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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에베소서 5장 -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

2025-08-13 38,870 以弗所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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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弗所书05章-行事为人当像光明的子女
  • 1 所以,你们该效法 神,好像蒙慈爱的儿女一样。
  • 2 也要凭爱心行事,正如基督爱我们,为我们舍了自己,当作馨香的供物和祭物,献与 神。
  • 3 至于淫乱并一切污秽,或是贪婪,在你们中间连提都不可,方合圣徒的体统。
  • 4 淫词、妄语,和戏笑的话都不相宜;总要说感谢的话。
  • 5 因为你们确实地知道,无论是淫乱的,是污秽的,是有贪心的,在基督和 神的国里都是无份的。有贪心的,就与拜偶像的一样。
  • 6 不要被人虚浮的话欺哄;因这些事, 神的忿怒必临到那悖逆之子。
  • 7 所以,你们不要与他们同伙。
  • 8 从前你们是暗昧的,但如今在主里面是光明的,行事为人就当像光明的子女。
  • 9 光明所结的果子就是一切良善、公义、诚实。
  • 10 总要察验何为主所喜悦的事。
  • 11 那暗昧无益的事,不要与人同行,倒要责备行这事的人;
  • 12 因为他们暗中所行的,就是提起来也是可耻的。
  • 13 凡事受了责备,就被光显明出来,因为一切能显明的就是光。
  • 14 所以主说:“你这睡着的人当醒过来,从死里复活!基督就要光照你了。”
  • 15 你们要谨慎行事,不要像愚昧人,当像智慧人。
  • 16 要爱惜光阴,因为现今的世代邪恶。
  • 17 不要作糊涂人,要明白主的旨意如何。
  • 18 不要醉酒,酒能使人放荡;乃要被圣灵充满。
  • 19 当用诗章、颂词、灵歌彼此对说,口唱心和地赞美主。
  • 20 凡事要奉我们主耶稣基督的名常常感谢父 神。
  • 21 又当存敬畏基督的心,彼此顺服。
  • 22 你们作妻子的,当顺服自己的丈夫,如同顺服主。
  • 23 因为丈夫是妻子的头,如同基督是教会的头;他又是教会全体的救主。
  • 24 教会怎样顺服基督,妻子也要怎样凡事顺服丈夫。
  • 25 你们作丈夫的,要爱你们的妻子,正如基督爱教会,为教会舍己。
  • 26 要用水藉着道把教会洗净,成为圣洁,
  • 27 可以献给自己,作个荣耀的教会,毫无玷污、皱纹等类的病,乃是圣洁没有瑕疵的。
  • 28 丈夫也当照样爱妻子,如同爱自己的身子;爱妻子便是爱自己了。
  • 29 从来没有人恨恶自己的身子,总是保养顾惜,正像基督待教会一样,
  • 30 因我们是他身上的肢体(有古卷加:就是他的骨他的肉)。
  • 31 为这个缘故,人要离开父母,与妻子连合,二人成为一体。
  • 32 这是极大的奥秘,但我是指着基督和教会说的。
  • 33 然而,你们各人都当爱妻子,如同爱自己一样。妻子也当敬重她的丈夫。

《答疑解惑》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베소서 5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은 매우 흥미로운 장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장을 설교하거나 나누기 좋아합니다. 이 장을 읽고 나면 남편은 "당신은 나에게 순종해야 해"라고 하고, 아내는 "그럼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를 사랑해야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여러분 부부의 그런 사소한 일상사를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해결하고자 한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여러분이 삶 속에서 어떤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5장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으면 여러분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장의 주제

