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如果我们不知道对方是不是神厌恶的人,在传福音的时候是不是要很小心?
这话讲得就奇怪了,当我们传福音的时候走到人的家里,如果人家接纳你,那你就进去,祝福他们,如果不接纳你,就跺跺脚上的尘土离开人家走开。我们需要拉人入教吗?我们根本就不需要拉人入教。
有人叽里呱啦说一大堆,好像我们很需要他信主一样,这是一个很坏的习惯,其实也很讨人嫌,也很不尊贵。人家不要听,就算了,但是如果是你自己的家人,那就另当别论,因为那是你所负责的管辖范围之内。
如果你要想成为你家族的祝福,成为你家族的拯救,那你需要学会在你的家里面,树立好你在家族里面的地位和形象。
如果你在家族里活成一个屌丝样,每个人都得给你钱,帮助你,穷的叮当烂响,我看你那福音也就算了,你自己都活不出神荣耀的形象,你传的是个啥福音,所以这就是要命的事,我们对这个事的了解要再仔细揣摩。
Q2:怎么平衡好工作,家庭和服侍?
现在比较流行的叫做家庭和工作要平衡,服侍跟家庭生活要平衡,大家应该很熟悉。那你平衡的结果咋样?结果你会发现,《圣经》里从来没讲这个事。
《圣经》里从没有讲平衡,讲的是要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圣经》从来没有说,你不要那么尽心爱神了,你还要照顾家庭呢!你还要照顾工作呢!是不是?没有这话。
所以我所传的,不是在工作,家庭和服侍中如何处理的平衡,我也不知道如何处理。但是至于我,我觉得如果神要帮助我们,工作能不兴盛吗?神若帮助我们,喜悦我们,家庭能不蒙福吗?因为我们的神是让我们在地上活出兴盛的神。
但是在家庭里,其实仇敌就是我们的家人,为什么仇敌是自己的家人呢?因为你一平衡,就把神给平衡出去了,你一平衡,就没有办法尽心尽力爱主你的神了。能理解吗?平衡不能解决问题。
我见到很多想要平衡家庭和服侍的,都受了咒诅,如果你愿意试,也可以试一下平衡。
Q3:三十一个王,为什么要一个个列出他们的名字呢?反正都要被灭的,谁还在乎他们叫什么名字呢?
这名字是很属灵的,这些名字是要让我们知道,这些人是受咒诅的,那将来如果有一天,你问一个邪灵,它叫什么名,它说:我叫西宏。你就会知道这是个啥。
也就是说,这个人的名字啊,跟鬼其实是常常连在一起的,有一些鬼住在这个人的里面,这些鬼就会把这些人的名字当做鬼的名字。
所以弟兄姐妹开始要知道,《圣经》记载了很多被灭的人,包括该隐,都是有名有姓的。犹大出卖耶稣,可以不记吗?但是神就把他们的名字记在这里头,让他们在属灵的世界里一直被记着。
那这些名字最后都会在永恒里面,随着这些神的仇敌,下到地狱里面,所以神按我们的名召我们,也按他们的名咒诅他们。
Q4:《提摩太前书》第2章,讲到有关代祷的教导,我有些不明白,什么是代祷?
我劝你第一要为万人恳求、祷告、代求、祝谢。为君王和一切在位的也该如此.使我们可以敬虔端正、平安无事的度日。(《提摩太前书2:1-2》)
这句话其实很明白,平安,端正,敬虔是这就是我们为人祷告,代求祝谢的目的,明白了吗?我们祷告的目的是使我们可以正常的建造神荣耀的教会,这在我们救主面前可以蒙悦纳,他愿万人得救,明白真理。
其实我们今天也是希望万人都得救,但是耶稣是怎么教的?你站在这给人传福音,愿人得救,那是你的愿望啊!那你走到那儿,人家不接受你,你非得赖在那啊?不是这样。
其实他愿万人都得救,那他为什么要杀掉这些王呢?你能理解吗?不管是新约的神,还是旧约的神,都是一位神,那为什么会是这样呢?
那新约《圣经》怎么说呢?这人如果不爱神,他就可咒可诅。如果这人传福音不是保罗所传的,那他就应当受咒诅,那你怎么理解啊?那不是神愿万人都得救吗?但是回转向他的有几个呀?真正谨守遵行神的话的有几个呢?
