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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마태복음 15장 -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무엇을 얻을지를 결정한다

2020-06-10 52,626 马太福音 信心 跌倒 心思意念 选择 决定 自以为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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马太福音15章-古人的传统
  • 1 那时,有法利赛人和文士从耶路撒冷来见耶稣,说:
  • 2 “你的门徒为什么犯古人的遗传呢?因为吃饭的时候,他们不洗手。”
  • 3 耶稣回答说:“你们为什么因着你们的遗传犯 神的诫命呢?
  • 4  神说:‘当孝敬父母’;又说:‘咒骂父母的,必治死他。’
  • 5 你们倒说:‘无论何人对父母说:我所当奉给你的已经作了供献,
  • 6 他就可以不孝敬父母。’这就是你们藉着遗传,废了 神的诫命。
  • 7 假冒为善的人哪,以赛亚指着你们说的预言是不错的。他说:
  • 8 ‘这百姓用嘴唇尊敬我,心却远离我;
  • 9 他们将人的吩咐当作道理教导人,所以拜我也是枉然。’”
  • 10 耶稣就叫了众人来,对他们说:“你们要听,也要明白。
  • 11 入口的不能污秽人,出口的乃能污秽人。”
  • 12 当时,门徒进前来对他说:“法利赛人听见这话,不服(原文是跌倒),你知道吗?”
  • 13 耶稣回答说:“凡栽种的物,若不是我天父栽种的,必要拔出来。
  • 14 任凭他们吧!他们是瞎眼领路的;若是瞎子领瞎子,两个人都要掉在坑里。”
  • 15 彼得对耶稣说:“请将这比喻讲给我们听。”
  • 16 耶稣说:“你们到如今还不明白吗?
  • 17 岂不知凡入口的,是运到肚子里,又落在茅厕里吗?
  • 18 惟独出口的,是从心里发出来的,这才污秽人。
  • 19 因为从心里发出来的,有恶念、凶杀、奸淫、苟合、偷盗、妄证、谤讟。
  • 20 这都是污秽人的;至于不洗手吃饭,那却不污秽人。”
  • 21 耶稣离开那里,退到推罗、西顿的境内去。
  • 22 有一个迦南妇人,从那地方出来,喊着说:“主啊,大卫的子孙,可怜我!我女儿被鬼附得甚苦。”
  • 23 耶稣却一言不答。门徒进前来,求他说:“这妇人在我们后头喊叫,请打发她走吧。”
  • 24 耶稣说:“我奉差遣不过是到以色列家迷失的羊那里去。”
  • 25 那妇人来拜他,说:“主啊,帮助我!”
  • 26 他回答说:“不好拿儿女的饼丢给狗吃。”
  • 27 妇人说:“主啊,不错;但是狗也吃它主人桌子上掉下来的碎渣儿。”
  • 28 耶稣说:“妇人,你的信心是大的!照你所要的,给你成全了吧。”从那时候,她女儿就好了。
  • 29 耶稣离开那地方,来到靠近加利利的海边,就上山坐下。
  • 30 有许多人到他那里,带着瘸子、瞎子、哑巴、有残疾的,和好些别的病人,都放在他脚前;他就治好了他们。
  • 31 甚至众人都希奇;因为看见哑巴说话,残疾的痊愈,瘸子行走,瞎子看见,他们就归荣耀给以色列的 神。
  • 32 耶稣叫门徒来,说:“我怜悯这众人;因为他们同我在这里已经三天,也没有吃的了。我不愿意叫他们饿着回去,恐怕在路上困乏。”
  • 33 门徒说:“我们在这野地,哪里有这么多的饼叫这许多人吃饱呢?”
  • 34 耶稣说:“你们有多少饼?”他们说:“有七个,还有几条小鱼。”
  • 35 他就吩咐众人坐在地上,
  • 36 拿着这七个饼和几条鱼,祝谢了,擘开,递给门徒;门徒又递给众人。
  • 37 众人都吃,并且吃饱了,收拾剩下的零碎,装满了七个筐子。
  • 38 吃的人,除了妇女孩子,共有四千。
  • 39 耶稣叫众人散去,就上船,来到马加丹的境界。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어떤 길을 걸어갈지를 결정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찾는 데 정말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마태는 이 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이 장을 어떻게 단락으로 나누고, 어떻게 문장을 구분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믿음의 본보기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하신 일은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믿음의 본은 정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이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사용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사람은 보통 많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15장에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사람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장의 주제를 찾았을까요? 사실 이 장의 주제를 찾는 일은 비교적 어렵습니다. 읽어 보면 서로 크게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굳이 이렇게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내용들을 연결해야 할까요? 저는 연결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쉽게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 웹사이트의 간증과 설교를 보고 모두 아주 좋다고 생각하여 믿음이 충만한 상태로 우리 가운데 왔습니다. 그런데 온 후에는 매우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 교회는 다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욕설을 하고 사람을 욕합니다.” 이들은 원래 치유를 구하러 왔는데,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사람 마음속의 생각은 거의 그 사람의 평생의 길을 결정합니다. 사람의 평생의 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사람의 평생의 길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은 쉰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돌아봅니다. 이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란 말입니까?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많은 경우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탓하면서도 우리 마음속의 쓰레기는 탓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에게 있는 악습을 고치는 사람이 강하게 말하면 상대방의 반응도 매우 강해져서 다루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어떤 자매가 자신의 어머니를 훈계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위생 습관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매의 남편도 장모님을 한바탕 훈계했는데,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그러자 이 연세 드신 자매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저를 목양하는 것입니까? 저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그 자매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자신의 위생 습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훈계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요? 사람이 잘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잘 살게 하려면 그 사람에게 있는 악습을 반드시 다루어야 합니다!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조금 거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자주 거친 방법을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듣기 좋은 말만 할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하는 말이 듣기 좋지 않을 때도 여러분이 제게서 받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사람 자신의 마음속 선택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무엇일까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잘 생각해 보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몇몇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아주 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은 아마 두 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또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장로들의 전통을 어길 수 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에는 온갖 혼란과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어딘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자주 이런 혼란을 겪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흠을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흠을 찾으려고 해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서 흠을 찾으려고 해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그 사람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편으로 예수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잘못을 열거해 보라고 했다면 아마 많은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의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이 말씀은 단번에 그들의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5:3-9)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먼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다면, 예수님이 이 몇 마디 말씀을 하신 후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보통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여쭈어보면 어쩌면 답을 주실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얻은 답은 답이 아니었습니다. 손을 씻어야 하는지 씻지 않아도 되는지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주 예수님은 오히려 매우 엄중한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그들이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왜 말을 그렇게 듣기 싫게 하십니까? 좀 잘 대답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우리의 질문은 당신의 제자들이 왜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느냐는 것인데,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듣기 싫은 말을 하십니까? 이것은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이 바리새인들은 한 번도 제대로 일어선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실족할지 실족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실족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해 봅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이 듣기 싫은 말을 하셨다는 생각만 가득했고, 곧바로 실족했습니다. 사실 듣기 싫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가진 한 방식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실제로 매우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형제자매가 자주 하나님의 사랑을 꺼내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듣기 싫은 말을 해서는 안 되고 화를 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하는 방식만 중요하게 여기고 본래의 목적을 잊는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이 사람들을 시험하신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 가운데 왔다면 우리의 말하는 방식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5:8-9)