인터넷에서 이 장의 주제를 검색해 보았더니 참으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부부 관계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저는 한 가지 영적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 험악한 기운을 띠고 있으니, 집안 분위기가 마치 저승사자 소굴과도 같았습니다. 그러한 부부 문제를 해결하느라 제 모든 시간을 낭비하던 중, 저는 이것이 잘못된 접근임을 깨달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간다면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문제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기본 원칙을 세웠습니다. 부부의 사소한 문제들을 일일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끝도 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부부 두 사람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못하면 그들의 영적 수준은 저승사자 수준에 머물러 지평선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어쩌면 12층, 13층 지옥 밑바닥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그들을 그 낮은 차원에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전체 사역의 기본 원칙이 되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저는 우리 사역자들에게 그 일에 직접 개입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바로 그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남편이 믿지 않는다면 자매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하고, 아내가 믿지 않지만 남편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형제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 장의 주제입니다. 결코 부부 관계에만 얽매여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차원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바울은 단순히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본받으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집안의 사소한 일로 다투고 싸우며 허비하던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로 돌리면,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온전해집니다.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매우 이기적이고 악합니다. 어떤 자매가 제게 영상을 하나 보내주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선하며 선한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지혜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한 자들의 이면에는 인생의 풍파가 아니라 추악함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자들 치고 추악함 없이 그곳에 오른 사람이 있겠습니까? 착하기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부 관계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진정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치열하게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싸우는 모습만 보았을 뿐입니다. 제 친구의 부모님은 80대이신데, 아버지가 88세에 투신하셨습니다. 평생 부부가 서로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입니다. 88세의 연세에 난간을 뛰어넘으실 만큼 건강은 좋으셨던 셈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는 "예수님이 몇 분이나 계시다고 감히 예수님을 본받으려 하느냐"는 식의 잘못된 주장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는 성경 밖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귀신처럼 살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첫 번째: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이 세상은 인간의 이기심을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5:1-2)

하나님을 본받는 첫 번째 걸음은 자신을 바치는 것을 본받는 것 아닙니까? "자신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요"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바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기심 가운데 살며 자신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사람답지도 못하고 귀신 같은 몰골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목양에서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사랑하여 결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시고,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이것을 행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단순한 인간적인 착함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해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을 바친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을 철저하게 처리한 사람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의 이기심은 그 어떤 제도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제도든, 중국의 제도든, 그 어느 나라의 제도든 인간의 이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이기심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작용을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사유재산제를 시행합니까? 사유제에서는 죽어라 일해서 번 것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라 일했는데 남의 것만 된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전부 국가의 것이 된다면 사람들은 대충 일하게 되고 발전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자기 몫이 생기고 기회가 주어지기에,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이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이기심의 논리 체계를 깊이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땅부터 분배해 주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한 구획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터전이 생기니 자신의 가정과 삶을 열심히 돌보게 된 것입니다. 땅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면 누가 그 땅에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다루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완전한 무사무욕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시고, 우리를 위해 속죄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는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이 무사무욕한 것보다 낫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려면 먼저 이기심을 처리해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단하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일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어떤 말씀이 이어지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에베소서》 5:2-6)

어떤 사람이 매우 이기적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반드시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실 때 사탄이 하나님 앞을 두루 다닙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아, 최근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물으십니다. 사탄이 "땅을 두루 돌아다녔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이 꽤 이기적인 것을 보았느냐?" 하시니, 사탄이 "네, 보았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럼 넌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자 사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압니다. 손좀 봐주겠습니다" 하고 가서 삶을 뒤흔들어 놓으니 비극적인 일들이 터져 나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스스로 깊은 구덩이를 판 셈입니다.

왜 탐욕을 부립니까?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고, 남의 자녀를 탐내고, 남의 밭과 집을 탐내는데 좋은 결말이 있겠습니까? 성경의 십계명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내기 때문에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얻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탐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다 보면 돈 벌 생각만 가득하여 손해 볼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중에도 매우 이기적인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매의 남편이 밖에서 온라인 대출로 수십만 위안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대신 갚아주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5만 위안을 보내고, 또 7만 위안을 보내고, 나중에는 더 많은 돈을 보내고 나서는 괴로워합니다. 왜 괴로워할까요? 돈이 남편 주머니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남편과 별거하여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떨어져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왜 갈라서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그 속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퇴직하면 나오는 25만 위안의 퇴직 기금과 퇴직 후 매달 나오는 1만 위안의 연금 수입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을 바란 것이 아니라 그 돈을 탐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억지로 참아왔던 것입니다. 겉으로 늘어놓는 핑계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돈을 탐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돈을 보낸 것은 아니겠지만, 돈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으면 지혜로워집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 안의 탐심이 사라집니다. 왜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까? 탐심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 "목사님, 저희가 결혼할 당시에요..."라고 하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두 분 결혼할 때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예순이 넘었습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제게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돌봐주고 그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제가 돌봐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일이 생기니 그 사람이 도망쳤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득 볼 생각만 하셨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그 사람이 아무 일도 없이 종일 휠체어만 밀어주겠습니까? 대가도 없이 마비된 배우자를 돌보며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도망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라도 그런 처지에 놓였다면 당장 도망치라고 권했을 것입니다."

