆啥,你管得着吗?
Q5:老师,要用心灵和诚实来敬拜神,对于神以外的人和事物要灵巧像蛇,驯良像鸽子,不僵化,这样理解对吗?
理解对,但是落实起来的时候还得揣摩。
Q6:老师,我要先提升自己的技能后再工作,还是依靠上帝的祝福就可以找到工作?
我给大家举个例子:你天天在家待着,啥也不想干,也不成长,干啥啥不行,然后就求神给我一份工作。如果你是神,你会给这样的人工作吗?看着就讨厌。神在想:我造他的时候有我荣耀的形象,现在怎么成这样了呢?神还在那儿闹心呢,哪有时间祝福你。所以怎么办呢?我们得有积极的态度。态度对了,能力不行,神都会给你安排一个让你有机会被训练的地方。但如果你态度不对,能懒就懒,能拖就拖,那是神所讨厌的。重要的是,无论如何要做神所喜悦的人。
Q7:老师,我在为家人祷告的时候,里面有一句话:你当默然依靠耶和华。这是神给我的启示吗?我应该照着这话去祷告吗?
很好啊。可是别光在外面依靠,要在里面依靠。
Q8:老师,我们村有一个传统教会的基督徒,有一天他的伴侣围绕整个村庄骂基督徒,后来没几天他的孙子就得了脑瘤,没救了,现在在家里等死。这个基督徒的儿媳妇怪她的奶奶是因为信主才这样的。孩子在这种情况下是不是受了咒诅?如果为了孩子祷告是与神为敌吗?应该怎么帮助他呢?
先改变他们家吧。孩子的问题真的就是父母所受的咒诅,如果这孩子的父母是一个好好信主的人,孩子的爷爷奶奶也不能咒诅这个孩子,所以关键是这个家是不是蒙神祝福。就算是这孩子的爷爷不这么干,这个孩子也照样得,因为在父母的心里装的都是讨神厌恶的东西。这个孩子的妈妈不是说她不信主得的脑瘤,反而说是孩子的奶奶信主信的,她很会甩锅,这不是很奇怪吗?当然也有一种可能性,奶奶信主信错了,那还真的不如不信。我也不知道他的奶奶是怎样的信主状况。
Q9: 老师,我听了你半个月的课,在思考命定这个词,现在悟性还不是很通透,还在学习的路上,如果想有命定是建造神的教会,会被人认为目标太大了,我现在就想得着命定,是不是越来越像耶稣?这样理解可以吗?
当然可以。问题在哪儿呢,你是不是以为建造教会是要出来做点什么?不是这么干的。大卫、所罗门建造圣殿,他有这份心存了好多年,然后才有真正的建造。你有这份心想着像耶稣,想完了要干啥?还得建造耶稣基督的身体。大家开始逐渐了解一件事,在你不断成长的过程当中,就是在建造耶稣基督的身体。
Q10: 老师,请问以色列有平安,全地才有平安,是怎么理解?
我跟传统教会的看法不太一样。传统教会的牧师以为这句话说的是以色列,就是整天在那折腾的以色列。他们以为那个以色列有平安,全地才有平安。后来我发现不是,即使那个地方平安了,全世界也不平安。我先来说说这两件事:第一个你要平安干啥?这个世界好像很难有平安,你自己平安就好了。第二件事,这个以色列指的是地上的以色列吗?这也是极其混乱的事。
我不知道别的教会是怎么理解的,你要问我的话,华人命定认为的“以色列”指的就是耶稣基督的教会,耶稣基督的身体。在这里绝对有平安!昨天我在服侍一个癌症末期的患者,这人已经要死了,所以很痛,但是就是不信主。20多岁的人,因为她的爸妈希望我们服侍她,就带着她祷告。祷告以后,疼痛消失了,带来了平安。你看,连不信主的都好了,信主的该好成什么样呢?所以“有平安”和“以色列”这两个词和我们理解的差距挺大的。
Q11:老师,我老公他们家不信主,我婆婆和我老公带孩子,孩子就会比较闹腾,折腾他们。我带孩子的话,孩子会比较乖,因为有时候带孩子,我会祷告。我要不要跟他们说信主的事?
