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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10장 - 하나님은 친히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신다

2023-07-26 39,413 使徒行传 使徒行传第十章 使徒行传10章 方言祷告 圣灵充满 突破传统 侍奉神的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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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10章-彼得和哥尼流
  • 1 在凯撒利亚有一个人,名叫哥尼流,是“意大利营”的百夫长。
  • 2 他是个虔诚人,他和全家都敬畏 神,多多周济百姓,常常祷告 神。
  • 3 有一天,约在申初,他在异象中明明看见 神的一个使者进去,到他那里,说:“哥尼流。”
  • 4 哥尼流定睛看他,惊怕说:“主啊,什么事呢?”天使说:“你的祷告和你的周济达到 神面前,已蒙记念了。
  • 5 现在你当打发人往约帕去,请那称呼彼得的西门来。
  • 6 他住在海边一个硝皮匠西门的家里,房子在海边上。”
  • 7 向他说话的天使去后,哥尼流叫了两个家人和常伺候他的一个虔诚兵来,
  • 8 把这事都述说给他们听,就打发他们往约帕去。
  • 9 第二天,他们行路将近那城。彼得约在午正,上房顶去祷告,
  • 10 觉得饿了,想要吃。那家的人正预备饭的时候,彼得魂游象外,
  • 11 看见天开了,有一物降下,好像一块大布,系着四角,缒在地上,
  • 12 里面有地上各样四足的走兽和昆虫,并天上的飞鸟;
  • 13 又有声音向他说:“彼得,起来,宰了吃!”
  • 14 彼得却说:“主啊,这是不可的!凡俗物和不洁净的物,我从来没有吃过。”
  • 15 第二次有声音向他说:“ 神所洁净的,你不可当作俗物。”
  • 16 这样一连三次,那物随即收回天上去了。
  • 17 彼得心里正在猜疑之间,不知所看见的异象是什么意思。哥尼流所差来的人已经访问到西门的家,站在门外,
  • 18 喊着问:“有称呼彼得的西门住在这里没有?”
  • 19 彼得还思想那异象的时候,圣灵向他说:“有三个人来找你。
  • 20 起来,下去,和他们同往,不要疑惑,因为是我差他们来的。”
  • 21 于是彼得下去见那些人,说:“我就是你们所找的人。你们来是为什么缘故?”
  • 22 他们说:“百夫长哥尼流是个义人,敬畏 神,为犹太通国所称赞。他蒙一位圣天使所指示,叫他请你到他家里去,听你的话。”
  • 23 彼得就请他们进去,住了一宿。次日,起身和他们同去,还有约帕的几个弟兄同着他去;
  • 24 又次日,他们进入凯撒利亚,哥尼流已经请了他的亲属密友等候他们。
  • 25 彼得一进去,哥尼流就迎接他,俯伏在他脚前拜他。
  • 26 彼得却拉他,说:“你起来,我也是人。”
  • 27 彼得和他说着话进去,见有好些人在那里聚集,
  • 28 就对他们说:“你们知道,犹太人和别国的人亲近来往本是不合例的,但 神已经指示我,无论什么人都不可看作俗而不洁净的。
  • 29 所以我被请的时候,就不推辞而来。现在请问:你们叫我来有什么意思呢?”
  • 30 哥尼流说:“前四天,这个时候,我在家中守着申初的祷告,忽然有一个人穿着光明的衣裳,站在我面前,
  • 31 说:‘哥尼流,你的祷告已蒙垂听,你的周济达到 神面前已蒙记念了。
  • 32 你当打发人往约帕去,请那称呼彼得的西门来,他住在海边一个硝皮匠西门的家里。’
  • 33 所以我立时打发人去请你。你来了很好;现今我们都在 神面前,要听主所吩咐你的一切话。”
  • 34 彼得就开口说:“我真看出 神是不偏待人。
  • 35 原来,各国中那敬畏主、行义的人都为主所悦纳。
  • 36  神藉着耶稣基督(他是万有的主)传和平的福音,将这道赐给以色列人。
  • 37 这话在约翰宣传洗礼以后,从加利利起,传遍了犹太。
  • 38  神怎样以圣灵和能力膏拿撒勒人耶稣,这都是你们知道的。他周流四方,行善事,医好凡被魔鬼压制的人,因为 神与他同在。
  • 39 他在犹太人之地,并耶路撒冷所行的一切事,有我们作见证。他们竟把他挂在木头上杀了。
  • 40 第三日, 神叫他复活,显现出来;
  • 41 不是显现给众人看,乃是显现给 神预先所拣选为他作见证的人看,就是我们这些在他从死里复活以后和他同吃同喝的人。
  • 42 他吩咐我们传道给众人,证明他是 神所立定的,要作审判活人、死人的主。
  • 43 众先知也为他作见证说:‘凡信他的人必因他的名得蒙赦罪。’”
  • 44 彼得还说这话的时候,圣灵降在一切听道的人身上。
  • 45 那些奉割礼、和彼得同来的信徒,见圣灵的恩赐也浇在外邦人身上,就都希奇;
  • 46 因听见他们说方言,称赞 神为大。
  • 47 于是彼得说:“这些人既受了圣灵,与我们一样,谁能禁止用水给他们施洗呢?”
  • 48 就吩咐奉耶稣基督的名给他们施洗。他们又请彼得住了几天。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1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점점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을 어떻게 택하셨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그릇을 택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 중에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인 광고를 붙이셨습니다. 하늘과 땅, 인간 세상에 그처럼 커다란 구인 포스터를 붙이셨는데,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자 모두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실 때 인원 제한이 있을까요?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있는 대로 다 받으십니다! 형편없다고 꺼리지 않으시고, 훌륭하다고 지나치다 하지 않으십니다. 