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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골로새서 2장 - 너희는 주의하여 아무도 너희를 그리스도에게서 노략하지 못하게 하라!

2025-04-09 16,857 歌罗西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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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罗西书02章-基督里生命的丰盛
  • 1 我愿意你们晓得,我为你们和老底嘉人,并一切没有与我亲自见面的人,是何等地尽心竭力;
  • 2 要叫他们的心得安慰,因爱心互相联络,以致丰丰足足在悟性中有充足的信心,使他们真知 神的奥秘,就是基督;
  • 3 所积蓄的一切智慧知识,都在他里面藏着。
  • 4 我说这话,免得有人用花言巧语迷惑你们。
  • 5 我身子虽与你们相离,心却与你们同在,见你们循规蹈矩,信基督的心也坚固,我就欢喜了。
  • 6 你们既然接受了主基督耶稣,就当遵他而行,
  • 7 在他里面生根建造,信心坚固,正如你们所领的教训,感谢的心也更增长了。
  • 8 你们要谨慎,恐怕有人用他的理学和虚空的妄言,不照着基督,乃照人间的遗传和世上的小学就把你们掳去。
  • 9 因为 神本性一切的丰盛都有形有体地居住在基督里面,
  • 10 你们在他里面也得了丰盛。他是各样执政掌权者的元首。
  • 11 你们在他里面也受了不是人手所行的割礼,乃是基督使你们脱去肉体情欲的割礼。
  • 12 你们既受洗与他一同埋葬,也就在此与他一同复活,都因信那叫他从死里复活 神的功用。
  • 13 你们从前在过犯和未受割礼的肉体中死了, 神赦免了你们(或译:我们)一切过犯,便叫你们与基督一同活过来;
  • 14 又涂抹了在律例上所写、攻击我们、有碍于我们的字据,把它撤去,钉在十字架上。
  • 15 既将一切执政的、掌权的掳来,明显给众人看,就仗着十字架夸胜。
  • 16 所以,不拘在饮食上,或节期、月朔、安息日都不可让人论断你们。
  • 17 这些原是后事的影儿;那形体却是基督。
  • 18 不可让人因着故意谦虚和敬拜天使,就夺去你们的奖赏。这等人拘泥在所见过的(有古卷:这等人窥察所没有见过的),随着自己的欲心,无故地自高自大,
  • 19 不持定元首。全身既然靠着他,筋节得以相助联络,就因 神大得长进。
  • 20 你们若是与基督同死,脱离了世上的小学,为什么仍像在世俗中活着、服从那“不可拿、不可尝、不可摸”等类的规条呢?
  • 21
  • 22 这都是照人所吩咐、所教导的。说到这一切,正用的时候就都败坏了。
  • 23 这些规条使人徒有智慧之名,用私意崇拜,自表谦卑,苦待己身,其实在克制肉体的情欲上是毫无功效。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골로새서》 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누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에게서 사로잡아 가지 못하도록 조심하십시오"입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에게서 빼앗아 가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주 흐리멍덩해지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이는 매우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효력이 없는 것은 믿지 마십시오

만약 누군가 제게 어떤 것을 청산유수처럼 그럴싸하게 설명하며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효력을 볼 수 없는데, 죽어서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 여러분은 저의 이 논리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살아서 겪는 문제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살아서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들을 특별히 경계합니다. 살아서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수십만,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은 사실 별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들에 미혹되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천국에 간다는 문제도 사람을 매우 헷갈리게 합니다.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효력 없는 복음을 전하여,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암에 걸리는 것입니다. 대체 어떤 주님을 믿은 것입니까? 믿은 것이 복음(福音)입니까, 아니면 재앙의 소식(禍音)입니까?

