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你说传错了福音受咒诅,那到底该传什么样的福音呢?只能传华人命定神学吗?
这不是瞎说吗?传就传《圣经》白纸黑字写的那个福音。华人命定神学是很努力地把《圣经》里的福音做了一个很有框架性的解读,但是我们真正的解读是对还是不对,最好还是好好地读《圣经》。对照《圣经》看看我们说的到底是与不是。大家要知道传错了福音必受咒诅。你知道是在《圣经》里哪里写的吗?是《新约》写的呢?还是《旧约》写的?在新约的《加拉太书》的第一章,我念给你听。
我稀奇你们这么快离开那藉着基督之恩召你们的,去随从别的福音。那并不是福音,不过有些人搅扰你们,要把基督的福音更改了。但无论是我们,是天上来的使者,若传福音给你们,与我们所传给你们的不同,他就应当被咒诅。(《加拉太书》1:6-8)
这段话读得明白吗?保罗以为自己没说清楚,就又重复说了一遍。
我已经说了,现在又说,若有人传福音给你们,与你们所传领受的不同,他就应当被咒诅。(《加拉太书》1:9)
咱们没有保罗这个底气,其实保罗说的意思是如果他们传给你们的福音与我所传给你们的不同,他们就应该受咒诅!根基是在哪呢?
我是要得人的心呢?还是要得神的心?我岂是讨人的喜欢吗?若仍旧讨人的喜欢,我就不是基督的仆人了。(《加拉太书》1:10)
Q2:老师,怎么改变家人?他们身上有鬼。
其实是很难的,因为一个人带着属世界的逻辑体系就是一场悲剧。人都是被鬼搞得很惨才想起来信靠神,。那就让鬼再多搞他们一段时间,等他们觉得不行了,受不了了。
Q3:老师,假先知使百姓走错了路是啥意思呢?
我没有讲这个。
Q4:老师,《约翰福音》的第九章记载了生来瞎眼的,不是这个人犯了罪,也不是他父母犯了罪,而是要在他身上显出神的作为来。麻烦请老师解释一下。
其实耶稣并没有说这不是罪,是让人把眼睛定睛在神的荣耀上。这个解读也许你能够接受,也许你不能接受。问题在哪里呢?我问你一个问题:这个病是从哪来的?亚当夏娃在吃禁果之前有病吗?没病!在神的国里都是没有病的。人从生下来都是罪人,神不想人把眼睛定睛在是谁的罪上,而是定睛在神的恩典,神的怜悯,神的慈爱上!
Q5:老师,我本身在信仰的路上有宗教的问题,但是我想知道这问题是从哪里来的?是我以前信错了福音?还是我自己里面有这个罪性?
这个宗教的问题,就是总想做点啥,然后就会得着啥。其实《圣经》教我们的根基是信心,一旦离开了信心都是罪。我的这个解释可能又给你制造了困扰了,但是我还得接着解释,因为凡不出于信心的都是罪。宗教行为就是:我祷告了!我也奉献了!如果一个人凭着信心奉献了,凭着信心祷告了就不叫宗教的行为。所以我们要开始从信心入手,在悟性上对神的话,寻求更深入的认识。
Q6:老师,我在祷告的时候寻求神的带领,希望在悟性上、信心上成长能够更合神的心意,但是我总会遭遇一些事。如果胜不过去,就会被鬼整的很惨,导致自己变得没信心了。
那当然了,肯定是这个样子。大家千万不要以为我们希望在悟性上、信心上成长更合神的心意,就不会遭遇更多的事情了。其实那些事情本身就是看你是不是真的希望在悟性上、信心上成长更合神的心意,如果胜过去了才叫做得胜。大家要知道灵界里的东西是很真实的,你一想走合神心意的路,鬼一定会来捣乱。如果你害怕就没法得胜,然后被鬼按在地上摩擦。如果你刚强起来信靠神,一定会胜过去!
Q7:老师,这章的第四节到第七节的经文,可以再解释一下吗?
