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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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西阿书11章-怜爱叛民
  • 1 “以色列年幼的时候,我爱他,就从埃及召出我的儿子来。
  • 2 先知越发招呼他们,他们越发走开,向诸巴力献祭,给雕刻的偶像烧香。
  • 3 我原教导以法莲行走,用膀臂抱着他们,他们却不知道是我医治他们。
  • 4 我用慈绳(慈:原文是人的)爱索牵引他们;我待他们如人放松牛的两腮夹板,把粮食放在他们面前。
  • 5 “他们必不归回埃及地,亚述人却要作他们的王,因他们不肯归向我。
  • 6 刀剑必临到他们的城邑,毁坏门闩,把人吞灭,都因他们随从自己的计谋。
  • 7 我的民偏要背道离开我;众先知虽然招呼他们归向至上的主,却无人尊崇主。
  • 8 “以法莲哪,我怎能舍弃你?以色列啊,我怎能弃绝你?我怎能使你如押玛?怎能使你如洗扁?我回心转意,我的怜爱大大发动。
  • 9 我必不发猛烈的怒气,也不再毁灭以法莲。因我是 神,并非世人,是你们中间的圣者;我必不在怒中临到你们。
  • 10 “耶和华必如狮子吼叫,子民必跟随他。他一吼叫,他们就从西方急速而来。
  • 11 他们必如雀鸟从埃及急速而来,又如鸽子从亚述地来到。我必使他们住自己的房屋。这是耶和华说的。”
  • 12 “以法莲用谎话,以色列家用诡计围绕我;犹大却靠 神掌权,向圣者有忠心(或译:犹大向 神,向诚实的圣者犹疑不定)。”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호세아서》 11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호세아서》 앞의 10장을 다 공부하고 나면 이런 결론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모질고 무서우시다!" 세상일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하나님이 너무 무서워서 사람을 짓밟아 죽이는 것이 마치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60만 이스라엘 군병 중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1만 명을 치시고, 칼로 수만 명을 치셨으며, 이후에 무슨 일만 일어나면 또 수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하나님이 참 모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저 역시 많은 일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위엄 있고 두려운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누는 《호세아서》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결론이 옳지 않다고 여기시며, 본 장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8)

깊이 관찰해 보면 하나님께는 우리의 구함과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풍성한 긍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자신조차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적지 않게 내뱉었습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질고 냉혹한 분이셨다면, 저는 진작에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를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멸망당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훗날 저는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심으로 깊이 회개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형벌의 기간을 20년으로 줄여주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본심은 멸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장이 말씀하는 핵심은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관찰해 보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암흑가의 두목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죄 가운데 살았고 하나님을 저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일깨워 주셨지만, 우리는 마치 귀머거리에게 말하듯 반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영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따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지금은 알았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잊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아들처럼 사랑하십니다

사실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호세아》 11:1)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은혜를 입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을 본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 되셨고,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이 길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은 왜 그 사람들을 치셨을까요? 여기까지 들으니 또 혼란스러우신가요? 사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자마자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끊임없이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셔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설 명절 전에 한 자매님이 며느리의 허리에 종양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그분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사람들이 환자의 치유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영광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질병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집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똑똑히 보면서도 "당신은 당신의 것을 믿고, 나는 나의 것을 믿는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며칠 전 우리 사역자 중 한 분의 아버지가 입을 벌리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참 복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억지를 부리며 기어코 병원에 가겠다고 고집했다면 우리는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고 믿음을 세워 주었습니다. 제가 온갖 기이한 질병들을 다 보아왔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처음 기도를 시작했을 때 그의 턱과 뺨이 부어오르더니, 밤사이에 입에서 많은 고름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곧 풀리고 나아질 징조였습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의 줄과 사랑의 줄로 우리를 이끄시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멀리서 전화를 걸어와 간증을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꽤 거칠고 제멋대로였는데, 제가 방법을 일러주자 그대로 따랐습니다. 동생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거의 은퇴할 나이였습니다. 자매는 제가 말한 대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을 베풀었고, 결국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셨는데, 그 연약한 아들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다리가 퉁퉁 부었습니다. 기도를 받고 다리의 붓기가 가라앉았지만 며칠 후 다시 부어올랐습니다.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외삼촌도 외할머니도 반기지 않는, 참으로 고달프게 사는 그 모난 아들을 마음에 두고 걱정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관계가 회복되자 노인의 마음에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줄과 사랑의 줄은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아들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호세아》 11:3-4)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부르셨지만, 한 사람을 보내면 그들이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을 보내면 또 죽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십니다. 멸망으로 들어가 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래전, 제가 모시던 예전 사장은 설 명절에 다 같이 식사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형제처럼 가까운 친구 두 명과 함께 한밤중 1~2시에 묘지에 가서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귀신이 있느냐? 없지 않느냐!" 그 당시에는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 후 그에게 불행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는데,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해도 되지 않아 투자에 실패하고 투신자살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때 집안의 한 친척이 그를 교회로 인도했고, 이후 주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토록 오만한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영계를 볼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한 반드시 영적인 일들을 겪게 됩니다. 30~40년을 산 사람이 영적인 일을 겪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온종일 일과 생활, 세상의 하찮은 일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제 전 직장 사장이 교회에 나갔을 때, 저 역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도자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후 저도 주님을 믿게 되었고, 나중에 구직을 하다가 그의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뼛속에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무지함이며, 이른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쓸 것을 공급해 주실까요? 하나님은 치유와 공급을 통해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은 사람이 멸망할 때까지 부양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멸망에 이르기까지 부양하시는 어느 한 단계에서,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 하나님은 거칠고 제멋대로이며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마음에 두시고 그들을 먹이십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자기가 벌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 앞에 음식을 두신 것입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부양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고,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스스로 번 것이라 여긴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을 몹시 모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재앙을 겪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친아들처럼 사랑하신다고 해서, 마음대로 분별없이 굴어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제멋대로 군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오만하게 굴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고 귀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십시오. 머지않아 귀신과 하나님이 찾아올 것이며, 당신은 반드시 재앙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때때로 생각과 마음이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징계하시는데,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어찌 징계를 받지 않겠습니까?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호세아》 11:2)

