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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전도서 7장 -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

2018-12-14 48,126 传道书 智慧 死亡 敬畏神 愚昧 一系列的选择 喜欢解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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传道书07章-智愚之别
  • 1 名誉强如美好的膏油;人死的日子胜过人生的日子。
  • 2 往遭丧的家去,强如往宴乐的家去;因为死是众人的结局,活人也必将这事放在心上。
  • 3 忧愁强如喜笑;因为面带愁容,终必使心喜乐。
  • 4 智慧人的心在遭丧之家;愚昧人的心在快乐之家。
  • 5 听智慧人的责备,强如听愚昧人的歌唱。
  • 6 愚昧人的笑声,好像锅下烧荆棘的爆声;这也是虚空。
  • 7 勒索使智慧人变为愚妄;贿赂能败坏人的慧心。
  • 8 事情的终局强如事情的起头;存心忍耐的,胜过居心骄傲的。
  • 9 你不要心里急躁恼怒,因为恼怒存在愚昧人的怀中。
  • 10 不要说:先前的日子强过如今的日子,是什么缘故呢?你这样问,不是出于智慧。
  • 11 智慧和产业并好,而且见天日的人得智慧更为有益。
  • 12 因为智慧护庇人,好像银钱护庇人一样。惟独智慧能保全智慧人的生命。这就是知识的益处。
  • 13 你要察看 神的作为;因 神使为曲的,谁能变为直呢?
  • 14 遇亨通的日子你当喜乐;遭患难的日子你当思想;因为 神使这两样并列,为的是叫人查不出身后有什么事。
  • 15 有义人行义,反致灭亡;有恶人行恶,倒享长寿。这都是我在虚度之日中所见过的。
  • 16 不要行义过分,也不要过于自逞智慧,何必自取败亡呢?
  • 17 不要行恶过分,也不要为人愚昧,何必不到期而死呢?
  • 18 你持守这个为美,那个也不要松手;因为敬畏 神的人,必从这两样出来。
  • 19 智慧使有智慧的人比城中十个官长更有能力。
  • 20 时常行善而不犯罪的义人,世上实在没有。
  • 21 人所说的一切话,你不要放在心上,恐怕听见你的仆人咒诅你。
  • 22 因为你心里知道,自己也曾屡次咒诅别人。
  • 23 我曾用智慧试验这一切事;我说,要得智慧,智慧却离我远。
  • 24 万事之理,离我甚远,而且最深,谁能测透呢?
  • 25 我转念,一心要知道,要考察,要寻求智慧和万事的理由;又要知道邪恶为愚昧,愚昧为狂妄。
  • 26 我得知有等妇人比死还苦:她的心是网罗,手是锁链。凡蒙 神喜悦的人必能躲避她;有罪的人却被她缠住了。
  • 27 传道者说:“看哪,一千男子中,我找到一个正直人,但众女子中,没有找到一个。”我将这事一一比较,要寻求其理,我心仍要寻找,却未曾找到。
  • 28
  • 29 我所找到的只有一件,就是 神造人原是正直,但他们寻出许多巧计。

2018년 성경공부 녹음:

인생은 일련의 선택의 결과이다

《전도서》를 많이 읽으면 사람이 지혜로워집니다. 읽지 않으면 많은 일을 꿰뚫어 볼 수 없고, 꿰뚫어 보지 못하면 삶을 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고, 계속해서 여든이 넘도록 살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 살아낸 결과를 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이렇게 살게 되었지?” 이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란 말입니까?

