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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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疑解惑》

1. 서론

  1.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기도를 해도 치유를 받지 못하거나, 온갖 문제와 질병, 가난, 재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가장 어리석고 불운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다 경험하고서도 믿음이 없어, 약속의 땅 문턱에 서서 하나님께 침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악평을 했던 열 정탐꾼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3.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까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살아있는 동안 광야에서 만나만 먹다 끝납니다. 이는 크나큰 비극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차라리 주님을 믿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주님을 믿고서도 승리하지 못하면 결국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4.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는 사실 매우 단순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본문 말씀

모세가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수기 14:36-38)

3. 기도

4. 본문 배경

  1.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하며 수많은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원망을 선택하며 걸핏하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끌어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2. 갈렙과 여호수아가 열 정탐꾼을 따라 악평하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 내면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5. 열 정탐꾼의 비극을 깊이 생각하라

  1. 무슨 일을 하든지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거시적인 안목(전체관)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전체를 읽어야지, 사소한 구절 하나에만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2. 전체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어제 경험한 기적도 오늘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록하십시오. 사람의 기억력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이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천수만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 열 정탐꾼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1.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믿습니까, 아니면 마귀가 다스린다고 믿습니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7. 하나님은 몸도 죽이시고 영혼도 멸하실 수 있다

  1. 당신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려움 앞에 무너지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문제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쪽을 선택하십시오.
  2. 하나님은 애굽 사람도 물리치실 수 있고 가나안 사람도 물리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만 넘치는 산타클로스처럼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

  1. 약속의 땅에도 들어가고 싶고 애굽으로도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바로 광야에서 죽는 것입니다.
  2. 죽기를 두려워하여 살기를 꾀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 편의 비극입니다.

9. 온전한 마음을 품으라, 배나 되는 기업을 얻으리라

  1.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고,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2. 더 이상 하나님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자격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0. 결론

  1.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기준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낮출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승리하지 못한 결과는 광야에서 죽는 것뿐입니다.
  2. 당신의 눈에 무엇이 보이든, 설령 눈앞의 어려움이 너무나 커 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눈에 오직 하나님만 보인다면, 그 어떤 문제도 당신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핵심 키워드

