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讲的这个题目非常的枯燥,枯燥在哪呢?因为讲到爱太抽象了。我也觉着我没讲明白,所以等大家问我问题的时候,咱们慢慢来琢磨。你说:你为什么能讲不明白呢?因为我好像还不太配讲我已经尽心、尽性、尽力爱神了。有的人说:你不是以前讲过尽心、尽性、尽力爱神吗?就是还没尽到嘛,是不是这么回事?如果我觉着我已经够尽心、尽性、尽力爱神了,那就麻烦了;觉着我已经做得多好了,那就坏了。
【问题】1:老师,这篇道里的爱既是指爱神,也是指着爱人吧?
答:是讲爱人,但是《圣经》里的爱实际上是讲爱神,大家千万不要搞错了。爱!耶稣提到了两次,一个是你要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没有说爱神如己,但是神说爱人如己。因为你太爱自己了,所以要爱人如己。这件事我们觉着是爱人,其实你如果不爱神,你爱什么人?是不是啊?所以说最要命的就是爱神了,那是最大的诫命。如果你真有爱神的心,你就会谨守遵行神的诫命,你就会谨守遵行神的话。神的话让你不求自己的益处,你就不求自己的益处。听明白了吗?为什么我强调的是爱神?有人说:也有爱人吧?没有爱神做根基,爱人都是扯淡的。
【问题】2:老师,保罗写这一章是有什么故事背景吗?哥林多又发生了什么事?这一章读起来有些抽象,是针对什么现象讲的呢?
答:就是针对前面所有的那些事。为什么他们有这些困惑?就是因为他们不爱神。非常简单,因为他们不追求那最大的,谈来谈去就是我有女儿该不该嫁人啊?我这东西能不能吃啊?我这事能不能做啊?全是这些事。这些事有多重要?很low的,low爆了!所以说所有问题的根源,包括那些人吃圣餐,最后把自己给吃死了,吃生病了,吃喝自己的罪。为啥?都是非常自私的人,这就是问题所在。
【问题】3:老师,这个爱是不是有条件的?像神要灭的所多玛城,因为罪大恶极,所以神就灭了这城。那换成人呢?是不是人自私到极致,无药可救,常常违背神的话,变成了神的敌人,成了遭毁灭的人?我们不爱神的敌人对吗?
答:这是啥问题?好像有点乱。爱神!听明白了吗?爱神就会谨守遵行神的话。爱神!《圣经》里头已经讲了不知道多少,做我们该做的,就不会产生这么多的困惑。我们考虑问题的时候都要考虑神怎么看,听明白了吗?哦,神是这么看的。因为《圣经》里头都讲了,亚伯拉罕跟神求的时候,不是说为那些罪人,恶人,没有。他说:神把恶人和义人一起毁灭绝对不是神所做的。他对神的判断是准的。有人说:哎呀,神呐!所多玛那里面的人好可怜呐!可怜吗?犯罪的时候就不可怜了。
【问题】4:老师好,什么是爱?是把病人释放出来了才算爱?是医治释放出来?爱是长久忍耐。
答:什么是爱?刚才讲了一大堆,爱是恒久忍耐。忍耐啥?恒久忍耐人犯罪啊?不是。恒久忍耐就是这个人还没有得医治,没有得释放,因为爱,所以我们一直忍耐坚持到他得释放。不是忍耐他常常羞辱神,听明白了吗?
【问题】5:老师对于恒久忍耐,有时候做不到甘心忍耐,先用意志力忍住,再慢慢地回到神的话里平静忍耐,对吗?
答:《圣经》没有解释这个。《圣经》讲爱是最大的,所以告诉你爱是恒久忍耐。如果靠着神做不到,你靠意志力能做得到吗?我看也做不到。有的人很奇怪,就说:老师啊,我忍着忍着,就不对他识别善恶。其实已经识别善恶了怎么忍呐?老师,哎呀,无论如何我不能识别善恶,可是还得识别善恶。为什么?因为悟性不通,不知道这是愚蠢的。
【问题】6:老师,悟性上越认识神,就会越欢喜谨守遵行神的话,越行神的话就会越爱神对吗?
答:爱神,你就会谨守遵行神的话,甘心乐意地去谨守。所以说悟性上得知道,悟性上不知道那就没法走下去。悟性上产生矛盾,我就觉得我就是要求自己的益处,那你怎么走啊?你觉得求自己的益处是聪明啊还是笨呐?如果你觉得求自己的益处是愚蠢,那你还求吗?你就不求了。是不是?