진작에 무엇을 생각했던 것입니까? 이익만을 바라면 사람은 미련해집니다. 기쁜 마음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섬겨야 합니다. 사람이 언제 참된 기쁨을 누리는지 기억하십시오. 베풀 때 비로소 기쁨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본받아 자신을 드리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을 본받는 자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면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왜 굳이 자신이 마비되었을 때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을 미리 대비하려 합니까? "내가 마비되면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결국 진짜 몸이 불편해지니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말만 번지르르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가장 복됩니다. 굳이 불행한 미래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두 번째: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인간의 마음속 생각은 참으로 더러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직분은 바로 이러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청을 높여 부르짖는 이유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본받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지 않는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은 참으로 추잡하고 이기적입니다. 밖으로 드러내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털어놓아 보세요"라고 하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말해 보세요" 하면 "말하면 너무 부끄럽습니다"라고 합니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을 왜 마음에 품고 있습니까? 머릿속에 온통 이기적인 생각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짧은 영상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매력적인 사람이 지나가자 많은 이들이 쳐다봅니다. 함께 길을 걷던 남편도 뒤를 돌아보자 아내가 찰싹 뺨을 때리며 "뭘 봐?"라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고 행하는 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공감하지 않으십니까?

집을 인테리어하기 위해 디자이너를 불렀다고 해봅시다. 디자이너는 속으로 '순진한 고객이 왔구나' 생각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미리 말해주지 않고 나중에야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 부분이 빠졌네요" 하면 "추가 비용이 듭니다" 하고, "저것도 빠졌네요" 하면 "추가 비용이 듭니다" 합니다. 이때는 이미 협상할 여지도 없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면 계속해서 추가금만 요구하여 결국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왜 디자이너가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내가 바보도 아닌데 왜 미리 알려주겠습니까? 그걸로 돈을 버는 것인데요."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5:8-14)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돈'입니다. 어젯밤에 늘 괴로워하는 한 자매를 사역해 주었습니다. 왜 괴로워할까요? 그 자매는 엔터테인먼트 라이브 방송 스트리머입니다. 후원자가 보내주는 돈에 의존해야 하는데, 큰손 후원자가 떠나버리면 마음에 큰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 후원자라는 사람이 그리워서일까요? 정말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일까요? 그 사람 주머니에 있는 돈이 그리운 것입니다. 다 돈 때문입니다. 그 후원자가 계속해서 돈을 보내준다면 괴로워하겠습니까?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저마다의 핵심 이익이 있습니다. 왜 앞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하시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은 자로 살아간다면 어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찌 부족하겠습니까? 배경을 따진다면 우리 아버지가 가장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빛의 자녀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왜 일을 할 때 불의하고 추잡한 생각을 품습니까? 이득만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내면에 탐욕과 사리사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바로 그 미끼로 사람을 낚아챕니다. 그러니 부끄러운 일들은 더 묻지도 마십시오. "왜 괴로우십니까?" 하고 제가 돈 문제임을 지적하자 그 사람은 웃었습니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약 진짜 그 후원자를 사랑한 것이라면 그것은 더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거하십시오. 떳떳하지 못한 일은 하지 마십시오. 행하고 나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추잡한 일은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왜 그렇게 됩니까?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은밀하고 무익한 어둠의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게 하십니다. 기를 쓰고 돈을 모으려던 사람들이 결국 다 잃어버리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작은 악한 영 하나를 보내 흔드시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높은 차원에서 문제들을 바라보아야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물론 직장에서 이 원리를 왜곡하여 적용하지는 마십시오. 직장에서 영업직을 맡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성과를 잘 내야 합니다. 그것은 정당한 영업 기술입니다. 고용주가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고용주 역시 힘든 여건 속에서 일하므로 그 입장을 헤아려야 합니다. 급여를 주며 고용했다면 사업의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프로다운 전문성입니다. 전문성이 없는데 어떻게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빛이 있어야 하며, 추잡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봉양을 두고 하나님께 바쳤다고 핑계 대는 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헌금해 버리면 부모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아무런 논리도 없는 궤변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악한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에게 강력히 권면합니다. 어둡고 무지한 일들을 멀리하십시오. 우리 안의 이기적인 동기는 입 밖에 내기에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미끼에 걸려드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둡고 무지한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 가운데 행하면 미끼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세 번째: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베소서》 5:15-21)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은 마치 어머니의 간절한 잔소리 같지만, 실은 참으로 보배로운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면 평생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의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왜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까요?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심과 영계의 실재를 알기에 수많은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왜 세월을 아껴야 할까요? 왜 시간을 숏폼 영상만 보는 데 다 쓰면 안 됩니까? 숏폼 영상만 사랑하고 세월을 아끼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매일 영상을 넘겨보다가 자신을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돈이 없으니 온라인 대출을 받고,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일자리마저 잃어버립니다. 제게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해결책이 없습니다.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십 대 아이처럼 어리석고 무지합니다. 무엇이 부족합니까?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냥 살다 보면 저절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10만 위안의 대출을 받았으면 갚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 돈을 다 써버렸는데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생각이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갚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돈이 없으면 쓰지 말아야 합니다.

