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学的方言也能被圣灵充满吧?
这问题挺挑战。我给大家解释一下,至于方言祷告算不算圣灵充满?解释这件事得引经据典。首先我问你,五旬节圣灵充满是不是方言祷告?是!哥尼流圣灵充满是不是方言?是!他们的方言是不是学的?我们不知道!有没有人说学来的方言不是方言?没有人说过!
我给你一个最基本的原则,《圣经》里没有明文禁止的;《圣经》里提到一定要这么做的;还有一种事没有明明地说不能做;最后就是没有清楚地说能做还是不能做;如果《圣经》里说你要这么做,那我们就这么做,没有问题;如果这事不能做,我们就别做。就像《圣经》里的十诫,不能贪恋别人的妻子、房屋这事,只要你一贪恋就会出事。为什么呢?因为那是受咒诅的!可是《圣经》里从头到尾都没有解释方言祷告这件事,没有提到他们是怎么开口讲的。
后来我就想:凡是愿意开口讲的,那本身就是一个信心的操作。咱们当中有方言祷告的人,不管这个方言是怎么来的,如果你要停下来就停下来,如果你要说就继续说。那是不是你自己开口说的呢?比如我用方言祷告了,那是不是我说的?是我说的。那是不是有什么东西控制着我说的呢?不是!
如果方言祷告是一整就控制不住自己的嘴巴,或者想说不能说,不想说的时候还得继续说,那不吓人吗?那是神的灵吗?那不是神的灵!方言祷告充满了各种各样的迷思,在咱们的网站上就有讲这些迷思的。但是现在大家好像不太说这事,我就不说了,方言祷告真的是凭着信心说的。
如果人非要等着有一种什么感觉来,然后才开口讲那玩意儿,那就要小心了!所以说你能够开口讲的话,无论是学的也好,说的也好,有什么问题吗?其实什么问题也没有!后来我就发现一件事,就是你自己学来的方言,大量的方言祷告会发生什么事?会有神迹奇事彰显!因为这事我做过实验,那是怎么做的实验呢?因为我一开始方言祷告也是学来的,但是后来越祷告,神迹奇事就越多,然后就变成了现在这样。如果你问我方言祷告是什么?方言祷告就是一个信心的操作。
人如果没有信心就不能讨神的喜悦,我们方言祷告是对神所说的。虽然对我们的悟性没有果效,但是我们却是对神说!记住方言祷告对悟性没有果效,而对神说是在灵里说一切的奥秘。我们对神说重要不重要?重要!我们虽然不明白但也没有关系。后来我验证方言祷告是属于什么呢?属于我们做了一件方言祷告的事。但是结果却得着了能力!有没有得着能力呢?有!要不然你试试看,祷告多了就圣灵充满,
其实《圣经》里早就记载了,跟那些瞎说方言祷告的人,刚好是相反的理论。那是谁说的?耶稣说的!耶稣说什么呢?你要情词迫切地求,你们地上的父尚且知道拿好东西给你们;我们天上的父,岂不更将圣灵给求他的人吗?所以说你是求神给你圣灵,绝对不会给你邪灵?方言祷告是造就自己,先知讲道是造就教会。很多人连自己都不会造就,那怎么能造就教会呢?
Q2:老师,排斥方言祷告的人,是神所拣选的吗?
排斥方言祷告的人,那还能是神所拣选的吗?我看这个人就剩下排斥耶稣了,耶稣说的都不听,那还能听什么呢?我就觉得有些人真的应该回去读小学,因为语文都没学好。小学三年级的孩子都能读明白吧?更不要说小学六年级了,但是有些人都读了大学了竟然不知道,就是读不懂排斥方言祷告是违背神的话。
排斥方言祷告是不是违背神的话?是的!那你反对神吗!倒霉的就是这些人!排斥方言祷告的人倒霉了没有?倒霉的一大把。你不要看他们好像还活的挺好,如果你活得够久,一定会看见他们倒霉的日子来到。
Q3:老师,我不是太明白怎样突破传统,麻烦您再讲一下好吗?
