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基甸领三百人打败米甸人,不是信靠神吗?以弗得不是为敬畏神做的吗?
我们人有的时候读《圣经》读得有点儿偏。打败米甸人那是信靠神,但是做以弗得可不是信靠神,因为他信的是那个以弗得。
为什么呢?因为在《圣经》里头,这以弗得你是不能随便做的,只有在圣殿里做的以弗得才叫做真正侍奉神。在这个期间,约柜还在示罗,那是人敬拜神献祭的地方。而且只有摩西他的后裔才能做祭司,可是这个基甸他是没有资格做祭司的。那个以弗得,不是给基甸穿的,是给祭司献祭所穿的啊。
所以说这是瞎搞,是任意而行,想怎么干就怎么干。也没有去了解神到底要他们怎么干。我就在想神选择基甸,神知不知道他会这样?知道。所以这个以弗得不能这么搞。其实直到今天,教会这个观念也是变得越来越薄弱了。为什么变得越来越薄弱了呢?就是都想透过拉一些人,然后从这里得到好处。为什么要捞好处?到今天我也不太明白。
其实他们真的在乎我们弟兄姐妹,想能得着点啥吗?我猜也不太像。因为他们就喜欢把人拉到自己那儿去。要愿意真正付出,那还是一个问号呢。他们不过是把服侍神当作没有事的时候的那种打发时间的一个消遣。所以这里面挺有意思,这个以弗得不是为敬畏神做的。
Q2:老师,孩子问:以色列人为什么不纪念神的拯救?
傻孩子,人如果要纪念神的拯救,就不至于掉到悲剧里去。其实我告诉你,人在什么时候容易忘记呢?就是在追求他自己的目的的时候,很快就什么都忘记了。因为他脑子里头只有他自己的那件事儿,什么都想不起来。所以这人的记性是一个很属灵的。
就是在过去这些年,有很多弟兄姐妹在我手里得的恩惠,那都几乎是快到了死里复活那样的恩典。纪念吗?没有人纪念啊。等用完了我,日子过好了,把我一脚踹开,我打电话人都不愿意接。所以说人天生的就不会纪念人的恩惠,也不会纪念神的拯救。
我告诉你,我认为默认的人就这样。那为什么会这样?因为人本身就是一个属肉体的东西。属世界的逻辑体系就会带来这种东西。
我曾经下过一个决心,至于将来会不会做到我不知道。就是如果我对别人没有用了,没有任何益处了,没有任何价值了,我自己玩消失。我不指望人在我身上付出什么,我也不配。
Q3:老师,如何才能胜过自己?
这就是新约《圣经》,《罗马书》的奥秘。《罗马书》的奥秘是啥呢?这福音本是神的大能,要救一切相信的人。怎么救?就是治死肉体的邪情私欲。怎么治死?就是靠着圣灵。所以靠着圣灵这句话,大家一定紧紧抓住。首先在悟性上要知道肉体的败坏,然后要靠着圣灵的大能治死肉体的恶行。
Q4:老师有没有查《希伯来书》?
《希伯来书》查过,你在网站上可以找到。大家看一下YouTube上有《希伯来书》没有?如果有的话,帮我通知一下。
Q5:老师,为啥基甸搞得以弗得成为网罗的时候神没管这事儿?
我觉得神伟大就在这儿。我们这人胡搞的时候多啊。那胡搞完了,为什么神不管?接下来还写在《圣经》里头,好让我们今天知道那是个网罗。你要往里跳,神不会拦着的,很多人以为神会拦着。
比如有的人这么祷告:神啊,如果我选错的时候求你拦着我。神没拦着,结果一做生意赔了一大笔。然后他说:神啊,你当时为啥没拦住我?神说拦不住啊,拦不住!你已经很清晰地做了选择了,没法拦,就让你往下走吧。
Q6:老师,神为啥选个基甸这么烂的?他最后是不是下地狱了?