이틀 전에 매우 열심이 있는 한 자매님이 저희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자매님이 있는 곳에서는 온 집안이 한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친척 한 사람이 뇌출혈에 걸렸습니다. 뇌출혈에 걸린 후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지만, 나온 뒤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복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녀는 30년 넘게 주님을 믿어왔기에 이런 상황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여러분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년 전, 그녀의 남편 역시 죽을병, 아마도 암 종류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매달려 기도했고, 남편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아내가 병에 걸렸습니다. 우리가 믿는 분은 만물을 초월하신 주님이십니다. '만물을 초월한다'는 이 네 글자를 겉으로는 다들 그렇게 읽지만, 읽고 나서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릅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젯밤 우리 가운데 한 목회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의 질문에 도저히 대답을 못 하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나에게 넘겨요." 마침 그가 제 사무실에 있어서 내용을 읽어주기에 들어보니, 결국 쓸모없는 짓 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를 보면 무작정 달려들어 기도해 주는데, 상대방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원에 난입해 사람들을 일일이 다 안수하며 고치셨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시대에 오직 나병 환자 나아만만이 치료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치료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오직 나아만만이 엘리사를 찾아왔고 다른 나병 환자들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미혹이 하나 있는데, 바로 '중보기도(대신하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매우 부패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여기서 그 사람을 대신해 기도하고 있는데, 그는 저기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Yeah, okay, yeah, I will pray for you. Fine, that's alright, I will pray for you."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사실 정작 본인은 기도하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많은 것들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해보고 효력이 없다면 저는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효력이 없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을 만큼 저는 큰 믿음이 없으며, 그런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믿음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커다란 의문을 낳습니다. 당신은 과연 효력 있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효력 없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지금 사람들은 효력 없는 복음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유튜브에 제게 댓글을 달아, 제가 극단적 은사주의니, 성공신학이니, 번영신학이니 합니다. 만사가 형통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효력도 없는 복음을 믿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다윗 포슨의 설교를 들으라 하고, 이 목사 말은 듣지 말고 저 당 목사 말을 들으라고 권면합니다. 저의 권면은 차라리 진지하게 성경을 더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듣지 말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효력이 없는 것은 믿지 마십시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오래전 제가 아직 주님을 믿기 전에도 효력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 좋은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컴퓨터 소프트웨어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작업을 마친 후 저는 그의 집에 가서 불경에 대해 토론하곤 했습니다. 사실 저도 불경을 잘 읽지 못해서 그에게 물어봐야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것으로 사람이 큰 불운에 처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가?" 그가 말했습니다. "해결할 수 없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너가 아는 사람들 중에 도를 깨달아 결실을 맺은(修成正果) 사람이 있는가?" 그가 말했습니다. "없는 것 같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너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는 사람 중에 결실을 맺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라." 그가 말했습니다. "역시 없는 것 같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한 명만이 결실을 맺는다면 확률이 너무 낮지 않은가.' 저는 확률이 극히 낮은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시 저는 비교적 열린 태도로 주님을 믿고자 여기저기 다 다녀보았습니다. 한 교회에 가서 물었습니다. "사람의 불운을 바꿀 수 있습니까?" 당시 제가 너무나 불운했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며, 찬물을 마셔도 이가 삘 정도로 비참하고 고달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전통 복음주의 교회에도 가보았는데, 거기서는 의사를 소개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운이 나쁘고 병까지 들어 마음이 괴롭고, 가난하고 병든 데다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교회에 갔더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운명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한번 탐구해 보고 더 알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 내면에서 이 개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면, 죽어서는 더더욱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살아서는 볼 수 없고 죽어서야 볼 수 있다는 식의 이론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나서 저는 우리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발견했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을 때 그 교회에 갔다가 결국 암에 걸렸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그런 교회를 계속 다닐 수 있겠습니까? 명백히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제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섬길 때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결국 제 자신이 실직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통닭, 통오리, 소시지 같은 것으로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주를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실직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재빨리 반응하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새로 배웠습니다.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날지 못한다면 만들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굴러가지 못해 밀고 가야 한다면, 그것 역시 만들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효력이 없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교회를 세웠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효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화인 사명 신학의 구원 개념조차 성경에서 새롭게 발굴해낸 것입니다. 기존의 복음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복음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큰 능력이 있어 소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왜 효력이 있고 없음을 이야기할까요?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2:23)