传统不是真理。以色列人不洗手就不能吃饭,但是耶稣他们不洗手就吃饭,法利赛人看了以后就闹心,就说:你们为什么不洗手就吃饭呢?其实不洗手不是真理。大家知道耶稣怎么说的吗?耶稣说不是吃这个、吃那个就能污秽人,吃完了第二天就到了茅厕里了;吃进去的不能污秽人,从心里发出的恶念才能污秽人。但是现在的人整这个、那个一大堆,自己发明了很多的传统。
新约《圣经》里哪个地方讲需要有舞台、灯光、架子鼓、吉他手?没有!那是真理吗?但是现在的教会都这么干,因为能吸引到人,也就是说有一大堆的传统。在早期教会一定要有管风琴,把这个管风琴干掉,花了好几代人的时间,这就是传统。
很多东西根本就不是真理。但我们却把它看得非常重要,就跟当时在耶稣的年间,他们把洗手当成了很重要的一件事,都成了真理了。神的真理不在乎吃喝,神的国也不在乎吃喝!
Q4:老师,有的人方言祷告可以二十分钟不重复,我方言祷告就一直重复几个词,到底怎样的方言才算是标准的呢?
其实人的方言祷告,可以像小孩子一样一开始学几个字,后来又多了几个字,再后来又多了几个字。但是我们不要在这个地方卡顿,而是要不断地寻求!你这几个字是怎么来的?也是开口说的。那你再多说几个字会死人吗?不会!再多说几个字就是凭着信心说,一点问题也没有!
我们容易掉进自己的传统里,一开始方言祷告就那么一句话,如果十年以后还是一句话,那就是人里面不愿意去突破自己。所以说人要常常突破自己,我们不能成为自己的辖制!难道神不能掌管你的方言祷告吗?肯定能!
Q5:老师,我一遇到事就满脑子都在想这件事,心里着急,什么正经事都做不了,总是本末倒置,没有优先级,问题是出在哪里了?
这个问题就出在你把这件事看得太重。你以为是你在掌管你的生命,你以为你做了什么或没做什么就会完蛋或者就会活得好?其实不重要,你做错了比不做还糟!那怎么办呢?你要开始对神有信心,什么事情都要开始学习先整清楚后再去做。
比如说你没弄清楚,还以为是个机会,然后就把钱汇出去了,结果发现是个骗子。那你早干什么了呢?如果你不汇出去,那个钱还在,结果为了抓那个机会把钱给整没了,那不是倒霉吗?你能怪谁呢?只能怪你自己!别慌慌张张的,你做了什么或者没做什么有什么影响吗?死不了人的!原因就是人笨,所以你一定要开始学聪明,做错了比不做还糟。
比如说嫁人,你以为嫁人是那么简单的事吗?如果你嫁错了该怎么办?这可不像在淘宝上随便买个东西,不想要了就可以退款。你嫁人了,还能退吗?既然嫁错了,那就将就吧!结果又生了一个孩子,那孩子能退货吗?也退不了!后来又生了一个孩子,就这么过吧。所以说别着急,做错了还不如不做,所以你先别着急,把事情整明白了再去做。
Q6:老师,方言可以翻译吗?
我对翻方言这事特别地反感,因为我见过的翻方言都是在瞎翻。如果你问我:翻方言是做什么的?其实我到现在也没整明白,也许有一天我整明白了,但如果我没整明白,然后在那瞎整,那我觉得这件事还不如不整。哥尼流说的方言能翻吗?没人翻;使徒保罗说的方言能翻吗?也没人翻。后来我就觉得翻方言这事挺有意思的,我想这就是我没整明白的关键。也许有一天,神说:你要翻方言。那咱就好好地翻,神要是没说,那就算了吧。
Q7:老师,以前的牧师最近洗肾了,他教导人可以私下方言祷告,公开场合不适合,这是什么逻辑呢?
就是洗肾的逻辑。我问你:第一次五旬节圣灵降临方言祷告,是一群人还是一个人在家里?是一群人!如果第一次就是一群人,那后来怎么就不行了呢?难道是神做错了吗?这是什么脑子?让他回去读小学,读完了小学回来再说吧!也许能把洗肾这事也给免了。我就奇怪这人的脑子不好使,难道神第一次就搞错了吗?
Q8:老师,没有信主的人,学会了方言祷告,那这个人的祷告会有用吗?
没有信主的话,那这个人在那方言祷告干什么呢?人一定是信了主以后,再求圣灵充满。这个人里面是信还是不信,该怎么判断呢?也许这个人不去当地的教会,也许有别的想法。但是咱们得知道,华人命定神学是非常注重悟性的教会。方言祷告对悟性是没有果效的,但是我们既要方言祷告,也要悟性祷告;既要读《圣经》,又要被圣灵充满。所以华人命定神学读《圣经》比福音派要深入的多!
