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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빌레몬서 1장 -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거룩한 관계를 맺으라

2026-01-28 6,720 腓利门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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腓利门书01章-问候
  • 1 为基督耶稣被囚的保罗,同兄弟提摩太写信给我们所亲爱的同工腓利门,
  • 2 和妹子亚腓亚并与我们同当兵的亚基布,以及在你家的教会。
  • 3 愿恩惠、平安从 神我们的父和主耶稣基督归与你们!
  • 4 我祷告的时候提到你,常为你感谢我的 神;
  • 5 因听说你的爱心并你向主耶稣和众圣徒的信心(或译:因听说你向主耶稣和众圣徒有爱心有信心)。
  • 6 愿你与人所同有的信心显出功效,使人知道你们各样善事都是为基督做的。
  • 7 兄弟啊,我为你的爱心,大有快乐,大得安慰,因众圣徒的心从你得了畅快。
  • 8 我虽然靠着基督能放胆吩咐你合宜的事,
  • 9 然而像我这有年纪的保罗,现在又是为基督耶稣被囚的,宁可凭着爱心求你,
  • 10 就是为我在捆锁中所生的儿子阿尼西母(就是有益处的意思)求你。
  • 11 他从前与你没有益处,但如今与你我都有益处。
  • 12 我现在打发他亲自回你那里去;他是我心上的人。
  • 13 我本来有意将他留下,在我为福音所受的捆锁中替你伺候我。
  • 14 但不知道你的意思,我就不愿意这样行,叫你的善行不是出于勉强,乃是出于甘心。
  • 15 他暂时离开你,或者是叫你永远得着他,
  • 16 不再是奴仆,乃是高过奴仆,是亲爱的兄弟。在我实在是如此,何况在你呢!这也不拘是按肉体说,是按主说。
  • 17 你若以我为同伴,就收纳他,如同收纳我一样。
  • 18 他若亏负你,或欠你什么,都归在我的帐上,
  • 19 我必偿还。这是我保罗亲笔写的。我并不用对你说,连你自己也是亏欠于我。
  • 20 兄弟啊,望你使我在主里因你得快乐(或译:益处),并望你使我的心在基督里得畅快。
  • 21 我写信给你,深信你必顺服,知道你所要行的必过于我所说的。
  • 22 此外你还要给我预备住处;因为我盼望藉着你们的祷告,必蒙恩到你们那里去。
  • 23 为基督耶稣与我同坐监的以巴弗问你安。
  • 24 与我同工的马可、亚里达古、底马、路加也都问你安。
  • 25 愿我们主耶稣基督的恩常在你的心里。阿们!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앞으로 당분간 우리는 이전에 살펴보지 않았던 신약 《성경》을 하나씩 다 상고해 나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축적한 성경공부 자료는 매우 풍부한데, 이는 우리가 지난 수년간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전진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미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모두 마쳤습니다.

모든 성경공부 자료 중에서 제가 비교적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마태복음》, 《누가복음》, 《로마서》, 《에베소서》, 그리고 《히브리서》입니다. 구약 《성경》도 열심히 살펴보고 있으니,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성경 전권의 성경공부를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내면에 있는 성품을 잘 드러내 줍니다. 조급해하지도 않지만 게으르지도 않게 한 걸음씩 차근차근 상고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야고보서》를 나눌 때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저는 끝까지 다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빌레몬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 있으며, 이 장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거룩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 편지의 배경