골로새 사람들은 미혹을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노략질당했습니다.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큰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분들이 저에게 와서 치유받지 않았습니까? 암에 걸린 사람도 저에게 와서 치유받지 않았습니까? 치유를 받고 은혜를 입었다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과거의 옛 삶의 방식대로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이 복음은 큰 효력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해야 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아무런 효력도 없는 복음을 믿으면서도 자신이 정통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슨 정통입니까? 쓰레기통입니다. 비록 똑바로 세워놓은 쓰레기통이라 할지라도 쓰레기통일 뿐이지 정통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효력이 없다면 우리는 왜 효력이 없는지 알아야 합니다.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잘못된 것은 '불신'입니다. '믿음'이라는 두 글자는 참으로 신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믿습니까? 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미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큰 능력이 있어 소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바울의 서신서를 다 읽어보면 이러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결론입니다. 이 결론은 바로 깨달음 가운데 있는 충만한 믿음입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1-3)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보배이십니다.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좋은 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배움을 독려하겠습니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서도 아니고, 변호사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맹목적인 미신적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 가운데 충만한 믿음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으로 충만해지는 것, 이것이 깨달음 가운데 있는 충만한 믿음입니다.

교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비밀이 과연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코 잘못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 한 자매님을 섬기며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줄 때, 저는 전통 신학이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믿든 안 믿든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화인 사명 신학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아니며, 깨달음 속의 믿음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큰 능력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터무니없는 것들을 분명히 바로잡고 있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신학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는 신학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종교의 영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매우 거룩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마음에 긍휼이 넘쳐서 아픈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기도해 주고는 '왜 내 기도에 열매가 없을까' 하며 의아해하지만, 그것은 결코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다시 여러분을 본질로 이끌어 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통해 전능하심을 나타내시며 만물을 발아래 굴복시키십니다. 상대방이 기도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달려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은 그 환자를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병에 걸린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이 보배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물을 던져 건져 올린 후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는 것,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깨달음 가운데 충만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깨달음에 있어 최소한 초등학생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성경을 다 읽고 나서 성경이 말하는 바가 이것이고 주제가 이것이라는 것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효력 없는 것이 허황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큰 능력이 있어 소망을 주는 복음임을 알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고 충만한 믿음도 없이 온통 불신뿐이라면 교묘한 말에 미혹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교묘한 말에 미혹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암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었을 때 효력이 있었습니까? 본래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사람이 기도를 받고 펄펄 뛰며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자기가 믿던 헛된 것들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저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도대체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온통 교묘한 말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요?

교묘한 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만약 아직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깨달음 가운데 충만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말에 미혹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골로새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었을까요? 오직 자신을 매우 고상하고 대단하게 포장한 사람들뿐입니다. 이 일은 베드로와 야고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골로새 사람들은 할례를 숭상했습니다. 할례를 누가 장려했습니까? 모세가 장려한 할례입니다. 모세가 장려한 할례를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누가 장려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두 거물이 골로새에 왔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로, 딱 버티고 선 첫 번째 거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가 두 번째 거물로 서 있습니다. 골로새 사람들은 즉시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에바브라는 두 거물을 보자마자 감탄하며 숭배해 마지않았습니다.

너희는 조심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하노니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어떤 사본에는: 그 보지 못한 것을 엿보아)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골로새서》 2:16-18)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효력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2:20-23)

