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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마태복음 20장 -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

2020-07-15 51,877 马太福音 祝福 耶稣基督 荣耀 忠心 服侍 成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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马太福音20章-葡萄园的比喻
  • 1 “因为天国好像家主清早去雇人进他的葡萄园做工,
  • 2 和工人讲定一天一钱银子,就打发他们进葡萄园去。
  • 3 约在巳初出去,看见市上还有闲站的人,
  • 4 就对他们说:‘你们也进葡萄园去,所当给的,我必给你们。’他们也进去了。
  • 5 约在午正和申初又出去,也是这样行。
  • 6 约在酉初出去,看见还有人站在那里,就问他们说:‘你们为什么整天在这里闲站呢?’
  • 7 他们说:‘因为没有人雇我们。’他说:‘你们也进葡萄园去。’
  • 8 到了晚上,园主对管事的说:‘叫工人都来,给他们工钱,从后来的起,到先来的为止。
  • 9 约在酉初雇的人来了,各人得了一钱银子。
  • 10 及至那先雇的来了,他们以为必要多得;谁知也是各得一钱。
  • 11 他们得了,就埋怨家主说:
  • 12 ‘我们整天劳苦受热,那后来的只做了一小时,你竟叫他们和我们一样吗?’
  • 13 家主回答其中的一人说:‘朋友,我不亏负你,你与我讲定的不是一钱银子吗?
  • 14 拿你的走吧!我给那后来的和给你一样,这是我愿意的。
  • 15 我的东西难道不可随我的意思用吗?因为我作好人,你就红了眼吗?’
  • 16 这样,那在后的,将要在前;在前的,将要在后了。(有古卷加:因为被召的人多,选上的人少。)”
  • 17 耶稣上耶路撒冷去的时候,在路上把十二个门徒带到一边,对他们说:
  • 18 “看哪,我们上耶路撒冷去,人子要被交给祭司长和文士。他们要定他死罪,
  • 19 又交给外邦人,将他戏弄,鞭打,钉在十字架上;第三日他要复活。”
  • 20 那时,西庇太儿子的母亲同她两个儿子上前来拜耶稣,求他一件事。
  • 21 耶稣说:“你要什么呢?”她说:“愿你叫我这两个儿子在你国里,一个坐在你右边,一个坐在你左边。”
  • 22 耶稣回答说:“你们不知道所求的是什么;我将要喝的杯,你们能喝吗?”他们说:“我们能。”
  • 23 耶稣说:“我所喝的杯,你们必要喝;只是坐在我的左右,不是我可以赐的,乃是我父为谁预备的,就赐给谁。”
  • 24 那十个门徒听见,就恼怒他们弟兄二人。
  • 25 耶稣叫了他们来,说:“你们知道外邦人有君王为主治理他们,有大臣操权管束他们。
  • 26 只是在你们中间,不可这样;你们中间谁愿为大,就必作你们的用人;
  • 27 谁愿为首,就必作你们的仆人。
  • 28 正如人子来,不是要受人的服侍,乃是要服侍人,并且要舍命,作多人的赎价。”
  • 29 他们出耶利哥的时候,有极多的人跟随他。
  • 30 有两个瞎子坐在路旁,听说是耶稣经过,就喊着说:“主啊,大卫的子孙,可怜我们吧!”
  • 31 众人责备他们,不许他们作声;他们却越发喊着说:“主啊,大卫的子孙,可怜我们吧!”
  • 32 耶稣就站住,叫他们来,说:“要我为你们做什么?”
  • 33 他们说:“主啊,要我们的眼睛能看见!”
  • 34 耶稣就动了慈心,把他们的眼睛一摸,他们立刻看见,就跟从了耶稣。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20장을 함께 성경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은 해석하기가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저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계속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다시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검색하고, 성경 연구 서적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한 내용을 보니 기본적으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제가 이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인식하는 논리 체계가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한 사람과 퇴근하기 직전에 와서 일하기 시작한 사람이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것이 공평합니까? 많은 사람은 일을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이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포도원 주인이라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한번은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갔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쳤으니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 여기 남아서 쉬고 싶다.” 다윗은 “좋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쉬어라.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전쟁에 나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안했습니다. 승리해서 얻은 전리품은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나누어 주지 말고, 전쟁에 나간 사람들에게만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리품을 나눌 때 전쟁에 나간 사람과 나가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 안에 있는 인식의 논리 체계는 사실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어떤 사람은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불합리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과 지혜가 다르다는 말처럼, 문제는 우리 안에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가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견해와 인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일찍 주님을 믿어 죽은 후 천국에 갔고, 또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주님을 믿어 죽은 후 천국에 갔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 말합니다. “보세요.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고, 당신은 이렇게 짧은 시간밖에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하나님 앞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런 논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말합니다. “이 강도가 정말 부럽다. 마지막 순간에 낙원에 들어갔으니, 나도 살아 있을 때 죄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음란을 저질러야 하면 음란을 저지르고, 매춘부를 찾아가야 하면 찾아가고, 도박을 해야 하면 도박하고, 투자해야 하면 투자하고, 은행을 털어야 하면 은행을 털다가, 죽기 직전 한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모든 허물을 씻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일찍 예수님을 믿고 계속 다른 사람을 섬기다가 마지막에 예수님께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쪽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마태복음》 20장을 여러분에게 풀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마태복음》 20장을 제가 가장 잘 해석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백 배를 얻습니다. 그러나 백 배에 대한 모든 사람의 견해와 판단 기준은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하는 일마다 매우 불운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든 번성한다면 이것이 백 배를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에는 1원이었는데 지금은 100원이 되었다면, 돈의 관점에서는 100배 오른 것입니다. 예전에는 한 사람만 섬겼는데 지금은 100명을 섬기고, 나중에는 1만 명을 섬긴다면, 도대체 어느 것이 더 이익이겠습니까? 우리는 좁은 판단 기준을 제거해야 합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그가 품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들어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태복음》 20:1-7)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퇴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포도원 깊은 곳까지 들어가 일했고, 나중에 들어간 사람들은 얼마 걷지도 않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퇴근할 때는 나중에 들어간 사람들이 먼저 나와 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마지막에 나와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기업을 운영한다면 기업은 분명 망할 것입니다. 모두가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받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이 불평했습니다.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집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어떤 사본에는 첨가됨: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0:11-16)

