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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8장 - 원수는 이겼으나, 자신은 이기지 못하였도다

2024-12-18 3,711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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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08章-击败米甸人
  • 1 以法莲人对基甸说:“你去与米甸人争战,没有招我们同去,为什么这样待我们呢?”他们就与基甸大大地争吵。
  • 2 基甸对他们说:“我所行的岂能比你们所行的呢?以法莲拾取剩下的葡萄不强过亚比以谢所摘的葡萄吗?
  • 3  神已将米甸人的两个首领俄立和西伊伯交在你们手中;我所行的岂能比你们所行的呢?”基甸说了这话,以法莲人的怒气就消了。
  • 4 基甸和跟随他的三百人到约旦河过渡,虽然疲乏,还是追赶。
  • 5 基甸对疏割人说:“求你们拿饼来给跟随我的人吃,因为他们疲乏了;我们追赶米甸人的两个王西巴和撒慕拿。”
  • 6 疏割人的首领回答说:“西巴和撒慕拿已经在你手里,你使我们将饼给你的军兵吗?”
  • 7 基甸说:“耶和华将西巴和撒慕拿交在我手之后,我就用野地的荆条和枳棘打伤你们。”
  • 8 基甸从那里上到毗努伊勒,对那里的人也是这样说;毗努伊勒人也与疏割人回答他的话一样。
  • 9 他向毗努伊勒人说:“我平平安安回来的时候,我必拆毁这楼。”
  • 10 那时西巴和撒慕拿,并跟随他们的军队都在加各,约有一万五千人,就是东方人全军所剩下的;已经被杀约有十二万拿刀的。
  • 11 基甸就由挪巴和约比哈东边,从住帐棚人的路上去,杀败了米甸人的军兵,因为他们坦然无惧。
  • 12 西巴和撒慕拿逃跑;基甸追赶他们,捉住米甸的二王西巴和撒慕拿,惊散全军。
  • 13 约阿施的儿子基甸由希列斯坡从阵上回来,
  • 14 捉住疏割的一个少年人,问他:“疏割的首领长老是谁?”他就将首领长老七十七个人的名字写出来。
  • 15 基甸到了疏割,对那里的人说:“你们从前讥诮我说:‘西巴和撒慕拿已经在你手里,你使我们将饼给跟随你的疲乏人吗?’现在西巴和撒慕拿在这里。”
  • 16 于是捉住那城内的长老,用野地的荆条和枳棘责打(原文是指教)疏割人;
  • 17 又拆了毗努伊勒的楼,杀了那城里的人。
  • 18 基甸问西巴和撒慕拿说:“你们在他泊山所杀的人是什么样式?”回答说:“他们好像你,各人都有王子的样式。”
  • 19 基甸说:“他们是我同母的弟兄,我指着永生的耶和华起誓,你们从前若存留他们的性命,我如今就不杀你们了。”
  • 20 于是对他的长子益帖说:“你起来杀他们。”但益帖因为是童子,害怕,不敢拔刀。
  • 21 西巴和撒慕拿说:“你自己起来杀我们吧!因为人如何,力量也是如何。”基甸就起来,杀了西巴和撒慕拿,夺获他们骆驼项上戴的月牙圈。
  • 22 以色列人对基甸说:“你既救我们脱离米甸人的手,愿你和你的儿孙管理我们。”
  • 23 基甸说:“我不管理你们,我的儿子也不管理你们,惟有耶和华管理你们。”
  • 24 基甸又对他们说:“我有一件事求你们:请你们各人将所夺的耳环给我。”(原来仇敌是以实玛利人,都是戴金耳环的。)
  • 25 他们说:“我们情愿给你”,就铺开一件外衣,各人将所夺的耳环丢在其上。
  • 26 基甸所要出来的金耳环重一千七百舍客勒金子。此外还有米甸王所戴的月环、耳坠,和所穿的紫色衣服,并骆驼项上的金链子。
  • 27 基甸以此制造了一个以弗得,设立在本城俄弗拉。后来以色列人拜那以弗得行了邪淫;这就作了基甸和他全家的网罗。
  • 28 这样,米甸人被以色列人制伏了,不敢再抬头。基甸还在的日子,国中太平四十年。
  • 29 约阿施的儿子耶路·巴力回去,住在自己家里。
  • 30 基甸有七十个亲生的儿子,因为他有许多的妻。
  • 31 他的妾住在示剑,也给他生了一个儿子。基甸与他起名叫亚比米勒。
  • 32 约阿施的儿子基甸,年纪老迈而死,葬在亚比以谢族的俄弗拉,在他父亲约阿施的坟墓里。
  • 33 基甸死后,以色列人又去随从诸巴力行邪淫,以巴力·比利土为他们的神。
  • 34 以色列人不记念耶和华他们的 神,就是拯救他们脱离四围仇敌之手的,
  • 35 也不照着耶路·巴力,就是基甸向他们所施的恩惠厚待他的家。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8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번 장은 정말 흥미진진한 장이지만, 저는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깨달으셨나요?" 겨우겨우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월요일에 보니 어떤 형제자매들이 이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적어 올렸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답했을까요? 저는 "아직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원수는 이겼으나, 자신은 이기지 못했다"입니다. 이 장의 본문 속에는 이런 구절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저는 제가 잡은 이 주제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기드온의 이야기를 통해 원수는 이겼지만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한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1.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고 13만 5천 명을 이기다