他们都是行淫的,像火炉被烤饼的烧热。大家得知道行淫会有高潮,会让人很兴奋,就是那个欲火焚烧。这个被烤饼的烧热是谁烧的呢?就是人被鬼放在炉子上烤,然后从抟面到发面的时候,暂不使火着旺,就是可能稍微还没到烤饼的时候,暂时不让你烧得那么旺,但是放上烤的时候,那就烧得很旺了。人遭罪也是一样的!行淫会有代价的,你里面的火很旺,同时你里面受煎熬的时候也会烧得很旺。
他们都是行淫的,像火炉被烤饼的烧热,从抟面到发面的时候,暂不使火着旺。在我们王宴乐的日子,首领因酒的烈性成病;王与亵慢人拉手。首领埋伏的时候,心中热如火炉,就如烤饼的整夜睡卧,到了早晨火气炎炎。众民也热如火炉,烧灭他们的官长。他们的君王都仆倒而死;他们中间无一人求告我。(《何西阿书》7:4-7)
这段经文在描述以色列人吃喝玩乐的状况。喝酒喝多了会怎么样?成病了!就有那些亵慢的人、狂妄的人跟他们拉手,结果就会怎么样?最后他们的君王就扑倒而死。大家知不知道以色列王朝就在何西阿年间,在短短的时间内就换了好几个朝代。比如说,把这个王给杀了,然后就有人篡位了;过一段时间又把那个王给杀了,又篡位了。每个人都很火爆,精力非常旺盛地去爱世界,结果经历了这些事,没有人求告神,也没有人说:神啊!为什么会是这样?谁一做了王立刻行耶罗波安所行的道。
Q8:老师,神说以法莲如同翻背的弓,是什么意思?
意思就是没用了!人家都是有弓才能拉,一拉箭就能射出去。如果那个弓的背都翻过来了,拉不了了,不能用了就是垃圾。
Q9:老师,传统教会传的福音和你所传的福音是相反的,我这样的看法是对的吗?
不能这么整,咱们说《圣经》是个标准。我是很努力的照着《圣经》上本来所说的这个福音,就是耶稣基督和使徒保罗所传的福音,咱们不去做这个对比。
Q10:老师,我们教会也在竭力活出命定,想在教会里传扬释放大能的福音,还有做医治释放。能给我们一点建议吗?
新约《圣经》和旧约《圣经》的主题是建造耶稣基督的身体。建造耶稣基督的身体就是建造神荣耀的教会,所以建造神荣耀的教会就是整个医治释放的根基。如果要建造神荣耀的教会,你要会算笔帐。你别盖了房子成了烂尾,你算一算你能付的代价,付得起还是付不起。
千万不要以为想做就能做,你做了就要付出沉痛的代价,你问问自己能付得起吗?如果你想跟魔鬼打仗,你能打得赢吗?不是我吓唬你,这是耶稣说的!别去惹事,也别摸老虎屁股,要知道耶稣要的都是门徒,而门徒就是撇下一切所有的来跟随神的人,这个建议听起来有点难!有人就问:那你呢?我这个心志我还是有的,没有这个心志啥也别干了。
Q11:老师,他们行恶使君王欢喜,说谎使首领喜乐,该怎么理解这句话?
意思就是讨好老板,然后不在乎神了。那玩意能当饭吃吗?能涨薪水吗?
Q12:老师,要改变身上有鬼的家人,怎么解决他们身上的问题?
不用解决。最重要的就是悔改!我服侍了这么多人,鬼是从哪来的?都是因为人受了咒诅。那人受了咒诅该怎么办?就得信靠耶稣破除身上的咒诅。那怎么才能破除这个咒诅?学习爱神!
