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하심’ 시리즈 설교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제목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니 그가 범사에 형통하였더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 눈에도 너무나 하찮아 보입니다! 때로 저는 “아이구, 머리에 혹이 났나 보네!”라고 말하곤 합니다. 나중에 보니 머리에 혹이 난다는 말이 꽤 흥미롭더군요. 머리에 혹이 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섬기는 어떤 사람들은 뼛속 깊이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축사 사역을 받을 때 머리에 커다란 고름 혹이 하나 났습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머리에 혹이 났다고 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빠져나올 때 머리에 혹이 생기더니, 나중에 그것이 터져서 흘러나오는데 지독한 악취가 났습니다. 저는 살면서 그렇게 지독한 냄새는 처음 맡아봤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독했습니다! 머릿속이 얼마나 더러웠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나중에 “머릿속에 똥이 들어찼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냄새가 날 수 있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쓸데없는 일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일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화가 따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복이 따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늘 재수가 없고 불행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무엇을 해도 일이 꼬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사람을 무척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무엇이 곤혹스럽습니까? 결국 나는 축복을 원하는가, 아니면 능력을 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일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더러 능력을 의지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범사에 형통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능력이 따르지만, 능력은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범사는 고사하고 단 한 가지 일만 꼬여도 호되게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유심히 관찰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복이 있고 어떤 사람은 늘 화가 따르는데, 그 이유를 깨달으셨습니까? 만약 깨달으셨다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귀신이 여러분과 함께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됩니다! 때로 여러분은 “아닌데요, 저 사람은 사업을 꽤 잘하는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가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끝까지 가보면 결국 무너집니다. 비록 수천조 원의 거대한 비즈니스 제국을 세웠다 할지라도, 나중에 무너질 때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여 파산하고 맙니다. 재앙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1억, 10억, 100억은커녕 1천억, 10조 원이라 한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토록 많은 돈을 가지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데, 어찌 재앙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어제 제가 사역을 하고 있을 때 한 사역자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십니까? 우리 중에 어떤 형제님이 한 분 계시는데 정말 흥미롭습니다.” 제가 “어떤 점이 그렇게 흥미로운가요?”라고 묻자, 그는 “그 형제님이 정말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아요, 나에게는 바로 그런 간증이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형제님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습니다. 그 형제는 회사 전체에서 공인된 최고의 톱 세일즈 챔피언인데, 그의 등 뒤에는 기묘하고도 너무나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나는 고객들은 모두 기업의 대표들인데, 고객과 함께 식사하다가 중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나가 봐야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섬기는 사람 중에 한 명이 심근경색(협심증) 통증이 와서, 밖으로 나가 전화로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1시간 넘게 사역을 해야 한다면, 고객을 1시간 넘게 혼자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이 됩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참 담대했습니다. 속으로 ‘고객이 하나님과 비교가 되겠는가? 고객이 사역과 비교가 되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5분 동안 기도했더니 그 사람의 흉통이 나았습니다. 5분 만에 나은 것입니다! 만약 50분이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가 돌아오자 고객이 “어디 다녀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분 중에 흉통이 있는 분이 계셔서 기도를 해 드렸는데 나았습니다!” 그러자 고객은 이 사람이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세일즈 챔피언 타이틀과 그의 실적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고, 그가 하는 일마다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과 재앙을 만난 사람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 저는 어떤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먼저 당신에게 닥친 그 재수 없는 일부터 해결합시다!” 허구한 날 일이 꼬이고 재수가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세상은 다 중앙난방이라 집에서 연탄을 살 필요도 없고 석탄을 치울 일도 없지만, 삶의 불운과 저주는 여전히 다 치워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대체 언제쯤에야 이 사람들이 복 받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 속이 타들어 갈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축복과 저주이며, 이 두 갈래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 두 손과 칼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저주입니다!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능력을 근본으로 삼는 것은 에서의 길입니다. 