  1. 전체를 보는 안목 (거시적 시각)
  2. 하나님을 시험함
  3. 약속의 땅
  4. 죽음을 두려워함
  5. 온전한 마음 (일편단심)
  6. 배나 되는 기업
  7. 갈렙과 여호수아
  8. 질투하시는 하나님
  9. 악평한 열 정탐꾼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열 정탐꾼의 비극》입니다. 이 《열 정탐꾼의 비극》은 우리가 이전에 나누었던 '어리석음 시리즈'에 속합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들을 한 사람씩 끄집어내어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나중에 보니 성경에서 어리석은 사람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도처에 널려 있어서 열 편, 스무 편, 쉰 편도 넘게 설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주제로 바꿀 날이 오겠지요. 오늘 이 《열 정탐꾼의 비극》을 전하는 주된 목적은 여러분이 믿음을 세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열 정탐꾼의 비극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큰 비극이 하나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까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을 믿고 난 후 광야를 어슬렁거리며 만나만 먹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참으로 아무 맛도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것이지, 매일 만나나 작은 버섯 같은 것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트림을 해도 만나 냄새가 나고, 방귀를 뀌어도 만나 냄새가 나며, 진영 전체에 만나 냄새만 가득하니 맡기만 해도 질려버립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음식만 40년 동안 먹으면서 견딜 수 있겠습니까? 견딜 수 없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를 헤매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그저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비극이자 미혹입니다. "아, 하나님을 기다려야지." 하나님은 저기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자기는 하나님을 기다린다며 광야에서 어슬렁거리다 결국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 인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곳의 과일은 최상품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과일을 드셔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이스라엘에 가보니 모든 과일의 맛이 우리가 예전에 먹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곳 과일은 그저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공 향료를 뿌린 것이 아닌 진한 과일 본연의 향이 넘쳐났습니다. 딸기에서는 진한 딸기 향이 나고, 귤에서는 짙은 감귤의 향이 배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과일을 한번 맛보고 나면 다른 과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저는 "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니!" 하고 감탄했습니다. 오늘 저는 그것이 어떤 삶일지 묵상해 봅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광야를 헤매는 삶이 아닙니다. 광야를 방황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이라는 것은 제 마음에 깊은 흔적으로 새겨졌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구나." 그런데 지역 교회들을 둘러보면 어찌 된 일인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검사를 받고 암 판정이 나오면 목사님은 "성도 여러분, 암에 걸린 모 자매님을 함께 심방합시다"라고 합니다. 얼마 후에는 또 전화를 걸어 "암에 걸린 연로하신 모 형제님을 심방하러 갑시다"라고 하고, 또 얼마 후에는 다리가 부러진 성도를 심방하러 갑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것이 과연 약속의 땅에 사는 삶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약속의 땅의 삶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비극이라고 느꼈습니다. 광야를 헤매다 다리가 부러지면 "형제님, 인내하십시오"라고 하고, 암에 걸리면 "형제님, 자매님, 인내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을 인내하라는 말인가?' 싶어 곁에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성경을 분명하게 읽었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직접 암에 걸려보고 인내해 보십시오. 비극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든가, 아니면 온갖 문제에 얽매여 마음고생을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중국어 교회 목회자가 되는 것을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 년에 장례식만 수십 번을 치러야 하고 매주 장례가 있어서 쩔쩔매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장례식장을 차리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지난 세월 제가 만난 찢어지게 가난한 목사님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한 은퇴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 설교를 하는데, 너무 가난했던 그 목사님은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문을 열어보니 문고리에 자신이 먹고 싶었던 바로 그 브랜드의 소시지 한 줄이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여러분, 약속의 땅에도 소시지는 있습니다. 물론 돼지고기 소시지는 아니겠지만요. 저는 '이것이 대체 무슨 간증인가?' 싶었습니다. 듣기에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까? 제 귀에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목사라는 직업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누군가 저에게 "나중에 목사가 될 생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안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는 왜 목회를 하고 있을까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목사가 되든, 제사장이 되든, 평신도가 되든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열 정탐꾼의 비극》은 약속의 땅 바로 문턱까지 가서 그 땅을 다 둘러보고 돌아와 놓고는 악평을 쏟아내며 들어갈 수 없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침을 당해 죽은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다행히 제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즉시 치지 않으셔서 아직 살아있습니다.

한번은 지역의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제가 "목사님 연세를 생각해서 집을 한 채 사시지요. 평당 몇천 위안밖에 안 해서 아주 쌉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유 목사님, 저는 지금 너무 가난해서 남은 것이라곤 영적인 것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말이 좀 직설적인 편이라 "목사님, 영적인 것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결코 약속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절대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20년 동안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를 앓고 있었고, 사모님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는 치유와 축사 사역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름 없는 작은 교회이지만 치유와 축사 사역만큼은 확실하게 해왔습니다. 마침 그분들이 저와 함께하게 되었을 때, 단번에 그 목사님의 디스크가 치유되었고, 사모님의 우울증도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그 효과가 대단히 빨랐습니다. 나중에 그분들이 저에게 "사실 우리도 예전에는 귀신도 쫓고 많은 사람을 치유했었는데, 나중에는 귀신 쫓는 게 귀찮아졌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거인을 마주하고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하나님을 멸시하기를 선택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험하고 귀신을 쫓아내던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참으로 비참합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의 믿음은 흔들림 없이 확고합니다. 사람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운한 일은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믿음이 없어 약속의 땅 문턱에 서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참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비참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인데 "난 안 들어가, 절대로 안 들어갈 거야"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세운 사명 신학의 가장 중요한 논리는 바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승리하여 약속을 얻는 것입니다! 마주한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독한 마음을 품고 끝까지 이겨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제 고난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이겨냅니까? 목사님이야 말은 쉽게 하시지요"라고 합니다. 제가 말을 쉽게 하는 것 같습니까? 제 허리가 아픕니까? 제 허리는 아프지 않습니다. 허리가 아픈 것은 당신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말은 진리입니다. 결단하고 독한 마음으로 이겨내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반드시 나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성품(성격)입니다. 오늘 저는 제 안의 이러한 성품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것이 어떤 성품인지 아십니까? 바로 승리하는 성품입니다. 일평생 이러한 성품이 없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독하게 결단하고 이겨내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제 삶의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를 매우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디가 단순할까요? 저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명쾌한 이치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수년 전에 저는 한 가지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최근에는 자주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늘 다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훗날 저는 "하나님께서 나를 참으로 잘 택하셨다. 나는 여호수아요, 갈렙이며, 나는 이스라엘이요, 요셉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셉이 몇 명이나 됩니까?"라고 묻겠지만, 여기에 한 명 더 늘어난 것입니다. 제 뼛속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니 인생이 참으로 단순하고 자유롭습니다. 어떤 이들이 저와 다투려 하지만 저를 이기지 못합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북 지방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독한 놈은 무모한 놈을 두려워하고, 무모한 놈은 목숨 내놓은 놈을 두려워한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기세등등한 사람도 눈 뒤집힌 사람을 두려워하고, 눈 뒤집힌 사람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목숨을 내던진 사람을 만나면 게임은 끝난 것입니다. 마귀도 저를 보면 "아이고, 저 사람이랑은 상대하지 말자.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라고 합니다. 수년 전 제가 깨달은 도리가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생사를 초월하여 승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영적인 깨달음이 부족했을지라도, 저는 마귀보다 1분은 더 버틸 수 있었습니다. 치매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영으로는 기도하고 머리로는 이것이 대체 어떤 놈인지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아, 깨달았다. 라오마(老马)의 영이구나.' 나중에 주님은 그것이 마귀의 영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를 광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입니다. 저는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았고, 사람들에게 이 믿음과 성품을 얻도록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암 환자를 섬기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그들 안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죽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살기만을 갈구했습니다. 그들은 저와 달랐습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들은 살기를 구했고, 저는 주를 위해 죽기를 각오했지만 그들은 죽을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묻겠지요.