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사람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성경에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이 듣기 싫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람의 평생의 문제에 대한 답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그들은 굳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머물렀습니다.

사람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낼지를 결정한다

사람은 왜 이렇게 될까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너보다 성경을 더 잘 안다. 나는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는데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성경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내용이 실제로 언급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이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태복음》 15:5)

왜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을까요? 교회에는 헌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헌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래 부모에게 드려야 할 몫을 헌금으로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 교회가 돈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부모에게 드릴 몫까지도 헌금하게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와 성전과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부모보다 돈을 더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더러운 것, 곧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의 입술은 하나님께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는 상황이 곳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정말 이런 사람인지 물어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마음에 은혜와 긍휼이 부족해집니다. 사람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낼지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면 예수님 앞에 와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저 듣기 싫은 말 몇 마디를 얻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자신을 예수님과 같다고 여기는 겁니까?” 저는 그저 예수님을 본받을 뿐입니다. 저는 자주 듣기 싫은 말을 합니다. 목적은 단지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유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도 엄격하게 살피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면서 위선까지 행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자세히 물어봅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얻게 될지를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늘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상황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사람 안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이 가득하고 온종일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족을 축복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십여 년, 칠팔 년, 삼오 년, 혹은 일 이 년 동안 저를 따라오며 자주 제 나눔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얻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목양했습니까? 누구를 축복했습니까? 이 말이 조금 무겁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걷다가 길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길이 끊길까요? 머릿속에 자기 일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불운한 사람은 어느 회사에 가든 그 회사가 불운해집니다. 비록 그가 작은 직원일 뿐이어도 그와 접촉하는 사람마다 불운해집니다. 사람은 그렇게 계속 걸어갑니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에서 오십 대를 향해 갑니다. 살아 있기는 하지만 보기만 해도 괴롭습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이것은 사람 마음속에 담긴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저에게 전화했는데, 이야기한 내용이 전부 자신의 직장 일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왜 자기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그렇다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사람을 더럽히지 않을까요?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러운 것을 먹으면 설사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더럽힐까요? 사람이 이런 의문을 갖는 이유는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늘 우리는 이 일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태복음》 15:13-14)

이해되십니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이것은 단지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5:16-20)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갔다가 뒤로 내버려진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의 육체적인 생물학적 과정이 끝나는 것일 뿐,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매우 심각하게 여깁니다.

