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성경공부 자료를 검색하던 몇 분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다른 성경공부 자료는 들어 보면 별로 믿을 만하지 않은데, 화인명정신학 웹사이트의 성경공부 자료는 들어 보면 비교적 핵심을 잘 짚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성경을 공부하는 것과 다른 책을 읽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산산조각 내어 읽습니다. 어떤 한 부분만 따로 떼어 읽다 보니 저자가 쓴 의도는 읽어 내지 못하고, 저자가 쓰지 않은 의미는 한가득 읽어 내게 됩니다.
산산조각 내는 성경공부 방법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인용하면서 이 단어는 무슨 뜻이고 저 단어는 무슨 뜻인지 한참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표현하려는 뜻에서 벗어난다면, 그런 성경공부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완전하게 조립된 자동차는 운전자가 열쇠를 꽂고 가속 페달을 밟아 시동을 걸면 정상적으로 달립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분해해서 바퀴와 엔진과 부품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면, 그것이 여전히 자동차입니까?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은 전체가 서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로 보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분해해서 따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보배를 천국 안으로 거두어들이신다
《마태복음》 13장의 성경공부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하나로 묶어서 보면 마태가 표현하려는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이 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보배를 천국 안에 거두어들이십니다.
사실 이 주제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누가 집에 쓰레기를 모아 두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제게 한 친구가 있는데, 술에 취하기만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길거리의 쓰레기통과 화분을 자기 집 거실로 옮겨 놓곤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깨서 보니, “누가 이런 더러운 것들을 우리 집 안에 옮겨 놓았지?”라고 했습니다. 사실 누구도 쓰레기를 집 안으로 들여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한 사람의 집이 깨끗한지는 상당 부분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어떤 사람이 집 안에 쓰레기를 모아 두기를 좋아한다면, 대부분 귀신에게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얼마 전 제가 어떤 사람의 집에 갔는데, 창문과 책상과 냉장고 곳곳에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 쓰레기봉투를 언젠가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는 한 가지 결론밖에 없습니다. 그 집이 귀신에게 지배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주제는 하나님이 보배를 천국 안으로 거두어들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어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두어들이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두어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46)
이 본문에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천국이 하나의 보배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천국을 사는 것을 언제 보셨습니까? 이 말씀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사실 씨를 뿌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가라지와 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모든 설명은 보배를 천국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대가를 치르셔서 하나님의 보배를 구속하신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사무엘,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값비싼 보배로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팔아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구속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을 구속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들으니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배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배가 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사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이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쓰레기인지, 이것은 매우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다 읽고도 자신이 보배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배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인 사람들, 예를 들면 다윗과 요셉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깊이 묵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창세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두 개의 분기점이 보입니다. 하나는 가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벨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쓰레기였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하나님의 보배가 어떻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로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죽이는 자는 보배와 같지 않지만, 죽임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고, 죽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분명 보배라는 사실입니다!