또 다른 길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며, 그것을 얻지 않고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필코 얻어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 흥미롭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축복과 저주의 혼합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50대 50이고, 어떤 사람은 20대 80이며, 어떤 사람은 80대 20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100% 복을 받은 사람인데, 오늘 말씀드릴 요셉과 같은 사람이 바로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옛날에 리브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의 어머니이고,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니, 리브가는 요셉의 할머니입니다. 이 할머니는 대단해서 단번에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뱃속에서 매일 싸워대는 통에 리브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우리 안에서도 두 나라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를 육신에 속하여 능력 위주로 살아가는 에서의 길로 이끌려 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를 ‘에서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는 길로 인도하려는 야곱이 걸어간 길입니다. 결국 육에 속한 자, 자기 능력을 근본으로 삼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는 자를 섬기게 되며, 그가 존재하는 의미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능력 위주의 길을 걸어가며 몹시 고생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우리 안에서 두 나라가 싸우고 있음을 매우 명확하게 묘사해 줍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복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사주 보는 사람이 늘 저에게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어릴 때 남들이 제게 복이 많다고 해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영적인 일입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얼마나 명확합니까? 참 복이 많지 않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 복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다 이루어지며, 중도에 흐지부지 끝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고민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것인가? 사실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타고난 것이기도 하고 후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고, 후천적인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이미 택하셨음에도 스스로 저주받은 길을 선택하여 걸어갑니다. 그러면 어쩔 도리가 없으며 하나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신 것 같았으나 결국 축복받는 길을 선택하여 나아갑니다. 야곱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러한데,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든 것은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울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어찌하여 저러십니까?”라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해 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을 걷도록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두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제 설교를 듣지만, 어떤 사람은 에서가 되고 어떤 사람은 야곱이 됩니다. 사실 요셉 자신도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 갓 태어난 아기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은 생후 한두 달 된 아기를 보셨습니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어떤 갓난아기는 얼굴이 늙은이처럼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아기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요셉이 태어났을 때나 다른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빽빽 울어대다가 울면 엄마가 젖을 주는 것 외에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갓 태어났을 때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 자라면서 “엄마, 젖 주세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대략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그 후 자라서 조금 철이 들었을 때, 제가 묻겠습니다. 요셉이 나중에 갖추게 된 것들은 배운 것입니까, 타고난 것입니까? 이것은 정말 딱 잘라 증명하기 어렵지만, 천성적으로 그는 이러한 영적인 일들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다 비슷하지만, 배우면서 자라다 보면 서로 달라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움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저것을 배우다 보니 배우면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요셉이 배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었고, 그 결과 ‘범사에 형통함’이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관찰해 보면 주변에 재수가 없고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지 못하십니까? “아, 저 사람은 복이 있구나,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늘 재앙이 따르는구나,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어떤 사람은 “저는 배울 줄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배울 줄 모른다면 불행해지는 법만 배우게 될 뿐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확연히 다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상하게도 배울 줄을 모릅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가는 불행을 겪었다고 말하면서, 왜 팔려 갔는가 하니 요셉이 할 일 없이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는 사실은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기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요셉이 왜 팔려 갔는지, 왜 그런 불행을 당했는지만 잔뜩 분석합니다. 그들은 요셉이 배움을 얻으러 유학을 떠난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요셉이 무엇을 배웠는지 아십니까?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간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경영대학에 들어가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경영을 배우고, 축복받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나중에는 총리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총리가 되었는데 여러분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저는 여러분께 유심히 관찰할 것을 권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지, 어떤 사람이 복이 있고 어떤 사람이 불행한지를 보십시오. 그리고 배우십시오. 배우고 또 배우다 보면 최고의 실력자가 될 것입니다!