Q9:老师,什么叫污秽的言语?
这个污秽的言语,可能是没有脏字,但却是污秽;有些人说话带了个脏字,但却不是污秽。法利赛人说话都不带脏字,但全都是污秽的,这该怎么解释?保罗说话非常的粗俗,但讲的却是真理。
什么叫做污秽的言语?凡是照着世上的逻辑体系说的都是叫污秽的言语,不管这个人说的带脏字或者不带脏字,因为这个人说的都是属世界的逻辑体系,因为老马掌管这个世界。后来我就问老马,老马说自己是管下水道、马桶、马路、马葫芦、这些很脏的东西。有的人认为带脏字的才叫污秽,不带脏字的就不叫污秽。其实人里面的肮脏,说出来的话就会污秽人,这是耶稣说的。
Q10:老师,神迹都是透过祂使用的器皿做成的,这其中是否有人的因素?如果都是神的工作,为什么人的赶鬼的能力有大有小呢?
因为神的能力是照着人的信心而彰显的。人的信心大,彰显的就多;人的信心小,彰显的就少。比如:同样都是220伏的电,如果这个马达是3千瓦的,它可以产生3千瓦的动力;如果这个马达是100瓦,它就产生100瓦的动力;如果这个马达是1瓦的,它就产生1瓦的动力。人的信心可以产生很奇特的果效。所以人非有信就不能讨神的喜悦,赶鬼的能力是照着人里面的信心!
Q11:老师,我听了您的课程,我学习到僵化的守律法容易成为法律赛人,以十诫为中心的律法、典章都是神的话,比如:割礼、安息日、不吃猪肉等,守这些遭咒诅吗?但是耶稣也根据律法行了这些,不是说听了神的话就要去行吗?这些是以行为为本,还是做人当尽的本分呢?
你问的这个问题有点偏,《旧约》里头要献牛、献羊,那你要怎么办?如果你没献的话就麻烦了,因为你没守律法。如果我这样告诉你,今晚回家你就别睡觉了,因为你没守的东西多了去了。除了守割礼,还要守很多的礼,这儿割一刀,那儿割一刀,那该怎么守呢?这些东西重要吗?
比如说:安息日。以前我们讲的安息日是一天,现在我们每一天都是安息日。什么叫做安息?与神同行就叫做安息。我们能不能天天与神同行?能!但是人为什么非得等到安息日呢?神的要求在《旧约》是很低的,但是在《新约》却是很高的。如果高的都守了,低的自然不就守了吗?神要让你爱祂,那你爱了吗?如果你光去整安息日,那你不就麻烦了吗?
所以咱们要知道,神是透过耶稣来成全律法,现在你要不要废弃耶稣然后守这些猪肉、牛肉、安息日、割礼?你听了我所讲的课程,那你你里面怎么还会有这些东西呢?仍然要活在辖制当中呢?如果人要守律法,就必照着律法活着,如果你做不到,该怎么办?
所以爱神就成全了所有的一切,只要人爱神,其它的事就简单了,神的灵就会浇灌下来,我们就从神那里得着能力,就可以做到比律法更高的律法。就拿安息日来说,一个礼拜7天,一天24小时,都是安息日,什么问题也没有。
Q12:老师,如果不翻方言,我怎么知道这个人说的是什么呢?
其实你知不知道都不重要。你以为你知道很重要吗?方言祷告不是让你知道,而是让神知道。
Q13:老师,我以前教会的一个姐妹说,主日如果不在实体教会聚会就是犯罪,我告诉她神的灵是不受时间和空间的限制,有神的灵掌权的地方就是教会,我这样的回答对吗?
不对。你就别跟她扯这些东西,这种就是三八二十三的人,你非得跟她说三八二十四。这不有一个故事吗?两个人因为一件事扯到了县官那里,一个人说三八二十四,另外个人却说三八二十三。县官就把三八二十三的人放了,把那个一直要跟人家扯三八二十四的按在地上打了二十个大板。这个人起来以后就问县官:我没说错啊!县官说:三八二十四是没错,可是你非得把那三八二十三的纠正过来,就因着这事我要揍你一顿。我们为什么要干这些毫无意义的事呢?