《성경》에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바울에게 많은 은혜와 신세를 졌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빌레몬 집의 노예였는데,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는 도망친 후 신분증도 없이 길을 따라 계속 도망쳤는데, 로마로 간 것인지 아니면 가이사랴에 가서 바울을 찾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찾아갔을 것으로 봅니다. 노예가 도망치는 것은 주인 입장에서 돈을 잃어버린 것과 같아서, 그 당시에는 매우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적지 않은 돈을 훔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 매우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울이 매우 비범하고 지혜가 뛰어나며 능력과 방책이 많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도망쳐 온 후 바울을 섬기기 시작했고, 이때 바울은 그에게 주인인 빌레몬에게로 돌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돌아가면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어렵게 도망쳐 나온 처지였지만,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주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오네시모는 주님을 믿는 것과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봅니다. 그 후로 오네시모는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바울은 그에게 이 편지를 써서 빌레몬에게 가지고 돌아가 주인 집에서 계속 노예로 섬기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왜 오네시모가 자유를 얻도록 그냥 도와주지 않고 굳이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려 했을까요? 이것은 바울의 신학 체계가 온전히 드러난 부분입니다. 빌레몬의 집에는 오네시모 한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노예가 있었을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업을 하는 유력하고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빌레몬은 어떻게 바울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쓴 이 편지에는 빌레몬이 자기 집에 교회를 세웠다는 내용도 언급되어 있으며, 또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거룩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쓴 글은 매우 수준이 높아서 일반적인 사람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저는 바울의 진수를 깊이 전수받았기에 말하는 스타일도 바울과 매우 비슷한데, 제가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빌레몬 사이에 어떻게 이런 관계가 시작되었는지, 당시에 바울이 어떻게 빌레몬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서》의 내용을 통해 한 가지를 알 수 있는데, 바울이 빌레몬을 전도하여 주님을 믿게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빌레몬은 사업이 부도났거나 생명이 위태로워졌거나, 아무튼 집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몹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빌레몬이 바울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었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바울이 그를 이끌어주고 섬겨준 결과, 빌레몬의 비참했던 상황이 역전되었는데 아마도 그의 사업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위대한 점은 정부 관리,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뿐만 아니라 청소하는 사람까지도 섬길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제가 깊이 감탄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빌레몬과 관계를 맺었고, 이후 빌레몬도 훌륭하게 성장하여 자신의 집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빌레몬서》 1 : 1 - 2)

따라서 이 서신이 이유 없이 《성경》에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서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거룩한 관계를 맺는 것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서신의 배경이자 주제입니다.

사람의 믿음을 세워줌

바울 서신의 서두는 빌레몬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의 전체적인 목양 스타일 또한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지, 사람에게 소리치고 다그치며 뜯어고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사역은 한편으로는 사람 안의 문제와 나쁜 습관을 다루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은 제가 구축한 전체 목양 체계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빌레몬은 사실 작은 교회의 목회자이자 책임자였습니다.

빌레몬이라는 목회자는 사도 바울이 세운 사람이었으므로, 사도 바울이 그의 위에 있는 권위였습니다. 이 서신은 바울과 동역자 빌레몬 사이에 존재했던 거룩하고 건강한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이 관계는 반드시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양하고자 한다면, 그 목양의 과정은 반드시 믿음을 세워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을 세워줄까요?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하며 항상 빌레몬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줍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다다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서》 1 : 4 - 7)

사람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은 목양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 많은 사람이 제게 와서 섬김을 받을까요? 제 섬김의 열매가 좋고 사람의 믿음을 잘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목양받는 사람의 믿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세워주면 그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예전에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저와 비교적 친밀한 일대일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목양받아야 할 사람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와 일대일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질까요?"라고 묻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말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말은 할 줄 모르고 오직 믿음을 세워주는 말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느끼는데, 그들의 믿음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믿음을 세워줄 줄 모르고 일방적으로 억누르기만 한다면 결코 좋은 목회자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겉으로는 요구 기준이 높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하도록 몰아붙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도록 몰아붙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소그룹 목회자의 직분 중 하나가 사람들의 선악을 분별함을 끄집어내어 내면의 찌꺼기를 드러내는 동역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소그룹 목회자들은 이 말을 듣고 바로 깨닫습니다. "선생님은 착한 역할을 맡고, 우리는 악역을 맡는구나." 하지만 이것은 착한 역할과 악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서툴다 해도 저는 여러분이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론 사람을 선악을 분별함으로 몰아넣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저와 동역자들의 관계는 매우 미묘합니다. 그들은 저를 상대로 선악을 분별하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저를 상대로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다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선악을 분별합니다. 제가 그들의 선악 분별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그들을 목양해야 하니, 이 매듭은 정말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매듭을 풀 수 있는데, 비록 제가 그들의 선악 분별 대상이 되었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 스스로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목양의 훈련입니다.

