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요한계시록》 16장을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설령 여러 재앙을 용케 피했다 하더라도, 짐승이 여러분을 죽이려 할 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뿐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전능하신 이의 심판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찬 일곱 대접이 땅에 쏟아질 것이다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6:1)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부분 단순히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면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비극적인 일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날이 닥쳤을 때, 여러분은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것은 자기 내면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선택이 전능자께 순종하는 것이라면, 복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전능자께 순종하는 데에는 때로 대가가 따르며, 그 대가는 얼핏 듣기에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귀신에게 속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귀신은 어떻게 여러분을 속일까요? 귀신은 여러분을 속여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우리는 매우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목숨을 아끼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들 중에는 때로 자기 자신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귀신에게서 온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 제가 섬겼던 어떤 분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쉼 없이 말을 쏟아내는데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셨는데,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어느 것입니까?” 그러나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이 하는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대부분 귀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속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귀신의 말에 동의하고 그 생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고 긍휼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생각을 따르고, 귀신의 생각을 따르며, 먹고사는 이 하찮은 일에 얽매인 생각을 따르다 보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속아 넘어가고 맙니다.
그렇게 속은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고통을 다 겪고 나서는 귀신을 불러들이고, 그러고 나서는 온갖 질병의 고통을 다시 예수님 탓으로 돌립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덮으시는 것은 우리의 병이 저절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조심할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결코 그 일곱 대접의 재앙이 닥치고 나서야 회개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짐승과 짐승의 표를 받게 되면 너무나 비참해집니다. 그때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아 있어도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이 온통 사람의 말뿐이라면, 하나님의 진노와 결코 멀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대단히 옳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전부 자기 논리일 뿐이며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하십시오. 설령 죽는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영생의 하나님이시며, 반드시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면, 여러분이 겪는 모든 일은 자업자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한 자매님의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전에는 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 하나 얻겠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로비를 벌였습니다! 비록 수완이 좋아 일처리를 아주 훌륭하게 해냈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결국 당선되기까지 했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허무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그를 섬기느라 몹시 고생했습니다. 그가 너무나 완고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귀신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귀신의 무리로 들어갔기에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일곱 대접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살아남고 싶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죽으려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귀신의 나라로 들어가 짐승과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대접: 악하고 독한 종기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요한계시록》 16:2)
첫 번째 대접을 땅에 쏟아붓자,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한 모든 사람에게 종기가 생겼습니다. 그 상태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버스를 타고 지하철에 탔는데 모든 사람의 얼굴에 종기가 나 있고, 어떤 사람은 고름이 뚝뚝 떨어지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하고 독한 종기가 전 세계에서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때 PCR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종기는 분명 전염될 것이며, 이것은 영적인 영역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접을 쏟아부으시자, 생물학자들은 이것이 도대체 어떤 DNA인지, 어떤 세균인지, 어떤 바이러스인지 연구하느라 분주합니다.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을 연구하던 자들마저 종기가 생겨 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의 내면이 악할수록 종기가 나는 면적도 넓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분에만 나고, 어떤 사람은 온몸을 뒤덮어 형언할 수 없이 비참해집니다! 이것은 겨우 첫 번째 대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과연 피할 수 있겠습니까? 특효약을 사려고 해도 어디 가서 사겠습니까? 미국의 최고 제약회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던지신 대접 하나를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살고자 했으나 결국 비참하게 살아가게 된 결과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줄곧 나타나고 있습니다. 병원에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을 보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그 누구도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생의 논리 체계만 들어차 있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아들에게 “이 집은 반드시 네가 차지해야 한다”라고 당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입니까?
두 번째 대접: 바다가 피가 됨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요한계시록》 16:3)
최근 중국, 필리핀,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서로 자기 영토라며 다투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낡은 군함을 암초에 좌초시켜 놓고 보강 공사를 하려고 합니다. 왜 바다를 두고 다툴까요? 바다는 매우 중요한 경제적 원천이자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대접이 쏟아지자 온 바다가 피로 변하고, 그 안의 모든 생물이 죽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그 피는 죽은 사람의 피 같아서 온 세상에 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산간 지역에 삽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아직 다른 대접들이 남아 있습니다!