曾经有一对夫妻来到咱们当中,他们家里发生了很多的灾祸,还有很多的怪事。老公精神病、忧郁症,后来在我们的服侍下好了一些,能够上街买菜了,后来又开始犯浑了。老婆的状况还行,至少还能坚持下去。所以说啥人啥命。我讲这话可能有些人会觉着:这叫什么话?都是人自己的选择。
Q13:老师,去当地传统教会聚会,会受咒诅吗?我家人都去传统教会,当地牧师和长老身上有很多的疾病,牧师住院开过几次刀,长老住院半年,这是不得胜的教会吗?
你已经都知道了,就别问我了!我就不给人家下这个结论了。信错了福音肯定受咒诅,这话已经讲得不能够再直白了。
Q14:老师,以法莲是没有翻过的饼,这句话是什么意思?
就是烙糊了,一面是生的,一面已经糊了。
Q15:老师,以色列、以法莲、撒玛利亚这三者有什么区别?
以法莲是谁呢?就是一个以色列当中一个比较大的支派。通常用以法莲、以色列和撒玛利亚这三个来描述以色列人。
愿神祝福大家!
서론
우리는 오늘 《호세아서》 7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장에는 참으로 많은 영적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스라엘 백성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음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조차 해내지 못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민족도 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이치입니다. 전 세계가 공인하는 가장 똑똑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왜 이토록 똑똑한 사람들이 수많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까요?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립니다. 절대로 스스로 괜찮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번 장에서 호세아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백성은 반드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패망한 때부터 1948년 나라를 재건하기까지 겪었던 고난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왜 하나님께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이 다 똑똑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마음에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을지라도, 사실 인간 스스로 지혜로워진다는 명제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이 장을 읽으며 마음에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제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중화권 사명신학'을 세웠다고 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조롱거리만 되지 않아도 감사한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가 은근히 제 자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제 내면 깊은 곳에서는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자부심에 차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이스라엘 백성보다 똑똑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자가 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조롱받는 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속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늘 이런 나눔을 합니다. "내가 제대로 행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 자신도 제대로 못 하면서 왜 우리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 속에 있는 논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요! 저는 제가 행하는 일이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일은 아닌지, 진정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확신할 수 없기에,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논리입니다. 저는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다가 결국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영적이라고 생각하여, 매일 여기저기서 글을 복사해 SNS에 공유하지만, 그중 자신이 직접 쓴 글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퍼 나르면서 스스로 영적인 체하며 만족해합니다. 제가 예전에 섬겼던 한 암 환자도 자신이 꽤 영적이라고 여겼는데, 그 사람을 회개시키는 일은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틈만 나면 단체 대화방에 이곳저곳의 글을 올리기 일쑤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인간이 무지와 어리석음, 패역함으로 인해 어떻게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지를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몇 가지 가장 기본적인 영적 기초를 잘못 세우면 누구나 이러한 일을 겪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치료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치료하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섬겼던 한 사람은 경미한 요도염에 걸렸는데도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회자는 늘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치료해 주지 않으셔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는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왜 자신에게 닥쳤는지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곧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핵심은 당신이 어떤 종류의 이스라엘 사람에 속해 있느냐는 것입니다. 멸망할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조롱받는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하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는 도둑질하고 밖으로는 떼를 지어 노략질하며 (《호세아》 7:1)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 이 형제나 자매를 세워 리더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제 앞에서 자기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것은 제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누가복음》 2:34-35)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시므온은 이 아기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뼛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폭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료하려 하셨지만, 치료하려 하실 때마다 그만두시게 됩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들이 또다시 죄를 짓고, 패역하며, 무지함을 드러내어 온갖 죄악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리석음, 무지, 패역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리석게 보시고, 어떤 사람을 지혜롭게 보시는지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종종 마음이 아픕니다. 상대방은 자신이 아주 말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 귀에는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하고 무엇이 중하고 가벼운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면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면을 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의 몸에 질병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죄악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자신의 질병이 죄와 상관없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고통을 겪어야 이 무지함에서 돌이키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은 모두 영적 지각(悟性)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적 지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치료하기를 원하시는데, 인간은 죄를 짓고 패역하니 이 얼마나 무지한 일입니까!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을 치료하지 않으신다는 온갖 신학 체계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신학 체계가 매우 유행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런 병을 주셨을까요? 그것이 축복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축복을 받으시겠습니까?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질병이 '위장된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징벌이며, 완고함과 패역함, 어리석음과 무지의 결과입니다! 어떤 이들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욥을 보십시오"라고 반론합니다. 사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다면, 욥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한탄하나이다 (《욥기》 42:5-6)