제가 막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함께 뷔페를 먹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돼지 피나 선지 같은 것을 즐겨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돼지 피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을까요? 《사도행전》 15장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유대인이 아니니 우리가 여러분을 괴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먹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로 들어갔다가 뒤로 내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 안에서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를 아주 철저하게 연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입에서 위로, 위에서 장으로, 장에서 항문으로 가서 결국 변기에 떨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배설하는 것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동의하지 않으며, 사람이 배설하지 못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작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으면 사람이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는 대로 이루신다

이어서 마태의 붓끝이 방향을 돌려 이 가나안 여인에게로 향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겠다.’ 그러므로 가나안 여인과 같은 사람은 대단합니다.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외쳤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 마음속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마음속에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대단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녀는 계속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이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아마 이 여인은 그들과 꽤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24-28)

이 대화는 정말 놀랍고 절묘합니다! 저는 가나안 여인처럼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여인의 딸은 귀신 들려 매우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곳을 지나가신다면 됐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얻어 내겠다. 주실지 말지는 예수님의 일이지만, 나는 반드시 얻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 여인은 매우 기지 있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가나안 여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개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저를 개라고 하신다고 해서 제가 정말 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이 저를 개라고 하셔도 제 마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이런 일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는지, 식사 전에 손을 씻는지, 말이 듣기 좋은지, 사람을 욕하는지 같은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무엇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하셨을까요? 아니면 마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안에 믿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듣기 좋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단지 이 가나안 여인을 시험하신 것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나안 여인이 정말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얻었을까요? 그녀의 마음속에 담긴 것이 그것을 얻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가나안 여인이 대단했던 점은 무엇일까요? 내가 무엇을 얻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믿음으로 굳게 서면, 반드시 예수님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많은 사람이 저의 의욕을 꺾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셔서 섬기게 하신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러나 저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다고 믿으면 된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 설령 하나님이 나를 섬기도록 선택하지 않으셨다 해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도록 만들겠다!’ 이것이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안에 믿는 대로 이루실 것임을 분명히 아는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억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것뿐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좋은 직장을 얻고, 백만장자가 되고, 좋은 삶을 살고, 좋은 아내를 맞이하고, 좋은 아들을 얻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되는대로 한평생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억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제 마음속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배로운 사람이 되겠다. 나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대로 이루실 것을 안다! 이 믿음은 정말 유연하면서도 대단합니다. 많은 사람은 제가 하나님께 억지로 이루어 달라고 강요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믿는 대로 이루기를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여인을 위해 이루어 주셨는데, 왜 저를 위해서는 이루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이 구한 것은 귀신 들린 아이가 자유를 얻는 것이었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억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저에게 전화했습니다.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많은 실이 하나씩 두피를 붙잡아 위로 잡아당기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장에 실 하나가 묶여서 당기고 잡아당긴다면 괴롭겠습니까, 괴롭지 않겠습니까? 괴롭습니다. 그렇다면 머리에 묶여 있으면 괴롭겠습니까? 괴롭습니다. 그 자매는 이런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지냈습니다.

몸이 조금 좋아졌다가 다시 괴로워지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고, 완전히 자유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마음을 정하고 반드시 그 자매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믿으며 직접 섬겼습니다. 이 자매는 복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믿는 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손을 칼처럼 사용해서 이 실들을 전부 끊으세요. 자, 저와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자 자매가 나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증상이 몇 번이나 나타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점차 많은 일이 영적인 세계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칼처럼 휘둘러 끊는 동작이 실제 칼입니까? 마귀의 눈에는 실제 칼입니다. 제가 그것이 영적인 칼이며 마귀를 끊어 내는 효력이 있는 영적 도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유기》를 읽을 때 자주 이 사람에게 보물이 있고 저 사람에게 법기가 있으며, 이런 것들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긴고주는 일종의 법기입니다. 긴고주문을 한 번 외우면 손오공의 머리가 조여서 견딜 수 없게 되지만 벗을 수도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도 여러 가지 영적 도구가 있습니다. 머리가 실에 묶이고 감긴 것은 제 말로 하면 노란 족제비의 법기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법기가 있다면, 저에게는 저의 법기가 있습니다. 저의 법기는 바로 제가 믿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자주 침과 진흙을 사람의 눈에 바르고 사람의 혀에 바르신 것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법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과 진흙을 사용하신 모습이지만, 영적 세계에서 귀신이 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제 어머니에게는 노인성 치매의 귀신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성을 잃고 사람을 매우 화나게 합니다.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귀신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어머니를 섬기는 사람에게 막대기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막대기를 찾지 못해 앞부분에 고리가 달린 플라스틱 막대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이 귀신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물건은 대단하구나. 하나님의 채찍이다!” 저는 듣고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의 계시였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그것은 플라스틱 막대기가 아니라 영적인 법기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채찍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채찍이 됩니다.