2. 본문 말씀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세기 39:1-6)
3. 기도
하나님, 오늘 저희에게 이 세대의 요셉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에게 지혜를 주셔서 영적인 눈을 열어 요셉이 복을 받은 비밀을 보게 하시고, 요셉에게 주님이 함께하신 비밀을 보게 하옵소서. 저희로 요셉을 본받아 이 세대에서도 주님의 함께하심을 힘입게 하시고,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하시며, 저희가 섬기는 사람들도 저희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희를 빚으시고 연단하셔서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왜 아버지는 유독 이 아이만 좋아했을까?’ 하고 흥미롭게 여길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어떤 아이는 철이 들고, 어떤 아이는 엉뚱하고 철없이 구는데 도대체 그 고약한 성질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그의 아버지 야곱이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형이 동생이 되고 동생이 형이 된 것입니다. 장자가 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사실 별 소용이 없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재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야곱이 장자로서 재산의 큰 몫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결국 이삭의 재산은 다 에서에게 돌아갔고, 야곱은 그런 재물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장자의 명분을 얻고자 했을까요? 장자의 명분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곁에 붙어 지내며 부자가 함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을지를 탐구했습니다. 요셉이 묻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장자의 명분을 얻으셨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셨는지 다시 말씀해 주세요. 제 위로는 형이 열 명이나 있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는 참 대단하십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으셨는데, 제 위로는 형이 열 명이나 있으니 저는 팥죽을 열 그릇이나 쑤어야 하잖아요! 아버지는 75년 만에 팥죽 한 그릇을 만드셨는데, 제가 팥죽 열 그릇을 만들려면 750년이나 걸리겠어요. 저는 그냥 포기해야겠습니다!” 이 부자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형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야곱은 “가서 양이나 쳐라! 집에서 빈둥거리며 밥만 축내지 말고. 요셉 너는 여기 남아 나와 함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법을 계속 연구하자”라고 했습니다.
이 부자는 이 주제를 매우 깊이 연구했고, 마침내 어떤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요셉은 참 대단해서 이렇게 구했습니다. “하나님, 장자의 명분 그 위에 또 다른 명분을 만들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사실 말씀드리자면, 그 위에 또 다른 명분을 만들고, 그 위에 또 다른 명분을 더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치면 좌의정을 세웠으니 우의정도 세우고, 전의정, 후의정을 세우며, 남의정, 북의정도 세울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직분이나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는 그저 작은 이름을 하나 붙여주는 것처럼 간단한 일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때 요셉은 장자의 명분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 알고 있었을까요? 장자의 명분은 유다에게 돌아갔습니다. 앞선 세 형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넷째부터 요셉까지 앞서 일곱 형들이 있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유다에게 임한 것입니다. 유다는 나름대로 괜찮아서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위의 세 형이 실수를 저지른 덕에 유다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유다는 참 똑똑해서 자신이 실수하지 않도록 단속했고, 그 결과 아래 동생들은 기회를 엿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고,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부모와 열 형들과 한 명의 아우가 모두 자신에게 절하게 될 것을 상징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세기 37:6-7)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세기 37:9)
세상에, 이것이 도대체 무슨 꿈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사모하되 요셉처럼 이토록 간절히 사모해야 하니, 실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결국 요셉은 집안에서 으뜸이 되었고, 아버지보다 더 큰 직분을 얻었으며, 장자의 명분보다 훨씬 더 큰 지위를 얻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걱정합니다. 때로 저는 “무엇을 걱정합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시겠습니까? 만드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장자의 명분은 야곱이 추구한 것이었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낳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게,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지위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장자의 명분과 그 지위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지위까지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셉의 위에도 더 큰 지위가 있는지 물으실지 모릅니다.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여러분에게 이러한 원대한 포부가 있다면 하나님께는 요셉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 일도 아니며, 요셉 같은 인물이 또 하나 생겨도 아무 문제가 없고, 요셉 위에 또 다른 지위를 창조하신다 해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런 열망을 품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니 요셉의 아버지가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며 ‘내 아이가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품다니, 이 아이는 장차 대단한 인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아버지의 마음에 들고 사랑을 받으려면, 반드시 아버지가 기뻐하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형들을 양 치러 보냈습니다. 형들이 “그럼 동생 요셉은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너희와는 상관없으니 그는 내 곁에 남아 나와 함께 영생의 도리를 더 깊이 탐구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부자가 나눈 대화는 실로 방대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이삭, 리브가, 야곱, 에서, 이스마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매우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요셉은 수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기쁜 마음에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고, 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이 아우만 편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이란 참 묘합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자기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를 죽이려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니 그를 죽여버리자! 