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디모데후서》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 영광스럽고 의로운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을 믿는다고 너도 말하고 나도 말하지만, 도대체 여러분이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믿고 계십니까? 사실 이 문제에는 커다란 물음표를 찍어 보아야 합니다. 제가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 하나에 말문이 막힙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님 믿고 죽어서 천국 가고, 살아서는 지옥처럼 사는 거죠." 다 이런 식인데,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목표는 승리하는 것, 면류관을 얻는 것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매우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군사로 복무하며, 정병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쟁터에서 싸우다 패배하면 정말 비참해집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패배하면 배상금까지 물어주어야 합니다. 패배하고 나면 돈도 다 빼앗기고, 사람도 많이 죽고, 땅도 많이 잃고, 게다가 상대에게 배상금까지 물어주어야 합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이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 승리하려는 마음가짐이나 면류관을 얻으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무엇 하러 나온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저 패배나 하려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마귀, 곧 사탄과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탄은 반드시 귀신을 보내 여러분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건드렸을 때 여러분은 과연 승리하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일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가인이 되겠다고 확고히 목표를 세웠다면 차라리 제대로 가인 노릇을 하든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랬다저랬다, 가인이 되었다가 가인이 되기 싫었다가, 다시 가인이 되고 싶었다가 또 가인 노릇도 제대로 못 합니다. 목표를 확고히 세우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승리하고, 면류관을 얻는 것으로 확실하게 목표를 세웁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저주를 받기도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저주가 깊습니까, 깊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저주는 깊습니다! 저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으면서도 아브라함처럼 제대로 살지도 않고, 이삭이나 야곱처럼 제대로 살지도 않으며, 형편없이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만국 중에 이리저리 던져지며 발붙일 땅 한 조각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가 바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려는 결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저희는 흐리멍덩하고 해이한 교회를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잔뜩 모아놓고 온종일 교회 안에서 섬긴답시고 썩어빠진 일들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시절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이루어진 교회를 세울 생각을 다 했겠습니까? 몇 사람만 와도 감지덕지할 판에 무슨 정병이냐며 그만두라고 했겠지요!
저는 학생일 때도 아주 똑소리 나는 훌륭한 학생이 되려 했지, 흐리멍덩하고 비실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부할 때 머리카락 빼고 온몸이 다 아프면서도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9년 의무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라 매일 형벌을 받는 고문 의자 같았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전문직에 종사할 때는 확실한 전문가가 되려 했고, 나중에 관리자가 되었을 때도 똑 부러지는 관리자가 되려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논리가 아주 단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누구나 정병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병으로 사는 것이 낫습니까, 정병이 되지 않고 사는 것이 낫습니까? 당연히 정병으로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통쾌하지 않습니까? 백전백승, 싸울 때마다 이깁니다.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싸운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연전연패는 듣기 거북하고, 백절불굴로 싸운다고 포장해도 결국 패배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좋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겠다. 영원 가운데 나를 위해 예비된 영광과 의의 면류관을 얻겠다. 훗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기를 소망하겠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응당 이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고서도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암에 걸릴 정도로 돈을 사랑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제가 수년 동안 늘 경고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 노릇을 하다가 결국 똥오줌도 못 가리고 입도 못 벌리는 비참한 꼴이 되지 말라고 말입니다. 온갖 사람이 다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다고, 아주 좋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호스를 꽂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고, 암에 걸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시달리는 사람들도 예전에는 다 괜찮다고 여겼고 여러분과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길 원하신다면 우리 함께 손을 맞잡읍시다. 어깨동무를 하고 달려가든 손을 잡고 달려가든 함께 앞으로 달려갑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기 싫다면 아줌마들의 수다로 가득 찬 교회를 찾아가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수다 떨기 딱 좋고 말도 잘 통할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우리의 진짜 목표가 무엇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살면 정말 무료하고 지긋지긋하니,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십시오.
설령 암에 걸려 우리 가운데 와서 치유를 받았다 해도,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억지로 붙잡아 두지 않습니다. 붙잡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정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발합니다. '내가 교회에 왔는데 왜 이렇게 요구 사항이 많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는 사람을 가려 뽑습니다. 오고 싶다면 제가 받아줄지부터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오면 섬겨는 주겠지만, 그것이 곧 제 사람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직 정병만을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 점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길을 가다가 중간에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나왔습니까? 차라리 애굽에 남아 있는 것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애굽에서 노예 노릇 하며 시키는 대로 사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마귀의 수하로 살 바에야 중간에 돌아서지 마십시오. 저는 다시 받아주지 않습니다. 사실 모세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모세였다면 이랬을 것입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당장 돌아가라. 중간에 가서 내가 질질 끌고 발로 차며 데려가게 만들지 말고, 하기 싫으면 지금 그만두라." 이해하셨습니까? 섬기더라도 억지로는 하지 않습니다. 질질 끌고 갈 필요 없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될 형제자매들을 원합니다.