사람의 일생은 일련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살고 있다면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은 매우 비참하게 살면서도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입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이 보통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할 때는 나름대로 아주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보는지는 완전히 무시합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자매를 섬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자매님을 어떻게 보는지 아세요? 우리가 자매님을 보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매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지고 싶은지 모릅니다.” 이 말을 듣고 누구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매도 물론 그랬습니다. 자매는 오히려 제게 반문했습니다. “왜 저를 그렇게 보세요?” 그런데 자매는 정말 자신이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자매님은 자신을 어떻게 보세요?” 자매는 자신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매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한 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모두 선택적 기억의 결과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고도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면, 자신을 조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을 변화시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아무것도 바꿀 필요 없이 자신의 본성대로 계속 살아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를 열어 지혜를 집어넣을 수 없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만 해도 저는 섬길 수 없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제가 포기한다면, 더 이상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모두 자신의 일련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쌍둥이 두 사람이 평생을 살았고, 생김새도 거의 똑같은데 왜 마지막에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게 될까요? 그 이유는 각자의 일련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다르면 결말도 달라집니다. 사람은 평생 이런저런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일들 앞에서 어떻게 선택하느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택할 때 자신이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망신을 당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지극히 어리석은 일을 해 놓고도 당사자는 자신이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섬기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람은 지혜를 가져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고 싶다면 《전도서》 7장을 진지하게 읽으십시오. 이 장에는 지혜와 관련된 말씀이 가득합니다. 지혜란 무엇인지, 어리석음이란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지혜롭게 되고 어떻게 어리석게 되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늘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사람에게 잘 설명하고 잘 해명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실 무엇을 그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설명하고 또 설명하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오늘 어떤 사람이 제게 전화를 걸어 300만 위안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위대한 투자 계획을 제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보니 믿음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게 300만 위안이 있다고 해도 그에게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보통 설명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저는 돈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돈이 없는데 무엇을 설명하겠습니까? 설령 돈이 있어도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300만 위안이 있다고 자랑했잖아요. 친구가 빌려 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지 않으면 좀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그 사람은 당신에게 좋은 사업에 투자해 달라는 거잖아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꼭 설명하려고 하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저라면 그에게 직접 “관심이 없습니다” 또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습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설명이란 모든 일을 아주 분명하게 말하려는 것이지만, 이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이리저리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말하고 끝내는 편이 낫습니다.

“의인이 의를 행하다가 도리어 멸망하고 악인이 악을 행하면서도 장수하는 일이 있나니 이것도 내가 헛된 날에 보았노라.” (《전도서》 7:15)

솔로몬도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지혜와 모든 일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도 설명하고 저것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많은 일은 너무 복잡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왜 밥을 먹어야 합니까?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왜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픕니까?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계속 세 가지 질문만 더 하면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만, 왜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자마자 제게 “왜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는 다시 묻습니다. “왜 이유가 없어요?” “그냥 이유가 없어요. 저는 예수님을 믿고 싶어서 믿는 거예요!” 이렇게 대답하면 그는 더 이상 제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물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이것저것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곱 가지 질문을 하면 저는 한두 가지 질문에만 대답하고, 세 번째 질문부터는 더 이상 묻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이유를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믿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주님을 믿는 일이 한눈에 보아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면 오히려 조심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합리적인 것만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유를 찾지도 말고 인간적인 이치도 찾지 마십시오. 그저 믿으면 복잡한 문제가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은 많은 꾀를 찾아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은 많은 꾀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에게 한 가지만 하게 하셔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원래 삶은 아주 단순한데, 사람은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꾀는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되고, 다른 열매는 모두 먹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왜 먹으면 안 됩니까? 정말 먹으면 죽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조금 의심이 생기자 결국 뱀에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왜?”라는 한마디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열매를 먹음으로 인류는 죄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꾀를 찾아낸 것은 ‘왜?’라고 묻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늘 “왜?”라고 묻기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사변의 배후에는 꼬치꼬치 파고드는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의 배후에는 또 꼬치꼬치 파고들기 좋아하는 영이 있습니다. 정말 흥미롭습니다. 제가 쫓아낼 때는 한 쌍을 함께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는 꼬치꼬치 파고드는 영이고, 하나는 꼬치꼬치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영입니다. 이 일은 제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계속 제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저는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왜?”라는 질문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왜 당신은 충성된 사람인가요? 어떻게 당신이 충성된 사람일 수 있나요? 앞으로 불충성하면 어떻게 하려고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고 나면 사람은 혼란에 빠집니다. 사실 이런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은 귀신과 대화하면 반드시 진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귀신이 “왜?”라고 한 번 물으면 여러분은 정신을 잃습니다. “그러게, 왜지?”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마귀에게 속게 됩니다. 절대로 귀신과 대화를 나누지 마십시오. 귀신과 대화하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귀신은 사람을 계속 “왜?”라는 질문 속으로 이끌어 가기를 좋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세상의 일을 보며 많은 의문을 품습니다. 선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고 악한 사람은 오히려 오래 사는 일이 너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생과 사가 반복되고 수고와 근심이 많다는 것도 보게 됩니다. 닥쳐오는 재앙과 사고, 불공평한 일들도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왜?”라고 묻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형들에게 해를 당했든,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든, 그는 한 번도 “왜 나를 여기로 팔았습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믿음이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수년 동안 물을 마시면서 물이 H2O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사람이 물이 화학 원소라는 것을 안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왜 H2O냐고 계속 묻는다면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이거 폐식용유로 만든 기름 아닙니까?”라고 묻고 주방에 가서 확인했는데 정말 폐식용유라면 밥을 먹을 수 없고 굶어야 합니다. 저는 아무튼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복잡하게 만들면 매우 곤란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들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17-18)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본래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어리석은 행동: 강탈과 뇌물