우리가 섬겼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병세가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이제 아주 조금 남았을 때, 저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섬겨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을 섬기고 나면 몸이 힘들어지고, 힘들어지면 두려워하며, 두려워지면 다음에 또 섬기라고 할 때 온갖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발을 뺍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아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 죽었습니다. "목사님, 다 치유되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묻겠지만, 그들은 예외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는 천지를 뒤흔들 만한 것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땅을 밟지도 못하던 사람이 기도받고 나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즉시 저와 부딪치며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으며, 바로 열 정탐꾼의 비극입니다.

제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무엇 하러 왔는가?' 하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약간은 씁쓸한 마음에 넋두리를 하는 것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자신의 성품 때문에 죽었고, 죽기를 두려워하고 살기만을 탐하다가 죽었습니다.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경험했습니다. 그것도 천지가 개벽할 만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만 만나면 움츠러들고, 문제가 생기면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립니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며, 수시로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는 탄식이 가득합니다. 그 후로 저는 사역할 때 지혜를 얻었습니다. 다음번에 사역할 때는 시작부터 그들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부터 철저히 다루고, 그것이 처리되지 않으면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 연약함을 이해해 주셔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제 중심을 다 아시지 않나요?" 사실 하나님은 그런 연약함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당신의 중심이 열 정탐꾼의 마음과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멸시하며 악평을 쏟아냅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기준을 낮출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성품 때문이며, 패배하는 그리스도인은 광야에서 죽는 비극을 스스로 연출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때때로 저는 참으로 답답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 이리도 어려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기어이 광야에서 죽는 길을 선택합니다. 저는 '사람이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이 열 정탐꾼의 문제를 명백하게 짚어보겠습니다. 때로 저는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차라리 주님을 믿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 광야에서 죽느니, 안 믿으면 광야에서 죽을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을 안 믿고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왜 광야까지 나와서 방황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어 광야에 무엇 하러 나왔습니까? 차라리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2. 본문 말씀