神为什么选这么烂的?后面比这更烂的还有呢。我在想啊,神为什么要这么干呢?神啊,你为什么不选个好一点的呢?这问题挺好。神写故事给我们看。所以后来的世代,一看到这个故事说不好听的,基甸就成了一个实验室里的实验品,神使用基甸做了一个示范。比如他们说杀鸡儆猴。你说鸡倒霉不倒霉?那谁让你是那只鸡呢。
把鸡杀了,往地上一丢,那猴一看老实了。神整了一个基甸,别说还真有个鸡字。神献一个基甸,希望我们这些人能老实点儿。大家要开始学习了解神的良苦用心啊,老辛苦了。神就一直这么干,也没翻转几个人,我跟你讲,神太辛苦了。
Q7:请问老师当时的约柜在什么地方?
《士师记》记载关于约柜的事,一直在示罗。
Q8:老师,基甸的结局就是因为他里面有了私心。人如果在乎自己的得失就会走偏,如果人只寻求神的心意就不会走偏吧?
我告诉你啊,人一旦希望在这世上得到点什么,就离偏差不远了。因为这世上,如果大家不认为是虚空,你会很辛苦的。
比如说,人就在乎这世上的什么男的跟什么女的搞在一起了;另外一个男的又跟另外一个女的搞在一起了;这个破坏那个人的家庭了,我的天哪,这故事就多了去了。其实这不过是虚空的虚空。我想我们人活在这世上,谁的决定也不能帮得上。你管不了,他脑袋里想的,你也管不了,谁也管不了。我们能管的,就能管住我们自己。是不是啊?
我们自己能不能别整天搞这些乌七八糟的东西?我们自己能不能够决定我们不受任何人的影响?我们能不能够决定说:这世上的东西全是虚空的虚空,我就要单单寻求神的旨意!你要寻求神的旨意,神一定坐在祂的宝座上,看得见听得到。祂鉴察人的心啊!就是因为寻求这世上的东西,所以当今这个世代的败坏越来越多。
最近我怎么看到一个新闻,也不知道是真是假,有一个人贪了30个亿。我就在想那么一个地方,全区的人,全市的人都给他打工了啊。他这么厉害啊!三十个亿干啥呢?这是咋整的?他的智慧应该比基甸高多了。我就觉得,政府的税收都比他家整的少啊。
所以今天我们看完了以后你就不觉这是个笑话了。当然了,这世上的人可能光看到那30个亿,没看到那后面的结局。我就很诧异,但是今天我们看到的是结局,不是那30个亿。30个亿和300个亿还是3000个亿,对我们都毫无意义。
大概3000、5000、35000对我们可能还有意义。如果再有点意义的话,30万、50万、300万、500万可能有点意义。到了30个亿就毫无意义了。
我就很诧异啊,人活着的时候开开心心多好,吃不起满汉全席,咱就吃萝卜白菜,挺好,那胆固醇肯定高不上去啊。
Q9:老师,请问一下,您怎么从唯有耶和华管理你们读出基甸的想法?
别看人说的,看人做的。你一看他人做的,其实他那个话,不过是个幌子而已,一看人做的就知道了。
所以咱们弟兄姐妹可得记住啊,别信我说的啊,要看我做的。那如果有一天,我找你借钱来了。你说坏了,这人被鬼附了,这不是老师,这是被鬼附完的老师。人借钱干啥?人一辈子能吃得起的吃,吃不起的就不吃。能用得起的用,用不起的就不用。是吧?有三五百块可以过一个月;还有三五千块也可以过一个月;三五万、三五十万也可以过一个月,就那样啊。
Q10:是不是当时没有比基甸更好的以色列人了呢?
记住,神永远不是照着好还是不好来选择。如果照着好和不好,那就坏了,今天咱们都不太好。所以神给我们开辟了一个很有盼望的路,就是我们有信心信靠神。
在《新约》《圣经》,就是我们今天这个时代,有一个很有趣的现象。就是你在哪个地方相信神,神就能在那个地方帮助你。你在哪个地方不相信神,你就看不见神的恩惠。这是很神奇的。基甸在打击米甸人这件事上,他是非常相信神的,所以神使他得胜。但是在治死他肉体的恶行上,他不相信神。这不是很有意思吗?