神舍弃自己做万人的赎价,那有人领受这赎价了吗?很少人领受了,所以我想,我们不要把自己弄得很混乱,以为神愿万人都得救,然后就好像赖在人家身上似的,好像要绑架人似的,那不是成了邪教了吗?
所以咱们弟兄姐妹,开始从这种迷思里头走出来。弟兄姐妹你知道吗?有一些人真的很可恶的,几年前我服侍过一个人,他是一个生意人,他的工厂要破产了,我服侍他,当时他老婆还瘫痪在床上九个月,我带他祷告,第二天他老婆可以站起来,可以下地行走,还可以爬山。
然后他的生意也好起来了,也不用卖掉工厂了,然后你一让他奉献,人家丢下那500块钱,我恨不得把那500块钱还给他。然后他离开了教会,最近他又在找我们当中的一个弟兄,他的好朋友,为他祷告,服侍他。
我问你,这样的人是什么人呢?这样的人你觉得神会恩待他吗?我告诉你,神会咒诅他,因为咒诅和祝福都是从神而来的。
Q5:请问家人不好好信主,能算是神的仇敌吗?
算!那他如果是在抵挡神的过程当中,要小心,那是被鬼迷惑,然后顺从魔鬼的谎言抵挡神,那凡是抵挡神的人,如果再刚硬下去,就像是列举的这三十一个王。
《圣经》怎么说呢?
除了基遍的希未人之外,没有一城与以色列人讲和的,都是以色列人争战夺来的。因为耶和华的意思是要使他们心里刚硬,来与以色列人争战,好叫他们尽被杀灭,不蒙怜悯,正如耶和华所吩咐摩西的。(《约书亚记》11:19-20)
人顽梗悖逆其实是很可恶的,抵挡神非常可恶,如果你在家里能够刚强壮胆,也许神会因着你的缘故怜悯他们。
Q6:因为耶稣受洗了,所以受洗是不是慕道友成为基督徒的必要程序?
我们很在乎这个,耶稣的确是受洗了,如果一个人信耶稣,那他就一定会效仿耶稣受洗,但是受洗不受洗这件事,不能成为我们一生的追求。
我们一生的追求只是从一个受洗开始,然后我们要有一个这样的过程,这样的过程其实就是一个效仿的过程,但是我觉得基督徒不要停留在这个阶段,要竭力进到完全。
Q7:如果行在主的旨意中,就可以不管属世的道德体系的要求吗?
我问你属世的道德体系是神的话吗?不是。那既然属世界的道德体系不是神的话,我们需要谨守遵行属世界的道德体系吗?我们需要的是谨守遵行的,是神的旨意!
我想这句话解释起来有点深,什么叫谨守遵行神的旨意?然后什么叫属世界的道德体系?我可能一下两下也不是解释的那么清楚。
那我给大家稍微说一下,你知道现在的基督教会出现一些非常怪的活动,就是拼命的签各种请愿书,传来传去,我经常收到。还有反对同性恋合法化,反正我是不签这玩意儿。
那有人就问,你是基督徒,为什么你不签呢?人家要同性恋,关你啥事啊?这些基督徒有啥习惯呢?因为这些人同性恋,所以污秽了那块土地,所以就影响了他们的生活,然后他们就得反对,这是他们的政治权利,你觉得奇怪不奇怪?
《圣经》里面从来没让我们反对同性恋,听的懂吗?那亚伯拉罕如果反对的话,应该到所多玛那个地方去抗议,应该拉个旗子,带着三百一十八个精壮的家丁,还有印好的横幅,上面写着:反对同性恋!但是没有,亚伯拉罕不干这事儿。
使徒保罗那个时代,同性恋盛行,使徒保罗他也不管这事儿,那我们该管啥呢?很多基督徒不在乎建立得胜荣耀的教会,不在乎把人从辖制中释放出来,却在乎很多这些东西。
我不知道他们的《圣经》根据在哪里,我不知道,但也许他们知道,这就是道德体系。那基督徒是要追求神的旨意,还用追求属世的道德体系吗?
如果神的旨意刚好和属世界的道德体系很像,那我们自然而然就守了,如果属世的道德体系和神的旨意不重叠,也没有相关的地方,那么我们还是要谨守遵行神的旨意。
Q8:读《圣经》读不明白怎么办?
