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대적의 문을 차지함"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겠지만,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약속 중에서도 최고의 약속이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 두 번째 말씀은 '너로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라'였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자기 자신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서든 이런 사람에게 시집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각별히 사랑하는 남편에게 시집갈 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복입니다. 만약 자신만을 사랑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남편에게 시집간다면, 그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바친 것은 이삭이었고, 이삭이 바친 것 역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훗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도 대적의 성문을 차지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갈 수 있었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에도 다시 한번 대적의 성문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세 번째 말씀으로 "외치라, 여호와께서 이미 이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느니라"를 나눕니다.
모세는 열 번이나 기적을 행했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으며, 바로의 병거를 모두 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를 그가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도 알고 있었을까요? 그 역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제자였고, 모세를 한 걸음 한 걸음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경험한 모든 일들이 여호수아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이 일을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훗날 여호수아가 기적을 행하여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는데,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했습니다. 그 성벽은 보기에 절망적인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안에서 결사항전한다면 그 성을 함락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함락한다 해도 기나긴 소모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7일 만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나서실 필요도 없이 천사 하나를 보내 발뒤꿈치로 툭 차게만 하셔도 성벽 전체가 무너져 내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고, 이삭이 자기 자신을 바친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네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모세는 아브라함의 이 유산을 계승했고, 여호수아도 이를 계승했기에 이런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계승하셨습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작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얼굴에 의혹이 가득하여 "어찌 된 일이지? 에이, 다 신화(옛날이야기) 같은 거지"라고 합니다. 사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평생 이 개념을 놓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신화'라는 말은 곧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바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진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기도했을 때 열 명 중 한 명은 낫고, 한 명은 죽고, 나머지 여덟 명은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것이 진리입니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음정을 틀리게 노래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틀리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노래란 원래 이런 거야' 하면서 꺾어야 할 곳은 제대로 못 꺾고, 꺾지 말아야 할 곳에서 크게 꺾어서 듣는 사람들이 귀를 막게 만들면서 '노래는 원래 이렇게 부르는 거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작사 작곡한 사람이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것입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썼나? 이건 당신이 새로 지어낸 노래잖아. 당신은 부를 때마다 새 노래를 부르네." 사실은 그냥 내가 부를 줄 모르는 것뿐입니다.
일찍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듯이, 기도하여 질병이 치유받는 일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것이 바로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런 일들을 기록해 두었을까요?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당시에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단지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며, 그 시대의 뉴스가 지금 낡은 소식이 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수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 것처럼, 사실은 자신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본받고 배워서 우리 역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내가 해내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래 연습을 공들여서 합니다. 저는 날 때부터 음치였고 쇳소리 나는 목소리인데 어떻게 노래를 하겠습니까?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들 귀를 막으니 저도 참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 혼자 노래를 부르며 공들여 배웠습니다. 발성을 배우고, 리듬을 배우고, 음정을 배웠습니다. 때로는 박자를 너무 빨리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불렀는데도 아직 안 끝났거나, 다른 사람들이 시작도 안 했는데 혼자 시작해 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르지만 배웁니다. 못하는 것은 배우면 됩니다. 모든 것은 배워서 얻는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글자를 안다면 그것은 요괴일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예전에 우리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엉망진창으로 헤맸습니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기는커녕, 마귀에게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짓밟히며 몹시 고생했고 수시로 원수에게 짓밟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승리하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 굳게 서서 결코 폐하여지지 않음을 알았기에,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배워서 얻는 것입니다. 비록 배우는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제게는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앞으로 기어가고 전진하는 성격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어가다 보면 어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그때 시절을 회상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비록 마귀에게 짓밟혔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저를 죽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승리를 갈망하고, 승리를 갈망하고, 또 승리를 갈망하며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기를 바랐습니다. 차지했을까요? 결국 차지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며,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전력으로 공을 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듣든 성경공부를 하든, 제가 하는 이 말에 다들 동의하실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최선을 다해 공을 들이며 결코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러 오셨을 때, 저는 결코 식은 밥을 데워 드리듯 하지 않고, 반드시 가장 새롭게 준비한 것,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이번 주의 이 제목은 참으로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이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오래전에 이미 넘겨주셨습니다.
비록 지난 세월 동안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리며, 아직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지 못하고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루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든지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의 치유와 축사는 마귀보다 1분 더 버티는 것에서부터 나왔습니다. 그 시절, 제게 깨달음의 영이 트여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배우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트였겠습니까? 험난한 영적 전쟁 속에서 아주 미미한 열감기 하나를 놓고도 5박 6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너무 졸려 견딜 수 없으면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나는 반드시 마귀보다 1분 더 버티겠다.' 이 5일 동안 적지 않은 계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도록 예정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영원히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것은, 그 시절을 통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성품이 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제가 설교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녹음이 웹사이트에 아직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제목은 '결코 포기하지 말라'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저는 이 '치유와 축사'를 102과정인 <치유와 축사의 기초 이론>으로 정리했습니다. 배움이 중심축이며, 제 인생은 배움의 일생이었습니다.