你可以去说,但是别去瞎说,你可以用一些他们能够听得懂的话告诉他们,比如:我可以教你们念念经。前一段时间,我一个朋友的家人死了,他打电话给我,问我能不能帮着去“念念经”?我说可以啊!然后我过去后,就用一些他们听得懂的词做了这个仪式。我们当中一个姐妹的奶奶跟她孙女说:你要多为你爷爷念念经。那就念吧!所以孩子闹腾的时候,你可以教他们这样念:哈利路亚,圣灵来充满我!如果他们觉得好使就可以了!别要求人家信主,告诉人家信了可以上天堂之类的话,这样对话没法进行下去。如果好使就让他们好好地念,神会做工的。
Q12:老师,为什么亚吉要指着永生的耶和华起誓,这是在安慰大卫吗?
其实不但迦南人,连埃及人都知道耶和华神。当时神带领以色列人出埃及,震动了那一代的地方。从叙利亚到埃及,中东地区的人都知道耶和华神。亚吉指着耶和华发誓是为了证明这事跟自己无关,其实亚吉并不认识耶和华神。
Q13:老师,有个传统教会姐妹得了癌症,她说让我给带她祷告,但有个条件说不跟我一起宣告祷告,说她身体软弱不能宣告祷告,要不她就更糟糕了 ,我该怎样带她祷告?
你想问我要不要带她祷告,对吗?如果是我,我肯定不会服侍这种人。癌症长在自己身上,那就慢慢长吧!我又不欠你的。你不求我,我才不会管你呢。如果你需要我,我就会给你提要求。什么时候轮到一个癌症患者来要求我了?大家得明白这个道理啊!比如耶稣去服侍,会有人要求耶稣这样服侍、那样服侍吗?
你去医院会要求医生开这个药、开那个药,还告诉医生你是啥病啊?医生会问你:你是医生还是我是医生?大家得知道医生为什么这么问。我也会问同样的问题:你要我咋服侍你?如果你问我:可不可以这样服侍我?我会说:你应该服侍我,要不要你教我怎么服侍?我还没说你,你倒是先教我了?别理她,告诉她:这样的服侍还没学会呢!等学会再说。
大家觉得这样服侍妥当吗?有人可能会觉得我太坏了,但是我告诉你,医生不这么干会出事,牧师不这么干也会出事。其实你就是去帮她祷告也没有用,她有自己的一套。像这种人,如果你帮她祷告到一半突然死了,你要去赔钱吗?我肯定溜得远远的。我来到世上不是干这个的,非得开一个口子让人来讹我吗?如果她愿意祷告就去网站上跟着祷告,也是有用的。如果让我服侍这种人,我一定会把她的恶习对付掉。前一段时间有个癌症末期的人,我偶尔会服侍一下他,他们说最近这段时间对付他的恶习,改的还不错。不对付恶习是不可能好的。
Q14:老师,信与不信不能同负一轭,这是指的信主和不信主的人不能在一起结婚吗?之前的教会那么讲,我就特意想找信主的,后来就找到了我的老公,婚后检查发现他不能生育。这是我一开始想找信主的动机错了而受的咒诅吗?