바다가 피로 변했으니 경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선 독한 종기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병원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나 치료하는 의사나 모두 종기가 났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환자가 의사에게 와서 “의사 선생님, 종기가 났어요”라고 하면, 의사는 “나도 났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때가 되면 경제는 이미 엉망진창이 되었을 텐데, 종기가 낫기도 전인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바다마저 피로 변해 버렸으니 경제가 마비되지 않겠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전 세계를 통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인간이 반드시 하늘을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어찌 하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쏟아지는 이 대접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찹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다소 이르다고 느낄 수 있지만, 설령 일어난다 해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적그리스도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고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쨌든 저는 죽을지언정 그 단계까지 가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순교하는 편이 낫습니다!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처럼 변해 버렸으니, 그때 해산물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해산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죽었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조리 실직하고, 양식업을 하던 사람도 고기를 잡던 사람도 다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어떤 이는 “괜찮습니다, 민물고기를 먹으면 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겨우 두 번째 대접에 불과하며, 이미 뼈아픈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날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만약 그때 이미 짐승의 표를 받았다면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 단계까지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민을 가겠다고 돈을 이리저리 옮겨 보며 미국에서 빼내거나 중국에서 빼내려고 하지만, 도대체 어디로 옮기겠습니까? 돈을 옮겨 놓은들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이는 “괜찮습니다, 우리 집에는 라면과 생수를 많이 쌓아 두었습니다”라고 말할 텐데, 참으로 ‘똑똑한’ 생각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 세 번째 대접: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됨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에서 소리가 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6:4-7)
국가 간의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전기와 물이 끊기는 일입니다. 만약 정수장을 모조리 폭격해 버린다면, 물이 나오지 않는 도시의 상태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의 물 공급이 중단되었고, 오직 비리고 악취 나는 피만 마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대 전쟁에서는 정수장과 발전소를 폭격합니다. 만약 발전소를 통해 바닷물을 담수화하고 있었다면, 전기가 끊겼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조차 생산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하늘의 천사와 제단 아래에 있는 영혼들이 말할 것입니다. “살아보아라! 어디 한번 어떻게 사는지 보자!” 그래도 여전히 살기를 갈망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살고자 하는 욕망이 들짐승의 생존 본능과 다를 바 없다면, 그것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금 땅의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과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해 보십시오.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툭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양 으스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물 공급을 끊으시면 온 천지가 피로 물들고, 훠궈 국물마저 피가 될 텐데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종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곧이어 바다의 생물들이 다 죽고 바다가 원래대로 돌아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민물마저 끝나 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첫째 주에는 독한 종기가 나고, 둘째 주에는 바다가 피로 변하고, 셋째 주에는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해 버리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설령 목숨이 질겨 몇 주를 버텼다 해도 조급해할 것 없습니다. 이것은 겨우 세 번째 대접일 뿐이며, 뒤에 아직 네 개의 대접이 더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되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그런 지경에 이른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목숨을 아끼며 죽기를 두려워하던 자들은 반드시 이 상황을 겪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 대접: 해가 불로 사람들을 태움
바다와 온 물의 근원이 온통 피로 변해 사람들이 목말라 죽을 지경일 때, 한 대접을 태양 위에 확 쏟아붓자 태양이 불로 사람을 태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열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태양의 복사열을 20%만 높이셔도 해는 불로 사람을 태울 수 있습니다! 원래 물도 없어 목말라 죽을 지경인데 간신히 버텨 냈더니, 넷째 주에는 해가 불로 사람을 태워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타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때로 날씨가 너무 더워 햇볕이 내리쬐면 땅바닥에서 계란을 익힐 수 있을 정도가 되는데, 그때가 되면 대략 그런 상황이 될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그대로 바비큐가 되어 산 채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차하게 살아보십시오! 피를 좀 마시고, 태양에 좀 그을려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살기 위해 산다면, 일곱 대접의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살기 위해 살아보십시오. 과연 잘 살아지는지 한번 해보십시오! 결코 잘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을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태양이 사람을 태우니 너무나 비참합니다! 그렇게 태워진 후에 곧바로 다섯 번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이것은 긴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연이어 일어납니다.