今天的教会也是如此。有一些人他们很用力气,把基督教信成佛教。你说他们看得透不透?看得透。看得虚空不虚空?虚空。然后呢?想不想对付肉体?想。但是生了一个病,不知道把鬼赶出去。为什么?因为他们只相信《圣经》里的某一部分,而另一部分他们不接受。
但我想我们今天也一样,千万别只相信赶鬼这一部分。也要相信治死肉体的邪情私欲这一部分,也要相信人活着是虚空这一部分。
Q11:老师,肉体的邪情私欲是与生俱来的,它容易招外面的鬼,内外联合败坏人。所以治死肉体是从根上赶鬼,对吗?
对的,鬼就是透过肉体的邪情私欲败坏人。其实人生下来身上就带着鬼的,按《圣经》里说就是带着罪。那什么是罪?我这个定义不一定对,大家得去考察。什么定义呢?就是人生下来附在身上的鬼叫做罪。那个罪就是跟肉体一起生下来的。所以赶鬼,赶着赶着就得赶自己了,就是属肉体的自己。
Q12:老师,我咋感觉能治死自己的人很少,好多人很可能这两年挺渴慕,过几年就变了。人是不是大多数都这样?最后能得着命定见神的很少啊?
我也觉得是。我服侍这么久,心里头常常悲哀。为啥?人一遇到自己的核心利益的时候,很多东西就变味儿了。所以如果我们的核心利益不是神,你很难坚持,你坚持也坚持不下去。我们的核心利益如果不是神,我们怎么能有命定?怎么可能为神而活为神而死?不可能的。
所以说到了一定的时候,一去看房子就觉得自己钱少。一看到自己钱少就想钱多。一想自己钱要多,一会儿就懵了。其实人有个地方住就够了。你要那么多房子干啥呀?你要那么多钱干啥呀?如果是贪来的钱,到死的时候也不敢花。就懵了。
Q13:老师,怎么在平安稳妥的时候,不会掉到过小日子的里面?
有点难呐,是不是啊?人不经历点灾祸,好像很难呼求神。所以这个平安稳妥的日子,过着过着就过日子。为啥过日子?又耕种,又盖又建造,又嫁又娶。又买又卖,哪一样没钱都很难。有这个事那个事一大堆的事,都得耗时间。再加上孩子,孩子再加上孙子,一家的事儿全都挂在你肩上。
所以我就在想,《旧约》《圣经》咱们查的不是《士师记》吗?《旧约》《圣经》给我们看见的就是,人没有灾祸怎么可能呼求神呢?我也觉得不容易。所以说人如果不常常提醒自己,很难啊。
所以有个这个病那个病,这个问题那个问题,挺好。常常提醒我们,人活着就是这么个事儿啊。
Q14:老师,看到世上的虚空,因着对世界的失望,内心有点沉重,自己沮丧,这是咋回事儿?该怎样寻求命定?
这个问题挺好啊。看到世上的虚空,然后因着对世界的失望,这里头有两种。一种是真的是虚空了,啥也不想要了。另外一种是想得,得不着;然后得老想得,老也得不着。最后就放弃了,就失望了,就绝望了。
然后内心的感觉也有两种。一种是说看见神的国度,属灵的这个事儿,教会这么荒凉。然后沉重沮丧。也很正常,因为保罗也这样。还有一种呢,就是,对这个世上失望、绝望,突然间好像里面又开始要追求了,又沉重了,又沮丧了,因为得不着。
有一些人总是得不着,然后就变成死猪了啊。死猪不怕开水烫,我啥也得不着没关系啊。最怕的就是死猪,一会儿又活了,一会儿又死了,一会儿又活了。其实我想今天我们需要活着像神,活出神的形像。我问你,什么问题解决不了?什么问题都能解决。
Q15:老师,好像赶鬼赶着赶着后,就好像懒了。
如果鬼还没赶出去你懒啥呀?赶着赶着,你还没得胜,你不能懒啊。你一懒,那个鬼就反扑了。所以说我想你身上的病还没解决呢,你就不能懒。如果身上的病好了,那不是更懒了?很多人就是有病都懒得赶,懒得解决啊。
答疑就到这儿,弟兄姐妹再见。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8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번 장은 정말 흥미진진한 장이지만, 저는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깨달으셨나요?" 겨우겨우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월요일에 보니 어떤 형제자매들이 이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적어 올렸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답했을까요? 저는 "아직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원수는 이겼으나, 자신은 이기지 못했다"입니다. 이 장의 본문 속에는 이런 구절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저는 제가 잡은 이 주제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기드온의 이야기를 통해 원수는 이겼지만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한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1.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고 13만 5천 명을 이기다
이곳에 총 몇 명이 언급됩니까? 도망친 사람은 몇 명입니까? 1만 5천 명이 도망쳤습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몇 명입니까? 12만 명입니다. 그 12만 명은 칼을 든 자들이지, 솥을 든 자들이 아닙니다. 전쟁을 하려면 밥 짓는 취사병이 있어야지, 군사들이 각자 밥을 짓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솥 든 자들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취사병은 대략 한 사람이 스무 명분 밥을 짓는다고 쳐도, 실제로는 이 13만 5천 명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300명을 데리고 13만 5천 명을 이긴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기드온이 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이 참여했습니까?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기드온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마음속 기분은 최고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작은 귀신 하나를 쫓아내고 자유케 되었을 때, '정말 좋다!' 하는 느낌 말입니다. 조금 더 큰 귀신을 쫓아내고 나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하니 열이 내리고, 기도하니 위통이 낫습니다.
어떤 자매가 밤에 열이 나고 속이 완전히 뒤집히며 계속 소변이 마려웠습니다. 저는 밤에 늦게 자는데, 그 메시지를 보고 얼른 전화를 걸어 기도를 인도해 주었더니 순식간에 해결되었습니다. 단 몇 초 만에 끝났다고는 못 하겠지만, 한 시간 만에 해결된 것도 참 통쾌했습니다.