저는 두 번에 걸쳐 영어로 성경공부와 설교를 시도했다가 얼마 못 가 물러선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에 다시 용기를 내어 영어로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했지만 또다시 물러섰습니다. 제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버틸 것입니다. 마귀보다 1분 더 버티니 이제는 영적 이해와 깨달음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성을 공략하고 땅을 차지하여 하나님을 위해 온 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온 땅이 이 승리의 신학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안에 있던 수많은 황당한 현상들을 명쾌하게 풀어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가 영적 전쟁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매번 마귀에게 바닥에 짓밟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승리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을 때, 제 마음은 여러분을 깊이 이해합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라리 여러분과 함께 눈물을 흘릴지언정, 여러분이 함께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번 믿음을 추스르고 '여호와께서 이미 이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고 스스로에게 선포하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저의 영적 고도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저는 평원 위에서 마귀와 싸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평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악을 분별하는 진리가 제게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평원 위에서 고도 없이 싸웠던 것인데, 사실 그것도 불과 11년 전의 일입니다.
그 후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옳고 그름,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들, 내게 잘 대했네 못 대했네 하는 것들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전부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묻혀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갔습니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문득 온몸과 마음이 환하게 트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길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우라고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절대로 제멋대로 엉터리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원망과 앙금을 내려놓고, 모든 시시비비를 내려놓고 굳게 서십시오.
사실 영적인 고도를 높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 이치를 꿰뚫어 보고, 사람의 일생을 온전히 통찰하면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겪은 일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눈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많든 간에 우리에게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승리를 기대하기 시작하십시오. 사소하고 괴로운 일들을 내려놓기를 기대하고, 영적인 높은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하십시오.
전도서, 창세기,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하십시오. 일단 이 길에 들어서면, 살아가는 일은 지극히 단순한 일이 됩니다. 두려움도, 걱정과 근심도 사라질 것입니다. 유유자적하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릭 조이너(Rick Joyner)의 《마지막 날의 결전》에 매우 명확한 묘사가 나오는데,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일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나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이 진작에 이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고, 이삭이 자기 자신을 바쳤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옵소서. 제 자신을 주님께 바치오니, 평생 주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이삭을 바칠 수 있었겠습니까? 이삭이 어찌 기꺼이 자신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문으로 들어갔고, 이삭의 문으로 들어갔으며, 나중에는 야곱의 문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을 그렇게 통찰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나그네와 같은 방랑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란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사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기차 타고 여행하거나 SUV 몰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며 걸어간 여정이었습니다. 인생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시면 닭을 잡는 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생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시골에 작은 움막을 짓고 구덩이를 판 뒤 널빤지 두 장을 얹어 놓았을 뿐입니다. 성안에 들어가면 훌륭한 위생 시설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아브라함 곁에 가면 양 노린내와 양똥 냄새가 진동했을 텐데, 참으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이 길을 걸을 수 없고, 통찰하지 못하면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길은 이삭을 바치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삭 역시 자신을 바쳤으니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입니까! 모세는 이것을 배웠고, 여호수아도 이것을 배워 자신을 드려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기에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니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헛된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을 것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살아가면서도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것입니다.