다섯 번째 대접: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짐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16:9-11)
사람은 결코 천재지변을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대접으로 생긴 종기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피를 마셔야 했고, 이제는 종기가 온몸으로 번지고 짐승의 나라는 어두워졌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자기 혀를 깨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서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왜 사람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귀신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려 해도 회개할 길을 찾지 못하며, 설령 안다 한들 감히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면 경찰이 목숨을 빼앗으려 할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저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태양은 여전히 내리쬐고 있고, 바다는 여전히 피이며, 종기는 여전히 돋아나 있고, 모든 물의 근원 역시 피로 변해 있습니다. 여기에 혀까지 아프니, 고통을 겪고 나서는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올 때 파라오 왕과 이집트인들이 겪었던 재앙보다 훨씬 더 비참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 대접: 왕들이 전능자와 싸우게 됨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요한계시록》 16:12-16)
그때가 되면 이토록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유엔은 여전히 회의를 열고 있을 것입니다! 왕들이 모여 어디로 가겠습니까? 모든 왕도 종기가 났고, 그 피를 마시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모였을까요? 귀신이 거짓말을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회의를 열었을 것이며, 아마도 탄소 배출 문제를 논의하려 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탄소 배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의 이름은 아마겟돈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제가 짐작건대 이 세 귀신의 영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화성인이 우리 지구를 공격하러 왔다. 전 세계의 왕들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다들 영화를 보셨지요? 외계인이 침공하자 모두 모여 “우리가 어떻게 외계인을 상대해야 할까? 이것은 분명 외계인이 독을 푼 것이 틀림없다. 강물이 피로 변한 것도 다 외계인의 짓이다!”라며 토론하는 장면 말입니다.
이 귀신들이 얼마나 사악합니까! 여섯 번째 대접은 왕들로 하여금 전능자와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으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맞아, 틀림없어. 은하계 밖의 지적 생명체가 우리를 공격한 거야!” 백성들도 이를 믿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여전히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외치며 싸우겠다고 맹세하지만,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인 줄은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살아남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선 군인마다 온몸에 종기가 났는데, 살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지금까지도 인간은 이런 식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이 들면 점점 더 완고해져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십시오. 그런 병든 사람들은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하게 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생에서 살아남는 것에만 큰 소망을 두고 있다면, 여러분이 사는 데 방해가 되는 대상과는 누구와도 부딪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게 무슨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왜 이런 것들이 내게 닥치게 하셨는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며, 결코 마음을 완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으로 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신장에 돌 하나 생기게 하거나 간에 암세포 하나 생기게 하셔서 대소변도 못 보고, 숨도 못 쉬고, 밥도 못 넘기며, 골반이 망가지고 무릎이 망가지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치시려 하실 때 닥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 더 나은 선택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은 결코 그저 살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깨어 있으십시오. 그날이 정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설령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 하며,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은 사람을 한없이 완고하게 만듭니다. 저는 완고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던 30대 청년이 암에 걸렸을 때, 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이 약은 효과가 60%이고, 40%는 효과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약을 먹고 효과가 없자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그 40%에 속하게 하셨습니까?” 의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90% 효과가 있고 10%는 효과가 없는 특효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그 10%에 들어가게 되었고, 또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두려워해도 죽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죽으며, 치료를 받아도 죽고 치료를 받지 않아도 죽습니다.
제가 만난 한 싱가포르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치료를 받아도 죽고 안 받아도 죽습니다.” 제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치료를 다 받고 나면 돈도 다 떨어질 텐데, 이 나이에 제가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는 이어 “치료를 받지 않아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치료받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치료받느라 고통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어차피 어떻게 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귀신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귀신에게 속지 않고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사람, 이런 깨어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말은 너무나 많습니다. 의사가 “이 주사는 한 대에 7만 위안인데, 수명을 한 달 연장할 수 있습니다. 맞으시겠습니까?”라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나면 어떻게 합니까? 또 주사를 맞아야 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면 또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맞겠다고 합니다. 의사가 또 “이 약을 먹으면 수명이 1년 연장됩니다”라고 하지만, 약을 먹고 온갖 관을 꽂고 나면 다시는 뺄 수 없다는 사실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돈을 낭비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겠습니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숱한 위기를 거듭해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제가 그런 것을 왜 걱정하겠습니까?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것은 그저 ‘먹고사는’ 이 하찮은 일로 속이는 것이며, 이런 일은 너무나 흔합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고, 귀신에게 속지 마십시오. 귀신도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사람을 속이는 수법은 매우 교묘합니다. 여러분을 사다리 위로 올려놓고 다 올라갔다 싶으면 사다리를 치워 버려, 결국 여러분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대접: 되었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하나님이 큰 성 바벨론을 기억하사 자기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그에게 주시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요한계시록》 16:17-21)
그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회의를 열어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논의하고, 연구소를 설립하여 종기를 치료할 약을 개발하는 데 500억을 더 투자하고, 바다를 정화하는 데 5,000억을 더 투자하며, 모든 물의 근원을 치료하는 데 5조를 더 쏟아붓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모든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시리아 내전 현장’처럼 폐허로 변해 버릴 것입니다.