욥 역시 회개해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며 대단하게 생각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욥이 왜 날마다 제사를 드렸는지 아십니까?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는 사실 재앙이 자기 집에 닥칠까 두려워했고, 자녀들을 잃을까 염려했을 뿐입니다. 결국 세상의 것들에 얽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집의 소와 양, 먹고 마시는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부유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구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제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치료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크나큰 수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치료하지 않으신다는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진정으로 사람을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을 치료하고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언제쯤 이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인간의 어리석음과 패역함, 무지함은 너무나도 보편적입니다. 하나님 앞은 고사하고 제 앞에서도 겉치레를 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식으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다루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자매가 감기에 걸린 지 한 달이 되었는데 다른 병은 다 나았으나 기침만 낫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슨 신통한 사람이라 기도 한 번으로 당장 낫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먼저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에서 벗어나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주님을 오래 믿은 사람뿐 아니라 초신자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때로는 저 역시 선악을 분별한 뒤에 '너희가 나를 몰아붙여서 선악을 분별하게 만든 것 아니냐'라고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이 아니겠습니까? 선악을 분별한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인데, 왜 남 탓을 하겠습니까? 섬김은 모두 은혜일 뿐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구할 뿐입니다. 오늘 오후에도 한바탕 화를 냈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한숨과 탄식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병이 나면 하나님이 치료해 주지 않으신다고 해석하거나, 자신이 욥과 같은 처지라고 핑계를 댑니다. 온갖 그럴듯한 해석을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중화권 사람들은 기껏해야 2등이고, 미국인이 3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스스로 2등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매우 오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근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 불공평과 불의가 가득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뛰어난 재능으로 북경대에 합격했으나 중금속에 중독되어 다른 사람에게 독살당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집안의 자매 둘 다 수재였으나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이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인간이 스스로 회개해야 한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비록 사역을 정교하게 다듬어 갈지라도, 말이나 처세는 다소 투박하며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못난 모습 그대로를 사람들 앞에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며 강단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한결같이 진솔하다고 느끼며, 어떤 이들은 거침없는 말투가 오히려 좋다고도 합니다. 한 번은 제가 맞이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목사님께 이런 질병이 생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저를 성인군자쯤으로 여겼던 모양인데, 그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사실 제 안에는 허물과 단점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는 제 문제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압니다.
저는 어리석은 꼴을 참지 못하는 편인데, 사실 이것 역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교만이며, 욱하는 성미가 터져 나오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질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제가 죄인이기 때문이지, 남이 일깨워 줄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하나님께서 저를 거룩하다고 여겨 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저는 부족할지라도, 저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그분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가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선천적인 질병이든 후천적으로 얻은 질병이든, 지금 즉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회개하기를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사역할 때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지적해 주기를 좋아하지만, 지적하는 순간 상대방은 침묵해 버립니다. 그것은 문제를 건드렸다는 뜻인데, 상대방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체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병 좀 앓는 것이 대수입니까? 그래서 때로는 제가 그 문제를 건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이 갈등하게 됩니다. 한 번 건드리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일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든, 중국인이든, 세상 모든 사람의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다 해도 당신의 앞길은 막히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당신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요셉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애굽에 팔려 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형편없는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탓할지언정 자기 자신만은 탓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어떤 이들은 이것도 남의 탓, 저것도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핑곗거리를 찾다 못해 달빛까지 탓하며 온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영적 세계 속에서 늘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다루시고 징벌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 닥치는 문제와 질병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알아야 하며,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들은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저는 그렇게 확신하며 살아왔기에 제 몸에는 질병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지 못했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세 가지를 온전히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를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두고 매일 암송한다면 여러분은 진정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팔다리가 아무리 굵고 MMA 링 위에서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개미나 바퀴벌레, 하찮은 미물에 불과합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나마 미물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하나님의 눈에 존재 가치조차 없다면 완전히 끝장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징벌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살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 우리가 주께로 돌이킵니다"라고 외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일을 해석하기 위해 온갖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아직 고난을 덜 겪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것을 어떻게 아는지 묻는다면, 성경에 너무나도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 대로 그들을 징벌하리라 (《호세아》 7:11-12)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논리와 학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아 수많은 재앙을 겪으면서도 백성들에게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그들은 그럴듯한 학설을 만들어 내어 완벽하게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었고, 결국 천하 만민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이든 유다 왕국이든, 지금까지도 온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역시 그들과 오십보백보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지 못합니다.