지금까지를 돌아볼 때, 우리의 목양 기술에는 여전히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일반 교회에 비하면 우리의 목양은 단연 탁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을 세워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관계가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여러분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린 뒤 짓밟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일으켜 세우고 믿음을 건축해 주는데, 이 얼마나 좋은 관계입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선악을 분별하며 따지러 왔다가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틀렸음을 알고 오히려 제게 빚진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저는 "맞습니다, 당신은 정말 제게 빚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을 잘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빚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믿음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동역자에게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역자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음

바울이라는 사람은 온몸이 보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돼지도 온몸이 보배여서 간, 염통, 곱창 등이 다 쓰임새가 있지만, 바울은 사람들의 식욕을 채워주어 뱃속에 들어갔다가 배설물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온몸이 가치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을 세워주었으며, 결코 동역자에게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사무엘 역시 결코 사람들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셨습니까?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상》 12 : 1 - 5)

사무엘이 다른 사람에게서 한 푼의 이득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 바울, 예수님 또한 그러했습니다. 목회자가 되어서 온종일 남에게서 무언가 이득을 취할 궁리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매우 꺼리고 경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진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동역자들과 거룩한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람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제가 누구에게서 이득을 취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누구에게서도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제 집에 머무는 것은 괜찮지만, 제가 여러분의 집에 갔을 때 여러분의 집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거리감을 두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며 호텔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여러분과 격의 없는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찾아왔는데 집에서 머물지 않고 어디서 머물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목회자들은 그렇지 않고 온종일 이득을 챙길 생각만 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을까요? 바울과 같은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할까요? 문제는 그 사람에게 실력과 능력이 있는가에 있습니다. 바울은 온몸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고, 저 역시 결코 실력이 부족하지 않으며, 설령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금방 배웁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함께 어떤 일을 시작해도 제가 하다 보면 어느새 탁월해집니다. 얼마 전 예전 직장의 상사를 찾아뵈었을 때, 그는 제가 하는 많은 일을 보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시간이 나느냐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그나 저나 똑같이 주어집니다. 캐나다에 있어서 시차가 반나절 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니치 표준시를 기준으로 그가 1시를 지날 때 저도 1시를 지나며, 차이는 오직 효율성에 있습니다.

목양을 하면서 사람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언급할 때마다 경멸조로 "저 사람은 남에게서 이득이나 챙기려 하니 멀리해야겠다"고 수군거릴 것입니다. 입만 열면 돈을 요구하는데, 돈 이야기가 나오면 관계가 상합니다. 우리 화인 사명신학(華人命定神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십니까? 누구나 헌금하고 싶다고 해서 다 헌금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교회들은 누군가 헌금하겠다고 하면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저는 결코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먹을 능력이 되면 먹고 안 되면 먹지 않으며, 살 능력이 되면 사고 안 되면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평생 써 봐야 얼마나 쓰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만, 저는 국수를 사 먹더라도 가장 싼 것을 먹습니다. 며칠 전 만두를 먹으러 갔을 때 다들 저에게 많이 먹으라고 권했지만 저는 만두 두 개만 먹었습니다. 만두 하나에 3위안이니 두 개면 6위안이고, 죽 한 그릇을 더하면 9위안입니다. 그 집은 죽을 무제한으로 리필해 주는데, 죽 서너 그릇에 만두 두 개면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저는 손님 대접하는 것을 좋아해서 멀리서 친구가 오면 하이디라오 훠궈를 대접합니다. 사람들이 하이디라오에서 무엇이 제일 맛있냐고 물으면 저는 무료로 제공되는 버섯이라고 말합니다. 버섯만 먹어도 배가 반쯤 차고, 나머지는 가볍게 몇 가지만 시키면 됩니다. 이것은 남의 이득을 가로채는 것이 아닙니다. 식당 측에서 저 같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죽을 여러 그릇 비우고 만두 두 개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사실 만두 하나만 먹어도 배가 찹니다. 제 말의 뜻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먹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끼를 다 먹을 형편이 안 되면 한 끼만 먹어도 상관없으므로 남에게서 이득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물며 저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죽 한 그릇 값을 아쉬워할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모든 일을 원칙과 법도에 따라 행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으니, 제가 여러분에게 돈을 빌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목사님이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빚 독촉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백 퍼센트 사기꾼입니다. 첫째, 저는 돈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둘째, 저는 가치를 창출할 능력이 있는데 왜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겠습니까? 제가 남에게 베풀면 베풀었지, 항상 다른 사람들이 제게서 득을 봅니다. 바울 역시 빌레몬에게서 이득을 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는 많은 재물과 노예가 있었지만, 바울의 집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가 곁에서 바울을 섬기는 것이 마땅해 보였지만, 바울은 빌레몬에게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득을 취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거절합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이어야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건강하고 거룩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손해 난 일들을 모두 자신의 계정에 달아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즉, 빌레몬이 오네시모가 훔쳐 간 돈을 탕감해 줄 생각이 없다면 바울이 대신 갚아주겠다는 뜻입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서》 1 : 18 - 19)

