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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적전쟁 승리의 신학 시리즈 (1) -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도다!

2026-05-03 1,232 争战得胜的神学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 우리는 《영적 전쟁 승리의 신학》이라는 새로운 시리즈 말씀을 나눕니다. 제1강의 제목은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다"입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토록 명백한 한 구절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예전에 지역 교회에 있을 때는 평신도로서, 구역장으로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영적 전쟁의 승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는 것이라는 말씀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훗날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창세기》를 마치고 《출애굽기》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하던 중 이 말씀이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다"는 구절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 놀랍고 좋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어떤 이들은 아예 싸우려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이 시리즈는 《영적 전쟁 승리의 신학》이며, 그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여 누리는 데 있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결코 허풍이 아니라 우리 교회는 일반 교회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훨씬 더 풍성히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어떤 병든 분이 우리 교회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도 기도를 받았지만 전혀 낫지 않다가, 우리 교회에 와서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분이 낫고 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여기 오니 나았을까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의 핵심 이념은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가 약속을 받아 누리는 열쇠'라는 것이며, 이것은 매우 보배로운 진리입니다. 그래서 제1강의 주제는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다'입니다.

왜 여호와의 군대가 나왔다고 하셨을까요? 그들은 남루한 옷을 입은 노예 떼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들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란 말입니까?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셨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셨는지, 저렇게 하셨는지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시며, 성경에 설명해 두지 않으신 것은 굳이 따져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본심(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약속을 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엉뚱한 질문을 던지지 마십시오.

문답 시간에 여러분이 질문할 때 제가 때때로 따끔하게 쏘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너무나 무익하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가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까? 왜 영적 전쟁을 해서 이겨야 합니까?"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크리스천이면서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싸워 이기지 않기 때문이며, 심지어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나와서 교회를 개척했겠습니까? 수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을 보며 깊은 혼란을 느꼈고,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응답받지 못할까요?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승리하지 못할까요?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자"라며 사랑 타령만 하니, 결국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Oh, my brother, I will pray for you." 즉 "형제여,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나님이 고쳐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만약 고침받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왜 나를 안 고쳐주실까?" 하며 원망만 늘어놓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안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기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치유하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화인 사명 신학의 핵심 이념입니다. 곧 '싸우라, 승리하라, 약속을 취하라'입니다. 여러분은 승리하셨습니까? 어떤 때는 싸우는 시늉만 조금 해보고는 "너무 힘들어요, 지쳤어요"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힘들어하지 않으면 누가 힘들어하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패배할 사람처럼 굴며, 링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싸는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은 이미 그에게 주신 땅이었습니다. "너와 네 자손이 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왜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전쟁을 치러서 그 땅을 차지해야 했을까요? 그 땅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약속의 땅입니까, 아니면 싸워서 빼앗은 땅입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 이겨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담대함을 가지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이 우리 힘으로 쫓아낸 것 같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하여 시늉만 냈을 뿐인데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 이겨주셨기에 우리가 승리한 것처럼 되었고, 결국 우리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이처럼 놀랍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때로는 그 작은 시늉조차 내기 싫어하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을 때를 보십시오. 돌 하나를 휙 던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맞추게 하셨기 때문에 명중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돌이 골리앗에게 닿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골리앗의 마음을 녹여버리셨을지도 모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기세등등하게 떠들었어도, 날아오는 돌을 보았을 때 그 돌이 얼마나 빨랐겠습니까? 눈에 뻔히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 이마에 정통으로 박혀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 다윗의 돌에 맞아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대신 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돌은 마치 미사일처럼 목표물을 끝까지 추적하여 날아갔으니, 어떻게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다윗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영적 전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그저 교인들끼리 친목이나 도모하려 하지 마십시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당신이 내 보험 하나 들어주고 내가 당신 건강식품 하나 사주고, 서로 돈 벌면 얼마나 좋아." 그것이 교회입니까? 그것은 시장바닥입니다.

편안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민소매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싸워 승리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싸움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순종의 몸짓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 군인이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군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도 "예수 믿었지만 영적 전쟁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다"고 말합니다. 요즘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며,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이 그렇게 많냐"며 타협하지만, 귀신은 여전히 존재하며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들어와서 어리둥절했습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군대로 훈련하기 위함이다." "그럼 왜 나왔느냐?" "나도 몰라요, 남들이 나가길래 따라 나왔어요." 그러다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만 것입니다.