这不我们天天带着大家查经么?查经你还是听不明白怎么办?读经也读不明白,我猜就是被邪灵辖制了,脑袋里面听了以后乱套,这是我们需要释放。
我经常看到一些不能读《圣经》的人,一读就混乱,我想这是一种属灵的辖制,邪灵住在人的里面,然后人就会表现出这种症状。
那另外一种呢,他不是属灵的辖制,他可能还是读不明白,其实书读百遍,其义自见,就是昼夜思想神的话,很简单!
Q9:如何在地上活出得胜?老师可不可以举例说明?
那这例子可多了,活出得胜的例子,《圣经》里讲了很多,就像使徒保罗,他怎么活你就怎么活,耶稣基督怎么活,你就怎么活,他们怎么想,咱们就怎么想,他们怎么做,咱们就怎么做,这就叫活出得胜。
那《旧约》里就更多了,在耶路撒冷做王的大卫,大卫王是合神心意的,这叫活出得胜,如果你还想举例说明的话,多了去了,亚伯拉罕,以撒,雅各,约瑟,这都是。
如果你说还是不清楚,没关系,你把《创世记》听一遍就清楚了,那其实例子还有很多,我们整天讲《圣经》,都在讲我们如何活出得胜。
Q10:《彼得后书》里说,信心还要加上德行,该怎么理解呢?
参考经文:
正因这缘故,你们要分外地殷勤;有了信心,又要加上德行;有了德行,又要加上知识;有了知识,又要加上节制;有了节制,又要加上忍耐;有了忍耐,又要加上虔敬;有了虔敬,又要加上爱弟兄的心;有了爱弟兄的心,又要加上爱众人的心。你们若充充足足地有这几样,就必使你们在认识我们的主耶稣基督上不至于闲懒不结果子了。(《彼得后书》 1:5-8 )
德行这事儿,给大家制造了些困扰,我们以为这德行就是中西美德,那其实德行是啥呢?
《圣经》里面有一段话,说有一个寡妇,还有一个不义的官,这个寡妇天天来烦这个不义的官,要让他为她伸冤,这个不义的官就说给她伸冤吧,然后就伸冤了。
耶稣讲完了这个,接着说:人子来的时候,遇得见世上有信德吗?大家听得懂吗?我们以为这个德行就是一个道德的标准,其实不是。
那什么叫做德行呢?他是人的一种性格,我不一定说的那么精准,信德是啥呢?就是那寡妇就相信那不义的官会给她伸冤,这种坚持不懈的性格,就叫做信德。
也就是说,在信心之上建立一个德行是啥呢?就是持续不断的相信!你以为是道德么?也许你读的是对的,也许我读的是错的,但是我就这么认为,因为耶稣讲的信德,就是这个意思!
你看这个人做了一件好事,他叫有德行吗?不是!他要一辈子做好事,那叫德行!听明白了吗?也就是说持续不断的信心,那就是耶稣所要的德行。
Q11:如果一个生意可能稍微违背一点属世的道德标准,如果客户是被咒诅的,是否可以做?
如果判断对方是受咒诅的,其实做生意啊,就是做这些受咒诅的人的生意,他们的钱你给赚来不是挺好吗?所以客户是被咒诅的,有问题吗?啥问题也没有!我管你是受咒诅还是不受咒诅,来了咱就做嘛!是不是?
很多人以为客户被咒诅,然后我们就不能做,一做我们也被咒诅,哪有这回事?亚伯拉罕经常跟当地受咒诅的人做交易,包括买东西吃。
外边的饭店那么多,需要的时候就买着吃呗,反正我也不在乎那店里的老板是拜啥的。要是很在乎,那要怎么活啊?我只在乎一件事,就是建立神得胜荣耀的教会。
如果做一个生意,可能稍微违背一点属世的道德标准,你比如说开个妓院,那我看就算了,那其实不是一个属世界的道德标准,那就是个受咒诅的东西,没必要做那事儿。
那什么叫违背一个属世的道德标准呢?你比如说介绍小三,这是做啥?我想这不是神的心意,不是神的心意那就算了。这个属世的道德标准不重要,重要的是神的话,听明白了吗?
