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하 총 24장을 함께 요약해 보겠습니다. 25장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겠지만, 사무엘하는 25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무엘하를 요약한다면 무엇을 정리해 낼 수 있을까요? 요약하고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많은 것들은 자기가 발명해 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주 말하듯이, 초등학교 시험 볼 때 글자를 하나 스스로 발명해 내면 그것은 오탈자일 뿐이고, 살아가는 법칙을 스스로 발명해 낸다면 그것은 틀린 법칙일 것입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평생 배우지 않고 얻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대단해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철저히 배우고, 그것을 다시 요약하고 승화시킬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5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사람인데,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중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점을 여러분도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사람은 평생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세상사를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무엘하 24장 전체를 요약하면서 정한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인생이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꼭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매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뜻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쏟으라
인생의 비극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독선에 있는데,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점심때 한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마음이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 쪽 시간으로는 마침 한밤중이었는데, 왜 괴로웠을까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려 들면 감정이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이 주제로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괴로움’은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고, 자기를 너무 의식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고, 세상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등 온갖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괴로워할까요? 사실 사람이 스스로 괴로워하기로 작정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선생님! 저는 학문 연구도 정말 잘하는데, 꽤 대단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깨닫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물론 그가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뉘앙스가 그러했습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제가 섬기는 분들 가운데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매번 각양각색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책도 많이 읽고 학위도 많이 따고 오랫동안 연구를 해 와서 겉보기에는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며 저는 ‘그건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배우고 해 온 일에는 많은 공을 들였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를 거쳐 사회에 나와 일하기까지 매사에 성실하게 공을 들였듯이, 만약 그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에 썼다면 결코 부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엉망이 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시간을 들이고 힘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한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줄 아십니까? 예를 들어, 전기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목공 일도 잘하겠습니까? 목공을 잘한다고 미장 일도 잘하겠습니까? 미장을 잘한다고 회반죽을 벽에 잘 바르겠습니까? 벽에 바르는 것은 그렇다 치고, 피부관리실에 가서 사람 얼굴에 발라 보십시오. 사람 얼굴을 망쳐 놓으면 분명 혼쭐이 날 것입니다. 회반죽은커녕 밀가루를 사람 얼굴에 발라도 안 됩니다. 자기가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엉뚱한 곳을 짚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말 공을 들이고 계십니까? 도대체 얼마나 힘을 쏟고 계십니까? 모든 시간을 선악을 분별하는 데 다 써 버린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힘쓰고 공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꿰뚫어 알고 깨닫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습니까? 물론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온전히 알게 되었는지는 저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왕이 되기 전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고,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나중에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후회만 하고 고치지 않는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사실 사람은 평생 배우지 않는 것이 거의 없으며, 타고난 감각이라는 것은 몇 번째 감각이든 다 엉터리 감각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내 육감은 정말 정확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정확하냐고 묻습니다. 어쨌든 저는 어떻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는 가장 잘 압니다. 눈이 자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보기에 반듯하고 좋아 보여도, 레이저 줄자로 재어 보면 기울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완벽해 보이지만, 실제로 설치해 보면 비뚤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측정 계측기가 없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계측기는 매우 심오한 학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감각만 의지해서는 결코 정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은 배워야 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열심히 힘써 배우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면 이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사무엘하에서 다윗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과 제가 읽고 다윗이 어떻게 행했는지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보고 하라고 하면 분명 비뚤어지게 할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행했는데, 우리 손에 들어오면 엉망으로 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 방향을 향해 제가 하나하나 짚어 드리겠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하나씩 헤아려 보십시오.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성경이 이미 여러분과 저에게 이것을 계시해 주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로 결단합시다. 우리 자신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합시다. 아멘!
저녁 식사 때 몇몇 형제자매들, 그리고 한 성도의 부모님과 함께 대화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운전에는 운전의 규칙이 있어서 규칙대로 운전하지 않으면 보나 마나 딱지를 떼이게 된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범칙금 통지 문자가 왔고, 벌금을 내고 벌점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딱지를 떼고 내일도 딱지를 떼신다면 정신이 멍해질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규칙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기껏해야 그에게 벌금 딱지 정도만 주셨을 뿐, 면허를 취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면허를 취소당하고 맙니다. 면허도 없이 살아간다면 인생은 완전히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윗을 배웁시다. 사무엘하를 공부할 때 어떤 형제자매는 제게 와서 “선생님! 이번 장 말씀은 저를 두고 하신 말씀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얼마 후 제가 기억하느냐고 물어보면 “잊어버렸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들을 당시에는 큰 감동을 받았지만 삶을 고치지 않았고, 지나고 나니 감동조차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벌금 딱지를 자초하지 말고, 면허를 취소당하지 마십시오.