목표가 명확해졌습니까? "목표는 명확하게, 전략은 확실하게, 방법은 올바르게" 이것이 저의 말버릇입니다. 목표가 명확합니까? 명확합니다. 전략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정병의 자질 1: 강함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강함'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강함, 사랑, 근신(절제) 등은 매우 중요한 단어들입니다. 이 강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강함입니다.
'강하라'는 말이 성경에서 처음 어디에 등장할까요?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디모데후서》 본문 대신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1-9)
이 '강함'이라는 단어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오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머릿속에 결핍이 있고 성품에 결핍이 있으면 얻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가인으로 살더라도 강한 가인이 되어야 하고, 아벨로 살더라도 강한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강하지 않으면 다 헛것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강하지 못하면 참으로 비극입니다. 힘들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흐물흐물하고 무기력한 찌그러진 가지처럼 살면 그 인생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게 흐물거리면 맞선을 봐도 아무도 원치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군대 생활은 참으로 훌륭한 훈련입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저 역시 능력도 부족하고 집안 배경도 뛰어나지 않지만, 강인함만큼은 있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가장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고생 좀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어떠했습니까?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시작부터 두려워하며 기가 꺾였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도 대단한 믿음의 거인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곳에 거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키가 180cm, 아니 2미터라 한들, 3미터에 팔 길이만 1.5미터인 자와 싸운다고 해보십시오. 당신 팔은 1미터라 때리기도 전에 상대 주먹에 먼저 맞습니다! 이런 싸움을 어떻게 합니까? 상대는 수레바퀴 축만 한 크기의 창을 들고 있는데, 기껏해야 10kg짜리 칼 두 자루 들고 싸울 수 있겠습니까? 판소리나 무협 소설에서처럼 손목이 찢겨 나가며 칼이 튕겨 날아갈 것입니다. 백대 용사 명단에 이름도 못 올릴 판입니다.
1등은커녕 가나안 땅의 100위권 용사도 못 이기는데 1등을 어찌 상대합니까? 안량과 문추 축에도 못 끼는데 관우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얼굴이 굳어 칼 두 자루를 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용기를 내는 줄 알았겠지만 실은 두려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결국 여호수아가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거인들을 때려눕힌 사람들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거인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오늘날에도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거대한 석상들을 어떻게 세웠겠습니까? 다 그 거인들이 힘으로 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내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인이 있어도 강해야 합니다. 거인이 무섭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체구는 작아도 담대합니다. 체구가 작다고 담력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교회를 세우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정병의 교회를 세웁니다. 거인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그 '늙은 말'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거인입니다.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겨루는 것은 바로 '강함'입니다.
사람 많은 교회를 마다할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강하기 때문에 오직 강한 자만을 원하며, 겁쟁이는 뒤로 물러나게 합니다. 전쟁에서는 용감한 자가 이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지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용맹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신 강함이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를 응원하며 우리가 승리할 때마다 끊임없이 환호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거인이 창을 휘두르며 다가와도, 50미터 앞까지 다가갔을 때 그 거인이 배탈이 나서 설사를 쏟으며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배탈이 나면 장사도 견디지 못합니다. 거인이라고 설사를 참아낼 수 있겠습니까? 거인도 견디지 못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그런 일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강한 것은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대적은 맥을 못 춥니다.
정병의 자질 2: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정병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입니다.
정병이 되는 것은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니, 절대로 육체의 근육을 키우려 하지 마십시오. 한동안 화웨이의 한 고위 임원이 마라톤을 하다가 죽고, 또 다른 사람이 마라톤을 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역자들에게 내 친구 중에도 마라톤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 친구도 죽었냐고 묻더군요. 제가 "아직 안 죽었으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근육을 키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육을 아무리 키워도 거인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고릴라 같은 거인과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숲속의 곰이나 호랑이는 날마다 단련되어 앞발로 치는 힘만 수천 근에 달합니다. 태생부터 다릅니다.
그러므로 정병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 앞에 서면 벌벌 떨며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사람은 죽을 때가 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살아난다는 것을 압니다. 체구는 작아도 제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이를 말하고 있으며, 바울도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야고보서》나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조차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때의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였습니다.
성경은 모세오경을 제대로 깨달으면 나머지는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를 깨달으면 모세오경이 통하고, 모세오경이 통하면 성경 전체가 통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였습니다. 그러니 《야고보서》를 가지고 저와 논쟁하려 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는 구약성경의 맥은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로 이어집니다. 성경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참된 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이며, 그 기초가 말하는 핵심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바로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어릴 때 공부를 못해서 모세오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납득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야고보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체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실 때 늘 강조하신 핵심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모세오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믿음과 행함이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암 환자를 섬길 때, 행위로는 매우 가증스러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일어나면 치유를 받습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둘 때 일어납니다.