광야에서 날마다 원망을 쏟아냅니다. 모세가 "출발!" 하면 짐을 바리바리 싸서 행군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캐리어 하나 착착 싸서 끌고 가는 수준이 아니라 온갖 세간살이를 다 짊어져야 했습니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수많은 짐을 메고 가야 했습니다. 가다 보면 "모세 님, 점심 먹을 시간인데요." 모세는 "안 된다, 멈출 수 없으니 계속 가라."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아니다, 계속 가라." "아이가 젖을 먹어야 합니다." "계속 가라."

모세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군대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난 군인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했든 안 했든, 그 공동체 안에 있다면 무조건 따라야 했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와서 "필기를 하십시오! 필기하지 않으면 훈련 소그룹으로 보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아, 이제 필기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훈련을 받는 것은, 머리로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순종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군대에서 군사가 되고 싶든 되고 싶지 않든, 여러분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복음의 유익을 온전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은 받고 싶지만 영적 전쟁은 하기 싫어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광야에서 훈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싸우시지만, 순종의 훈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선택입니다. 복만 챙기고 다듬어지는 연단은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이며, 성도를 정병(용사)으로 훈련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군사들입니다. 여러분은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트 필기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종일 군장을 메고 행군하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군사가 되는 데는 대가가 따릅니다. 연병장에서 훈련받으며 땀과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연병장에서는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훈련받을 때 땀을 흘리지 않으면, 실전에 나가 피를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워주시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우십니다. 그러나 훈련을 게을리하여 영적 체력이 바닥난 사람과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은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억눌린 자를 풀어주는 사역입니다. 어떤 귀신도 호락호락하게 나가지 않습니다. 저는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개념을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취한다'는 진리를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십여 년 전, 우리 교회에 한 영업사원이 있었습니다. 당시 귀신 쫓는 일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귀신도 참 요란해서, 축사 기도를 할 때마다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 형제가 귀신을 많이 쫓아내다 보니 직장에서 판매왕(실적 1위)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어떻게 실적 1위가 되었는지 비결 좀 공유해 줄 수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형제는 "사장님, 공유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장님이 "아니, 1등을 했으면 비결을 알려줘야지 왜 못한다는 건가?"라고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귀신 쫓아낸 이야기를 어떻게 나눕니까? 그 형제는 영적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귀신을 많이 쫓아내면 계약이 쏟아지고, 귀신을 쫓지 않으면 실적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역사였으니 나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우리는 '라오마(음란과 미혹의 영)'를 대적하여 맹렬하게 영적 전쟁을 치렀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치매 증세 때문에 이 악한 영을 결박하며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자 마침내 그 영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내가 졌다, 패배했으니 돈을 바치겠다." 제가 "언제 가져올 거냐?" 묻자 "주일 낮 12시가 넘어서 소달구지에 싣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정말로 그날 낮 12시에 재정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는 엄청난 영적 보상이 따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번성한 이유는 싸워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재정이 건강한 이유 역시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돈 이야기가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이십니까? 재정은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 중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눈을 뜨려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약속이 있는데, 왜 그것을 취하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귀신에게 쫓겨 다니고 있습니까, 아니면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영적 전쟁에 너무나 미숙합니다. 연병장에서 약속을 취하는 훈련을 받는 강도가 너무 약합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을 나와 행군했습니다. 힘들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이 내면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다리에 임하여 피곤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힘으로 걸어가려 하면, 얼굴은 찌푸려지고 마음에는 불평과 원망만 가득 차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걸었지만 신발이 닳지 않았고 옷이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영적 전쟁의 상급은 큽니다. 싸우지도 않고 훈련도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에 두 명의 박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우리 교인이었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 주었고 그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교회를 떠났습니다. 왜 떠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떠났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가면서 "목사님, 저도 사명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크리스천으로 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곳에 가보니, 그곳의 신학이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교회 안에서 우리 사명 신학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 박사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한 명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둘의 대화가 흥미롭습니다. "자네는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나?" "5분 정도 하네." "매일 겨우 5분만 기도한다고? 언제 기도하나?" "밥 먹을 때 기도하네." "아, 그러니 불면증에 걸리지." "그럼 자네는 얼마나 기도하나?" "나는 최소한 한 시간 반은 기도하네."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도할 수 있나?" "나는 영적 전쟁을 치러 승리하거든."