집주인이 자신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하여 나중에 온 사람에게 먼저 온 사람과 같은 품삯을 주었다고 해서 여러분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매우 게으른 사람이라서 일하기 싫어하고, 돼지를 기르듯 누군가가 자신을 길러 주기만 바라며, 밥은 입으로 들어오고 옷은 손만 뻗으면 입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분명 이런 일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는 먼저 와서 일한 사람이 수고하며 더위를 견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일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workholic(일 중독자)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저는 일 중독자가 아니라, 제 안에 이런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나는 무엇을 하지?” 며칠 전, 섬김을 받던 한 사람이 자신의 목회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 중에 누가 게으르지 않습니까?” 그러자 목회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선생님을 모르십니까? 선생님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게으르지 않습니다. 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일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고통입니다. 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하루 종일 집에 있고, 먹고 입는 것에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해 봅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답답해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되면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어떤 사람의 사장은 그에게 아침마다 정시에 출근하고 저녁마다 정시에 퇴근하라고 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는 때때로 일을 하다가 감정을 터뜨렸기 때문에 사장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앉아 있던 어느 날 그는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고통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온 것이 사람에게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김이 곧 은혜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 백 배를 얻기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사람을 얻는 것을 물고기를 얻는 것처럼 여기시며, 얻은 사람들을 일으켜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섬김이 곧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무개 형제님, 이제 형제님은 이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섬기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먼저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것이 은혜입니다. 일을 수고하며 더위를 견디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으로 살아가는 맛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중들어 주기만 좋아하는지 생각하면 저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장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장이 되는 것도 매우 힘듭니다. 사장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돈을 벌든 벌지 못하든 다른 사람에게 월급은 줘야 합니다.