如果说是违背神的话,那就很麻烦,所以说一个生意,如果稍微违背一点属世界的道德标准,这很难说能不能做。但是我觉得,如果是违背了神的话,那我觉得咱就算了吧,不违背神的话,就挺好。
Q12:《利未记》里,在祭上烧柴,柴是代表什么?
这是干啥呢?这是很多人读《圣经》的方式,《利未记》里在祭上烧柴,柴是代表什么?这事我基本上不研究,你什么时候发现我研究这东西了?
我研究这个东西干啥呢?柴代表这个那个,那你要不要每天早上在台上烧柴呢?我也不知道你在干啥。但是咱们弟兄姐妹,要从这种很宗教的味道里面走出来,当然你不想走出来,我也不拦着你。
很多人就是很在乎这些,但是能不能渴望知道一下神的心意如何啊?你要是照着我读《圣经》的方法读书,你肯定会学习好,但是如果照着坛上的柴是个啥,这么读书的话,学习应该也是挺烂的,你好不了哪里去。
经常只见树木不见森林,这不要命吗?所以弟兄姐妹,咱们开始重新思考一下,我们是不是有这种坏习惯,如果你有这种读《圣经》的坏习惯,那我相信你也走不远,如果你问我怎么办的话,就是抓主题!
Q13:与拜偶像的家族居住在一起,要注意什么?
不用注意啥,注意谨守遵行神的话,注意使用神的大能,开始活出那种得胜的样子。
Q14:《彼得前书》3:19,主的灵传道给监狱里的灵听,是死人也有机会听福音吗?
这事儿我跟大家说一下我的看法,这个彼得是一个很有意思的人,什么地方很有意思呢?是雅各那个地方的人一来,他就很容易装假,然后使徒保罗就批评他,这就是彼得。
其实我有一个习惯,就是读《圣经》读到整个信仰体系里,那整个的信仰体系是啥呢?就是从《创世记》到《启示录》,形成一个完整的体系。
后来我发现,耶稣基督的体系和这个使徒保罗的体系绝对重叠,那我还发现啥呢?也许是我没有读懂,我们要谦卑一点儿。我发现彼得说的这玩意儿,你说有没有对的成分呢?有对的成分。
但是你要问有没有读不懂的呢?有啊。就好像这个《彼得前书》3:19,是不是指死人也有机会听福音,咱不知道啊!咱也没去过那个地方啊,不知道咱就说不知道。
那你说彼得为什么要说这玩意儿,其实使徒保罗也没讲,耶稣也没讲过这东西,那彼得讲这个东西,我也不太清楚这是个啥,好像也不太重要。
我后来逐渐发现,《圣经》里有些东西是很有意思的,你比如说《犹大书》,天使长米迦勒为摩西的尸首与魔鬼争辩,我也不懂他在干啥,这玩意跟我有啥关系?
我觉得使徒约翰和使徒保罗的东西会形成一个体系,那我只能说《犹大书》,《雅各书》我没读懂,但是我觉得把耶稣的读懂了,把使徒保罗的东西读懂了就挺好,咱有的是可以读懂的。
Q14:如果那家店里放了很多偶像,这店主很迷信,那这家店东西买来能吃吗?
能吃,因为食物不过是进到肚子里,后来又掉到茅厕里。人很在乎吃啥,喝啥,本身就是个毛病。所以使徒保罗讲,吃啥喝啥那玩意不重要。
所以咱们弟兄姐妹,能不能把这些乱七八糟的事儿慢慢清掉,专心效法约书亚,有一颗专心的心志,尽心尽力尽意爱主你的神!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기
우리가 이 《여호수아》 12장을 읽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온갖 혼란이 가득합니다. 곧바로 내리는 결론은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시는구나! 하나님, 어떻게 사람을 죽이실 수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이고, 너무 피비린내가 난다! 여호수아와 모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구나! 앞에서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건 성을 도륙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증국번이 태평천국을 물리친 뒤 성을 도륙했습니다. 나중에 일본 놈들이 중국에 와서도 성을 도륙했습니다. 아이고, 그런 곳은 저주받은 곳 아닙니까? 그 땅이 모두 도륙당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 살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저주받은 곳 아닙니까?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 혼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고 헛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왜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이십니까? 이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닙니까? 이미 헛되고 헛된 것이라면, 왜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고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합니까? 하나님!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우리 안에 혼란이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열심히 설명합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미움의 하나님입니까? 이것은 분명히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의 주제를 “땅에서 승리를 살아 내라!”라고 정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해 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한다고 합시다. 세상에 있는 돈도 이것뿐이고, 고객도 이 사람들뿐입니다. 어떤 고객이 여러분의 가게에서 소비하면 다른 가게에서는 소비하지 않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큰돈을 벌었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 돈을 벌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아이고, 괜찮습니다. 다른 가게에 가서 사세요!”라고 말해야 합니까? 그러면 사업을 망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번성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이다
우리 중국인 명정신학의 체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 이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낸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우리가 관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고 돈을 벌면, 경쟁자들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재산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번 돈을 모두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까?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제가 조금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러한 속성이 있습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시고,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것마저 빼앗아 가진 사람에게 주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얻으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아 그에게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들어가 이 땅을 차지한 것도 바로 그런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땅에는 모두 누군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살든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와서 살든지 해야 했습니다.