이곳에 총 몇 명이 언급됩니까? 도망친 사람은 몇 명입니까? 1만 5천 명이 도망쳤습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몇 명입니까? 12만 명입니다. 그 12만 명은 칼을 든 자들이지, 솥을 든 자들이 아닙니다. 전쟁을 하려면 밥 짓는 취사병이 있어야지, 군사들이 각자 밥을 짓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솥 든 자들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취사병은 대략 한 사람이 스무 명분 밥을 짓는다고 쳐도, 실제로는 이 13만 5천 명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300명을 데리고 13만 5천 명을 이긴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기드온이 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이 참여했습니까?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기드온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마음속 기분은 최고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작은 귀신 하나를 쫓아내고 자유케 되었을 때, '정말 좋다!' 하는 느낌 말입니다. 조금 더 큰 귀신을 쫓아내고 나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하니 열이 내리고, 기도하니 위통이 낫습니다.

어떤 자매가 밤에 열이 나고 속이 완전히 뒤집히며 계속 소변이 마려웠습니다. 저는 밤에 늦게 자는데, 그 메시지를 보고 얼른 전화를 걸어 기도를 인도해 주었더니 순식간에 해결되었습니다. 단 몇 초 만에 끝났다고는 못 하겠지만, 한 시간 만에 해결된 것도 참 통쾌했습니다.

여러분은 축사(귀신 쫓음) 경험이 있으십니까? 있습니다. 승리의 경험이 있다면 제가 말하는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기드온의 기분도 여러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300명을 이끌고 돌진하여 1만 5천 명을 추격합니다. 듣기에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12만 명을 죽였는데 계속 추격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손쉽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기드온 쪽에 300명이 있었지만, 적들이 보았을 때는 수만, 수십만의 군대였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기이한 일도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있습니다.