지혜로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 왜 중요합니까? 교회는 성경 전체가 주목하는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군대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영적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여 약속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약속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정병의 자질 3: 근신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디모데후서》 4:5)
'신중함(근신함)' 역시 《디모데후서》에서 거듭 강조됩니다. 디모데는 그다지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엄격했다면 진작 강해졌을 텐데, 그렇지 못해 흔들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세오경을 외우며 성경을 알았지만,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을 떠나기 전 디모데를 매우 걱정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강함'을, 부주의하기 때문에 '신중함'을 당부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겉모습만 보고 덜컥 믿어버려 속기 쉬웠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머릿속에 세속적이고 허황된 것들로 가득 찬 무지한 자들이었는데도 신중하지 못해 그들의 말에 휘둘렸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는 무지하고 허황된 헛소리가 가득합니다. 제가 지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깊이 남은 인상은, 교회 안에서 온갖 험담과 쓸데없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구역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고개를 떨구고 졸다가, 모임이 끝나고 과일을 먹을 때가 되면 눈이 번쩍 뜨여 온갖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그런 쓸데없는 잡담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속이 답답했습니다. '교회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에, 교회를 세우게 되면 정말 좋은 일꾼들을 직접 선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의 체계가 잡히면 거짓과 헛된 말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다단계 판매를 교회 개척과 결부시킵니다. 물건을 사게 만들고 상위 직급자가 되어 돈을 버는 등 재정적으로 극히 혼란합니다.
그리고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정욕은 청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년에도 있습니다. 한번은 90세가 넘은 어르신을 섬기는데 매우 화가 나 계셨습니다. 양로원 원장이 노래 순서에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정욕입니다. 경쟁심과 탐욕은 결국 자신을 해치며 비참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거짓말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만약 어느 날 제가 귀신에 들려 정욕과 재물의 유혹에 빠져 돈을 요구하거든 신중해야 합니다. 얼굴은 목회자일지라도 마음은 이미 마귀의 마음으로 변했을 수 있습니다.
돈 이야기를 꺼내며 다단계를 하자고 하면 분별하십시오. 귀신 들린 것이니 물건을 사지 마십시오. 제가 "이 물건을 사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죄 사함을 받는다"고 헛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믿지 마십시오. 나중에 정신이 돌아와 "내가 언제 돈을 빌렸느냐"고 발뺌할지도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돈을 빌리거나 어지러운 일을 벌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를 굳게 세우십시오.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정병의 자질 4: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
우리가 육체의 근육은 키우지 않더라도 고난을 감당하는 영적 근육과 마음가짐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마귀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정병이 되었다면 주를 위해 고난받을 준비를 해야 하며,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바치셨습니다.
이 고난은 질병의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병으로서 받는 고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고난받는 마음가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정병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험난한 고난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도 소망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은 마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고자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는 육에 속한 자가 반드시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합니다. 주를 위해 고난받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다면, 결국 육신을 따르다가 아무 영광도 없고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고난까지 받아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은 육신을 따르기 위해 고통을 당하든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고난을 당하든 둘 중 하나를 겪게 됩니다.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고난이 훨씬 낫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선악을 분별하지 않으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죄로 인한 비참한 저주와 형벌을 겪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복음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디모데 안에 그런 연약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의 흐리멍덩한 태도를 본받지 말고, 오직 바울을 본받으십시오.
고난받는 마음가짐은 참으로 귀합니다. 암 환자를 섬기며 밤새워 기도하고 대가를 치르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 큰 위로를 받습니다. 복음을 위해 치르는 대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참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정병의 자질 5: 열정
사람 안의 열정은 거대한 불꽃과 같아서 우리 안의 피로와 괴로움을 모두 태워버립니다. 마음속에 불꽃이 없고 흐물흐물하게 살면 인생에 맛도 없고 의욕도 사라집니다. 마음에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승리하지 못합니까?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열정적으로 임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제 안의 열정이 피로를 태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는 소망이 있기에 밤낮을 잊고 몰입합니다. 영적 전쟁은 그 기세로 싸우는 것이므로, 열정으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음속의 불을 다시 지피라고 권면했습니다. 불이 꺼지면 무기력해지고 무너집니다. 그 열정을 엉뚱한 연애 따위에 낭비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거룩한 일에 쏟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열정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연애할 때만 반짝이지 말고, 공부할 때나 일할 때나 사역할 때나 언제나 열정으로 충만하십시오.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통쾌하고 기쁩니다. 마음속의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열정과 소망을 품고 앞으로 달려갑시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열정을 꺾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일깨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디모데에게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나마 선발할 만한 일꾼이었습니다. 디모데에게도 본래 열정이 있었습니다.
정병의 자질 6: 승리
우리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을 본받아 승리하는 성품을 기르십시오. 승리하는 자만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승리는 근육을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훈련을 통해 얻어집니다. 믿음을 훈련할 때 승리하는 결단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떤 이들처럼 믿음도 지키지 못하고, 싸움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길도 다 달리지 못한 채 하수구 구덩이에 빠져 헤매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승리하려는 결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승리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강건함, 말씀의 기초, 근신함, 고난받는 마음가짐, 타오르는 열정, 그리고 승리하려는 결단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를 보고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하려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 낸다"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성품과 자질이 필요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이러한 자질을 스스로 훈련하십시오. 승리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마십시오. 시험을 치르든 자격증을 따든 대가를 치르고 승리해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패배자로 사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기를 배웁시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