모세가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수기 14:36-38)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깨어 경성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광야에서 죽어 주님을 진노케 했던 저 이스라엘 백성의 내면의 실상을 똑똑히 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이를 경계로 삼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는 법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기필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저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온전히 취할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제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경외하기로 결단하오니,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선하신 뜻이 내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푸시고 저를 기억하시며 저를 인도하셔서, 평생 주님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멸시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주님이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오직 주님만을 온전히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여러분, 이 본문의 배경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 배경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다들 잘 아실 테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훗날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던 그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도록 명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노예였으니, 그들을 데리고 나오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모세는 돈 한 푼 없이 오직 지팡이 하나만을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 지팡이 하나를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떻게 이끌어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들라!" 하시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고, 애굽에 재앙이 내렸습니다. 며칠 후 애굽의 바로 왕이 마음을 바꾸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으며 "안 된다, 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모세야, 지팡이를 들라!" 하셨고 애굽에 또 다른 재앙이 내렸습니다. 며칠 후 모세가 다시 지팡이를 들자 또 재앙이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며 "와, 하나님 정말 대단하시다!"라고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가 되자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툭하면 잊어버리니 도대체 무슨 생각머리입니까? 기억력이 5초밖에 안 되는 물고기 뇌 같아서 양서류만도 못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열 번 치켜들자 애굽 전역에 재앙이 휩쓸었습니다. 애굽 인구의 약 20%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략적인 계산으로 한 가정당 평균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죽은 셈입니다. 결국 애굽 사람들은 제발 빨리 떠나달라며 금은보화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주었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오고 나서 조그만 어려움만 닥쳐도 원망했습니다. 이런 무리가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더니 걸핏하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왔느냐?"라고 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애굽에 무덤 자리가 있다고 해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야 합니까? 장례식장에 유골함이 널려 있다고 유골함을 품에 안고 살 작정입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애굽을 나와 홍해에 이르렀을 때, 홍해를 건너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아우성을 쳤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마른 땅같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보다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모세도 바로 왕보다 컸으며,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왕의 군대보다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렵단 말입니까? 오늘날 미국의 11척 항공모함보다 당신이 더 강력하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바로 미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작은 어려움만 만나면 불평했습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고기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무려 열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직접 보고서도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하나님께서 참으셨습니다. 하나님도 참으로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참으시며 쳐 죽이려 하셨다가 참고, 또 치려 하셨다가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참아주신 것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저를 쳐 죽이려 하셨다가 참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중보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이 마주 보이는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은 약 1년 반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하셨습니다.

모세가 보낸 열두 정탐꾼은 누구였습니까? 각 지파에서 지도자로 세워진 족장들이었습니다. 즉, 각 지파의 가장 으뜸가는 지도자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했습니다. 사실 이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을에 외지인 몇 명만 들어와도 낯선 말투 때문에 금방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40일 동안 다닐 때 그들을 죽이려 한 자들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은밀히 지켜주셨기에 그들은 엄청난 과일을 메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열두 족장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돌아와서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이며, 우리가 40일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평안히 다녀왔으니 능히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단강을 건넜다가 다시 건너오려면 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건너갔다 왔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어쨌든 건너갔다가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배를 저어준 사람이 가나안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가나안 사람들이 운영하는 나룻배를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광야 길의 모든 소문은 이미 다 퍼져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진군해 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두 정탐꾼이 돌아와 모세를 만난 후 두 패로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은 정말 좋습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다른 열 정탐꾼은 "그 땅은 참으로 좋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지만, 우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면 반드시 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 이미 들어갔다 나왔으면서,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면서 왜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합니까? 저는 지금까지도 그런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사역의 세월 동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나중에 보니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였습니다.

그들이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우리가 거기서 본 사람들은 아낙 자손 대장부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고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어떠했습니까? 애굽은 당대 최강대국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애굽에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애굽에서도 건져내셨는데 가나안 땅을 어찌 들어가지 못하겠습니까? 그러자 이스라엘 온 회중이 소리 높여 통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다 끝났다! 이제 우린 다 죽었다!"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쓸모없는 자들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다 끝났다, 죽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머리입니까? 일촉즉발의 순간,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자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바로 40년 광야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40년이 아니라 38년 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1년 반 동안 광야를 헤맸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열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무서워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멸하시는 것은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치시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짓누르는 것보다 쉽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과 그의 신하들, 장자들을 다 치신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사람을 치셨는데, 나도 하나님께 침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호수아와 갈렙 편에 서야겠다'라는 생각조차 못 한단 말입니까? 발뒤꿈치로만 생각해도 이런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제 말에 이의가 있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참으로 물고기 뇌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수명이 고작 몇 시간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개미 누르듯 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장담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치시는 것은 개미 한 마리 잡는 것과 같습니다. 주방에 기어 나온 개미 한 마리를 제가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 생명은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그 개미는 기어가면서 자기가 오래 살 줄 알았겠지만, 제 눈앞을 지나가는 순간 눌려 죽고 마는 것입니다. 열 정탐꾼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수많은 사람을 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들이 원망을 쏟아내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진멸하려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제발 그리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수기 14:11-12)