귀신이 세상을 주관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세밀하게 다스리시는 분인데, 여러분이 겪는 두통, 족통, 배변 장애, 요실금, 변실금, 시력 저하, 어지럼증, 멍한 증상, 혹은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과 같은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학만을 맹신하겠다면 마음껏 겪어 보십시오. 제가 장담하건대, 당신은 앞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렇지 않으려면 아예 믿지 마십시오. 제가 다소 강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백성 노릇을 하다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내뱉는 모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호세아》 7:10)
이스라엘 사람들은 들으면 매우 그럴듯한 자신들만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고난을 겪으면 그저 하나님이 자신들을 시험하시는 것뿐이라며,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낯익지 않습니까? 사실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게 된 이유도, 사람들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와 엉터리 해석을 늘어놓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한동안 헛된 말을 늘어놓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다루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작은 지혜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았기에, 결코 제 자신을 욥과 같은 의인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섬겼으나 결국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님의 오묘하신 역사요,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깊이 회개하며, 복음을 잘못 전해도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믿어도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는 때가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때보다 훨씬 많습니다. 때로 인간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머릿속이 온통 세상적 논리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 대로 그들을 징벌하리라 (《호세아》 7:11-12)
이스라엘 백성은 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려 했을까요? 외교와 정치, 경제적 수단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더 깊이 관찰해 보면,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이것도 축복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는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징벌은 여전히 징벌입니다. 과거에 잘못 행했다면 이제는 바로잡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일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주님을 믿는 믿음 역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손대는 것마다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조차 모른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저 역시 쉽게 화를 내는 제 육신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은 대단히 엄중합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알아야 한다고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맞이한 자들이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백성이었기에 그 인자하심은 다시 거두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실 때마다 인간의 죄악 때문에 은혜가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참으로 답답하실 것입니다. 늘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가시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외면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징벌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담을 의지하면 담이 무너지고, 나무를 의지하면 나무가 쓰러집니다. 사람이 기댈 언덕을 찾으면 산이 무너지고, 그늘을 찾아 큰 나무 아래로 피하면 나무가 쓰러지는 법입니다. 쓰러진 나무에 깔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무언가를 의지하려거든 차라리 주님을 믿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논리를 의지하는 것은, 공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믿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이들은 굳이 주님을 믿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여 머릿속에 세상 생각만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걷어차시기는커녕 눈짓 한 번만 하셔도, 머리털 하나만 떨어져 당신에게 부딪혀도 여의봉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부른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제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를 철저히 다루어 단계적으로 뜯어고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최근에 또 사기를 당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저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해서 제가 대신 갚아줄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빚은 당신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만약 먹을 것이 없다면 굶어 죽지 않도록 국수 한 그릇은 대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이 왜 사기를 당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쪽에서 10만 위안을 사기당하고, 저쪽에서 또 10만 위안을 사기당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징계를 한 번 겪고도 또다시 세상을 사랑하기를 반복하니,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어찌 알지 못한단 말입니까?