왜 세월을 아껴야 합니까? 시간을 자신의 성장에 투자하는 데 사용하면 돈이 부족할 일이 거의 없고, 대출을 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처럼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끊임없이 헌신하고 가치를 창출하려는 자가 어찌 가난해지겠습니까?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고통당하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저 멍하니 숏폼 영상이나 보며 세월을 허비하면 됩니다.

숏폼 영상에서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숏폼뿐만 아니라 샤오홍슈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제대로 된 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핵심적인 비결은 쏙 빼놓고 감추어 둡니다. 하나님을 본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를 본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일을 행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할지를 밝히 깨닫게 해줍니다. 이 일을 행한 뒤 괴로움이 따를 것이 뻔하다면 행하겠습니까? 가난해질 것이 뻔하다면 행하겠습니까?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 뻔하다면 행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며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사람을 지혜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최근에 깨달은 사실은, 온몸에 종교적인 냄새만 가득하고 정작 생산적인 실제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은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하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고 훈계만 늘어놓다가, 무슨 일이라도 맡기면 비명을 지르며 힘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실제적인 일을 잘 감당하도록 반드시 이끌어야 합니다. 일상에서 정작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할렐루야"만 외친들 무슨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진정으로 좋은 은혜와 평안을 원한다면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내면이 지극히 평안하고 편안해집니다. 술을 마시면 잠시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성령 충만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네 번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따라 부부 관계를 다루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22-33)

이 본문을 두고 바울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함정을 파놓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만약 남편이 지극히 육신적인 사람이라면 무조건 순종해야 할까요? 그대로 순종하다가는 함께 육신을 따르는 자가 되고 맙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때 온전히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저승사자처럼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싸우고 있는데 이 말씀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그 상태에서 억지로 지키려 하다가는 문제가 더 커집니다.