여러분은 축사(귀신 쫓음) 경험이 있으십니까? 있습니다. 승리의 경험이 있다면 제가 말하는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기드온의 기분도 여러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300명을 이끌고 돌진하여 1만 5천 명을 추격합니다. 듣기에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12만 명을 죽였는데 계속 추격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손쉽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기드온 쪽에 300명이 있었지만, 적들이 보았을 때는 수만, 수십만의 군대였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기이한 일도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있습니다.
예전에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인 두 명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겹겹이 엘리사가 살고 있는 그 작은 동산을 에워쌌습니다. 그렇게 에워싸였을 때 엘리사가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습니다. 하인이 보고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산 아래에 메뚜기 떼처럼 군사가 가득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는 대단했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이 영적인 소경아." 바보 같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너의 영적인 눈을 열어라"라고 했습니다. 하인이 눈을 떠서 보니, 아람 군대와 스승 엘리사 사이에 수천수만의 하늘의 군대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동산 하나일 뿐인데,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왜 엘리사를 공격해 끝내지 않고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디안의 13만 5천 군대가 진을 치고,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고 반대편에 진을 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바와 살문나, 이 두 왕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맞은편 동산에 300명밖에 안 되는 조무래기들이 보이면 사람을 보내 해치우면 될 텐데.'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세바와 살문나 두 왕의 눈에 보인 것은 자기들의 수효를 훨씬 능가하는 수천수만의 천군천사였습니다. 기드온의 300명만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자기가 한 일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수천수만의 천군천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때 온 가슴이 너무나 괴롭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년 전의 일인데, 침대에 누워 기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나님, 이제 끝장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형제자매들처럼 저도 지금 제 모습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죽는다면 위로 올라가겠습니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건 좀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저는 3D로 된 마귀의 군대가 온 산과 들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화살을 쏘아대는데 제 가슴으로 날아왔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것은 화살들이 날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전혀 승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기도하는데 제 뒤에 천군천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그 적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귀 원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제 숨통이 확 트였습니다. '아, 이런 일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싸움이 영적 전쟁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좋으신 분이십니다! 저에게 몇 년의 생명을 더 주셔서 창세기를 잘 전하게 하시고, 전도서를 잘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그때가 올 때까지 저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렸고, 싸워야 할 싸움에서 이겼으며, 지켜야 할 믿음을 지켰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드온이 이끄는 이 300명은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을 정도로 굶주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수통은 챙겼을 것입니다. 양식은 못 챙겼어도 수통은 있었겠지요. 배가 너무 고파서 사람들에게 떡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주지 않았고, 그래도 계속 추격했습니다. 사실 그냥 쫓아가면 됩니다. 떡 한 조각 덜 먹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굶주릴지라도 여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배가 고플 때 그것은 단지 느낌일 뿐입니다. 