그곳에는 그 사람들이 살든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에서 살든지, 아니면 여호수아가 그 땅의 왕을 멸하거나 쫓아내고 그곳을 차지하든지 해야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호수아가 들어가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이란 말입니까? 그 땅의 사람들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면 간단합니다. 알고 보니 그 땅의 사람들은 악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까?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자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셨고, 그들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논리를 하나님께 뒤집어씌워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논리를 우리 안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약속의 땅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땅에서 승리를 살아 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를 살아 내면 반드시 패배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패배한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모든 것을 공허하게 여기는 신앙으로 만들어 버리지 마십시오.
여자 같은 인자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데, 왜 또 땅을 빼앗아야 합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관한 모든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영적인 일은 모두 복과 저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의 왕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아주 깊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깊은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한 일은 모두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사람을 해치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지나쳤고, 악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작은 임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모세를 통해 그 땅을 빼앗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한 가지가 시험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자 같은 인자함을 가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인자함을 가진다면 좋은 사람일 수는 있습니다.
“아이고,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헛되고 헛된데,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으니 됐습니다. 그들을 한 번 봐주고 살려 둡시다.” 이런 여자 같은 인자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말하겠지요. 우리의 하나님은 산타클로스처럼 이렇게 말씀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지 않고, 나도 그를 사랑하며 그를 축복하고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 이런 말은 듣기에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어떤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원수를 사랑하려 한다면 한번 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원수와 함께 멸망받을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죄 있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하나님께서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집안에 하나님을 미워하는 상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갚으실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며,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직 하나님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한 번은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사람이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찾아왔습니다. 그는 늘 관광객들을 보석을 사는 가게로 데려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비만 해도 수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비행기표는 배추값처럼 아주 쌌고, 교통비와 호텔, 숙박비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 여행사는 손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 관광객들을 어떤 장소로 데려가 소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그 자매는 저에게 와서 섬김을 받았습니다. 1위안에 사 온 돌을 무려 100위안에 팔고 있었습니다. 이익이 백 배였습니다. 10위안에 사 온 돌은 1,000위안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조심하라며 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무슨 생각인가? 당신의 급여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런 것을 두고 “양털은 양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해력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뜻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때때로 선량함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아주 흐리멍덩할 정도로 선량해집니다. 비행기표와 호텔 비용이 모두 수입으로 감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 남에게 주고 여행사를 열어 모두 무료로 여행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사업입니까? 사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늘 이런 식으로 흐리멍덩하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사람이 이런 정도로 흐려진다면 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을 예로 들었지만 아주 적절한 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의를 지나치게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원수를 불쌍히 여기지 말라
우리 하나님은 사실 산타클로스가 아니십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은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의를 지나치게 행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것을 그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 빼앗지 않으시면 안 됩니까?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안 됩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여러분이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지구를 하나 더 만들어 여호수아에게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많은 왕과 백성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셔야 합니까?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마십시오. 의를 지나치게 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야 하며, 그 안에는 승리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일어나 하나님의 큰 능력을 가진 용사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성을 공격하고 땅을 차지하며,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와 원수를 철저히 짓밟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어떻게 죽든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든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죽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의를 지나치게 앞세우지 말고, 이런 좋은 사람의 태도를 철저히 버리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멸하려 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남겨 두려 한다면 한번 해 보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아주 깊은 저주를 받았는데도 계속 저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랑이 넘쳐서 그들을 온갖 말로 설득하여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면 또 한 영혼을 구원하려 합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씩 교회로 끌어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며, “너희가 한 사람을 교회로 데려다가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들리실 때 모든 사람을 그분께로 이끄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쓰레기를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마치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을 구원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습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습관은 오직 이것입니다. 그가 와서 도움을 구한다면 우리는 그를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마귀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훈련하신 열두 제자가 나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고 사로잡힌 자를 해방시켰습니다. 70명을 훈련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헛되고 헛됨은 세상의 수고와 고생을 가리킨다