많다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시고, 적다고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쯤에서 저는 모교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곳은 항공우주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곳이었고, 매우 엄격한 태도가 요구되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은사님은 제가 미사일을 연구하지 않은 것을 몹시 아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사일을 연구하는 것은 사람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고,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를 초토화시킨 것을 보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훗날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항공우주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 하늘(천국)까지 도달하는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이 일은 엄격하며 공학적인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의 제목은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신다'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구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제가 면접을 볼 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 작은 꼴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 안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 안 되면 무료로 일하겠습니다! 결국 밀고 들어왔고, 하나님께서도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4대 보험 같은 건 전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다 보니 하나님께서 '이 녀석 제법 잘하네!' 하고 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셔서 무엇을 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셔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웠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왕양명(王陽明)은 심학(心學) 체계를 세우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우리 중국인들보다 왕양명을 더 깊이 연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500년이 흘렀고, 하나님께서 사명 신학을 하나 정리하라고 하셔서 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깊은 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정말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줄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계시가 머리를 한번 탁 치거나 손가락을 튕기면 나오는 줄 압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구하는 자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눈 덮인 산을 넘고 풀밭을 건너며 걸어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구하고 탐구하는 바로 이러한 성품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해보면, 제 성경공부가 꽤 흥미롭고 이야기꾼 같은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 성경공부의 내용에는 모두 계시의 맛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셨기 때문이지 제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신학에 대해 매우 체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엄격하게 정리해 나갑니다. 사도 바울 이후로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이렇게 명확하게 읽어낸 사람은 제가 처음입니다. 때로는 제가 농담 삼아 "500년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세대에서나 끊임없이 계시하시는 일을 하시며, 자신이 택하신 그릇에게 계시하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환상과 말씀을 통해 베드로를 택하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데, 이 일은 정말 신기합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10:1-8)