【问题】7:老师好,为什么主来不认识我?我认识耶稣,听老师分亨后,有点惧怕。主不认识我,要怎么做主才认识我?要遵守他的话,落实出来,照他的话去行,主才认识我嘛?
答:这些《圣经》都有,我念给你听,你们都有《圣经》不用问我。
凡称呼我‘主啊,主啊’的人,不能都进天国;惟独遵行我天父旨意的人,才能进去。当那日,必有许多人对我说:‘主啊,主啊,我们不是奉你的名传道,奉你的名赶鬼,奉你的名行许多异能吗?’我就明明地告诉他们说:‘我从来不认识你们,你们这些作恶的人,离开我去吧!’”
“所以,凡听见我这话就去行的,好比一个聪明人,把房子盖在磐石上。雨淋,水冲,风吹,撞着那房子,房子总不倒塌,因为根基立在磐石上。凡听见我这话不去行的,好比一个无知的人,把房子盖在沙土上。雨淋,水冲,风吹,撞着那房子,房子就倒塌了,并且倒塌得很大。”(《马太福音》721-27)
回答你的问题了吗?回答了啊。
【问题】8:老师,那爱人不要爱人的肉体,那如何用神的爱去爱呢?
答:这问题好有意思啊。今天我在教大家不是靠着神发财;也不是教大家靠着神单单得医治;我是教大家要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这就是神的爱。是吧?那爱人的肉体:哎呀,吃什么?喝什么?睡得好吗?我不大关心这个。如果一个有神的人,用不着体贴他的肉体,反倒需要把他的肉体,那些邪情私欲给对付掉。当人活在咒诅当中,当人把今生看得太重,破碎他;当他人生的盼望都在这今生,人生的梦想都在这世上,破碎他,把神的话教导他。耶稣怎么做,你就怎么做就对了。
【问题】9:我们如今仿佛对着镜子观看,模糊不清是因为自己里面的无知,属灵的瞎子,所以现在认不清楚自己,不知道自己的问题所在么?
答:不是,这句话不是这个意思。就是我们今天所说的,还说不太清楚。等到那完全的来到,就是主耶稣再来的时候,等我们进到主耶稣面前的时候,很多事情就清楚了。今天说解释这些问题:哎呀,信、望、爱,爱是最大的,还是对着镜子看呐,有点模糊不清。说不清楚,就是因为我们今天活在肉身当中所知道的还是有限。
【问题】10:老师,我们是不是爱神就是在神的面前放下自己所谓的底线,坚持选择遵行神的话,在神的面前柔软?平时对人也要有爱,像神对我们一样常常忍耐,对人也是不求自己的益处?相信神掌权。我们常常说:免我们的债,如同我们免了人的债。和今天讲的有关吗?
答:这和主祷文肯定是有关。人有底线干啥呀?神的话这么说咱们就这么行不就完了嘛。然后我还有我的底线,神还有神的底线。最后到底是照着谁的底线?听明白了吗?神的话怎么说就去怎么行!凡听见神这话就去行的,就如同一个聪明人,把房子盖在磐石上。
【问题】11:老师,8-10节讲等完全的来到,什么都归于无有,只有爱是永不止息的。是不是可以理解为只有爱是可以存留的?因为11-12节说心思意念像孩子,后来丢弃了。12节又说现在模糊不清,到耶稣再来的时候就要面对面,是不是说我们里面有没有爱到那时就知道了?
答:不是。我们有没有爱神?你能不知道吗?是吧?你肯定知道。就是到完全的来到的时候,就不需要人讲道了;也不需要方言了;也不需要翻方言了,什么东西都变得直白了。也就是说神在做一个非常伟大的一个筛选,就是透过在世上活着这点事,把人给筛出来。就像我们今天如果完全了,像耶稣一样完全。我们以前觉得,哇,按手祷告好伟大!好像变成小孩子学那点东西,这没啥意思丢掉吧。只有爱是最大的!