我见过各种奇葩的事。我告诉大家,千万别找信主的。原因很简单,信不对,就会身居天下万民之下,又穷,身体又不好。普通老百姓,身居中间。过以神为中心的,就身居天下万民之上。你想找这种人,人家还不想搭理你,人家只是爱主去了。如果想来我们教会找男女朋友的,就断了这个念想吧。人要是想过以神为中心的生活,一定会撇下父母、妻子、儿女来爱主,和你相处一定会产生矛盾。
有一个教会的姐妹嫁给一个传道人的儿子,因为他们教会的牧师说他做梦,梦见他们是神所安排的一对。后来发现不是,这个男的因为嫖娼被抓了。我很困惑,教会怎么弄这些乌烟瘴气的东西?我鼓励大家,如果你已经结婚了就好像没结婚,没结婚的就不要求结婚;如果有孩子的就好好养孩子,没有孩子就感谢神吧。如果你想让我解决你婚姻中的问题,还不如让我解决你个人成长的问题。如果你有了命定,什么老公、孩子就都不是问题了。学会为主的缘故撇下一切。
我们当中还有个姐妹,本来一个人挺好,后来结婚了,孩子也大了,老公却瘫痪在床,生活不能自理,脾气还挺大,经常骂人。这不是咒诅吗?大家千万别给我扣帽子,说我反对结婚。你要做什么,我绝对不会拦着你,你想娶妻还是嫁人,我都恭喜你,我还能帮你看看这人怎么样。但是你得把账算明白,要不然就悲剧了。
1.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 자신의 일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많은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 사람이 자기의 득실만 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려 결국 사울 왕처럼 됩니다.
2. 다윗이 직면한 곤경
- 다윗은 곤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구했으며, 그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었습니다.
- 다윗은 심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기에 그토록 여러 번 죽이기를 원치 않았는데, 이제 전장에 나가 그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3.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라
-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에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역사합니다.
-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면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4.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고, 사울과 같은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고 맙니다.
- 다윗이 곤경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였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기에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과 뜻도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5.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 담대해지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 우리의 믿음은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6. 결론
-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사명을 상실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핵심 키워드
- 하나님의 동행하심
- 하나님의 능력
- 담대해지라
- 두려워하지 말라
- 놀라지 말라
- 사명의 기초
-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함
-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함께 《사무엘상》 29장을 읽겠습니다. 지난 장의 주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다윗과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사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처음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얻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이는 실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비극이 시작되며, 사울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상실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제가 이전에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은 뒤 처한 상태는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과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은 정말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으면 아무리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는 사람은 왕위에 앉아 있어도 늘 괴롭고, 온종일 허둥대며 갈피를 잡지 못해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본 장은 블레셋 군영에서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글을 쓸 때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만 쓰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을 나누어 서술하기도 합니다. 사실 《사무엘상》 28장과 29장은 모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치러 온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28장은 사울이 맞은편에 진을 친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 보인 반응을 기록하고 있으며, 29장은 역순(역순행적 구성)을 사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사울을 치러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시간 순서대로 본다면 29장이 28장보다 앞서 일어난 일입니다.
28장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군대를 마주하고 몹시 두려워하며, 죽은 사무엘에게 희망을 걸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올려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실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며, 어찌할 방도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외면하셨기에 아무리 애써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 것과 상실한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29장에서는 다윗이 곤경 중에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를 보여 줍니다. 여러분,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마십시오. 사람의 고통 배후에는 귀신이 있으며, 하나님의 동행하심 없이 귀신만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며, 평소에 가장 흔히 보게 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교구장이거나 목회자일 수도 있고 교회를 맡아 돌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린다면 사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과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100퍼센트까지 갈 것도 없이 10퍼센트만 달라도 큰일 납니다. 제가 이 문제를 묵상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왜 바리새인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 역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신들이 틀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도대체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한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단순히 밥을 먹거나 살아가는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울처럼 날마다, 해마다 왕위에 앉아 40년을 보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었고, 결국 이번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아기스에게 몸을 피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일제강점기에 어떤 사람이 일본 군대에 몸을 숨긴 것과 같았습니다. 아기스가 군대를 이끌고 사울을 치러 가려 할 때, 다윗에게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이때 가시겠습니까?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일본군 밑에서 부역하는 군인인데, 일본군이 독립군을 치러 가자고 한다면 가시겠습니까? 