“강탈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하고 뇌물은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7:7)

납치하고 강탈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장쯔창이라는 사람이 리카싱의 아들을 납치하고 10억 홍콩 달러를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리카싱은 신고하지 않고 10억 홍콩 달러를 그대로 주어 아들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장쯔창은 그 돈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써 버렸고, 결국 다시 몹시 가난해져 또 납치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강탈한 돈이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강탈의 배후에는 악한 영이 있고, 악한 영은 사람을 부추겨 많은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합니다. 10억 홍콩 달러가 있어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족하게 됩니다.

뇌물은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합니다. 강탈과 뇌물은 모두 어리석음의 징조이므로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올바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잘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가 선물을 보내지도 않고 뇌물을 주지도 않으며 이런 어지러운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뇌물을 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결말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며,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을 신뢰하면 아주 단순해집니다. 제 생각을 따라오면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면 다른 관계를 찾아야 하겠습니까? 가난하게 살겠습니까? 강탈이나 뇌물이 필요하겠습니까?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도서》 7:18)

예를 들어 2016년 항저우 G20 정상회의 이후 집값이 급등한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이 큰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억지로 구하지 않으면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해서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사방으로 사람을 찾아 부탁합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갈 수 있는 학교에 가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처리하고, 처리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의 학교 문제는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됩니까?

자녀의 학교 문제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돈이 필요합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마련한 뒤에도 관계를 만들고 뇌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자녀가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돈을 빌려 사업을 합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하면 미치기 시작하여 날마다 이런저런 일을 벌입니다. 사람이 많은 일을 만들어 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에 조급하게 노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전도서》 7:9-10)

저는 많은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많은 일을 만들어 놓으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급해지고 화가 나며, 점점 더 괴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고는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옛날도 여러분이 걸어온 길이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삶에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느끼며, 날마다 고민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을 보면 더욱 화가 나고 조급해집니다. 삶은 원래 아주 단순한 일인데,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오늘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는 사람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지식의 유익입니다.

의를 지나치게 행하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우선순서를 매우 분명히 알고, 일의 결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의 시작만 중요하게 여기고 결말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시작이 아무리 찬란하고 영광스러워도 결말이 무너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의를 지나치게 행합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하늘을 대신해 의를 행하려고 합니다. 수호전의 양산박 영웅들을 보십시오. 그들 각 사람의 결말은 모두 비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늘을 대신해 의를 행해야만 하실 만큼 여러분을 필요로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여러분이 억지로 곧게 만들려고 합니까? 사실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한 왕조가 다른 왕조로 바뀌어야 할 때 어떤 사람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음입니다.

목양할 때 어떤 사람은 목양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곳을 찾아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너무 작습니다. 더 큰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가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단체방에서 내보냅니다. 자신에게 그 능력이 없으면 감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는 굳이 저와 따지며 말합니다. “왜 목양하지 못합니까? 어떻게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까?” 어느 단계의 지도자이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왜 굳이 하려고 합니까? 의를 지나치게 행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어찌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겠습니까?