모세는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내 아들들은 말도 마십시오. 내 후손들은 이 백성보다 더 못합니다.'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 제가 열 정탐꾼에 대해 설교하지만, 사실 이전에 미가의 신상에 대해 설교하려 했습니다. 미가 이야기를 아십니까? 한 레위인이 미가의 집에 와서 제사장이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레위인이 바로 모세의 손자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모세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입니다. 모세는 속으로 '하나님, 관두십시오. 우리 집안은 이 백성보다 더 형편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 한 사람으로 족하게 여기시고, 후손을 통한 큰 나라는 없던 일로 해주십시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사오니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민수기 14:18-19)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의 말대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맹세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영원한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온 땅에 나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민수기 14:20-21)

이 말씀은 저에게 큰 도전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이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오직 온전한 마음으로 주를 따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갈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고, 그렇게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만 먹게 되었습니다. 선포가 끝나자마자 그 열 정탐꾼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 지파의 최고 지도자였던 족장이라는 직분도 아무 소용없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여러분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돼지가 그들보다 나을 것입니다. 악평을 쏟아낸 열 정탐꾼은 엄선된 지도자들이었으니 얼마나 큰 은혜요 영광이었습니까. 그런데 돌아와서 "하나님, 차라리 날 죽이십시오!"라며 악평하고 하나님을 멸시했으니, 두려움조차 없었단 말입니까? "날 쳐 죽여라, 쳐 죽여봐라!" 하다가 정말로 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남은 목숨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날뛰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제 머릿속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기 싫고, 굳이 죽는 길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죽기를 자청한 것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면서도 가장 빨리 죽는 길을 택했습니다. 트림 한 번, 방귀 한 번 뀔 틈도 없이 개미가 눌려 죽듯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쳐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 역시 어리석게 굴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분별없이 굴 때도 저를 치지 않으셨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한량없음을 느낍니다. 저는 평생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기로 결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배경입니다.

5. 열 정탐꾼의 비극을 깊이 생각하라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처 역시 순식간에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17:32)

세상일이란 참 묘합니다. 소금 기둥이 되고 싶습니까?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열 정탐꾼은 소금 기둥이 될 기회조차 없이 바짝 마른 육포처럼 죽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열 정탐꾼의 비극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왜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60만 이스라엘 군대 중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고, 그 두 사람은 들어가서 배나 되는 기업을 얻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확률이 너무 낮지 않습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만약 저 하나가 들어간다면 남은 한 자리가 있는데, 여러분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차지해야 합니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면 열 정탐꾼의 비극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전체를 보는 안목(거시적 시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전체를 보는 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전체를 보아야지, 사소한 구절 하나 붙잡고 늘어져서는 안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열 정탐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족장으로서 한 지파를 이끌던 대단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지파가 몇 명입니까? 총 300만 명을 열두 지파로 나누면 각 지파마다 최소 20만 명이 넘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가 전체를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니 무엇만 보았습니까? 머릿속에 온통 아낙 자손뿐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제복을 입고 손에 창을 든 3미터가 넘는 거구의 경비병이 사자 같은 얼굴로 다가와 "이리 와서 신분증 내놓으라"고 했을 때 얼마나 겁에 질렸겠습니까. 쳐다보고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을 것입니다. 속으로 '하나님, 저를 지켜주옵소서' 했고, 하나님은 실제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 온통 거구의 건장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덜컥 겁이 나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팔뚝이 제 허벅지만 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덩치는 산만 해서 머리가 버스 천장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을 보다가 제 자신을 보니 마치 메뚜기 같아서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들이 손으로 툭 치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기만 해도 숨이 멎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에서 본 사람들은 단순한 거구가 아니라 거인 중의 거인이었습니다. 보통 거구들도 그들 앞에서는 메뚜기에 불과했으니, 메뚜기 중의 메뚜기 신세가 되어 사시나무 떨듯 떨었던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그 열 정탐꾼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 "그곳은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다. 너무나 무시무시하다!"라고 보고하자, 거인을 본 적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은 열 정탐꾼의 묘사에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머릿속에 전체를 보는 안목이 없으니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그 거인 하나만 기억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어떤 일 하나에 걸려 화가 나면 이전 일은 싹 잊어버리고 오직 그 문제 하나만 붙들고 늘어지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우울증 성향이 있거나 암 환자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이렇습니다.