실제 상황에서는 감히 안 간다고 할 수도 없어 속으로 생각만 해도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온전함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종종 극심한 환경을 만나며, 그 극한 환경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에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극한 환경을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사울이 다윗을 쫓아 죽이려 했을 때, 다윗은 손만 들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기스 왕을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을 치러 가야 하니, 가고 안 가고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힘든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서도 안 되었고, 입으로는 반드시 아기스를 따라가 사울을 죽이겠다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겠습니까? 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곤경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일이 진행되면서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어, 가고 싶어도 데려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출정하기 전 출정식에서 아기스는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다들 곧 치를 전쟁 때문에 사기가 충천해 있었지만, 다윗은 그 출정식 한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이런 딜레마를 자주 겪는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교구장이든 다른 직분을 맡고 있든 주의하십시오. 만약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려 결국 사울의 처지로 전락한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구해 줄 수 없으며, 세상을 떠난 사무엘을 땅속에서 불러올린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이라면 비극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질 때 수많은 문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갈 곳 없이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종종 갈등과 고통스러운 처지에 빠지곤 합니다. 때로는 목양하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바라보며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정말 조금의 과장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의 한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에 닥칠 비극을 말씀하시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왕은 그것이 매우 좋다고 대답했고, 저 역시 그와 같이 '매우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끝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지 않고 혼탁하고 부질없는 것들만 귀히 여긴다면, 이 두 장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사울 왕이 되기는 쉬워도 다윗 왕이 되기는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겪는 고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직면했던 이 곤경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직면한 곤경
다윗은 곤경 속에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아기스에게 자신의 왕을 따라 주 왕의 원수를 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며 굳게 맹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파도가 일듯 뒤숭숭했고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곤경에 부딪혔을 때 다윗과 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만약 다윗이 이때 진실을 말하고 실제로 전장에 돌격해 싸웠다면, 죽는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었을 것이고, 그는 진짜 배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 배신자 노릇도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처지에 놓였을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실로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사무엘상》 29:2)
다윗은 본대를 따라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전장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일단 전장에 도착하면 다윗의 이전 주인이었던 사울 왕은 곧바로 다윗이 속한 군대의 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기스가 다윗더러 나가서 사울을 죽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마음은 극심한 갈등으로 찢어질 듯했고, 한 걸음 떼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앞으로 평생 민족의 반역자라는 오명을 짊어져야 할 판이었고, 싸우든 안 싸우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 동족을 위해 사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하나님만이 이러한 진퇴양난의 곤경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하나님이 기이하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곤경 중에서 큰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우리의 믿음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서서히 배신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지막 처지는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여러분, 곤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곤경에서 건져내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사무엘상》 29:8)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말할 때, 자기 주 왕의 원수는 곧 다윗의 원수이며 다윗은 아기스와 블레셋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속마음은 절망 속에서 부르짖으며 자신을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기뻐하는 척해야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행한 것이 그의 영리함이든, 위선이든, 거짓말이든, 혹은 다른 생각이 있었든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의 곤경을 다 알고 계셨기에 그가 한 말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혜로워져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저라도 그런 환경이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달리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결코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화명정신학(하나님의 사명 신학)은 큰 능력이 있는 신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이러한 곤경에서 건져내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군대는 날마다 30킬로미터씩 행군하여 전장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며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다윗이 직면했던 그토록 큰 곤경은 아니더라도 작은 곤경들을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과연 역사하시는지 의심합니다. 큰 곤경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작은 곤경에서 역사하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곤경을 마주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집안에서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형제가 주님을 믿은 뒤 죽은 자에게 제사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는데, 집안에 초상이 나서 제사를 지내게 되자 말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큰 갈등에 빠졌습니다. 말을 꺼냈다가는 가족들에게 불효자라고 비난받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형제는 간절히 기도하며 딱 한 번 담대해졌습니다.