“너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너는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 하느냐.” (《전도서》 7:16-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매우 지혜롭습니다. 이것도 좋다고 붙잡고 저것도 놓지 않으며 모든 것을 꼭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한 가지만 붙잡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이 어떻게 일했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평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늘 많은 꾀를 찾고, 이것도 설명하고 저것도 설명하면서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명예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이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아서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며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7:1-5)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전도서》 7:8)

여기에는 “더 낫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더 낫다는 것은 이쪽이 저쪽보다 좋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압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데 왜 한 사람은 이기고 다른 사람은 집니까? 이기는 사람은 매 수마다 가장 중요한 수를 두기 때문입니다. 매번 가장 중요한 곳에 둔다면 어떻게 이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수 한 수 둘 때 가장 중요한 수는 하나이며, 우선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때때로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간증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말하더니, 다음 주에 조금 일이 생기자 예배에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의아합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직도 우선순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걸까?” 제가 주님을 믿는 과정에서 우선순서는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제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환난에서 건져 주시고 제 소망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후 경외하는 마음이 늘 제 안에 머물렀고, 저는 하나님을 매우 경외합니다.

제가 1991년 말부터 주님을 믿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모든 주일을 합치면 이미 천 일이 넘습니다. 소그룹 성경공부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성경공부 인도자가 엉터리로 가르칠 때조차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매주 성경공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회의 규칙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저도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서도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소그룹 인도자가 성경공부를 잘 인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 제가 소그룹 인도자가 되면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경험을 배웠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 모르는 상사를 만났을 때도 상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장점을 배워 제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그러므로 일의 우선순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계속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이 낫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로채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제 집 인테리어를 도와주면서 이것도 돈을 받지 않고 저것도 돈을 받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과 노동을 들였으니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져도 되는 이익은 반드시 챙기고, 가져서는 안 되는 이익도 챙깁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명성이 좋지 않은데 은사가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명예는 개인의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노점에서 파는 물건 같은 브랜드라면 여러분의 인생도 노점 물건 같은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이 BMW나 벤츠 같은 명품 브랜드라면 명품 브랜드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명품은 판매하기도 쉽습니다. 직장을 구할 때 여러분의 명성이 좋지 않고, 성격이 불같으며, 말투가 거칠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로채기를 좋아한다면 어느 회사도 여러분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성이 좋지 않은데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더욱 심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렇게 보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명예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뇌물을 주는 일을 해야 합니까?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람을 강탈해야 합니까?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비굴하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합니까?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내 명예를 돌보지 않고 그런 이익을 챙겨야 합니까?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생과 사를 꿰뚫어 보았으니 사는 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는 것이 단순한 일이라면 단순하게 살면 됩니다. 직장이나 압박 같은 것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도서》 7:1)

사람은 죽으면 세상에서의 수고가 끝납니다. 많은 사람은 사는 것을 너무 중요하게 여깁니다. 병에 걸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니며, 급한 병에 걸리면 아무 의사에게나 매달립니다. 결국 속고 사기를 당합니다. 생과 사를 꿰뚫어 본다면 병이 있으면 있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마흔 살 때 코피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것은 비인두암의 가장 뚜렷한 증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선택했습니다. 가정과 결혼과 아들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녀와 손주에게는 각자의 복이 있습니다. 오늘까지도 저는 언제나 이 세상을 떠나 빨리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은 지극히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삶이 두렵겠습니까?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 아닙니까! 이런 관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수준이 낮다면 분명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아서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죽는 날이 사는 날보다 낫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생과 사를 꿰뚫어 봅니다. 생과 사를 꿰뚫어 본 결과는 아주 가볍게 사는 것입니다. 최근 저는 아름다운 관 하나를 사려고 합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찾아와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침도 놓지 않고 부항도 뜨지 않고, 그저 관 안에 잠시 누워 보게 하고 작은 추도식을 열어 주려고 합니다. 관에서 다시 나오면 모든 문제가 갑자기 작아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과 사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면 얼마나 가볍습니까!