유대교를 믿는 것도 유익하고, 경건한 것도 유익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고넬료에게 나타나셔서 사자가 그의 집에 들어가 그에게 말하게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계시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없애버렸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아닌 데다 끈기와 경건한 성품마저 없다면 끝장난 것 아닙니까? 고넬료가 얼마나 오랫동안 경건했는지 보십시오. 갑자기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가 머무는 곳, 곧 욥바에 거의 다다랐을 때 베드로는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사도행전》 10:9-16)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베드로를 불렀고, 베드로는 따라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사도행전》 10:44-46)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 무엇을 하게 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택하시는지 베드로로 하여금 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전통을 돌파해야 함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베드로는 전통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일을 사도 바울이 했다면, 큰 보자기를 펼칠 필요도 없었고 그 안에 계시할 수많은 것들을 담아 베드로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을 그렇게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루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유대인의 전통을 돌파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그렇게 안배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에 맞추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는 그에 맞는 방식을 써서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고넬료의 집에 이르러 베드로는 번쩍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에게 그토록 많은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보여주시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뜻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시는 것은 늘 매우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수년 동안 저는 제 안에 있던 수많은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성경을 수없이 읽으면서, 성령 충만에 대해 설명해 놓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넬료가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도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성경 전체를 다 읽어보아도 성령 충만을 설명해 놓은 구절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 충만을 받으면 털이 곤두서고, 입술을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말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 말입니다. 성경을 다 찾아보아도 그런 묘사는 없었고, 방언 기도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넬료처럼 사람들을 방언 기도로 인도한 이들도 방언 기도를 할 때 이러쿵저러쿵 따라 하라고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저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이라도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한다면 성령 충만으로 인도했고, 그 결과 성령께서 정말로 그 사람에게 충만히 임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고 저 자신도 매우 놀랐습니다. 사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성경》에서 한 번도 장황하게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은 임하면 임하는 것이고, 성령 충만이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지, 사람이 억지로 하나님을 충만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만이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에 대해 온갖 장황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길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왜 화인 사명 신학에는 설명이 없을까요? 《성경》에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제가 이 전통을 깨뜨렸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먼저 설명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도 그 교회에서 그렇게 했지만 저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어두운 방으로 끌려가 성령 충만으로 인도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몇 마디 따라 했더니 방에서 내보내 주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복음주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며, 화인 사명 신학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창세기》 1장을 읽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정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2주 동안 계속 기도하자 갑자기 하나님의 영께서 저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저는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코 제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저는 수년 동안 《성경》을 읽었지만 《창세기》 1장을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오직 우리 화인 사명 신학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왜 굳이 나에게 말씀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설령 말씀해 주셨다 해도 듣고 나면 알 듯 모를 듯했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하나님! 왜 저에게 창세기 1장을 말씀해 주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마치 영어의 '참고용 정보(for your information)'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로 돌아가 다시 세상을 창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계시였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창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에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돌아가 천지를 창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많은 사람이 깊은 어둠 속에 살고 있으니, 나의 영을 부어 운행하게 하고, 입을 열어 선포하여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을 것이요, '소망이 있으라' 하면 소망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로 저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 처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 화인 사명 신학에 왔던 많은 사람도 깊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모두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우리가 함께 기도한 결과입니다! 제가 선포하자 여러분 안에 소망이 생겼고, 흑암 속에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성경》이 《사도행전》에 이르기까지 역대 이래로 아무도 베드로를 의심하지 않았고,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를 의심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는 매번 베드로를 끄집어내어 이야기합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용하셨고 그를 그릇으로 택하셔서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시고도 그와 함께 일하지 않으시거나 일부러 골탕을 먹이시는,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계시는 바로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시하실 때 그가 훗날 결정적인 순간에 실족할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그와 함께 일하시고 그에게 계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는지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환상이든 음성이든 언어든 깊은 묵상이든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에게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으신다면 분명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신다면 분명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신 사람이며, 베드로가 행한 기적은 하나하나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릇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껏 다 해놓고 요강이 되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천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에게 골동품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꺼내어 반짝반짝 닦고는 한가할 때마다 그 골동품에 술을 따라 음미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어 골동품 가게에 가져가 감정을 받아보았습니다. 감정해 보니 그것은 술을 마시는 용도도, 차를 마시는 용도도 아닌 요강이었던 것입니다. 감정을 마친 후 그는 한참 동안 역겨워했습니다. 옛날 큰 부잣집에는 요강, 술병, 찻주전자, 물주전자 등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었습니다. 술병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찻주전자는 되어야 하고, 찻주전자가 될 수 없다면 물주전자라도 되어야지, 결코 요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강이 되면 천히 쓰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한 일에서 벗어나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하나님께 택함 받은 그릇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일하시는데, 이 함께 일하심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일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인 광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으며,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줄곧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제가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하나님께 무료 수습 기간을 달라고 매달리다 보면 차츰 견뎌내어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저와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비집고 들어온 편에 속합니다. 베드로처럼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가 나중에 삐끗하여 넘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 장에서 바울은 예비 타이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라는 예비 타이어를 다소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소에 있을 때 매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자 생각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대단하여 그가 정리한 것들은 모두 정밀한 공학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끊임없이 계시하셨고,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것은 베드로의 몫이었는데, 나중에 베드로의 일을 바울이 넘겨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대체 인물이었고, 여러분은 대체 인물이 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선 사람이 삐끗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앞의 세 아들이 모두 실족했고 넷째 유다가 기회를 얻어 거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뒤의 아들들에게는 더 이상 남은 기회가 없었고, 열한 번째인 요셉은 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남의 기회를 가로채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일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일할 기회가 너무나 많아서 결코 실업자가 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자꾸만 삐끗하고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해나가다가 도중에 주저앉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더니, 사랑이 찾아오자 시집을 가버리고는 자기가 시집을 가도 상관없이 자기 아들이 와서 하나님을 섬기면 된다고 장담하는데,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삐끗하여 주저앉은 적이 없으며,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도 모두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고 그 당시 자기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왜 삐끗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에는 매우 치명적인 속성들이 요구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제게는 바로 그러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잠시 한쪽에 놓아두신 것은 앞선 사람이 삐끗하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실족하자 바울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고, 나중에 유대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베드로는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의 사도였으니, 하나님께서 원래 그에게 맡기신 사역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습니까! 고넬료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으로서 큰 권세를 가진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베드로의 말을 들어야 했고, 베드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삐끗했습니다. 훗날 바울이 이 사역을 이어받아 앞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했습니다.