많은 것들이 느낌에 불과하며, 느낌이라는 것은 반드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배고프고 괴롭지만, 기도하고 나면 그 배고픔의 기운이 사라집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기도는 통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려움증도 치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으며, 심지어 배고픔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시험 삼아 한번 해보십시오.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라 '아이고, 죽겠다, 얼른 뭘 좀 먹어야지, 혈당이 떨어졌네'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얼른 뭘 먹을 수도 있겠지요. 먹어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 얼른 기도해 보십시오. 또 어떤 병은 배가 고프면 견딜 수가 없는데, 음식을 먹으면 위가 꽉 막히고 속이 뒤집히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자꾸 소변이 마려운 증상, 해결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것이 엄청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이 떡을 주지 않고 돕지 않았어도, 미디안의 왕들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미디안의 왕이 아주 느리게 도망치게 하셨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배가 등가죽에 붙은 미디안 왕은 1만 5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느리게 달렸을까요? 어떻게 따라잡힐 수 있었을까요? 저 역시 의아했습니다! 결국 따라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바와 살문나의 다리를 무겁게 만드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고, 기드온의 다리는 가볍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걸음걸이가 아주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13만 5천 명을 이긴 것이 당신이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이름난 목회자, 아주 유명한 대형 목회자들 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한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권투를 할 때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 우리 몸을 쳐 복종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은 하지 맙시다. 고고학 연구를 하실 겁니까?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조연일 뿐이며, 이 넓은 세상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일 뿐입니다. 나중에 브누엘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고 그것으로 끝났으니 무대에서 내려가면 됩니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들은 연기하다가 역할이 끝난 것입니다. 사실 성경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굳이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별 상관없는 것들을 묻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저도 성경공부할 때 "왜 그럴까?" 하고 묻습니다. 핵심을 잡지 못하면 아무거나 다 묻게 됩니다. 우리 핵심을 잡읍시다. 핵심은 바로 "원수는 이겼으나, 자신은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정작 자신은 은혜에서 탈락합니다.
2. 기드온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트집에 대처하는 지혜가 있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사사기 8:1)
세상에, 크게 다투었다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참 대단했고 지혜가 많았습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사사기 8:2)
얼마나 말을 잘합니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또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사사기 8:3)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기드온이 말을 잘합니까, 못합니까? 잘합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뭐라고요? 승리가 당신들 덕분인 줄 아시오? 당신들 주제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큰일 났겠지요. 에브라임 사람들이 틀림없이 돌을 던져 저를 쳤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명은 에브라임 사람들 눈에는 그저 300명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기드온은 말을 참 잘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하찮은 것이 제 말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대략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이 버린 포도가 우리 집안의 가장 좋은 포도보다 낫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다 잡았지 않습니까?" 기드온이 "내가 한 일이 어찌 여러분이 한 일에 비교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정말 말을 잘합니다.