어떤 교회들은 정말 큰일입니다. 형제자매 몇 명이 떠나면 세 명, 두 명씩 몰려가 그 사람을 찾습니다. 마치 사람을 묶어서 다시 데려오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사이비 종교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지옥의 자식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31명의 왕, 바산 왕 옥, 헤스본 왕 시혼,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게셀 왕을 모두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몇 가지 혼란을 해결했습니까? 첫째, 우리가 《전도서》를 읽을 때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여전히 성을 공격하고 땅을 차지해야 합니까? 사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은 사람이 애써 수고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이 땅에서 번성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사업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동역자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같은 사람이 제 동역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스님이 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혼란입니다.
두 번째 혼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되, 우리의 도덕관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해결하려는 혼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서 빼앗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다시 그에게 돌려준다면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아 가진 사람,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사업을 한다고 해서 돈을 아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돈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해서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을 얻었다고 해서 땅의 일을 사랑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중국인 명정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라는 말은 조금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어떤 서류에 서명해서 복음 차량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합시다. 그 차량에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라는 문구를 붙이기만 하면 그 차를 여러분이 몰고 가도 되고, 그 차를 여러분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속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란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죽은 뒤 천국에 가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처음 우리를 지으실 때의 본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이 땅에서 승리를 살아 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을 하다가 너무 고생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계속 사업을 하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왜 합니까? 그것은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 안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이런 모습이 됩니다. 무엇을 하든 매우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땅에서 싸워 승리하고 성을 공격하며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과 땅은 사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를 살아 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먼저 우리 안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번성하는 삶을 살아 내고, 무엇을 하든 번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게 “무엇을 하든 번성하고, 무엇을 하든 누리는 것”이라는 한 가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는 것이 느슨하고 흐트러져 있어서, 일이 바빠지면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 둡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예배에 참석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강요하지 않는 것은 강요하지 않는 것이지만,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이 땅에서 반드시 승리를 살아 냅니다. 주님을 믿은 지 거의 30년이 되었는데,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1년에 주일이 52번 있다면 10년에는 520번이고, 30년에는 1,560번입니다. 이것은 약 4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거의 30년 동안 저는 거의 4년의 시간을 주일예배에 드렸습니다.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마음과 결심이 있습니까? 왜 제게 이런 결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섬기면서 너무 지칩니다. 좋게 말하지 않으면 완전히 지쳐서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저는 그런 표현이 그들에게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또 암에 걸리고 뇌수종에 걸립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한 번은 제가 뇌수종에 걸린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뇌수종에 걸렸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힘들게 합니까? 저는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어떻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일주일에 7일을, 거의 30년 동안, 사실상 하루도 쉬지 않고 보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뇌수종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누리는 일입니다. 저는 원하고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작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고된 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는 일을 고된 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업은 재미없다고 말하면서, 막상 예배 시간만 되면 일이 바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를 살아 내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겠습니까? 본래 사역을 잘하고 있다가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하면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다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내겠습니까? 사람이 살기 위해 그런 자격증이 필요합니까? 사람은 영적인 일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라
그러므로 저는 자주 별로 발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바빠지기만 하면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진 것마저 빼앗아 가진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 대까지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살아가는 것이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는 것이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즐겁고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사람은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아직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여호수아가 될 것인지, 예루살렘 왕, 히위 왕, 라기스 왕, 바산 왕 옥, 헤스본 왕 시혼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멸망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이 산타클로스라서 여러분을 용납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약속을 얻게 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했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얻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영적인 일에서 패배했고, 결국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져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지 못합니까?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면 좋지 않습니까? 아직 꿰뚫어 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예언 하나를 하겠습니다. 힘껏 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반드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 번성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당연히 그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하는 복음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나와 함께 주님을 믿읍시다!”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왜 그 사람과 함께 주님을 믿어야 합니까? “나와 함께 주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다가 영생을 얻습니다.”라고 합니다. 듣기에 매우 이상합니다. 그러나 제가 전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하나님의 번성과 약속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없는 사람에게서 빼앗아 가진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곧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 번성하고 싶습니까? 무엇을 하든 번성하고 싶다면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광야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많습니다. 60만 명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까?