그러자 불면증을 앓던 박사가 "그럼 나를 위해 기도 좀 인도해 주게, 잠을 통 못 자겠네"라고 부탁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어머니도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목사님이 어머니를 위해 7년을 기도했지만, 수면제 용량만 4배로 늘어났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어머니를 저에게 소개해 주어 제가 축사 기도로 불면증을 완전히 고쳐드렸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니 치유된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영적 현실은 이토록 보편적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교회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기초를 견고히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확장하여 더 많은 사람이 영적 전쟁 승리의 복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이 복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두려워하고 비겁하며 믿음이 없는 자는 약속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싸우다가는 다 죽을 거야." 결국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열 명의 정탐꾼이 악평을 쏟아낸 이유는 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죽기가 두렵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먼저 죽게 하셨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 열 명은 모두 각 지파의 족장들이었고, 권세와 명망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위나 명예도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렵습니까? 아내를 두려워하고, 남편을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데 어떻게 약속을 얻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기도하고 싸우는 것뿐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만유를 붙드시는 하나님께서 그깟 작은 인생 하나 붙들어주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군대에 입대하여 승리하는 정병으로 훈련받으십시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입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느니라."

여러분이 애굽에서 나오는 순간, 곧 세상에서 해방되는 바로 그 순간 여러분 앞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 세상에 짓밟히며 노예로 살든지, 아니면 여호와의 군대에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약속을 얻고 싶다면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의 용사가 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 그리도 단호하고 절대적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군사의 자세입니다. 내려놓아야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이 세상에서 백 배의 약속을 누리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를 세우고, 흑암의 권세를 결박하며, 포로 된 영혼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 역시 군사로 부름받아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성경을 펴서 이 구절을 표시해 두십시오. 저는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분이 이 말씀의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라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출애굽기 12:40-42)

기도

주 예수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간구하오니 이 마지막 세대에 우리를 주님의 강력한 군대로 일으켜 주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백성을 일으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를 불러 모으사 주의 이름을 힘입어 어디서 싸우든지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승리하는 군대요, 주의 약속을 취하는 군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군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시고 택하셨을 때,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온 후에 비로소 군대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나오기 전부터 이미 군대였다는 뜻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애굽에 보내어 백성을 이끌어내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군대로서 애굽에서 건져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출애굽기 6:26-27)

이 말씀은 다른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출애굽기 7:1-6)

보셨습니까? 얼마나 명확한 말씀입니까? 처음부터 이러한 구원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크리스천이 된 후에 하나님이 갑자기 "너 군대 해라" 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군대로 부르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묻겠지만,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며, 신약의 성도들은 더욱 강력한 승리의 군대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거룩한 백성이지만, 세상에서 건짐받기 전까지는 모두 애굽과 같은 종 되었던 집에서 억압당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주님을 믿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뛰어내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기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종 되었던 집에서 건져내사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형편이 나아지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고 연단하셔서 애굽에서 건져내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치고 세상의 압제에서 해방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은 여러분의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고 세상의 권세와 악한 영들에게 심하게 짓눌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영들에게 비참하게 억압당하다가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받아 나왔습니다.

구원받아 나온 목적은 군사가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기 위해서는 오직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애굽을 나왔지만 군인은 되기 싫어요. 탈영할래요. 홍해를 건넜으니 샛길로 도망가서 장사나 할래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도망치려던 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난 군대 훈련이 너무 가혹해서 싫다" 하며 도망치려 한 자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용납하셨겠습니까?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과 내통하며 배신하려던 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열 가지 재앙을 직접 겪고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은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이 함께 겪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절묘한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구나, 너무 가혹하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뒤의 일곱 재앙, 곧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 재앙은 애굽 사람들에게만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지 않은 가정의 장자들이 모조리 죽임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팔과 권능으로 당시 최강대국이자 최첨단 군대를 보유했던 애굽의 바로 왕을 꺾으셨습니다. 바로의 군대도 노예 집단을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그 노예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될 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강한 팔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하나님의 권능의 팔로 건짐받은 것 아닙니까?