이것이 바로 가인과 아벨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더러운 생각이 가득 차 있으니 어찌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머리에 혹이 난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참 기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죽인다고 해서 당신이 복을 받습니까? 그를 죽인다고 해서 당신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임합니까? 어떤 형은 요셉을 살려주고 싶어 죽이지는 못하게 했고, 결국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그 노예살이가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이스마엘 사람들은 요셉의 손을 낙타 꼬리에 묶었고, 낙타가 앞으로 걸어가면 요셉은 뒤에서 따라 걸어야 했습니다. 이 아이가 열일곱 살이었는데, 뼛속에 흐르는 그 기개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걸어가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 길이 걷기 쉬운 길이었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남에게 팔려 가면서 분명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낙타를 따라 이스라엘 땅에서 이집트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며 발도 다 터졌을 것입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렸지만, 마음속의 믿음만은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의 믿음으로 끝까지 버텨낸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형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나를 팔아넘길 수 있어? 어떻게 나를 죽이려 했단 말인가? 너무 악하다!’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생각할수록 괴롭지만, 괴로워지자마자 그는 이것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왜 옳지 않습니까? 요셉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일이며, 나의 하나님은 여전히 다스리신다! 비록 형들이 나를 팔았으나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이요,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 가문의 구원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나는 지금 유학을 온 것이며, 경영을 배우러 온 것이니, 장차 내 가문의 구원자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는 집안의 으뜸이며, 아버지조차 그 앞에 절하게 될 터이니, 이런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조금 있으면 또 그 부정적인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우리 안에서는 늘 이런 음성들이 충돌하며 어느 쪽이 힘을 내어 승리하느냐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공감하시지요? 한편에서 그 음성이 들려오면 요셉은 믿음으로 그것을 쳐부수고, 또 들려오면 다시 믿음으로 쳐부수었습니다! 말하자면 다 눈물겨운 일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 마음이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결국 요셉은 노예 생활을 시작했고, 이로써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펼쳐집니다.
친위대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황실을 경호하는 중앙 경위 부대의 우두머리로서 왕을 지키는 막강한 실세입니다! 우연치 않게도 친위대장 보디발이 노예를 사러 왔다가 이리저리 고르던 중 요셉이 괜찮아 보여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요셉은 상류층 사회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무리에 속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 한 자매님이 갑자기 어떤 부잣집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밖에서 몇백만 원짜리 일자리도 얻지 못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역을 통해 사람을 훈련하여 최고의 근무 태도를 갖추게 하자, 그녀는 연단을 거쳐 마침내 그 집의 총괄 집사가 되었습니다. 높은 급여에 숙식도 제공받고 차까지 지급받았으며, 혼자서 거대한 대저택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돈을 주며 장을 보라고 맡겼는데, 부자들은 손님을 대접할 때 최고급 식재료만 쓰므로 그녀가 구매를 전담했습니다. 그런 상류층 환경에 들어가니 어찌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 집에는 돈이 넘쳐났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므로 그는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요셉이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고, 그 결과 유능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감이 가득하여 이것을 해도 잘되고 저것을 해도 잘되었습니다. 요셉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보디발은 집안의 모든 소유와 밭의 모든 것을 요셉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보니 밭을 가는 농기구가 고장 나면 척척 고쳐냈고, 집안 집기가 고장 나도 척척 고쳐냈습니다. 집안에 다른 노예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사람을 올바르게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다 경영의 훈련이었습니다. 요셉은 사람 관리도, 일 처리도 탁월하게 해냈습니다.
보디발은 안목이 있어서 이 청년의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며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고 흐뭇해했습니다. 주인의 눈에 들었으니 다른 노예들은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노예가 보디발에게 와서 “왜 제가 관리자가 되지 못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보디발은 “내 눈에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나는 요셉이 마음에 든다”는데 따질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회사에서 왜 사장님의 총애를 받지 못할까요? 왜 하필 사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라고 합니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 눈에 미움을 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요셉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마 보디발이 여러 명의 노예를 함께 샀을 것이고 그중에 요셉도 있었을 텐데, 같은 시기에 들어왔어도 누구는 눈에 들고 누구는 눈 밖에 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셉이었고 어떤 사람은 요셉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노예가 되어도 상류층의 핵심으로 올라갈 것이요, 여러분이 요셉이 아니라면 설령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해도 끌어내려질 것입니다.