여로보암에게 왕위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예후에게 왕위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세상적 논리 체계에 빠져,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대통령이 연임하기 힘든 법인데, 이것이 세상의 단순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부르는 것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있는 세상적 논리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을 믿는 여러분에게 다시 권면합니다. 독한 마음을 품고 당당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내면의 세상적 논리 체계를 처리하고, 우리 안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뿌리를 완전히 잘라내십시오.
최근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만약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처럼 마음속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순간, 인내가 부족했음을 즉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참으로 묘합니다. 제 남동생의 아들이 어렸을 때 방 안에서 대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 고향의 겨울은 영하 20~30도에 달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변을 보자 온 방 안에 악취가 진동했지만, 아이의 부모만은 전혀 더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변을 보지 못하면 부모는 애가 타지만, 일단 변을 보고 나면 입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 날뛸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자식이기에 그저 냄새가 역겨울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부족한 증거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뒤처리를 다 끝내고도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엉덩이에 뽀뽀까지 합니다.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이며,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속한 논리가 담겨 있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어디에서 선악을 분별함이 나오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저를 향해 선악을 분별한다면 당신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향해 선악을 분별한다면 저 역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제 안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사랑이 가득하다면, 여러분의 문제는 곧 저의 문제가 될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 논리 체계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 세상의 일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 세상의 일 때문이었으니, 그 뿌리가 얼마나 깊습니까!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호세아》 7:14)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식과 새 포도주를 위해, 즉 세상의 하찮은 일들을 위해 모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려 할 때 바닥이 너무 딱딱하다며 침대에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고 꿇어앉았고, 꿇어앉아 있다가는 다리를 꼬고 가부좌를 틀었습니다. 채식을 하며 불공을 드리는 사람처럼 앉아 스스로 복스럽게 보인다고 여겼습니다. 남방의 겨울철이라면 전기장판까지 켜고 편안히 누웠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되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었으나,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들의 상한 심령과 회개의 마음이었습니다. 호세아가 말한 것은 마치 발정 난 고양이가 울부짖는 것과 같은 소리였으니, 듣기에도 역겨운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침상에서 곡식과 새 포도주만을 구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역자가 세계 평화를 구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예전에 현지 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했을 때, 목회자가 강단에서 싱가포르의 경제와 총선을 위해 기도하자고 인도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를 도무지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는 소리는 거의 없었고, 도리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평화만을 구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런 일 좀 하지 마십시오'라고 구하고 있으니, 듣기에도 부적절하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 '더 많이 치십시오'라고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만을 구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천천히 배워가며 깨달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기도라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 안에도 이러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결코 이런 세상 것들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들 중에 며느릿감을 달라고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까? 분명히 있을 것이며, 아주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사윗감을 찾으러 오며, 부유한 '금거북이' 같은 신랑감을 노립니다. 며느리나 이성 친구를 찾으려는 사람들도 많으며, 심지어 저에게 중매를 서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말로는 알았다고 하지만 결코 중매를 서지 않습니다. 만약 부부가 싸우기라도 하면 저는 그들 밥상의 안줏거리가 되고 맙니다. 싸울 때마다 저를 원망하며 제가 소개해 준 탓이라고 하겠지만, 부부 금실이 좋을 때는 저를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 세상의 일 때문이었으니, 어찌 화를 당하지 않겠습니까? 머릿속에 온통 이런 것들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 집을 사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누가 집을 팔아서 얼마나 남겼는지, 온통 그런 생각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이 집을 사야 합니까, 사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그것은 불의한 재물에 불과한데, 그것을 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돈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돈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데, 당신의 돈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당신의 돈을 위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백만장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입니까? 어떤 이는 100만은 너무 적으니 1000만은 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1000만 위안을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에게 1000만 위안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헌금을 하기 위해서라며, 500만 위안을 헌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500만 위안은 떼어놓고 나머지 500만 위안만 자기에게 직접 주시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계산법입니다. 세상에 이 사람보다 영악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온통 세상일만을 위할 뿐입니다. 어찌 세상일을 영적으로 꿰뚫어 보지 못합니까? 계좌 이체할 필요도 없이 현금으로 받으면 깔끔하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저승길 노잣돈 500만 장을 주실 것이며, 어쩌면 저를 시켜 그것을 태워주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신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제 말이 조금 과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탐욕을 극도로 혐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려 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거짓을 말했다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행하였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속량하려 하나 그들은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호세아》 7:13)