예전에 어떤 유명 인사가 이혼한 부부를 크루즈선에 태워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평생 일부일처로 살겠다고 서약하게 하며 반지를 끼워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성대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재결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물어뜯으며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육신에 속한 두 사람은 결코 온전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두 사람이 만나 "당신도 자신만 사랑하고 나도 내 자신만 사랑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자기 이득만 챙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켜 이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부부 관계를 비유로 삼았을 뿐입니다. 부부가 그 영적 차원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무슨 온전한 순종이 있겠습니까? 억지로 순종하려다 주님마저 잃어버리고 남편이 주인이 되어버리거나, 서로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저는 이 문제에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이 말씀은 형식에 불과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부터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온전한 부부 관계를 찾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화목한 부부가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렇지 못한 부부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아니라 뼈 속의 가시, 살 속의 가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더욱이 이 음란한 세대 속에서 부부 관계의 본질은 더욱 흐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고 명백히 밝혔습니다. 육신에 속한 두 사람의 부부 관계에 이 말씀을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부부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바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러나 이상은 높고 현실은 냉혹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따라 부부 관계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교회는 온전히 하나입니다. 그 일치됨이 어느 정도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방식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이 구절을 아내를 억압하거나 남편을 조종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본받지 않고 귀신의 성품을 닮아 서로 물고 뜯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이익만 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은퇴하면 연금이 나오니 그것만 바라보고 참아야지" 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잊어버린 생각입니다. 그런 태도로 어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서로 물고 뜯으며 고통 속에서 신음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본받는 문제부터 해결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면, 설령 남편이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어둡고 무지하며 어리석은 것들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다섯 번째: 영광스럽고 거룩하며 흠 없는 교회가 되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어떻게 세우십니까? 바로 영광스럽고 거룩하며 흠 없는 교회로 세우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세우려 하면 고생만 할 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저는 그러한 안타까운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본받아 영광스럽고 거룩하며 흠 없는 교회를 세우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없이 이기심만 가득하여 교회에서 이득이나 취하려는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모아놓는다면 교회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결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은 세뇌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분 생각 속의 쓰레기를 치워버리는 곳임을 아셔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때까지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흠 없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임을 저는 깊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왜 중병에 걸리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겠습니까? 더럽고 부정한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으로 무분별하게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흠 없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한 첫날부터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강하고 담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흠 없는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수 있기에, 저는 하나님의 기준을 붙잡고 나아갈 뿐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교인이 떠나자 억지로 다시 데려왔는데, 그 교인은 도리어 목회자와 동역자들이 자기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온전히 섬길 수 있겠습니까? 가정에서 부모는 종처럼 되고 자녀는 상전처럼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종의 형체를 지녔다고 해서 무분별한 횡포를 받아주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비위만 맞추는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교회를 정결케 하십니다. 최근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을 걸러내고 계십니까? 교회에 진정한 헌신과 거룩한 사명 없이 그저 소일거리 삼아 오거나,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오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먹고 즐기는 것만을 좇는 사람은 이곳에 머물기 어렵습니다. 인격적인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이곳은 육적인 유흥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흠 없는 교회를 세우는 곳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부정함은 반드시 다루어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타협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맞춰주다 보면 사역은 온전히 전진할 수 없습니다. 한계를 넘어설 때는 단호한 조치가 따를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과 건강하고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지만, 각자의 지향점이 다르다면 각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제게 와서 "목사님, 만 리 길을 다니며 명승고적을 구경하고 여유를 즐기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그런 데 취미가 없을뿐더러 매일 만 보씩 산책할 시간도 없습니다. 감당해야 할 거룩한 사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며 놀기만 좋아하고 마땅히 해야 할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으며, 우리 교회와 끝까지 동행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흠 없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주님의 교회를 끊임없이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상 유혹에 미혹되어 떠난 자를 억지로 데려오지 않습니다. 돌아온다 하더라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힌다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습니까?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악한 영이 틈타게 만든다면 교회가 어떻게 서겠습니까? 교회는 단순히 사람 머릿수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우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우리는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일을 탁월하게 감당하도록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제 삶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만 앞서는 것은 겉모양만 그럴듯한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실제적인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소목회자들은 모두 현실의 일들을 제대로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매장을 운영한다면 탁월하게 운영하십시오. 영업을 한다면 탁월하게 영업하십시오. 사업을 한다면 지혜롭게 사업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통해 온전히 실현됩니다. 교회를 세우지 않고서는 이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은 참으로 귀합니다. 성도 여러분, 배우자에게 휘둘리거나 얽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리하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평생토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 저도 주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교회 안에서 온전히 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종교적인 껍데기만 가득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이곳에서 에베소서의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된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방임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결단을 내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선한 계획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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