예전에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인 두 명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겹겹이 엘리사가 살고 있는 그 작은 동산을 에워쌌습니다. 그렇게 에워싸였을 때 엘리사가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습니다. 하인이 보고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산 아래에 메뚜기 떼처럼 군사가 가득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는 대단했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이 영적인 소경아." 바보 같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너의 영적인 눈을 열어라"라고 했습니다. 하인이 눈을 떠서 보니, 아람 군대와 스승 엘리사 사이에 수천수만의 하늘의 군대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동산 하나일 뿐인데,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왜 엘리사를 공격해 끝내지 않고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디안의 13만 5천 군대가 진을 치고,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고 반대편에 진을 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바와 살문나, 이 두 왕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맞은편 동산에 300명밖에 안 되는 조무래기들이 보이면 사람을 보내 해치우면 될 텐데.'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세바와 살문나 두 왕의 눈에 보인 것은 자기들의 수효를 훨씬 능가하는 수천수만의 천군천사였습니다. 기드온의 300명만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자기가 한 일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수천수만의 천군천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때 온 가슴이 너무나 괴롭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년 전의 일인데, 침대에 누워 기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나님, 이제 끝장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형제자매들처럼 저도 지금 제 모습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죽는다면 위로 올라가겠습니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건 좀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저는 3D로 된 마귀의 군대가 온 산과 들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화살을 쏘아대는데 제 가슴으로 날아왔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것은 화살들이 날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전혀 승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기도하는데 제 뒤에 천군천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그 적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귀 원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제 숨통이 확 트였습니다. '아, 이런 일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싸움이 영적 전쟁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좋으신 분이십니다! 저에게 몇 년의 생명을 더 주셔서 창세기를 잘 전하게 하시고, 전도서를 잘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그때가 올 때까지 저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렸고, 싸워야 할 싸움에서 이겼으며, 지켜야 할 믿음을 지켰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드온이 이끄는 이 300명은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을 정도로 굶주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수통은 챙겼을 것입니다. 양식은 못 챙겼어도 수통은 있었겠지요. 배가 너무 고파서 사람들에게 떡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주지 않았고, 그래도 계속 추격했습니다. 사실 그냥 쫓아가면 됩니다. 떡 한 조각 덜 먹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굶주릴지라도 여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배가 고플 때 그것은 단지 느낌일 뿐입니다. 많은 것들이 느낌에 불과하며, 느낌이라는 것은 반드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배고프고 괴롭지만, 기도하고 나면 그 배고픔의 기운이 사라집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기도는 통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려움증도 치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으며, 심지어 배고픔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시험 삼아 한번 해보십시오.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라 '아이고, 죽겠다, 얼른 뭘 좀 먹어야지, 혈당이 떨어졌네'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얼른 뭘 먹을 수도 있겠지요. 먹어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 얼른 기도해 보십시오. 또 어떤 병은 배가 고프면 견딜 수가 없는데, 음식을 먹으면 위가 꽉 막히고 속이 뒤집히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자꾸 소변이 마려운 증상, 해결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것이 엄청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이 떡을 주지 않고 돕지 않았어도, 미디안의 왕들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미디안의 왕이 아주 느리게 도망치게 하셨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배가 등가죽에 붙은 미디안 왕은 1만 5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느리게 달렸을까요? 어떻게 따라잡힐 수 있었을까요? 저 역시 의아했습니다! 결국 따라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바와 살문나의 다리를 무겁게 만드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고, 기드온의 다리는 가볍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걸음걸이가 아주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13만 5천 명을 이긴 것이 당신이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이름난 목회자, 아주 유명한 대형 목회자들 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한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권투를 할 때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 우리 몸을 쳐 복종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은 하지 맙시다. 고고학 연구를 하실 겁니까?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조연일 뿐이며, 이 넓은 세상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일 뿐입니다. 나중에 브누엘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고 그것으로 끝났으니 무대에서 내려가면 됩니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들은 연기하다가 역할이 끝난 것입니다. 사실 성경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굳이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별 상관없는 것들을 묻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저도 성경공부할 때 "왜 그럴까?" 하고 묻습니다. 핵심을 잡지 못하면 아무거나 다 묻게 됩니다. 우리 핵심을 잡읍시다. 핵심은 바로 "원수는 이겼으나, 자신은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정작 자신은 은혜에서 탈락합니다.

2. 기드온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트집에 대처하는 지혜가 있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사사기 8:1)

세상에, 크게 다투었다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참 대단했고 지혜가 많았습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사사기 8:2)

얼마나 말을 잘합니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또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사사기 8:3)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기드온이 말을 잘합니까, 못합니까? 잘합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뭐라고요? 승리가 당신들 덕분인 줄 아시오? 당신들 주제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큰일 났겠지요. 에브라임 사람들이 틀림없이 돌을 던져 저를 쳤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명은 에브라임 사람들 눈에는 그저 300명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기드온은 말을 참 잘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하찮은 것이 제 말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대략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이 버린 포도가 우리 집안의 가장 좋은 포도보다 낫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다 잡았지 않습니까?" 기드온이 "내가 한 일이 어찌 여러분이 한 일에 비교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정말 말을 잘합니다.