바알들에게 제사하고 조각한 우상에게 분향하는 행위는 반드시 고난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호세아》 11:5)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당신을 징계할 것인데, 그 사람은 꽤 사나울 것입니다. 간신히 직장을 구했더니 몹시 사나운 상사를 만나 참고 일할 수밖에 없고, 고통을 당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본 것들만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돈만 조금 생기면 길도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교만해집니다.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호세아》 11:6)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이러한 재앙을 겪게 되며 그 결말은 매우 비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이 멸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멸망당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멸망당하거나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들이 적지 않습니다. 총을 든 자가 집에 난입하여 총알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마침 그 사람들이 맞아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현장에서 차에 치여 사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모두 과정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에게 수없이 경고하시고 부르셨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완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평소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 자주 올라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동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잘 알고 천천히 관찰해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재앙을 겪는 것은 하루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쌓여온 결과임을 알게 됩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목적은 멸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 지경이 되어서도 의사를 의지하든지 과학을 의지합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과학이 고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고, 과학이 고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해괴한 일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8)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아십니까? 롯의 시대에 소돔 왕, 고모라 왕, 스보임 왕, 아드마 왕은 연합한 네 왕이었는데, 그돌라오멜을 필두로 한 다섯 왕에게 패배했습니다. 패배한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드마와 스보임 이 두 도시는 큰 재앙을 겪었을 것입니다. 훗날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 롯과 소돔 왕,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부하들을 모두 구출해 왔습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도륙을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라고 말씀하신 뜻은, 성읍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그분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듭 징계하시는 것은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전히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갖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 말을 제가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소변도 못 보고 대변도 못 보며,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고 숨조차 쉴 수 없는 그날이 오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며 다리로 걸을 수 없게 되면, 몸의 어느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다시는 잘난 체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깊이 묵상해 보면 하나님은 사실 우리를 그분 앞으로 인도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의 이생의 삶은 헛될 뿐이며, 종일 자기 힘으로 애써봤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왜 재앙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칠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기 때문이며, 결국 마귀의 영적 세력들이 내려와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러한 악한 영적 세력들은 사람을 몹시 괴롭히며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사람이 멸망할 때까지 거듭거듭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세아》 11:7)

제 마음속에는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죽기 전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기회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이 되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속된 말로 끝장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지만, 관찰해 보면 언제나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간절히 부르시건만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전하게 하셔도 사람은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살아있을 때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사람에게 태어날 때와 죽을 때가 정해져 있다지만, 나쁜 짓을 저지르면 수명이 단축되어 죽을 날을 스스로 앞당기게 됩니다.

당나라 때 나성(羅成)이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는데, 십 대 시절부터 전장을 누비며 무예가 출중했습니다. 당 태종의 수하에는 서무공(徐茂公)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사주관상이 뛰어났습니다. 서무공이 나성의 수명을 73세까지 살 수 있다고 점쳤으나, 나성은 몹쓸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몹쓸 짓을 하나 할 때마다 수명이 10년씩 줄어들어 결국 23세로 줄어들었고, 결국 화살 세례를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나성의 점괘'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성이 점쟁이에게 서무공은 자신이 73세까지 산다고 했다며 따졌습니다.

그 점쟁이는 무엇을 근거로 나성이 23세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을까요? 점쟁이는 나성에게 "네가 몹쓸 짓을 할 때마다 10년씩 수명이 깎였고, 총 다섯 번을 저질러 23세로 줄어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성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몹시 상해 점괘 가판대를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점쟁이 노인이 일어서더니 신선으로 변했는데, 바로 서무공의 스승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사람에게 태어날 때와 죽을 때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아직 죽기 전에, 하나님이 아직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을 때 속히 깨어나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을 버리지 마십시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11:9)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께서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리니 자손들이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이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세아》 11:10-11)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신다는 말씀을 보셨습니까? 사람이 자기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하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코 그런 불행한 삶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돌이키기를 바라지 않으셨다면 진작에 우리를 멸하셨을 것이며, 사람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호세아》 11:12)

하나님은 여러분이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돌이키려 하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따라 계속 달려간다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망나니같이 굴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참으로 좋은지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은 의식주 등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신데 왜 병원만 의지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결국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익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알게 하십니다. 이생에서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생에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눈앞의 일만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골함 너머의 일을 볼 수 있다면, 앞선 모든 문제들은 해결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쓰는 것이든 일이든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곧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내뱉으며,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고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부으며 일이 자신의 신인 양 착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사람이 육정, 자녀, 생활, 그리고 이생의 얽매임 때문에 먼저 하나님을 버립니다. 어떤 부부가 이전에는 참 좋았고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얼마 전 임신을 한 후에는 태아를 지키는 데만 온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태아를 지킬 수 있습니까? 결국 온갖 애를 썼지만 지키지 못하고 유산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힘으로 태아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아이를 지키겠다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머리가 나쁜 것이며 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때는 괜찮다가도 은혜를 조금 받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며 참으로 무지한 처사입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저를 찾아와 속히 기도해 달라고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 손에 달린 것이 아니며, 아이를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도 당신 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아이를 낳은 후에 그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지 말지도 당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헛되이 애를 쓰며,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진노를 쌓아 올리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데, 그 과정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여러분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지, 세상을 더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은 여러분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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