설령 여러분이 훗날 삐끗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긍휼을 베푸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마치 우리가 사람을 뽑았는데 썩 훌륭하지 못하고 밖에는 여러분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 해도, 여러분이 우리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회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저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왔고 우리 울타리 안에 들어왔으니, 저는 12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여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내고 싶은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바로 이 일을 하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해야 합니다.

대체 인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대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이 몹시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예비자로 머물렀습니다. 훗날 《갈라디아서》, 《로마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등 수많은 서신서를 썼고, 심지어 《히브리서》도 그가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셨으니 저는 평생 삐끗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론 저 혼자 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누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확장될수록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의 모습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주인이시며,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시든 우리는 그대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이 바르기를 원하시면 우리는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섬기기를 원하시면 우리는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저는 평생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단연 일류 직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저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제가 다 미리 생각해 두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로서 어찌 빠뜨리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우리의 뜻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내가 여전히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만족을 얻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듣기에는 거창하고 현실감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제가 앞으로 말씀드릴 내용은 모두 지극히 실제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통을 돌파하는 것입니다. 전통을 돌파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 시대에는 방언을 말하면 은사주의 교회라 부르고, 방언을 말하지 않으면 전통 교회라 부르는 대략 그런 형편입니다. 저는 '교회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택함을 받는 길입니다. 저는 교회가 남겨둔 전통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것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통들은 수백 년 동안 중세의 가장 어두운 암흑기로부터 흘러내려 온 것인데, 이것이 어찌 진리일 수 있겠습니까? 전통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당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사도 바울은 이 일을 매우 명확히 이해하고 전통을 돌파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능동적으로 전통을 돌파하여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다면, 하나님께서 환상 속에서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번거롭게 보여주시며 잡아먹으라 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베드로가 못 하겠다고 버틸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에 순종했다면 참 간단했을 텐데 말입니다. 전통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깨끗함과 부정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이미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전통을 돌파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와서 그는 다시 전통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날 때부터 그러한 전통들에 별로 굴복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교회가 거대한 건물이어야 하고 본당에 의자가 줄지어 있어야만 진리입니까? 강단 위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무겁게 연주하고 찬송이 끝날 때 아멘송을 부르는 것이 모두 전통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분명히 보았을 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전통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감리교에는 감리교의 전통이 있고, 천주교에는 천주교의 전통이 있으며, 성공회에는 성공회의 전통이 있지만, 우리에게 와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파이프오르간이 드럼으로 바뀌고 나중에 기타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럼, 무대, 조명, 찬양 인도자 등도 저에게 와서는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을 부를 때 느낌이 좋다고 하지만, 저는 콘서트에 가도 감동이 넘쳐 아래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당신들의 찬양은 이도 저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통을 돌파하는 그릇과 함께 일하시며, 훗날 사도 바울이 전통을 깨뜨리고 교회의 기초를 굳건히 놓았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 안에서 출발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매우 중시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릇이 되려면 결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세계적인 유명 목회자로 만들려 하다가 지금은 시궁창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어떤 목사가 있는지 묻는다면 오직 신학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목사의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저는 일개 작은 졸병이자 그릇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귀히 쓰는 그릇이 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자기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진리를 굳게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지키지 못하면 외식하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외식이 곧 원칙이 되어버립니다.