걷다 보니 아브라함을 택하지 않고 롯을 택했는데, 롯의 길에는 약속이 없습니다. 또 걷다 보니 이스마엘의 길로 가서 자기 손의 칼을 의지해 살아가며 하갈처럼 종의 마음가짐을 가졌으니 어찌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롯의 길에는 약속이 없는데 어찌 역사가 일어나겠으며, 이스마엘의 길로 갔으니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걷다 보니 에서의 길로 가고, 아말렉 사람들의 길로 걸어가 하나님과 대대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문을 잘못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중화권 사명 신학이 걷는 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사무엘로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길이며, 이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성도들과 함께 기도할 때, 한 형제의 할머니께서 몇 달 동안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셨는데 몇 분 기도하자마자 나으셨습니다. 지옥의 벌레가 가슴에 붙어 있었으니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몇 분 만에 나을 수 있었던 것은 음부의 권세 역시 우리 발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알아야 합니다.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필요도 없으며, 우리가 올바른 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만 알면 됩니다! 이제 저는 이 모든 과정을 뚫고 지나왔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이 길은 실로 너무나 좋습니다! 참으로 좋으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충만합니다. 아직 찾지 못하셨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길로 들어서서, 평생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이상 자신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본문 말씀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화를 당하게 하지 않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또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막론하고 다 칼날로 쳐서 멸하니라 (《여호수아》 6:16-21)
기도
하나님, 주님의 약속은 하늘에 굳게 서서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반드시 이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실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갈망대로 우리로 하여금 이 온 땅의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 온 땅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온 땅이 주의 능력의 복음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다시 한번 우리를 이끄사 성을 공략하고 땅을 차지하게 하시며, 우리 앞서 행하셔서 대적을 우리 손에 넘겨주옵소서. 하나님, 이 율법책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하지도 놀라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을 의지함으로 우리의 평생에 능히 우리 앞에 맞설 자가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일으키사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제 우리 육체의 정욕을 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주의 약속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께서 반드시 대적의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성이 이미 여호수아에게 넘겨졌고, 하나님께서 그 성을 무너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에 불과하며, 이 결과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이전에는 최고 지도자를 해본 적이 없어서 최고 지도자의 자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네.' 오늘날 우리 동역자 여러분도 제가 있는 이 자리가 쉽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 그 약속의 땅에는 철병거와 철마, 거인들이 있고, 그들이 든 창은 우리 수레바퀴 축처럼 굵은데 옮기지도 못할 판에 어떻게 싸우지?' 생각만 해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저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눈앞에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는데 배가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작은 배로 조금씩 건너보내다가는 저쪽에서 조금씩 오는 족족 다 죽여버릴 것입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이 '저들이 요단강을 건너오는구나' 하고 보면서 한 무리 오면 한 무리 죽이고, 또 오면 또 죽일 텐데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두려울 뿐입니다. 자원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니 출애굽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두렵고,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6-9)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야, 놀라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라! 이 율법책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내가 너와 함께함을 알라."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면 네 평생에 대적이 능히 네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듣고 '세상에, 수레바퀴 축만큼 굵은 거인도 내 앞에 능히 서지 못한다고? 정말일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진짜냐고 대놓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마침내 두려움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 율법책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능하신지 알라!" 네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능히 대적이 네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답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입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닿았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 물이 갈라질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발이 요단강 물에 닿는 순간, 물이 쫙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바다가 아니라 강이었고, 강물은 아래로 흘러내려 갑니다. 물이 끊어져 더 이상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벽처럼 우뚝 섰으며, 그 아래는 마른 땅이 되어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알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단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도 질병 치유를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신화처럼 여겼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것이 실재함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단강을 건너자 믿음이 단번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반전을 경험할 때 이처럼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믿음이 크게 치솟은 뒤 마주한 첫 번째 성이 바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군사들이 막강하고 매우 위세 있는 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사건을 경험하며 믿음이 일어났고, 여리고성 사람들은 간담이 녹아내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는데,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는 것이었습니다. 세겜 사람들도 할례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믿음의 시험이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잘라내지 않고 돌진하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온전히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조차 주관하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할례가 끝난 후, 그들은 성을 한 바퀴씩 돌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을 7일 동안 돌게 하셨을까?'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7일은 사실 믿음의 축적 기간이며, 이 이면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에 이르러 성을 돈 첫째 날 이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짓을 한다고 되겠어?'라며 수군거렸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입을 다물라"고 하십니다. 말이 밖으로 나오면 믿음을 무너뜨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믿음 없는 생각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7일 동안 끈기 있게 성을 돌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양각 나팔을 불라고 명령했고, 7일 동안 참아왔던 그들은 마지막에 "외치라, 여호와께서 이미 이 성을 너희에게 다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눈으로 보아야만 믿음이 생겼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믿고 난 후에 보기를 원하십니다.