기드온에게 지혜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지혜가 없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에게는 이런 지혜가 있었지만,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드온이 보인 태도는 겸손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생각하겠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참으로 비참해지며, 미래의 재앙을 위한 불씨를 심어놓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너무 자기 자신에게만 연연하지 마십시오. 이런 작은 지혜조차 없다면 자신을 이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수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이기지 못하면 완전히 망쳐버려, 항아리에서 꺼낸 김치처럼 시큼털털해지고 삭아서 김치가 되어버립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김치처럼 쪼그라들 수 있는데, 말조차 잘하지 못하면 완전히 망쳐서 김칫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3. 기드온에게는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을 제압할 용맹이 있었다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은 꽤 고약했습니다. 천군천사를 보지 못하고 기드온에 대해서도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바와 살문나가 방금 전 이곳을 지나갔는데, 그 몰골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총도 제대로 못 메고, 솥도 제대로 못 챙긴 채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 꼴이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그런데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보니, 세상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1만 5천 명이 길게 줄을 지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기드온이 와서 "떡이 좀 있습니까?"라고 하자, 그들은 "당신들에게 줄 떡이 어디 있소? 세바와 살문나가 벌써 당신들 손에 넘겨지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러고도 떡을 달라 하오?"라며 비웃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좀 악질이었습니다. 300명이 1만 5천 명을 쳐부수고 12만 명을 이미 죽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기드온, 너희 300명 조무래기들이 배가 고파 등가죽이 붙었는데, 쫓아가 봤자 개죽음당하는 것 아니냐? 저쪽은 1만 5천 명이고 너희는 겨우 300명인데.' 왜 그랬을까요? 천군천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떡을 주어 너희가 죽으러 가게 만들었다가, 세바와 살문나가 되돌아와서 "너희가 저들에게 떡을 주었느냐?"라고 물으면 어쩌나? 관두자, 이 흙탕물에 끼어들지 말자. 너희 둘이 싸우든 말든 우리에게선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사실상 비꼬는 말이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300명이 1만 5천 명에게 안팎으로 포위당해 만두 빚듯 먹잇감이 될 줄 알았습니다. 중동 전쟁이든 러-우 전쟁이든, 300명이 가면 무조건 포위되어 끝장날 테니 그냥 죽으러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기드온이 300명을 데리고 실제로 가서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것 역시 기드온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1만 5천 명은 놀라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왕이 잡혔으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 살아야지요. 기드온도 1만 5천 개의 나무토막을 일일이 패듯 벨 만한 체력은 없었습니다. 너무 지쳐 힘이 없었기에 두 왕만 붙잡아 돌아온 것입니다. 이때 떡을 요구해도 되겠지만, 당시에는 떡을 얻지 못했으니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 와서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숙곳의 지도자들인 장로 77명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혼쭐을 내놓으니 숙곳 사람들은 다시는 기드온 앞에서 허튼수작을 부리거나 안팎으로 결탁할 생각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릅니다. 연구하는 이들 중에는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도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드온은 브누엘 망대를 헐고 브누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책망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죽였으면 죽인 것이고, 감독이 "다음 장면엔 당신들 분량 없으니 집으로 가세요"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중에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으셨으니 우리도 따지지 맙시다. 그들을 위해 억울해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원수를 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리어 당신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원수를 돕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다루시기도 합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그들을 제압했습니다. 저쪽엔 장로만 77명이었는데 숙곳 성읍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적어도 수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300명이 와서 장로 77명과 지도자들을 처단하여 제압했으니 기드온도 참 대단합니다. 하지만 질문이 생깁니다. 300명을 이끌고 13만 5천 명을 이기고 두 왕을 잡았다 한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트집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처단했다 한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의 내면에는 소농적(세속적)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가 중국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왕이 되고 황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4.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다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을 평가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기드온이 그의 맏아들에게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여델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힘이 없어 보입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힘이 넘쳐 보이는데, '여델'은 좀 연약해 보입니다.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의 아들 여델이 두려워 죽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이 두 왕은 과연 그 이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북극곰을 타고 전장에 나갈 정도로 독하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기드온이 직접 그 두 왕을 쳐죽였습니다.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사사기 8:18-19)

그 사람들은 기드온의 한 어머니의 형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었고, 지혜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이겼습니까?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아의 비대함은 종종 영적 쇠락을 의미합니다.