如果现在有一个县官,你跟他扯主日不主日的,聚会不聚会的,实体不实体的,神同在不同在这些事,那你得挨揍!如果我们的神看见你这样,也会修理你。我们为什么要干这种愚蠢的事呢?
大家要开始学习变聪明,别跟人家讲这些,你讲完了以后她也听不进去。人家问你:主日有没有去聚会?你就说有。人家再问:你去哪个教会?那你就说:告诉了你,你也不知道!这种人你离她越远越好。你怎么交了这么多这样的朋友呢?整着整着就把自己整懵了。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1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점점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을 어떻게 택하셨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그릇을 택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 중에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인 광고를 붙이셨습니다. 하늘과 땅, 인간 세상에 그처럼 커다란 구인 포스터를 붙이셨는데,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자 모두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실 때 인원 제한이 있을까요?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있는 대로 다 받으십니다! 형편없다고 꺼리지 않으시고, 훌륭하다고 지나치다 하지 않으십니다. 많다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시고, 적다고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쯤에서 저는 모교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곳은 항공우주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곳이었고, 매우 엄격한 태도가 요구되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은사님은 제가 미사일을 연구하지 않은 것을 몹시 아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사일을 연구하는 것은 사람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고,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를 초토화시킨 것을 보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훗날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항공우주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 하늘(천국)까지 도달하는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이 일은 엄격하며 공학적인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의 제목은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신다'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구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제가 면접을 볼 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 작은 꼴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 안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 안 되면 무료로 일하겠습니다! 결국 밀고 들어왔고, 하나님께서도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4대 보험 같은 건 전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다 보니 하나님께서 '이 녀석 제법 잘하네!' 하고 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셔서 무엇을 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셔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웠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왕양명(王陽明)은 심학(心學) 체계를 세우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우리 중국인들보다 왕양명을 더 깊이 연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500년이 흘렀고, 하나님께서 사명 신학을 하나 정리하라고 하셔서 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깊은 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정말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줄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계시가 머리를 한번 탁 치거나 손가락을 튕기면 나오는 줄 압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구하는 자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눈 덮인 산을 넘고 풀밭을 건너며 걸어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구하고 탐구하는 바로 이러한 성품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해보면, 제 성경공부가 꽤 흥미롭고 이야기꾼 같은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 성경공부의 내용에는 모두 계시의 맛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셨기 때문이지 제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신학에 대해 매우 체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엄격하게 정리해 나갑니다. 사도 바울 이후로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이렇게 명확하게 읽어낸 사람은 제가 처음입니다. 때로는 제가 농담 삼아 "500년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세대에서나 끊임없이 계시하시는 일을 하시며, 자신이 택하신 그릇에게 계시하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환상과 말씀을 통해 베드로를 택하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데, 이 일은 정말 신기합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10:1-8)
유대교를 믿는 것도 유익하고, 경건한 것도 유익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고넬료에게 나타나셔서 사자가 그의 집에 들어가 그에게 말하게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계시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없애버렸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아닌 데다 끈기와 경건한 성품마저 없다면 끝장난 것 아닙니까? 고넬료가 얼마나 오랫동안 경건했는지 보십시오. 갑자기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가 머무는 곳, 곧 욥바에 거의 다다랐을 때 베드로는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사도행전》 10:9-16)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베드로를 불렀고, 베드로는 따라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사도행전》 10:44-46)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 무엇을 하게 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택하시는지 베드로로 하여금 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전통을 돌파해야 함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베드로는 전통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일을 사도 바울이 했다면, 큰 보자기를 펼칠 필요도 없었고 그 안에 계시할 수많은 것들을 담아 베드로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을 그렇게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루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유대인의 전통을 돌파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그렇게 안배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에 맞추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는 그에 맞는 방식을 써서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고넬료의 집에 이르러 베드로는 번쩍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에게 그토록 많은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보여주시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뜻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시는 것은 늘 매우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수년 동안 저는 제 안에 있던 수많은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성경을 수없이 읽으면서, 성령 충만에 대해 설명해 놓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넬료가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도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성경 전체를 다 읽어보아도 성령 충만을 설명해 놓은 구절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 충만을 받으면 털이 곤두서고, 입술을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말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 말입니다. 성경을 다 찾아보아도 그런 묘사는 없었고, 방언 기도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넬료처럼 사람들을 방언 기도로 인도한 이들도 방언 기도를 할 때 이러쿵저러쿵 따라 하라고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저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이라도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한다면 성령 충만으로 인도했고, 그 결과 성령께서 정말로 그 사람에게 충만히 임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고 저 자신도 매우 놀랐습니다. 사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성경》에서 한 번도 장황하게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은 임하면 임하는 것이고, 성령 충만이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지, 사람이 억지로 하나님을 충만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만이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에 대해 온갖 장황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길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왜 화인 사명 신학에는 설명이 없을까요? 