다윗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다윗 왕이여! 제가 당신의 원수 사울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의 반응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원수를 누가 죽여 주었다면 당장 기뻐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심코 올무에 걸려 넘어가면서도 자기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분은 내 장인이자 내 주인이요, 나의 왕이다! 네가 감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단 말이냐!’라고 생각하며 사울을 죽인 그 사람을 처형했습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저는 참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 다윗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저는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매 순간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었고, 매 순간이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될 수 있을까요? 다윗은 사울을 위해 애가를 지어 백성들에게 부르게 가르쳤고, 그 애가를 책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사무엘하 1:19)
이것은 비통함과 안타까움이지, 기뻐 날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와! 신난다, 드디어 내가 왕이 될 차례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각은 일반 사람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의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였다면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배를 들며 축하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충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곧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사울처럼 어리석게 행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자 다윗의 왕이었습니다. 사적인 감정으로 대할 문제가 아니며, 그를 직접 죽여서도 안 되고, 다른 이가 죽인 것을 보고 기뻐 축하해서도 안 됩니다.
왕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2장에 이르러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시글락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 유다의 한 성읍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모든 일이 참으로 신기하게 풀렸습니다. 다윗은 조급하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려 하지 않고, 먼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의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상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왕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업이나 작은 사업체의 리더가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후대하고 조급하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 하지 않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범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고 사울의 집안은 점점 쇠약해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후대하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깊은 감동이 오지 않습니까? 다윗은 원래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의 왕으로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거나 침범하지 않았고, 마침내 온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다윗을 왕으로 영접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조급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들을 돌아보십시오. 남에게 충분한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종일 남의 것을 탐내고 이득만 취하려 합니까? 다윗은 아직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부터 중심에 목양의 자세를 품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시고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것은 그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안락을 누리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책임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다스렸습니까? 아주 훌륭하게 다스렸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싸워 주십니다. 주변의 많은 왕이 다윗에게 굴복했고, 다윗의 이름만 들어도 기가 꺾였습니다. 그 시대 다윗 왕조가 가장 강력한 왕조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토록 높은 명성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겸손을 배우며 스스로를 낮추고 천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사무엘하 6:20-22)
어떤 사람들은 겸손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체면을 차리려 할수록 저는 더욱 체면을 세워 줄 수 없습니다. 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였습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사무엘하 6:6-7)
웃사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비극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돕겠다며 “하나님, 제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망하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사무엘하 6:22)
그리하여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 들일 때 어린아이처럼 언약궤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었고, 여섯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이 이를 보고는, 다윗의 춤이 왕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마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민소매 셔츠를 입고 길거리 춤을 추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워 왕의 체통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의 체통은 매우 고귀하지만, 언약궤 앞에서 다윗은 스스로를 낮고 천하게 여겼습니다.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언약궤로 인해 웃사가 죽임을 당한 후, 가드 사람 오벧에돔은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것은 시한폭탄을 집으로 들여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다윗처럼 대단한 사람도 언약궤를 자기 집으로 가져오겠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오벧에돔은 언약궤를 집으로 모셔 들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를 통해 깊은 교훈을 얻었고, 이후 언약궤를 모셔 들이며 스스로를 낮추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언약궤가 사람을 죽였으니 빨리 치워 버려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겁이 더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언약궤를 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했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사무엘하 7:2)
그러나 다윗이 받은 응답은 하나님의 아쉬움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양치는 양 떼를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사무엘하 7:4-16)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은혜이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도록 격려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이것이 어찌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뜻하지 않게 이처럼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니,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 마음을 품는 것은 아무에게나 오는 복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결단했을 때부터 이것은 너무나 큰 은혜였고, 그 은혜는 넘치도록 풍성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았을 때 한 고백과 반응은 참으로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겠고,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마 “만세!” 하고 소리치며 샴페인과 좋은 술을 따서 축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반응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까”(사무엘하 7:18-19)
단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마음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토록 후대하시며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사무엘하 7:22)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사무엘하 7:26)