이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만 하면 얼굴을 찌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고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앞세우시겠습니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입니다. 게으름은 악습입니다. 최근 저는 게으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 제가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학생일 때도 공부를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가 고통스러울수록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워하며 돈만 받으려고 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는 한 번도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필사적으로 일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제 월급은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을 원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속 문제를 해결하며 끊임없이 혁신하고 계속 새롭게 하면 돈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보 같은 사람은 일하기 싫어하고 즐기기만 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사는 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섬길 것인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사람과, 와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섬겨 주기를 바랍니다. 뒤에는 허리를 두드려 주는 사람, 다리를 두드려 주는 사람, 발바닥을 마사지해 주는 사람, 물담배를 피워 주는 사람이 줄지어 서 있고, 자신은 누워서 문질러 주고 주물러 주는 것을 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사장이 되면 큰 책상 하나를 놓고 크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표면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위에 있고 싶다면 반드시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왕들이 사람들을 다스리고 대신들이 사람들을 통치하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과 같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을 것인지, 사람을 닮을 것인지, 귀신을 닮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 속한 관념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아침에 들어가 일한 사람과 오후에 들어가 일한 사람과 저녁에 퇴근하면서 같은 임금을 받으면, 사람들은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일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악습입니다. 예전에 기업에서 일할 때, 제가 기술이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파고드는 정신이 강했습니다. 저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비록 출발점은 낮았지만 끝까지 견디면 제가 이겼습니다. 당시 제 사장은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자주 제게 떠넘겼습니다. 동료들과 식당에 가서 식사할 때면 그들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또 뜨거운 감자가 당신 손에 떨어졌군.” 그러나 그들은 일이 은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업무 경험이 제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했는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온몸의 느낌이 마치 천국에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진수성찬을 먹는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제가 어떤 기술이나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내서 문제를 해결하면, 걸음걸이도 달라졌습니다. 과장하자면 팔과 다리가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쾌한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문제를 해결한 뒤의 느낌은 정말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런 상쾌함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은 “뭐가 좋다는 거야?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시는데”라고 말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력이 충만하지 않은 것은 신경(腎經)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경이 부족하면 사람의 머리와 생각이 예민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말뚝 자세를 하거나 온몸에 땀이 날 때까지 운동하면 상쾌해집니다.

사람이 매일 일하기를 좋아하면 매우 번성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신경이 매우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일하기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일하기를 좋아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좋은 점이 있는데, 불면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게 부족한 것은 잠입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열 몇 시간 동안 곯아떨어졌다가 깨어나 “내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잤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매일 두세 시간만 자는 것은 아닙니다. 열 몇 시간을 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불면증이 없을까요? 매일 매우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만일 일이 은혜이고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면,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면서 신경이 잘 단련되고 몸이 잘 펴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는데,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실 그 한 데나리온은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일을 하며 몸이 단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섬김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를 기준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얻은 은혜는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르며 섬겼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섬기려면 약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깨달음에 이르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뎠는데, 나중에 온 사람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우리와 같은 품삯을 받게 합니까?”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백 배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누가 더 많이 헌신하는지 겨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심지어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어야 합니다.

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섬김을 가리키는 말이며, 포도원에서 일하는 논리 체계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이며, 인자가 이 세상에 온 것처럼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려 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중국인 운명신학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문제를 위해 기도했더니 해결되었다”, “저 문제도 해결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그가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그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기도하며 섬기기만 하면 그의 삶이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우리의 섬김만 받기를 원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은 후에는 여러분이 알아서 떠나면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20:23)

어떤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와서 섬김을 받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속 머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섬겨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누군가가 자신을 섬겨 주기만을 바라며, 그것이 매우 좋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만민 위에 머리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민 위에 머리가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병이 나서 열이 날 때면 머리도 매우 아프고 힘들지만, 저는 그때도 필사적으로 섬겼습니다. 섬기고 나면 병도 거의 나았습니다. 사실 제가 교회를 세운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제가 주일에 설교할 때 아프다거나 휴가를 냈던 것을 여러분은 언제 보았습니까? 한 번도 휴가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프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그 시절 교회도 그다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면 정말 힘듭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고열이 나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소파에 잠시 누워 있다가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하나, 둘, 셋, 일어나자! 일어나서 몸을 좀 움직이자!” 관절이 모두 쑤셨지만 주차장까지 걸어가 차를 몰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정말 버틸 수 없었습니다. 밤 8시까지 섬기고 나니 온몸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형제 두 명과 자매들이 와서 저를 섬기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밤 9시가 조금 지나자 몸이 조금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형제자매들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조금 먹었습니다. 그러자 몸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어떤 것도 백 배의 섬김을 얻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는 백 배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백 배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백 배의 축복이 된다면 예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백 배로 섬김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결국 섬긴다고 해도 이기적인 체계 안에서 섬기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유익한 일은 하고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섬김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유익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들 자체입니다.

기독교인이 이기적인 체계를 가지고 섬긴다면 계속 섬길 수 없습니다. 장차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입니다. 사람은 먼저 왔는지 나중에 왔는지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기준은 여러분이 섬기는 동기와, 여러분이 과연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에 무엇을 하려고 왔습니까? 때때로 저는 목회자들을 만나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가 “최근에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 고된 일을 벗어났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사람을 섬기는 일이 어떻게 고된 일이 될 수 있습니까?