베드로는 외식함으로 자신을 망쳤습니다. 결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목사를 세계적인 유명 목사로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말은 모두 헛된 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늘 저리 비켜 있으라고 합니다. 저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다 깨닫지 못했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돕는단 말입니까?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유익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설마 계시라도 줄 수 있습니까? 이전 교회에서 목사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화려하게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가운데 온 것이 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까? 저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호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아십시오.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우리 동북 사람들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며, 전달하려는 뜻도 매우 명확합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사도행전》 10:25-26)

우리는 그저 사람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대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두 눈 아래 코 하나와 입 하나가 있습니다. 콧구멍은 당연히 아래를 향해 있어야 비가 올 때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교사이지 대가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때 자신이 대가가 아니라 단지 사람임을 깨달았기에 고넬료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허튼짓을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엄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성경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량이 넓은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먼저 계시하신 것은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사도행전》 10:3-4)

여러분이 속이 좁아서 무언가를 베풀 때마다 일일이 계산하고 따진다면 망하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것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도량이 넓은지 옹졸한지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이며, 우리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도량이 넓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생사를 초탈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도량이 넓지 않다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남에게 속거나 해를 입거나 손해를 보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넉넉하기에 남에게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와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할 뿐입니다. 결국 구인 광고를 내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왔으면 저와 함께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어야 하니, 저는 여러분의 작업반장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훈련시켜, 원래는 이득을 보려는 마음으로 왔다가 나중에는 남에게 베풀고 내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에게 손해를 좀 보면 어떻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속이 좁은 것입니다. 사람이 옹졸해지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종종 자매들이 어릴 적에 말대꾸를 심하게 해서 아무리 맞아도 꺾이지 않아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믿고 나서 변하기 시작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사실 이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예전에는 속이 좁았지만 이제는 도량이 넓어졌고, 예전에는 완고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워졌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사람을 고치고 다듬는 곳이며, 다듬어지고 나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존귀한 그릇이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요강이라고 말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녹여서 다시 빚어내면 더 이상 요강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진다

하나님의 영은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지며, 고넬료는 사실 베드로와 큰 관계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부어졌습니다. 훗날 저는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한참을 기도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으셨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사실 방언 기도는 믿음을 훈련하는 데 매우 훌륭한 도구입니다.

수년 전 제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 집안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있었기에, 그녀가 시집을 가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친구가 그녀를 데리고 저를 찾아와 제 말을 들어보게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성령 충만으로 인도했는데, 바로 그때부터 저는 사설을 줄이는 전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녀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빚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분이 택하신 자에게 부어지십니다. 고넬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당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대해 몇 마디 간단하게 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오순절에 대한 말씀을 다 전하기도 전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갔던 할례받은 자들은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할례라는 전통은 결코 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는 절대로 안 되며 반드시 생식기에 작은 칼자국을 내어야만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매우 획기적인 시연을 보여주셨는데, 바로 할례받지 않은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시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과 연결됩니까?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사람을 택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보니 저도 자주 착각하곤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지 않았고, 제가 보기에 괜찮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괜찮은 사람 중에도 도중에 실족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너무나 많지만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그분이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지시며,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 충만이 없는 전통적인 복음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 결정적인 단계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이 실족할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여전히 그와 함께 일하신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실족할 것을 미리 아셨지만, 그럼에도 그를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체 인물을 준비해 두셨고, 만약 베드로가 실족하지 않았다면 그 대체 인물은 자연히 다른 용도로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바울을 대체자로 예비하셨고, 그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평생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평생 주님의 뜻 안에서 행하게 하옵소서!" 만약 훗날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바울을 만난다면, 바울은 분명 저를 칭찬해 줄 것입니다. 저도 그와 마찬가지로 평생 실족하지 않았고,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는 동일한 속성과 성품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닦아놓은 기초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이 길을 계속 걸어오지 못했을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실족하느냐 아니냐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기쁨을 구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제 기쁨을 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저도 기쁩니다. 저는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의지해 살지도 않으니, 저를 기쁘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 자신도 제 자신을 대단하게 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존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의 베드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계시하시고 어떻게 그와 함께하셨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훗날 그가 실족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것은, 그로 하여금 핑계치 못하게 하시고 자신이 실족하지도 않았는데 버림받았다고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아무도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전통을 돌파해야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 역시 하나의 고착된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은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마다 그 세대에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 그분의 그릇을 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우리 팀을 택하셔서 세상에 속한 모든 논리 체계와 수많은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리기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치유와 사역, 축사 사역 또한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야 하며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5년 전, 10년 전에 깨달았던 것과 지금은 동일한 차원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설령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다 해도 우리 안의 관념에 얽매여 있었기에 그 당시의 수준은 너무나 낮았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끝이 없습니다!

결론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낌없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무관심하게 여러분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려면 전통을 돌파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음의 도량을 넓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께서 전례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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