모세의 손에는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아주 평범한 지팡이였지만 땅에 던지면 뱀이 되고, 다시 집어 들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했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 지팡이를 들고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밤에 잠들었는데 지팡이가 뱀으로 변해 자신을 한 번 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오늘 여러분과 제 마음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까? 마음속에 사명이 없고 자기 방식의 것들만 가득하며 때로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긴다면, 여러분의 일생은 마음속에 담긴 그 작은 일들 안에서 모두 끝나 버리고 맙니다. 마음속에 담긴 것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축복했는지, 누구를 목양했는지에서 드러납니다.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저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일으켜 섬기게 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말고, 단지 돈으로만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저는 사람이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형제에게 자신이 목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지 물었더니,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은 생각났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사람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마음의 목표가 이번 생을 잘 사는 것이라면 잘 살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자신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만 들어 있다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평생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무엇이 여러분의 핵심적인 이익입니까? 곧 여러분의 마음속 생각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십일조도 하고, 주일예배에도 참석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한 섬김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생각이 모두 이 세상의 일, 곧 직장과 가정과 자녀와 집과 자동차 등에만 있다면 여러분은 좋아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지신 계획과 사명이 들어 있다면, 여러분이 복 가운데 살지 않고 형통하게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렵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굳게 따르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복음》 15:29-31)

그렇게 많은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장애인과 그 밖의 많은 병자들이 치유받을 수 있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절었다 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는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결국 맹인이 보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귀먹은 사람이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만일 제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이미 열두 제자가 있지만 저는 열세 번째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저를 때려 죽이신다 해도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열두 명만 받는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열세 명을 받으셔야 합니다! 저는 주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뿐 아니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이 하신 일은 저도 다 하겠습니다. 다음에 하실 때는 제가 먼저 시험해 볼 수 있도록 조금 남겨 주세요. 주님이 물 위를 걸으시면 저도 물 위를 걷겠습니다. 주님이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시면 저도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겠습니다. 주님이 맹인을 보게 하시면 저도 맹인을 보게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주권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은 노예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구하지 마십시오. 구해도 소용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보배를 주시는지 압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 보배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구한 것들은 결국 모두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맹인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암 환자도 살아난다면 이것이 보배를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평생 손에 보배를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게 여김을 받고, 하나님도 저의 보배가 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저는 평생 하나님을 굳게 따르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많은 섬김을 하느라 숨이 차도록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피곤함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날마다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일하고 퇴근해서 밥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어떤 사람은 “밥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먹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밥을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명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처럼 살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갑니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때로 세상 사람들의 삶을 보면 정말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해 주고 적당히 달래 줍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기 생각만 옳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면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이렇게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제 안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오는 사람은 누구도 복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복을 받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속의 생각이 복 받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에게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방에 이르시니라 (《마태복음》 15:32-39)

앞 장에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이 장에서는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떡이 일곱 개였는지 다섯 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흠을 찾으려 한다면 많은 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따라다니느라 사흘이나 굶었는데 예수님은 그제야 음식을 주셨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흠을 찾아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매일 떡을 만들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매일 떡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굶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일은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배불리 먹이실 것이니 우리는 안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염려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를 염려하십시오. 두려워해야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얻었는지를 두려워하십시오. 걱정해야 한다면 자신이 사명을 받은 사람인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걱정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천 명보다 더 귀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천 명이 구한 것은 무엇이고, 그 가나안 여인이 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저 떡을 먹고 배부르게 되는 것과 병이 치유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얻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이 보배를 우리의 손에 맡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시대의 축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 마음속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마음속에 단지 ‘이 떡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먹은 뒤 배로 들어갔다가 다시 변기로 나오는 생물학적 과정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의 허물을 담당하고, 사람의 질고를 짊어지며, 사람의 질병을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매우 힘들게 섬기셨습니다. 사흘 동안 많은 말씀을 전하고 많은 병자를 치료하셔야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한 번 만지시면 나았겠지만, 사천 명을 만져야 했다면 정말 힘드셨을 것입니다. 전염병 같은 여러 문제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고, 이 시대에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오늘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많은 일을 만났을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했는가? 나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인가?’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빚을 졌는지도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은 거듭거듭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많은 사람이 “저는 헌금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헌금한 것이 무엇이 대단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진정한 헌신입니다. 사람은 입술로는 하나님께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때 여러분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제가 주님께 회개하고 돌이키겠습니다.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 안의 이기심을 철저히 허물고 온전히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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