《성경》에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제가 이 전통을 깨뜨렸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먼저 설명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도 그 교회에서 그렇게 했지만 저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어두운 방으로 끌려가 성령 충만으로 인도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몇 마디 따라 했더니 방에서 내보내 주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복음주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며, 화인 사명 신학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창세기》 1장을 읽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정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2주 동안 계속 기도하자 갑자기 하나님의 영께서 저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저는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코 제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저는 수년 동안 《성경》을 읽었지만 《창세기》 1장을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오직 우리 화인 사명 신학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왜 굳이 나에게 말씀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설령 말씀해 주셨다 해도 듣고 나면 알 듯 모를 듯했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하나님! 왜 저에게 창세기 1장을 말씀해 주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마치 영어의 '참고용 정보(for your information)'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로 돌아가 다시 세상을 창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계시였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창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에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돌아가 천지를 창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많은 사람이 깊은 어둠 속에 살고 있으니, 나의 영을 부어 운행하게 하고, 입을 열어 선포하여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을 것이요, '소망이 있으라' 하면 소망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로 저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 처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 화인 사명 신학에 왔던 많은 사람도 깊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모두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우리가 함께 기도한 결과입니다! 제가 선포하자 여러분 안에 소망이 생겼고, 흑암 속에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성경》이 《사도행전》에 이르기까지 역대 이래로 아무도 베드로를 의심하지 않았고,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를 의심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는 매번 베드로를 끄집어내어 이야기합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용하셨고 그를 그릇으로 택하셔서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시고도 그와 함께 일하지 않으시거나 일부러 골탕을 먹이시는,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계시는 바로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시하실 때 그가 훗날 결정적인 순간에 실족할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그와 함께 일하시고 그에게 계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는지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환상이든 음성이든 언어든 깊은 묵상이든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에게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으신다면 분명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신다면 분명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신 사람이며, 베드로가 행한 기적은 하나하나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릇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껏 다 해놓고 요강이 되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천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에게 골동품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꺼내어 반짝반짝 닦고는 한가할 때마다 그 골동품에 술을 따라 음미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어 골동품 가게에 가져가 감정을 받아보았습니다. 감정해 보니 그것은 술을 마시는 용도도, 차를 마시는 용도도 아닌 요강이었던 것입니다. 감정을 마친 후 그는 한참 동안 역겨워했습니다. 옛날 큰 부잣집에는 요강, 술병, 찻주전자, 물주전자 등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었습니다. 술병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찻주전자는 되어야 하고, 찻주전자가 될 수 없다면 물주전자라도 되어야지, 결코 요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강이 되면 천히 쓰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한 일에서 벗어나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하나님께 택함 받은 그릇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일하시는데, 이 함께 일하심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일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인 광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으며,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줄곧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제가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하나님께 무료 수습 기간을 달라고 매달리다 보면 차츰 견뎌내어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저와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비집고 들어온 편에 속합니다. 베드로처럼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가 나중에 삐끗하여 넘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 장에서 바울은 예비 타이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라는 예비 타이어를 다소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소에 있을 때 매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자 생각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대단하여 그가 정리한 것들은 모두 정밀한 공학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끊임없이 계시하셨고,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것은 베드로의 몫이었는데, 나중에 베드로의 일을 바울이 넘겨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대체 인물이었고, 여러분은 대체 인물이 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선 사람이 삐끗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앞의 세 아들이 모두 실족했고 넷째 유다가 기회를 얻어 거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뒤의 아들들에게는 더 이상 남은 기회가 없었고, 열한 번째인 요셉은 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남의 기회를 가로채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일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일할 기회가 너무나 많아서 결코 실업자가 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자꾸만 삐끗하고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해나가다가 도중에 주저앉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더니, 사랑이 찾아오자 시집을 가버리고는 자기가 시집을 가도 상관없이 자기 아들이 와서 하나님을 섬기면 된다고 장담하는데,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삐끗하여 주저앉은 적이 없으며,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도 모두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고 그 당시 자기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왜 삐끗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에는 매우 치명적인 속성들이 요구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제게는 바로 그러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잠시 한쪽에 놓아두신 것은 앞선 사람이 삐끗하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실족하자 바울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고, 나중에 유대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베드로는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의 사도였으니, 하나님께서 원래 그에게 맡기신 사역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습니까! 고넬료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으로서 큰 권세를 가진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베드로의 말을 들어야 했고, 베드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삐끗했습니다. 훗날 바울이 이 사역을 이어받아 앞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했습니다.