요셉은 최고의 노예가 되어 보디발 집안의 총무, 즉 ‘요셉 총괄 대표’가 되었으니 실로 대단했습니다!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빈틈없이 매끄럽고 매우 효율적으로 해내니 주인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주인이 직접 입으로 밥을 떠먹는 것 외에는 요셉이 대신 먹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주인님, 제가 대신 밥을 먹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밥은 주인이 직접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39:6)
요셉은 너무나 잘생겼을 뿐 아니라 일도 잘하고, 말솜씨도 좋고, 눈치도 빠르며,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보디발의 아내에게는 완벽한 이상형이었습니다. 결국 주인의 아내가 눈짓으로 유혹하며 추파를 던졌고, 그 유혹이 너무나 거세어 요셉은 감옥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여주인과 동침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었고, 결국 여주인의 모함과 누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창세기 39:20)
이 또한 상류층 인맥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냥 감옥인 줄 아십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최고위층 감옥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세기 39:21)
요셉은 감옥을 관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수감자로 들어갔는데, 간수장이 보니 요셉이 훤칠하고 인품이 훌륭하여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네가 이 일을 맡아라!”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요셉이 관리를 참 잘했는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간수장은 모든 죄수를 요셉의 손에 맡겼고, 먹고 자고 입고 배설하는 것부터 누가 어느 방에 머물고 어떤 사정이 있는지까지 요셉이 전부 관리했습니다. 감옥 안에 거친 우두머리 죄수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눌러주시고 요셉에게 지혜를 주시니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최고의 노예에서 최고의 죄수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노예로서 노예 총무가 되었고, 최고의 죄수로서 죄수 총무가 되었으니, 이번에도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더 높은 인맥을 쌓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가나안 땅에서 르우벤, 시므온 같은 형들과 어울리며 그 좁은 울타리 안에만 머물렀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고, 가문의 축복이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고, 요셉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는 어떻게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할까요?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겪는 것은 여러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남들이 여러분에게 누명을 씌우면 어떻습니까? 눈을 흘기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흔들며 여러분을 약 올린다 한들, 누명을 씌우면 또 어떻습니까? 요셉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매우 중요한 관점 하나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겪는 일은 여러분이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일에 대해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원망, 쓴 뿌리, 시기, 다툼으로 반응합니까? 그것은 다 패망의 길이지 않습니까?
요셉은 어떻게 복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지난 세월 동안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온종일 영적인 도리를 묵상하고 씨름하며 그 지식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팔려 간 뒤에야 비로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17년 동안 야곱 곁에서 영적인 교훈을 배우면서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졌고, 그의 행동과 사건에 대한 반응은 바로 그 인식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무지하면 멸망합니다! 배우지 않고서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셉이 과거 17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믿음이 마침내 진가를 발휘한 것입니다. 17년간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기에,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은 영원히 통치하신다!’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도 한때 실직하여 막대한 주택 대출금을 짊어진 채 수입이 끊겨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자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 내셨고, 문득 제가 재정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정말로 부요한 마인드가 필요한데, 그 부요한 마인드는 실제로 영적으로 부요해야만 나옵니다. 가난한 생각에 갇힌 사람은 부요한 마인드를 갖기 어렵습니다.
5.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1: 이생의 삶은 헛되다
여러분이 오늘 명확한 가르침을 받았다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이생의 삶은 헛되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이생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길 줄 알게 됩니다. 모든 세상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되, 자신은 결코 위축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서는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왜 세상을 가볍게 여겨야 할까요? 그렇게 내려놓을 때 얻는 유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1~2년 더 살고 덜 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생각합니다. “1억 원짜리 약을 쓰면 1년 더 살 수 있다”고 하면 기꺼이 그 돈을 쓰며 1년을 더 살기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5억 원을 내면 2년 더 살 수 있다”고 해도 기꺼이 씁니다!