제가 이전에 섬겼던 한 암 환자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위해 100만 위안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딸이 엄마와 심하게 다투었을 때 엄마가 홧김에 "그럼 내가 쓴 100만 위안 다 갚아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녀가 감정싸움을 하다가 나온 홧김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저에게 "엄마가 저더러 100만 위안을 갚으래요"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어머니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진심으로 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뇌에 저장 공간이 하나밖에 없어서 오직 한 가지 사건만 기억하고 다른 모든 것은 잊어버립니다. 출애굽의 역사, 바로 왕을 꺾으신 일, 홍해를 가르신 일은 온데간데없이 잊어버리고, 얼굴에 공포만 가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전체를 보는 안목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사람들을 섬기며 그들의 모난 성품을 다듬어 주려 하면, 그들은 제가 베푼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오직 그 책망 하나만 붙잡고 저와 기 싸움을 벌입니다. 저를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한 사람을 섬기며 실랑이하고, 두 사람, 열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그들이 열 정탐꾼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열 정탐꾼과 같다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치시는지도 보았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물이 없을 때 물을 내셨고, 쓴물이 달콤한 물로 변하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는 온통 아낙 자손뿐이어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지도자 노릇도 헛것이었고 족장 자리도 헛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니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이기지 못하면 하나님도 이기지 못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오늘 아침 기도회를 인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해서 우리 하나님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그릇된 고질병, 이것이 바로 열 정탐꾼 비극의 근원입니다. 첫째, 전체를 보는 안목이 없어 과거에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제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오늘 일깨워주면 까맣게 모르는 기이한 현상을 저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둘째, 그들은 족장이자 지도자이면서 그러한 상황에서 두려움과 낙망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오늘 즉시 기록하십시오. 내일 경험했다면 내일 즉시 기록하십시오. 사람은 반드시 잊어버립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모르지만, 기록해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할 일 없을 때 꺼내어 보십시오. 꺼내 보아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게 하곤 했는데, 세고 나면 또 잊어버렸습니다. 열 정탐꾼의 비극을 묵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분인지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전체를 보는 눈이 있다면, 수천수만의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필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알게 됩니다.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영적 분별력과 지각이 열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6. 열 정탐꾼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열 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했다고 기록합니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수기 14:22)

오늘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한 번 시험한다고 해서 당장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 죽었네? 한 번 시험하고 원망해도 아무 일 없잖아? 또 시험해도 괜찮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목사님들이나 암에 걸린 목사님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동일한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시험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살아있다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죽고 나면 회개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내면에서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것은 너무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제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까? 제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태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제 말이 거칠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혼에는 유익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셔"라고 말하니, 대체 무슨 생각머리입니까? 바로 열 정탐꾼의 사고방식입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합니까, 아니면 한 번의 고난 앞에서 원망을 쏟아내며 무너집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다스리십니까, 마귀가 다스립니까? 어떤 사람은 "마귀가 다스립니다"라고 합니다. 고난이 오고 뜻대로 되지 않아 혈기가 올라올 때, 마귀가 그 사람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어려움만 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여, 하나님의 긍휼을 한 번 경험했다면 속히 회개하고 더 이상 헛된 짓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위엄 있고 두려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치시든, 열 사람을 치시든, 십만 사람을 치시든 개미 한 마리를 짓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만 넘치는 분이 아니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으시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3대째일 수도 있고 4대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장난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저 역시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멸시하다가 하마터면 하나님께 침을 당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 때문에 죽는 법입니다.