이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께까지 사기를 치려 했습니다. 중국 코미디언 자오번산이 콩트에서 멀쩡한 사람을 속여 다리를 절게 만들고 목발을 팔아치우듯, 일류 사기꾼처럼 군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목발을 팔아넘기려 하니, 하나님마저 속여 넘기겠다는 속셈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사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려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이 너희를 멸하려 하지 않느냐고 물으시면, 그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체면을 지키려다 생고생을 자초한 꼴이며, 결국 체면도 잃고 천하의 조롱거리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호세아》 7:10)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연극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식을 미워하시듯 저 역시 가식을 몹시 싫어합니다. 문제가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제가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은 제게 묻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을 맡기면서 어디에 문제가 생길지 제가 뻔히 알고 있는데도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일부러 다시 물어보아도 여전히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물어도 대답은 똑같습니다. 저는 속으로 '큰일 났구나, 이번에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구나!'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해 선지자 호세아를 보내셔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치료하시며 마귀의 손에서 속량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입술로 "모든 것이 평안하다"며 거짓을 고했습니다. 본문에서 그들이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는 도둑질하고 밖으로는 떼를 지어 노략질한다고 한 것은 영적 세계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문제 앞에 섰을 때 진실을 말할 용기조차 잃어버린다면, 어찌 멸망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훈계하셨으나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할 꾀를 냈다
내가 그들의 팔을 연습시켜 힘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호세아》 7:15)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시려 하자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이 훈계하시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시자 얼굴을 붉히고 낯빛을 바꾸며 하나님께서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더 바라시느냐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기가 찰 노릇입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징벌하여 다 멸해 버리심으로써 다시는 하나님께 대들지 못하게 하고 싶으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교훈하셨듯, 저 역시 사역할 때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 줍니다. 그러나 상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낯빛이 변합니다. 왜 안색이 변하느냐고 물으면, 도리어 "목사님은 왜 얼굴색이 변하셨습니까?"라고 되받아칩니다. 제가 "네가 잘못했으니 내가 좋은 낯빛을 보여야 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논리가 이토록 전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왜 안색이 변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가인은 마치 하나님께 낯빛을 탓하듯 대들었습니다. 참으로 가소롭고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며, 이는 도무지 훈계를 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먼저 "그렇다면 바른 방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학습 방법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바른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일을 바로잡는 것이 그리 어렵습니까? 왜 하나님을 대적하려 합니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일을 바로잡았다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행했다면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피땀 흘려 일군 밭을 남에게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호세아》 7:9)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으면 이 지경이 됩니까? 이방인들이 그 수고한 결실을 삼켜버리고 빼앗아 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사실대로 말하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천사도 멸시하고 귀신조차 하찮게 여기며, 귀신들마저 "참으로 지독하게도 멍청하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할 악을 꾀한단 말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혹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교훈하실 때, 마음에 감정이 상하더라도 겉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마십시오. 인간은 결국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지극히 풍성한 긍휼과 은혜를 예비하셨으나,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입니까!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호세아》 7:16)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가 늘 영광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백성들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온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무리 가운데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소수의 무리가 있었으며, 그들이 경험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살아계신 실재였습니다!
우리 모두 독한 마음을 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본받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요셉을 본받기 어렵다면 야곱을 본받고, 야곱을 본받기 어렵다면 이삭을 본받으며, 이삭마저 어렵다면 최소한 아브라함이라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도 기준이 높다고 여기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리까지는 나아가야 합니다. 요셉처럼 되지 못해도 괜찮으니,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뵈올 때까지 힘써 좇아가는 믿음을 배우십시오. 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거룩한 그릇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