사람이 평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흔, 여든이 되어 암에 걸리고도 죽고 싶지 않다며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수고와 근심, 질병의 고통을 아직 충분히 맛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꿰뚫어 본 사람은 그것이 결코 좋은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생과 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살려고 한다면 어리석음에서 한 발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며.” (《전도서》 7:3)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사람이 슬퍼할 때 오히려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편도 여행을 한 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웃고 떠들며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삶에 압박이 있다면 그 압박 속에서 기뻐하기를 선택하십시오. 제가 보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7:4-5)

사람은 즐거울 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초상집을 경험하면 갑자기 깨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매우 쉽게 믿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대단한 사람이에요! 정말 돈을 잘 버네요. 앞으로 반드시 부자가 될 거예요.”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큰돈을 잃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어쨌든 제게 와서는 듣기 좋은 말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다면 저에게 오지 말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제게 왔다면 저는 어디가 잘못되었고 어디에서 성장해야 하는지를 직접 말할 것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자주 찔림을 받으면 훨씬 더 깨어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의 결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의 시작을 너무 중요하게 여겨 그 일을 통해 얻어야 할 결과가 무엇인지 잊어버립니다. 제가 한 자매를 단체방에서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제게 따졌습니다. “어떻게 그 자매를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까?” 그는 제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은 내보냄을 당한 자매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의 결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일 자체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일을 하지만 결말은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영업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품을 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왜 사야 합니까? 그들은 여러분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영업을 한다면 사람들에게 바로 제 제품을 사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그 사람의 필요에서 출발해 제품을 분석해 줄 것입니다. 분석이 끝나면 그는 자연스럽게 제품을 사게 됩니다. 영업을 하려면 먼저 고객의 필요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작정 제품을 사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입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습니다. 시작할 때 아름다운 소망을 품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고, 일을 완성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일을 했지만 한 가지도 완성하지 못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백 번 연애를 했어도 결혼하지 못했다면 헛된 연애를 한 것과 같습니다. 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모든 일을 목표 지향적으로 합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전도서》 7:8)

많은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면서도 일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전도서》 11장 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양식을 물 위에 던지는 일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산을 아주 분명하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합리적이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결과가 자신이 계산한 것과 다르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십일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9위안이 10위안보다 많습니까, 적습니까? 당연히 9위안이 10위안보다 적습니다. 그러나 저는 9위안이 10위안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십일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헌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헌금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보다 부유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돈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에는 사람이 많지만 헌금을 드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얼마 전 한 목회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교회에는 중국에서 온 형제자매가 40명 넘게 있지만 헌금을 드리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도 형제자매들에게 헌금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교회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왜 저는 9위안이 10위안보다 많다고 생각합니까? 이 9위안이 투자라면 반드시 수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10위안은 저절로 가치가 오르지 않고,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제가 돈을 매우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은 좋아합니다. 돈을 버는 일은 제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와 오래 교제하면 제가 하는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정말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말하는 뜻은 무엇을 했는지를 보고 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말고, 그 일을 해낸 결과를 보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치유와 해방을 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하면 그 효과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작년에 제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10년 전의 일이 모두 어제 일처럼 나왔고, 온 사람이 완전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고 치매 증상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러나 1년 동안 기도로 싸운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결과가 너무 좋았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지금 어머니의 정신은 매우 맑습니다. 어느 날 제 누나가 가방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방을 의자 위에 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 찾아보니 정말 의자 위에 있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장갑을 끼고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고, 매우 힘차게 일합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100미터만 걸어도 세 번씩 쉬어야 했는데, 지금은 1킬로미터를 걸어도 쉬지 않습니다.