기드온에게 지혜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지혜가 없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에게는 이런 지혜가 있었지만,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드온이 보인 태도는 겸손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생각하겠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참으로 비참해지며, 미래의 재앙을 위한 불씨를 심어놓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너무 자기 자신에게만 연연하지 마십시오. 이런 작은 지혜조차 없다면 자신을 이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수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이기지 못하면 완전히 망쳐버려, 항아리에서 꺼낸 김치처럼 시큼털털해지고 삭아서 김치가 되어버립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김치처럼 쪼그라들 수 있는데, 말조차 잘하지 못하면 완전히 망쳐서 김칫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3. 기드온에게는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을 제압할 용맹이 있었다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은 꽤 고약했습니다. 천군천사를 보지 못하고 기드온에 대해서도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바와 살문나가 방금 전 이곳을 지나갔는데, 그 몰골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총도 제대로 못 메고, 솥도 제대로 못 챙긴 채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 꼴이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그런데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보니, 세상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1만 5천 명이 길게 줄을 지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기드온이 와서 "떡이 좀 있습니까?"라고 하자, 그들은 "당신들에게 줄 떡이 어디 있소? 세바와 살문나가 벌써 당신들 손에 넘겨지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러고도 떡을 달라 하오?"라며 비웃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좀 악질이었습니다. 300명이 1만 5천 명을 쳐부수고 12만 명을 이미 죽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기드온, 너희 300명 조무래기들이 배가 고파 등가죽이 붙었는데, 쫓아가 봤자 개죽음당하는 것 아니냐? 저쪽은 1만 5천 명이고 너희는 겨우 300명인데.' 왜 그랬을까요? 천군천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떡을 주어 너희가 죽으러 가게 만들었다가, 세바와 살문나가 되돌아와서 "너희가 저들에게 떡을 주었느냐?"라고 물으면 어쩌나? 관두자, 이 흙탕물에 끼어들지 말자. 너희 둘이 싸우든 말든 우리에게선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사실상 비꼬는 말이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300명이 1만 5천 명에게 안팎으로 포위당해 만두 빚듯 먹잇감이 될 줄 알았습니다. 중동 전쟁이든 러-우 전쟁이든, 300명이 가면 무조건 포위되어 끝장날 테니 그냥 죽으러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기드온이 300명을 데리고 실제로 가서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것 역시 기드온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1만 5천 명은 놀라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왕이 잡혔으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 살아야지요. 기드온도 1만 5천 개의 나무토막을 일일이 패듯 벨 만한 체력은 없었습니다. 너무 지쳐 힘이 없었기에 두 왕만 붙잡아 돌아온 것입니다. 이때 떡을 요구해도 되겠지만, 당시에는 떡을 얻지 못했으니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 와서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숙곳의 지도자들인 장로 77명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혼쭐을 내놓으니 숙곳 사람들은 다시는 기드온 앞에서 허튼수작을 부리거나 안팎으로 결탁할 생각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릅니다. 연구하는 이들 중에는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도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드온은 브누엘 망대를 헐고 브누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책망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죽였으면 죽인 것이고, 감독이 "다음 장면엔 당신들 분량 없으니 집으로 가세요"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중에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으셨으니 우리도 따지지 맙시다. 그들을 위해 억울해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원수를 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리어 당신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원수를 돕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다루시기도 합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그들을 제압했습니다. 저쪽엔 장로만 77명이었는데 숙곳 성읍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적어도 수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300명이 와서 장로 77명과 지도자들을 처단하여 제압했으니 기드온도 참 대단합니다. 하지만 질문이 생깁니다. 300명을 이끌고 13만 5천 명을 이기고 두 왕을 잡았다 한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트집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처단했다 한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의 내면에는 소농적(세속적)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가 중국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왕이 되고 황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4.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다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을 평가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기드온이 그의 맏아들에게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여델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힘이 없어 보입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힘이 넘쳐 보이는데, '여델'은 좀 연약해 보입니다.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의 아들 여델이 두려워 죽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이 두 왕은 과연 그 이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북극곰을 타고 전장에 나갈 정도로 독하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기드온이 직접 그 두 왕을 쳐죽였습니다.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사사기 8:18-19)
그 사람들은 기드온의 한 어머니의 형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었고, 지혜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이겼습니까?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아의 비대함은 종종 영적 쇠락을 의미합니다.