바울의 장부에 달아놓기만 하면 그는 반드시 갚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다루었던 재정의 규모는 매우 방대했으며, 그는 결코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가에 있으므로, 사람은 스스로 탁월한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 실패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모든 일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단을 내리고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을 훈련하여 단 한 분야에서라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분야를 제대로 못 하면 다른 모든 것도 못 하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절대로 남에게서 거저 이득을 보려 하지 마십시오! 제 나눔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가족들에게서조차 이득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베풀어줍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은 결코 물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면 여러분은 아이디어가 넘치고 온몸에 창조력이 가득할 텐데, 어떻게 물질이 부족하겠습니까?

내게 빚진 관계를 세움

빌레몬 역시 바울에게 빚을 졌습니다. 바울이 맺은 관계는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결국 다른 사람들이 바울에게 빚을 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입었을 때 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고 그들이 자신에게 빚진 상태임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내게 빚진 것'은 우리 목양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만약 목양받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청탁을 하거든 여러분은 들어주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규칙을 세우건대, 우리 목회자들은 자신이 목양하는 사람에게 사적인 부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목양받는 사람이 교통경찰인데 목회자의 차량이 압류되었다고 해서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거는 식의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목양받는 사람들을 다단계 판매의 하부 조직으로 끌어들여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교회 안에서 보험을 팔거나 다단계 상품을 파는 행태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입니다. 성도가 아프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지, 건강보식품부터 들이밀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게 빚진 관계는 어떻게 세워질까요? 첫째, 실제로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둘째,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알려주어 자신들이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목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자신이 번 그 많은 재물을 보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당시에 바울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결국 오네시모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은혜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해야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동역자의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한 동역자가 밖에서 밥을 먹고 돌아왔을 때 제가 "왜 내 몫은 포장해 오지 않았느냐?"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그는 제게 무언가 빚진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실 포장해 올 필요는 없었고 단지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다음에 그가 정말로 포장해 오면 저는 그 음식값을 정확하게 다 돌려줍니다.

여러분, 남에게서 거저 이득을 보려는 것이 나쁜 습관임을 알아야 하지만,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도 않고 남이 내게서 덕을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나쁜 습관입니다. 반대로 목양의 관계도 아닌데 무턱대고 남에게 이용만 당한다면 그것은 사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목양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왜 내 밥은 안 챙겨왔느냐?"라고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합니다. 저는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제게 빚진 마음을 갖게 만드는데, 이것은 목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실제로도 그들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성도들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관계를 맺는 관점을 길러야 합니다. 사업이 안 풀린다고 무작정 돈을 대주거나, 마약 중독자의 마약 빚이나 도박 빚을 갚아주는 것은 결코 권장하지 않으며 매우 옳지 않습니다.

절대로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마십시오. 우리는 돈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사람들을 저주에서 건져내어 축복으로 이끕니다. 물론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섬김의 관계이며, 바울의 섬김으로 인해 빌레몬이 복을 받아 비참한 상황에서 역전된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축복 속으로, 섬김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우리의 섬김으로 말미암은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과 이런 건강하고 거룩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서로 기름기 끼고 느끼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쓴 글은 매우 깊은 뜻이 있으며, 여러분은 바울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그것을 또한 분명히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써 동역자에게 간구함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서 순종이라는 말을 많이 강조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만 위안만 빌려주십시오"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무조건 내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빌레몬서》 1 : 9 - 10)