今天讲的这个查经啊,真的有点难。我得说我没讲清楚,我已经很努力了,但是我觉得我还没讲清楚。所以说大家多担待一下,但是《圣经》的经文你慢慢读吧。你慢慢读你肯定会读明白,或许神会给你特别的启示。
我们今天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为什么要到这呢?因为再问下去我也说不明白,保罗都说不明白,我怎么可能说得明白呢?但是我们知道爱是最大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본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지만, 그 안의 관점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참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이 장의 주제는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큰 것이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실제로 행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문제는 주님을 믿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방언 기도를 한다고 해서 다 은사주의 교회이고 이미 아주 영적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목회자가 기도하며 누구 이마에 손을 얹자마자 그 사람이 쓰러졌다 해도, 사실 쓰러진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보아온 이런 일들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 하나님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적은 결코 없습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뒤에 하신 말씀이며, 그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인간의 이기심은 예로부터 한 번도 없어진 적이 없으며, 이기심은 대단히 강력합니다. 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사람의 이기심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개혁개방이 중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까닭도 돈을 벌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번 돈이 전부 남의 것이라면 훗날의 그런 결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사실 사람을 이기심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은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벌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가장 큰 것이 사랑이라고 설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여러분께 제 경험 하나를 나누겠습니다. 한번은 여러 목회자분들이 저를 강단으로 밀어 올리며 설교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전하려는 말은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수많은 사례들을 들었는데, 설교를 절반쯤 하자 그 목사님이 못 견디고 손짓을 하며 계속 저더러 멈추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자마자 저는 작은 방으로 불려 가 면담을 받았고, 그렇게 설교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전한 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것은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코 제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 사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여전히 힘써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우고 추구하는 중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제게는 저만의 섬김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섬김의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천천히 점검해 보십시오.
1.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제가 보기에는 차라리 우상을 숭배하는 편이 효과가 더 좋을 것입니다. 항상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바울은 이 일을 아주 명백하게 설명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믿음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믿으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영원한 것들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며, 그 후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일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지혜로운 공부인데, 저는 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지 의아합니다. 그들은 섬김을 그저 일(직업)로 여기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제일 큰 것이 사랑임을 모른다면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그런즉 항상 있을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믿음은 표적을 가져오며 믿음의 열매는 표적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따르겠지만,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증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많은 표적을 행한다면 영적 세계가 이토록 실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하여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영생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나갔을 때 영생이란 것은 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주님을 믿는 것이 좋다기에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믿다 보니 영계가 이토록 실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따라서 영생도 너무나 실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울 때는 낑낑대며 몹시 힘들어했고, 무엇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저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저는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비유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사람은 맘몬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은사를 말했고, 뒤에서는 사람이 반드시 무엇이 더 큰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길을 열어주셨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즉, 처음에는 좁쌀이나 녹두알만 한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땅콩만 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단지 믿음일 뿐이며, 제일 큰 것은 사랑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여러분은 산을 옮길 수 있고 심지어 자기 몸을 내주어 불사르게 할 정도인데 어떻게 사랑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 전 숏폼 영상을 하나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유엔 본부 정문 앞에서 분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쪽이 더 크고 어느 쪽이 더 작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까닭은 그들이 큰 것은 붙잡지 않고 작은 것만 골라 붙잡았기 때문인데,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만 원짜리가 있고 다른 하나는 십만 원짜리가 놓여 있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십만 원을 택할 것입니다. 만약 백만 원짜리, 천만 원짜리가 더 있다면 당연히 더 값진 것을 택할 것입니다. 누구나 더 큰 것을 택할 줄 압니다. 만약 눈앞에 100원짜리 구슬과 수천만 원짜리 소를 두고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소를 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일에서 벗어나는 순간 완전히 골치 아파집니다. 그런즉 항상 있을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기를 택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하지만 읽고 난 후 어떻게 행동합니까? 무엇이든 크고 작은 것이 있으니 반드시 큰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람들을 이끌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그 프로젝트의 가장 크고 중요한 목표를 달성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비극이 됩니다. 두 번째, 세 번째로 큰 목표도 달성해야 합니다. 지금 믿음, 소망, 사랑이 있다면 여러분은 가장 큰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은 큰 것은 붙잡지 않고 작은 것만 붙잡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목숨을 걸 만큼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얻는 보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제일 큰 줄을 모르니 그저 믿음만 택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표적이 따르고, 유명한 목회자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이곳저곳 다니며 설교하고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설교 은사까지 있다면 사람들이 듣고 나서 헌금을 하고, 헌금을 챙겨서 떠나버립니다. 그들을 사랑하는지 여부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데, 문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제아무리 추구한다 한들, 설령 믿음과 소망이 있다 한들 결국 바울이 성경 구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오늘 저는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는 어느 쪽이 크고 작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 큰 것을 붙잡지 않습니까? 