교회에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무엇을 섬기겠습니까? 이제 그만두십시오. 제가 찬물을 조금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제가 그것을 필요로 합니까? 저도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들을 이끌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저주를 받은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몇 주 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기꺼이 돕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제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헌금하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십니까? 교회가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가 정말 여러분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합니까? 교회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말을 좀 세고 직설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내쫓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초기에 교회를 세울 때를 아십니까? 어느 날 저는 완전히 회개했습니다. 당시 교회를 세울 때 많은 사람이 와서 도와주었고, 모두 저를 매우 불쌍히 여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많은 사람이 와서 도와준다고 교회가 제대로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후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오직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저와 함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마치 제가 도움이 매우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 도움을 주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저에게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겠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큰 모욕이 됩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생각은 여러분을 저주 가운데 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치유와 해방을 받았다면, 그 후에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십시오. 저는 절대로 누구에게 도덕적 부담을 지우지 않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뿐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 자신을 온전히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저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양을 치기도 하고 사업을 하기도 하며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의 단순한 취미라면 그만두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잘하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이 조금 세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가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면 여러분 안에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결심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명령하시든 그대로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제가 사업을 잘해서 돈을 벌면 많이 헌금하고, 당신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돕겠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됐습니다.” 교회는 복을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교회에는 사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관념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빨리 제 돈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돈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보세요. 우리 지역 교회의 전도자들은 너무 가난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을 해서 그들을 도우려고 했는데, 수백만을 투자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본래 그들을 도우려고 했으니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제 돈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세상에! 전도자들을 돕지도 못하고 결국 구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가난한 전도자들이 남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가난한 전도자들이 전하는 것이 말씀입니까, 아니면 무엇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한마디 하겠습니다. 모든 경우가 100퍼센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비율은 꽤 높습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사람들이 제 약점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전도자는 반드시 말씀을 잘못 전한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은 이 땅에서 번성하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저의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말은 매우 심각한 말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런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부유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부유한 사람과 죄인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가난과 부유함으로 어떤 사람이 영적인지 아닌지, 돈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울며 통곡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고난이 닥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장사하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장막을 세우고 돈을 벌며 자기 손으로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기도하고 말씀만 전한다면 그것이 전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실 사람들 안에는 혼란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쓰레기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싸워 승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라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싸워 승리하고 마귀와 원수를 철저히 공격하며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잘못된 신앙 체계가 많이 있다면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쨌든 제가 있는 곳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승리와 번성을 살아 내게 하십니다.
한 자매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그 자매의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매일 게임만 했습니다. 나중에 억지로 형편없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에서도 여전히 매일 게임만 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졸업했지만 아무런 자격증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격증 시험을 보았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결국 그 아이는 마트에서 상자를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여러분이 전도자라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아이고, 사람이 사는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니 애쓰지 말고 상자나 계속 나르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믿는 복음은 이 아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 안에 지으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과거의 세상에 속한 체계가 여전히 이 아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체계는 이 아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어머니 안에도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졸업한 뒤 마트에서 상자를 나르고 있습니다. 성공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사람들 안에 세상에 속한 체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맹목적으로 믿고, 종교적인 냄새만 가득한 신앙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 안에는 혼란스러운 것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오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한 뜻은 사람답게, 사람이 가져야 할 본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다고 여기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하찮게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절대로 잘못된 생각 속에서 살아가지 마십시오.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가 성을 공격하고 땅을 차지하면서도 그것을 헛되고 헛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여호수아가 붙든 복음은 이 땅에서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살아 냈습니까? 살아 냈습니다! 승리하는 상태를 살아 내고, 원수를 짓밟으며, 약속의 땅을 얻고,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를 보았으며,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잘못된 생각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