설령 여러분이 훗날 삐끗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긍휼을 베푸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마치 우리가 사람을 뽑았는데 썩 훌륭하지 못하고 밖에는 여러분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 해도, 여러분이 우리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회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저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왔고 우리 울타리 안에 들어왔으니, 저는 12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여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내고 싶은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바로 이 일을 하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해야 합니다.
대체 인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대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이 몹시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예비자로 머물렀습니다. 훗날 《갈라디아서》, 《로마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등 수많은 서신서를 썼고, 심지어 《히브리서》도 그가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셨으니 저는 평생 삐끗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론 저 혼자 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누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확장될수록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의 모습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주인이시며,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시든 우리는 그대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이 바르기를 원하시면 우리는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섬기기를 원하시면 우리는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저는 평생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단연 일류 직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저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제가 다 미리 생각해 두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로서 어찌 빠뜨리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우리의 뜻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내가 여전히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만족을 얻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듣기에는 거창하고 현실감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제가 앞으로 말씀드릴 내용은 모두 지극히 실제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통을 돌파하는 것입니다. 전통을 돌파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 시대에는 방언을 말하면 은사주의 교회라 부르고, 방언을 말하지 않으면 전통 교회라 부르는 대략 그런 형편입니다. 저는 '교회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택함을 받는 길입니다. 저는 교회가 남겨둔 전통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것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통들은 수백 년 동안 중세의 가장 어두운 암흑기로부터 흘러내려 온 것인데, 이것이 어찌 진리일 수 있겠습니까? 전통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당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사도 바울은 이 일을 매우 명확히 이해하고 전통을 돌파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능동적으로 전통을 돌파하여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다면, 하나님께서 환상 속에서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번거롭게 보여주시며 잡아먹으라 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베드로가 못 하겠다고 버틸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에 순종했다면 참 간단했을 텐데 말입니다. 전통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깨끗함과 부정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이미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전통을 돌파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와서 그는 다시 전통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날 때부터 그러한 전통들에 별로 굴복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교회가 거대한 건물이어야 하고 본당에 의자가 줄지어 있어야만 진리입니까? 강단 위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무겁게 연주하고 찬송이 끝날 때 아멘송을 부르는 것이 모두 전통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분명히 보았을 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전통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감리교에는 감리교의 전통이 있고, 천주교에는 천주교의 전통이 있으며, 성공회에는 성공회의 전통이 있지만, 우리에게 와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파이프오르간이 드럼으로 바뀌고 나중에 기타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럼, 무대, 조명, 찬양 인도자 등도 저에게 와서는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을 부를 때 느낌이 좋다고 하지만, 저는 콘서트에 가도 감동이 넘쳐 아래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당신들의 찬양은 이도 저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통을 돌파하는 그릇과 함께 일하시며, 훗날 사도 바울이 전통을 깨뜨리고 교회의 기초를 굳건히 놓았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 안에서 출발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매우 중시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릇이 되려면 결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세계적인 유명 목회자로 만들려 하다가 지금은 시궁창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어떤 목사가 있는지 묻는다면 오직 신학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목사의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저는 일개 작은 졸병이자 그릇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귀히 쓰는 그릇이 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자기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진리를 굳게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지키지 못하면 외식하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외식이 곧 원칙이 되어버립니다.