이전에 대만의 어떤 교회 교인이 저를 찾아와 치유 축사 사역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들 교회에서는 치유 축사 성회를 열고 있었는데, 외부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내부인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목회자는 자기가 돌보는 양들이 병든 것은 내버려두고,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부인에게 해주는 것은 마케팅이며, 교회를 확장하여 수입을 늘리기 위한 이익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은 이미 헌금을 내고 있으니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며, 그렇게 행하던 그 목사는 지금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왜 하나님 사랑하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그것이 가장 큰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러분의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우십시오. 한번은 어떤 특별 집회에 참석했는데, 말씀이 그다지 바르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만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그분을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즉시 그러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무슨 자격과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때 비로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눈물을 흘렸고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복인지를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제게 훈수를 두기도 했는데, 육신을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프냐고 묻고 싶어 할 것이고, 장사꾼은 돈이 되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90년대부터 제가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자신을 바쳤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누렸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수많은 일을 행하고 수많은 섬김을 한 뒤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온전히 섬기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비하면, 단번에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한 번에 모든 것이 끝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순교하여 주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이며,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더 이상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2. 항상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믿음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소망에만 머물러 있지도 말며, 가장 큰 것을 추구하십시오. 화인 명정 신학에는 하나의 논리가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자신들의 믿음 상태가 어떠한지 묻습니다. 제가 거듭 살펴보면 예수님을 닮은 부분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만 잔뜩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구현이시며, 자신을 온전히 바쳐 산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에만 머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상대방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상대가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르르 쓰러진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한번은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데, 처음에는 그들이 기도하자마자 사람들이 무더기로 쓰러졌고 다들 재미있어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저더러 올라와 사역해 달라고 하기에, 저는 올라가서 아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방금 무더기로 쓰러진 것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고 따진다면 분명 사람들의 반감을 살 테니, 우선 제가 제일 잘하는 요추, 경추, 어깨 질환 치유부터 시작했습니다. 물어보니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게 하고 뒷사람이 앞사람을 붙잡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 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을 섬겼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어떤 목회자가 용의 영에 사로잡혀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사역할 때였습니다. 그 목회자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했지만, 귀신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목회자가 저를 불러 사역해 달라고 하기에 제가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귀신도 누구를 무서워하고 누구를 무서워하지 않는지 압니다.
만약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 있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 입을 열어 말할 때 마귀가 떨게 됩니다. 제가 나눔을 할 때 그 목회자는 맨 앞줄에 앉아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이기심은 결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헌금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헌금하는 사람이 헌금의 의미를 깨닫고 헌금할 자격이 있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 팁을 준다는 태도로 바쳤다가는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되며, 저는 쓸데없는 일을 벌여 여러분을 저주에서 건져내 주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주님을 믿고 온전한 신앙 체계를 세워나가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 전체 체계 안에 믿음, 소망, 사랑이 있으며 그중에서 사랑이 제일 큽니다. 사실 모든 진리에는 경중과 대소가 있습니다. 무엇이 크고 작은지 모르면 사소한 것을 절대적인 것인 양 붙잡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제일 큰 것이 사랑이라는 이 진리를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추구하려면 가장 큰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 체계를 세우고 나면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순서대로 정렬되어 명확해집니다. 작은 것을 잡느라 큰 것을 버리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비록 귀신을 쫓아냈다 할지라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저는 늘 두려워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다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하신다고 하시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시도록 할 확신이 있습니까? 자신의 우선순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체계화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 그저 흉내만 내다가 평생 분주하게 주님을 믿고도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한마디를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아는 것은 소용없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셔야 진짜입니다. 중국에서는 누구나 시 주석을 알지만, 시 주석이 여러분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누구나 리콴유를 알지만, 리콴유가 여러분을 모르면 아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참 동안 주님을 믿고 온갖 애를 썼는데 결국 헛수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3.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5)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종종 농담으로 자신들을 사랑하느냐고,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결점이 너무 많아서 제가 오래 참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동역자들 중에서도 생각이 좀 둔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그들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왜 온종일 그들을 섬기는지 의아해합니다. 사실 생각이 둔하다고 해서 섬김에 지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누가 섬기든, 설령 애굽으로 팔려 간다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사랑은 사실 사람을 크게 훈련합니다. 제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리석음을 몹시 혐오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며, 한마디로 이기심입니다. 저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을 참아내야 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니, 이는 저에게 엄청난 훈련이 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6-8)