이런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어머니의 육체에 속한 정욕과 욕심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의 육신을 배려한다면 어머니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어머니의 육신을 다루었고, 그 결과 어머니는 치매 증상에서 벗어났습니다. 당시 제가 어머니의 육신을 다룰 때 곁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제가 노인을 학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어머니를 치매 상태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은 노인의 육신을 지나치게 배려하다가 결국 노인을 죽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어머니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좋아했고 몸에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분이 작년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온 사람이 혼란스럽고 흐릿해졌으며 많은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목표와 결과를 향해 일한다면 반드시 인내하게 됩니다. 인내하는 마음은 교만한 마음을 이깁니다. 교만한 마음이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결과는 무너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제 동생이 자신이 이 가정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여러분을 존중해야 합니까? 돈이 조금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이는데 어떻게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결과를 향해 일한다면 믿음을 굳게 하고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하게 됩니다. 제 성격에는 일을 반드시 완성하려는 끈기가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반드시 치매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건 당신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결과를 원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쳐 쓰러질 정도로 몰아붙이고 거의 무너질 지경이 되면서도 결과를 향하지 마십시오. 일을 결말을 향해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를 얻었다는 매우 중요한 표시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마음에 두지 말라

저는 자주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을 겪습니다. 제가 한 말이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듣기 좋지는 않지만, 저는 여러분이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결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가 여러분을 저주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힘을 다해 자신을 변명합니다.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마음에 품고 괴로워하기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신하가 다윗을 저주하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도 나를 대적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내버려 두라.” 저주하면 저주하는 대로 두고, 미친 척하고 어리석은 척해도 상관없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을 너무 중요하고 존귀하게 여기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존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한 마리 개처럼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높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여러분이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제 속마음을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양하는 과정에서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목양의 열매가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한 후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그가 여러분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목양을 견딜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금 찌르기만 해도 털을 곤두세우고 달려들어 물려고 한다면 목양하지 마십시오. 목양할 수 있는 사람은 목양하고, 목양할 수 없는 사람은 억지로 붙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목양해야 하는 대상은 양이지 늑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님의 일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곧게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조금 생겼다고 해서 크게 놀랄 필요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근을 만났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게 무슨 형편없는 곳인가? 하나님께서 눈이 먼 것 아닌가? 여기가 어떻게 약속의 땅인가?”라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살펴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후 들어가게 하신 곳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60만 명이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왜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볼 수 없었단 말입니까? 40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살피고 깨달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를 이해하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아주 단순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공과를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3-14)

어떤 사람은 실직해 집에 있으면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집에서 흐리멍덩하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질 때까지 잠을 잡니다. 그러나 실직한 때야말로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는 일하느라 바빠 시간이 없으니, 실직한 시간을 붙잡아 자신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매일 돈을 벌느라 바쁘더라도 기뻐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신 것은 사람이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죽은 뒤에 생각할 일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도서》 7:29)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많은 꾀를 찾아내는 것은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매우 고달픕니다. 자신의 두 손을 의지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받습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날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뇌세포를 모두 혹사시킨다 해도 여전히 고달플 뿐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피곤합니다. 수고 가운데 기뻐하는 법을 배웁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본문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아서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며.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느니라.

7: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7:6 우매한 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7:7 강탈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하고 뇌물은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7:9 너는 마음에 조급하게 노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7:11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7:12 지혜는 그늘이 되고 돈도 그늘이 되나 지식이 더 나은 것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7:13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7:15 의인이 의를 행하다가 도리어 멸망하고 악인이 악을 행하면서도 장수하는 일이 있나니 이것도 내가 헛된 날에 보았노라.

7:16 너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7:17 너는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 하느냐.

7: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7: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 열 명의 권력자보다 강하게 하느니라.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7:21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네 마음에 두지 말라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을까 두려워하라.

7:22 너도 다른 사람을 여러 번 저주했음을 네 마음이 알고 있느니라.

7:23 내가 지혜를 사용하여 이 모든 것을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7: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만사를 살펴보고 연구하며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7:26 내가 깨달은즉 사망보다 더 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올무요 그의 마음은 그물이며 그의 손은 포승줄과 같은 여자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자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자에게 붙잡히리로다.

7: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이 일을 비교하여 알아보았노라 이것을 알아보려 하였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7:28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찾지 못한 것은 천 명의 남자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았으나 모든 여자들 중에서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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