마지막 재앙이 끝난 후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을 놓아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던 바로 그 밤, 하나님은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다." 이는 혹독한 훈련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비록 겉모습은 남루했을지라도 훈련만큼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혹독한 강훈련이었습니다.

최근 어떤 아프리카 국가의 군대가 중국 산둥 사투리를 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둥 출신 교관들에게 지옥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옥 훈련을 통과했기에 그 아프리카 군대는 매우 강력해졌습니다. 훈련을 잘 마쳐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약 1년 3개월을 머물렀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광야에서 훈련받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훈련을 통과해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3년이든 5년이든 충분히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조급해하며 언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냐고 보챘습니다. 결국 1년 3개월 만에 온전히 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요단강가에 이르러 열두 정탐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돌아왔을 때, 열 명의 정탐꾼은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우리는 못 들어간다. 들어가면 다 죽는다." 애굽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애굽의 바로 왕이 가나안 족속보다 약했습니까? 바로 왕이 훨씬 더 강력했습니다. 바로 왕도 어쩌지 못한 자들이, 1년 3개월을 훈련받고 나서 도리어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니 참으로 패역한 마음입니다.

결국 훈련을 통과하지 못한 그 열 명의 정탐꾼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두려워하던 것이 그대로 임하여, 죽기를 무서워하던 자들이 가장 먼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승리하는 군사가 되는 것이 가장 복된 선택이며, 원하든 원치 않든 반드시 마주해야 할 영적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하나님의 군대 안에서 훈련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도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미흡하여 안타깝습니다. 이것을 어찌 훈련이라 하겠습니까? 말씀 필기하고 묵상 글 쓰는 것이 뭐 그리 어렵습니까? 주님께 계속 훈련해 주시기를 구할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나와 주님을 믿었다면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선택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감정과 상관없이 이 사명은 이미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상급이요, 게으르면 화가 임합니다. 그렇다면 왜 힘써 훈련받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결국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가 그 세대가 다 죽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유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애굽에서 나오기를 거부하고 여전히 노예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의 군대를 이끌어내라고 명확히 알리셨습니다. 나오기 싫으면 애굽에 남아 평생 벽돌이나 구워야 합니다. 만약 백 명만 애굽에 남는다면, 그 백 명이 삼백만 명분의 노역을 다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여호와의 군대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싸우기를 두려워하면 훈련도 헛수고가 되고 광야에서 죽고 맙니다. 이것이 두 번째 유형인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마땅히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차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종노릇 하는 인생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죄와 헛된 것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노예가 아닌데요?"라고 하겠지만, 실상은 모든 사람이 매여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해도 세상에 꽁꽁 묶여 있습니다. 사업이 아무리 번창해도 그 사업에 매여 노예처럼 삽니다. 세상에서 종노릇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음부로 내려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에게 "정말 행복합니까?" 물어보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망하게 하고 싶다면 사업을 시작하게 하거나 성공하게 만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성공 뒤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번민이 따릅니다. 손에 기름진 고기 한 점을 쥐고 있으면 온갖 파리가 꼬이는 법입니다. 손에 쥔 것이 없으면 파리도 꼬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철저히 옭아매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최고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현대 역사 속의 차우셰스쿠 대통령을 보십시오. 총살당하기 20분 전까지만 해도 최고 권력자였으나, 민중 봉기로 20분 만에 사형수가 되어 총살당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안전할 줄 알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히틀러의 삶이 편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인생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는 늘 거룩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복을 받은 후에 기쁨과 자원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사람은 형통해지면 악한 영에게 미혹되어 세상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이었는데, 왜 또다시 세상에 얽매여 살려 합니까?

세상을 꿰뚫어 보고, 내려놓고,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헛됨을 꿰뚫어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속박되어 사는 것은 종살이일 뿐입니다. 황제가 되면 평안할 줄 아십니까? 로마의 네로 황제도 결국 비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평생을 불안과 의심 속에 고통스럽게 살다가 쓸쓸히 죽었습니다. 자신과 함께 나라를 세운 공신들을 무수히 죽였기에 곁에 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본질을 명확히 보아야 합니다. 어떤 위치에 오르든 세상의 노예일 뿐입니다. 수천억을 벌겠다는 야망을 이룬 사람들도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실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벗어나야 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이를 때 비로소 하나님을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왜 제 인생은 이토록 고통스럽습니까?"