열매를 맺는 사람이 보배다
물건은 희소할수록 귀합니다. 길거리에 가득한 것은 보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흙을 한 움큼 집어서 보배라고 팔아도 분명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큰 진주를 집었다면 그것은 분명 보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주는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보배가 되어야 합니다!” 보배는 흔하지 않으니 보배가 되려면 특별한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기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면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라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1-9)
예수님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누구든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18-23)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합니다. 앞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들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보배로 여기셔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십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일을 깨닫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제는 표적과 기사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도 바울 이후에는 기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마침 한 번은 인터넷으로 설교하던 목회자가 그 사람의 교회에 와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그는 그 목회자에게 다가가 왜 표적과 기사가 없는지 물었습니다. 목회자는 “그냥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신학적 논리는 성경이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이제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당시에는 귀신을 쫓아냈는데 지금은 귀신을 쫓아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매우 이상한 논리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내가 행한 일을 너희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우리는 이제 행하지 않아도 됩니까? 아무리 들어도 이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잘못된 논리는 이해하면서도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천국의 모습은 예수님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씨를 뿌리셨는데, 그 땅은 바로 우리입니다. 천국의 씨가 우리의 땅에 뿌려졌다면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예수님과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맺은 열매가 노자와 같고, 맹자와 같고, 공자와 같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씨가 아닙니다. 참외를 심으면 참외를 거두고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둡니다. 천국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졌다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반드시 천국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천국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국의 모습은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맺는 열매도 예수님과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천국이 임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선을 행하며 덕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저는 승려 출신인 친구들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어떤 승려들의 행동은 실제로 그리스도인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맺는 열매는 승려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가 천국의 씨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천국의 씨에는 천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하며, 천국의 유전자는 적어도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씨가 되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원리는 사실 매우 분명합니다. 이렇게 분명한 진리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유대 온 땅을 다니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삼 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쓰레기를 거두어들일 수 없다
우리가 천국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하나님이 보배를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나니 이는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뿐이요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는 자니라 (《마태복음》 13:19-22)
이 말씀은 매우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있다면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는다고 밥이 나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믿는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무엇에 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로 수수께끼처럼 말씀하셔서 사람들이 알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13:11-13)
예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너희’이고 다른 한 종류는 ‘그들’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알게 하시지만 그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시선이 모두 세상에 있다면 믿지 않는 것이므로 ‘그들’이 됩니다. 말씀을 아무리 분명하게 전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이 하늘에 있다면 믿는 것이므로 ‘너희’가 됩니다. 너희는 보배이고 그들은 쓰레기입니다. 보배는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쓰레기는 불태웁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세워집니다. 우리는 사람을 섬기지만 보배는 교회 안에 남겨 두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붙잡아 두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교회에 쓰레기를 한 무더기 쌓아 둔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를 베풀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밀과 가라지를 모두 거두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밀에 속한 사람이 있고 가라지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밀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가라지는 아무것도 맺지 못합니다. 그 차이는 매우 큽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의하여 가라지를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말고, 밀을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하나 되어야 하며 전투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가라지와 밀이 함께 자라게 두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그릇 안에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36-43)
마태는 매우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쓰레기를 거두어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교회의 성장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사도행전》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면 삼천 명, 오천 명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제가 본 교회 중에는 팔십만 명, 백만 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고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세히 연구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제자이지, 신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제자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마태가 기록한 이 말씀을 베드로는 잘 묵상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제자이지, 신자들의 무리가 아닙니다! 마태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이 높은 기준을 가진 제자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가 세운 교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부패를 가져오게 됩니다! 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자이고, 주 예수님은 쓰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베드로의 교회에 바리새인들이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교회에서 차지하던 지위가 선출에서 밀려난 것인지, 쫓겨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내려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교회에서 더 이상 가장 높은 지위에 있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방인의 사도라는 명칭조차 잃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일으키신 목적은 그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방인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이방인을 처음으로 성령 충만하게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한 사람도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이 직분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보이기만 하면 위선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고보가 직접 나타나면 더욱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이 배경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깊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성경을 연구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베드로가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선별해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만 교회 안에 받아들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교회가 그렇게 혼란스럽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헌금을 했는데, 베드로가 성령께서 그가 돈을 감추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자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왔는데, 헌금의 일부를 감춘 사실을 인정하지 않자 역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자세히 묵상해 보면 누가가 글을 아주 잘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안에 약간의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리새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안에서 매우 기세등등하게 행동했고, 그래서 바울은 많은 서신에서 이들을 언급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음식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한다면서, 어째서 말씀을 전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급여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급여를 주었다면, 야고보의 사람들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고 야고보에게 가서 고자질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해고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교회는 사람 수만 추구하지 말고 보배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교회가 사람 수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교회가 형제자매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매우 높였습니다. 