‘쾅쾅쾅’ 울리는 대지진이 일어날 텐데, 과연 진도 몇이나 되겠습니까? 7도나 8도만 되어도 치명적인데, 진도 10이 넘는 지진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방금 인테리어를 마친 집도, 새로 지은 초고층 빌딩도 모두 순식간에 폐허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진이며, 수많은 핵폭탄이 터진 것과 같습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군대든 경찰이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사람을 구하려 서두를 것입니다. 그러나 대지진 뒤에는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 해안 도시들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너진 벽돌과 기와를 치우며 인명 구조에 매달릴 것입니다. 모두가 종기가 나고 병들었으며 물조차 없는데도 구조 작업을 벌여야 합니다. 그러나 구조 작업이 한창인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우박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 우박이 얼음 덩어리인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무게가 무려 45킬로그램에 달합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20킬로그램짜리 여행 가방 하나만 떨어져 사람에게 맞아도 목숨을 잃습니다.
그런데 온 사방에 45킬로그램짜리 거대한 우박이 쏟아져 내리니, 도대체 무엇이 이를 견뎌 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고사하고 소조차 버텨내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내 테슬라 차 안에 숨어 있으면 된다”라고 하겠지만, 차가 아무리 튼튼하다 한들 45킬로그램짜리 우박이 하늘에서 내리꽂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지진이 갓 지나가자마자 거대한 우박이 쏟아지니, 세상은 순식간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구차하게 살아남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지경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문득 큰 성 바벨론을 기억하셨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고대의 원형 경기장이나 성전의 폐허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고대의 신전들은 대단히 웅장한 건축물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왜 폐허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진노가 그곳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대 그리스의 폼페이는 대단히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발굴된 유적을 보면 폼페이의 대중목욕탕은 오늘날의 시설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사람들은 향락을 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폐허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수천만 위안이든 수억 위안이든 주고 산 집이라 할지라도, 대지진과 거대한 우박이 쏟아져 내리면 대도시는 완전히 끝장나고 맙니다. 사람이 땅의 일에만 마음을 둔다면 역사를 똑똑히 읽어 보아야 합니다. 설령 그 도시가 끝까지 남아 있다 한들 여러분은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며,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면하건대, 이것은 인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땅의 일에만 마음을 둔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설령 이 땅이 영원히 지속된다 한들 여러분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합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매일 땅의 일만 생각하다가 온몸에 병을 얻고, 결국 수고와 슬픔 속에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성경은 왜 여기서 대도시를 언급하고 있을까요? 대도시에는 투자 기회가 많아 모든 사람이 ‘돈을 긁어모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광둥성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다 돈을 벌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서로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며 칼을 겨누러 온 것이 아니라, 모두 돈을 벌러 온 것입니다! 어디로 가서 돈을 법니까? 대도시로 가서 돈을 법니다.
사실 돈은 사람을 몹시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도시는 참으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대도시에서 돈을 벌기는 하지만, 우리는 결코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 하심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이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다
그때 성전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전능자의 심판이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전능자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어떤 이는 “저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서도 아주 잘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멀리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다 보면, 살기 위해 사는 모든 자의 결말이 재앙임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일곱 대접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만약 이 일곱 대접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대접이 쏟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 성경 구절이 기록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재앙을 겪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지, 전능자의 심판이 얼마나 공의로운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되시도다! 의로우시도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