5. 기드온은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기드온이 승리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천군천사를 보지 못하고 오직 기드온만 보았습니다. 그들의 안목이 그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사사기 8:22)

그러나 기드온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여러분에게 "우리 마을의 황제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중국에서도 시골 마을에서 황제로 등극했다가 잡혀간 농민들이 몇 명 있지 않습니까? 진짜인지 틱톡 영상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깊은 산골에서 황제에 등극하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옥새까지 다 만들어 놓고 꽤 진지하게 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런 자들과 달랐습니다.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였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사사기 8:23)

알아들으셨습니까? 만약 알아듣지 못하셨다면 너무 순진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이 다스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기드온은 "나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고 내 아들도 다스리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어디 계십니까?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통해 그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 아닙니까? 기드온이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그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만약 그가 대놓고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자원을 손에 쥔 채 "여기 개발 사업을 벌이자" 하면 그 땅값이 오르고, "저기 개발하자" 하면 저쪽이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독단으로 다스리겠다고 하면 에브라임 지파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여러분도 이렇게 말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라고 합니다. 왜 세상에 속한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기드온의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가 다스리려 한 것입니다.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사사기 8:24)

그들이 쳐부순 미디안 사람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은 귀고리를 다는 습관이 있었고 모두 금 귀고리였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이 귀걸이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사람당 금 귀고리 하나에 금구슬이 적어도 3개씩 달렸다고 치면, 12만 명이니 36만 개, 대략 360kg이나 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말을 얼마나 품격 있게 합니까?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하나 있다." 정말 대단합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거두어들인 금 1,700세겔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에봇을 만들어서 뭘 하려는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뜻은 바로 '내가 너희를 다스리되,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행할 수 없고, 행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정치적 지혜가 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참 용하게 잘 읽어내시네요"라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이런 분별력이 없으면 여러분을 인도하여 성경공부를 할 때 다 삼천포로 빠지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사사기 8:27)

누군가 찾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면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흥미롭지요. 이것이 바로 정치적 지혜입니다. 계략입니까? 계략입니다. 진짜입니까? 가짜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다 이런 식으로 굴러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다스려 달라고 했을 때 그가 수락했습니까? 수락했습니다. 다만 직접 대놓고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황포(황제의 옷)를 스스로 입지 않고 사람들이 억지로 입혀주게 만든 것이며, 게다가 그가 걸친 것은 황포가 아니라 에봇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럴듯합니까!

이 에봇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나 기드온이 가슴을 치며 말하건대, 나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쓰셨다. 내가 300명으로 12만 3천 명을 물리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고 말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틀림없다. 기드온이 하는 말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저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형제자매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하는 말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이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탐색하며 걷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교회에 있을 때, 초빙된 목사님이 강대상에 서서 "이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밑에서 들으며 말했습니다. "그만 좀 하십시오. 다른 사람 속이는 건 몰라도, 에봇을 걸쳤다고 대단한 줄 아십니까? 제가 볼 땐 베드로는커녕 곧 끝장나겠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결국 이익을 얻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권력을 쥐려는 것 아닙니까? 사실 기드온은 역대 사사들의 경험을 흡수한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경험을 쌓아 매우 지혜로웠으며, 이후의 사사들도 그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에봇에 대해, 나중에 온 이스라엘이 에봇을 음란하게 섬겨 기드온과 그의 온 집안에 올무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오브라, 곧 기드온의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궁궐을 짓지 않고 자기 집에 살았습니다. 집 안에 에봇을 모셔두고 사람들이 오면 기드온이 "에봇이 저기 있다"라고 했습니다. 복채나 헌금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거기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선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온했습니다. 왜 평온했을까요? 예전에는 기드온이 사람을 불러도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부르기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라는 간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간판은 위력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간판이었던 것입니다. 이 에봇은 그의 승리의 간증이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간증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올무였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이 올무인 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6. 기드온은 대가족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다

기드온은 왜 아들 70명을 낳았을까요? 그는 대가족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아주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사사기 6:15)

묻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까? 기드온은 자기 가문이 작다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남들을 보며 '세상에, 남들의 가문은 저렇게 번성한데 우리 집은 가장 작고, 나 또한 우리 집에서 가장 보잘것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은 큰 가문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어떻게 큰 가문을 이룰 수 있습니까? 아들 하나로는 큰 가문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기드온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여 마치 씨돼지처럼 틈만 나면 자식을 낳았습니다. 돼지가 70마리를 낳아도 힘든데, 사람이 70명을 낳으려니 기드온도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겠습니까.