저는 차라리 사람이 적더라도 많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적은 수의 사람이라도 반드시 천국의 모습을 지니고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좋은 열매를 맺는 보배여야 합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람 수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인 사람입니다.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보배를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라”는 말씀을 떠올리고 깊이 탄식했을지도 모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잘 묵상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 악한 자의 아들들이 무리를 지어 가득하다면, 교회를 어떻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 목회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교회는 요양원과 비슷했습니다. 교회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 그는 저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와 사모는 교회의 나이 많은 형제자매들을 위해 만두를 빚어 주었는데, 그 어르신들은 “이렇게 맛없는 만두가 어디 있어? 전복소 만두를 좀 만들어 줄 수 없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복이 얼마나 비쌉니까! 그 목회자 부부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결국 부부가 함께 울었습니다! 그는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들 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저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위해 전복소 만두를 만들어 주지 않지만 저는 이미 그분들을 용서했습니다.” (농담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전복소 만두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이것입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를 모두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악한 자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여서도 안 됩니다. 말씀을 들은 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여서도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다른 교회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아래에 앉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목회자가 앞으로 나가 콧물과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교회의 교인이 그를 법무 부서에 고발했고, 몇 년 동안 조사를 받아 매우 힘들었으며 결국 불안장애까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래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런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전복소 만두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목회자가 직접 불러 모은 사람들 아닙니까? 교회 안에 모든 종류의 사람을 받아들이면 교회가 혼란스럽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요구가 조금 높은 것뿐입니다. 우리는 사람도 부족하지 않고 돈도 부족하지 않으며 시간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어떤 문제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제 기도를 웹사이트에 올려 두었더니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제가 성경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를 매우 화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말합니다. “그런 사람을 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사실 제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그 사람이 보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보배인지 아닌지는 저도 감히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 교회에서 귀신을 많이 쫓아내다 보니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교회 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그런 귀신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 귀신은 교회 안에서 부패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계속 귀신을 쫓아내다 보면 결국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됩니다. 그때 그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마귀가 그를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해방되든지 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귀신에게 이끌려 떠났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은 간단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때 사람 수를 추구하지 말고, 그 사람이 보배인지, 값비싼 좋은 진주인지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떤 목회자들이 겪는 고난은 정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마태복음》 13장을 읽지 말라고 했습니까? 설령 읽었다고 해도 정말 깨달았습니까?
화인명정에서는 하나님의 보배만 남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구 수준을 그렇게 높이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릴 텐데요!” 교회를 세우는 데 정말 사람 수를 보아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베이징대학교나 칭화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도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어도 자격을 갖춘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칭화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가 망했습니까? 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매우 유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세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꼭대기에는 모두 보배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귀를 매우 화나게 합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13:47-50)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끝에도 그렇게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직 세상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 끝이 마지막 순간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이 마지막 끝입니다. 성경은 지금 이미 말세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이 기록될 때 이미 말세였다면, 지금은 더욱 말세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분명히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교회 안으로 모두 받아들인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까? 우리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쓰레기로 가득하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교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교회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형제자매들을 거룩한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핵심입니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예수께서 고향에 이르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사람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 하지 않느냐 그 형제들은 야고보, (어떤 사본에는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배척하다: 원문은 그로 말미암아 실족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태복음》 13:54-58)
믿음이 핵심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사람이 믿지 않으면 예수님이 온갖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아도 믿게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사람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인지 원하지 않으시는 사람인지가 결정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속으로 믿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곳에도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병든 사람도 많았고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큰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선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비록 여러분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 작을지라도 반드시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반드시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태복음》 13:31-32)
사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이 겨자씨 한 알과 같아서 우리 안에 심기면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계속 성장한다면 그의 믿음은 반드시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33)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자라나며 우리의 전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온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시간 관계상 오늘은 믿음에 관한 일을 그렇게 깊이 설명할 수 없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배를 그분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기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보배입니까?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7-18)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지켜 행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게 되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본받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한다면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와 긍휼도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귀신을 쫓아내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결론
여러분은 보배입니까, 쓰레기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입니까, 아니면 ‘그들’입니까?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장차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그분의 나라 안으로 거두어들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