동역자에게 절대로 행정적인 권위를 휘두르지 마십시오. 행정 권위를 사용하는 것은 가장 나쁘고 졸렬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관계에서는 순종을 거의 강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며, 저는 오직 사랑으로써 간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빌레몬서》 1 : 17)

이것은 상사가 부하에게 건네는 말과 같습니다. 빌레몬이 바울을 진정한 동역자로 여긴다면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바울 자신을 영접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정 권위를 남용하지 마십시오. 권위를 남용하여 억지로 일을 시키는 것은 관계 안에서 매우 불쾌한 감정을 남깁니다. 차라리 사랑으로써 동역자에게 간구하여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해야 합니다. 하려거든 하고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모든 것은 자원함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늘 이렇게 사역합니다. 우리는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탄복과 존경을 말합니다. 목회자에게 탄복하지 않는데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억지로 순종하는 척할 뿐이며, 억지로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믿음과 사랑으로 동역자에게 간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행정 권위를 휘두르지 않는 태도입니다.

서먹하게 격식을 차리지 않음

서먹하게 굴며 거리감을 두는 것은 좋은 관계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상사처럼 굴지 않는데, 저와 여러분은 동역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므로 서먹하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유숙할 곳을 준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바라노라 (《빌레몬서》 1 : 22)

바울이 빌레몬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자 빌레몬은 그를 위해 거처를 준비했습니다.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것은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격의 없이 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며칠 묵을 호텔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매우 친밀하고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지역에 갔을 때 한 동역자의 부모님이 너무나 친절하게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집 근처까지 갔는데 굳이 호텔에 묵는다면 그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저는 이런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 자기 집에도 방이 있다고 하시는데, 제가 그곳에 가면 당연히 그분 댁에 묵을 것입니다. 다만 제게 몇 가지 궂은 습관이 있으니 그 집에 가면 조금 참아주셔야 합니다.

매사에 서먹하게 격식을 차리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많은 예를 들 수 있는데, 동역자와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하고 매사에 거리감을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동역자의 부모님이 오셨을 때 제가 정성껏 대접해 드렸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어서 동역자에게 집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택배로 선물을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역자는 제게 극구 사양하며 그럴 필요 없다고 격식을 차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먹하게 굴며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관계의 표현입니다. 제가 그의 부모님과는 조금 서먹할 수 있어도, 그가 제게 굳이 그렇게 어색하게 격식을 차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너무 거리감을 두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멀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관계를 맺는 데 서툴러서, 제가 관계를 더 가깝게 당겨놓으면 여러분은 오히려 관계를 밀어내어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치 날개만 안 달렸을 뿐이지 천사나 신선이라도 된 것처럼 매사에 서먹하게 격식을 차려서는 안 됩니다. 동역자의 관계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거리감을 두지 마십시오. 물론 여러분이 저를 격의 없이 대한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에게서 이득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사소한 일들을 이미 다 꿰뚫어 보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모인 사람들인데 무엇을 더 서먹해하겠습니까?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이 묵을 곳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편지로 쓰기 쑥스러우면 전화를 걸어 "내가 묵을 방을 준비해 두시오. 내가 당신 집에 안 자면 어디서 자겠소?"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 머물 것이고, 쫓아내려 해도 나가지 않고 붙어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가 그만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집 문앞까지 가놓고 호텔에 묵는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것임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다다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서》 1 : 6)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해드리는 것이라면 문제는 아주 쉬워집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부탁했습니까? 저도 구걸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것이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인간적인 빚을 질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울과 같은 사람이 바로 보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빌레몬의 집에 묵으면 빌레몬 집의 사업이 잘될 것입니다. 기회가 되어 제가 여러분의 집에 묵게 되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짊어진 사람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길게 말씀드린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와 거룩한 관계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이와 같았으며, 그의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 장의 나눔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혼란을 드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빌레몬서》에 관한 성경공부 자료를 찾아보셔도 제가 전한 이러한 내용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화인 사명신학만의 고유한 나눔이며,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내용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저를 칭찬하지 않으면 누가 칭찬하겠습니까? 제 자신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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谢莲坚
内容挺好,但是自夸的部分真的让人觉得有些自恋的感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