사랑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하루 동안 참아줄 수도 있고, 1년 동안 참아줄 수도 있으며, 영원토록 참아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히 시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배우자를 참아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사랑이 없다고 비난할 텐데, 사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그런 느끼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게 시기나 자랑, 교만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고린도 사람들 안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 안에 사랑이 있다면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얄밉게도 자신이 조금만 잘났다 싶으면 즉시 꼬리를 하늘 높이 치켜듭니다. 우리 목회자 중 한 분이 자기가 양육하는 어떤 사람이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면 대단한 존재나 된 양 으스댄다고 말했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는 것(부끄러운 일을 행하지 않음)은 우리가 하는 일이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일인가를 말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밖으로 드러냈을 때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것은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돈도 스스로 투자한 것입니다. 이 일을 꺼내자니 자신이 멍청하고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고, 남에게 말하자니 동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는 까닭은 이득을 보려 했기 때문이며, 이득에 끌리지 않았다면 돈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있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은혜롭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을 떳떳하게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괴로워서 제게 도움을 청하지만, 괴로운 이유를 물으면 너무 수준이 낮고 부끄러워 입을 떼지 못합니다. 그렇게 저급한 줄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사람은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성을 냅니다. 자기 유익만 구하다 보니 남이 자기 이익을 침해하면 오직 남의 악한 것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매우 사악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 길을 걷게 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며, 자신이 예수님을 닮아 힘써 예수님과 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6-7)
부딪히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며,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영원한 소망을 품으면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견디기에 견딤(인내)이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왜 이렇게 하는지 묻는다면 저 자신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를 지으실 때 지금의 모습으로 지으셨는지도 모르지만, 저 스스로도 제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일 가운데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면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온종일 자기 유익만 구하고 늘 자기 의를 세우는 사람은 몹시 어리석어집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제게 도움을 청한다면 저는 틀림없이 그를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자신이 게으른 줄 모르고 부지런한 사람이 자신이 부지런한 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일이 어떻게 되든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왜 자신들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제가 한 말로 저를 옭아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남을 그렇게 요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 과연 사랑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섬긴다고 해서 다 사랑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월급 때문에 섬길 수도 있습니다. 그저 사례비 때문에 섬긴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4. 유한한 것은 반드시 폐하여지리라
육신을 위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절대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만두를 빚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의 육적인 나쁜 습관을 방임한 잘못을 아직 묻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반드시 영원한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만약 이 세상의 영광만을 추구한다면 설교가 아무리 선동적이고 은사가 넘친다 해도 결국에는 다 헛된 것으로 돌아가 폐하여질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8-10)
사람이 유한한 것을 좇는 까닭은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들은 여기저기서 설교 초청을 받는데, 사계절 내내 일정이 꽉 차면 강사료를 올려 코카콜라 회장이 특강을 하는 값보다 더 비싸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강단에서 자기가 한 시간에 5,000달러를 번다고 자랑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폐하여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은 폐하여질 것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입니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만약 가장 큰 것이 없다면 나머지는 다 입만 아픈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것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참 이상하게도 터무니없는 것들을 믿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11)
그 이유는 이미 눈에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손을 얹자마자 쓰러지는 따위의 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유한한 일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설교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다 유한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이끌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의 길을 함께 달리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온 마음과 믿음과 힘을 다해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여러분이 온전한 구원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방언 기도 하나 하거나, 안수 기도를 할 수 있거나,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사실 이런 것들은 다 폐하여질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8)
설교도, 방언도, 지식도 결국 다 폐하여지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유한한 세상에 머물며 살지 말고 하나님을 닮기를 추구하십시오. 그때가 되면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실로 너무나 부분적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이제 유한한 것들, 사라져 없어질 것들은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기를 갈망하며, 마음과 믿음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갈망하십시오. 인간의 이기심은 대단히 가증스럽고도 지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코 유한한 것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저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암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해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를 아는 까닭은 그가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저주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조상으로부터 온 저주를 끊어낸다는 식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격앙되고 단호하게 말하고 겉보기에 아무리 큰 믿음이 있어 보인다 할지라도, 사실 그렇게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것을 담당하신 것이지 새롭게 끌어들인 저주까지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계속 저주 가운데 살며, 끊임없이 이기적이고, 끊임없이 유한한 것들 속에 머문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조상으로부터 오는 저주가 삼사 대까지 이르는 까닭은 바로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곧 이기심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부분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명백한 것들을 이미 우리에게 다 알려주셨습니다.
5. 누가 그것을 해낼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높은 기준을 누가 해낼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수많은 핑계를 대며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결국 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내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여전히 유한한 것에 불과합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모두 은사만을 추구하고 기름부음을 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기름부음이 크림 같은 화장품인 줄 알고 아무리 발라도 소용없는데 바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바르고 번지르르하게 분칠을 하여 온몸에 기름부음이 가득하다 한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원한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실 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해내기 어렵습니다.
6. 결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제 대답은 이것이 얼마나 남는 것(가장 유익한 선택)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유한한 것을 추구하며 살지 마십시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