5. 기드온은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기드온이 승리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천군천사를 보지 못하고 오직 기드온만 보았습니다. 그들의 안목이 그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사사기 8:22)
그러나 기드온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여러분에게 "우리 마을의 황제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중국에서도 시골 마을에서 황제로 등극했다가 잡혀간 농민들이 몇 명 있지 않습니까? 진짜인지 틱톡 영상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깊은 산골에서 황제에 등극하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옥새까지 다 만들어 놓고 꽤 진지하게 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런 자들과 달랐습니다.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였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사사기 8:23)
알아들으셨습니까? 만약 알아듣지 못하셨다면 너무 순진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이 다스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기드온은 "나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고 내 아들도 다스리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어디 계십니까?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통해 그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 아닙니까? 기드온이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그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만약 그가 대놓고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자원을 손에 쥔 채 "여기 개발 사업을 벌이자" 하면 그 땅값이 오르고, "저기 개발하자" 하면 저쪽이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독단으로 다스리겠다고 하면 에브라임 지파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여러분도 이렇게 말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세상에 속한 정치적 지혜'라고 합니다. 왜 세상에 속한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기드온의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가 다스리려 한 것입니다.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사사기 8:24)
그들이 쳐부순 미디안 사람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은 귀고리를 다는 습관이 있었고 모두 금 귀고리였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이 귀걸이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사람당 금 귀고리 하나에 금구슬이 적어도 3개씩 달렸다고 치면, 12만 명이니 36만 개, 대략 360kg이나 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말을 얼마나 품격 있게 합니까?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하나 있다." 정말 대단합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거두어들인 금 1,700세겔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에봇을 만들어서 뭘 하려는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뜻은 바로 '내가 너희를 다스리되,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행할 수 없고, 행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정치적 지혜가 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참 용하게 잘 읽어내시네요"라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이런 분별력이 없으면 여러분을 인도하여 성경공부를 할 때 다 삼천포로 빠지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사사기 8:27)
누군가 찾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면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흥미롭지요. 이것이 바로 정치적 지혜입니다. 계략입니까? 계략입니다. 진짜입니까? 가짜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다 이런 식으로 굴러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다스려 달라고 했을 때 그가 수락했습니까? 수락했습니다. 다만 직접 대놓고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황포(황제의 옷)를 스스로 입지 않고 사람들이 억지로 입혀주게 만든 것이며, 게다가 그가 걸친 것은 황포가 아니라 에봇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럴듯합니까!
이 에봇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나 기드온이 가슴을 치며 말하건대, 나 기드온이 300명을 이끌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쓰셨다. 내가 300명으로 12만 3천 명을 물리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고 말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틀림없다. 기드온이 하는 말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저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형제자매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하는 말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이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탐색하며 걷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교회에 있을 때, 초빙된 목사님이 강대상에 서서 "이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밑에서 들으며 말했습니다. "그만 좀 하십시오. 다른 사람 속이는 건 몰라도, 에봇을 걸쳤다고 대단한 줄 아십니까? 제가 볼 땐 베드로는커녕 곧 끝장나겠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결국 이익을 얻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권력을 쥐려는 것 아닙니까? 사실 기드온은 역대 사사들의 경험을 흡수한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경험을 쌓아 매우 지혜로웠으며, 이후의 사사들도 그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에봇에 대해, 나중에 온 이스라엘이 에봇을 음란하게 섬겨 기드온과 그의 온 집안에 올무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오브라, 곧 기드온의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궁궐을 짓지 않고 자기 집에 살았습니다. 집 안에 에봇을 모셔두고 사람들이 오면 기드온이 "에봇이 저기 있다"라고 했습니다. 복채나 헌금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거기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선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온했습니다. 왜 평온했을까요? 예전에는 기드온이 사람을 불러도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부르기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라는 간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간판은 위력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간판이었던 것입니다. 이 에봇은 그의 승리의 간증이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간증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올무였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이 올무인 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6. 기드온은 대가족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다
기드온은 왜 아들 70명을 낳았을까요? 그는 대가족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아주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사사기 6:15)
묻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까? 기드온은 자기 가문이 작다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남들을 보며 '세상에, 남들의 가문은 저렇게 번성한데 우리 집은 가장 작고, 나 또한 우리 집에서 가장 보잘것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은 큰 가문을 이루기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어떻게 큰 가문을 이룰 수 있습니까? 아들 하나로는 큰 가문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기드온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여 마치 씨돼지처럼 틈만 나면 자식을 낳았습니다. 돼지가 70마리를 낳아도 힘든데, 사람이 70명을 낳으려니 기드온도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겠습니까.