베드로는 외식함으로 자신을 망쳤습니다. 결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목사를 세계적인 유명 목사로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말은 모두 헛된 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늘 저리 비켜 있으라고 합니다. 저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다 깨닫지 못했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돕는단 말입니까?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유익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설마 계시라도 줄 수 있습니까? 이전 교회에서 목사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화려하게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가운데 온 것이 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까? 저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호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아십시오.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우리 동북 사람들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며, 전달하려는 뜻도 매우 명확합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사도행전》 10:25-26)
우리는 그저 사람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대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두 눈 아래 코 하나와 입 하나가 있습니다. 콧구멍은 당연히 아래를 향해 있어야 비가 올 때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교사이지 대가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때 자신이 대가가 아니라 단지 사람임을 깨달았기에 고넬료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허튼짓을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엄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성경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량이 넓은 그릇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먼저 계시하신 것은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사도행전》 10:3-4)
여러분이 속이 좁아서 무언가를 베풀 때마다 일일이 계산하고 따진다면 망하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것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도량이 넓은지 옹졸한지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이며, 우리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도량이 넓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생사를 초탈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도량이 넓지 않다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남에게 속거나 해를 입거나 손해를 보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넉넉하기에 남에게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와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할 뿐입니다. 결국 구인 광고를 내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왔으면 저와 함께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어야 하니, 저는 여러분의 작업반장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훈련시켜, 원래는 이득을 보려는 마음으로 왔다가 나중에는 남에게 베풀고 내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에게 손해를 좀 보면 어떻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속이 좁은 것입니다. 사람이 옹졸해지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종종 자매들이 어릴 적에 말대꾸를 심하게 해서 아무리 맞아도 꺾이지 않아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믿고 나서 변하기 시작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사실 이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예전에는 속이 좁았지만 이제는 도량이 넓어졌고, 예전에는 완고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워졌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사람을 고치고 다듬는 곳이며, 다듬어지고 나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존귀한 그릇이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요강이라고 말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녹여서 다시 빚어내면 더 이상 요강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진다
하나님의 영은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지며, 고넬료는 사실 베드로와 큰 관계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부어졌습니다. 훗날 저는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한참을 기도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으셨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사실 방언 기도는 믿음을 훈련하는 데 매우 훌륭한 도구입니다.
수년 전 제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 집안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있었기에, 그녀가 시집을 가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친구가 그녀를 데리고 저를 찾아와 제 말을 들어보게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성령 충만으로 인도했는데, 바로 그때부터 저는 사설을 줄이는 전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녀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빚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분이 택하신 자에게 부어지십니다. 고넬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당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대해 몇 마디 간단하게 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오순절에 대한 말씀을 다 전하기도 전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갔던 할례받은 자들은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할례라는 전통은 결코 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는 절대로 안 되며 반드시 생식기에 작은 칼자국을 내어야만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매우 획기적인 시연을 보여주셨는데, 바로 할례받지 않은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시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과 연결됩니까?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사람을 택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보니 저도 자주 착각하곤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지 않았고, 제가 보기에 괜찮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괜찮은 사람 중에도 도중에 실족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너무나 많지만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그분이 택하신 그릇에게 부어지시며,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 충만이 없는 전통적인 복음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 결정적인 단계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그릇이 실족할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여전히 그와 함께 일하신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실족할 것을 미리 아셨지만, 그럼에도 그를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체 인물을 준비해 두셨고, 만약 베드로가 실족하지 않았다면 그 대체 인물은 자연히 다른 용도로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바울을 대체자로 예비하셨고, 그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평생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평생 주님의 뜻 안에서 행하게 하옵소서!" 만약 훗날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바울을 만난다면, 바울은 분명 저를 칭찬해 줄 것입니다. 저도 그와 마찬가지로 평생 실족하지 않았고,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는 동일한 속성과 성품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닦아놓은 기초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이 길을 계속 걸어오지 못했을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실족하느냐 아니냐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기쁨을 구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제 기쁨을 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저도 기쁩니다. 저는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의지해 살지도 않으니, 저를 기쁘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 자신도 제 자신을 대단하게 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존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의 베드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계시하시고 어떻게 그와 함께하셨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훗날 그가 실족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것은, 그로 하여금 핑계치 못하게 하시고 자신이 실족하지도 않았는데 버림받았다고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아무도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전통을 돌파해야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 역시 하나의 고착된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은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마다 그 세대에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 그분의 그릇을 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우리 팀을 택하셔서 세상에 속한 모든 논리 체계와 수많은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리기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치유와 사역, 축사 사역 또한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야 하며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5년 전, 10년 전에 깨달았던 것과 지금은 동일한 차원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설령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다 해도 우리 안의 관념에 얽매여 있었기에 그 당시의 수준은 너무나 낮았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끝이 없습니다!
결론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낌없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무관심하게 여러분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려면 전통을 돌파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음의 도량을 넓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께서 전례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