이것은 제가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베드로와 야고보 본인이 아니라면, 그들이 훈련시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훈련받아 지키는 할례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구약의 절기를 지키고,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 오늘날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차라리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왜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식에 있어서 이것은 먹어도 되고 정결하며, 저것은 부정하고, 이것은 깨끗하고 저것은 더럽다는 것. 제가 알기로 매우 유명한 한 목사님이 우리 중 한 자매님의 집에 와서 날마다 유기농 음식만 먹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베드로의 신학 체계가 옳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천사가 사람보다 더 크고 능력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천사를 숭배하고 높이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 유다도 천사를 높였고, 수제자 베드로도 천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천사는 닭이나 오리, 개 같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자란 동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데, 자기 육신의 생각을 따라 까닭 없이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제가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해서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들의 신학을 따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제게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자신에게는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며 까닭 없이 스스로를 높이고, 수많은 규례와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심리학을 교회 안으로 들여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심리학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심리학을 공부하러 갔습니다. 우울증을 해결하고 싶어서였는데, 공부를 마치고 나니 우울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나중에 우리 가운데 와서 우울증이 거의 다 나았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관세 전쟁에 대해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너는 너대로 올리고 나는 나대로 올린다며, 한 자매님이 제게 관세 인상과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 듣고 나서도 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들 열심히 연구해서 모두 경제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심을 둔다고 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미 몸에 병이 들어 허리 디스크도 안 좋고 목 디스크도 안 좋은데, 휴대폰으로 관세 전쟁 소식을 찾아보는 데는 아주 열심입니다. 이 얼마나 미혹되기 쉬운 모습입니까!

우리는 이것들이 모두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종말이 다가온다고 하니 서둘러 통조림을 몇 상자씩 사고, 생수를 몇 상자씩 사둡니다. 그런 것들이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언젠가 다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몇 달 더 먹든 덜 먹든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교묘한 말에 미혹되는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것들에 미혹될까요? 저는 줄곧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왜 이런 것들이 또 필요할까요? 사람이 여전히 세상의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효력이 없으면서 압축 비스킷과 생수, 통조림만 가득 쌓아두는데, 나중에 핵전쟁이 터지면 도대체 어디로 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그리스도에게서 빼앗기지 마십시오. 아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면 속히 들어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온갖 좋은 것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코 추구를 멈추지 마시고, 힘써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아가며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쓸모없고 복잡하게 들리는 것들을 안으로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개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얼마나 단순할까요? 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끊임없이 높이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것, 이토록 단순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질문만 하면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왜 복잡해질까요? 단순하게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인 신학입니다. 특히 '101 과정'은 화인 사명 신학의 기본 뼈대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반석 위에 세우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천국 열쇠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며,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한 이치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왜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들까요? 우리 안에 온통 규례와 사람의 것들이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은 매우 복잡한 학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병을 고칠 때 먼저 귀신을 쫓아내고 진리를 가르치면 끝납니다. 하지만 의학을 연구해 보십시오. 땀을 뻘뻘 흘리며 죽도록 고생합니다.

우리의 방법은 얼마나 단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취하고 마귀의 권세를 짓밟으면 됩니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의사들이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 연구하는 것, 아이고, 저는 그런 것을 도무지 연구하지 못합니다. 이것에 독이 있고 저것에 독이 있다 해도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래 식당에 가서 이거 한 접시, 저거 한 접시 달라고 해서 먹으면 그만입니다. 요리사가 화장실에 다녀왔는지, 손을 씻고 왔는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만든 음식은 조심하십시오. 믿음이 없으면 드시지 마십시오. 저는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지만, 여러분에게 대접할 때는 신경을 좀 씁니다. 여러분의 심리적 감당 능력을 고려해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손을 씻는지 지켜보고, 씻지 않으면 그냥 그런대로 둡니다.

교묘한 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와 다시 자유를 얻으십시오. 사람 속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차 있으면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먹으면 암에 걸리고 저것을 먹으면 무슨 병에 걸릴까 봐, 요즘 오염이 심하다는 등 듣기에는 매우 복잡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이미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올바른 처신을 배우기를 권면하지만, 뼛속 깊은 곳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사람의 체면을 보거나 사람의 뜻을 헤아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십시오. 사람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곧 마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며, 결국 비참해집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혹은 너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밝히 보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로새서》 2:11-15)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7)

우리는 조심해야 하며, 이러한 교묘한 말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교묘한 말들은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며, 쓸 때에는 다 부패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것들을 따르면 사람을 망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사람을 망치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 알아갑시다.

결론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그 약속들을 온전히 받아들입시다. 더 이상 이러한 것들에 미혹되지 말고 힘써 추구하여 끊임없이 성장하며, 예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형제자매들의 삶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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