중국 역사상 가장 대단한 인물도 고작 마흔에서 쉰 명 정도 낳았을 뿐입니다. 세상에, 기드온은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왜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그는 맏아들이 영 변변치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칼을 쥐고 사람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얘는 정말 안 되겠구나.' 만약 아들 70명을 낳아서 성공률이 50%라면 성공한 아들이 35명은 될 것이고, 30% 성공률이라 해도 충분히 대단할 것입니다. 기드온은 확률 게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바로 세상에 속한 논리입니다. 이리저리 굴려보았지만 결국 자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면 바로 그 갈망 때문에 재앙을 불러오게 됩니다. 돈을 갈망하면 돈이 재앙을 가져옵니다. 자손을 갈망하여 대가족을 이루고자 한 갈망, 이것은 기드온의 육적인 가문이었습니다. 사실 기드온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 자손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고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 하셨을 때, 기드온도 '나도 바닷가의 모래처럼 되어야겠다'고 한 셈입니다. 그러나 결국 70명 중 나중에 단 한 명만 남고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70명의 아들과 에봇이 결합하여 하나의 올무가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낳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을 훈련까지 시켰습니다. 나중에 그가 어떤 아들을 낳았습니까? 세겜에 살던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는데 기드온이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지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가나안 사람들의 이름이 아닙니까? 가나안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할 일 없이 왜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비멜렉은 그 지역에서 아주 훌륭한 이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을 낳아 건륭이라 짓거나 옹정이라 짓는 격입니다. 아비멜렉은 바로 '왕'의 이름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기드온 자신이 말을 기가 막히게 잘했기에, 지혜를 부리는 법, 정치를 하는 법, 통솔하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쳤으니 대단했습니다. 훗날 세겜 첩이 낳은 아들 아비멜렉은 기드온에게서 온갖 권모술수를 배웠고, 결국 다른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기드온이 자신을 이겼습니까?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꼭 깨닫기를 바랍니다. 귀신 몇 마리 쫓아낸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쫓아내고 이겨야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고 버럭 성질을 낸다면, 그것이 자기 자신의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람은 늘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에, 얻지 못하면 화를 내지 않습니까? 얻지 못하면 화를 냅니다. 만약 사람이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화를 내겠습니까? 낼 성질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사람을 파멸로 이끕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에 속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죽기 살기로 그것을 추구하고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기를 쓰다가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올무였음을 증명하게 되고, 끝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일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든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깨달아지다가도, 때로는 또다시 흐리멍텅해집니다. 그러니 저는 날마다 저 자신을 일깨워야 합니다. 내 스스로 나의 올무가 되지 말자고 말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트림 한번 하고 방귀 한번 뀌는 것과 같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 숨이 꼴깍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세상에 속한 것들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대가족을 이루겠다느니,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들겠다느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우리 중 한 자매의 부모님이 저를 만났을 때 "교회를 크고 강하게 키우셔야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내 스스로 올무에 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저는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진실하게, 기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즐겁게 술 한잔—이과두주든 강소백 같은 것이든—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에탄올에 물 탄 가짜 술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그런 건 온몸을 떨게 만드니 사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똑똑히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것들도 결국은 덧없는 한 줄기 꿈에 불과합니다.
7.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도 기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제 마음에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무엇에 대한 탄식입니까? 기드온조차 이기지 못한 것을 평범한 사람이 어찌 이기겠습니까? 기드온도 이기지 못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을 위한 복선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기드온, 곧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 불렸던 그 기드온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없이는 자기 육체의 악습을 쳐서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성화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성화의 길이란,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능력이 되셔서 육체의 악습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원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남들이 내게 무슨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남들이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지도 마십시오. 기억해 주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이 저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면, 제 마음은 몹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제 평생의 목표는 제 육체의 정욕을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것 역시 여러분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뿐입니다. 우리의 목표를 다시 바로잡아 우리 육체의 악습을 쳐서 죽입시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 되었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이기지 못하고 자기 안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이겨내지 못했던 기드온처럼 되지 맙시다.
사사기는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멋대로 행하지 말고, 젊을 때부터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합시다. 세상에 속한 수많은 것들이 사람을 타락시킵니다. 때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사실 우리 교회는 그런 것을 별로 권장하지 않으며 전도를 위해 애쓰지 않고 단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뿐이지만—
상대방은 당신의 마음에 맞추어 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에게서 어떤 유익을 얻고 싶어서 가식적으로 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 내면의 세상에 속한 정욕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