그러자 집안의 어르신들이 그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고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느끼지만, 하나님은 늘 역사하시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느냐입니다.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각자의 풍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타협하기 시작하고, 가짜 배신자가 진짜 배신자가 되며, 진짜 그리스도인이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을 추스르고 담대해지십시오. 사실 대단할 것 없는 일들이며, 사람은 그저 지혜를 가지고 다윗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본 장의 짧은 열한 구절은 당시 다윗의 곤경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곤경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마음속의 두려움과 고통, 나아가 내면의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며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 또한 곤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난 표적과 기사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곤경 속에서 그분을 구하기를 선택한다면, 수많은 일들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일어날 것입니다. 박사 과정을 졸업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도한 후에 졸업하게 되었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도한 후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기 시작했습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지 않아 사울 왕처럼 된다면 참으로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점차 조금씩 하나님을 경험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나의 하나님은 기이하신 하나님이시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날마다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사람과 함께하시고, 사울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관건은 사람이 진정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입니다. 다윗이 군대를 따라 행군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분노하며 왜 다윗을 데려가느냐고 따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의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사무엘상》 29:4-5)
이 방백들의 머리가 이때만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진짜 배신자인지 가짜 배신자인지는 전장에 함께 데리고 나가 선봉에 세워 사울 왕을 상대하게 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과 아기스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여러분이 설령 만주국 시대에 일본인의 통제 아래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일본인이 보기에 여러분을 무조건 좋게 보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의 직장 상사도 여러분을 좋게 보게 만드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입니다. 설령 상사가 여러분을 나쁘게 볼 때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사무엘상》 29:3)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종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사무엘상》 29:9-10)
아기스는 다윗을 각별히 좋게 보았습니다. 다윗이 처신을 유난히 잘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기에 아기스의 눈에 다윗이 좋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블레셋의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화를 내며 왜 다윗을 데리고 가느냐고 따진 것은 사실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좋아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아기스 휘하의 방백들이 다윗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작부터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내 가슴을 졸이며 행군하다가 드디어 다윗을 전투에 끼워 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윗을 데리고 가 사울을 치지 않겠다고 말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러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하며, 목회자가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교구장이 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구장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면서 정작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은 오직 자기 일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며, 그것은 비극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귀히 여기십시오. 하찮고 쓸데없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얻었다가 그것을 상실한다면 철저한 재앙이며, 사울 왕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전의 목회자나 지금의 목회자를 위해 카드를 한 장 뽑았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사울이 걸어간 그 길을 결코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아기스는 다윗을 좋게 보았으나 방백들은 좋지 않게 보았고, 사건은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다윗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훌륭하게 해결되어 다윗은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했고, 아기스는 오히려 다윗에게 빚을 진 셈이 되어 완벽한 결말을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으면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으면 희극이 되어 상황 전체를 기이하게 반전시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담대해져야 합니다. 가짜 배신자 노릇을 하더라도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먹여야 하므로 죽기까지는 아직 멉니다. 하물며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더욱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더 이상 복음주의 식의 그런 믿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우리 평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저는 늘 제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어떤 문제도 제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해결해 왔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사람이 일단 두려워하고 놀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성도들을 치유하고 사역할 때, 기도하다가 그 사람 안에 두려움이 있음을 발견하면 저는 두려움은 아주 작은 악령에 불과하다고 가르칩니다. 먼저 두려움의 영을 쫓아내고 나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은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자신이 본래 겁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집 안에서 큰소리칠 때는 어찌 그리 겁이 없습니까? 저와 논쟁할 때는 담대하기 짝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므로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도 마십시오. 어떠한 곤경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반석 위에 세우십시오.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자신만을 위해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가진 얄팍한 것들만 귀히 여긴다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으면 사울과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되며, 그러한 곤경은 해결책이 없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가진 왕위와 자기 아들이 그 왕위를 계승하는 것만 귀히 여겼고, 전쟁에 나갔으나 모두 자기를 위해 싸운 전쟁이었기에 결국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사명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결론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명을 받기를 권면합니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보기에 중요한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중요하지 않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장에서 사울이 버림받은 이유를 말씀드렸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에게 자신의 긍휼을 베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버리셨는지 속히 돌이켜 정리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멋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제가 개척한 중화명정신학에서 사명은 매우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만약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라면, 자신부터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잘못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돌이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사울의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그때는 아무도 건져 줄 수 없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