때로는 제 마음에 큰 안타까움이 듭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개인 사업이나 부업을 할 때는 열정이 넘쳐나면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는 ‘그게 뭐 대수냐’ 하며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더라도,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을 주신다면 여러분은 “제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여러분과 이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다윗 왕처럼 황송한 마음으로 “제가 누구이기에, 제 집이 무엇이기에”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배운 것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를 다시금 깊이 읽어 보십시오. 다윗을 본받는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윗 왕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가셔서 그를 이기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귀한 보배로 삼으라
여러분은 이미 보배를 만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배를 만진 후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보배로 여기고 계십니까? 저와 함께 이렇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얻는 것을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깁니다!”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떨 때는 이러고 어떨 때는 저러며, 만약 거꾸로 뒤바뀐다면 더욱 비참해집니다! 만사를 보배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설물처럼 여겨서, 세상 것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쉽게 내려놓으며 “하나님, 며칠만 휴가 좀 내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 휴가를 평생 계속 쓰십시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귀한 보배이심을 깨달았고, 저는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참으로 목숨까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속에 진정한 최고의 보배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겪을 때도 “하나님! 저를 기억하시고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저의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 있으니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다윗은 언약을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형제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을 데려와 돌보았는데, 이는 이해관계를 따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행한 보답이었습니다! 승리하는 삶은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복됩니다. 다윗은 늘 깨어 있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한순간 깨어 있지 못했을 때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옥상에 서 있다가 뜻하지 않게 우리아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임신시켰으며, 나아가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처리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원수 대적에게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독할 큰 기회를 주고 말았습니다. 이때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끝장났다, 이제 완전히 망했다!”라고 포기해 버린다면 정말로 완전히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이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내가 죄를 범했으나 기꺼이 회개하겠습니다. 비록 내가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나도 형편없고, 내 하나님도 형편없다”라고 말한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비록 나는 부족하고 넘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제가 기꺼이 회개합니다!”라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았고 그런 비극들이 가정에 일어났을 때에도 다윗은 그 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살해당했을 때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을 참으로 정확하게 찾아갑니다! 한 집안의 형제자매들 중 틈이 보이는 사람을 골라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지혜를 보십시오. 그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다윗의 왕위가 친아들 압살롬에게 빼앗겼을 때 그의 반응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왕위가 무엇이 대수인가, 내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누군가 자기를 저주하며 욕할 때도 “욕하려거든 욕하라지. 내 몸에서 난 친아들도 나를 해하려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라고 여겼습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가 몇 마디 훈계만 해도 굳은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왕위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저 하나의 책임으로 여겼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왕위를 지나치게 무겁게 여기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지혜입니다.
다윗은 왕위를 잃고, 모욕을 당하고, 배신을 겪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반응을 보였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다윗이 피난길에서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반응을 보시고 ‘됐다, 시험 통과다’ 하시며 다윗의 왕위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반드시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결코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지혜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방식을 지혜로 여긴다면 완전히 망가지고 맙니다.
다윗의 내면에 있는 논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차근차근 정리해 봅시다. 사무엘하 18장에서 다윗 중심에 있는 논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다윗이 얼마나 대단한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 내면의 논리를 정리해 보셔도 저 역시 꽤 쓸 만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목양하고 백성의 마음을 되돌렸으며, 온갖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모든 방면에서 빈틈없이 처리해 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처리했고, 훗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사무엘하 22장을 깊이 읽어 보시면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었는지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것인가, 합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백성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여론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힐 것인가를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평생의 삶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느냐, 가라앉히느냐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늘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다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분명 매우 비참해질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남의 재산과 유업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주변을 유심히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 중 어떤 형제의 삼촌은 외할머니의 재산을 탐내다가 결국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삼촌도 외할머니의 재산을 탐내다가 지금은 찢어지게 가난해졌습니다. 또 다른 형제의 동생은 나이가 예순이나 되었는데도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돈을 늘 탐내다가 온몸에 질병을 얻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으며, 제멋대로 머리를 굴린다고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그 대가를 지불하려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입 시험을 준비하고 일터에서 일할 때 쏟았던 그 열정과 책임감을 쏟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된다면 여러분의 평생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겠습니까!
열심히 배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지, 체면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자기의 의를 세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