율법책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많은 사람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가 단순한 율법인 줄 알지만, 사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일, 광야 40년 동안 공급하신 일, 자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약속 등 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율법책은 단순한 법조문이 아니라 약속의 기록입니다. 《창세기》가 바로 율법책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약속과 영적인 법칙, 하나님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얕보지 마십시오. 당신은 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책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하루짜리이며, 때로는 7초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물고기 같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대단한 척하다가도 어려움을 만나기만 하면 당황하여 기가 팍 죽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율법책을 읽고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야지, 결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여전히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어 월세를 낼 때가 다가오면 머릿속에 온통 월세 낼 돈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런 작은 일조차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어제부터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면 내일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신 것 아닙니까?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곧 율법책에 기록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가고 계심을 모른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다가 곁길로 새어 이나모리 가즈오나 쩡스창 같은 사람들의 가르침에 빠져듭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고 그저 수많은 세상의 논리와 도리뿐입니다. 논리만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데 그것이 통하겠습니까? 결국 다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이 날마다 일하는 데에는 온 힘을 쏟으면서도 율법책의 말씀은 입에서 떠나보냅니다. 그 결과 눈앞의 현실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꽉 막혀 머리가 호두알처럼 돌아가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겁하고 겁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할 때 담대하게 나섰다가 쫄딱 망했는데,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곳에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헛된 마귀의 우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 헝다(Evergrande)식의 무모한 담대함은 결국 주주들까지 다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도 배터리가 다 닳을 지경이라며 꽤 담대하게 버팁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돈 때문입니다. 그것이 율법책에 있는 말씀입니까? 구멍을 잘못 찾아 들어간 것이며, 에서의 논리 체계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할 때 먼저 기도부터 하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과연 당신의 핵심 이익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돈을 버는 것이 당신의 핵심 이익이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함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내면에 두려움이 있다면 이 율법책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강건해지십시오. 단, 목표가 올발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것만이 약속의 범주에 속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영원 안에서 영광의 길을 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직 이생에만 얽매여 살아가며, 이생의 그 하찮은 일들이 온통 자신의 핵심 이익이 되어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울타리를 잘못 쳤으니 그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네 평생에 능히 네 앞에 맞설 자가 없으리라
네 평생에 대적이 능히 네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책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율법책이 말하는 것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실로 대단합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을 온전히 꿰뚫어 보고, 저주와 축복의 원리를 깨달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시는지 명확히 알면 평생 적수를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 적수가 없고 천하무적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에게 성취되어 대적이 그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배워야 합니다.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대상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모세와 여호수아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
당신은 일어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일어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니, 배가 없는데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에게 변명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리더는 직원이 변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게 아니고요, 저래서 그래요" 하면서 온갖 핑계를 대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태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가 "일어나라니, 배가 없는데요"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툭하면 "이게 없네, 저게 없네" 하는데, 그럴 거면 하나님도 "그냥 관둬라"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게 있네 없네" 하며 온갖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1제곱킬로미터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었고, 다른 교회들은 다 훌륭했는데 우리 교회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목사님, 저 다음 주부터 안 나올래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어디로 가시게요?" 하고 물으니 "저 큰 교회로 가려고요"라고 했습니다. 끝장난 것 같았고 마음이 한없이 차갑게 식어내렸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의 조명, 음향, 찬양 인도자들은 솔직히 말해 정말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없어도 저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지금 와서 그런 것들을 다시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어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시에 저는 이 한 가지만 붙잡았습니다. '세상에, 약속은 성취될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 중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다!' 무슨 조건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보다 성경을 더 잘 풀어내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왜 그렇게 오만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오만이 아니라 솔직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동의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때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처럼 아무런 조건이 없었지만, 제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을 치르기 전에 먼저 육체의 정욕부터 제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하라
광야 40년 동안 할례를 행하지 않다가 자란 자들이었는데, 적어도 30대 중반은 되었고 38세 이하의 사람들은 모두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할례의 의미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요인은 바로 육체의 정욕과 탐심입니다.
세상을 사랑함,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세상의 논리 체계 같은 것들이며,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반드시 성을 점령하기 전에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육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계속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이를 따르지 못한다면, 첫째, 율법책이 수시로 당신의 입에서 떠나고, 둘째, 담대하지 못해 겁을 내며, 셋째, 수시로 원수 앞에 서지 못하고, 넷째,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고 소돔과 고모라 같은 저주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며, 다섯째, 육체의 정욕을 제하기를 원치 않게 됩니다.
언약궤가 너희 앞서 행하리라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입니다. 언약궤를 열면 십계명이 보이고, 만나와 싹 난 지팡이가 보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우리 앞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계시다는 뜻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 안에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권위'입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므로 사람은 사람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도 짓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았지만, 광야 40년 동안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고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먹는 것이 꽤 물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이 있었는데, 훗날 모세가 이 십계명을 계속해서 풀어낸 것이 《신명기》이며, 그것은 곧 축복과 저주를 다루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된다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앞서 나아갈 때 결코 뒤에서 투덜거리거나 수군거리지 마십시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수군거리는 것이고, 수군거리다가 입 밖으로 내어 "이게 되겠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가 상황을 완전히 망쳐놓습니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성을 너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이미 이 성을 너희에게 넘겨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당신 앞서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왜 여리고성 사람들은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다 녹아내렸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셨을까요? 매일 악몽을 꾸게 하셨고, 매일 그들의 꿈속에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는 장면을 심어놓으셨으니 군대의 사기가 완전히 꺾이지 않았겠습니까?
군대의 사기가 꺾이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벽이 아무리 견고해도 하나님의 발차기 한 방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무너졌습니까? 무너졌습니다! 성벽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을 뿐만 아니라 여리고성에도 마른 땅처럼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는데, 바로 그 성의 남녀노소를 모두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결코 하나님과 논쟁하거나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시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며, 일찍 죽든 늦게 죽든 결국 죽음입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 "하나님은 왜 이러실까?" 하며 따지지 마십시오. 살려두어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며, 하나님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을 멸절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라합의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모세에게 성취되었고, 여호수아에게 성취되었으며, 다윗에게 성취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에게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성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아멘.
오늘 설교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