우리 성도 중 한 분이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부부가 예전에 뜻밖의 횡재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치료하느라 모든 재산을 탕진했음에도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우리 집을 팔아서라도 내 목숨을 삽시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집을 팔면 나는 어디서 살란 말인가?’라고 생각했고, 결국 부부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집착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1년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결국 똑같은 헛된 삶일 뿐인데 2년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말이 귀에 들어오십니까?
이생은 헛된 것이며, 저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기에 세상의 것들에 큰 흥미가 없습니다. 제가 왜 연연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의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수명을 조금 연장해 보겠다고 의사의 손에 돈을 쥐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여 식물인간 상태로 여러 해를 보냅니다.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연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소망을 온통 이생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생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망이 1~2년 더 사는 데 있지 않고 영원한 나라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이생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자신을 기꺼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도 이생의 헛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그토록 갈망했던 것도 이생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며,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요셉이 이어받은 것이 바로 이 믿음의 체계였습니다. 여러분도 이 믿음의 체계를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대단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의 길을 택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을 택하십시오. 이생의 삶을 너무 무겁게 여기지 마십시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생을 너무 무겁게 쥐고 살아가느라 몹시 피곤해합니다!
6.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2: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아간다
요셉이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깨달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주 보고 겪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살다가 결국 죽습니다. 요셉이 17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았겠습니까? 그러면서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참된 의미를 찾았습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헛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사명 신학’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참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지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이것이 제 사명(命定)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죽을 것이기에 더 이상 세상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무슨 취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취미가 없습니다. 오직 성도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만이 제 기쁨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고, 어떤 사람이 축복을 받으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함께합니까?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시대에는 《창세기》도 없었고 아무런 기록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창세기》가 있으니 더 잘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훨씬 더 잘 찾을 수 있습니다! 어찌 찾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하나님을 찾고 알아가려 하지 않으면서, 늘 자신이 하나님을 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불행과 재앙뿐입니다! 다른 것을 볼 필요도 없이 그 불행한 상태만 보아도 형편없이 빗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진리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까? 만약 귀신이 함께한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종일 귀신을 찾고, 귀신에게 속한 것을 알며, 이생의 것만을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많이 읽으십시오!
7.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3: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여전히 믿는다
사람의 일생은 과연 누가 연출하십니까? 하나님이 연출하십니다. 귀신이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은 누가 연출하십니까? 하나님이 연출하십니다! 귀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이 배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과거부터 하나님을 알고 찾았으며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알았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데, 누가 빠지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빠지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척추에 종양이 생기는데, 누가 걸리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속에서 이미 이러한 영적 법칙을 정해 두셨으니, 그 법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요셉이 길에서 노예로 팔려 갈 때,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여전히 다스리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실직했을 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저 역시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생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위기를 만났을 때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암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지는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비인두암의 모든 증상이 제 몸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의사를 찾아갈 생각이 없었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꿰뚫어 보았고,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죽지 않고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코로나19로 거의 죽을 뻔했을 때도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저의 하나님이 여전히 다스리심을 믿으며, 무슨 일을 만나도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음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온갖 것을 다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세상의 온갖 것은 다 내려놓지 못하면서 하나님만은 쉽게 내려놓으니, 하나님이 어찌 그런 사람과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런 삶은 혼탁하고 어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팔려 가도 괜찮고, 모함을 받아도 괜찮으며, 잊혀져도 괜찮습니다.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기초입니다!
8.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4: 하나님을 경외함
제가 왜 감히 하나님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내려놓았다가는 제 인생이 완전히 끝장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저는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하나님만은 결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좌우명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고, 피를 흘릴 수 있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만은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곧 저의 생명입니다! 나의 주님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내 평생의 호흡과 존재가 온전히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진실로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배짱이 너무 두둑해서 세상 모든 것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세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매우 아름답고 몸매도 빼어났으며, 그 유혹의 눈빛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결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은밀하게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합니까? 사서 고생을 자초하고 스스로 패망을 부르는 짓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어떤 성도는 “목사님, 제 이 물건이 없애야 할 가증한 물건입니까?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제 삶은 매우 단순하여 여행 가방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렇게 많은 짐을 쌓아두고 무엇 하겠습니까?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저는 오직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을 원합니다!