7. 하나님은 몸도 죽이시고 영혼도 멸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몸도 죽이실 수 있고 영혼도 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거인이 당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아니면 거인에게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죽이려 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면 거인도 당신을 손대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기만 하면, 그 누구도 저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삶이 얼마나 단순합니까. 평생 하나님만 경외하면 되니 이 사람 저 사람, 온갖 문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결국 하나님께 침을 당하니, 이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애굽 사람도 꺾으실 수 있고, 가나안 사람도 꺾으실 수 있으며, 세상 모든 사람을 굴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산타클로스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분과 맞서려 한다면 행운을 빌 뿐입니다!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몸만 죽이고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이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참으로 복될 것입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어려움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예전에 어떤 유익한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주인이 기르는 개가 주인을 주인으로 알아보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의지할 수 없기에 극도로 불안해하고 신경증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한 상태의 사람들은 다 불안 증세에 시달립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열 정탐꾼은 다 신경쇠약과 정신병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개가 주인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려 들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결국 열 정탐꾼은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60만 이스라엘 회중 역시 다 하나님에 의해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마귀가 당신을 죽이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마귀를 보내 당신을 치실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사람을 이길 수 있었고, 가나안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과는 싸울 엄두도 못 내면서, 가나안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머리입니까? 칠 테면 쳐보십시오. 돌을 들어 올리는 순간 팔 근육이 마비되거나, 들어 올리기도 전에 전염병 재앙이 덮쳐 즉사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 하나 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담한 비극입니다. 그 자리에서 트림 한 번, 방귀 한 번 뀔 틈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입니다!

8.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제가 직접 사역해 드린 분들이 있습니다. 작년에 어떤 분이 친척을 데리고 저를 찾아왔는데, 뼈 세 군데가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기도받고 깨끗이 치유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차단해 버리더군요. 참으로 기이하여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전하는 말씀이 너무나 단단한 식물이어서 소화해 내지 못한 것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바보같이 굴지 말고 하나님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아낙 자손 거인을 보고 두려워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멸시합니까?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멸시해도 됩니까? 아낙 자손이 정탐꾼들을 해치지도 않았고, 열두 명이 엄청난 과일을 어깨에 메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고난을 마주했을 때 문제를 하나님보다 크게 보지 말고, 하나님을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 온전한 마음을 품으라, 배나 되는 기업을 얻으리라

가나안은 참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최근 제 안에 강한 감동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로마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물거품이 된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의문이 든 적이 있습니까?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광야에서 죽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입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광야 같은 삶을 살다가 침을 당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헛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한 해답은 참으로 탁월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요, 야곱에게서 난 자라야 참된 후손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배나 되는 기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는 자가 되기를 선택하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성취됩니다! 오늘 저는 담대히 선포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나 질병이 있는 자는 변화되기 시작하십시오.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는 아픔이 따를지라도 변화되어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되십시오.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고, 이 시대의 이삭이 되며, 이 시대의 야곱과 요셉이 되십시오! 뼈를 깎는 결단으로 변화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러한 사람입니다.

변화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의 보좌로부터 이 땅에 끌어내리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악한 습관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믿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제 안의 감동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며, 그분의 약속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참된 이스라엘인인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기준을 낮추지 않을 것이며,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저는 《제자가 되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첫 번째 강의는 제자의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준을 절대로 낮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하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나로 하여금 행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두 마음을 품어 한쪽으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길 원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애굽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면,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약속의 땅에도 가고 싶고 애굽으로도 가고 싶다면 차라리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딱 그 중간인 광야에서 죽으십시오. 하지만 저로 말씀드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죽기를 각오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며,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것을 보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약속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깊은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자신을 온전히 드리십시오. 그것이 가장 복되고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10. 결론

여러분의 눈에 무엇이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눈앞의 어려움이 태산 같든, 화산(華山) 같든, 황산 같든, 히말라야산 같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제 안에서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시기에, 내 눈에 오직 하나님만 보인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우리 앞에 능히 서지 못할 것입니다. 아멘!

찬양 한 곡을 부르며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팁을 주듯 헌금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돈이 필요해서 헌금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헌금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고 자원하는 마음이 있으며, 헌금이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분들만 드리십시오.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더 이상 자신을 곤고하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 십분의 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우리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한 것은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많이 보기를 갈망하십시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이며, 하나님 앞에 들고 갈 훌륭한 성적표를 만드는 증거입니다. 오늘 승리를 선택하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연약하든, 마주한 문제가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속사람의 믿음을 추스르고 더 이상 물러서지 마십시오. 1분을 버틸 수 있다면 2분을 버틸 수 있고, 2분을 버틸 수 있다면 5분을 버틸 수 있으며,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버텨서 결코 물러서지 마십시오!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는 승리를 선택한다! 내 앞의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나는 승리를 선택한다! 하나님은 나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나의 하나님을 힘입어 나는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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