성공한 자도 괴롭고, 실패한 자는 더 괴롭습니다. 어디에서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강한 팔로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 권능의 팔로 우리를 세상에서 끄집어내셨습니다.

과거에 저는 악한 영들에게 심하게 눌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몇 초마다 억지로 깊은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가슴이 조여왔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죽어버리자" 하다가도 "정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바로 그 순간,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환경은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제 심령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저를 세상의 억압에서 건져내셨는데, 제가 어찌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직 나의 하나님만을 뜨겁게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은 마치 길 잃고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것과 같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이제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하나님, 평생 주님만을 사랑하며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노예로 사는 고통을 뼈저리게 압니다. 어떤 이들은 "성공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성공해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성공한 이들을 상담하고 섬겨보면 그들의 내면 역시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의 강한 팔로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내사 주님을 알게 하셨으니, 오직 하나님만을 힘써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대대로 기념하라고 명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날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군사라고? 아무리 봐도 군사 같지 않은데." 외모가 군사 같으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한 걸음씩 높여주셨습니다. 비록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 거하니 이 얼마나 자유롭고 복된 삶입니까!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라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온 집안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권능의 팔로 애굽에서 건짐받은 은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서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잊지 않게 하려고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위함입니다. "나는 지금도 여호와의 군사로 살아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나온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호와의 정병이 되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주의 약속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가나안 땅의 거인들을 보자마자 하나님의 크심을 망각해 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전열을 재정비하십시오.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는 없습니다. 그 어떤 거인도, 애굽의 바로 왕도 우리 하나님보다 클 수 없습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늘 권면합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유일한 걸림돌은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신 것은 우리의 지혜나 힘이 아니요, 모세와 아론의 무예 때문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구원하셨듯이, 오늘 우리의 삶도 바로 그 은혜의 연속입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서 훈련받은 이유는 그들이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편안하게 잘 살고 싶을 뿐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한다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결박에서 벗어나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주 안에 있을 때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은 허망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패배자로 종노릇 하고, 성공하면 일의 노예, 감투의 노예가 됩니다. 군수가 되면 시장의 눈치를 보고, 시장이 되면 도지사의 간섭을 받고, 대통령이 되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세상의 성공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핍절하지 않을 것이며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사역을 더 크고 강하게 키우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헛웃음이 납니다. 세상에서 크게 키우려 하다가 감옥에 가는 인생들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서 무엇하겠습니까? 내 영혼에 필요 없는 재물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타협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없으며, 하나님께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하나님의 군대에 걸치고 양다리를 걸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찢겨 죽는 길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에 입대한 군사입니다. 싸워 승리하기 위해 세상과의 헛된 끈을 끊어내야 합니다. 세상을 끊으라는 것은 생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되,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에 두고 정병으로 훈련받을 준비를 갖추라는 뜻입니다.

정병으로 훈련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훈련은 믿음의 연단입니다. 광야의 여정은 분명 고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앞서 싸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 심령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군사의 훈련은 곧 믿음의 훈련입니다. 불필요한 의문을 품지 말고 담대히 훈련을 받아들이십시오. 비록 힘들지라도 우리는 싸워 승리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왜 광야의 훈련이 필요합니까?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면, 더 큰 난관에 부딪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작은 어려움을 이겨내면 더 큰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거인 골리앗이 버티고 서 있다 할지라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사 원수 마귀를 이미 짓밟으셨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주님의 용사로 훈련받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제 안에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당뇨병도 치유되고 암도 치유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병과 묶임에서 건져냄을 받은 사람이 과연 여호와의 군대로 헌신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정병의 훈련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곧 참된 용기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기업을 차지할 준비를 하라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기업을 취하십시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예비되어 있으며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평생의 모든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히 채워집니다.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그분의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를 온전히 준비하십시오. 세상의 물질 부족을 염려하지 마시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강한 군사가 되어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십시오. 아멘.

오늘 말씀을 여기서 마칩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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