9.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5: 발을 땅에 딛고 성실함
보디발의 집에는 밭일과 집안일,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일 등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큰 가문과 기업을 이루어 적어도 30~50명의 사람들과 문을 지키는 경비병들까지 모두 요셉에게 맡겨졌습니다. 그 어떤 일인들 발을 땅에 딛고 철저히 파악한 뒤에 행하지 않고서야 어찌 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할 줄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배움이 빨랐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웠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훈련받았기에 게으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임하는 것은 사람의 매우 중요한 됨됨이입니다! 틈만 나면 남의 돈을 제 주머니에 넣을 궁리만 하고, 남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은 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는 때로 깊은 탄식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매사에 성실하고 착실할 수 있는가는 실로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떤 이들은 “목사님은 온몸에 에너지가 넘치십니다!”라고 평가합니다. 온몸에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곳곳에 문제가 널려 있는데 힘을 쓰지 않고 어찌 해결하겠습니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충성스럽게, 발을 땅에 딛고 착실하게 실행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남의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의 것을 여러분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게으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은 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습니까? 함께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치 다니엘이 총리가 되어서도 여전히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시간이 조금만 없으면 하나님을 팽개치고 모든 시간을 일에만 쏟아붓습니다. 그것은 성실한 것이 아니라 헛똑똑이 짓을 하는 것입니다!
10.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특징 6: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되기를 갈망함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확신을 가지고 장차 내가 반드시 수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저에게는 이런 갈망이 있었습니다.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해 과분한 꿈이라 여겼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진실로 바랐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저의 섬김이 필요하다면 저는 섬길 것이며, 섬김이 끝나면 서둘러 돌아가 그가 어디를 가든 자유롭게 축복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 교회 안에 계시고 저의 섬김이 필요하다면 더욱 좋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섬기기를 원하지만, 몸이 하나라 한계가 있기에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것을 저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단한 유니콘 기업이 되고 싶지도 않고, 거대하게 세력을 키우고 싶지도 않으며, 그저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저의 생명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며, 제가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세상에 왔고, 이를 위해 죽어야 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1. 결론
만약 어떤 사람이 요셉의 일생을 철저히 연구하고, 제가 말씀드린 이 여섯 가지 특징을 깊이 깨달아 체득한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을 수 없으며, 여러분이 하는 일이 형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야만 형통함이 임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니 그가 범사에 형통하였는데, 99%가 아니라 100% 형통했습니다! 죄수가 되어도 여전히 형통했고, 노예가 되어도 여전히 형통했으며, 총리가 되어도 여전히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심이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오늘날 결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분주하게 살아가다가 자기 일에만 정신이 팔려 하나님의 일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사명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찬양 한 곡을 부르고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헌금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결코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의 헌금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헌금이 필요해서 사시는 줄로 착각하지 마시고, 교회가 여러분의 헌금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축복을 흘려보내는 곳이며, 교회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번에 능력 위주로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자유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돌파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가던 많은 사람들도 자유케 될 것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절대 헌금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헌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주받기를 원치 않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헌금을 드리려거든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십시오. 바른 헌금은 여러분에게 복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유익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바라보기 시작하십시오.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갈망합니다. 요셉을 본받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 주님 앞에 선포하오니, 제가 영적인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하시고,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얽매거나 억누르지 못하게 하옵소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생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가며, 훗날 주님 앞에 서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찾고 주님을 알아가기를 원하오니, 어떠한 처지에 놓일지라도 주님이 다스리심을 여전히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 제가 주님을 경외하오니, 어떠한 시험도 주님을 의지하여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는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일하되, 여전히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함께하심과 하늘로부터 주시는 지혜로 일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사명을 받아 다른 이들의 축복이 되기를 갈망하오니, 저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오니 주여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