중국 역사상 가장 대단한 인물도 고작 마흔에서 쉰 명 정도 낳았을 뿐입니다. 세상에, 기드온은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왜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그는 맏아들이 영 변변치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칼을 쥐고 사람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얘는 정말 안 되겠구나.' 만약 아들 70명을 낳아서 성공률이 50%라면 성공한 아들이 35명은 될 것이고, 30% 성공률이라 해도 충분히 대단할 것입니다. 기드온은 확률 게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바로 세상에 속한 논리입니다. 이리저리 굴려보았지만 결국 자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면 바로 그 갈망 때문에 재앙을 불러오게 됩니다. 돈을 갈망하면 돈이 재앙을 가져옵니다. 자손을 갈망하여 대가족을 이루고자 한 갈망, 이것은 기드온의 육적인 가문이었습니다. 사실 기드온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 자손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고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 하셨을 때, 기드온도 '나도 바닷가의 모래처럼 되어야겠다'고 한 셈입니다. 그러나 결국 70명 중 나중에 단 한 명만 남고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70명의 아들과 에봇이 결합하여 하나의 올무가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낳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을 훈련까지 시켰습니다. 나중에 그가 어떤 아들을 낳았습니까? 세겜에 살던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는데 기드온이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지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가나안 사람들의 이름이 아닙니까? 가나안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할 일 없이 왜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비멜렉은 그 지역에서 아주 훌륭한 이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을 낳아 건륭이라 짓거나 옹정이라 짓는 격입니다. 아비멜렉은 바로 '왕'의 이름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기드온 자신이 말을 기가 막히게 잘했기에, 지혜를 부리는 법, 정치를 하는 법, 통솔하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쳤으니 대단했습니다. 훗날 세겜 첩이 낳은 아들 아비멜렉은 기드온에게서 온갖 권모술수를 배웠고, 결국 다른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기드온이 자신을 이겼습니까?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꼭 깨닫기를 바랍니다. 귀신 몇 마리 쫓아낸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쫓아내고 이겨야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고 버럭 성질을 낸다면, 그것이 자기 자신의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람은 늘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에, 얻지 못하면 화를 내지 않습니까? 얻지 못하면 화를 냅니다. 만약 사람이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화를 내겠습니까? 낼 성질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사람을 파멸로 이끕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에 속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죽기 살기로 그것을 추구하고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기를 쓰다가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올무였음을 증명하게 되고, 끝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일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든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깨달아지다가도, 때로는 또다시 흐리멍텅해집니다. 그러니 저는 날마다 저 자신을 일깨워야 합니다. 내 스스로 나의 올무가 되지 말자고 말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트림 한번 하고 방귀 한번 뀌는 것과 같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 숨이 꼴깍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세상에 속한 것들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대가족을 이루겠다느니,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들겠다느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우리 중 한 자매의 부모님이 저를 만났을 때 "교회를 크고 강하게 키우셔야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내 스스로 올무에 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저는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진실하게, 기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즐겁게 술 한잔—이과두주든 강소백 같은 것이든—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에탄올에 물 탄 가짜 술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그런 건 온몸을 떨게 만드니 사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똑똑히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것들도 결국은 덧없는 한 줄기 꿈에 불과합니다.

7.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도 기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제 마음에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무엇에 대한 탄식입니까? 기드온조차 이기지 못한 것을 평범한 사람이 어찌 이기겠습니까? 기드온도 이기지 못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을 위한 복선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기드온, 곧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 불렸던 그 기드온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없이는 자기 육체의 악습을 쳐서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성화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성화의 길이란,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능력이 되셔서 육체의 악습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원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남들이 내게 무슨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남들이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지도 마십시오. 기억해 주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이 저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면, 제 마음은 몹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제 평생의 목표는 제 육체의 정욕을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 역시 여러분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뿐입니다. 우리의 목표를 다시 바로잡아 우리 육체의 악습을 쳐서 죽입시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 되었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하고 자기 안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이겨내지 못했던 기드온처럼 되지 맙시다.

사사기는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멋대로 행하지 말고, 젊을 때부터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합시다. 세상에 속한 수많은 것들이 사람을 타락시킵니다. 때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사실 우리 교회는 그런 것을 별로 권장하지 않으며 전도를 위해 애쓰지 않고 단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뿐이지만—

상대방은 당신의 마음에 맞추어 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에게서 어떤 유익을 얻고 싶어서 가식적으로 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 내면의 세상에 속한 정욕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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