포도원에 들어가 하루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디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포도원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온몸의 근육과 뼈가 다 풀렸다. 햇빛도 이렇게 좋으니 나는 정말 즐겁다. 하루 종일 일하며 나는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가.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지만 내가 창출한 가치를 그들도 함께 나누게 되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의 섬김의 동기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a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복음》 20:18-19)

예수님은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의 보혈로 우리는 구속받았고, 그분이 맞으신 채찍에 의해 우리는 치유받았으며, 그분의 가난함으로 우리는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기적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복뿐입니다. 자신의 치즈, 직장, 가정…… 그들은 섬김이 자신의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장조차 내려놓지 못하는데 어떻게 목숨을 바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다시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길을 가기 원합니까?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를 원합니까? 사실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매우 힘들게 지내는 형제자매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가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무너질 것 같습니다. 또 사장님에게 혼났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왜 또 사장님에게 혼났습니까?”라고 물으면, “직장에서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빨리 제 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해방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해방되기를 원하니 저는 그와 함께 해방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견디지 못하고 찾아옵니다. 사장이 또 한바탕 꾸짖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장 문제 때문에 저를 찾아옵니다. 저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말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시겠습니까? 일어나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까?”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이런 작은 것들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신 제자들도 이때까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너희도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태복음》 20:20-26)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며 많은 하인을 두는 것, 많은 사람이 바로 이런 귀족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한 아들은 예수님의 왼편에, 다른 한 아들은 오른편에 앉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좌우 정승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아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으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시중들고 섬겨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시는 것, 와인을 조금 마시며 소시민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잔은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보혈을 흘려 이 세대의 구원이 되며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는 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느냐고 하시자,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마태복음》 20:23-24)

제자들은 왜 화를 냈습니까? “왜 너희 둘이 좌우 정승이 되어야 하느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던 이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까지도 누가 큰 자인지 다투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관념이 사람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여러 왕조에서도 왕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세상에 속한 관념은 사람들 안에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내가 주원장, 조광윤, 유방을 따라 천하를 얻으면 장차 관직 하나쯤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면 평생 먹고 입는 걱정이 없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이 요구한 것은 이런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세상의 것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나라의 국민이며 하나님께 속한 제사장이고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 사람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하는 자는 많은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람을 섬기는 길을 걷지 않는다면, 비행기를 잘못 탔거나 기차를 잘못 탄 것입니다. 지하철을 잘못 탔다면 내리면 됩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잘못 탔다면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야 하니,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원래는 바벨탑으로 날아가야 했는데, 어떻게 나와 함께 이곳으로 날아오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온 것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여 이 세상에서 백 배의 섬김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이유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되면 화려하고 영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앞뒤로 따르고 경호원까지 두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런 것은 사람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모두 세상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나머지 열 제자도 모두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셨지만 조급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조급해해야 할 사람은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는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가? 나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영광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세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몸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니고 다닌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도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 닿기만 해도 그 사람이 치유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추구한 것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 곧 예수님을 닮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는다면,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많은 사람이 그분을 따랐던 것처럼 될 것입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마태복음》 20:30-34)

예수님에게 백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발명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 만지시자 나았습니다. 첨단 기술보다 더 첨단 기술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의 분량을 가진다면, 우리의 섬김이 하늘에서 오는 능력으로 가득 차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가진 용사들을 일으켜 이 세상에 보내기 원하십니다. 그들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며,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숨을 내어놓으면 어떻게 살아갑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목숨을 내어놓아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는 사람은 생명을 잃습니다. 이제 이해했습니까?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들을 정말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이 여러분에게도 나타나기를 원합니까? 원한다면 반드시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오래된 신자들에 대해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저와 함께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바로 이 문제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직장이 가장 중요하고, 가정이 가장 중요하며, 섬김은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고 나서야 갑자기 “나는 예수님을 그다지 닮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가 직장을 구하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어리석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이런 작은 일들을 위해서만 산다면 세상의 왕처럼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를 잘못 따라온 것입니다! 저는 조광윤도, 유방도, 조조도 아니며, 유비나 주원장도 아닙니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그를 섬긴 후 사라졌습니다. 반년이 지나 돌아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왜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 제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까?” 참 좋은 질문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 내는 결과는 그 사람 마음속의 반응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는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물었습니까?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고, 우리가 기도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도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도 당신 같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신선(神仙)을 찾아가고 싶든지 마음대로 찾아가십시오.”

결론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와서 유익만 얻으려고 하고 자신을 헌신하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큰 유익은 자신을 헌신하고, 섬김 가운데 성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왔는지 나중에 왔는지에 따라 순서를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섬기는 태도에 따라 순서를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앞선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모두 예수님처럼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맹인이 보게 되고, 다리를 저는 사람이 걷게 되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그분의 칭찬을 받고, 충성되고 선한 종이 되어 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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